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옮김 민음사
제3장
호색한들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집은 시내의 중심지에 위치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변두리도 아니었다. 상당히 낡은 집이었지만 외관은 나쁘지 않았다. 다락방이 딸린 단층 건물은 회색 칠이 돼 있었고, 붉은 양철 지붕이 얹혀 있었다. 아직은 한참 더 버틸 수 있었고 넓고 아늑한 집이었다. 생쥐도 들끓었지만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어떻든 저녁에 혼자 있게 되면 별로 심심하진 않거든.'이라면서 그다지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는 통상 밤이 오면 하인들을 곁채로 내보내고 밤새도록 자기 혼자 집 안에 틀어박혀 있곤 했다. 집 안에도 부엌이 있었지만, 곁채 안에도 부엌을 만들도록 했고, 음식 냄새를 싫어해서 먹을 것은 뜰에서 날라 오도록 했다. 이 집은 대가족용으로 지어진 것이지만 이 집에는 오직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이반 표도로비치만이, 행랑채에는 고작해야 세 명의 하인, 즉 그리고리 노인, 그의 아내 마르파 노파, 그리고 아직 젊은 사람인 하인 스메르쟈코프만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쿠투조프 노인은 고집이 센 완고한 사람으로서 만약 어떤 점이 이러저러한(종종 놀라울 정도로 비논리적인) 이유로 자기 자신에게 확고부동한 진리가 되었다면 바로 이 점을 향해 융통성도 없이 집요하게 돌진하는 유형이었다. 대체적으로 말해, 그는 돈으로 매수당할 리 없는 정직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의 아내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는 남편의 뜻이라면 평생 동안 군말 없이 따랐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그들에게 크지는 않지만 봉급을 정해서 꼬박꼬박 지불해 주었다. 그리고리는 게다가 자기가 주인 나리에게 이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교활하고 고집 센 광대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그 자신의 표현대로 '인생사의 어떤 것들에 있어서는' 아주 확고한 성격이었지만, '인생사의 다른 어떤 것들'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도 놀랄 만큼 강단이 부족했다. 그는 출세 가도를 달리는 동안에 수차례에 걸쳐 얻어맞을 뻔하기도 하고 심지어 호되게 얻어맞은 적도 있었지만 늘 그리고리가 구해 주었고 고, 그러면서도 그런 일을 당한 뒤엔 매번 주인에게 일장 훈계를 늘어놓곤 했다.
그럴 때면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그 자신도 뭐라고 딱히 규정지을 수는 없어도 갑자기 순간적으로 자기 옆에 충직하고 가까운 사람을 두고 싶다는 이례적일 만큼 강렬한 욕구를 내심 강렬하게 느끼는 일이 더러 있었다. 이것은 거의 병적인 경우에 해당하는 얘기이다. 방탕하기 그지없고 음탕함에 있어서라면 종종 사악한 벌레처럼 잔혹하기도 한 표도르 파블로비치도 술에 취한 순간이면 갑자기 정신적 공포와 도덕적 전율을 느끼는 때가 이따금씩 있었으니, 그 전율은 그의 영혼 속에서 말하자면 거의 생리적인 울림을 내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순간이면 그는 비록 이 방 안은 아니고 곁채이긴 하지만 어쨌든 자기 곁 가까이에 충직하고 확고한 사람이, 그와는 전혀 달리 방탕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으니, 이 사람은 비록 모든 방탕 행각을 보았고 모든 비밀을 알고 있음에도 한결같이 충성을 지키고 모든 것을 눈감아 줄 뿐만 아니라 대들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이 세기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자기를 나무라지도, 무슨 협박을 가하지도 않을 것이었다.
심지어 (굉장히 드물긴 했지만)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직접 밤중에 곁채로 와서 그리고리를 깨워 잠깐 자기 방으로 오라고 한 일도 있었다. 정작 그리고리가 오면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완전히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하다가 어떤 때는 농담 나부랭이까지 곁들인 뒤 곧 내보내곤 침을 탁 뱉고서 이젠 의로운 사람이라도 된 양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알료샤가 온 이후에도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는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알료샤는 '같이 살면서 모든 걸 다 보고서도 아무것도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폐부를 찔렀던'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리고리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첫 부인인 아젤라이다 이바노브나는 싫어한 반면, 그의 둘째 부인인 클리쿠샤 소피야 이바노브나는 자기 주인에게 대들면서까지 옹호했다. 외모를 봐도 그리고리는 냉정하고 엄중하 고 과묵한 사람으로서 늘 사려 깊고 무게 있는 말만을 내뱉곤 했다. 사실 그는 아내를 정말로 사랑했으며 그녀는 물론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아이들은 선사받지 못했는데, 아이가 하나 생기긴 했지만 그나마도 죽어 버렸다. 정작 아이가 태어나자, 그의 마음은 슬픔과 공포로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갓 태어난 이 사내아이가 육손이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고서 그리고리는 죽도록 절망하여 세례를 받는 날에도 침묵을 고수하기 위해서 일부러 정원으로 나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세례를 받고 이 주 뒤 사내아이가 아구창으로 죽자 그는 자신이 몸소 아이를 관에 뉘고 깊은 비애에 잠겨 아이를 바라보았으며,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다.
그는 이 무덤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주로 '성스러운 것'에 몰두하기 시작하여, 매번 자신의 커다랗고 둥근 은테 안경을 끼고 대부분 말없이 혼자서 순교자전을 읽곤 했다. 대제 기간이 아니라면 큰 소리로 읽는 일은 드물었다. 그는 욥기를 좋아했고 '신을 잉태하신 우리 신부님 이삭 시린'의 말씀과 설교 목록을 어디선가 구해 와서 집요하게 수년간 읽었는데, 거기서 거의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이 책을 가장 높이 평가했고 또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핏덩어리 육손이를 땅에 묻은 바로 그날,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는 밤에 자다가 깨서는 꼭 갓난애의 울음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남편을 깨웠다. 남편은 귀를 기울인 뒤, 이것은 필경 누군가의 신음 소리이며 아무래도 "여자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신음 소리는 분명히 정원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고서 그는 신음 소리는 정원의 쪽문에서 비교적 가까운 그들의 목욕탕에서 나오는 것이며 신음하는 것은 정말로 여자임을 알게 되었다. 목욕탕 문을 연 뒤 그는 넋이 나갈 만한 광경을 목격하고 말았다. 온 거리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도시 사람들이 전부 다 아는 리자베타 스메르쟈쉬야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도시의 유로지브이가 그들의 목욕탕으로 기어 들어와 이제 막 아이를 낳은 것이었다. 갓난아이는 그녀 곁에 누워 있었고, 또 그녀는 그 곁에서 죽어 가고 있었다.
여기에는 한 가지 특수한 정황이 개입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그리고리의 내부에 깃든 한 가지 불쾌하고도 혐오스러운 예전의 의심을 결정적으로 확인시켜 줌으로써 그에게 심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리자베타 스메르쟈쉬야는 아주 키가 작은, 2 아르신(1 아르신은 약 71.12센티미터 정도) 남짓한 처녀였다. 스무 살 난 그녀의 얼굴, 건강하고 넓적하고 발그스레한 얼굴은 완전히 백치 그 자체였다. 그녀는 평생 동안 여름에도 겨울에도 삼베 윗도리 하나만 달랑 걸치고 맨발로 다녔다.
그녀의 아버지인 일리야라는 소시민은 집도 절도 없이 쫄딱 망해 버린 데다가 아파서 골골대고 있었는데, 이미 수년 동안 역시나 우리 도시의 소시민이긴 해도 돈이 많은 주인들 집을 전전하면서 품팔이꾼 비슷하게 기식하고 있었다. 리자베타의 어머니는 오래전에 죽었다. 만년 환자나 다름없어 늘 악에 받쳐 있는 일리야는 리자베타가 집에 올 때면 그녀를 비인간적일 만큼 무자비하게 때렸다. 그래 봤자, 그녀는 하느님의 사람인 유로지브이처럼 온 도시를 돌면서 살았기 때문에 아예 집에 가는 일도 드물었다.
그런데 일리야의 주인들이나 일리야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도시의 동정심 많은 사람들 대부분, 즉 주로 상인과 여자 상인 대다수도 수차례에 걸쳐 삼베 윗도리 한 장만 걸치고 다니는 리자베타에게 좀 더 점잖은 옷을 입혀 보려고 시도했고 겨울이 다가오면 언제나 털외투도 입히고 발에는 장화도 신기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주로 성당의 현관 같은 곳에서 자기에게 희사한 모든 것을 숄이든, 치마든, 털외투든, 장화든 죄다 벗어 그 자리에 남겨 둔 채 이전과 마찬가지로 삼베 윗도리 하나만 달랑 걸치고 맨발로 떠나 버리곤 했다.
마침내 그의 아버지가 죽었고, 이렇게 고아가 됨으로써 그녀는 도시의 신앙심 깊은 모든 인물들에게 더욱더 귀여움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교회에 가는 일은 드물었고, 잠은 교회의 현관이나 아무 울타리나 넘어가서 어디 텃밭 같은 곳에서 자곤 했다. 그녀는 말이라곤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고 그저 드물게나마 그저 뭐라고 혀를 움직이면서 소처럼 음매 할 뿐이었으니, 여기에 오만하고 자시고 할 것이 어디 있는가.
자, 그러던 어느 날(이건 꽤 오래전의 일이었다.)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어느 따뜻한 9월의 밤, 우리의 통념으론 이미 극히 늦은 시각에 술에 취해 흥청망청 놀던 우리네 신사 양반들 무리가, 이 대여섯 명의 대단한 똘마니들이 클럽에서 나와 '뒷골목'을 통해 각자 집으로 돌아가던 참이었다. 우리 일당은 울타리 곁, 쐐기풀과 우엉 속에서 리자베타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양반들은 그녀를 내다보며 그 자리에 멈춰 서서는 껄껄 웃으며 차마 입에 담기도 뭣한 온갖 음담패설을 지껄여 대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양반 도련님의 머릿속에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해괴망측한 질문이 떠올랐다. '누구라도 좋으니 이런 짐승을 여자로 다룰 사람이 어디 없나, 자, 지금 당장이라도 말이다.' 등등. 그런데 이 무리 속에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끼여 있었으니, 그는 한순간에 앞으로 튀어나와 여자로 다룰 수 있다, 심지어 특별한 종류의 짜릿한 뭔가도 느낄 수 있다 등등의 결론을 내놓았다.
무리는 물론 이 뜻밖의 견해를 두고 웃음을 터뜨렸고 결국에는 다들 제 갈 길로 갔다. 훗날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맹세코 그때 자기도 모든 일행과 함께 떠났노라고 주장했는데, 대여섯 달 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대단히 격분하면서 리자베타가 임신한 채로 돌아다닌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으며 도대체 누가 이런 몹쓸 죄를 지은 것인가, 어떤 몹쓸 놈의 소행인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여 찾아보기도 했다. 바로 이 순간 갑자기 전 도시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으니, 이 몹쓸 놈은 바로 이 표도르 파블로비치라는 것이었다.
물론 당사자는 이것에 가타부타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장사꾼 아줌마나 소시민 따위에게 대꾸를 할 필요는 없다는 투였다. 바로 그때 그리고리가 나서서 있는 힘껏 정력적으로 주인 나리를 편들었고, 그를 위해 욕설과 논쟁도 서슴지 않으면서 많은 이들의 확신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그는 "저 여자는 원래 천했어, 자기 잘못이야."라고 확고한 어조로 말하면서 그 몹쓸 놈은 다름 아닌 '나사못 카르프'(이건 당시 도시에 널리 알려져 있던 어느 무서운 죄수의 별명으로 그는 그 무렵 탈옥하여 우리 도시에서 몰래 살고 있었다.)라고 했다.
어쨌거나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온갖 소문이 돌았음에도 가엾은 유로지브이에 대한 동정은 식을 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들 그녀를 더욱더 보호하고 지켜 주게 되었다. 콘드라치예바라는 어느 부유한 상인의 미망인은 출산 때까지 리자베타가 밖에 나돌아 다니지 않도록 4월 말부터 리자베타를 자기 집에 데려다 놓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리자베타는 출산 예정일 직전의 저녁에 갑자기 콘드라치예바의 집을 몰래 빠져나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정원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리는 마침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던 소시민인 산파 할머니를 부르러 뛰어갔다. 아이의 목숨은 건졌지만 리자베타는 동이 틀 무렵에 죽었다. 그리고리는 갓난애를 받아 집으로 데려온 뒤 아내를 앉혀 놓고 아이를 그녀의 허벅지 위에, 바로 그녀의 가슴 가까이에 올려놓았다. "고아는 하느님의 아이라서 누구에게나 자식이 되는 법인데, 마침 당신과 나한테 주어진 거야. 우리의 죽은 아들 녀석이 이 아이를 보냈어, 잘 키워 보도록 해, 앞으로는 울지도 말고." 그리하여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는 아이를 맡아 길렀다. 세례도 받고 파벨이라는 이름도 생겼지만, 부칭은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들 저절로 표도로비치라고 부르게 되었다.
훗날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아이의 어머니 리자베타 스메르쟈쉬아의 별명을 따서 그를 스메르코프라고 불렀다. 바로 이 스메르쟈코프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두 번째 하인이 되었으며 우리 이야기가 시작될 무렵엔 그리고리 노인, 마르파 노파와 함께 곁채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요리 일을 맡고 있었다. 스메르쟈코프에 관해서는 앞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얘기할 기회가 생기길 바라면서 나의 이야기로 넘어가기로 한다.
알료샤는 아버지가 수도원을 떠나면서 마차에서 자기에게 큰 소리로 외쳤던 명령을 듣고서 몹시 의아해하며 한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그는 무척 불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수도원장의 부엌으로 가서 그의 아버지가 위에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아보았다. 그러고는 어쨌든 시내로 가는 길에 그를 괴롭혀 온 문제가 어떻게든 풀리길 바라면서 어서 빨리 길을 나섰다.
이 순간 그의 내부에서는 다소 다른, 아니 완전히 다른 종류의 병이, 뭐라고 딱히 규정지을 수 없기에 더욱더 고통스러운 병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니, 이것은 아까 호흘라코바 부인을 통해 그에게 쪽지까지 보내서 무슨 일이 있으니 자기에게 꼭 와 달라고 그토록 집요하게 애원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이 여인으로 인한 병이었다. 이러한 요구, 그리고 반드시 가 봐야 된다는 불가피성은 그의 마음속에 어떤 고통스러운 감정을 안겨 주었다.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그는 마침내 최종적으로 결심을 굳혔다. 서둘러 몸에 익은 성호를 긋고는 곧바로 무엇 때문인지 미소를 지은 뒤 예의 그 무서운 부인의 집으로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집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볼사야 거리로 나가서 그다음에 광장을 건너고 하면 상당히 먼 거리가 될 법했다. 이런 모든 생각을 정리한 뒤 그는 뒷길로 질러감으로써 거리를 단축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도시의 이 모든 지름길들을 제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어느 한 지점에서 아버지의 집과 아주 가깝다 못해 바로 아버지의 집 정원과 맞붙은, 네 개의 창문이 난 낡고 기울어진 어느 작은 집의 정원 곁을 지나가게 되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이런 데서 만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과 맞부딪친 것이다. 울타리 너머 이웃집 정원에서 뭔가에 발을 딛고서 가슴팍을 쑥 내민 채로 서서 온갖 손짓에 온갖 시늉을 해 가면서 있는 힘껏 그를 부르고 있던 사람은 그의 형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였는데, 누가 들을까 봐서 소리 내어 말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듯한 눈치였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반가워하면서 서둘러 그에게 속삭였다. “이리로 넘어와라! 어서! 아, 네가 오다니, 얼마나 멋진 일이냐. 막 네 생각을 했거든…….”
알료샤는 수도복을 걷어 올린 뒤, 맨발로 도시를 뛰어다니는 꼬마들처럼 민첩하게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손님을 집 건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정원의 모퉁이로 데려갔다. 거기서는 오래된 초록색 정자 같은 것이 나타났는데, 앙상한 골조만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비 정도는 피할 수 있었다. 정자 안에는 초록색 목조 식탁이 땅바닥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 주위로는 아직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마찬가지로 초록색인 의자들이 빙 놓여 있었다.
알료샤는 형이 환희에 들떠 있다는 것을 당장 알아차리긴 했지만, 정자 안으로 들어서 보니 탁자 위에 코냑 반 병과 술잔도 놓여 있었다.
"앉아라. 알료쉬카, 내 너를 붙잡고 너를 으스러질 때까지 이 가슴에 꽉 껴안고 싶구나, 왜냐면 세상을 통틀어서…… 정말로, 정─말─로…….(새겨들어라! 새겨들어!) 오직 너 하나만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야!”
이 마지막 문장을 말할 때 그는 거의 미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흥분해 있었다.
“너 하나밖에, 아니, 하나가 더 있군, 난 저 ‘야비한 년’한테 완전히 반해서 그 길로 쫄딱 망해 버렸거든. 하지만 반한다는 것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아. 증오하면서도 반할 수는 있으니까. 기억해 둬! 지금, 즐거울 동안에 말하마! 자 여기 식탁 앞에 앉으렴, 나는 네 곁에 앉아서 너를 비스듬히 바라보며 모든 것을 이야기하마. 너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고, 나는 계속 말을 할 거야, 드디어 때가 됐거든."
"그런데 어딜 가던 참이냐?”
“아버지한테 가던 길인데, 우선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한테 들를 참이었어.”
“그 여자와 아버지라니! 우아! 일이 척척 들어맞는구나! 정말로 내 무엇을 위해 너를 불렀고 무엇을 위해 원했으며, 또 무엇을 위해 내 영혼의 구석구석, 심지어 갈빗대 하나하나까지 너를 애타게 갈망하고 기다렸던가? 바로 내 이름으로 너를 아버지한테, 그다음엔 그녀, 즉 카체리나 이바노브나한테 보내기 위해서, 이로써 그녀와도, 아버지와도 결판을 짓기 위해서였단다.
“그녀가 너를 부른 거지, 너한테 편지라도 썼거나 아니면 네가 그녀한테 갈 만한 뭐 다른 거라도 있는 거냐,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그녀에게 갈 리가 없잖니?”
“여기 쪽지가 있어.” 그러면서 알료샤는 그것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미챠는 재빨리 쪽지를 훑어보았다.
“그러고서 너는 뒷길로 들어섰구나! 오 하느님! 고맙습니다, 이 녀석을 뒷길로 향하게 해 주시어 때마침 저와 마주치게 해 주시다니, 이건 꼭 늙은 바보 어부의 손에 황금 물고기가 걸려들었다는 전래 동화 같구나."
“료샤.”하고 미챠가 다정하게 말했다. “너 하나만은 비웃지 않을 거야! 난 말이다…… 나의 고백을…… 실러의 「환희의 찬가(An die Freude)」로 시작하고 싶어. 그런데 나는 독어를 모르지만 안 디 프로이데라는 것만은 알고 있지. 내가 술주정을 하는 거라곤 생각하지 말아 줘. 전혀 취하지 않았거든. 코냑은 코냑이지만, 술에 취하려면 난 두 병은 마셔야 되거든."
영원한 기쁨이 하느님의
창조물의 영혼을 적셔 주고,
발효의 신비스러운 힘으로
생명의 잔을 불태우도다.
풀 한 포기마저 빛으로 인도하고,
혼돈을 태양들로 엮어
점성술사도 어찌할 수 없는 공간들 위에
흩뿌려 놓았도다.
자연의 복된 품속에서
숨 쉬는 모든 것이 기쁨을 마시노라.
모든 창조물들,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향해 이끌리도다.
불행에 빠진 우리에겐 벗들을,
포도즙을, 화관을 선사해 주시고,
벌레들에겐 ─ 정욕을……
하느님 앞에는 천사가 임할지어다.
* 실러의 시 「환희의 찬가」(1785)의 일절
"그나저나, 이제 시는 됐어! 내가 눈물을 다 흘렸군 그래, 좀 울게 해 주렴. 이게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바보짓이라고 해도 너만은 비웃지 않겠지. 나야말로, 동생아, 바로 이 벌레란다, 이건 특별히 나를 두고서 나온 말이야. 그리고 우리 카라마조프는 전부 이런 놈들이지, 천사인 너의 안에도 이 벌레가 살고 있어서 너의 핏속에서 폭풍우를 낳는 거야. 이건 폭풍우야, 정욕은 폭풍우거든, 아니, 폭풍우 이상이지!"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어떤 사람이, 그것도 고귀한 마음과 드높은 이성을 가진 사람이 마돈나의 이상에서 시작하여 소돔의 이상으로 끝을 맺는다는 거야. 인간이란 넓어, 너무도 넓어, 나는 차라리 축소시켰으면 싶어. 젠장, 도대체 뭐가 뭔지 알게 뭐람, 정말! 이성에는 치욕으로 여겨지는 것이 마음에는 완전히 아름다움이니 말이다. 소돔에도 아름다움이 있을까? 믿을 수 있겠니,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바로 소돔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그나저나, 들어 보렴,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니까."
“나는 거기서 좀 놀긴 놀았어. 아까 아버지는 내가 처녀들을 꼬드기기 위해 몇 천 루블을 썼다고 말했지. 하지만 이건 돼지 같은 망상이야,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어, 설사 뭔가가 있었다 할지라도 ‘그 짓’ 때문에 돈이 필요했던 건 아니야. 나한테 돈이란 그저 액세서리고 영혼의 열기이고 소품일 뿐이거든. 바로 이 순간 나의 여자가 어떤 귀부인이라면, 내일은 거리의 여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지."
"우리 영감은 내가 순결한 처자들을 꼬드겼느니 어쨌느니 거짓부렁을 늘어놓았지만 사실 나의 비극 속에 그런 일이 있긴 했어, 비록 딱 한 번뿐이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우리 영감은 밑도 끝도 없는 헛소리를 하며 나를 욕했지만 내가 이런 장난을 친 줄은 모르고 있어. 아무한테도 이야기한 적이 결코 없으니까 말이지, 지금 너한테 처음 이야기하는 거야, 물론 이반은 예외야, 이반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너보다도 먼저, 오래전부터 알고 있지. 하지만 이반은 무덤이잖니.”
"나는 그쪽 부대 상비군에서 소위보로 복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무슨 유형수처럼 감시를 받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어. 그런데도 도시 사람들은 나를 너무도 잘 대해 주었지. 돈을 많이 뿌려 대니까 다들 내가 부자라고 믿었고 사실 나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이미 노인이나 다름없던 나의 중령이 느닷없이 나를 싫어하게 된 거야. 걸핏하면 나한테 트집을 잡았어. 하지만 나한테도 든든한 오른팔이 있었고 더욱이 도시 전체가 내 편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트집을 잡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어. 하긴 나도 일부러 응당 요구되는 존경을 표하지 않았으니 잘못하긴 했지. 오만하게 굴었으니까 말이야.
이 늙은 옹고집쟁이는 손님 접대를 좋아하는 아주 선량하고 썩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두 번이나 상처를 했지. 그중 첫 부인은 참 소박한 부류였는데 역시나 소박한 딸을 그에게 남겨 주었어. 내가 있었을 때 그녀는 벌써 스물네 살 정도의 처녀가 되어 아버지, 죽은 어머니의 여동생, 즉 이모와 함께 살고 있었지. 이모는 말이 없고 소박했지만 조카딸, 그러니까 중령의 큰딸은 활달하고 소박했어. 아가피야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가씨보다 더 매력적인 성격을 지닌 여자를 결코 본 적이 없을 정도야, 아가피야 이바노브나였지,
하지만 중령은 말이야, 완전 딴판이었다니까! 중령은 우리 지역을 통틀어 제일가는 인물 중 하나였어. 발이 넓어서 도시 전체를 향해 문을 열어 놓았고 저녁 만찬이다, 무도회다, 정신이 없었지. 내가 도착하여 부대에 배속됐을 때는 조만간 수도에서 중령의 둘째 딸이 우리 도시로 올 거라는 소문이 온 도시에 자자했는데, 미인 치고도 정말 빼어난 미인으로 지금 막 수도의 한 귀족 학교를 마쳤다더군. 이 둘째 딸이 바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이고 고인이 된 중령의 둘째 아내 소생이지.
그런데 여대생이 도착하자(아주 온 건 아니고 잠시 들른 거였는데) 우리 도시가 통째로 새로 태어난 듯했지. 내가 그녀에게 접근한 건 어떤 저녁 모임에서였는데, 내가 말을 걸자 그쪽에선 보는 둥 마는 둥 경멸스럽다는 듯 입술을 꼭 다물기에 내 생각했지, 두고 봐라,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 그 당시 나는 대부분의 일에 있어서 아주 끔찍한 폭탄이나 다름없었고 나 자신이 그걸 절감하고 있었어. 넌 내가 청혼을 하고 싶어 했다고 생각하니? 절대로 아니야, 그저 나같이 대단한 놈은 안중에도 없는 그녀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바로 이 무렵 아버지가 때마침 나한테 6000루블을 보내 주었는데, 내가 아버지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테니 '완전히 청산'하자며 모든 것에 대한 정식 포기 각서를 써 보낸 이후의 일이었어. 그리고 우연찮게 갑자기 한 친구가 보내온 편지 속에서 바로 우리 중령이 위쪽의 미움을 사서 부정 혐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바로 그때 내가 첫 번째 장난질을 친 거야. 언제나 우정을 유지해 온 아가피야 이바노브나를 만나서 말했지. '아니, 당신 아버님께는 공금 4500루블이 없잖습니까.' '무슨 소리예요,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녀는 끔찍할 정도로 경악하더군.
'이런 쪽으론 저는 무덤이죠, 그저 저는 이 문제에 대해 역시나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한마디 덧붙이고 싶을 뿐입니다. 즉, 아버님께 4500을 내놓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때 그 돈이 없는 것이 밝혀지면, 바로 재판에 회부되고 그다음엔 늘그막에 일개 사병 노릇을 해야 될 텐데, 차라리 그럴 바엔 부인의 여대생을 저한테 몰래 보내시지요, 마침 저는 돈을 송금받았거든요, 그 여대생에게 4000루블을 거저 주되, 비밀은 맹세코 꼭 지키겠습니다.'
'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이 야비한 인간!(그녀는 정말 이렇게 말했어.) 정말 사악하고 야비한 인간이군요! 감히 어떻게 그런 소리를!' 그녀는 무서울 만큼 성이 난 상태로 나갔고, 나는 그녀의 뒤에다 비밀은 맹세코 꼭 지킬 거라고 다시 한번 외쳤어.
그런데 갑자기 신임 소령이 부대를 인수하러 온 거야. 인수인계가 진행됐지. 늙은 중령은 갑자기 병이 나서 운신도 못하고 이틀 동안 꼬박 집에 틀어 박혀서는 공금을 내놓지 않는 거야. 중령이 공금을 가장 믿을 만하다 싶은 어떤 사람, 즉 우리 도시의 상인이자 늙은 홀아비인 금 안경을 낀 석부리 트리포노프에게 빌려주었는데, 이번만은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았다는 거야. 중령은 그에게 달려들었지. 하지만 '나는 나리로부터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습니다, 더욱이 그런 걸 받을 수도 없잖습니까.'라는 게 그의 대답이었어.
뭐, 그래서 우리 중령은 집에 틀어박혀 머리에 수건을 칭칭 감고 관자놀 이에 얼음 세 덩어리를 얹고 있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갑자기 전령이 장부와 '두 시간 내로 즉각, 곧바로 공금을 반납할 것'이라는 명령을 들고 나타난 거야. 그는 서명했고, 그러고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복을 입으러 간다고 말하고는 자기 침실로 달려가 이연발 엽총으로 자살을 하려다가 아가피야가 말려 실패했고…….
그때 난 집에 있었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내 앞에,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서 있었던 거야.
'언니가 말하길, 당신이 저에게 4500루블을 줄 거라더군요, 제가 돈을 받으러…… 직접 당신을 찾아가면요. 이렇게 제가 왔으니…… 돈을 주세요……!' 목소리는 탁 끊겼고 입술 끝과 입술 언저리의 선들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하더군. 처음 든 생각은 극히 카라마조프적인 것이었어. 하지만 그 순간 그녀가 아름다웠던 건 그녀는 고결한 데 반해 나는 야비한 놈이고, 그녀는 너무도 너그러운 마음에서 아버지를 위해 희생을 하겠노라고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것인 데 반해 나는 빈대에 불과하다는 그것 때문이었지.
자, 그런데 이 빈대같이 야비한 놈인 나한테 그녀의 모든 것이 영혼이고 몸이고 할 것도 없이 송두리째 달려 있는 거야. 완전히 독 안에 든 쥐였지. 하지만 나는 곧 몸을 돌려서 탁자로 다가가 서랍을 열고 (나의 프랑스어 사전 속에 들어 있던) 5퍼센트의 이자가 딸린 5000루블 짜리 무기명 수표를 꺼냈지. 그다음은 말없이 그녀에게 그걸 보여 주고 접어서 내준 뒤 내 손으로 직접 그녀에게 현관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었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그녀에게 허리를 숙여 아주 정중하고 감동 어린 인사를 했지, 정말이니 믿어 줘!
그녀는 온몸을 부르르 떨고 일 초간 유심히 쳐다보더니, 완전히, 그러니까 뭐 백지장처럼 새하얘져선 역시나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무슨 격정에 사로잡혀서도 아니고 그저 부드럽고 조용하게 온몸을 깊이 숙여 바로 내 발밑에 절을 하는 거야, 그것도 여대생들이 하는 방식이 아니라 순수 러시아식으로 이마가 땅에 닿도록 말이야!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서 뛰어나가더군. 바로 이게 나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사이에 있었던 '사건'의 전부야. 이제 이 일을 아는 사람은 동생 이반과 너, 단둘뿐이야!"
"이제야"라며 알료샤가 말했다. "이 일의 전반부를 알게 됐네."
"전반부는 드라마고, 저곳에서 일어났던 거야. 후반부는 비극이고, 이건 이곳에서 일어날 거다."
"후반부라면 나는 지금까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알료샤가 말했다.
"아니, 그럼 나는? 나라고 뭘 안다는 거냐?"
"잠깐만, 드미트리,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갈 게 있어. 형은 약혼했잖아, 지금도 약혼한 상태인 거 맞지?"
"약혼은 지금이 아니라 그 일이 있고 겨우 석 달이 지났을 때 했어. 그때 그다음 날, 나는 나 자신에게 사건은 완전히 끝났으니 속편은 없을 거라고 말했지. 청혼을 하러 간다는 것은 저열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녀 쪽에서도 이후 주를 우리 도시에서 살았지만 자기 입장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이 없었어.
그리고 중령은 무사히 공금을 내놓았는데, 그의 수중에 돈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리라곤 아무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놀라고 말았지. 돈을 내놓긴 했지만 곧바로 병이 나서 드러눕더니 삼 주쯤 앓다가 갑자기 뇌연화증에 걸려 닷새 만에 사망했어.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언니와 이모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열흘쯤 뒤에 모스크바로 떠났지. 떠나는 당일 아주 조그맣고 푸르스름한 꾸러미를 하나 받았는데, 레이스처럼 얇은 종이에는 연필로 '편지 보낼 테니, 기다려 주세요. K.'라는 단 한 줄의 말이 쓰여 있더군. 이게 다였어.
이제부터는 한두 마디로 설명해 줄게. 모스크바에서 그들의 사정은 번개 같은 속도로, 또 아라비아의 전래 동화처럼 뜻밖의 방식으로 바뀌어 버렸어. 그녀의 중요한 친척인 이 장군 부인이 갑자기 단번에 가장 가까운 두 상속녀, 즉 아주 가까운 질녀들을 천연두로 잃게 된 거야. 충격을 받은 노파는 카챠가 마치 친딸이라도, 구원의 별이라도 되는 양 기뻐하면서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위해 유서를 쓰고 곧바로 카챠의 손에다가 8만을 쥐여 주면서, 자, 이건 너의 지참금이니 이 돈으로 뭐든 하고 싶은 건 다 해라 하는 식이었지.
여하튼 그렇게 해서 그때 나는 갑자기 4500루블을 송금받게 됐어. 사흘이 지나서야 약속한 편지도 도착했어. 보여 줄까? 꼭 읽어 봐. 약혼을 하자고 그녀가 먼저 제안하는데 '미칠 듯이 사랑해요, 설사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으니, 부디 제 남편이 되어 주세요. 놀라진 마세요,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 에게 부담이 되기는커녕 당신의 가구가 될 것이며 당신이 밟고 다닐 양탄자가 되겠어요…….
그때 나는 당장 답장을 썼어. (내가 직접 모스크바로 갈 순 도저히 없었거든.) 눈물을 흘리면서 썼는데, 딱 한 가지만은 영원히 부끄러워 죽겠어. 그녀는 이제 지참금을 가진 부자이지만 나는 그저 가난뱅이 난봉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언급을 한 거야. 그와 동시에 당장 모스크바에 있는 이반에게도 편지를 써서 그에게 가능한 한 모든 것을 편지로 설명했는데, 여섯 장이나 되는 편지였지, 그리고 이반을 그녀에게 보냈어. 아니, 왜,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 뭐 그래, 이반은 그녀에게 반해 버렸어, 지금도 사랑에 빠져 있지.
나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어, 너희들 세상 사람들의 잣대로 보면 내가 바보짓을 한 거야, 하지만 어쩌면 바로 이 바보짓 하나만이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을 거야! 아! 아니, 너도 그녀가 그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또 얼마나 존경하는지 빤히 보이지 않니? 아니, 우리 두 사람을 비교해 보면 그녀가 어떻게 나 같은 놈을 사랑할 수 있겠어, 더욱이 여기서 그런 일이 일어난 마당에?"
"나는 그녀가 사랑하는 건 이반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 형과 같은 사람이라고 확신해."
"그녀는 자신의 덕행을 사랑하는 거야, 내가 아니라."드미트리 표도로비 치의 입에서 갑자기 자기도 모르게, 하지만 거의 악의에 차서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고선 웃음을 터뜨렸지만, 일 초 뒤 그의 눈이 번득이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더니 그는 주먹으로 힘껏 탁자를 내리쳤다.
"형, 잠깐만." 하고 알료샤가 굉장히 흥분하면서 다시 말을 가로막았다.
"어쨌거나 형은 한 가지 일만은 아직도 나한테 완전히 설명해 주지 않았어. 형은 어쨌거나 약혼한 거잖아? 그럼 어떻게 약혼녀인 그녀가 원하지 않는데 형이 일방적으로 파혼을 원할 수 있지?"
"그래, 나는 공식적으로 축복을 받으며 약혼을 했지, 내가 모스크바에 도 착한 뒤 곧 성상 앞에서 화려한 들러리들을 동원하여 최상의 형태로 말이야. 모스크바에서 나는 카챠와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그녀에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부 점잖고 정확하고 솔직하게 그려 주었어. 그녀는 잠자코 경청하더군."
"그녀는 그때 나에게 품행을 고치겠다는 어마어마한 약속을 하도록 강요했거든.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어. 그러고 나서 지금은 나는 너를 불러서 이리로 끌고 왔으며 그것은 다시금 바로 오늘 너를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에게 보내기 위해서이며 그리고……"
"또 뭐?"
"앞으로는 절대 그녀에게 가지 않을 테니까 '머리를 숙여 인사를 전하더라'고 해 주렴."
"그럼, 형은 어디 갈 건데?"
"뒷골목이지."
"그건 그루셴카를 말하는 거구나!" 알료샤가 손뼉을 치면서 괴롭다는 듯 소리를 내질렀다."그럼, 라키친의 말이 진짜로 사실이었네? 나는 형이 그냥 그녀의 집을 '좀 드나들다가' 끝난 줄 알았어."
"약혼을 한 몸으로 좀 드나든다고? 아니, 그럴 수가 있겠어, 약혼녀가 버젓이 버티고 있고 사람들 눈이 있는데? 나도 나름대로 염치는 있는 놈이야. 그루셴카에게 가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약혼자도, 염치가 있는 놈도 아닌 거야, 이 점은 나도 잘 알고 있어.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냐? 나는, 얘야, 처음엔 그저 그녀를 두들겨 패려고 간 거야. 내가 알아낸 바론, 이 그루셴카라는 여자가 아버지의 대리인인 그 2등 대위로부터 내 명의로 된 어음을 전해 받았고 그걸로 소송을 걸어선 나를 항복시켜 끝장낼 속셈이었던 건데, 지금은 이걸 정확히 알게 됐지. 그놈들은 나한테 겁을 주려고 했던 거야. 그래서 난 그루셴카를 두들겨 패려고 출동했지. 그런데 그만 그녀 집에 눌러앉은 꼴이 됐지. 천둥 번개가 치면서 역병이 내렸고, 딱 감염되어 지금까지도 감염된 상태로 있는 거야,
그루카, 이 망할 년의 몸엔 기막힌 곡선이 하나 있는데, 그건 그녀의 발 하나에도 나타나 있고 심지어 왼쪽 발의 새끼발가락에도 그 기운이 어려 있는 거지. 나는 그걸 보고서 입을 맞추었지만, 그뿐이야, 맹세코! 그루셴카는 '내가 당신한테 시집을 가 줬으면 싶은가 봐, 빈털터리 주제에. 나를 때리지도 않고 내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 주겠다고 말해 봐, 그러면 시집을 가 줄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하더니 웃더라고!"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어쩐지 거의 분개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술 취한 사람처럼 떡 버티고 섰다. 그의 눈엔 갑자기 핏발이 섰다.
"그럼, 형은 정말로 그녀와 결혼하고 싶은 거야?"
"그녀가 원한다면 당장하고 원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있는 거지. 그녀의 집 마당에서 문지기 노릇을 할 테다. 너는…… 너는, 알료샤"
그는 갑자기 알료샤 앞에 멈춰 서더니 그의 어깨를 거머쥐고 갑자기 힘껏 흔들기 시작했다.
"순결한 소년인 네가 알 턱이 있겠냐마는 이 모든 것이 미망,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미망이야, 바로 여기에 비극이 있으니 말이다! 알렉세이, 알아 둬라, 이제 나는 도둑놈이야! 그루셴카를 패 주러 가기 직전, 때마침 바로 그날 아침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당분간은 아무도 모르게 하려고 아주 비밀리에 나를 불러서는 현청 소재지에 가서 3000을 모스크바의 아가피야 이바노브나에게 송금해 달라고 나에게 부탁했어. 나는 그루셴카한테 갔고 그 돈으로 모크로예에 다녀온 거야. 그다음 나는 도시에 다녀온 척했지만 송금 영수증은 내놓지 않고, 돈을 부쳤으니 영수증을 가져오겠다고 말만 해 놓고서 지금까지도 안 갖다 줬어.
그러니까 오늘 네가 그녀에게 가서 '머리 숙여 인사를 전하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하면 그녀는 너한테 '돈은요?'라고 할 게 아니냐. 그러면 너는 이렇게 말하면 되는 거야. 즉 '형은 저열한 호색한에다가 감정을 제어할 줄 모르는 야비한 피조물입니다. 그때 당신의 돈을 부치지 않았고 죄다 써 버린 겁니다, 동물처럼 스스로를 억제할 줄 모르거든요.'라고."
"미챠, 형은 불행에 빠졌어, 정말로! 하지만, 모든 것이 형이 생각하는 그 정도는 아니니까 절망에 빠진 나머지 죽도록 자학하는 일은 하지 마, 그러지 말라고!"
"아니, 너는 내가 되갚을 3000루블을 구하지 못하면 권총 자살이라도 할 줄 아니? 지금은 그럴 힘도 없어,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루셴카한테 가련다……. 내 팔자야 어찌 되든 말든!"
"그럼, 그녀 집에서는?"
"그녀의 남편이 될 거야, 부부의 연을 맺는 거지, 만약 정부가 오면 다른 방으로 비켜 주고. 그녀의 친구들이 있으면 지저분한 신발도 닦아 주고 사모 바르도 끓여 주고 열심히 심부름도 해 주고……."
"그녀라고 모든 걸 다 양해해 주진 않을 거야." 미챠가 이를 드러내 보이며 히죽거렸다."이 일에는, 어떤 여자라도 양해해 줄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단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제일 좋을지 알고 있니?"
"뭔데?"
"그녀한테 3000을 갖다 주는 거야."
"내일이면 이미 늦어, 늦는다고. 그래서 너를 아버지한테 보낼 거야."
"하지만, 미챠, 아버지는 주지 않으실 거야."
"들어 보렴. 법률적으론 아버지는 나한테 빚진 게 전혀 없어. 내가 죄다 갖다 썼으니까, 나도 잘 알아. 하지만 도덕적으로라면 아버지는 나에게 빚이 있는 거야, 아버지는 어머니의 2만 8000으로 10만을 벌었지 않니. 아버지가 나한테 겨우 3000이라도 준다면, 내 영혼을 지옥에서 꺼내 주는 거고 이로써 아버지의 수많은 죄도 사해지는 거라니까! 아버지한테 가서 하느님께서 아버지한테 이런 기회를 주신 거라고 말하렴."
"안 줄 거라는 건 알고 있어, 너무도 잘 알고 있다니까. 지금은 특별히 더 그럴 거다. 그뿐이냐, 나는 다른 것도 하나 더 알고 있단다. 이제야, 오직 최근에 와서야, 어쩌면 어제야 비로소 아버지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그루셴카가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나한테 시집갈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이런 판에, 누구 좋으라고 아버지가 얼씨구나 나한테 돈까지 얹어 주겠니, 아버지 자신이 그녀 때문에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전부가 아니야, 내 너한테 더 놀라운 걸 알려 주마.
나는 아버지가 벌써 닷새 전에 3000루블을 꺼내서 100루블짜리 지폐로 바꾼 뒤 커다란 봉투에 넣어 다섯 개나 봉인을 찍고 붉은 새끼줄을 써서 열십자 모양으로 묶어 놨다는 걸 알고 있어. 돈 봉투 위에는 '나의 천사 그루셴카에게, 나를 찾아올 마음이 생긴다면.'이라고 쓰여 있어. 이건 아버지가 몰래 갈겨 놓은 건데, 아버지에게 돈이 있다는 건 하인 스메르쟈코프만 빼면 아무도 모르고 있어, 그렇게 아버지는 벌써 사흘 내지는 나흘째 그루셴카가 돈 봉투를 받으러 올 거라는 희망에 들떠 기다리고 있는 거야, 이런 상황이니, 알겠니? 내가 지금 왜 여기 몰래 앉아 있는지, 정확히 뭘 감시하고 있는지 말이야?"
"스메르쟈코프 한 사람만 알고 있는 거네?"
"그래, 그 녀석뿐이지. 그 여자가 영감을 찾아오면 그 녀석이 나한테 알려 줄 거야."
"그럼 형에게 돈 봉투 얘기를 해 준 것도 그 녀석인가?"
"응, 그 녀석이야. 엄청난 비밀이지. 심지어 이반도 돈이나 다른 것에 대해선 전혀 몰라. 그런데 영감은 이삼일 예정으로 이반을 체르마쉬냐에 보낼 거야. 8000루블에 숲의 벌목권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으니 이삼일 정도 네가 직접 좀 다녀와라.라고 설득하고 있거든. 이반이 없을 때 그루셴카가 왔으면 좋겠다 싶어서야."
"그러니까 아버지는 오늘도 그루셴카를 기다리는 거야?"
"아니, 오늘은 오지 않을 거야, 그럴 만한 징조가 있거든. 분명히 오지 않을 거야!" 미챠가 갑자기 소리쳤다. "스메르쟈코프도 이렇게 생각하더군. 아버지는 지금 이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어. 어서 가서, 알렉세이, 아버지한테 3000루블을 좀 부탁해 다오……. 알료샤, 나는 기적을 믿고 있단다, 가 봐!"
"그럼, 가겠어. 그런데 형은 여기서 기다릴 거야?"
"그럴 거다, 시간이 좀 걸릴 거라는 건 알고 있어, 가서 다짜고짜 그 말을 꺼낼 순 없잖니! 아버지는 지금 취해 있어.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기다릴 테지만, 다만 알아 둬, 자정이 되더라도 '돈이 있든 없든' 내가 원하는 것은 네가 오늘 꼭 카체리나 이바노브나한테 가서 '고개 숙여 인사를 전하라고 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야."
"미챠! 그런데 그루카가 갑자기 오늘 오면…….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이나 모레라도?"
"그루셴카? 망을 보다가 몰래 잠입해서 훼방을 놓는 거지……."
"그래도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그땐 영감을 죽이고 말 테다. 그런 걸 참을 리가 없잖니."
"형,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만 갈게, 미챠. 하느님께서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잘 보살펴 주리라고 믿어."
알료샤는 생각에 잠긴 채 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그가 가 보니 아버지는 정말로 아직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집 안엔 제대로 된 식당도 있었건만, 식탁은 평소대로 홀에 차려져 있었다. 이 홀은 집에서 가장 큰 방으로 어쩐지 고풍스러운 냄새를 풍기게끔 꾸며져 있었다. 아주 오래된 하얀색 가구에는 반쯤 비단이 들어간 낡은 붉은색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알료샤가 방으로 들어왔을 땐, 식사는 이미 끝이 나고 잼과 커피를 내놓은 상태였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식사 후에 코냑과 함께 단것을 먹는 걸 좋아했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그때 식탁 앞에 앉아 있었고 역시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하인들인 그리고리와 스메르쟈코프는 식탁 곁에 서 있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큰 소리로 껄껄 웃고 있었다. 알료샤는 현관에 있을 때부터 이전부터 그에게 낯익은 아버지의 웃음소리로 보건대 아버지가 지금은 그저 기분이 좀 들떠 있을 뿐이라고 이내 결론지었다.
"이런, 얘가 왔어, 얘가 왔구나!" 알료샤를 보자 갑자기 너무도 반가워하면서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외쳤다. "그나저나, 너 식사는 했느냐?"
"했어요." 알료샤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은 수도원장의 부엌에서 겨우 빵 한 조각을 먹고 크바스 한 잔을 마신 것이 전부였다. "여기 뜨거운 커피라면 기꺼이 마실 게요."
"요 예쁜 것! 장하다! 얘가 커피를 마시겠다는구나. 훌륭한 커피란다, 스메르쟈코프가 만들었거든. 커피와 만두라면 우리 스메르쟈코프가 예술가 수준이야, 생선 수프도 정말 일품이고. 언제 한번 생선 수프를 먹으러 와라, 미리 언질을 주고…… 그나저나 어 보자, 조금 전에 내가 너한테 오늘 당장 요와 베개를 싸 갖고 집으로 오라고 분부하지 지 않았더냐? 요는 가져왔느냐? 헤헤헤……!"
"아니요, 안 가져왔어요." 알료샤도 웃었다.
"그래도 깜짝 놀라긴 했을 테지, 조금 전엔 놀랐을 거야, 놀랐지? 아이고, 요 귀염둥이, 내가 어떻게 네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겠니. 들어 봐라, 이반, 나는 얘가 이렇게 사람 눈을 바라보면서 웃으면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구나, 이제 앉아라. 자, 이제 너는 신이 나겠구나, 바로 너의 단골 주제를 논할 참이거든. 실컷 웃겠구나. 우리의 '발라암의 당나귀'가 입을 열었는데, 녀석 참,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원!" 발라암의 당나귀는 하인 스메르쟈코프를 두고 한 말이었다.
아직 스물넷밖에 안 된 젊은이였지만 그는 끔찍할 정도로 사람을 싫어하고 말이 없었다. 미개인처럼 굴거나 뭘 부끄러워해서가 아니라, 절대 그런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오만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모든 사람을 경멸하는 듯했다.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와 그리고리 바실리예 비치가 그를 키워 주었지만, 정작 소년은 야생의 짐승처럼 한구석에서 세상을 노려 보며 그리고리의 표현대로 '은혜라곤 도통 모르는 놈'으로 자랐다.
그리고리는 그에게 글자를 가르쳤으며, 열두 살쯤 됐을 땐 성경 공부를 시키기 시작했다. 어느 날, 고작 첫 수업인가 두 번째 수업에서였는데 소년이 갑자기 피식 웃는 것이었다.
"주 하느님이 빛을 창조한 건 첫째 날이고 태양과 달과 별은 넷째 날에 창조했다면서요. 그럼, 첫째 날엔 어디서 빛이 비쳤던 거죠?" 그리고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소년의 시선에서는 뭔가 오만불손한 기색마저 엿보였다. 그리고리는 참을 수가 없어 "바로 여기서다!"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미친 듯 제자의 뺨을 때렸다.
그러고 나서 바로 일주일 뒤에 그에게 난생처음으로 간질 발작이 일어났으니, 그것은 이후 평생 동안 그를 떠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그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의사를 초대하여 치료도 받게 했지만 불치병으로 판명되었다. 결벽증이 있는 청년은 빵이든 고기든 모든 음식에 대해서 똑같은 짓을 했다. 음식 조각을 포크로 찍어 빛 쪽으로 가져간 뒤 꼭 현미 경을 관찰하듯 자세히 살펴보며 오랫동안 주저하다가 마침내 무슨 용단이라도 내린 듯 입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스메르코프의 새로운 자질에 대해서 듣고는 그 즉시 이놈은 요리사가 되겠다 싶어서 모스크바로 유학을 보냈다.
몇 년 동안 공부를 하고 돌아왔을 때, 그의 얼굴은 완전 딴판이 되어 있었다. 어쩐지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늙어 버렸고 심지어 전혀 나이에 맞지 않게 주름투성이가 되고 얼굴이 누레진 것이 영락없이 거세 종파 몰골이었다. 하지만 요리사로서는 아주 훌륭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그에게 일정한 급료를 주었는데, 이 급료를 스메르쟈코프는 거의 전부 옷과 포마드와 향수 등을 사는 데 썼다. 그런데도 여성에 관해서라면 남성만큼이나 경멸하는 것 같았으며, 여자들과 있을 때면 거의 자기에게 접근을 못하도록 깐깐하게 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그의 정직함에 대해선 뭘 가져가거나 훔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누가 뭐래도 철석같이 믿었다는 점이다. 한 번은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때 막 받은 무지개 지폐 석장을 자기 집 마당의 진흙탕에 떨어뜨렸다가 다음 날이 되어서야 알아챈 일이 있었다. 느닷없이 그의 탁자 위에 지폐 석 장이 이미 고스란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스메르쟈코프가 어제 주워서 진작 갖다 놓은 것이었다. "그래, 얘야, 내 너 같은 놈은 보질 못했어."
그런데 그는 이따금씩 집 안에서도, 심지어 마당이나 거리에서도 걸음을 멈추고 서서 생각에 잠긴 채 약 십 분씩이나 그렇게 서 있는 일이 있곤 했다. 관상학자라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본 뒤 여기에는 어떤 상념도, 어떤 생각도 없으며 그저 어떤 관조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을 법하다. 민중들 사이에는 이렇게 관조하는 자들이 상당수 있다. 분명히 바로 이런 관조자들 중 하나가 바로 스메르쟈코프이고, 또 분명히 그 역시 거의 목적도 아직 모르면서 자신의 인상들을 탐욕스럽게 축적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발라암의 당나귀가 갑자기 입을 연 것이다. 그 화제도 이상한 것이었다. 그리고리가 아침 녘에 상인 루키야노프의 상점에서 물건을 챙기다가 그에게서 어떤 러시아 병사 얘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은 어딘가 멀리 외국에서 아시아인들의 손아귀에 포로로 잡혀, 고통스럽고도 끈질긴 죽음의 공포와 더불어 기독교를 버리고 이슬람교로 개종하라는 강요를 받았으나 끝내 자신의 종교를 배반하지 않고 고통을 감내했을뿐더러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칭송하면서 자신의 살가죽이 벗겨지는 가운데 죽었다는 것이었고 - 이 대단한 위업에 관한 뉴스는 바로 그날 받은 신문에 마침 실려 있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코냑을 홀짝홀짝 마시며 뉴스를 전해 듣자, 그런 병사 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성인의 반열에 올려야 하고 그의 살가죽은 어디 수도원에 보내야 한다면서 "그러면 사람들이 개처럼 몰려들 테고, 돈깨나 들어올 거다."라고 말했다. 그리고리는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조금이라도 감동하기는커녕 예의 그 습성 대로 신성 모독적인 말을 내뱉기 시작하자 인상을 썼다.
그때 갑자기 문 곁에 서 있던 스메르쟈코프가 피식 웃는 것이었다. 스메르쟈코프는 전에도 몹시 자주 식탁 곁에 서 있는 것이 허용되곤 했는데, 그러니까 식사가 끝날 무렵에 말이다.
"아니, 왜 그러느냐?" 이것이 물론 그리고리를 겨냥한 것임을 알아챈 뒤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물었다.
"지금 그 일 말입죠."라고 스메르쟈코프가 갑자기 큰 소리로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설령 이 칭송할만한 병사의 위업이 아주 위대하다고 할지라도, 제 소견으론, 이런 경우 대략 그리스도의 이름과 자신의 세례를 거부했다고 해도 죄가 될 건 없을 듯한데요, 그렇게 자기 목숨을 구함으로써 앞으로 살아가면서 좋은 일을 많이 하여 자신의 비겁함을 보상하면 되니까요."
바로 이 순간, 알료가 들어왔던 것이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우리가 보았듯 너무도 반가워했다.
"네 주제로구나, 너의 단골 주제!" 그는 알료샤도 동참할 수 있게끔 자리에 앉히면서 기쁘게 키득거렸다.
"야비한 놈, 원래 저런 놈이라니까요!" 갑자기 그리고리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분을 감추지 못하고 스메르쟈코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욕은 그만하고 직접 생각을 좀 해 보세요, 그 리고리 바실리예비치. 제가 박해자들에게 아니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나의 참된 하느님을 저주한다.'라고 말하면, 그 즉시 저는 하느님의 가장 높은 심판에 의해 즉각적이고 특수하게 파문의 저주를 받게 되어 완전히 이교도로서 성스러운 교회로부터 파문당하게 되는 것이니, 그러니까 바로 그 순간, 즉 말을 내뱉은 순간도 아니고 말을 내뱉기로 생각한 그 순간, 4분의 1초도 채 지나지 않아서 파문당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바로 그 드높은 순간에 저는 이미 이교도나 다름없이 되고 저의 세례는 저로부터 지워지므로 그 어떤 의무도 지지 않게 되는 것입죠. 이것만은 사실이 아닙니까요?
제가 이미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그들한테 '네놈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박해자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닙죠, 왜냐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심지어 제가 박해자들에게 무슨 말을 내뱉기 이전에 이미 저는 바로 하느님에 의해서 기독교에서 내쳐졌으니까요. 만약 제가 이미 기독교인 자격을 박탈당했다면, 제가 그리스도를 부정했다고 해서 무슨 수로, 무슨 근거로 저세상에서 저를 기독교인 대하듯 문책할 겁니까?
제아무리 하늘나라라도 누가 저주받은 타타르인을 두고 기독교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책을 하겠습니까,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황소 한 마리에게서 두 장의 가죽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누가 그런 걸로 그를 벌하겠습니까? 제 생각으론 어떻든 그가 저주받은 부모로부터 저주받은 채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죄라고 판단하여 가장 하찮은 벌을(벌을 전혀 안 내릴 수는 없을 테니까) 내릴 듯하군요."
"성경에도 쓰여 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아주 작은 깨알만 한 믿음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래서 이 산을 향해 바다로 가라고 말한다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렇게 갈 거라고. 자,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저는 믿음이 없는 자이고 당신은 쉴 새 없이 저를 욕할 만큼 신앙이 깊으니, 어디 한번 직접 저 산을 향해 바다는 고사하고라도(여기서 바다까지는 머니까요.) 저기 우리 동네의 악취 나는 개천에라도, 바로 저기 우리 집 정원 뒤로 흐르는 개천에라도 한번 가 보라고 말씀해 보시죠, 바로 그 순간, 당신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제자리에 얌전히, 고스란히 있는 걸 보실 테죠. 하지만 이거야말로,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당신도 참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믿음을 건수로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해 댄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한번 의심을 품었다가 나중에 참회의 눈물을 흘릴 때 용서를 받을 것이라 믿는 것입니다요."
"네놈 말은 금화 한 닢을 받을 가치가 있구나, 당나귀 같은 놈, 하지만 어쨌거나 네 말은 죄다 거짓부렁이다. 바보야, 잘 알아 둬, 여기서 우리 모두는 너무 경솔하기 때문에 신앙이 없는 것뿐이야, 우리는 통 시간이 없거든. 첫째, 일들에 치여 죽을 지경이고, 둘째, 하느님이 시간을 너무 적게 주었으니, 고작해야 하루에 이십사 시간을 점지해 주었으니, 참회는커녕 잠을 푹 잘 시간도 없는 거야. 그런데도 네놈은 네놈의 믿음이건 뭐건 더 이상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자신의 믿음을 보여 주기만 하면 될 때에 박해자들 앞에서 믿음을 부정하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이것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때?”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잘 좀 생각해 보시죠, 그게 일리가 있다면 더욱더 위안이 되는 겁니다. 만약 그때 제가 진정으로 진리를 믿었다면, 그러면서도 그 믿음에 따르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 더러운 마호메트의 믿음으로 전향했다면, 그건 정말로 죄가 되었을 것입니다요. 하지만, 바로 그 순간에 제가 이 모든 것을 다 시험해 보고 이젠 일부러 저 산을 향해, 이 박해자들을 눌러 죽여라 하고 소리쳤는데도 정작 그 산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면, 말씀해 보시죠, 그런 상황에서 제가 도대체 어떻게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요, 그것도 죽음과 같이 거대한 공포가 밀어닥친 그 끔찍한 시간에?
이것이 아니더라도, 제가 하늘의 왕국에 완전히 도달하진 못하리라는 건 잘 알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하물며 더 이상 어떤 이득도 없이 제 살가죽을 벗기도록 내버려 두겠습니까요? 제 말이나 외침에 따라 저 산이 움직일 리는 만무하잖습니까. 아니,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어떤 이득도, 보상도 안 보이는 판에 최소한 제 살가죽만이라도 소중히 간직해 두려고 하는데, 이것이 무슨 특별한 죄란 말입니까요? 따라서, 저는 주님의 자비를 전적으로 믿으면서 완전히 용서받으리라는 희망을 키우는 것입죠……."
논쟁은 끝났지만 이상스럽게도, 그토록 즐거워하던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끝에 가서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을 찌푸리면서 코냑을 홀짝거렸는데, 이 잔은 이미 취할 수준이었다.
"썩 꺼져들 버려, 예수회 놈들 같으니, 썩." 그가 하인들에게 소리쳤다.
"스메르쟈코프, 저리로 꺼져. 오늘 약속한 금화 한 닢은 보내 줄 테지만, 썩 꺼져 버려. 그리고리, 자네는 울지 말고, 마르파에게 가 보게, 마르파가 위로도 해 주고 잠자리도 봐줄 거야."
"스메르쟈코프가 요즘 식사 때마다 여기에 오는 건 바로 너한테 대단한 흥미가 있기 때문인데, 너는 대체 뭐로 저놈을 저렇게 살살 녹인 거냐?" 그가 이반 표도로비치에게 덧붙였다.
"나를 존경하고 싶어졌나 보죠. 저 놈은 머슴에다가 쌍놈입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선두 주자가 되겠죠."
"선두 주자라니?"
"봉화가 타오를 때겠지만, 그것도 제대로 타지 못할 수도 있어요. 민중들은 지금으로선 저런 부엌데기 같은 놈들의 말을 그다지 귀담아듣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가서 저놈이 혼자 무슨 꿍꿍이속을 보이면, 이런 러시아 농사꾼은 흔히 말하는 대로 두들겨 패야 돼. 우리나라 농사꾼은 사기꾼이라서 동정할 가치도 없어, 나는 현명한 사람들 편이다. 우리는 대단히 머리를 써서 농사꾼들을 두들겨 패지 못하도록 했지만, 그자들 자신은 여전히 스스로를 두들겨 패고 있어. 아주 잘하는 일이지. 그나저나 러시아는 돼지우리야. 얘야, 내가 러시아를 얼마나 증오하는지 네가 알 기만한다면. 이건 온통 돼지우리야.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아느냐? 나는 기똥찬 재담을 좋아한단다."
"또 한 잔 드셨군요. 이제 그만 됐어요, 아버지." 이반 표도로비치가 말했다.
"그런데 이반, 말해 봐라. 하느님은 있느냐, 없느냐? 잠깐만. 확실하게 말해 봐라, 진지하게 말해!"
"아니요, 신은 없습니다."
"알료쉬카, 신은 있느냐?"
"신은 있습니다."
"이반, 그렇다면, 불멸은 어떠냐, 저기 뭐든, 뭐 하다 못해 조그만 거, 코딱지만 한 거라도 말이다?"
"불멸도 없어요. 아예 없어요"
"알료쉬카, 신도, 불멸은 있느냐?"
"있어요. 신도, 불멸도요. 신 속에 불멸이 있습니다."
"음. 아무래도 이반 쪽이 더 맞는 것 같아. 맙소사, 인간이 얼마나 많은 믿음을 바쳐 왔고 또 얼마나 많은 힘을 죄다 쓸데없이 이 몽상에 쏟아부었는지, 이게 벌써 수 천 년이 아닌가 말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도대체 누가 감히 이렇게 인간을 놀려 대는 걸까? 이반? 마지막으로 똑바로 말해 다오. 신은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정말 마지막이다!"
"나도 마지막이에요, 없다니까요."
"그럼, 누가 도대체 인간들을 갖고 노는 거냐, 이반?"
"악마겠지요." 이반 표도로비치가 씩 웃었다.
"그럼, 악마는 있는 거냐?"
"아니요, 악마도 없어요."
"그거 참 섭섭하군. 이러니 신을 처음으로 고안해 낸 놈을 어떻게 해야 속이 시원할까, 젠장! 그런 놈은 사시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여도 시원치 않겠군."
"신을 고안해 내지 않았다면, 그러면 문명도 전혀 없었을 거예요."
"문명도 없었을 거라고? 신이 없다면?"
"예. 코냑 따위도 없었을 거예요. 그나저나 아버지의 코냑을 그만 치워야겠어요."
"잠깐만, 한 잔만 더 하자꾸나. 내가 알료샤를 모욕했어. 화가 난 건 아닐 테지, 내 귀여운 알렉세이치크!"
"화 안 났어요. 나는 아버지의 생각을 잘 알아요. 아버지는 머리보다 마음이 더 좋으세요."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몹시 취해 있었다.) 들어 봐라, 알료샤, 아까 내가 너의 장로에게 좀 거칠게 굴었구나. 하지만 너무 흥분해서 그랬던 거야. 사실 이 장로에겐 기똥찬 구석이 있어, 이반, 네 생각은 어떠냐?"
"있다면 있겠죠.”
"있어, 있다니까, 피롱 냄새가 난다니까. 그러니까 러시아 예수회 말이다. 고상한 창조물이 다 그렇지만 그 작자도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억지로 성자 시늉을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속으론 남모를 분노를 삭이고 있어. 하지만 나는 그를 존경해. 그에겐 뭐랄까, 메피스토펠레스적인 것이랄까, 아니면 저기 아르베닌이냐, 뭐냐…… 다시 말해서, 그러니까 그는 호색한이야. 어찌나 대단한 호색한인지 나는 지금도 내 딸이나 마누라가 그자한테 고해성사를 하러 간다면 겁부터 날 것 같아."
"자, 이제 한 잔만 더 하고 끝내마. 술병을 치워라, 이반. 내가 계속 거짓부렁을 늘어놓고 있는 데도, 너는 왜 나를 말리지 않은 거냐, 이반…… 내 말이 죄다 거짓부렁이라고 말하지도 않고 말이다?"
"아버지가 알아서 그만둘 줄 알았으니까요."
"저 거짓부렁 좀 봐라, 네놈은 나 때문에 열을 받아서, 오로지 열을 받아서 그런 거야. 네놈은 나를 경멸하고 있어. 네놈은 나한테 와서 내 집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나를 경멸하고 있어."
"안 그래도 떠날 겁니다. 아버지는 코냑에 곯았어요."
"그리스도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한테 하루나 이틀 정도 체르마쉬냐에 좀 갔다 오라고 부탁했는데…… 그런데도 너는 갈 생각도 안 하고 있으니."
"아버지가 정 그러시다면, 내일 가겠어요."
"가긴 뭘 가. 네놈은 여기서 나를 감시하고 싶은 게야, 바로 이게 네놈이 원하는 거지, 고약한 놈 같으니, 아니, 왜 안 가는 거냐?" 노인은 진정할 생각을 안 했다. 그는 너무 술에 취해서, 지금까지 얌전히 술을 마시고 있던 사람들조차도 꼭 갑자기 성질을 부리고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 못 견디는 그런 지점에 도달했던 것이다.
"나는 말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자마자, 그는 술이 확 달아난 것처럼 온몸에 활기를 되찾았다.
"나한테는…… 아주 평생 동안 못생긴 여자란 없었단다, 바로 이게 나의 원칙이야! 네놈들이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하긴 네놈들이 이걸 어떻게 이해하겠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르고, 아직도 몸에는 피 대신 젖이 흐르는 놈들이! 나의 원칙에 따르면, 그 어떤 여자에게서나 다른 여자에게선 찾을 수 없는 굉장히, 젠장, 흥미진진한 구석을 찾을 수 있다는 거다. 단,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는데, 바로 이게 핵심이야!"
"요는 재주가 있어야 된다는 거야! 나한테는 못생긴 여자란 아예 없었어. 여자라는 것 하나만으로, 이거 하나만으로도 절반은 된거야……. 하긴 네놈들이 이걸 어떻게 이해하겠어! 심지어 노처녀들도, 그런 년들한테 서도 사내들이 얼마나 멍청하면 저런 년들을 어떻게 지금까지 몰라보고 저렇게 늙도록 내버려 뒀을까 싶을 만큼 멋진 것을 찾아낼 수 있다니까! 맨발 계집애나 못생긴 계집애는 처음부터 깜짝 놀라게 해 줘야 되는데, 바로 이게 이런 년들을 요리하는 방법이지.
"들어 보렴, 알료쉬카, 나는 네 죽은 어미를 언제나 깜짝 놀라게 해 주었단다, 그저 방식이 좀 다르긴 했다만. 절대 애무를 해 주지 않다가 어느 순간이 오면 갑자기, 그야말로 갑자기 네 어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온몸으로 살살 기면서 발에다 입을 맞추어서 언제나, 언제나 네 어미를 웃게 만들었는데 - 바로 지금도 기억이 나는군 - 크지도 않고 가느다란 소리로 과자처럼 바삭거리고 방울처럼 찰랑찰랑 초조하게 울리는 것이 참으로 독특한 웃음이었지. 네 어미는 늘 그렇게만 웃었단다. 그래, 늘 그런 식으로 네 어미에겐 병이 시작되어 다음 날이면 클리쿠샤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으니…….
한 번은 벨랴프스키라고 잘생긴 부자 양반 하나가 네 어미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느라 우리 집을 들락날락하게 됐는데, 갑자기 우리 집에 와서는 내 따귀를 철썩 갈기는 거야, 그것도 네 어머니가 있는 앞에서 말이다. 그러자, 내 생각으론 완전 순둥이 양이었던 네 어미가 내가 따귀를 맞았다고 나를 때릴 기세로 덤벼드는 거야. '당신은 지금 얻어맞았죠, 저런 사람한테서 따귀나 얻어맞다니! 당신은 나를 그에게 팔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아니, 저 사람은 어떻게 감히 내 앞에서 당신을 때릴 엄두를 낸 거죠! 감히 내 곁엔 얼씬도, 아주 얼씬도 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 달려가서 저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해요.' 그래서 나는 그때 네 어미를 진정시키려고 수도원에 데려갔고 성스러운 신부들이 네 어미의 정신을 되찾아 주었지. 하지만, 맹세코, 알료샤, 내가 나의 클리쿠샤를 모욕한 적은 결코 없었다! 오직 단 한 번, 그것도 첫해를 빼면 말이다…….
알료샤, 알료샤! 얘야, 왜, 왜 그러냐!" 노인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알료샤는 자기 어머니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조금씩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이 발개지고 눈은 불타오르고 입술은 부르르 떨렸던 것이다……. 지금 막 그가 '클리쿠샤'에 대해 얘기한 것과 정말로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알료샤는 갑자기 탁자에서 벌떡 일어나 이야기 속의 자기 어머니와 정말로 똑같이 손뼉을 탁 치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낫질을 당한 벼처럼 의자 위로 쓰러졌고, 그렇게 갑자기 히스테리 발작이라도 난 듯 느닷없이 경련이 섞인 눈물을 소리 없이 흘리면서 온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반, 이반! 애에게 어서 빨리 물을! 어쩜, 그 무렵의 제 어미와 똑같아! 입으로 얘에게 물을 뿜어 줘라, 나도 얘 어미에게 그렇게 해 주었단다. 얘는 제 어미 때문에……." 그가 이반에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내 생각에 얘의 어머니는 내 어머니기도 했는데요, 아버지?" 이반이 분노와 경멸을 억누르지 못해 갑자기 이렇게 내뱉었다. 노인은 그의 번득이는 눈초리를 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바로 그 순간 갑자기 현관에서 끔찍한 소란이 일고 우레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고 광폭한 고함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확 열리면서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날 듯이 뛰어 들어왔다. 노인은 경악하면서 이반에게로 달려들었다. "날 죽일 거다, 죽일 거야! 날 내주지 마라, 내주지 마!" 이반 표도로비치의 프록코트 자락에 꼭 매달린 채 그가 소리쳤다.
곧이어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의 뒤를 이어 홀 안으로 그리고리와 스메르쟈코프가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벌써 며칠 전에 내려진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지시에 따라) 그를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현관에서 싸움까지 벌였던 것이다. 그리고리는 식탁을 한 바퀴 돌아 안쪽 방들로 통하는 홀의 입구 맞은편 문 두 쪽을 걸어 잠그고는 마지막 피 한 방울을 흘릴 때까지 입구를 사수하겠다는 각오로 문 앞에서 두 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벌리고 섰다.
이것을 보자 드미트리는 째질 듯한 소리로 울부짖으면서 그리고리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러니까 그년이 저기에 있다는 소리지! 그년을 저기다가 숨겨 놓은 거야! 썩 꺼져, 이 야비한 놈! 그년이 여기 있어. 그년이 집 쪽으로 돌아선 걸 지금 내 눈으로 보았어.” 그는 그리고리를 떨쳐 내려고 했지만, 상대방이 그를 밀쳐 냈다. 너무 격분한 나머지 드미트리는 손을 번쩍 들었다가 온 힘을 다해 그리고리를 내리쳤다.
“그년이 여기 있어!”라는 외침은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 불가사의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조금 전의 경악이 송두리째 달아나 버렸다. “잡아라, 저놈 잡아라!” 그는 고함을 지르면서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의 뒤를 쫓아 돌진했다. 이반과 알료샤는 간신히 노인을 따라잡아서 완력을 써 가며 홀로 데려왔다.
“어쩌자고 형을 쫓아가는 거예요! 아버지를 곧장 죽일 텐데!” 이반 표도로비치는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루셴카가 여기에 있어, 이리로 달려가는 걸 저놈이 제 눈으로 봤다고 하잖니…….”
드미트리가 다시 홀에 나타났다. “저놈 잡아라!”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빽빽 소리를 질러 댔다.
“저놈은 저기 내 침실에서 돈을 훔쳤어!” 그러면서 그는 다시 드미트리에게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두 손을 들어 올려 갑자기 노인의 관자놀이에 간신히 붙어 있는 머리카락 끄트머리 두 뭉치를 움켜쥐고 잡아당겨서는 쿵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그를 마룻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러고 나서도 쓰러진 자의 얼굴을 구둣발로 두세 번 더 짓밟아 주었다. 노인은 귀가 떨어져 나갈 듯 날카로운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쳤어, 형, 진짜 아버지를 죽일 참이야!” 이반이 소리쳤다.
“아버지는 그래도 싸!” 숨을 헐떡이면서 드미트리가 소리쳤다. “지금 죽이지 못했으니, 나중에 죽이러 오겠어. 말려들 봤자 소용없을걸!”
“드미트리!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 알료샤가 고압적으로 소리쳤다.
“맹세코, 형, 여기엔 오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그녀가 오길 기다리지도 않았어!”
“하지만 나는 그녀를 봤단 말이야……. 그러면, 그녀는……. 내 지금 바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겠어……. 잘 있어라, 알렉세이! 지금은 이솝에게 돈 얘기는 아예 꺼내지 마라, 하지만 카체리나 이바노브나한테는 반드시 지금 당장 가서 전해라. ‘머리 숙여 인사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머리 숙여 인사를, 머리 숙여 인사를 전하라고! 정확히 머리를 숙여 간곡히 작별 인사를 전하라고 말입니다!’ 그녀에게 이 소동도 묘사해 줘라.”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방을 나가면서 증오스럽다는 듯 그를 돌아보았다. “영감쟁이가 피를 좀 흘렸다고 해서 내가 무슨 반성이라도 할 줄 알아!” 그가 소리쳤다. “몸조심 잘하고, 영감, 꿈도 잘 간수하시길, 꿈은 나한테도 있으니까! 난 영감을 저주하고, 부자의 연을 완전히 끊어 버리겠어…….”
그는 방에서 뛰어나갔다.
스메르쟈코프는 물을 가지러 달려갔다. 마침내 노인의 옷을 벗기고 침실로 옮겨서 침대에 눕혔다. 그의 머리는 젖은 수건으로 둘러 싸맸다. 코냑에 취한 데다 심하게 흥분하고 얻어맞기까지 해서 기진맥진한 터라 노인은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금세 눈을 감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반 표도로비치와 알료샤는 홀로 돌아왔다. 스메르쟈코프는 꽃병 조각들을 치웠고 그리고리는 침울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깐 채 식탁 곁에 서 있었다.
알료샤는 아까 아버지의 집에 들어갈 때보다 훨씬 더 망가지고 참담한 심정으로 그 집을 나왔다. 이 무서운 여자를 둘러싼 아버지와 드미트리 형의 일이 어떻게 끝날까? 이제는 그 자신이 증인이었다. 그 자신도 거기에 있었고 그들이 마주한 것을 보았다. 하지만 결국에 가서 불행한 사람, 그것도 정말 끔찍할 정도로 불행한 사람은 오직 드미트리 형이 될 수도 있었다.
작은형 이반은 알료샤가 오랫동안 바랐던 대로 그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섰지만, 이제 와서는 무엇 때문인지 그 한 발짝이 그를 경악하게 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럼, 저 여인들은? 이상하게도, 아까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집을 향해 갈 때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태였지만 지금은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꼭 그녀에게서 어떤 지시라도 구하길 바라는 양, 그 스스로 그녀의 집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알료샤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7시여서 날이 어둑어둑했는데, 그녀는 볼사야 거리의 아주 넓고 살기 좋은 집 한 채를 빌려 쓰고 있었다. 알료샤는 그녀가 이모 두 명과 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이 두 여인은 모든 일에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말에 복종한다는 것이었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병 때문에 모스크바에 남아 있는 자신의 은인인 장군 부인의 말에만 복종했으며, 매주 두 통씩 편지를 보내 자신의 근황을 상세하게 전해야만 했다.
그는 곧 홀로 안내되었다. 알료샤는 분명히 지금까지 사람들이 앉아 있었던 듯한 소파 위에 실크 망토가 내던져져 있고 소파 앞 탁자 위에 마시다 만 초콜릿 두 잔, 비스킷, 푸른 건포도가 담긴 크리스털 접시, 사탕이 담긴 또 다른 접시가 놓여 있는 것을 알아보았다. 누군가를 접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료샤는 자기가 하필 손님들이 있을 때 온 것임을 깨닫고 얼굴을 약간 찌푸렸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커튼이 올라가더니 다급하고 빠른 걸음걸이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들어와서, 환희에 찬 기쁜 미소를 지으며 알료샤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어쩜, 드디어 당신도 와 주셨군요! 하루 종일 오직 당신 한 사람만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했어요! 앉으세요.”
그녀의 아름다움은 예전에도 알료샤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는데, 삼 주쯤 전에 그녀가 굉장히 원해서 드미트리 형이 그를 그녀에게 데려가 소개도 해 주고 인사도 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알료샤는 그녀를 보자마자, 또 그녀에게서 첫마디를 듣자마자,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과 관련해 자기가 놓인 비참한 처지를 그녀가 알고 있음을, 어쩌면 그것도 모든 것을, 맹세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또한 그는 그녀에게서 첫 몇 마디를 듣자마자, 그녀가 무엇 때문인지 대단히 흥분했음을, 그것도 그녀로선 좀처럼 가능하지 않을 법하게, 거의 황홀해하듯이 흥분했음을 알아챘다.
“제가 당신을 이토록 기다린 건 당신이라면 지금 모든 진실을 말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온 건……” 하고 알료샤가 곤혹스러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저는…… 형이 저를 보내서…….”
“아, 그이가 당신을 보냈군요, 그럴 거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이젠 전부 다 알겠어요, 전부 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
"저는 당신이 최근에 받은 개인적인 인상을 알아야겠고, 또 당신이 가장 직설적이고 무례하다 싶을 만큼(오, 얼마든지 무례해도 괜찮아요.) 꾸밈없는 모습으로 저한테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해요. 오늘 그이를 만나 보고 나니 그래, 어떠세요, 지금 그이의 모습과 처지가 어떻던가요? 그이가 더 이상 저를 찾아오길 원하지 않는 상황이니만큼, 제가 나서서 그이에게서 개인적으로 해명을 듣는 것보다는 이게 나을 거예요. 제가 당신에게서 뭘 원하는지 아시겠죠?"
“형은 그러니까 당신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전하라고 했고, 앞으로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며…… 당신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전하라고 했습니다.”
“머리 숙여 인사를 전하라고요? 그이가 정확히 그렇게 말했나요, 꼭 그런 표현을 썼나요?”
“예. 잊지 말고 제대로 전하라고 족히 세 번은 부탁했는걸요.”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발끈했다.
"그이가 특별히 이 단어를 고집했다면, 특히 당신에게 꼭 잊지 말고 이 머리 숙여 인사하라는 말을 전하라고 당부했다면, 그건 다시 말해 그이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소리겠지요? 결단은 내렸지만, 자신의 결단에 경악하고 만 거예요! 자기 발로 확고하게 걸어서 제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산에서 굴러 떨어져 버린 거예요. 이 단어를 강조했다니, 허세를 부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래요, 바로 그래요!” 알료샤가 열렬하게 맞장구를 쳤다. “저도 지금은 바로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그이는 아직 끝장나지 않은 거예요! 그저 절망에 빠져 있을 따름이지만, 저는 아직은 그이를 구할 수 있어요. 잠깐만요, 그이가 당신에게 돈에 대해, 3000루블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하던가요?”
“말을 한 정도가 아니라, 아마 무엇보다도 그것 때문에 형이 죽도록 괴로워하는 것 같아요. 형은 이젠 체면도 뭣도 없다, 이젠 더 이상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고 말했거든요.” 알료샤가 열을 올리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 돈에 대해서 알고 계신 거죠?” 이렇게 덧붙인 뒤 그는 갑자기 말을 중단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고, 더군다나 아주 잘 알고 있어요. 모스크바에 전보를 쳐서 물어봤기 때문에 그쪽에서 돈을 받지 못했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이가 돈을 부치지 않았지만, 저는 잠자코 있었어요. 저는 그이를 영원토록 구해 주고 싶어요. 그이가 자신의 약혼녀로서의 저를 잊어버려도 좋아요! 이런데도, 그이는 지금 제 앞에서 자신의 체면만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당신에게라면 뭘 털어놓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잖아요? 도대체 왜 저는 지금까지도 그 대접을 못 받는 거죠?”
마지막 말을 할 때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의 눈에서는 곧 눈물이 흘러내렸다.
“전해 드려야 할 것이 있는데요.” 하고 알료샤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지금 형과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고서 그는 좀 전의 소동을 전부 이야기해 주었다.
“당신은 제가 그 여자분을 참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는 제가 참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어쨌거나 그이는 그분과 결혼하지 않아요.” 갑자기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형은 결혼할지도 몰라요.” 알료샤가 눈을 내리깔고 슬프게 말했다.
“그는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 분명히! 이 아가씨, 이분은 천사예요, 당신은 이걸 알고 계세요? 이걸 알고 계시냐고요!” 갑자기 예사롭지 않은 열의를 보이면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소리쳤다. "왜 저를 그렇게 보는 거죠,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어쩌면, 제 말이 놀라운가요, 믿기지 않나요? 나의 천사 아가씨! 이리로 나오세요!"
“나는 커튼 뒤에서 당신이 불러 주기만을 기다렸어요.” 감미롭기까지 한 여성의 목소리가 말했다.
커튼이 들렸고, 그리고…… 다름 아닌 그루셴카가 기쁘게 웃으면서 탁자로 다가왔다. 알료샤는 자기의 내부에서 뭔가가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그의 시선은 곧 그녀에게 꽂혀서,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자, 여기 그녀가, 반시간 전에 이반 형이 불쑥 ‘짐승’이라고 내뱉은 그 끔찍한 여자가 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가장 평범하고 단순한 존재인 것 같았으며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여자, 그래 아름답다고 치더라도 다른 모든 아름다운 여자, 아름답지만 ‘평범한’ 여자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힘차고 원기왕성한 걷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와 달리 소리 없이 사뿐사뿐 다가왔다. 발이 마룻바닥에 닿아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나긋하게 쓰러지듯 안락의자에 앉은 뒤, 검은색의 화려한 실크 원피스를 부드럽게 사각거리면서 물거품처럼 하얀 풍만한 목과 넓은 어깨를 값비싼 검은 모직 숄로 나긋하게 감쌌다. 그녀는 스물두 살이었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이 나이가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이 얼굴을 보고 알료샤가 충격을 받은 것은 무엇보다도 그 어린애처럼 티 없이 맑은 표정 때문이었다. 그녀는 꼭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무엇 때문인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는데, 바로 이렇게 ‘기쁨에 찬 얼굴로’ 지금 꼭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고 쉽게 믿어 버리곤 아주 어린애처럼 참을성 없는 호기심과 기대를 내보이며 탁자 쪽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녀의 시선은 보는 사람의 영혼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이런 것을 알료샤는 느꼈던 것이다.
알료샤는 그녀에게 매혹된 상태에서도 어떤 불쾌한 느낌이 들어 마치 유감스러워하듯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게 됐다. 즉, 이 여자는 도대체 왜 말을 이렇게 질질 끄는 걸까, 좀 자연스럽게 말할 수는 없는 걸까? 그녀의 말투는 실제로도 이랬는데, 분명히 말을 이렇게 질질 끌면서 각각의 음절과 음운에 심할 정도로 감미로운 강세를 찍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것은 물론 그저 방정하지 못한 품행이 낳은 나쁜 습관에 불과한 것으로서 낮은 교육 수준, 거기다 어릴 때부터 속물적으로 습득된 예절 관념을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금세 그녀를 알료샤 맞은편 안락의자에 앉혔으며 웃음 가득한 그녀의 입술에 몇 번이나 환희의 입맞춤을 퍼부었다. 꼭 그녀에게 반하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우리는 지금 처음 만나는 거랍니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그녀가 기뻐 날뛰면서 말했다. “저는 이분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고 보고 싶어서 이분의 집을 찾아가려고 했지만, 제가 뜻을 비치자 이분이 먼저 이렇게 와 주신 거예요. 저는 이렇게 우리 둘이서 모든 걸 해결할 줄 알았어요, 결국 제 생각이 옳았던 거예요."
"사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이분은 비록 자유분방하긴 하지만 대단히 자긍심 높은 마음의 소유자랍니다! 고결하고, 너그러우세요, 그저 불행했을 뿐이에요. 보잘것없고 경박한 사람을 위해 너무도 빨리 모든 희생을 바칠 각오를 했던 거예요. 역시나 장교였던 한 사람이 있었고, 이분은 그를 사랑하게 되어 그에게 모든 것을 갖다 바쳤는데, 이건 오래전, 그러니까 오 년 전의 일인데, 그는 이분을 잊고 결혼을 해 버린 거예요. 하지만 이제 그가 상처를 하여 편지를 썼어요, 이리로 온다고요. 그러니까 이분은 그 사람만을, 평생 오직 그 한 사람만을 사랑해 왔고 지금까지도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그 사람이 오면 그루셴카는 다시금 행복해질 거예요!"
그녀는 너무 기뻐서 미치겠다는 듯, 살이 너무도 포동포동 오른 듯도 싶은 정말로 매혹적인 그루셴카의 손에 세 번이나 입을 맞추었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앞에서 이렇게 제 손에 입을 맞추셨으니, 사랑스러운 아가씨, 영 창피스러워지는걸요.”
“아니, 제가 당신에게 창피를 주려고 이런 줄 아세요?” 다소 놀라워하면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말했다. “아이, 당신도 참, 어쩜 이리도 제 마음을 몰라주는 거죠!”
“뭐, 아가씨도 제 마음을 썩 잘 알아준 것 같지는 않은걸요, 사랑스러운 아가씨, 저는 아가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약한 년일 수도 있어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도 그때 그냥 심술이 나서 꼬여 본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이를 구할 거잖아요. 약속까지 해 놓고선. 당신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라고 털어놓는다면서요, 오래전부터 사랑해 왔고 지금 그 사람의 청혼을 받은 상태라고…….”
“아이, 천만의 말씀, 나는 아가씨한테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그건 죄다 아가씨가 나한테 얘기해 준 거지, 내가 한 말이 아니잖아요. 보세요, 난 원래 이런 변덕쟁이예요…….”
"자 이젠 아가씨도 바보 같은 나의 본색을 봤으니, 싫증이 났겠죠. 그 사랑스러운 손을 좀 줘 보세요, 천사 같은 아가씨.” 그녀는 상냥하게 부탁한 뒤, 마치 축복을 해 줄 기세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손을 잡았다. “이제 내가, 사랑스러운 아가씨,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이 해 준 것처럼 입을 맞추겠어요.
그녀는 이 손을 조용히 자기 입술로 가져갔는데, 정말로 입맞춤으로 ‘제대로 셈을 치른다.’라는 이상한 목적에서였다. 카체리나는 손을 치우지 않았다. 비록 표현 방식이 이상했지만 ‘노예처럼’ 그녀의 비위를 맞추겠노라는 그루셴카의 약속에 아슬아슬한 희망을 갖고 경청했던 것이다.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상대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너무 순진한 것인지도 몰라!’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마음속에는 이런 희망이 번득였다.
“그런데 말이죠, 천사 같은 아가씨.” 갑자기 그녀가 아주 부드럽고 아주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을 질질 끌었다. “나는 당신의 손을 잡긴 했지만, 입은 맞추지 않겠어요.” 그녀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다.
“좋으실 대로 하시죠……. 아니, 왜 그러세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내 손에 입을 맞추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는 걸 똑똑히 기억해 두시란 말이죠.” 갑자기 그녀의 눈 속에서 뭔가가 번득였다.
“이 뻔뻔한 년!” 갑자기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이렇게 말했는데, 갑자기 뭔가를 깨달은 양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루셴카도 느긋하게 일어났다.
“미챠한테도 당장 그렇게 전할 거예요, 당신은 내 손에 입을 맞추었지만 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노라고. 그러면 그 양반이 얼마나 웃어 댈까!”
“추잡한 년, 썩 꺼져! 갈보 년 같으니!”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울부짖었다.
“뭐, 갈보 년이라고 하죠. 그러는 당신은 처녀의 몸으로 날이 어두울 때 젊은 남정네들한테 돈을 긁어내러 다니지 않았나요, 그 예쁜 얼굴을 팔러 간 거잖아요, 나도 알고 있어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고함을 지르면서 그녀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알료샤가 그녀를 말렸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말고 한마디도 하지 마세요! 아무 대답도 하지 마세요, 저분은 지금 갈 거예요, 지금!"
“그렇다면 가죠.” 그루셴카가 소파에서 망토를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알료샤, 이봐요, 나를 좀 바래다줘요!”
“가세요, 어서 좀 가세요!” 알료샤는 간청하면서 그녀 앞에 두 손을 모았다.
“사랑스러운 알료셴카, 좀 바래다 달라니까! 가는 길에 당신한테 아주 재미나는 말을 하나 들려줄게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발작을 일으켰다. 그녀는 흐느껴 울었으며, 경련이 일어 숨이 탁탁 막혔다.
“이건 호랑이예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울부짖었다. “도대체 왜 나를 말리셨어요,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나는 그년을 때려 줬을 거예요, 때려 줬을 거라고요!”
그녀는 알료샤 앞에서 스스로를 자제할 힘이 없었으며, 어쩌면, 자제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저년은 채찍으로 갈겨 줘야 돼, 교수대에 매달아 놓고 망나니를 시켜서,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
“아니, 맙소사!” 갑자기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손뼉을 탁 치면서 소리쳤다. “그 사람은 또 뭐야! 어쩜 그렇게 점잖지 못하고 비정할 수 있담! 그때, 그 운명적이고 영원히 저주받고 또 저주받은 그날 있었던 일을 저년한테 이야기했다는 거잖아요! ‘그 예쁜 얼굴을 팔러 갔잖아요, 사랑스러운 아가씨!’라잖아요. 저년은 알고 있어요! 당신 형은 야비한 놈이에요,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가 주세요,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부끄러워요, 미칠 것 같아요! 내일…… 무릎 꿇고 간청하는 거예요, 내일 와 주세요. 절 비난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세요, 저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군요!”
알료샤는 비틀거리듯 거리로 나왔다. 그도 그녀처럼 울고 싶었다. 갑자기 하녀가 그의 뒤를 쫓아왔다. “아가씨가 도련님께 호흘라코바 부인의 편지를 전하는 걸 깜박하셨어요, 식사 시간 전부터 놓여 있었는데.”
알료샤는 작은 장밋빛 봉투를 기계적으로 받아 거의 무의식적으로 호주머니에게 쑤셔 넣었다.
도시에서 수도원까지는 1 베르스타도 되지 않았다. 알료샤는 이 시간이면 인적이 없는 길을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알료샤가 교차로로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어떤 형체가 튀어나와 달려들더니 광폭한 목소리로 외쳤다. “목숨이 아깝거든 지갑을 내놔라!”
“아니, 형이잖아, 미챠!” 그러면서도 알료샤는 너무 놀라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 하─ 하! 놀랐지? 아니, 너, 왜 그러냐?"
“아니, 형…… 그냥 너무 놀라서. 아이, 드미트리! 아까 아버지가 그렇게 피를…….”
알료샤는 오래전부터 울음을 터뜨리고 싶던 차에 갑자기 그의 영혼 속에서 뭔가 울컥 터져 나온 것이다.
“형은 하마터면 아버지를 죽일 뻔했는데…… 아버지를 저주했고…… 그런데 이제는…… 지금은…… 장난이나 치고…… ‘목숨이 아깝거든 지갑을 내놔라!’라니!”
“아니, 그래서? 숙연하지 못하다는 거냐, 엉? 상황에 맞지 않는다고?”
“그게 아니라…… 나는 그냥…….”
"에이 젠장, 어떻든 말을 해 보렴, 거기는 어땠어? 그녀는 무슨 말을 하더냐? 나를 눌러 버리고 때려 부숴도 좋아, 인정사정 볼 것 없어! 미친 듯 흥분을 하더냐?”
“아니, 그런 건 아니었어……, 미챠. 거기서……. 나는 지금 저기서 그분들 둘을 다 보고 왔어.”
“둘이라니?”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집에서 그루셴카를 봤어.”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럴 리가 있나!” 그가 소리쳤다. “무슨 잠꼬대를 하는 거냐! 그루셴카가 그녀 집에 있더라고?”
알료샤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집에 발을 들여놓은 그 순간부터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는 십 분 정도 지속됐는데, 말이 유창하고 논리 정연할 수는 없었지만 가장 중요한 말들, 가장 중요한 동작들을 짚어 가면서, 또 종종 자신의 감정도 일목요연하고 생생하게 섞어 가면서 내용을 똑똑히 전해 주었다. 드미트리 형은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음울하다 못해 준엄해졌다. 그러더니, 너무도 뜻밖에도, 닫혔던 입술이 활짝 열리면서 갑자기 참으로 억누를 수 없어 가장 자연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자지러졌다.
“그러니까 손에 입을 맞추지 않았단 말이지! 입을 맞추지 않고 그렇게 달아났단 말이지!” 그는 어떤 병적인 황홀감에 젖어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저년은 호랑이라고 외쳤단 말이지! 그래, 호랑이가 맞아! 그래서 그녀를 교수대에 매달아야 된다고? 그렇지, 그렇고말고! 그 뻔뻔스러움의 여왕은 나도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녀는 이 세상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녀들 중에서도 여왕 급 악녀라니까! 그렇게 집으로 달려갔다고? 그럼 나도…… 에잇, 지금 당장…… 그녀한테 달려가야겠어! 알료쉬카, 나를 욕하지 마라…….”
“그럼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알료샤가 슬프게 소리쳤다.
“그 여자도 보여, 아주 훤히 보인다, 어느 때보다도 더 잘 보이는구나! 이게 바로 그 카첸카거든,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관대한 이념에서 무서운 모욕의 위험까지 무릅쓰고서 겁도 없이 졸렬하고 거친 장교를 찾아왔던 여학생이라고! 하지만 그건 그 여자의 오만함, 모험에 대한 욕구, 운명에 대한 도전, 무한한 것에 대한 도전 때문이기도 하지! 너는 그녀가 일부러 자기가 먼저 나서서 그루셴카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고, 무슨 교활한 속셈이 있어서 그랬다고 생각하니? 천만에, 그녀는 정말로 그루셴카에게 반한 것, 그러니까, 그루셴카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몽상에, 자신의 미망에 반한 거야. 왜냐면 그거야말로 나의 몽상이고 나의 미망이기 때문이지!”
“형, 형은 형이 그루셴카한테 그날 얘기를 해서 그녀가 지금 곧장 카체리나의 눈에다 대고 ‘제 발로 젊은 남정네들한테 몰래 그 예쁜 얼굴을 팔러 다녔잖아요!’라고 쏘아붙였고 그 때문에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얼마나 심한 모욕감을 느꼈는지, 아예 신경을 쓰지도 않네. 형, 이보다 더 큰 모욕이 어디 있겠어?”알료샤는, 물론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형이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처했던 굴욕을 꼭 기뻐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무엇보다도 괴로웠다.
“아차!”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갑자기 얼굴을 심하게 찌푸리더니, 손바닥으로 자기 이마를 탁 쳤다. 그는, 비록 알료샤가 조금 전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이야기해 주었음에도, 이제야 비로소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모욕을 받았고 “당신의 형은 야비한 사람이에요!”라고 외쳤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 것이다.
“그래, 난 야비한 놈이야! 틀림없이 야비한 놈이지.” 갑자기 그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울었건 말았건, 어쨌거나 야비한 놈, 야비한 놈이라고! 거기 가서 전해 주렴, 그 명칭을 받아들이노라고, 너는 네 갈 길로, 나는 내 갈 길로 가는 거다. 언제든 가장 마지막 순간이 닥쳐오기 전까지는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다. 잘 가거라, 알렉세이!” 그는 알료샤의 손을 꼭 쥔 뒤, 줄곧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인 채, 꼭 자리에서 튕겨 나가듯 그렇게 다급하게 시내 쪽을 향해 성큼 걸어갔다.
“잠깐만, 알렉세이, 한 가지 고백할 게 더 있단다, 너 하나에게만!” 갑자기 드미트리가 다시 되돌아왔다.
"내가 이전에 무슨 짓을 했고 지금이나 앞으로 무슨 짓을 하건, 야비함에 있어서 그 어떤 것도 바로 이 순간에 바로 여기 내 가슴에 담고 있는 이 치욕과는 비교될 수 없으며, 바로 여기서 치욕이 진행되고 완성되고 있지만 그걸 완전히 중단시키거나 아니면 반대로 완성시키는 것도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걸 명심해 둬!"
그러고서 그는 갑자기 자리를 떴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알료샤는 수도원을 빙 둘러, 솔밭을 지나 곧장 암자로 갔다. 이 시간이면 이미 아무도 그곳으로 들여보내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문을 열어 주었다. 장로의 방으로 들어서자, 그는 가슴이 떨렸다. ‘도대체 왜, 왜 여기서 나갔던 것일까, 도대체 왜 장로님은 나를 속세로 내보내신 걸까? 이곳은 고요하고 성스럽기만 한데 저곳에서는 혼돈스럽고 칠흑처럼 캄캄해서 곧바로 길을 잃고 헤매게 될 텐데…….’
방에는 견습 수도사 포르피리, 수도사제 파이시 신부가 하루 종일 매 시각 조시마 신부의 건강 상태를 알아보러 마침 와 있었는데, 알료샤는 그의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심지어 형제들과 통상적으로 가져온 저녁 담화도 이날에는 열릴 수 없었다. 보통 미사가 끝나는 저녁이면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수도원의 형제들이 장로의 방으로 모여들어 각자 큰 소리로 그에게 오늘 자신이 범한 죄, 죄스러운 몽상들, 생각들, 유혹들, 심지어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벌였다면 그런 것들까지도 고백하곤 했다.
“쇠약해지셔서 혼수상태에 빠지신 거야.” 파이시 신부가 알료샤를 축복한 뒤 그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오 분 정도 깨어나셨다가 형제들에게 당신의 축복을 전해 달라고, 형제들은 당신을 위해 야간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하셨어. 네 말씀도 하셨단다, 알렉세이, 네가 나갔냐고 물으시기에 시내에 있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내 그를 축복했노라. 그곳이 그의 자리야, 당분간은 여기가 아니라.’ 바로 이런 말씀을 너에 대해 하시더군. 장로님께서는 너의 운명에서 뭔가를 미리 보고 계신 거야! 그러니 명심해 둬라, 속세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건 장로님께서 너에게 부과하신 복종의 의무로 돌아가는 것임을…….”
파이시 신부가 나갔다. 장로님이 아직 하루 이틀 정도는 더 산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곧 세상을 떠날 거라는 점은 알료샤로서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일은 아예 수도원 밖을 나가지 않을 것이며 장로님이 영면하기 직전까지 곁에 남아 있겠노라며 열렬하고 굳은 결심을 다졌다. 그의 가슴은 사랑으로 불타올랐으며 한순간이나마 저곳 시내에 있으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높이 존경하는 분을, 그것도 수도원의 죽음의 침상에 남겨진 분을 잊을 수 있었다니, 스스로를 씁쓸하게 책망했다.
다른 방으로, 그러니까 장로님이 아침 녘에 손님을 맞이한 바로 그 방으로 돌아와서 알료샤는 옷도 거의 벗지 않고 장화만 벗은 뒤 이미 오래전부터 매일 밤 늘 베개만 들고 와 잠을 자곤 했던 좁고 딱딱한 가죽 소파에 누웠다. 아까 아버지가 소리쳐 대던 요라면, 그는 그걸 깐다는 것 자체도 이미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그는 그저 수도복을 벗어 담요 대신 몸을 감쌌다. 하지만 잠을 자기 전에, 그는 무릎을 꿇고 오랫동안 기도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또 무심코 호주머니에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하녀가 그의 뒤를 쫓아와 길에서 전해 준 작은 장밋빛 봉투가 만져졌다. 그는 혼란스러웠지만 기도를 끝냈다. 그다음엔, 다소 망설이다가 봉투를 열어 보았다. 거기에는 리즈라고 서명된, 그에게 보내는 편지가 들어 있었는데 리즈는 아침에 장로가 있는 데서 그를 그토록 놀려 댄, 다름 아닌 호흘라코바 부인의 어린 딸이었다.
그녀의 편지는 다음과 같았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아무도 모르게, 엄마도 모르게 당신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이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는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내 마음속에 생겨난 것을 당신에게 말하지 않고는 더 이상 못 살 것만 같고, 이건 때가 될 때까진 우리 둘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비밀이에요. 하지만 내가 당신한테 말하고 싶어 죽겠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한다죠? 종이는 새빨개지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정말로, 이건 거짓말이에요, 종이도 이 순간의 나처럼 완전히 새빨개지고 있어요.
사랑스러운 알료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어릴 때부터, 모스크바에 있을 때부터, 당신이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그때부터 평생 동안 사랑합니다. 저는 당신과 결합하기 위해서, 그리고 늘그막에는 우리의 삶을 함께 끝내기 위해서 내 마음에 따라 당신을 골랐답니다. 물론, 당신이 수도원에서 나온다는 조건으로요. 우리의 나이에 관한 한, 법률이 정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요. 그때가 되면 나는 꼭 건강해져서 걸어 다닐 수도, 춤도 출 수 있을 거예요. 이건 두말하면 잔소리죠.
내가 모든 것을 얼마나 곰곰 생각해 봤는지 아시겠지만, 그래도 난 꼭 한 가지만은 아무래도 짐작이 가지 않아요. 즉, 이 편지를 읽으실 때 즈음 당신은 나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실까? 아까 내가 줄곧 웃으면서 장난을 쳐서 당신을 화나게 했지만, 정말 맹세코, 지금 펜을 들기 직전, 성모 마리아 상 앞에서 기도했어요, 지금도 기도를 하면서 거의 울먹이고 있답니다.
저의 비밀은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요. 내일 당신이 오시면 어떻게 당신을 봐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내가 그때도 바보처럼 자제를 못 하고 아까처럼 당신을 보면서 웃어 대면 어쩌죠? 그러면 당신은 나를 비웃기나 좋아하는 추악한 여자로 생각하고 내 편지의 내용을 믿지 않으실 테죠. 그렇기 때문에 부탁드리는 거예요, 사랑스러운 이여, 당신이 나를 안쓰럽게 여기신다면, 내일 방으로 들어오실 때 내 눈을 너무 똑바로 바라보지는 말아 주세요, 당신의 눈과 마주치면 난 반드시 갑자기 웃음을 터뜨릴 테니까요, 게다가 당신은 그 기다란 옷을 입고 계실 테고……. 지금도 이 생각을 하면 온몸에 오싹 소름이 돋아요, 그러니까 방에 들어오실 때 얼마간은 아예 나를 보지 마시고, 엄마나 창문을 봐주세요…….
이렇게 나는 당신에게 연애편지를 쓰고야 말았군요, 맙소사, 이게 무슨 짓인지! 알료샤, 나를 경멸하지 말아 주세요, 내가 뭔가 아주 고약한 짓을 해서 당신을 슬프게 했다면, 나를 용서해 주세요. 이제 나의 명예는 어쩌면 영원토록 훼손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비밀은 당신의 손에 간직되어 있답니다.
나는 오늘 반드시 울 거예요. 다시 만날 때까지, 그 끔찍한 만남의 순간까지 안녕히. 리즈.
추신. 알료샤, 다만, 꼭 오셔야 해요, 꼭, 꼭! 리즈.”
알료샤는 편지를 다 읽고서 놀라워했지만, 두 번을 더 읽은 뒤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조용하고 달콤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천천히 편지를 봉투에 접어 넣고 성호를 그은 뒤 자리에 누웠다. “주여, 조금 전의 그들 모두를 어여삐 여기시어, 그들을 보호해 주시고, 평정을 잃어 불행한 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주님께 길이 있나니, 그들을 주님의 길로 인도하여 구원해 주시옵소서. 주님은 사랑이시니, 모든 이들에게 기쁨을 보내 주시옵소서!”
<제3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