전쟁과 평화 (10-1)

제3권 제2부 (1)

by Andy강성
제2부

1


나폴레옹이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한 것은 그가 드레스덴에 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명예심에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폴란드 군복을 입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6월 아침의 진취적인 인상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처음에는 쿠라긴이, 그다음에는 발라쇼프가 있는 자리에서 분노의 발작을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르가 모든 협상을 거절한 것은 개인적으로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바르클라이 드 톨리가 최상의 방식으로 군대를 통솔하고자 애쓴 것은 의무를 수행하고, 위대한 사령관이라는 명성을 얻기 위해서였다. 로스토프가 말을 몰고 달려가 프랑스군을 공격한 것은 평원을 질주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전쟁에 참가한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즉 저마다의 개인적 특성과 습관과 조건과 목적에 따라 행동했다. 그러나 다들 모두는 역사의 무의식적인 도구이고, 그들에게는 감춰졌지만 현재의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일들을 수행해 나갔다. 그것이 실제적인 일을 하는 모든 활동가들의 변함없는 운명이고, 사람들 사이의 위계질서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들이 누리는 자유는 더욱더 적어지는 법이다.


진실은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말한다. 나폴레옹은 모스크바로의 진군이 위험하다는 것을 예견하지 않았고, 알렉산드르도, 러시아 사령관들도 당시에는 나폴레옹을 유인하는 것은 생각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정반대되는 것을 생각했다. 러시아 군대는 원정 초기에 양분되었다. 합류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병력이 훨씬 우세한 적과의 전투를 회피하고,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날카로운 각을 이루어 퇴각하면서, 프랑스인들을 스몰렌스크까지 이끌게 된다.


러시아군이 전투 예정지를 두고 논쟁과 음모가 벌어지는 동안, 프랑스군이 있는 곳을 착각하여 그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프랑스군은 우연히 네베롭스키 사단과 맞닥뜨리고 스몰렌스크 성벽까지 접근한다. 연락 노선을 구하기 위해서는 스몰렌스크에서의 예기치 않은 전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전투가 벌어진다. 이편과 저편에서 수천 명이 전사한다. 스몰렌스크가 군주와 온 국민의 뜻에 반하여 버려진다. 나폴레옹은 계속 진군하고 우리는 퇴각한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에게 승리할 수 있는 바로 그것에 이르게 된다.



2


아들이 떠난 다음 날 니콜라이 안드레이치 공작은 마리야 공작 영애를 불렀다.

“그래, 어떠냐, 이제 만족스럽냐?”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나를 아들과 싸우게 하더니! 만족하냐? 네가 원하던 것이었지! 만족하냐? 난 그것 때문에 괴롭고, 괴롭다. 난 늙고 쇠약하다. 그게 네가 바란 것이지. 자. 기뻐해라, 기뻐해…….”그 후 일주일 내내 마리야 공작 영애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그는 아팠다. 그래서 서재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번 와병 중에는 마드무아젤 부리엔도 방에 들이지 않았고 티혼만 그의 방에 드나들었다.


8월 1일, 안드레이 공작으로부터 두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그가 떠난 직후에 온 첫 번째 편지에서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이 아버지에게 함부로 한 말에 대해 공손히 용서를 구하며, 자신에게 그의 사랑을 되돌려 달라고 청했다. 프랑스군이 비텝스크를 함락한 뒤 그 부근에서 쓴 안드레이 공작의 두 번째 편지는 아버지에게 전장 가까이, 다름 아닌 부대의 이동 전선에 아버지의 집이 있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제시하고, 아버지에게 모스크바로 떠날 것을 조언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작님?” 그날 식사 시간에 데살이 과감하게 질문하여 주의를 돌렸다.

“그전에도 말했고, 지금도 말하지만, 전장은 폴란드일세. 적은 결코 네만강을 넘어서는 더 이상 올 수 없어.”

데살은 깜짝 놀라 적이 벌써 드네프르강까지 왔는데, 네만강을 말하고 있는 공작을 쳐다보았다. 공작은 아마도 1807년의 전쟁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에게는 그 전투가 아주 최근에 일어난 일처럼 보였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녀의 아버지를 향한 데살의 당황하고 놀란 눈빛을 보았고 그의 침묵을 눈치챘다.



저녁에 미하일 이바니치가 공작의 분부를 받고서 공작이 잊고 응접실에 두고 간 안드레이 공작의 편지를 가지러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왔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편지를 건넸다. 그녀는 내키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하일 이바니치에게 과감히 물어보았다.

“지금은…… 틀림없이 책상 앞에서 유언장에 (최근 공작이 즐겨 하는 일 중 하나가 사후에 남겨야 할 문서 작업이었다. 그는 이 문서를 ‘유언장’이라고 불렀다) 매달려 계실 겁니다.”


3


미하일 이바니치가 편지를 들고 서재로 돌아왔을 때 안경을 쓴 공작이 눈과 촛불 위에 가리개를 댄 채 열린 큰 책상 앞에 앉아 문서를 쥔 손을 멀찍이 뻗고서 다소 엄숙한 자세로 자신의 문서를〔그는 이것을 ‘비고(備考)’라고 불렀다〕읽고 있었다. 이 문서는 그의 사후에 군주에게 전해질 예정이었다. 그의 눈에는 지금 읽고 있는 문서를 쓸 당시에 대한 추억의 눈물이 어려 있었다. 그는 미하일 이바니치의 손에서 편지를 넘겨받아 호주머니에 넣고 서류를 정리한 다음,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알파티치를 불러들였다.


그가 쥔 종이쪽지에는 스몰렌스크에서 구입해야 할 물품들이 적혀 있었다."첫 번째, 편지지, 여덟 묶음이야, 이 것과 똑같은 걸 구해와. 바니시, 봉랍"“그런 다음 현 지사에게 등록에 관한 편지를 직접 건네게.”그다음에는 새 건물의 문에 달, 반드시 공작이 모양을 직접 고안한 빗장이 필요했다. 그다음에는 유언장을 보관하는 장정된 상자를 주문해야 했다. 두 시간 넘게 알파티치에게 계속 지시가 내려졌다.


모든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다가 잠이 오지 않아 일어난 공작은 밤의 정적 속에서 녹색 램프 갓 아래 비치는 흐릿한 불빛에 편지를 읽고 나서야 처음으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프랑스군이 비텝스크에 있군, 나흘 동안 행군하면 스몰렌스크에 당도하겠군. 벌써 도착했는지도 모르지.’

그는 편지를 촛대 밑에 감추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도나우강, 빛나는 정오, 갈대, 러시아군의 진영이 떠올랐다. 주름 하나 없이 발그레한 얼굴에 활기차고 쾌활한 젊은 장군인 그가 포툠킨의 막사로 들어간다.

‘아, 어서, 어서 그 시절로 돌아가면 좋겠군. 저들이 날 영원한 안식 속에 내버려 둘 수 있도록 말야!’



4


니콜라이 안드레이치 볼콘스키의 영지인 리시예 고리는 스몰렌스크에서 동쪽으로 60베르스타 떨어지고 모스크바 가도에서는 3베르스타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공작이 알파티치에게 지시를 내린 바로 그날 저녁, 데살은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 면담을 청한 뒤 이렇게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의 편지에 따르면 리시예 고리에 머무는 것도 안전하지 않을 듯하니, 그녀가 스몰렌스크현 책임자 앞으로 전쟁 상황이나 리시예 고리가 처한 위험의 정도를 알려 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써서 알파티치 편에 보낼 것을 정중히 권한다는 내용이었다.


8월 4일 저녁 무렵 알파티치는 시내에 도착했다. 그는 드네프르강 건너편 가첸스코예 근교의 페라폰토프가 운영하는 여인숙에 묵었다. 밤새 여인숙 옆으로 부대들이 지나갔다. 다음 날 알파티치는 그가 시내에서만 입는 캄졸을 걸치고 용무를 보러 나섰다. 해가 난 아침이었고, 8시 무렵에는 벌써 날이 무더웠다. 8시부터는 총소리에 대포 소리도 더해졌다. 거리에는 어디론가 서둘러 가는 많은 사람과 많은 군인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서로서로 물었고, 모두가 서로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현 지사의 집에서 알파티치는 많은 수의 사람들과 카자크들과 현 지사 소유의 여행용 승용 마차를 발견했다. 대기실에서는 대기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집무실 문이 열리자 모두들 일어나 앞으로 다가갔다.

“육군 대장 볼콘스키 공작님께서 아시 남작님께 전하라고 하셨습니다.”몇 분 후에 현 지사가 알파티치를 안으로 들어오도록 했고, 다급하게 그에게 말했다.

“공작님과 공작 영애에게 보고드리게.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상부의 지시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일세.”


그는 알파티치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하지만 공작님의 건강이 아주 좋지 않으니, 내 조언은 그분이 모스크바로 가시라는 것이네. 나도 곧 떠날 거야. 그렇게 보고드리게…….”

현 지사가 알파티치에게 건넨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스몰렌스크에는 아직 어떤 작은 위험도 닥치지 않았음을 당신께 분명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이 도시가 어떤 위협을 받는 일은 아마 없을 겁니다. 스몰렌스크 앞에서 합류하기 위해 나는 이쪽에서, 바그라티온 공작은 반대편에서 이동하는 중입니다. 합류는 22일에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양 군대의 연합군은 그 병사들이 조국의 적을 무찌를 때까지, 아니면 용맹한 병사들의 마지막 한 명이 전멸할 때까지 귀하가 맡은 현의 동포들을 지킬 것입니다.
- 바르클라이 드 톨리가 스몰렌스크현 지사 아시 남작에게 보내는 지령서(1812)


여관을 나온 것은 정오가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알파티치는 창문을 흘깃 쳐다보고 문으로 향했다. 갑자기 멀리서 무언가 쉭 하고 바람을 가르며 쿵 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뒤를 이어 대포 소리가 서로 뒤섞이며 둔탁한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유리창이 흔들렸다. 그것은 4시가 지났을 때 나폴레옹이 도시를 향해 대포 130문의 포문을 열라고 명령하여 일어난 포격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포격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5분 뒤 거리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유탄 파편이 허벅지에 박힌 여자 요리사를 부엌으로 실어 갔다. 알파티치와 마부, 페라폰토프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문지기는 지하실에 앉아 귀를 기울였다. 포탄의 둔탁한 소리, 탄환들이 쉭쉭 날아가는 소리, 또 그 모든 소리들을 압도하는 여자 요리사의 신음 소리가 한순간도 그치지 않았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포성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알파티치는 지하실에서 나와 대문 쪽으로 갔다. 어느 연대가 서둘러 후퇴하며 빽빽하게 길을 꽉 메웠다. 어느새 밤이 완전히 깊었다. 병사들과 다른 마차들의 대열에서 천천히 나아가던 알파티치와 안주인의 마차는 드네프르강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에서 멈춰야 했다.

“알파티치!” 갑자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노인을 불렀다.

“아, 각하!” 알파티치는 순간 자신이 섬기는 젊은 공작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대답했다.


“저, 각하, 우리는 망한 겁니까?” 그는 안드레이 공작에게 물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수첩을 꺼내더니 무릎을 조금 끌어 올리고는 종이 한 장을 찢어 연필로 휘갈겨 썼다. 그는 여동생 앞으로 이렇게 썼다.

스몰렌스크가 넘어갔다. 리시예 고리도 일주일 뒤면 적에게 점령될 것이다. 당장 모스크바로 떠나라. 너희들이 출발하면 곧장 우스뱌시로 급사를 보내 내게 연락하기 바란다.


“10일까지 답장을 기다리겠다고 전하게. 10일까지 모두 떠났다는 소식을 받지 못하면 내가 모든 걸 버리고 리시예 고리로 갈 거라고 말하게.” 안드레이 공작은 말에 박차를 가하고 알파티치를 돌아보며 말했다.


5


스몰렌스크에서부터 군대는 퇴각을 계속했다. 적은 그들을 뒤쫓았다. 8월 10일, 안드레이 공작이 지휘하는 연대는 큰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리시예 고리로 이어지는 대로를 지나가고 있었다. 폭염과 가뭄이 3주 이상 계속되었다. 동이 트면 이동이 시작되었다. 수송 대열과 대포는 바퀴 축까지, 보병은 발목까지 밤에도 식지 않는 부드럽고 갑갑하고 뜨거운 흙먼지에 파묻힌 채 소리 없이 행군했다.



8월 10일, 그의 연대가 속한 종대가 리시예 고리 부근을 지나게 되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아버지와 아들과 여동생이 모스크바로 떠났다는 소식을 이틀 전에 받았다. 안드레이 공작은 비록 리시예 고리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슬픔을 자극하고픈 그 특유의 욕구로 리시예 고리에 반드시 들르리라 결심했다. 그는 행군에서 벗어나 자신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아버지의 영지로 말을 몰았다.


안드레이 공작을 본 하인 사내아이가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알파티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혼자 리시예 고리에 남았다.

"아버지와 여동생은 언제 떠났지?” 그들이 언제 모스크바로 떠났냐는 뜻이었다. 알파티치는 노공작과 마리야 공작 영애가 보구차로보로 떠난 일에 대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여, 7일에 떠났다고 대답했다.


“자네도 떠나. 힘닿는 한 다 가지고 가. 사람들에게도 랴잔이나 모스크바 부근으로 떠나라고 말하게.”알파티치가 안드레이 공작의 다리를 부여잡고 흐느꼈다. 안드레이 공작은 조심스럽게 그를 떼어 놓고 말에 박차를 가하여 가로수 길을 따라 빠르게 달려 내려갔다.


8월 7일, 바그라티온 공작은 스몰렌스크 가도의 미하일롭카 숙영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알렉세이 안드레예비치 백작 귀하.
(그는 알락체예프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지만 군주가 이 편지를 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최대한 신중을 기했다.)

스몰렌스크를 적에게 넘겨준 것에 대해서는 이미 대신으로부터 보고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음이 고통스럽고 침울합니다. 그 중요한 곳을 허망하게 버린 것에 온 군대가 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대는 그 어느 때보다 매우 잘 싸웠고 또 잘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1만 5천 명을 거느리고 서른다섯 시간 넘게 버티며 적을 무찔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열네 시간도 버텨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수치이고, 아군의 오점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틀을 더 버텼다면 적이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요? 최소한 그들은 후퇴했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병사와 말에게 먹일 물이 없었으니까요. 그는 나에게 퇴각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만, 갑자기 밤에 후퇴한다는 작전 명령을 보냈습니다. 그런 식으로는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조만간 모스크바에까지 적을 이끌어 들일 수 있습니다…….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 대신이 군대를 지휘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자는 군주를 사랑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파멸을 바라는 자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사실대로 씁니다. 민병대를 모집하십시오. 대신이 지극히 교묘한 방법으로 수도를 향해 손님들을 끌어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종 무관 볼초겐에게 모든 군대의 의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는 우리 편이라기보다는 나폴레옹 편 사람인데, 그런 그가 대신에게 모든 문제를 조언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퇴각 때문에 피로로 죽거나 병원에서 죽은 병사가 1만 5천 명이 넘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가 진격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벌벌 떠는 겁니까? 무엇을 위해 그처럼 선하고 열정적인 조국을 그 무뢰배에게 넘기고,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증오와 치욕을 불어넣는 겁니까? 온 군대가 비통해하며 그에게 죽도록 욕하고 있습니다…….


6


삶의 현상들 속에서 실시할 수 있는 수많은 분류 가운데에는 모든 현상을 내용 중심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고 형식 중심으로 구분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 분류의 하나로 우리는 마을, 지방 자치제, 현, 심지어 모스크바의 생활과 정반대인 것으로서 페테르부르크의 생활, 특히 살롱의 생활을 들 수 있다. 그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1805년 이후 우리는 보나파르트와 화해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으며, 헌법을 제정하기도 하고 철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나 파블로브나의 살롱과 엘렌의 살롱은 7년 전, 5년 전과 똑같았다.


최근에 군주가 군대에서 돌아온 후, 서로 대립하던 이 두 살롱 모임에서 몇몇 소요가 발생하고, 서로에 대한 몇몇 시위들이 있었다. 그러나 모임들의 성향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군주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실리 공작은 안나 파블로브나의 살롱에서 전쟁 문제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바르클라이 드 톨리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누구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할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큰 덕을 가진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 손님이 그낭 페테르부르크 민병대의 지휘관으로 선출된 쿠투조프가 민병 모집을 위해 세무 감독국에서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면서, 대담하게도 쿠투조프야말로 모든 요구사항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거라는 가정을 조심스럽게 표명했다. 안나 파블로브나가 슬픈 미소를 지으며 쿠투조프는 군주에게 불쾌한 짓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고 언급했다.


바실리 공작이 끼어들었다. "그의 분투는 허사로 돌아갈 겁니다. 과연 말 위에 앉지도 못하고 위원회에서 졸기나 하는 사람을, 성질도 제일 고약한 그런 사람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는 부쿠레슈티에서 명성을 얻었지요! 난 장군으로서 그의 자질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과연 이런 때에 노쇠하고 눈이 먼 사람을, 그저 장님에 불과한 사람을 임명할 수 있습니까?"


7월 24일만 해도 이 말은 전적으로 옳았다. 그런데 8월 8일에 살티코프 원수, 아락체예프, 뱌지미티노프, 로푸힌, 코추베이로 구성된 위원회가 전쟁 관련 일들을 협의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위원회는 지휘권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패배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위원회를 구성한 인물들은 군주의 쿠투조프에 대한 비호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협의 끝에 쿠투조프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쿠투조프는 군대 및 군대가 점유한 전 지역에 전권을 행사하는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여러분, 특보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쿠투조프 공작이 원수가 되었습니다. 모든 불화는 이제 끝났습니다. 난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기뻐요.” 바실리 공작이 말했다. “마침내 인물이 나타났어요.” 그는 응접실에 있던 이들을 의미심장하고 근엄한 눈길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리고 내가 기뻐하는 이유는, 폐하께서 그에게 전 군대와 전 지역에 대한 통솔권을 하사하였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던 권력이지요."



7


페테르부르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프랑스군은 이미 스몰렌스크를 지나 모스크바로 점점 더 접근하고 있었다. 역사가 티에르는 자신의 영웅을 옹호하려 애쓰며, 나폴레옹이 자기도 모르게 모스크바의 성벽에 이끌렸다고 말한다. 역사적인 사건의 설명을 한 인간의 의지에서 찾으려는 다른 역사가들이 옳다면 그 역시 옳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장군들의 계책으로 모스크바로 유인되었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역사가들이 옳다면 그도 똑같이 옳다.


여기에는 과거의 모든 것을 실현된 사실의 전제로 보는 소급(역행) 법칙 외에 모든 문제를 뒤얽는 상관성이라는 것도 있다. 게다가 전쟁이라는 게임은 얼마나 더 복잡한가? 그것은 시간이라는 일정한 조건에서 일어나며, 그 안에서는 한 사람의 의지가 생명 없는 기계들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양한 의지들의 수많은 충돌에서 생겨난다.


스몰렌스크 점령 이후 나폴레옹은 도로고부시 너머의 뱌지마에서, 그다음에는 차료보-자이미셰에서 전투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온갖 상황들의 무수한 충돌로 러시아군은 모스크바에서 약 1천2백 베르스타 떨어진 보로디노에 이르기까지 전투에 응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은 뱌지마에서 모스크바로 곧장 진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모스크바, 대제국의 아시아적인 수도, 알렉산드르의 백성들의 성스러운 도시, 중국의 탑 형식의 무수한 교회들이 있는 모스크바! 그 모스크바가 나폴레옹의 상상에 평온을 허락하지 않았다.


8


마리야 공작 영애는 안드레이 공작이 생각한 대로 모스크바에 있지 않았고, 위험에서 벗어나 있지도 않았다.

알파티치가 스몰렌스크에서 돌아온 이후 노공작은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 제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그는 여러 마을에서 민병을 모아 그들에게 무기를 지급하라고 지시한 뒤 총사령관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에서 러시아의 최고참 장군들 가운데 한 사람이 포로로 잡히거나 죽임을 당할 그곳 리시예 고리를 방어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할지 말지는 총사령관의 재량에 맡기겠지만, 자신은 끝까지 남아 리시예 고리를 방어하겠노라고 자신의 의향을 밝혔다. 그리고 집의 식솔들에게도 자신은 리시예 고리에 남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공작은 공작 영애와 데살과 어린 공작은 보구차로보로, 그리고 그곳에서 모스크바로 보낼 것을 지시했다. 아버지가 예전의 무기력을 떨치고 잠도 잊은 채 열에 들뜬 듯 활동하는 것에 놀란 마리야 공작 영애는 아버지만 남겨 둘 수 없어 난생처음 감히 아버지를 거역했다. 그녀는 떠나기를 거부했다. 그러자 공작의 분노가 무시무시한 우레처럼 그녀를 덮쳤다.


그날 밤 데려온 의사는 사혈을 한 뒤에, 공작이 오른편에 반신 마비가 왔다고 알려 주었다. 리시예 고리에 남는 것은 점점 더 위험한 일이 되었고, 그래서 공작의 몸에 마비가 온 다음 날 보구차로보로 공작을 옮겼다. 의사도 함께 갔다. 그들이 보구차로보에 도착했을 때 데살과 작은 공작은 이미 모스크바로 떠나고 없었다.


보구차로보에 남은 것이 위험해졌다.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프랑스군에 대한 소문이 사방에서 들렸다. 보구차로보에서 15베르스타 떨어진 어느 마을에서는 한 대저택이 프랑스군 약탈자들에게 강탈당했다. 공작 영애는 15일에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준비에 신경 쓰고, 모두들 그녀에게 구하는 지시를 내리느라 하루 종일 분주했다.


의사가 층계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공작님의 병세가 한결 좋아졌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에서 뭔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머리가 한결 맑아지셨습니다. 그분이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의사가 자신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의 말을 되풀이하며 물었다.


“고맙다…… 딸아, 나의 벗…… 모든 걸, 모든 걸…… 용서해 다오…… 고맙다, 용서해 다오…… 고맙다!” 그러더니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드류샤를 불러 다오.” 그가 갑자기 말했다. 요청하는 그의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소심함과 의심이 표정에 나타났다. 그도 자신의 요청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오빠는 군대에 가 있어요, 아버지, 스몰렌스크에 있어요."그는 눈을 감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러더니 이제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억한다는 사실의 확증인 듯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떴다. "그래." 그는 또렷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러시아는 망했다! 망했어!" 그가 다시 흐느끼기 시작해고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의사는 그녀의 팔을 부축하고 테라스로 데리고 나갔다.


“공작 영애님, 가 보세요…… 공작님이…….” 두냐샤가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문을 열었다. 전에는 어두컴컴하던 그 방에 비쳐 든 한낮의 눈부신 햇살이 그녀를 두렵게 했다. 방에는 여자들과 보모가 있었다. 다들 그녀에게 길을 내주며 침대에서 비켜났다. 노공작은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 평온한 얼굴에 깃든 근엄한 표정이 마리야 공작 영애를 방문턱에 멈춰 세웠다.



9


보구차로보는 안드레이 공작이 정착하기 전까지 언제나 주인의 눈 밖에 나 있던 영지였고, 그곳 농민들은 리시예 고리의 농민들과 전혀 다른 기질을 띠었다. 두 지역 농민들은 말투, 복장, 기질 면에서 서로 달랐다. 보구차로보의 농민들은 대초원의 사람들로 불렸다. 노공작은 그들이 추수를 돕거나 연못과 도랑을 파기 위해 리시예 고리에 올 때면, 그들의 일에 대한 인내심을 칭찬하면서도 그들의 야만성 때문에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노공작이 임종하기 얼마 전에 보구차로보로 온 알파티치는 민중 사이에 동요가 일고 있음을 눈치챘다. 또 리시예 고리 지역 반경 60베르스타 안에 거주하는 농민들이 (카자크들이 자기 마을들을 짓밟도록 하고) 전부 피란한 것과는 반대로, 보구차로보의 대초원에 거주하는 농민들은 소문대로 프랑스군과 교류하고, 어떤 문서를 받아 자기들끼리 돌려 보면서 그 지역에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마지막으로, 알파티치가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공작 영애의 짐을 보구차로보에서 실어 갈 수 있도록 짐수레를 모으라고 촌장에게 명한 바로 그날, 마을에서 아침 일찍 집회가 열렸으며, 그 자리에서 어디로도 떠나지 말고 사태를 기다려 보자는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30년 동안 보구차로보를 관리한 사람은 드론 촌장이었다. 노공작은 그를 드로누시카라고 불렀다. 리시예 고리에서 도착한 알파티치가 공작의 장례식 날에 불러들여 공작 영애의 승용 마차들을 끌 말 열두 마리와 보구차로보에서 실어 갈 짐을 위한 짐수레 열여덟 대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드론은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야코프 알파티치, 절 해고하세요! 제게서 열쇠를 가져가시고, 제발 절 해고하세요.”

“도대체 자네들은 뭘 할 생각인 거야? 응?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뭐냐고?”

“제가 사람들에게 뭘 어쩌겠습니까?” 드론이 말했다. “분위기가 완전히 험악합니다. 저도 그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긴 하지만…….”


“그럼 잘 듣게. 난 경찰서장에게 갈 테니, 자네는 사람들에게 그런 짓은 그만두고 짐수레나 모으라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드론이 말했다. 알파티치는 더 이상 주장하지 않았다. 비록 그 말을 의심했을 뿐 아니라 군 명령의 도움 없이는 짐수레를 구할 수 없으리라고 확신했지만 그 말에 만족했다.

그리고 정말로, 저녁 무렵이 되어도 짐수레는 모이지 않았다. 마을 선술집에서 또다시 집회가 열렸으며, 그 집회에서 말들을 숲으로 몰아내고 짐수레를 내주지 말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10


아버지의 장례식 후 마리야 공작 영애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앉아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하녀가 문가로 와서 알파티치가 출발에 관한 지시 사항을 물으러 왔다고 말했다. (그때는 아직 알파티치와 드론이 대화를 나누기 전이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누워 있던 소파에서 몸을 살짝 일으켰다. 그러고는 닫힌 문 너머로 그녀는 절대로 아무 데도 가지 않을 터이니 방해하지 말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마리, 알고 있어요?” 마드무아젤 부리엔이 말했다. “우리가 위험에 처한 것, 우리가 프랑스군에 포위된 것을 아시나요? 지금 떠나는 것은 위험해요. 만약 지금 떠나면 우리는 분명히 포로가 될 거예요. 그리고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는 하느님만 아시겠죠…….”


마드무아젤 부리엔은 손가방에서 (흔치 않은 외제 종이에 인쇄된) 프랑스 라모 장군의 성명서를 꺼냈다. 주민들이 자기 집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프랑스 당국이 주민들에게 마땅한 보호를 제공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였다. 마드무아젤 부리엔이 공작 영애에게 그것을 건네며 말했다.

“이 장군에게 호소해 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난 당신이 마땅히 존중받을 거라고 확신해요.”


"두냐샤, 알파티치든 드로누시카든 아무나 불러다 줘.” 마리야가 마드무아젤 부리엔을 내보내고 말했다.

‘안드레이 공작이 내가 프랑스군의 손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내가, 니콜라이 안드레이치 볼콘스키 공작의 딸인 내가 라모 장군에게 보호를 청하고 그 은혜를 입는다니!’ 이런 생각이 그녀를 두려움으로 몰아가고, 몸서리를 치게 하고 얼굴을 붉어지도록 했으며, 이제껏 경험한 적 없는 적의와 긍지가 솟구치도록 만들었다.


“드로누시카, 알파티치가 어디를 가는 바람에 함께 의논할 사람이 없어요. 내가 떠날 수 없다고들 하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사실인가요?”

“왜 못 떠나겠습니까요, 영애 양. 떠날 수 있습니다요. 그런데 말이 한 마리도 없습니다요.” 드론이 말했다.

"우리가 가진 말은 군대가 모두 징발해 갔습죠. 어떤 말들은 뒈져 버렸고요. 올해가 그런 해입니다. 말을 먹이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라도 굶어 죽지 말아야 할 텐데요. 그래서 요즘 같아서는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앉아만 있습죠."


"드로누시카, 왜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무슨 일이든 다 하겠어요…….”

“우리에게 정말 ‘주인의 곡식’이 있나요? 오빠의 곡물 말이에요.” 그녀가 물었다.

“그걸 농부들에게 내줘요. 그들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줘요. 내가 오빠의 이름으로 허락할게요.”

드론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공작 영애가 말하는 동안 드론은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절 해고해 주십쇼, 아가씨, 제발, 저에게서 열쇠를 가져가십쇼.” 그가 말했다.“23년 동안 일하면서 나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요. 제발 절 해고해 주십쇼.”

마리야 공작 영애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왜 해고해 달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충직함을 의심한 적이 결코 없으며, 자신은 그와 농부들을 위해 무엇이든 할 각오도 되어 있다고 대답했다.


11~12


이 일이 있고 한 시간 후 두냐샤가 공작 영애에게 드론이 왔으며, 모든 농부들이 공작 영애의 분부대로 여주인과 대화를 나누고자 창고 옆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들고 왔다.

“난 그 사람들을 부른 적이 없는데.” 마리야 공작 영애가 말했다.“난 다만 드로누시카에게 그 사람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라고 말했는데.”


마리야 공작 영애는 시선을 떨어뜨리고, 다리가 드레스 자락에 뒤엉키면서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러분이 전쟁으로 아주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고 드로누시카가 말해 주더군요. 이건 우리 모두의 고통이에요. 난 여러분을 도울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깝지 않아요. 나는 떠날 거예요. 이곳은 이미 위험하고 적이 가까이 있어서…… 왜냐하면……. 나는 나의 벗인 여러분에게 전부 내주겠어요. 하지만 나는 반대로 여러분에게 가재도구를 전부 챙겨 모스크바 근교에 있는 우리 영지로 함께 가 달라고 청할게요. 그곳에 가면 내가 여러분을 책임지겠어요."


“공작 영애님의 은혜에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인님의 곡식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말했다.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시선도 그녀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이런 참, 그녀가 참 교묘하게 가르치는구먼, 농노 노릇을 하러 자기를 따라오라니! 집을 버려두고 노예가 되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자기가 곡물을 나눠 주겠다는군.” 무리 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야 공작 영애는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이 만든 원을 벗어나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드론에게 내일 떠날 수 있도록 말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다시 한번 내리고 자기 방에 들어가 홀로 생각에 잠겼다.


그날 밤 마리야 공작 영애는 오랫동안 자기 방의 열린 창문 옆에 앉아 마을에서 들려오는 농부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아무리 그들에 대해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들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달빛과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매 순간 그의 죽은 얼굴을 보게 될 것을 예감했고, 집 안팎에 드리운 정적이 자신을 칭칭 동여매는 것을 느꼈다.

“두냐샤!” 그녀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두냐샤!” 그녀는 거친 목소리로 외치고서, 정적을 찢고 나와 하녀 방 쪽으로,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보모와 하녀들에게로 뛰어갔다.


13


8월 17일, 로스토프와 일리인은 포로로 잡혔다가 이제 막 돌아온 라브루시카와 경기병 전령을 대동하고 보구차로보로부터 15베르스타 떨어진 자신의 숙영지 얀코보에서 말을 타고 길을 나섰다. 일리인이 산 새 말을 시험해 보고 마을에 건초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보구차로보는 지난 사흘 동안 서로 대적하는 두 군대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군 후위 부대나 프랑스군 전위 부대나 똑같이 쉽게 닿을 수 있었다. 그런 연유로 꼼꼼한 기병 중대장인 로스토프는 보구차로보에 남은 식량을 프랑스군보다 먼저 이용하고 싶었다.


로스토프는 자신이 향하고 있는 마을이 여동생의 약혼자였던 볼콘스키의 영지라는 사실을 몰랐고, 또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로스토프와 일리인은 마지막으로 말들을 경주하여 보구차로보 앞의 야트막한 언덕으로 향했고, 로스토프가 일리인을 제치고 먼저 보구차로보 거리에 들어섰다.


바로 그때 주인의 저택에서 뻗어 나온 길에 두 여자와 하얀 모자를 쓴 남자 하나가 장교들 쪽으로 걸어왔다.

“공작 영애님께서 여러분이 어느 연대 소속인지, 여러분의 성함이 무엇인지 알아 오라고 분부하셨어요.”

“이분은 기병 중대장인 로스토프 백작이고, 나는 순종하는 당신의 종이랍니다.”

두냐샤를 뒤따라 알파티치가 멀리서부터 모자를 벗으며 로스토프에게 다가왔다.


"저희 주인님은 이달 15일에 돌아가신 육군 대장 니콜라이 안드레예비치 볼콘스키 공작의 따님이신데, 이 작자들의 무지몽매로 곤경에 처하셨습니다.” 그는 농부들을 가리켰다.“주인님께서 장교님들에게 와 주시기를 청하십니다. 어떻게 좀…….” 알파티치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쪽으로 좀 가 주시겠습니까?"


“백작님께 감히 보고 올리겠습니다. 이곳의 난폭한 사람들이 공작 영애님을 영지 밖으로 못 나가게 하려고 마차에서 말들을 떼어 놓겠다며 협박합니다. 그래서 짐은 아침부터 다 꾸려 놓았는데도 공작 영애님께서 출발을 못하고 계십니다.” “설마 그럴 리가!” 로스토프가 외쳤다.


아침 무렵 공작 영애가 이곳을 떠나기 위해 마차에 말을 매라고 지시했을 때, 농부들이 큰 무리를 지어 창고 옆에 몰려왔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말하길, 그들은 공작 영애를 마을에서 내보내지 않을 것이며, 마을을 떠나지 말라는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마차에서 말을 떼어 놓겠다고 했다.


로스토프가 갔을 때 마리야 공작 영애는 홀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힘없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몰랐다. 그가 누구인지, 왜 이곳에 있는지 그녀에게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그녀는 러시아인다운 그의 얼굴을 보았고, 홀에 들어서는 그의 태도와 첫마디에서 그가 자신과 같은 계층의 사람임을 알아보았다.


“공작 영애,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가 당신에게 나의 각오를 보여 줄 수 있게 되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로스토프가 일어서며 말했다.“떠나십시오. 나의 명예를 걸고 당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당신을 호위하도록 허락하신다면, 단 한 사람도 감히 당신에게 불쾌한 짓을 할 수 없을 겁니다.”


14


“어때요, 예쁘던가요? 아니죠, 나의 장밋빛 여인이 참 매력적이죠. 이름이 두냐샤라고 하는데…….” 그러나 일리인은 로스토프의 얼굴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자신의 영웅인 지휘관이 다른 생각에 푹 빠진 것을 보았다. 로스토프는 일리인을 매섭게 쳐다보고,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빠른 걸음으로 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본때를 보여 줘야겠어. 그놈들을 혼쭐내 줄 테다. 이 날강도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경기병들이 마을로 들어오고 로스토프가 공작 영애를 방문한 후, 무리들 가운데 혼란과 반목이 일어났다. 어떤 농부들은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이 러시아 군인이며, 자신들이 주인 아가씨를 못 가게 막은 것에 분노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드론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러나 드론이 의견을 표명하자마자, 카르프와 다른 농부들이 이제까지 촌장이었던 그에게 대들었다.


“여기서 네놈들 촌장이 누구냐?” 로스토프가 빠른 걸음으로 무리에 다가가며 소리쳤다.

“촌장이오? 무슨 일로……?” 카르프가 물었다.

그러나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로스토프의 강한 주먹에 그의 모자가 휙 날아가고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배신자들, 모자 벗어!” 로스토프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로스토프는 카르프의 멱살을 움켜쥐고 그의 것 같지 않은 목소리로 의미도 없는 말을 큰 소리로 외쳐 댔다. “이자를 묶어, 묶으라고!” 그는 라브루시카와 알파티치 외에는 딱히 카르프를 묶을 사람이 없는데도 소리를 질렀다. 라브루시카가 카르프에게 달려가 뒤에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언덕 아래 있는 우리 부대를 부르도록 명하시겠습니까?” 그가 외쳤다.


“촌장은 어디 있나?” 로스토프가 소리쳐 물었다.

드론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찡그리며 무리에서 나왔다.

“네가 촌장이냐? 라브루시카, 묶어!” 로스토프는 이러한 명령이 장애에 부딪힐 리 없다는 투로 외쳤다. 실제로 두 농부가 드론을 묶기 시작했다. 드론은 그들을 도우려는 듯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그들에게 건넸다.


“그리고 너희들 모두 내 말을 들어라.” 로스토프는 농부들을 돌아보았다.“이제 각자 집으로 행진해 간다! 그리고 내 귀에 네놈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

“우리가 어리석었습니다, 야코프 알파티치.” 몇몇 목소리들이 대답했다. 무리는 즉각 해산하여 마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결박된 두 농부는 주인 저택의 안마당으로 끌려갔다.


두 시간 후 보구차로보 저택 안마당에 짐수레가 여러 대 늘어섰다. 농부들은 활기차게 주인의 짐들을 날라 짐수레에 실었다. 큰 뒤주에 갇혔다가 마리야 공작 영애의 요청으로 풀려난 드론은 안마당에 서서 농부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다.


로스토프는 공작 영애에게 친교를 강요하고 싶지 않아 그녀에게로 가지 않고 그녀가 출발하기를 기다리며 마을에 남아 있었다. 마리야 공작 영애의 승용 마차가 저택을 떠날 때까지 기다린 로스토프는 말에 올라 보구차로보에서 12베르스타 떨어진, 아군이 점유한 도로까지 그녀를 배웅했다. 얀코보의 여인숙에서 그는 정중히 작별 인사를 하고 처음으로 그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공작 영애는 더 이상 말로는 사의를 표하지 않았지만 온통 고마움과 다정함으로 빛나는 얼굴 표정으로 감사를 전했다. 그와 헤어져 혼자 남았을 때 마리야 공작 영애는 문득 두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를 좋아하나 하는 이상한 물음이 뇌리에 떠오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내가 정말 그를 사랑하게 되었으면 어떡하지?" 마리야 공작 영애는 생각했다.


로스토프는 마리야 공작 영애에게서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를 떠올리면 즐거워졌다. 니콜라이는 개인적으로 자신을 위해 마리야 공작 영애보다 더 나은 아내를 바랄 수 없었다. 그 결혼은 백작 부인을 행복하게 할 것이고, 아버지의 재정 상황을 회복해 줄 것이다. 하지만 소냐는? 언약의 말은? 그는 고민에 빠졌다.


15


군 통수권을 위임받은 쿠투조프는 안드레이 공작을 기억하고, 그에게 사람을 보내 군사령부로 오라는 명령을 전하도록 했다. 안드레이 공작이 차료보-자이미셰에 도착한 것은 쿠투조프가 군대의 첫 번째 사열식을 한 그날 그 시각이었다. 그 마을에서 안드레이 공작은 총사령관의 승용 마차가 서 있는 사제관 옆에 말을 세우고 대문 가의 긴 의자에 앉아 대공작을 (이제는 모두 쿠투조프를 그렇게 불렀다) 기다렸다.


안드레이 공작과 열 발짝 정도 떨어진 그곳에 두 종졸과 하인장과 마부가 공작이 없는 틈을 타 화창한 날씨를 즐기며 서 있었다. 머리칼이 검고 콧수염과 구레나룻이 덥수룩하게 자란 키 작은 경기병 중령이 말을 몰고 대문으로 다가왔다. "당신도 출정했습니까?” 그가 물었다.


“후퇴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영지와 고향 집은 말할 것도 없고…… 아버지를 잃은 슬픔도 당했습니다. 난 스몰렌스크 사람입니다.”

“아, 그래요? ……당신이 볼콘스키 공작이군요. 당신을 알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나는 데니소프 중령입니다. 바시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안드레이 공작은 나타샤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첫 번째 구혼자였던 데니소프를 알고 있었다. 이제 그 기억은 달콤하고도 아프게 그를 고통스러운 느낌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데니소프에게도 볼콘스키라는 이름이 불러일으킨 일련의 기억들은 아득한, 시적인 과거였다. 그가 지금 온통 사로잡힌 생각은 그가 후퇴하는 시간 동안 최전선에서 복무하며 생각해 낸 작전 계획이었다.

“그들이 이 전선 전체를 지탱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내가 책임지고 저들을 돌파하겠습니다. 나에게 군인 5백 명을 주십시오. 내가 저들을 격파하겠습니다. 확실합니다. 방법은 한 가지, 바로 파르티잔 전법입니다.” 데니소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짓을 해 가며 볼콘스키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그분이 오십니다.” 대문 옆에 서 있던 카자크가 외쳤다. 대규모의 장군 수행단이 뒤를 따랐다. 바르클라이는 거의 나란히 오고 있었다. 장교들 무리가 그들의 뒤와 그 주위에서 달리며 “우라!” 하고 외쳤다.

쿠투조프는 잠시 침묵하며 지휘관다운 완고한 눈빛으로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주위에 선 장군들과 장교들의 무리를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이 갑자기 미묘한 표정을 띠었다. 그는 의혹의 몸짓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이처럼 훌륭한 젊은이들이 있는데 계속 후퇴, 후퇴만 하고 있단 말인가!”



그는 말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한 뒤 주위를 둘러보다가 안드레이 공작을 알아보고 말했다.

“아, 잘 있었나, 공작, 잘 있었나, 공작, 잘 있었나, 이보게, 같이 가세…….”

“그래, 아버지는 어떠신가?”

“어제 아버지의 부고를 받았습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짧게 말했다.

쿠투조프는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안드레이 공작을 바라보더니 군모를 벗고 성호를 그었다.


쿠투조프는 당직 장군의 보고를 (보고의 주요 안건은 차료보-자이미셰의 진지에 대한 비판이었다) 데니소프의 말을 듣던 때와 마찬가지로, 7년 전 아우스터리츠 군사 회의의 논쟁을 듣던 때와 마찬가지로 듣고 있었다. 데니소프가 말한 것은 모두 실제적이고 현명했다. 당직 장군이 말한 것은 더 실제적이고 더 현명했다. 그러나 쿠투조프는 지식도 두뇌도 경멸하고 있었으며, 그는 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틀림없는 다른 무엇, 두뇌나 지식과는 상관없는 다른 무엇을 알고 있는 듯했다.


16


부관이 현관 앞으로 나와 안드레이 공작을 오찬에 초대했다. 하지만 30분 후에 안드레이 공작은 다시 쿠투조프에게 불려 갔다.“사태가 어디까지, 어느 지경까지 온 건가!” 갑자기 쿠투조프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명 그는 안드레이 공작의 이야기를 통해 러시아가 처한 상황을 명확히 그려 볼 수 있게 된 듯했다.“잠시 시간을 주게, 시간을 줘.” 그는 성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는 마음을 격동시키는 그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지 않은 듯, 화제를 돌려 말했다.“내가 자네를 부른 것은 내 옆에 두기 위해서일세.”

“대공작 각하께 감사드립니다.” 안드레이 공작이 대답했다.“그러나 저는 사령부에 더 이상 맞지 않는 것 같아 두렵습니다. 저는 부대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저는 장교들을 좋아하고, 병사들도 저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부대를 떠나면 서운할 것 같습니다. 제가 대공작 각하 곁에 머물 영광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믿어 주셨으면 하는 것은…….


“유감이네, 자네는 내게 필요한 사람인데……. 그러나 자네가 옳아, 우리는 이곳에 사람이 필요하지 않아. 조언자는 언제나 많은데, 사람이 없어. 조언자들이 모두 자네처럼 부대에서 근무한다면, 부대들이 지금 같은 모습은 아닐 거야. 난 아우스터리츠에서부터 자네를 기억하네……. 기억하지, 기억하고말고. 깃발을 들고 있던 모습을 말이네.” 쿠투조프가 말했다. 그것을 기억하자 안드레이 공작의 얼굴에 기쁨의 홍조가 확 번졌다.


쿠투조프는 화제를 바꾸어 튀르크 전쟁과 평화 조약 체결에 대해 말하며 '인내와 시간'을 강조했다.“그렇지만 전투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습니까?”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그래야겠지. 모두가 그러길 바란다면,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이보게, 인내와 시간, 이 두 전사보다 더 강한 것은 없어. 두 전사가 모든 것을 해낼 걸세.



‘그에게는 자신의 것이 전혀 없을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만들어 내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을 것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적소에 배치할 것이다. 또 유익한 것이라면 어떤 것도 훼방 놓지 않을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면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의지보다 더 강한 것, 즉 사건의 필연적인 흐름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그를 믿는 이유는 장리스의 소설을 읽고 프랑스의 격언을 인용할지라도 그가 러시아인이기 때문이며, “사태가 어느 지경까지 온 건가!”라고 말할 때 그 목소리가 떨렸기 때문이며, “그자들이 말고기를 먹게 만들겠네”라고 말하면서 흐느꼈기 때문이다.’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궁정의 생각을 거스르며 국민들이 쿠투조프를 총사령관으로 선출할 때 보여 주었던 의견 일치와 전반적인 찬성은 모두가 어느 정도 어렴풋하게나마 느낀 바로 이러한 감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17


군주가 모스크바를 떠난 후 모스크바의 삶은 예전의 일상적인 질서로 돌아갔다. 그 삶의 흐름은 너무도 평범해서 지난 며칠 전의 애국적인 환희와 열광을 떠올리기도, 또 러시아가 실제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영국 클럽 회원들이 조국을 위해 어떤 희생도 기꺼이 감수하는 조국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적이 모스크바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모스크바 사람들이 현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더 심각해지기는커녕 오히려 한층 경박해지기까지 했는데, 이는 큰 위험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항상 있는 일이다.


줄리 드루베츠카야는 다음 날 모스크바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작별 파티를 열었다. 그 모임에는 줄리가 ‘나의 기사님’이라고 부르며 그녀와 함께 니즈니로 떠날 예정인 민병대 제복 차림의 젊은 남자도 있었다.

줄리의 사교 모임에서 화제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로스토프가의 사람들도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그 사람들의 형편이 아주 안 좋다면서요.”

줄리가 말했다. “그분은 너무 어수룩해요, 백작 말이에요. 라주몹스키가 사람들이 그분의 집과 모스크바 근교의 영지를 구입하고 싶어 했는데, 이 일들이 계속 늘어지고 있다죠. 그분이 값을 너무 비싸게 불러서요.”


“착한 노인이긴 하지만, 너무 무능해요. 그나저나 그들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이곳에서 지내는 걸까요? 오래전부터 시골에 가고 싶어 했잖아요. 나탈리는 이제 건강한 것 같지요?” 줄리가 교활하게 웃으며 피에르에게 물었다.


“그분들은 작은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피에르가 말했다.“작은아들이 오볼렌스키의 카자크 부대에 들어가 벨라야체르코비로 떠났거든요. 그곳에서 연대가 편성되고 있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분들이 아들을 내 연대로 전속시켰습니다. 그래서 매일 그를 기다리고 있지요. 백작은 오래전부터 떠나려 했습니다만, 백작 부인은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모스크바를 떠나는 것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제께 아르하로프가에서 그들을 봤어요. 나탈리는 다시 예뻐지고 명랑해졌더군요. 그녀는 로망스를 한 곡 불렀어요. 어떤 사람들한테는 모든 일이 참 쉽게 넘어가지요!”

“무엇이 넘어간다는 말입니까?” 피에르가 불쾌한 기색으로 물었다. 줄리가 빙긋 웃었다.


“백작, 당신 같은 기사들은 마담 수자의 소설에서만 있다는 걸 아세요?”

“무슨 기사요? 왜요?” 피에르가 얼굴을 붉히면서 물었다.

“뭐, 됐어요, 사랑스러운 백작. 모스크바 전체가 알고 있답니다. 정말이지 난 당신에게 깜짝 놀라고 있어요.”

“모스크바 전체가 무엇을 안단 말입니까?” 피에르가 벌떡 일어나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당신이 나탈리와 친했다는 걸 알아요. 그래서…… 아니에요”


“가여운 마리 볼콘스카야가 어제 모스크바에 왔다죠. 당신은 그녀가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정말이오? 어디에 있습니까? 그녀를 꼭 보고 싶은데요.” 피에르가 말했다.

“그녀는 오늘이나 내일 아침에 조카를 데리고 모스크바 근교의 영지로 떠날 거예요.”

“그녀는 어떤가요?” 피에르가 말했다.

“괜찮아요. 다만 슬퍼 보였어요. 그런데 누가 그녀를 구했는지 알아요? 그야말로 굉장한 로맨스더군요. 니콜라 로스토프예요.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둘러싸고는 죽이려 했답니다. 그녀의 하인들도 다치게 했고요. 그런데 그가 달려와서 그녀를 구했답니다.”


“로맨스가 하나 더 있죠.” 민병이 말했다. “결정적으로 이 전반적인 피란 사태는 모든 노처녀들의 결혼을 위해 일어난 겁니다. 카티시가 그 하나고, 볼콘스카야가 또 다른 하나죠. ”

“그런데 말이죠, 내가 보기에는 그녀가 그 청년을 조금 사랑한다고 생각해요.”


18


피에르가 집으로 돌아오자 하인들이 그날 전달된 라스톱친의 전단 두 장을 그에게 건넸다. 첫 번째 전단에는 라스톱친 백작이 모스크바를 떠나지 못하게 금지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며, 반대로 라스톱친 백작은 귀부인들과 상인의 아내들이 피란하는 것을 반긴다고 쓰여 있었다. “불안도 줄고 소문도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악당들이 모스크바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내 목숨을 걸고 책임지겠다.” 전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두 번째 전단에는 우리 군사령부는 뱌지마에 있으며, 비트겐시테인 백작이 프랑스군을 물리쳤으나 많은 주민들이 무장을 원하기에 그들을 위하여 기병도, 피스톨, 라이플총 등 주민들이 싸게 구할 수 있는 무기를 무기고에 준비해 두었다, 라고 쓰여 있었다.


‘군적에 등록하고 입대할까, 아니면 기다릴까?’ 피에르는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1백 번째 던지고 있었다. 그는 테이블에 놓인 카드 한 벌을 집어 들고 점을 치기 시작했다. '만약 카드 점이 잘 나오면 입대해야 하겠지."

하지만 카드 점이 잘 나왔음에도 피에르는 입대하지 않고 텅 빈 모스크바에 남아 여전히 똑같은 불안과 망설임과 두려움, 그와 동시에 기쁨에 싸여 끔찍한 무언가를 기다렸다.


다음 날 저녁 무렵 불안에 떨던 사촌인 (긴 허리와 돌처럼 냉랭한 얼굴을 가진) 첫째 공작 영애가 모스크바를 떠났다. 그리고 수석 관리인이 피에르를 찾아와 영지 한 곳을 팔지 않으면 연대의 군복과 군장을 위해 피에르가 요구한 돈을 구할 수 없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럼 팔아요.” 그가 말했다. “어쩌겠소, 이제는 거절할 수도 없으니 말이오.”


피에르는 보론초보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볼로트나야 광장을 지나치다가, 형장에 모인 군중을 보고 드로시키에서 내렸다. 스파이 죄목의 프랑스인 요리사에 대한 태형이었다. 태형이 막 끝나 집행인이 애처롭게 신음하는 뚱뚱한 남자를 고문대에서 풀어 주고 있었다.


피에르는 처벌받는 프랑스인들과 형장을 에워싼 군중을 보고, 더 이상 모스크바에 남아 있을 수 없고, 오늘이라도 입대하겠다고 너무도 확고하게 결정을 내렸다. 집으로 돌아온 피에르는 모르는 게 없고 못하는 게 없으며 모스크바 사람들 모두가 알 만큼 유명한 자신의 마부 옙스타피예비치에게 자신은 밤에 모자이스크의 부대로 떠날 것이므로, 그곳으로 자신의 승마용 말들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제3권 제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