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0-2)

제3권 제2부 (2)

by Andy강성

19 [보로디노 전투]


24일에는 셰바르디노 보루에서 전투가 있었고, 25일에는 어느 진영도 단 한 발도 발포하지 않았으며, 26일에는 보로디노 전투가 벌어졌다. 무엇 때문에, 어떻게 거기서 전투들이 시작되고 응전이 벌어진 것일까? 프랑스인들을 위해서도 러시아인들을 위해서도 보로디노 전투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 있고 또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결과는 러시아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모스크바의 파멸을 향해 치달았던 것이고, 프랑스인들에게는 (그들 역시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군대 전체의 파멸을 향해 치달은 것이었다.


그에 대해 매우 확정적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알려진, 완전히 거짓된 생각이 존재한다. 모든 역사가들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전투를 기술한다.

러시아군은 스몰렌스크에서 퇴각하는 동안 총결전을 위해 가장 유리한 진지를 찾다가 그러한 진지를 보로디노 부근에서 발견했던 것 같다. 러시아군은 (모스크바에서 스몰렌스크로 뻗은) 도로 왼편의 거의 직각으로 꺾인 지점, 즉 보로디노에서 우티차에 걸친 지점에 (바로 그 자리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미리 그 진지를 구축한 듯하다. 그 진지 전방에 위치한 셰바르디노 구릉에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견고한 전초 기지가 세워졌을 것이다. 24일, 나폴레옹은 전초 기지를 공격하여 이를 탈취하고, 26일에는 보로디노 평원의 진지에 주둔 중인 러시아군 전체를 공격했을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사실과 전혀 다르다. 러시아군은 퇴각하는 동안 보로디노보다 더 유리한 진지를 많이 지나쳤다. 왜냐하면 쿠투조프가 자신이 고르지 않은 진지는 택하려 하지 않았고, 전투에 대한 국민의 요구는 아직 충분히 강하게 표명되지 않았으며, 민병을 이끄는 밀로라도비치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도로 왼편에 직각으로 보로디노 평원에 진지를 구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812년 8월 25일 이전만 해도 그 장소에서 전투가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진지는 대로를 직각이 아닌 예각으로 가로지르는 콜로차 강변을 따라 선택되었다. 그래서 셰바르디노가 왼쪽 측면, 노보예 마을 부근이 오른쪽 측면, 콜로차강과 보이나강의 합류 지점인 보로디노가 중앙이 된 것이다. 스몰렌스크 대로를 따라 모스크바로 진군하는 적을 저지해야 하는 군대에 그 진지가 콜로차강을 엄폐물로 삼은 것은 전투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잊은 채 보로디노 평원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 누구라도 명확히 알 수 있다.

24일, 발루예보로 떠난 나폴레옹은 (역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티차에서 보로디노로 이어진 러시아군의 진지를 보지 못했고 (진지가 없었기에 보지 못한 것이다) 러시아군의 전초 기지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러시아군 후위 부대를 추격하다 러시아군 진지의 왼쪽 측면인 셰바르디노 보루를 맞닥뜨리자 자신의 군대를 콜로차강 건너로 이동하게 했다. 러시아군으로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에 러시아군은 결전에 나서기도 전에 그들이 확보하려 했던 진지로부터 왼쪽 측면을 철수시켜 예정에도 없었고 아직 축조되지도 않은 새로운 진지를 점했다. 나폴레옹은 콜로차 강 왼쪽 연안, 즉 도로 왼쪽으로 건너감으로써 이후의 전투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러시아군 편에서 볼 때) 완전히 이동시켜 우티차와 세묘놉스코예와 보로디노 사이의 들판으로 (그 들판에는 러시아의 다른 모든 들판에 비해 진지로서 더 유리한 점이 전혀 없었다) 옮겨 놓았다. 그리하여 26일에 그 들판에서 모든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예정된 전투와 실제로 벌어진 전투의 평면도를 그리면 대략 다음과 같을 것이다.


결국 보로디노 전투는 기록되는 것과는 (우리 지휘관들의 실책을 숨기려고 애쓰다가 러시아군과 러시아 국민의 명예를 손상시킨)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었다. 보로디노 전투는 미리 선정하여 요새를 쌓아 둔 진지에서, 러시아군의 병력이 다소 열세인 상황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보로디노 전투는 러시아군이 셰바르디노 보루를 잃은 결과, 프랑스군보다 두 배나* 약한 병력으로 요새를 거의 쌓지 못한 탁 트인 지역에서 치른 전투였다.

* 보로디노 전투 전까지는 러시아군과 프랑스군 병력은 거의 5 대 6 정도였다. 그러나 전투 후에는 그 비율이 1 대 2가 되었다. 전투 전에는 10만 명 대 12만 명이었는데 전투 후엔 5만 명 대 10만 명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런 조건에서는, 열 시간 싸우고 전투가 승패를 가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세 시간 동안 전멸과 패주로부터 군대를 지켜 내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


20~21


25일 아침에 피에르는 모자이스크를 떠났다. 언덕 위 오른편에 있는 대교회를 (그곳에서는 예배가 진행 중이고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지나 도시에서부터 이어진 크고 가파르고 굽이진 산비탈에 이르자 피에르는 승용 마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그의 뒤쪽에서 합창대원들을 앞세운 기병 연대가 산을 내려왔다. 그의 앞쪽 맞은편에서는 전날 전투의 부상병들을 실은 텔레가 행렬이 올라오고 있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호기심으로 피에르의 하얀 모자와 녹색 연미복을 쳐다보았다.



그는 처음으로 아는 사람을 만나 반갑게 말을 걸었다. 상급 군의관 가운데 한 명이었다.피에르는 그 자리에 서서 전투에 참가하려는 의향을 밝혔다. 의사는 대공작을 찾아가 직접 청해 보라고 충고했다.

"도대체 진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피에르가 말했다.

“진지요?” 의사가 말했다. “그건 제 소관이 아닙니다. 타타리노보를 지나면 사람들이 그곳에서 뭔가 열심히 파고 있을 겁니다. 거기서 구릉으로 올라가세요. 그곳에서는 보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언덕을 올라갔다가 내려와서 한 마을의 작은 거리에 들어선 피에르는 모자에 십자가를 달고 하얀 루바시카를 입은 농민 민병들을 처음으로 보았다. 땀에 젖은 그들은 큰 소리로 떠들고 웃으며 길 오른쪽의 잡풀이 무성한 구릉 위에서 활기차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피에르는 승용 마차에서 내려 작업 중인 민병들을 지나 구릉 위로 올라갔다. 의사의 말대로 그곳에서는 전장이 훤히 보였다. 오전 11시경이었다. 태양이 피에르의 등 뒤로 약간 왼쪽에 떠 있고, 그의 눈앞에 거대하게 펼쳐지는 전경을 맑고 희박한 공기 사이로 밝게 비추었다.


보로디노에서 출발한 교회 행렬이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 행렬 맨 앞에는 군모를 벗은 보병대가 총구를 아래로 향한 채 먼지투성이 길을 따라 질서 정연하게 행군했다. 보병대 뒤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렸다.

병사들과 민병들이 모자를 벗은 채 행렬을 맞으러 피에르를 앞서 제치고 달려갔다.

“성모님을 모시고 온다! 우리의 중보자(仲保者)! 이베르스카야 성모님!”

“스몰렌스크 성모님이야.”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바로잡았다.


이것은 사람들이 스몰렌스크에서 가져와, 군대가 가는 곳마다 함께 들고 다닌 이콘이었다. 이콘 뒤며, 그 주위며, 그 앞이며, 사방에서 모자를 벗은 군인들이 무리 지어 걸어오고 뛰어와서 땅바닥에 닿도록 몸을 숙였다. 모자를 벗은 장교들과 병사들과 민병들의 거대한 무리가 이콘을 에워쌌다. 사제들과 하급 사제들 뒤 공터에는 고관들이 서 있었다.


이콘을 둘러쌌던 무리가 갑자기 양옆으로 갈라지며 피에르를 밀어붙였다. 그 앞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비켜서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매우 중요한 인물이 이콘을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는 진지를 둘러보던 쿠투조프였다. 민병들과 병사들은 총사령관이 참석하고, 모든 고관들의 관심이 그에게 쏠리고 있음에도 그를 쳐다보지 않고 계속 기도했다. 쿠투조프는 이콘으로 다가가 힘겹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22~23


피에르는 그를 둘러싸는 인파에 몸을 비틀비틀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표트르 키릴로비치 백작!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계십니까?” 누군가의 목소리에 피에르는 돌아보았다.

보리스 드루베츠코이가 더러워진 무릎을 (분명히 그도 이콘에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춘 듯했다) 한 손으로 털고는 웃으며 피에르에게 다가왔다. 출정 군인다운 옷차림이었다. 그는 쿠투조프와 똑같이 긴 프록코트를 입고 어깨에 채찍을 걸치고 있었다.


군 지도부에는 확연히 구분되는 두 파벌이 있었다. 쿠투조프파와 참모장 베니히센파였다. 보리스는 후자에 속했다. 보리스처럼 쿠투조프에게 노예 같은 비굴한 경의를 표하면서도 그 노인네는 대단치 않다고, 베니히센이 모든 것을 이끌어 간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전투의 결정적인 순간이 다가왔고, 그 순간은 쿠투조프를 파멸시키고 권력을 베니히센에게 넘기든가, 혹은 설령 쿠투조프가 이 전투에서 이긴다 해도 모든 일이 베니히센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느끼게 만들 것이다. 어떤 경우든 내일의 전투에 대해 큰 포상이 분배되고 새로운 사람들이 나서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리스는 그날 하루 종일 초조한 기대감 속에 있었다.


30분 후 쿠투조프는 타타리노보로 떠났고, 베니히센은 피에르도 그 속에 끼여 있는 수행단을 거느리고 전선으로 향했다. 베니히센은 고르키에서 큰길을 따라 다리 쪽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다리를 지나 보로디노 마을로 갔고, 그곳에서 왼쪽으로 돌아 대규모 부대와 대포들 옆을 지나서 민병들이 땅을 파고 있는 높은 구릉으로 향했다. 아직 지명도 없던 그곳은 훗날 라옙스키 보루 혹은 구릉 포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보루였다.


베니히센은 방어 진지에 멈춰 서서 (어제까지만 해도 아군의 것이었던) 전방의 셰바르디노 보루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말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장교들은 그곳에 나폴레옹 혹은 뮈라가 있다고 말했다. 피에르도 겨우 보일까 하는 그들 중에 누가 나폴레옹인지 맞히려고 애쓰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숲을 2베르스타 정도 지나 공터로 나왔다. 그곳에는 왼쪽 측면 방어를 맡은 투치코프 군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왼쪽 측면의 가장 끝부분인 이곳에서 베니히센은 많은 말을 열정적으로 쏟아 냈고, 피에르가 생각하기에 군사 관계에서 중요할 법한 지시를 내렸다. 투치코프 부대의 주둔지 전방에는 고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고지에 부대가 없었다. 베니히센은 큰 소리로 실책을 비난하며 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지를 방치한 채 산기슭에 부대를 배치하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말했다.


베니히센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부대를 고지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피에르도 산기슭에 부대를 배치한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피에르는 그 부대들이 베니히센이 생각한 것처럼 진지를 방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복을 위해, 즉 눈에 띄지 않게 숨었다가 적이 다가오면 불시에 덮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장소에 배치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베니히센은 그것도 모르고 총사령관에게는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자기 판단에 따라 부대를 전방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24


8월 25일의 청명한 저녁, 안드레이 공작은 자신의 연대가 주둔한 끝자락에 위치한 크냐지코보 마을의 부서진 헛간에서 팔꿈치를 괴고 누워 있었다. 그는 부서진 벽의 틈새로 낮은 가지들을 쳐 낸 30년 정도 된 자작나무들이 담장을 따라 한 줄로 늘어서 있는 모습과, 귀리 다발이 베어져 널린 경작지, 병사들이 취사하는 곳의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이는 떨기나무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드레이 공작은 지금 자신의 삶이 너무나 답답하고, 아무에게도 쓸모없고, 무겁게만 보였고, 7년 전 아우스터리츠 전투 전날과 똑같이 흥분되고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일의 전투에 대한 명령이 하달되어 그는 그것을 받았다. 더 이상 그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내일의 전투가 분명 자신이 참전했던 전투 가운데 가장 무시무시한 싸움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생애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헛간 뒤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누군가?” 안드레이 공작이 소리쳤다.

예전에 돌로호프의 중대장이었고 지금은 장교 결원으로 대대장이 된 빨간 코의 대위 티모힌이 헛간으로 조심스레 들어왔다. 그 뒤를 이어 부관 한 명과 연대의 경리가 들어섰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 장교들이 업무상 전달하는 내용을 끝까지 듣고 몇 가지 지시를 더 내렸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막 내보내려는데 헛간 뒤에서 귀에 익은 혀짤배기 소리가 들렸다.

“제길!” 무언가에 부딪힌 남자의 목소리였다. 헛간 밖을 내다본 안드레이 공작은 피에르가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에게 피에르를 보는 것은 괴로운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는 불쾌한 일이었다.


그는 활기찬 기분으로 헛간에 다가갔다가 안드레이 공작의 표정을 보자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온 것은…… 그러니까…… 내가 온 것은…… 흥미를 느껴서요.” 피에르는 이날 이미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되풀이한 ‘흥미롭다’는 그 말을 꺼냈다. “전투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 그래, 프리메이슨 교단은 전쟁에 대해 뭐라고 하나? 어떻게 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지?” 안드레이 공작이 비웃듯이 말했다.


25


장교들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자기 친구와 마주 대하고 남아 있기 싫은 듯 안드레이 공작이 그들에게 잠시 앉아 차를 마시고 가라며 권했다. 긴 의자와 차를 내왔다. 장교들은 적잖이 놀라서 피에르의 뚱뚱한 거구를 쳐다보며 그가 둘러보고 온 아군의 배치와 모스크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럼 자네는 부대의 모든 배치를 파악했다는 거지?” 안드레이 공작이 피에르의 말에 끼어들었다.

“네, 그런데 어떻게냐고요?” 피에르가 말했다. “민간인으로서 충분히 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배치는 파악했습니다.”

“그럼 당신은 쿠투조프의 임명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건가요?” 피에르가 물었다.

“난 그 임명이 대단히 기뻤어. 그게 내가 아는 전부야.” 안드레이 공작이 말했다.



"바르클라이 드 톨리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어떤가요? 모스크바에서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하느님만 아실 거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그를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안드레이 공작은 갑자기 봇물 터지듯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부르짓다시피 했다.

"러시아가 별일 없을 때는 다른 사람도 러시아를 위해 일하고 훌륭한 대신도 될 수 있어. 그러나 러시아가 위기에 처하면 러시아에는 당장 자기 사람, 즉 피를 나눈 친족이 필요한 거야. 그런데 자네 클럽 사람들은 그를 반역자로 몰았어! 그를 배신자라며 중상해 놓고, 나중에는 자신들의 그릇된 비난을 부끄러워하며 갑자기 그를 영웅이나 천재로 바꿔 놓겠지. 그게 훨씬 더 부당한 짓이야. 그는 정직하고 아주 꼼꼼한 독일인일 뿐……."


"그는 노련한 지휘관이라고 하던데요.” 피에르가 말했다.

“난 노련한 지휘관이 어떤 건지 몰라.” 안드레이 공작이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

“노련한 지휘관이란 음, 모든 우연적인 것들을 예측하는…… 음, 적의 생각을 짐작해 내는 사람이죠.” 피에르가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 안드레이 공작은 이미 오래전에 결론지은 문제인 것처럼 말했다.


“만약 무언가가 사령부 참모들의 지시에 좌우된다면 난 그곳에 있으면서, 명령을 내릴 거야. 그러나 그 대신 난 영광스럽게도 이곳에서, 이 연대에서 이 신사분들과 함께 복무하고 있지. 난 내일의 승패가 사실은 우리에게 달렸다고 생각해. 그들이 아니라……. 성공은 결코 진지나 무기에, 심지어 병력 수에 좌우되지도 않았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특히 진지와는 아무 상관 없어.”

“그럼 무엇에 달려 있는 것이죠?”

“내 마음속, 이 사람의 마음속…….” 그는 티모힌을 가리켰다. “병사들 각자의 마음속 감정에 달려 있어.”

"전투에서 승리하겠다고 확고하게 결심한 사람이 결국 승리하는 법이지. 우리가 왜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졌을까? 우리의 손실은 프랑스군과 거의 동일했어. 그러나 우리는 전투에 패했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너무 빨리 했지. 그래서 패배한 거야. 우리가 그렇게 말한 건 당시 우리에겐 싸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야. 하루 빨리 전장을 떠나고 싶어 했지. '졌다. 그러니 달아나자!' 우리는 그렇게 달아났어. 우리가 저녁까지 그 말 을 하지 않았다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까? 그건 하느님만 아시겠지.

내일, 우리는 그 말을 하지 않을 거야. 자네는 이렇게 말하지. 우리 진지는 왼쪽 측면이 약하고 오른쪽 측면은 너무 길게 뻗어 있다고 말이야."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다 헛소리야. 그런 건 없어. 내일 우리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수십억 가지의 온갖 다양한 우연이야. 적이나 우리 가운데 어느 편이 달아나고 또 앞으로 달아날 것인가, 이쪽이 죽을 것인가 저쪽이 죽을 것인가, 우연은 그런 것들로 순식간에 결정될 거야. 그런데 지금 일어나는 것들은 모두 오락거리에 불과해. 문제는 자네와 함께 진지를 다닌 자들이 전투의 전반적인 흐름에 영향을 끼치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방해를 하고 있다는 점이야. 그들은 자신들의 소소한 이익에 정신이 팔려 있어."

"그들에게 지금은 그저 적을 계략에 빠뜨려 훈장 하나를 더 챙길 수 있는 기회일 뿐이야. 나에게 내일은 이런 날이지. 10만 명의 러시아군과 10만 명의 프랑스군이 서로 맞붙어 싸워. 사실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야. 그 20만 명이 서로 싸운다는 것, 더 맹렬하게 싸우고 자기 몸을 덜 아끼는 자가 이긴다는 것이야, 자네가 원한다면 말해 주지, 저기서 무슨 일이 있든, 저기 상층부에서 어떤 혼잡이 벌어지든 우리는 내일의 전투에서 승리할 거야. 내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전투에서 승리해!"


"그렇습니다, 공작 각하, 정말입니다, 정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티모힌이 말했다. "자기 목숨을 아끼다니요! 믿기지 않으시겠습니다만, 우리 대대 병사들은 보드카도 마시지 않습니다. 그럴 날이 아니라고 하면서요." 다들 침묵했다. 장교들이 일어섰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들과 함께 헛간 밖으로 가서 부관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장교들이 떠나자 피에르는 안드레이 공작에게 다가갔다. 그가 막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헛간과 그리 멀지 않은 길에서 말 세 마리의 발굽 소리가 울렸다. 그쪽을 돌아본 안드레이 공작은 볼초겐클라우제비츠가 카자크 한 명을 대동하고 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옆을 지나치며 계속 독일어로 이야기를 했고, 피에르와 안드레이는 본의 아니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전장을 넓은 공간으로 옮겨야 해. 이 의견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아.” 그중 한 명이 말했다.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적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목적이니 개인의 손실에 주의를 기울일 수는 없어.
“아, 그럼.” 첫 번째 목소리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넓은 공간으로 옮긴다고.”


그들이 지나가자 안드레이 공작은 매섭게 콧방귀를 뀌면서 그들의 말을 반복했다. "넓은 공간으로"(독일어)"저것이 바로 내가 자네에게 말한 거야. 내일 저 독일인 신사들은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할 거고, 그저 힘닿는 대로 한껏 망쳐 놓기만 할 거야. 왜냐하면 저 독일인의 머릿속엔 썩은 달걀만큼의 가치도 없는 추론만 들었으니까, 내일 필요한 단 한 가지, 바로 티모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저 인간의 가슴에는 없어"


안드레이 공작이 가늘고 날카로운 새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아, 사랑하는 친구, 최근에 난 사는 게 힘겨워졌어. 내가 너무 많은 걸 알게 되었나 봐. 인간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과일을 먹는 것이 좋지 않아……. 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는 덧붙여 말했다.“그렇지만 자네는 자야지. 나도 잘 시간이군. 고르키로 가 봐.” 갑자기 안드레이 공작이 말하고 떠났다.


피에르는 그를 따라갈지 숙소로 갈지 생각하며 잠시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아냐, 저 사람에게는 그런 게 필요 없어!’ 피에르는 스스로 판단을 내렸다. ‘나도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걸 알아.’ 그는 무겁게 숨을 내쉬고는 고르키로 되돌아갔다.


안드레이 공작은 헛간으로 돌아와 양탄자 위에 누웠으나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의 나타샤와의 어느 날 저녁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안드레이 공작은 그때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때와 똑같은 그 즐거운 미소를 지금도 짓고 있었다.

'난 그녀를 이해했어. 안드레이 공작은 생각했다.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혼의 힘, 그 진실함, 그 영혼의 솔직함, 육체와 연결된 듯한 그녀의 영혼, 난 그녀의 내 면에 있는 그 영혼을 사랑했지……. 그토록 강렬하게, 그토록 행복하게 사랑했는데…….'


그러자 갑자기 자신의 사랑이 어떻게 끝나 버렸는지가 떠올랐다.

'그자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필요 하지 않았어. 그자는 그것을 전혀 보지 못했고 이해하지도 못했지. 그녀에게서 예쁘고 신선한 소녀를 보았을 뿐, 자신의 운명을 그녀와 결합하려 하지 않았어. 반면에 나는? 그런데 그자는 지금까지도 살아 있고, 명랑하지.' 안드레이 공작은 마치 누가 자기 몸에 불을 대기라도 한 것처럼 벌떡 일어나 헛간 앞에서 다시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했다.


26


보로디노 전투 전날인 8월 25일 밤, 프랑스 황제의 궁내 대신 무슈 드 보세파비에 대령이 발루예보의 숙영지에 있는 나폴레옹을 찾아왔다. 첫 번째 사람은 파리에서, 두 번째 사람은 마드리드에서 왔다.아침이 되자 무슈 드 보세는 황제를 위해 손수 가져온, 자기 앞에 있는 꾸러미(황후의 선물)를 운반해 가도록 지시하고 나폴레옹의 막사 첫 번째 구역으로 들어갔다. 파비에는 막사에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장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비에는 유럽의 반대편 끝 살라망카(스페인 북서부 도시, 7월 22일 웰링턴 장군의 연합군 부대가 프랑스군을 크게 격파함)에서 싸운, 오로지 자신들의 황제에게 가치가 있고, 황제에게 쓸모없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만을 간직하고 있는 자기 부대의 용맹함과 충성심에 관해 말했다. 전투 결과는 비참했다.

“난 모스크바에서 이것을 만회해야만 해.” 나폴레옹이 말했다. 그리고 드 보세를 불렀다.


그때는 이미 의자 위에 무언가를 늘어놓고 그 위에 덮개를 덮어 깜짝 선물을 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드 보세는 프랑스의 궁정 예법에 따라 부르봉 왕가의 노신(老臣)만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깊이 허리를 숙여 절하고, 나폴레옹에게 다가와 봉투를 건넸다.

“폐하! 저는 모스크바 성문 옆에서 폐하를 뵙게 되리라 적잖이 기대했습니다.” 보세가 말했다.


“아! 이건 뭐요?” 나폴레옹은 모든 궁정 신하가 덮개에 덮인 무언가를 쳐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보세는 궁정 신하다운 민첩함으로 등을 보이지 않은 채 몸을 반만 돌려 두 걸음 뒤로 물러났고, 그와 동시에 덮개를 벗기면서 말했다. “황후께서 폐하께 보내시는 선물입니다.”

그것은 제라르(로마 출신의 프랑스 화가)가 선명한 색채로 그린,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의 (어찌 된 영문인지 모두 그 소년을 '로마 왕'이라 불렀다) 초상화였다.


“로마 왕이군!” 그는 우아한 손짓으로 초상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경이로워!”

그는 자신의 막사 주위에 있는 고참 근위대가 그들이 숭배하는 군주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로마의 왕을 보는 행복을 빼앗기지 않도록 초상화를 막사 앞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나폴레옹이 함께 식사할 영광을 베푼 보세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그가 예상한 것처럼 초상화를 향해 달려온 고참 근위대의 장교들과 병사들이 소리치는 환희에 찬 외침이 막사 앞에서 들려왔다.

“황제 만세! 로마 왕 만세! 황제 만세!” 환희에 찬 목소리들이 들렸다.


아침 식사 후 나폴레옹은 보세가 있는 자리에서 군대에 내릴 명령을 받아 적도록 했다.

“간결하고 힘이 있어!” 나폴레옹은 수정 없이 단숨에 적은 선언문을 직접 읽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전사들이여! 여기 여러분이 그토록 갈망하던 전투가 눈앞에 있소. 승리는 당신들에게 달렸소. 승리는 분명 우리의 것입니다. 승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 즉 쾌적한 숙소와 조속한 귀국을 제공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우스터리츠, 프리틀란트, 비텝스크, 스몰렌스크에서 했던 대로 하십시오. 미래의 후손들이 오늘 여러분의 무훈을 자랑스럽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그는 모스크바 근교 대전투에 참가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하도록 하십시오!


나폴레옹이 막사를 나선 순간, 그 아들의 초상화 앞에 몰려든 근위대 병사들의 함성이 더욱 강해졌다. 나폴레옹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걸 치우시오.” 그는 우아하고 장엄한 몸짓으로 초상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가 전장을 보기엔 너무 이르오.”

보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깊이 쉬었다. 이러한 몸짓으로 자신이 황제의 말을 높이 평가하고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27


나폴레옹을 연구한 역사가들의 주장대로, 8월 25일 그는 지형을 둘러보고, 원수들이 제출한 작전 계획을 검토하고, 자신의 장군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면서 하루 종일 말 위에서 보냈다. 콜로차강을 따라 배치된 러시아 부대들의 첫 번째 전선은 격파되었고, 그 전선의 일부, 즉 러시아 부대들의 왼쪽 측면은 24일 셰바르디노 보루가 함락되면서 뒤로 밀려났다. 전선의 이 부분은 요새화되지도 않았고, 더 이상 강의 보호를 받지도 못했다. 그 앞에는 그저 더 훤히 트인 평원만 있을 뿐이었다. 전선의 이 부분을 프랑스군이 틀림없이 공격하리라는 점은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누구나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이런저런 명령을 내린 후 군사령부로 돌아갔고, 그의 구술에 따라 전투 작전 명령서가 작성되었다. 프랑스 역사가들이 열광하고, 다른 나라 역사가들도 깊은 존경을 드러내는 그 명령서는 다음과 같다.


1) 에크뮐 공이 포진한 평지에 밤사이 배치되는 새로운 2개 포병 중대는 새벽녘 맞은편의 적군 2개 포병 중대를 향해 포격을 개시한다.

이때 포병 제1군단의 지휘관 페르네티 장군은 콩팡 사단의 포 30문과 데세 및 프리앙 사단의 유탄포 전부를 가지고 전진하여 포격을 개시하고, 적군의 포병 중대에 유탄을 퍼 붓는다. 이때 포병 중대 공격에는 다음의 화포가 동원될 것이다.
- 근위 포병대의 포 24문
- 콩팡 사단의 포 30문
- 프리앙 및 데세 사단의 포 8문
총 62문

포병 제3군단 지휘관 푸셰 장군은 제3군단과 제8군단의 유탄포 총 16문을 왼쪽 요새에 포격을 가할 포병 중대의 양 측면에 배치하여 이 왼쪽 요새를 공격할 포를 총 40문으로 편성한다.

소르비에 장군은 첫 번째 명령에 따라 근위 포병대의 모든 유탄포를 끌고 어느 요새로든 돌격할 태세를 갖춘다.

2) 포격이 이루어지는 동안 포니아토프스키 공작은 마을과 숲으로 진군하여 적의 진지를 우회한다.

3) 콩팡 장군은 제1요새를 점령하기 위해 숲을 거쳐 이동한다.

이와 같이 전투에 돌입하면 적의 움직임에 따라 명령이 하달될 것이다.
오른쪽 날개의 포격 소리가 들리자마자 왼쪽 측면에서 포격을 시작한다. 모랑 사단과 부왕 사단 사격병들은 오른쪽 날개의 공격 개시를 보는 대로 격렬한 포화를 퍼붓는다.

4) 부왕은 마을을 점령한 후 세 개의 다리를 건너 모랑과 제라르 사단과 같은 고도에서 진군하고, 모랑과 제라르 사단은 부왕의 선도 지휘 아래 보루를 향해 다른 부대들과 함께 전선으로 진입한다.
이 모든 것은 가능한 한 예비 부대를 유지하는 형태로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모자이스크 부근의 황제 막사에서, 1812년 9월 6일(톨스토이가 따른 러시아 신력과 약 12일 차이가 난다)


나폴레옹의 천재성에 대한 종교적 두려움 없이 감히 그 명령서를 대한다면, 실로 모호하고 뒤죽박죽인 이 작전 명령서는 네 가지 사항, 즉 네 가지 명령을 포함한다. 하지만 그 명령들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실행이 가능했거나 실제로 실행된 것이 없다.


작전 명령에 적힌 첫 번째 명령은 다음과 같다. 나폴레옹이 선별한 장소에 배치되는 포병 중대가 그들과 나란히 놓일 페르네티와 푸세의 포와 함께 총 102문의 포로 포격을 개시하여 러시아군 방어 진지와 보루에 포탄을 퍼붓는다. 이 명령은 이루어질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포탄들이 나폴레옹이 지정한 자리에서부터 러시아 보루까지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최측근 지휘관이 나폴레옹의 명령을 어기고 포들을 전진 배치할 때까지 102문의 포들은 쓸데없이 포탄을 허비하고 말았다.

두 번째 명령은 다음과 같다. 포니아토프스키는 마을로 진군하고 숲을 지나 러시아군의 왼쪽 측면을 우회한다. 이것은 실행될 수도 없었고 실행되지도 않았다. 마을로 진군하고 숲을 지나려던 포니아토프스키는 그곳에서 투치코프와 맞닥뜨리고 길을 차단당하여 러시아군 진지를 우회할 수 없었고 또 우회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명령은 이러했다. 콩팡 장군은 제1요새를 점령하기 위해 숲으로 이동한다. 콩팡 사단은 제1요새를 점령하지 못하고 격퇴되었다. 그의 사단이 숲에서 막 벗어 났을 때 나폴레옹도 예상치 못한 산탄의 포격을 받아 그 아래에서 대열을 정렬해야 했기 때문이다.

네 번째 명령은 이러했다. 부왕은 마을(보로디노)을 점령한 후 세 개의 다리를 건너 모랑과 프리앙의 사단과 같은 고도에서 진군하고(언제 어디에서 그들이 진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모랑과 프리앙의 사단은 부왕의 선도 지휘 아래 보루를 향해 다른 부대들과 함께 전선으로 진입한다. 모랑과 프리앙 사단은 보루를 탈취하지 못하고 격퇴되었으며, 보루는 전투가 끝날 무렵 기병대에 점령당했다(나폴레옹으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고, 일찍이 들어 본 적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작전 명령서의 어느 한 명령도 실행되지 않았고 실행될 수도 없었 다. 그러나 작전 명령서에는 이런 식으로 전투에 돌입하면 적의 움직임에 따라 명령이 하달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전투가 벌어지는 내내 전장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전투의 진행을 알 수 없었고(이것은 이후에 알려졌다) 전투 도중에는 그의 명령들 가운데 단 하나도 실행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8


많은 역사가들은 프랑스군이 보로디노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던 것은 나폴레옹이 코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며, 만일 코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면 전투 전과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에 더 천재적인 명령을 내렸을 것이고, 그러면 러시아는 멸망했을 것이고, 세계의 모습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표트르 대제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러시아가 형성되었으며, 나폴레옹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프랑스가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변하고, 프랑스군이 러시아로 진군했다고 인정하는 역사가들, 그런 역사가들에게서는 이 같은 추론, 즉 나폴레옹이 26일에 심한 코감기를 앓아서 러시아가 강국으로 남을 수 있었다는 추론이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보로디노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단 한 사람에게도 총을 쏘지 않았고,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을 실행한 것은 병사들이다. 따라서 그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프랑스군 병사들은 나폴레옹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바람에 따라 러시아군 병사들을 죽이러 보로디노 전투에 참전했다. 군대 전체는 모스크바로 가는 길을 막아선 군대를 보자 '포도주병의 마개가 뽑힌 이상,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고 느꼈다.


게다가 전투의 흐름을 지배한 것은 나폴레옹이 아니었다. 그의 작전 명령 가운데 어느 것도 실행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그는 자기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들이 서로를 죽인 과정은 나폴레옹의 의지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와 상관없이 공통의 전투에 참가한 수만 명의 의지에 따라 진행되었다.


게다가 8월 26일 나폴레옹이 코감기에 걸린 것은 더더욱 중요하지 않다. 코감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작전 명령들과 전투 중간의 지시들이 예전만 못했다는 저술가들의 진술은 올바르지 않다. 여기에 인용한 작전 명령은 예전에 그가 승리한 전투의 여느 작전 명령들보다 결코 못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훨씬 더 낫기까지 하다. 전투 중간에 하달했다는 가상의 명령도 예전에 비해 못하지 않으며 여느 때와 똑같은 것들이었다.


29


두 번째로 전선을 주의 깊게 시찰하고 돌아와서 나폴레옹은 말했다.

“체스의 말들은 놓였다. 게임은 내일 시작된다.”



나폴레옹은 펀치를 내오도록 명하고 보세를 불렀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파리와 자신이 황후의 궁정에서 시도하려는 몇 가지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고, 궁정 관계의 온갖 사소하고 세세한 것들까지 거론하는 기억력으로 궁내 대신을 놀라게 했다.


두 잔째 펀치를 다 마신 후 나폴레옹은 다음 날에 있을 중대사를 앞두고 휴식을 취하러 갔다. 그는 앞에 닥친 이 사건에 너무 마음이 쓰여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의 습기로 코감기가 심해졌는데도 새벽 3시에 요란하게 코를 풀고 나서 막사의 큰 구역으로 나갔다. 그는 러시아군이 물러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적군의 모닥불이 여전히 같은 장소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알았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당직 부관이 막사로 들어왔다.

“여보게, 라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오늘 우리가 잘될 것 같소?” 나폴레옹이 라프에게 말을 건넸다.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폐하.” 라프가 대답했다.

나폴레옹은 그를 바라보았다.

“폐하, 폐하께서 황송하게도 스몰렌스크에서 제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포도주병의 마개가 뽑힌 이상, 포도주를 마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라프가 말했다.


5시 30분에 드디어 나폴레옹은 말을 타고 셰바르디노 마을로 향했다. 오른쪽에서 굵직한 대포 한 발의 포성이 울리며 주위에 퍼지더니 광막한 고요 속으로 사라졌다. 몇 분이 지났다. 두 번째, 세 번째 포성이 울리고 대기가 진동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포성은 가까운 오른쪽 어딘가에서 장엄하게 울렸다. 게임이 시작되었다.



30


안드레이 공작과 헤어져 고르키로 돌아온 피에르는 보리스가 양보한 칸막이 한구석에서 곧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피에르가 잠에서 완전히 깼을 때 통나무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작은 창들의 유리가 덜컹거렸다. 조마사가 그를 흔들며 서 있었다. “뭐지? 시작됐어? 때가 되었나?” 잠에서 깬 피에르가 말했다.

“사격 소리를 들어 보십쇼.” 퇴역 병사인 조마사가 말했다. “대공작께서도 한참 전에 지나가셨다니까요.”


피에르는 조마사에게 말을 끌고 뒤따라오라고 지시한 후, 거리를 지나 전날 전장을 바라보던 구릉으로 걸어갔다. 빨간 테를 두른 하얀 군모를 쓴 쿠투조프의 희끗희끗한 머리와 양어깨 사이에 파묻힌 희끗희끗한 뒤통수가 보였다. 쿠투조프는 망원경으로 앞쪽 대로를 보고 있었다.


푸풋! 갑자기 보랏빛과 잿빛과 젖빛으로 아른거리는 둥글고 짙은 연기가 보이는가 싶더니 1초쯤 뒤에 꽝 하고 그 연기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푸풋, 푸풋. 두 줄기 연기가 서로 밀치고 뒤섞이며 일어났다. 그리고 쿵, 쿵! 하는 소리가 눈이 목격한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푸풋(간격을 두고)…… 푸풋 하는 소리가 세 번 더, 네 번 더 들리고, 일정한 간격으로 꽝…… 꽝꽝꽝 하는 아름답고 정확하고 확실한 소리들이 화답했다.


피에르는 그런 포연, 그 반짝이는 총검과 대포, 그 움직임, 그 소리가 있는 곳에 있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인상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기 위해 쿠투조프와 수행단을 돌아보았다. 그가 보기에 모든 이들이 그와 동일한 감정으로 눈앞의 전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보게, 떠나게나, 떠나게나. 그리스도께서 자네와 함께하시길.” 쿠투조프는 전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옆에 서 있던 장군에게 말했다. 명령을 들은 장군은 구릉에서 내리막으로 가던 피에르 옆을 지나갔다.

“나루터로!” 장군은 어디로 가느냐는 참모들 가운데 한 명의 질문에 차갑고 엄하게 대답했다.

‘나도, 나도.’ 피에르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 하며 장군을 뒤따라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31


피에르가 뒤쫓아 간 장군은 언덕을 내려가자 왼쪽으로 방향을 급히 틀었다. 시야에서 그를 놓친 피에르는 앞쪽에서 행군하던 보병 대열에 뛰어들고 말았다. 그는 말을 몰아 앞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하면서 그 대열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병사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자신들을 말발굽으로 짓밟으려 드는 하얀 모자의 뚱뚱한 남자를 다들 똑같이 불만스러운 의심의 눈길로 쳐다보았다.



피에르는 자신도 모르게 콜로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까지 다다랐다. 그 다리는 고르키와 보로디노 사이에 있었고, 프랑스군이 전투의 첫 단계에서 (보로디노를 점령한 후) 공격한 곳이었다. 그 자리에서 총격이 그칠 새 없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는 이곳이 바로 전쟁터인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사방에서 휙휙 소리를 내는 총알 소리와 머리 위로 날아가는 포탄 소리도 듣지 못했고, 강 건너편에 있는 적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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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비켜.” 사람들이 소리 질렀다.

피에르는 오른쪽으로 비키다가 예기치 않게 안면이 있는 라옙스키 장군의 부관과 마주쳤다. 그 부관은 성질이 나서 피에르를 흘깃 쳐다보았다. 분명 그 역시 소리를 지르려던 것 같았으나 피에르를 알아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하고 계속 말을 달렸다.


앞쪽에 전진 배치되어 귀를 멀게 할 정도의 포성을 울리며 포격하고 있는 포병대 뒤쪽, 포연이 자욱한 제6군단을 지나 두 사람은 작은 숲에 도착했다. 여기서 피에르는 포대로 향하고, 부관은 장군을 찾아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들은 더 이상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피에르는 그날 그 부관이 한쪽 팔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피에르가 올라간 구릉은 (훗날 러시아군에게는 '라옙스키 포대'라는 이름으로, 프랑스군에게는 '비운의 보루'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는) 유명한 장소로 수만 명의 병사들이 그 근처에서 쓰러졌고, 프랑스군은 그곳을 진지의 가장 중요한 거점으로 생각했다. 그 보루는 삼면에 참호를 판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참호의 토벽 틈새로 포신을 내민 열 문의 대포가 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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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에 들어선 피에르는 똑같은 미소를 띤 채 일어나서, 포탄을 장전하고 포탄을 굴려 나르는 병사들이나 자루와 탄약 상자를 들고 끊임없이 그를 지나쳐 달려가는 병사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애쓰며 포대 안을 돌아다녔다. 하얀 모자를 쓰고 민간인 모습을 한 피에르의 출현은 처음에 이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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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포대 앞쪽 덤불과 카멘카강 기슭에 있던 보병들이 후퇴했다. 포대가 있는 곳에서는 보병들이 라이플총들 위에 부상병들을 싣고 포대를 지나 후방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 후 포대 오른쪽에 있던 보병 대열 사이에서 북소리와 명령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포대가 있는 자리에서 보병 대열이 앞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포대에 포탄이 점점 더 빈번히 떨어졌다. 몇몇 사람들은 실려 가지 못한 채 널브러져 있었다.


“예비대로 달려가 탄약 상자를 가져와!” 장교가 화가 나서 피에르를 외면하며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내가 가겠습니다.” 피에르가 말했다.

“에이, 어르신, 여기는 어르신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병사가 이렇게 말하고 아래쪽으로 뛰어 내려갔다. 피에르는 앳된 장교가 앉아 있는 자리를 빙 돌아 병사를 뒤따라 달려갔다.


어느새 녹색 탄약 상자로 다가간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앞으로 갈지 다시 돌아갈지 결정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갑자기 무시무시한 충격이 그를 뒤로,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순간 커다란 불꽃의 섬광이 그를 비추었고, 그와 동시에 귀가 먹먹해지고 윙윙 울릴 만큼 요란한 우레 같은 소리와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휙휙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 피에르는 두 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주저앉아 있었다. 주위에 있던 탄약 상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저 불에 탄 녹색 나무판자와 넝마 조각만 불살라진 풀 위를 나뒹굴었다. 말 한 마리가 부서진 끌채를 단 채 그를 지나쳐 달려갔고, 또 다른 한 마리는 피에르처럼 땅바닥에 쓰러져 귀청을 찢는 듯한 날카롭고 긴 울음소리를 냈다.


32


피에르는 공포에 질려 정신없이 벌떡 일어나 마치 그를 둘러싼 모든 끔찍함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인 듯 포대를 향해 뛰어갔다. 참호로 들어가려는 순간 피에르는 포대에서 더 이상 포격 소리가 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그곳에서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피에르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다.


피에르가 참호로 막 뛰어 들어가자 비쩍 마르고 얼굴이 누런 파란 군복의 남자가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한 손에 장검을 든 채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몇 초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낯선 얼굴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때 갑자기 포탄 하나가 그들의 머리 바로 위로 낮게 무시무시하게 휙 스쳐 지나갔다. 피에르도 머리를 숙이며 프랑스 장교의 멱살을 놓았다. 누가 누구를 포로로 잡을 것인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프랑스인은 뒤쪽 포대로, 피에르는 산 아래로 사상자들에 걸려 넘어지며 뛰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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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대를 점령했던 프랑스군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아군은 “우라!” 하고 함성을 지르면서 포대 너머 너무 멀리까지 프랑스군을 추격해서 그들을 제지하기도 힘들었다. 포대에서 포로들이 끌려 나왔고, 그중에는 부상을 당한 프랑스 장군도 있었다. 장교들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피에르는 자신이 한 시간 넘게 시간을 보낸 구릉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그가 모르는 사망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몇몇 사람을 알아보았다. 앳된 장교는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 피가 흥건히 고인 토벽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붉은 얼굴빛의 병사가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를 데려가지 않았다. 피에르는 전장에서 이동해 나가는 들것들의 무리를 목적 없이 뒤따라가며 생각에 잠겼다.


33


보로디노 전투의 중요한 군사 행동은 보로디노 마을과 바그라티온의 방어 진지 사이 약 1천 사젠의 공간에서 벌어졌다. 전투의 주요 군사 행동은 보로디노 마을과 방어 진지 사이의 숲 근처 들판, 탁 트인, 양쪽에서 환히 보이는 장소에서 어떤 책략도 없이 지극히 단순한 방식으로 벌어졌다.


전투는 양편에서 수백 문의 대포를 쏘며 시작되었다. 그다음, 포연이 온 들판에 자욱이 깔렸을 때, 이 포연 속에서 데세와 콩팡의 2개 사단은 (프랑스 편에서는) 오른쪽에서부터 방어 진지로 움직였고, 부왕의 연대들은 왼쪽에서부터 보로디노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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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서 있던 셰바르디노 보루에서 방어 진지는 1베르스타 정도 떨어진 반면, 보로디노 마을은 오른쪽 전선을 따라 2베르스타 남짓 떨어져 있었다. 그 때문에 나폴레옹은 그곳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볼 수 없었다. 더욱이 안개와 어우러진 포연이 전 지역을 뒤덮었다. 나폴레옹은 구릉에 서서 망원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포연과 때로는 프랑스군, 때로는 러시아군을 보았다. 그러나 육안으로 바라볼 때는 자신이 본 것이 어디쯤인지, 무엇을 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구릉에서 내려가 앞뒤로 거닐기 시작했다.


전장으로부터 나폴레옹이 파견한 부관들과 원수들의 연락 장교가 전투 경과를 보고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말을 내달려 왔다. 그러나 그 보고들은 전부 오보였다. 더욱이 부관이 말을 타고 나폴레옹이 있는 곳까지 2~3베르스타 거리를 오는 동안 상황들은 바뀌었고, 그가 가져온 소식은 이미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피할 수 없는 잘못된 보고들에 의거해 판단을 하면서 나폴레옹은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들은 그가 내리기도 전에 이미 실행되기도 했고, 혹은 실행될 수 없거나 실행되지 않았다.


대포를 언제 어디로 움직일지, 사격을 위해 언제 보병들을 내보낼지, 러시아 보병들을 짓밟기 위해 언제 기병들을 내보낼지 등에 관한 명령들은 대열에 있던 가장 가까운 일부 지휘관들이 나폴레옹뿐 아니라 심지어는 네, 다부, 뮈라에게조차도 물어보지 않고 직접 내렸다. 그들은 명령 불이행이나 독자적인 지시로 인한 징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투에서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 자신의 생명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34


나폴레옹의 장군들, 즉 이 포화 지역에 가까이 있었고 심지어 가끔은 그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던 다부뮈라는 잘 훈련된 대군을 몇 차례씩 포화의 현장에 투입했다. 그러나 이전의 전투에서 어김없이 일어나던 것과 정반대로, 적의 패주에 대한 소식 대신 잘 훈련된 대군이 겁에 질린 지리멸렬한 무리가 되어 그곳에서 돌아왔다. 장군들은 다시 그들을 정돈시켰지만 병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정오 무렵 뮈라는 나폴레옹에게 부관을 보내 병력 보강을 요청했다.


“나폴리 왕한테 말하게.” 나폴레옹이 엄하게 말했다. “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고, 나에게는 아직 나의 장기판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야. 가 봐…….”

긴 머리의 미소년 부관은 모자에서 손을 떼지 못한 채 무겁게 한숨을 쉬고는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 그곳으로 다시 말을 달렸다.


사방에서 계속 부관들이 말을 몰고 와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말을 했다. 모두들 보강을 요청하고, 러시아군이 자신들의 자리를 고수하며 지옥 불을 퍼붓고 있어, 그 때문에 프랑스 부대가 점점 녹고 있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은 접이식 의자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침부터 계속 시장기를 느끼던 여행 애호가 무슈 드 보세가 황제에게 다가가 대담하게도 정중히 아침 식사를 권했다. “이제는 이미 폐하께 승리를 축하드려도 좋으리라 기대합니다만.” 그가 말했다.

나폴레옹은 부정의 뜻으로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물러가시오…….” 갑자기 나폴레옹은 침울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폴레옹은 괴로운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돈을 걸어도 늘 따기만 하던 운 좋은 도박꾼이 게임의 모든 경우들을 계산한 바로 그 순간에 그 수를 곰곰이 생각할수록 자신의 패배가 더욱 확실해진다고 느끼면서 겪는 감정과 비슷했다.


이전의 방법들은 모두 하나같이 성공을 거두었다. 한 지점으로의 포대 집중, 전선 돌파를 위한 예비대의 공격, 철인 기병대의 공격, 이 모든 방법들을 이미 사용했다. 그런데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군들이 전사하고 부상을 당했으며, 전력 보강이 불가피하고, 러시아군을 격파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부대들이 혼란에 빠졌다는 등의 똑같은 소식들만 사방에서 들려왔다. 방어 진지를 점령했다는 소식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은 그것이 자신의 이전 전투들에서 벌어진 것과는 다르다는 것, 그것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았다.


오랜 전쟁의 경험을 쌓은 뒤의 나폴레옹으로서는 여덟 시간 동안 모든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공격군이 승리를 거두지 못한 전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이것이 패전이고, 이제는 즉 전투가 처한 이런 긴장되고 불안한 순간에는, 아주 사소한 우연조차 자신과 자신의 군대를 파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폴레옹 근처로 말을 몰고 온 장군들 가운데 한 명이 고참 근위대를 전투에 투입하자고 용감하게 제안했다. 나폴레옹 옆에 서 있던 네와 베르티에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그 장군의 무의미한 제안에 경멸스럽다는 듯 웃었다. 나폴레옹은 고개를 숙이고 오랫동안 침묵했다.

“프랑스로부터 3천2백 베르스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의 근위대를 전멸하게 만들 순 없소.”그는 이렇게 말하고 말을 돌려 셰바르디노로 되돌아갔다.


35


쿠투조프는 희끗한 머리를 숙인 채 양탄자로 덮은 긴 의자에, 피에르가 아침에 보았던 바로 그 자리에 묵직한 몸을 내려놓고 앉아 있었다. 그는 아무 명령도 내리지 않고 그저 그에게 제안되는 것들에 대해 동의하거나 혹은 반대하거나 했다. 그는 죽음과 싸우는 수십만 명의 인간을 한 사람이 지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오랜 전쟁 경험으로 알고 있었고, 노인의 지혜로 이해하고 있었다.


오전 11시, 러시아군이 프랑스군에 빼앗긴 방어 진지를 다시 탈환했지만 바그라티온 공작이 부상을 당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쿠투조프는 탄식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 나서 뒤에 서 있던 뷔르템베르크* 대공을 돌아보았다. “전하께서 제2군의 지휘를 맡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셰르비닌이 방어 진지와 세묘놉스코예가 프랑스군에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왼쪽 측면에서 말을 몰고 달려왔을 때, 쿠투조프는 전장의 소리와 셰르비닌의 얼굴에서 그것이 좋은 소식이 아님을 짐작하고 마치 다리를 풀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셰르비닌의 팔을 잡고 한구석으로 데려갔다. "자네가 한번 가 보게.”그는 예르몰로프에게 말했다.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보고 와,”


쿠투조프는 러시아군 진지의 한복판인 고르키에 있었다. 나폴레옹이 아군의 왼쪽 측면에 가한 공격은 몇 번이고 격퇴되었다. 프랑스군 중앙부는 보로디노 앞에서 더 이상 진격하지 못했다. 왼쪽 측면에서는 우바로프의 기병대가 프랑스군을 몰아냈다. 2시가 넘어서자 프랑스군의 공격이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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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투조프가 식사하고 있을 때 시종 무관 볼초겐이 쿠투조프를 찾아왔다. 볼초겐은 바르클라이가 있던 곳에서 왼쪽 측면 전투 상황을 보고하러 왔다. 분별력이 뛰어난 바르클라이 드 톨리는 달아나는 부상병 무리와 군대의 무질서한 후방을 보면서 모든 전투 상황을 저울질한 후 아군이 패한 것으로 결론짓고 총애하는 부하에게 이 소식을 들려 총사령관에게 보낸 것이다.


“당신이 보았소? 당신이 직접 보았소?” 쿠투조프가 벌떡 일어나 볼초겐에게 바짝 다가서며 찌푸린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적은 왼쪽 측면에서 격퇴되었고 오른 쪽 측면에서 패배했소. 당신이 제대로 보지 못했다면 자신도 모르는 것을 함부로 지껄이지 마시오. 바르클라이 장군에게 가서 내일 내가 반드시 적을 공격할 계획이라는 것을 전하시오.” 쿠투조프는 엄격하게 말했다.



“저기 오는군, 나의 영웅이…….” 쿠투조프는 그때 구릉으로 올라오는 뚱뚱하고 잘생긴 검은 머리의 장군을 향해 말했다. 그는 보로디노 평원의 주요 지점에서 하루 종일을 보낸 라옙스키였다.

라옙스키는 부대들이 자기 자리를 확고하게 지키고 있으며, 프랑스군이 감히 더 이상 공격을 시도하지 못한다고 보고했다.


그 말을 들은 쿠투조프는 프랑스어로 말했다.

“그럼 그대는 아마도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가 후퇴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소?”

“정반대입니다, 대공작 각하. 승패를 가리기 어려운 전투에서 승자로 남는 것은 더 끈질긴 쪽입니다.” 라옙스키가 대답했다. “제 견해로는…….”

“카이사로프!” 쿠투조프가 큰 소리로 부관을 불렀다. “앉아서 내일을 위한 명령서를 써 주게.” 그러고는 또 다른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자네는 전선으로 가서 내일 아군이 공격에 나설 거라고 알리게.”


쿠투조프가 말한 것은 교활한 판단에서가 아니라 총사령관의 마음에 있는 감정에서, 러시아군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과 똑같은 감정에서 우러나왔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군이 적을 공격한다는 것을 알고, 또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에 대한 확언을 군 최고위부로부터 듣자 지치고 동요하던 사람들은 위안을 얻고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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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공작의 연대는 예비 부대에 속해 있었다. 예비 부대는 1시가 지나도록 포병이 맹렬한 포화를 퍼붓는 가운데 세묘놉스코예 뒤편에 군사 행동 없이 주둔했다. 1시가 넘었을 때 이미 2백 명이 넘는 병사를 잃은 연대는 세묘놉스코예와 구릉 포대의 중간 지역, 짓밟힌 귀리밭으로 전진했다. 그곳에서 이날 수천 명이 전사했고, 1시에서 2시 사이엔 수백에 달하는 적의 강력한 집중포화를 받았다. 자리를 떠나지 않은 채 사격 한 번 못해 보고 연대는 병사의 3분의 1을 더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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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미 여덟 시간 넘게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 가차 없는 죽음의 공포 아래 서 있었다. 찌푸린 창백한 얼굴들은 점점 더 창백해지고 찌푸려졌다.

안드레이 공작은 연대 사람들과 똑같이 창백하고 찌푸린 얼굴을 하고, 뒷짐 을 지고 고개를 숙인 채 커리밭 옆 목초지에서 한 고랑에서 다른 고랑으로 계 속해서 앞뒤로 거닐었다. 그가 해야 하거나 명령을 내려야 할 것은 전혀 없었 다.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조심해!" 병사의 놀란 고함 소리가 들렸다. 작은 새가 회 하는 소리를 내며 빠르게 날아와 땅바닥에 내려앉듯, 안드레이 공작에게서 두 걸음 떨어진 대대장의 말 옆에 유탄이 그다지 크지 않은 소리로 쿵 하고 떨어졌다. "엎드려!" 땅바닥에 엎드려 있던 부관의 외침이 들렸다. 안드레이 공작은 망설이며 서 있었다. 유탄은 그와 엎드린 부관 사이에서, 무성한 쑥 덤불 옆에서 연기를 내며 팽이처럼 돌았다.



'정말로 이런 게 죽음인가?' 안드레이 공작은 질투 어린 완전히 새로운 시선으로 풀과 쑥을, 빙글빙글 도는 조그만 검은 공에서 원을 그리며 피어나는 한 줄기 연기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난 죽고 싶지 않아. 난 삶을 사랑하고, 이 풀과 흙과 대기를 사랑해…….'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 순간 폭발음과 함께 파편 소리가 들리고 숨막히는 화약 냄새가 났다.


안드레이 공작은 옆으로 급히 뛰어가다가 한 팔을 위로 쳐든 채 엎어졌다.

"아, 하느님! 하느님! 이게 뭐야? 배가! 이렇게 되면 끝이잖아! 아, 하느님!" 장교들 사이에서 몇몇 목소리가 들렸다. "귀 옆으로 머리카락 한 올만큼 떨어져 휙 지나갔어." 부관이 말했다. 농부들은 들것을 어깨에 메고 자신들이 지나온 오솔길을 따라 야전 응급 치료소로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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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가운데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된 수술복을 걸치고 조그만 두 손을 온통 피로 적신 채 천막 밖으로 나왔다. 그는 몇 분 동안 고개를 좌우로 돌려 움직이고 나서, 한숨을 쉬고 눈길을 내렸다.

“음, 지금 하지.” 그는 안드레이 공작을 가리키는 위생병의 말에 이렇게 대꾸하며, 그를 천막 안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안드레이 공작은 안으로 옮겨졌고, 방금 위생병이 무언가를 씻어 낸 빈 탁자 위에 눕혀졌다.



그는 안드레이 공작의 얼굴을 흘깃 보고는 급히 뒤돌아섰다.

“옷을 벗겨! 뭣 하고 서 있어?” 그는 위생병들에게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소맷자락을 걷어붙인 위생병이 다급한 손놀림으로 단추를 끄르고 옷을 벗기는 동안 안드레이 공작의 머릿속에 아득히 먼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의사는 상처 위로 몸을 낮게 숙여 부위를 만져 보더니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나서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안드레이 공작은 배 속의 지독한 통증에 의식을 잃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부상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보여 줘요…… 오! 오오오!" 누군가 부츠를 신은 채 절단되어 피가 굳은 한쪽 다리를 그에게 보여주었다."오! 오오오!" 그가 여자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오, 하느님!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이 사람이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안드레이 공작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불행에 빠져 흐느끼고 있는, 방금 한쪽 다리를 잃고 무기력해진 인간에서는 그는 아나톨 쿠라긴을 알아보았다. 아나톨은 고통스럽게 오열했다.



그때 갑자기 1810년 무도회에서 처음 만났을 때의 나타샤가 기억났다. 가냘픈 목덜미와 가느다란 팔, 금방이라도 환희에 휩싸일 듯 두려움과 행복이 뒤섞인 얼굴……. 그의 마음속에서 그녀를 향한 사랑과 다정함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생생하고 더 강하게 깨어났다. 부풀어 오른 눈동자에 가득 차오른 눈물을 통해 자기를 흐릿하게 바라보는 이 사람, 안드레이 공작은 그와 자기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기억해 냈다.


안드레이 공작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들과 자신의 잘못에 대해 부드럽고 애정 어린 눈물을 터뜨렸다.

'연민, 형제들에 대한 사랑,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사랑,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 대한 사랑, 원수에 대한 사랑, 그래, 하느님이 이 땅에 널리 전하신 사랑, 마리야 공작 영애가 내게 가르쳐 준 사랑, 내가 이해하지 못한 사랑이야. 그것이 바로 내가 삶이 아쉬웠던 이유였구나. 그것이 내가 살게 된다면 내게 남겨진 따라야 할 길이었구나. 그러나 이젠 너무 늦었어. 난 그것을 알지!'


38


시체들과 부상자들로 뒤덮인 전장의 끔찍한 광경에 머리가 묵직한 느낌과, 친분 있는 장군들 스무 명가량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는 소식, 한때 강건했던 자신의 한쪽 팔이 이제 힘이 없어졌다는 자각과 결합하여 나폴레옹에게 예상치 않은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이날 전장의 소름 끼치는 광경은 자신의 뛰어난 점이자 위대함이라고 여겨 온 그 정신력을 압도해 버렸다. 그는 서둘러 전장을 떠나 셰바르디노 구릉으로 돌아갔다.


누렇게 떠서 부석부석하고 힘겨워 보이는 얼굴, 흐리멍덩한 눈, 빨간 코, 갈라지는 목소리로 나폴레옹은 자기도 모르게 포성에 귀를 기울이며 눈을 내리뜨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병적인 울적함에 빠져 자신을 참가자로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멈출 수 없는 전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적인 감정이 짧은 순간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몸 바쳐 온 인생의 인위적인 환영을 압도했다.


부관이 말을 타고 달려와 황제의 명령에 따라 대포 2백 문을 러시아군 쪽으로 돌렸지만 러시아군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보고했다.

"아군의 포화가 저들의 대열을 차례차례 쓰러뜨리는데도 저들은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부관이 말했다.

"놈들이 아직도 더 원하는구먼!" 나폴레옹이 쉰 목소리로 내뱉었다. "음, 퍼부어 줘."


하지만 그의 명령이 없어도 그가 바라는 대로 되고 있었다. 그는 단지 사람들이 자기 명령을 기다린다고 생각하여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그는 또다시 어떤 위대함이라는 인위적인 환영들의 세계로 이동했으며, 그에게 예정되어 있던 그 잔인하고 슬프고 괴롭고 비인간적인 역할을 다시 순종적으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연자방아에 매여 빙글빙글 도는 말이 스스로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공상하는 것처럼.)


이 사건에 참여한 어느 누구보다 무겁게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이 남자의 이성과 양심은 비단 이 시각과 이날에만 흐려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선도, 아름다움도, 진리도, 자기 행위의 의미도 결코 이해하지 못했으며, 그가 그것들의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그의 행위는 선과 진실과 너무도 정반대이고, 인간적인 모든 것과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세인트헬레나섬의 고독한 정적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해낸 위대한 업적을 저술하는 데 여가를 바치려 한다고 말하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러시아 전쟁은 현대에 가장 지지받은 전쟁이어야 했다. 그것은 양식(良識)과 참된 유익을 위한 전쟁이었고, 만인의 안녕과 안전을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순수하게 평화를 옹호하는 보수적인 전쟁이었다. 그것은 위대한 목적, 즉 불확실성에 종지부를 찍고 안녕의 시작을 가져오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만인의 행복과 번영으로 충만한 새로운 지평, 새로운 과업이 열리게 되었을 것이다. 유럽 체제의 토대가 놓이고, 오직 그것의 설립만이 문제로 남았을 것이다.

위대한 안건들에 만족하고 어디에서든 평안을 느꼈던 나도 나의 의회와 나의 신성 동맹을 소유했을 것이다. 그것들은 내게서 도적질한 착상이다. 그 위대한 군주들의 회합에서 우리는 한 가족처럼 우리의 이익을 논의하고, 서기가 주인의 의견을 고려하듯 여러 민족들의 의견을 고려했을 것이다. 유럽은 이런 식으로 하나의 동일한 국민이 되었을 것이고, 모든 사람이 어느 곳을 여행하든 공동의 조국에 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모든 강을 만인을 위한 뱃길로 삼고, 바다를 공해(公海)로 삼고, 상시 체제의 대규모 군대를 단일한 군주의 친위대로 축소하자고 요구했을 것이다. 프랑스로, 위대하고 강력하고 장엄하고 평화롭고 영광스러운 조국으로 돌아갔더라면, 나는 그 국경선들을 더 이상 변화될 수 없는 것으로 선언하고, 미래의 모든 전쟁을 방어전으로 한정하고, 모든 새 로운 영토 확장을 반국가적인 행위로 선언했을 것이다. 나는 아들을 제국의 통치에 참여시켰을 것이다. 나의 독재는 종식되고, 아들의 입헌 통치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파리는 세계의 수도가 되었을 것이고, 프랑스 국민은 모든 민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황제로서 교육받는 동안 나는 황후와 더불어 진짜 시골 부부처럼 말을 타고 제국 방방곡곡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사람들의 고충을 받아 주고 비리를 척결하고 전국 각지 모든 곳에 지식과 선행을 베푸는 일에 나의 여가와 여생의 날들을 바쳤을 것이다.

비스와강을 건넌 40만의 군인들 가운데 절반은 오스트리아인, 프로이센인, 색슨족 사람들, 폴란드인, 바이에른 사람들, 뷔르템베르크 사람들, 메클렌부르크 사람들, 스페인인, 이탈리아인, 나폴리 사람들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제국군 가운데 3분의 1은 네덜란드인, 벨기에인, 라인 강변의 주민들, 피에몬테 사람들, 스위스인, 제노바 사람들, 토스카나 사람들, 로마 사람들, 제32사단 지역의 주민들, 브레멘 사람들, 함부르크 사람들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중에서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14만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사실 프랑스는 러시아 원정으로 5만 명이 안 되는 병력을 희생했다. 러시아군은 빌나에서 모스크바로 퇴각하는 과정의 여러 전투에서 프랑스군보다 네 배나 많은 병력을 잃었다. 모스크바의 화재로 인해 러시아인 10만 명이 숲에 머물면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모스크바에서 오데르강으로 이동하는 동안 러시아군은 그해의 엄동설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빌나에 도착했을 때 러시아군은 5만 명에 불과했고, 칼리시에서는 1만 8천 명도 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러시아와의 전쟁이 발생했다고 스스로 공상했다. 그래서 벌어진 참상은 그의 마음을 그다지 놀라게 하지는 않았다. 그는 과감하게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짊어졌다. 그리고 그의 흐릿해진 이성은 전사자들 수십만 명 가운데 프랑스인이 헤센 사람들과 바이에른 사람보다 적었다는 점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찾았다.


39


다비도프가(家)와 국유지 농민들이 소유해 왔던 밭과 목초지에, 보로디노와 고르키와 셰바르디노와 세묘놉스코예 마을의 농민들이 수백 년 동안 수확을 거둬들이고 가축을 방목하던 그 들판과 목초지에 수만 명의 사람들이 다양한 자세와 다양한 군복 차림으로 시체가 되어 널브러져 있었다. 식량도 없고 휴식도 없어 탈진한 이쪽과 저쪽의 병사들은 아직도 서로를 죽여야 하는지에 대해 똑같이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나타났고, 각 사람의 마음에는 똑같이 다음과 같은 물음이 일었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내가 사람을 죽이거나 죽임을 당해야 하지? 당신이나 죽이고 싶은 사람을 죽여. 당신이나 하고 싶은 대로 하란 말이야. 난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아!’ 저녁 무렵이 되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똑같이 무르익었다.


그러나 전투가 끝날 무렵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끔찍한지 느끼면서도, 또 그 행위를 멈추면 기뻐할 것이면서도,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힘에 여전히 지배받고 있었다. 땀과 피로 흠뻑 젖은, 세 명당 한 명꼴로 남은 포병들은 피로로 휘청거리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탄약을 나르고 장전하고 조준하고 점화했다. 포탄은 여전히 빠르고 잔혹하게 양 진영을 날아다니며 인간의 육체를 짓뭉갰다.


누군가 혼란에 빠진 러시아군의 후방을 보았더라면 프랑스군이 한 번 더 조금만 힘썼더라면 러시아군이 전멸했을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프랑스군의 후방을 보았더라면 러시아군이 한 번 더 조금만 힘썼더라면 프랑스군이 괴멸했을 거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군도 러시아군도 그 힘을 쓰지 않았고, 전장의 화염은 천천히 사그라졌다.


무시무시하게 흔들어 대던 두 팔이 무기력하게 툭 떨어지는, 마치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 사람은 나폴레옹만이 아니었다. 모든 장군들, 프랑스군의 모든 전투병들과 비전투병들, 이전 전투들로부터 (이제까지는 그 10분의 1의 노력으로도 적들이 달아났다) 온갖 경험을 갖고 있는 그들도 병력의 절반을 잃고도 전투의 초기와 다름없이 위협적인 모습으로 끝까지 자리를 사수하는 적 앞에서 똑같은 공포의 감정을 느꼈다.


그러나 프랑스의 침공은 멈출 수가 없었다. 일단 충격이 가해지자 프랑스군은 모스크바까지 계속 굴러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들은 러시아군의 새로운 노력이 없었지만 보로디노에서 입은 치명상으로 피를 흘리며 파멸할 수밖에 없었다. 나폴레옹의 이유 없는 모스크바로부터의 탈주, 구(舊)스몰렌스크 가도를 통한 회귀, 50만 침략군의 파멸, 나폴레옹의 멸망은 보로디노 전투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제3권 제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