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5-2)

김연경 옮김 민음사

by Andy강성

5 대심문관


서사시의 무대


"내 서사시의 무대는 16세기인데, 그때는 때마침 시적 작품 속에서 산상(山上)의 힘들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유행이었지. 단테에 대해서라면 아예 말도 꺼내지 않으마. 프랑스에서는 재판장 서기들이나 수도원의 수도사들이나 연이어서 공연을 올리면서 마돈나와 천사들, 성자들, 그리스도를, 심지어 신마저도 무대 위로 끌고 나왔어. 그때는 이 모든 것이 아주 단순 소박했어.


빅토르 위고의 『파리의 노트르담』을 보면, 루이 11세 때 파리에서 왕세자의 탄생을 기리 기 위하여 시청 광장에서 극히 성스러운 '동정녀 마리아의 자비로운 심판'이라는 이름의 교훈적인 연극을 민중 앞에 무료로 선보였는데, 여기서 마리아가 직접 개인적으로 '자비로운 재판'을 내리지. 우리 모스크바에서도 표트르 대제 이전의 옛 시대에는 이것과 거의 같은 연극들, 특히 구약 성경에서 취한 연극들이 공연되곤 했어. 연극 외에도 그 무렵엔 성자들, 천사들, 천상의 온갖 힘이 활약을 하는 많은 소설과 '시'가 온 세상을 떠돌아다녔지.


나의 서사시에서는 그가 무대에 등장하지. 사실 그는 서사시 안에서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나타났다가 그대로 지나가는 거야. 그가 자신의 왕국에 오겠다고 약속한 이후 벌써 15세기가 지났어. 그의 예언자가 ‘보라, 내가 곧 간다.'(*요한묵시록 3: 11, 22: 7, 12, 20)라고 쓴 이후 그리고 아직 이 땅에 있을 때부터 그가 직접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이 아신다.’(*마르코복음 13: 32, 마태오복음 24: 36)라고 말한 지 15세기나 지났다고.


하지만 인류는 예전의 믿음과 예전의 감동을 갖고 기다리고 있지. 오, 심지어 믿음은 더 커졌는데, 왜냐면 하늘에서 인간에게 준 담보물이 끊긴 이후 이미 15세기나 지났기 때문이지.

마음의 말을 믿을지어다, 하늘의 담보물은 없을지니.(실러의 시 '소망'의 1절)


그러니 오직, 마음이 해 주는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사실, 그때는 기적도 많았지. 기적적인 치료를 행한 성자들도 있었어. 어떤 의인들의 경우에는 천상의 여왕이 친히 방문을 해 주었다더군. 하지만 악마도 졸고 있진 않았으니까, 인류에겐 벌써부터 이 기적의 진실에 대한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그 무렵, 때마침 북쪽 독일에서는 무서운 새로운 이단이 나타났어. ‘횃불(즉 교회)과 비슷한’ 큰 별이 ‘물의 샘에 떨어졌고, 물의 맛이 써졌던'(*요한묵시록 8: 10-11) 거지. 이 이단들은 신성 모독적으로 기적을 부정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럴수록 여전히 믿음을 간직한 자들은 더 열렬하게 믿는 거야. 인류의 눈물은 예전처럼 그에게로 올라가고, 그를 기다리고 그를 사랑하고 그를 희망하고, 예전처럼 그를 위해서 고통받으며 죽어 가길 갈망하는 거지……. 마침내 그는 그지없는 연민을 느끼고서 기도하는 자들에게 내려가고 싶어 졌던 거야.


그의 강림


나의 서사시의 무대는 에스파냐의 세비야, 그것도 종교 재판이 가장 무섭게 진행되던 시기인데,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라 안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장작더미가 불타올랐고, 오, 물론 이건 그 자신이 약속했던 것처럼 이 시간들이 끝날 때 천상의 영광에 휩싸여 ‘동쪽에서 서쪽까지 번득이는 번개처럼’ 나타난다거나 하는 강림은 아니었어. 그런 게 아니라, 잠깐이라도 자신의 아이들을 보고 싶어서, 다름 아닌 이곳, 즉 때마침 이단자들의 장작더미가 불타오르는 이곳을 방문하고 싶었던 거야.


그렇게 그가 남방 도시의 ‘푹푹 찌는 광장’으로 내려왔는데, 마침 그날은 바로 이곳의 ‘웅장한 화형대’에서 거의 백 명에 육박하는 이단자들이 왕과 궁정 대신들, 기사들, 추기경들, 매혹적이기 그지없는 궁정의 부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또한 전 세비야의 수많은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심문관인 추기경에 의해 '주님의 크나큰 영광을 위하여(ad majorem gloriam Dei)' 한꺼번에 화형에 처해진 바로 다음 날이었던 거야.


[출처 Duncan 1890 이미지]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나타났지만, 민중은 억누를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에게로 가서 그를 에워싸고, 그의 주위로 몰려들어 그의 뒤를 따르지. 그는 무한한 연민이 담긴 조용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없이 민중들 사이를 지나가. 그는 그들을 향해 손을 뻗어 그들을 축복하는데, 그의 몸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의 옷자락에 닿기만 해도 치유의 힘이 나오는 거야. 그는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세비야의 성당의 입구에서는 관에서 일곱 살짜리 소녀를 일으켰지. 그러자 민중 속에서는 일대 혼란이 일어나고 비명 소리, 흐느낌 소리가 끊이지 않았지.


대심문관


그때 갑자기 성당 옆 광장으로 다름 아닌, 대심문관인 추기경이 지나고 있었던 거야. 이 사람은 거의 아흔 살이나 되었지만 키가 크고 몸이 꼿꼿했으며, 바싹 여윈 얼굴에 눈은 움푹 파여 있었지만 그 눈에서는 아직도 불꽃과 같은 광채가 이글거리는 노인이었지.


오, 이 순간 그는 웅장한 추기경 복장이 아닌 그저 자신의 낡아 빠지고 허름한 수도복을 입고 있어. 그의 뒤를 따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음울한 보좌관들, 그의 노예들, ‘신성한’ 근위대가 따르고 있어. 그는 군중 앞에서 자신의 손가락을 뻗어 근위대에 그를 체포하라고 명령해. 민중은 온순하고 순종적으로 즉각 근위병들 앞에서 길을 터 주고, 갑자기 무덤 같은 침묵이 밀어닥친 가운데 근위병들은 그를 붙잡아 끌고 가는 거야.


근위대는 죄수를 신성 재판소의 오래된 건물 안에 있는 비좁고 음울한 아치형 감옥으로 데려가서 거기다 가두었어. 날이 저물고, 어둡고 뜨겁고 '숨 막히는' 세비야의 밤이 찾아오지. 공기는 '월화수와 레몬 향기로 가득 차 있어' 짙은 암흑이 깔린 가운데 갑자기 감옥의 철문이 열리고, 연로한 대심문관이 몸소 손에 횃불을 들고서 감옥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는 거야.


감옥 심문


그러곤 그에게 말하지. '네가 그자냐? 정말로 그자인 것이냐?'

하지만 대답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재빨리 덧붙이지.

'대답하지 마, 입 다물고 있어.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할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너는 네가 이전에 이미 말한 것에 아무것도 덧붙일 권리가 없어. 도대체 뭣 하러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냐? 나는 네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여하튼 나는 내일 너를 단죄하여 가장 극악한 이단자로서 화형에 처할 것이며, 그러면 오늘 너의 발에 입을 맞추었던 바로 저 민중이 내일이면 내가 손만 까딱해도 너를 태울 장작불에 석탄을 집어넣으려고 앞을 다투어 달려들겠지'


“뭐가 뭔지 통 모르겠는걸,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줄곧 말없이 듣고만 있던 알료샤가 미소를 지었다.

“이건 무슨 밑도 끝도 없는 노인의 망상인 거야, 아니면 무슨 오해나 도저히 불가능한 무슨 착각인 거야?”

“뭐, 맨 마지막 거라고 해 두렴.” 이반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경우 문제는 오직 노인은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구십 년 내내 속에 담아 두었던 것을 몽땅 털어놓고 큰 소리로 말한다는 것뿐이야.”

“그럼, 죄수는 역시나 가만히 있는 거야? 그를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래, 어떤 경우에라도 그래야만 해.” 이반은 다시 웃기 시작했다.


"노인이 그는 이 전에 자기가 말한 것에 아무것도 덧붙일 권리가 없다고 일침을 가했으니까. 원한다면, 바로 여기에 로마 가톨릭의 가장 기본적인 특성이 들어 있는데, 적어도 내 생각으론 그래. 모든 것이 너에 의해서 교황에게 전달되었고, 따라서 지금은 모든 것이 교황의 손에 달려 있으니, 너는 이제 아예 올 생각도 하지 말 것이며 최소한 특정한 시간이 될 때까지는 방해하지 말아 달라.'라는 거지.


'도대체 너는 네가 있던 저 세계의 비밀 중 단 한 가지라도 우리에게 고할 권리가 있는 거냐?' 나의 노인은 그에게 이렇게 물은 뒤, 그를 대신하여 그에게 직접 대답을 해 주었어.

'아니, 그럴 권리가 없어, 네가 이전에 이미 말한 것에 뭔가를 덧붙일 권리, 네가 지상에 있을 때 그토록 옹호했던 자유를 사람들로부터 빼앗을 권리는 없는 거다. 네가 새롭게 고할 모든 것은 기적처럼 나타날 것이므로 사람들의 믿음의 자유를 위협할 것인데, 그들의 믿음의 자유는 그때부터, 1500년 전부터 너에게 무엇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었단 말이다. 그때 너희들 모두를 자유롭게 해 주고 싶다.'라고 말한 건 네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바로 지금 네가 본 자들이 바로 이 '자유로운' 사람들이란 말이다.


'그래, 이 과업을 위해 우리는 비싼 대가를 지불했지.' 노인은 엄격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말을 계속해.

"하지만 우리는 너의 이름으로 마침내 이 과업을 완수했다. 15세기 동안 우리는 이 자유로 인해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끝난 일, 완전히 끝난 일이란 말이다. 너는 완전히 끝났다고 해도 믿지 못하겠지? 너는 그렇게 유순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에 대해선 분노를 느낄 가치도 없다는 거냐? 하지만 알아 둬, 이제, 특히 지금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적으로 자유롭다는 확신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강하게 갖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실은 그들이 직접 우리에게 자신들의 자유를 갖다 바쳤고 공손하게 우리의 발밑에 놓았다는 것을. 어쨌거나 우리는 이 일을 해냈고, 네가 원한 것도 이런 것, 바로 이런 자유가 아니었느냐?


“이번에도 뭐가 뭔지 통 모르겠는걸.” 알료샤가 말을 가로챘다. “그는 지금 비꼬는 거야, 비웃는 거야?”

“절대 아니야. 그는 마침내 그들이 자유를 쟁취했으며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을 그야말로 그 자신과 동료들의 공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왜냐면 이제야 비로소(그러니까 그는 물론 종교 재판 얘기를 하는 거야.) 처음으로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지.


'너는 충분한 경고와 지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를 듣지 않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거부했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곳을 떠나가면서 너는 우리에게 너의 과업을 넘겨주었어. 너는 너 자신의 말로 약속했고 주장했으며, 또 너는 묶고 풀 수 있는 권리를 우리에게 주었어, 그러니 물론 이제 와서 우리에게서 이 권리를 빼앗을 생각은 하지 못할 테지.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냐?'라고."


"충분한 경고와 지시를 받았다는 건 무슨 뜻이야?" 알료샤가 물었다. "바로 여기에 노인이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이 들어 있어. '무섭고도 영리한 정신이, 자기 파괴와 무(無)의 정신이'라면서 노인은 말을 계속해.


세 가지 물음


'위대한 정신이 광야에서 너와 얘기를 나눴고, 성경에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가 너를 '시험'한 것으로 되어 있지(*마태오복음 4: 1-11, 루카복음 4: 1-13). 정말 그랬던 거냐? 그가 너에게 세 개의 물음을 통해 고한 것, 네가 거부했던 것, 성경에서 '유혹'이라 명명한 그것보다도 더 참된 말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언젠가 이 지상에 진짜로 위대한 기적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그날, 저 세 가지 유혹의 날이었겠지. 바로 이 세 가지 물음이 나왔다는 것 자체에 기적이 들어 있었던 거야.


지상의 지혜를 전부 한데 엮었다고 한들, 저 강력하고 영리한 정신이 광야에서 그때 너에게 실제로 던졌던 그 물음들과 그 힘과 깊이에 있어 겨룰 만한 것을 짜낼 수 있을까? 정녕 이 물음들만 보더라도, 그저 이런 물음들이 나왔다는 그 기적만 보더라도, 문제는 '유동하는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영구적이고 절대적인 이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


왜냐면 이 세 가지 물음 속에는 이후 인류의 역사가 모조리 하나의 전체 속에서 결합되고 예언되어 있으며, 또 지상을 통틀어 인간 본성의 해결할 수 없는 모든 역사적 모순들을 집약해 놓은 세 가지 형상이 그 속에 나타나 있으니까. 15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 우리는 이 세 가지 질문 속에서 모든 것을 너무도 잘 짚어 내고 예언했으며 또 모든 것이 그대로 실현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첨가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어."


첫 번째 질문


자, 이제 네가 직접 누가 옳은지를 결정해 봐라. 너냐, 아니면, 그 당시 너에게 질문을 던진 그자냐? 첫 번째 질문을 상기해 봐라. 문자 그대로는 아니라도 그 의미는 이랬지.


'너는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하면서, 무슨 자유의 약속만을 든 채 빈손으로 나가려 한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단순하고 타고나길 변변치 못한지라 그 약속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 왜냐면 인간, 그리고 인간 사회에 있어 자유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은 결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자, 활활 타오르는 저 메마른 벌거숭이 광야의 이 돌들이 보이느냐? 이것들을 빵으로 바꾸어라, 그러면 인류가 은혜를 아는 온순한 양 떼처럼 네 뒤를 따라 달려올 것이다, 비록 네가 손을 걷어 갈까 봐, 더 이상 그들에게 빵을 주지 않을까 봐 영원히 두려움에 떨겠지만.'


하지만, 너는 인간에게서 자유를 빼앗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부했는데, 복종이 빵으로 살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도대체 무슨 자유인가? 하고 생각했던 거지. 너는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알고 있느냐, 바로 이 지상의 빵의 이름으로 지상의 정신이 너한테 반기를 들고일어나서 너와 싸워 너를 이길 것이며, 모두들 '이 짐승과 비슷한 자, 이 자야말로 우리에게 천상의 불을 가져다주었다!'라고 외치면서 그를 따를 것임을.


"수세기가 지나면 인류는 지혜와 과학의 입을 빌려 범죄란 없고 고로 죄도 없으며 있는 것은 오직 배고픈 자 들뿐이라고 공언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느냔 말이다. '일단은 먹여 살려라, 그런 다음에 그들로부터 선행을 요구하라!' 바로 이런 말이 쓰인 깃발을 들고 너에게 대항하여 너의 사원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너의 사원이 있던 곳에는 새로운 건물이 세워질 것이고, 무서운 바벨탑이 새롭게 세워질 것이니, 비록 그것은 이전 것과 마찬가지로 완성되진 못하겠지만, 하지만 어쨌거나 너는 이 새로운 탑을 피하여 인간들의 고통을 천 년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천 년간 탑을 세우느라 괴로워하다가 결국엔 우리에게로 올 테니까!

그들은 그러면 다시금 지하의 숨겨진 카타콤을 샅샅이 뒤져 우리를 찾아낼 테고(우리는 다시금 추방당하고 박해받을 테니까) 우리를 향해 울부짖겠지. 우리를 먹여 살려 주십시오, 우리에게 천상의 불을 약속했던 그들은 그것을 주지 않았습니다.라고. 그때 우리는 비로소 그들의 탑을 완성시킬 것이다. 무릇 먹을 것을 주는 자가 탑을 완성하는 법인데, 오직 우리만이 너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줄 테니까, 너의 이름이라는 건 물론 거짓말이지만.

오, 우리가 없다면 그들은 결코, 결코 스스로 먹을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여전히 자유로운 채로 남아 있는 한, 어떤 학문도 그들에게 빵을 주지 못할 것이니, 그들은 결국에 가선 자신들의 자유를 우리의 발아래로 갖다 바치면서 우리에게 '차라리 우리를 노예로 삼아도 좋으니 먹여 살려 주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자유라는 것과 누구에게나 넘쳐 날 만큼의 지상의 빵이란 서로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자기네들끼리 그것을 분배할 능력이 없는 족속이니까!"


또한,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점도 확신하게 될 텐데, 왜냐하면 그들은 나약하고 악덕하고 하찮은 반역자들일뿐이니까. 너는 그들에게 천상의 빵을 약속했지만, 다시금 반복하건대, 그것이 약하고 영원히 악덕하고 영원히 배은망덕한 인간 종족의 눈에 과연 지상의 빵에 비길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천상의 빵의 이름으로 수천, 수만 명의 인간들이 너의 뒤를 따른다고 해도, 천상의 빵을 위해 지상의 빵을 멸시할 만한 힘이 없는 수백만 명, 수억 명의 인간들은 어떻게 될까? 너에게는 고작해야 수만 명에 불과한 위대하고 강한 자들이 더 소중하고, 나머지 수백만 명, 약하지만 너를 사랑하는, 바다의 모래알 같은 수많은 인간들은 그저 위대하고 강한 사람들을 위한 재료가 되어야 한단 말이냐? 천만에, 우리에게는 약한 자들도 소중해.

그들은 악덕으로 똘똘 뭉친 반역자들이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들이야말로 고분고분한 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그들의 선두에 서서 그들의 자유를 대신 견뎌 줌으로써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에 동의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경외심을 가질 것이며 우리를 신으로 간주할 것이니 - 그리하여 그들에게 있어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결국에 가서는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에게 복종하고 있으며 너의 이름으로 그들 위에 군림하노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그들을 다시 기만하게 될 것인데, 네가 우리에게 오는 걸 더 이상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거든. 바로 이 기만 속에 우리의 고통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니,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광야에서의 이 첫 번째 물음이란 바로 이런 의미를 지녔던 것이고, 네가 그 무엇보다도 높이 평가했던 자유의 이름으로 거부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야.


누구 앞에 경배할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 속에는 이 세계의 위대한 비밀이 도사리고 있었다. '빵'을 받아들였다면, 너는 개개의 인간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총체적이고 영구적인 우수에 대한 해답을 함께 줄 수 있었을 것이니 - 그건 다름 아니라 '누구 앞에 경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자유를 얻고 나면 인간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경배할 대상을 찾는 것보다 더 끊임없고 더 고통스러운 근심거리는 없는 법.


하지만 인간이 찾는 그 대상이란 이미 확실하기에,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일시에 만장일치로 그 앞에 함께 경배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이는 이 가련한 피조물들은 나나 다른 사람이 경배할 수 있는 대상을 찾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를 믿고 그 앞에 경배할 수 있는, 반드시 모든 사람이 함께 경배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찾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기 때문이지,


자, 바로, '경배를 하긴 하되 공동으로 해야 한다'는 요구야말로 인간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인류 전체로건 태초부터 골머리를 앓아 온 주된 문제인 것이다. 공통적으로 함께 경배하기 위해 그들은 서로서로를 검으로 박멸해 나갔지. 그들은 신들을 창조했고 서로서로에게 '너희의 신들을 버리고 와서 우리의 신들 앞에 경배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와 너희 신들에게 죽음이!'라고 호소했지.

이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심지어 세상에서 신들마저도 사라져 버릴 그때까지 그렇게 될 것이다. 신이 있든 말든, 우상들 앞에 엎드릴 테니까. 너는 알고 있었어, 인간 본성의 이 근본적인 비밀을 네가 몰랐을 리도 없지만, 너는 모든 인간들이 확실히 네 앞에 경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너에게 제안된 유일하고 절대적인 깃발을 - 지상의 빵이라는 깃발을 거부했고, 그것도 자유와 천상의 빵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한 것이다.


양심의 자유와 부담


자, 그럼, 네가 그다음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살펴봐라. 이번에도 또 자유의 이름을 내걸었어! 분명히 말하건대, 인간이라는 이 불행한 존재에겐 태어나면서부터 받은 이 자유의 선물을 넘겨줄 대상을 한시라도 빨리 찾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근심거리는 없다. 하지만 인간들의 자유를 지배하는 자는 오직, '그들의 양심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자'뿐이다.


빵과 함께 너에게는 확실한 깃발이 주어졌다. 빵보다 더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빵을 주면 인간은 경배할 것이지만, 그러나 동시에 너 이외의 누군가가 그의 양심을 지배하게 된다면 - 오, 그러면 인간은 너의 빵마저도 버리고 자신의 양심을 사로잡는 그자를 따를 것이다. 이 점에서 너는 옳았어. 왜냐면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에 있으니까.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에 대한 확고한 관념이 없다면 인간은, 설령 그의 주위가 온통 빵 천지라 할지라도, 사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지상에 남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박멸할 것이다.

그래, 이건 그렇다고 쳐도, 실제로는 어떤 결과가 나왔느냔 말이다. 너는 인간들의 자유를 지배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지 않았는가! 아니, 설마 너는 인간에게 있어 안정, 심지어 죽음이 선악의 인식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선택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잊었던 것이냐? 인간에게 양심의 자유보다 더 매혹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하지만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도 아무것도 없지.

자, 인간의 양심을 단번에 영원히 안정시킬 확고한 근거들 대신에 - 너는 전부 비상하고 아리송하고 애매모호한 모든 것을 선택, 즉 전부 인간들의 힘으론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마치 그들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어 버렸으니 - 더욱이 이렇게 한 자가 도대체 누구냔 말이다. 그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으러 온 그자가 아니더냐! 인간의 자유를 지배하는 대신에 너는 그것을 증대해서 인간의 영혼의 왕국에 영원토록 고통의 짐을 지워 준 것이었다.

너는 인간이 너에게 매혹되고 사로잡힌 채 자유롭게 너를 따를 수 있도록 자유로운 사랑을 바랐다. 앞으로 인간은 확고한 고대의 법칙 대신, 그저 너의 형상만을 자기 앞의 길잡이로 삼은 채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가를 자유로운 마음으로 몸소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됐다 - 하지만 너는 선택의 자유와 같은 무서운 짐이 인간을 짓누른다면 결국에 가서 그가 너의 형상과 너의 진리를 거부하고 논박을 하리라는 걸 정녕 생각하지 못했더냐?


그들은 결국에 가서는 '진리는 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소리칠 것인데, 왜냐면 그들에게 그토록 많은 근심거리와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을 남겨 줌으로써 너는 그들을 그 무엇보다도 큰 혼란과 고통 속에 방치한 셈이니까. 이런 식으로, 네가 직접 자신의 왕국을 파괴할 기초를 마련한 것이 됐으니, 이 점에서 그 누구도 더 이상 비난하지 마라. 실상, 네가 제안받았던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더냐?


기적의 유혹


세 가지 힘이, 이 나약한 반역자들의 양심을 영원토록 정복하고 사로잡을 수 있는 힘, 그들의 행복을 위한 지상의 유일한 세 가지 힘이 있으니 - 이 힘이란 기적, 신비, 그리고 권위이다. 너는 이것도 저것도 세 번째 것도 거부했고, 몸소 그 모범을 보여 주었다.


무섭고도 현명한 정신이 너를 사원의 꼭대기에 세워 놓고 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지.

'네가 하느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면, 아래로 뛰어내려라, 왜냐하면 그자에 대해서는 천사들이 그를 받아 데려갈 것이므로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요 상처를 입지도 않을 것이라 쓰여 있으니까, 그렇다면 네가 하느님의 아들인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이고 또 그렇다면 너의 아버지에 대한 너의 믿음이 어떤 것인지 증명될 것이다.'


하지만 너는 다 듣고서도 이 제안을 거절했으며, 굴복하여 아래로 뛰어내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 물론, 너는 이때 신처럼 오만하고 훌륭하게 행동했지만, 그러나 사람들, 반역적인 이 허약한 종족 - 이자들이 어디 신이더냐? 오. 너는 그때 한 발짝만 내디뎠더라도, 아래로 몸을 던질 태세만 취했더라도 그 즉시 주님을 시험한 것이 되고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전부 잃은 것이 되므로, 네가 구원하려고 온 이 땅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며 이로써 너를 유혹했던 영리한 정신은 기뻐서 펄펄 날뛸 것임을 이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반복하건대, 너와 같은 자들이 어디 많더냐? 또한 정녕 너는 인간들도 이와 유사한 유혹을 단 일 분이 라도 견뎌낼 힘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허용할 수 있었던 것이냐? 인간의 본성이란 것이 인생의 무서운 순간에도 기적을 거부할 수 있도록, 가장 무섭고 근본적이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영혼의 질문들이 던져진 순간에도 오직 마음의 자유로운 선택만을 가진 채로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창조되었단 말이냐?

오, 너는 너의 위업이 성경에 보존되어 시간의 심연과 이 땅의 마지막 극단들에까지 다다를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인간도 너를 따라서 기적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신과 함께 머물길 희망했다. 하지만 너는 인간이 기적을 거부하는 그 순간 곧바로 신을 거부하게 될 것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던 것이니, 인간은 신보다는 기적을 추구하는 법이거든.

인간이란 기적 없이 남아 있을 힘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새로운 기적을, 자기 자신의 기적들을 잔뜩 만들어 낼 것이며 백번이나 반역자에 이단에 무신론자였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마법사의 기적, 아낙네들의 마법 앞에 고개를 숙일 것이다. 너는 사람들이 너를 조롱하고 약 올리면서 너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와 봐라, 그러면 우리는 네가 정말 그자라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라고 외쳤을 때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네가 내려오지 않은 것은 이번에도, 인간을 기적의 노예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기적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믿음을 갈망했기 때문이었다. 자유로운 사랑을 갈망했지, 인간이 단번에 영원토록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위력 앞에서 불가항력적이고 노예적인 황홀에 빠지는 것을 갈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은 약하고 비열하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도 너는 인간들을 너무도 높이 평가했는데, 그들은 비록 반역자로 창조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물론 노예들이거든. 주위를 둘러보고서 판단해 봐라, 이렇게 15세기가 지났으니 가서 그들을 한번 봐라. 네가 너 자신의 지위로까지 올려놓은 자가 과연 어떤 자들이냐? 맹세코, 인간은 네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고 저급하게 창조되었단 말이다!


인간이 네가 행한 것을 행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을 너무도 존경한 나머지 너는 마치 그를 더 이상 동정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 꼴이 돼 버렸고, 이는 인간으로부터 너무도 많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 그것도 인간을 자기 자신보 다 더 많이 사랑했던 그자, 바로 그자가 말이다! 인간을 덜 존경했더라면, 그래서 인간에게서 더 적은 것을 요구했더라면, 이것이 더 사랑에 가까웠을 것인데, 인간의 짐이 더 가벼웠을 테니까 말이다.

인간은 약하고 비열하다. 인간이 지금 곳곳에서 우리의 권력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그 자신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한들 뭐가 어떻단 말이냐? 이것은 어린 아이나 초등학생의 오만함에 지나지 않아. 이것은 교실에서 소란을 일으켜 선생님을 내쫓은 어린아이들의 짓이란 말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황홀도 끝날 것이고, 그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를 것이다. 그들은 사원을 뒤엎고 땅을 피로 물들이겠지.

하지만 이 어리석은 아이들도 자신들이 반역자이긴 하되, 자신의 반역조차도 감당해 낼 힘이 없는 허약한 반역자에 불과하다는 걸 결국에 가선 깨닫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눈물을 쏟아 내면서 그들은 마침내, 그들을 반역자로 창조한 자가 틀림없이 자신들을 조롱하고자 그랬던 것임을 깨닫게 되는 거야.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절망에 빠졌기 때문일 테지만, 일단 그들에 의해 말해진 것은 신성 모독이 될 것이며 이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불행해질 것인데,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이란 신성 모독을 참아 낼 재간도 없는 것인지라 궁극적으론 언제나 제 손으로 그것에 대한 복수를 하게 될 테니까.


그리하여 불안, 혼돈, 불행 - 바로 이것이 네가 인간들의 자유를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을 감내한 이후 그들에게 주어진 지금의 운명이란 말이다! 너의 위대한 예언자는 환시(幻視)와 우의(寓意)로 말하길,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한 모든 자들을 보았으며 그들은 각 지파당 만 2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이 그토록 많았다고 할지라도, 그들도 사람이 아니라 신과 같은 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너의 십자가를 참아 냈고 메뚜기와 풀뿌리로 연명하면서 굶주리고 헐벗은 광야를 수십 년이나 참아 냈으니 - 물론 너는 이 자유의 아이들을, 너의 이름을 기치로 내걸고 이 자유로운 사랑과 자유롭고 훌륭한 희생을 보여 준 아이들을 자랑스럽게 가리킬 수 있겠지. 하지만 그들은 고작해야 몇 천 명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신이었다는 점을 기억해라,

그렇다면 나머지들은? 나머지 약한 인간들, 강력한 자들이 참아 낸 것을 참아 낼 수 없었던 그자들은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이냐? 그토록 무서운 선물들을 감당해 낼 힘이 없는 약한 영혼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이냐? 아니, 정말 그야말로 너는 그저 선택받은 자들에게로,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서 온 것이었던 말이냐?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여기엔 신비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니 우리가 이해할 바 아니지. 그런데 설령 신비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신비를 포교할 권리가, 중요한 것은 그들의 마음의 자유로운 결정이나 사랑이 아니라 신비이다, 이 신비에 그들은 맹목적으로 심지어 그들의 양심을 거역하고서라도 복종해야 한다, 하고 그들에게 가르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도 우리는 그렇게 했다.


우리는 너의 위업을 수정하여 그것을 기적, 신비, 권위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자 인간들은 자기들을 다시금 양 떼처럼 이끌어 주고 자기들에게 그토록 끔찍한 고통을 갖다 준 그토록 끔찍한 선물을 드디어 거두어 주었다고 기뻐했다. 우리가 이렇게 가르치고 이렇게 행한 것이 옳았던 것이냐, 말해 봐?


인간의 무력함을 그토록 겸손하게 인정하고 사랑으로 인간의 부담을 덜어 주고 인간의 허약한 천성을 감안하여 심지어 우리의 허락만 있으면 그 죄마저도 용서해 주었건만, 정녕 우리가 인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냐? 도대체 이제 와서 뭣 하러 우리를 방해하러 온 거냐?


게다가 왜 그리 유순한 눈으로 말없이 나를 꿰뚫을 듯 바라보는 거냐? 화를 내 봐라, 나는 너의 사랑 따윈 원하지 않아, 나 역시 너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너한테 숨길 것이 뭐가 있겠느냐? 아니면, 내가 지금 누굴 상대로 얘기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줄 아느냐? 내가 너에게 얘기할 것을 너는 이미 모두 알고 있어, 그건 네 눈을 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권위의 유혹


이런데도 내가 너에게 우리의 비밀을 숨길 줄 아느냐? 어쩌면 너는 그것을 내 입으로 직접 듣고 싶겠지, 그렇다면 들어 봐라. 우리는 너의 편이 아니라 그의 편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비밀이란 말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미 8세기 전부터 네가 아니라 그와 함께했다. 정확히 8세기 전에 우리는 네가 격노하면서 그에게서 거부했던 것, 그가 지상의 모든 왕국들을 너에게 보여 주면서 너에게 제안한 마지막 선물을 취했다. 그에게서 로마와 카이사르의 검을 취했고 오로지 우리만이 지상의 황제, 그것도 유일한 황제라고 선포했으니, 비록 지금까지도 우리의 과업을 미처 완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게 누구의 죄란 말이냐? 오, 이 과업은 지금까지도 그저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어떻든 시작되긴 한 거다. 그것이 완수되려면 아직 오래 기다려야 되고 이 땅은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겠지 만, 하지만 우리는 거기에 도달하여 카이사르가 될 것이고, 그때는 이미 인간들의 전 세계적인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너는 그때 이미 카이사르의 검을 거머쥘 수 있었어.

도대체 왜 너는 이 마지막 선물을 거부했느냐? 강력한 정신의 이 세 번째 충고를 받아들임으로써 너는 인간이 지상에서 찾고 있는 모든 것을 채워 줄 수 있었건만. 즉, 누구 앞에 경배할 것인가, 누구에게 양심을 맡길 것인가, 끝으로 어떤 식으로 모든 사람들을 확실한 공통의 조화로운 개미집 속에 결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 말인데, 이는 전 세계적인 결합에의 요구야말로 사람들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고통이기 때문이지.

인류는 언제나 기필코 전 세계적인 총체를 이룩하고자 노력해 왔다. 위대한 역사를 지닌 위대한 민족들은 많았지만, 이 민족들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욱더 불행해졌는데, 이는 다른 민족들보다 사람들의 전 세계적 결합에 대한 요구를 더 강하게 의식했기 때문이지.

위대한 정복자들, 저 티무르들과 칭기즈칸들은 전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이 땅을 회오리처럼 휩쓸고 다녔지만, 그들마저도 비록 무의식적으로이긴 하지만 전 세계적이고 총체적인 통일을 향한 인류의 가장 위대한 요구를 표현했던 것이다. 카이사르의 세계와 왕의(王衣)를 받아들여야만, 전 세계적인 왕국을 건설하고 전 세계적인 안정을 줄 수 있는 법.

그러니까 인간들의 양심을 지배하고 그들의 빵을 손아귀에 거머쥔 자들이 아니라면, 누가 그들을 지배할 것인가 말이다. 우리는 카이사르의 검을 거머쥐었으며, 그것을 거머줌으로써 물론 너를 거부하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오. 자유로운 지성이, 그것의 과학과 식인주의가 미쳐 날뛰는 세기들이 좀 더 지속될 것이니, 이는 우리를 빼놓고 자기들만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한 만큼 결국엔 식인주의로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우리에게 짐승이 기어 와 우리의 발을 핥을 것이고, 자신의 눈에서 나오는 피눈물로 그것을 물들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짐승 위에 올라타 금잔을 들어 올릴 것이니, 거기에는 '신비!'라고 쓰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직 그때에야, 그때에야 인간들을 위한 평온과 행복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영원한 복종


그래, 어떤가, 우리말이 옳으냐, 아니면 거짓말이냐? 어쨌건 그들은 우리가 옳다는 것을 확신할 것인데, 이는 너의 자유가 그들을 얼마나 끔찍한 노예 상태와 혼돈으로 이끌었는지를 상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허약하고 불행한 자들 은 우리의 발아래로 기어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울부짖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옳고 당신만이 그분의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렇게 당신에게 돌아왔으니,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그들은 우리에게서 빵을 받으면서 우리가 그들의 빵을, 그것도 바로 그들 자신의 손으로 획득한 빵을 그들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 무슨 기적 나부랭이도 행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가져간다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될 것이며, 우리가 돌덩어리를 빵으로 바꾼 것이 아님을 보게 될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빵 자체보다는 그 빵을 우리의 손에서 받고 있다는 그 사실에 기뻐 날뛸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게로 돌아온 이후에는 돌덩어리 자체가 그들의 손 안에서 빵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기억할 테니까.

단번에 '영원히 복종'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그들은 너무도, 너무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인간들은 불행해질 것이다. 말해 봐라, 이런 몰이해를 제일 많이 조장한 자가 누구란 말이냐? 누가 양 떼를 분산시켜 미지의 길로 뿔뿔이 흩어 놓았단 말이냐? 그래 봤자, 양 떼는 새로이 모여 새로이 복종하게 될 것이며, 이제는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조용하고 겸손한 행복을, 원래 타고나길 허약한 존재들에게 알맞은 행복을 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허약한 자들, 그저 애처로운 어린애들에 불과하지만 어린아이의 행복이 그 어떤 것보다 더 달콤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증명할 것이다. 그들은 잔뜩 겁을 집어먹고 우리를 우러러볼 것이며 두려움에 떨면서 마치 어미 닭의 품을 찾는 병아리 새끼들처럼 우리에게 바싹 달라붙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놀라고 경외심을 가질 것이며, 우리가 이토록 강력하고 현명하여 폭풍우처럼 날뛰던 수십억의 양 떼를 길들일 수 있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우리가 진노라도 할라치면 그들은 곧 힘을 잃고 벌벌 떨 것이며 그들의 머리는 겁을 먹고 그들의 눈은 어린 아이나 여자처럼 걸핏하면 눈물에 젖겠지만, 우리가 손끝만 까딱해도 그들은 금세 너무도 쉽게 즐거워하면서 웃을 것이며 해맑게 기뻐하고 어린아이처럼 행복하게 노래를 부를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들에게 노동을 시키겠지만,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에는 그들을 위해 어린아이들의 노래와 합창, 순진무구한 춤으로 가득 찬, 어린아이들의 놀이와 같은 삶을 만들어 출 것이다. 오, 우리는 그들의 죄도 용서해 줄 것이니, 그들은 약하고 힘없는 자들인지라 자신들이 죄를 짓는 것마저도 허락한다는 이유로 우리를 어린아이들처럼 사랑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허락을 받고 행해진 것이라면 어떤 죄든 사하여질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죄짓는 것을 허락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이 죄에 대한 벌은 응당 우리가 떠맡겠노라고. 그렇게 정말로 우리가 그것을 떠맡을 것이고, 그들은 우리를 하느님 앞에서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진 은인인 양 떠받들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비밀도 숨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아내나 정부와 함께 살지 말지를, 아이를 가질지 말지 등 모든 것을 - 그들의 복종의 여부에 따라서 - 허락하든지 금지하든지 할 것이며, 그들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우리에게 복종할 것이다.

그들은 양심의 가장 고통스러운 비밀들을 전부, 그야말로 전부 우리에게 가져올 것이고, 우리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며, 그러면 그들은 우리의 결정을 기쁜 마음으로 믿을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하는 지금의 끔찍한 고통과 거대한 근심으로부터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이기 때문이지. 따라서 그들을 통치하는 수십만 명의 사람을 제외하면 수백만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그저 우리만이, 비밀을 간직한 우리만이, 오직 우리만이 불행해질 테지. 이렇게 수 십억의 행복한 갓난애와 선악의 인식이라는 저주를 떠맡은 수십만 명의 수난자들이 있게 되겠지. 그들은 조용히 죽어 가고, 너의 이름으로 조용히 사라질 것이며 무덤 뒤에서 오직 죽음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밀을 간직한 채 다름 아닌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천상의 영원한 보상을 미끼로 내걸고 그들을 유혹할 것이다. 왜냐면 설사 저세상에 뭔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물론 그들과 같은 자들을 위한 것은 아닐 테니까. 사람들의 말이나 예언에 따르면 네가 와서 다시 승리할 것이며 너의 선택받은 자들, 너의 오만하고 강력한 자들과 함께 올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은 오직 자기 자신을 구원했을 뿐이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했노라고 말할 것이다.

또, 짐승 위에 올라타 신비를 손에 쥐고 있는 탕녀가 치욕을 당할 것이라고. 나약한 자들이 다시금 반역을 일으켜 그녀의 왕의를 갈기갈기 찢고 그녀의 '더러운' 몸뚱어리를 발가벗겨 보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때 분연히 일어나서 너에게 죄라는 것을 몰랐던 수십억의 행복한 갓난애들을 가리켜 보일 테다. 그들의 행복을 위해 그들의 죄를 스스로 떠맡았던 우리들, 그 우리는 네 앞에 서서 말할 것이다. '할 수 있다면, 감히 그럴 용기가 있다면, 우리를 심판해 보라.'라고.

꼭 알아 둬, 나는 네가 두렵지 않아. 꼭 알아 두라고, 나도 한때 광야에 있었고 나도 메뚜기와 풀뿌리로 연명했으며, 나도 네가 사람들을 축복해 주었던 그 자유를 나도 축복했고 '수를 채우고 싶은' 열망을 품고 너의 선택받은 자들, 강력하고 강한 자들의 대열에 합류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하지만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러자 이 광기에 봉사하는 것이 싫어졌어. 나는 돌아와서 너의 위업을 수정한 자들의 무리에 합류했다. 나는 오만한 자들을 떠나, 겸손한 자들의 행복을 위해 이 겸손한 자들에게로 돌아왔다.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실현될 것이며 우리의 왕국은 건설될 것이다.

너에게 반복하건대, 내일이면 너는, 내가 손끝을 까딱하기가 무섭게 네가 우리를 방해하러 왔다는 이유로 너를 태워 버릴 저 장작불에 뜨거운 석탄을 집어넣기 위해 달려들 저 온순한 양 떼를 보게 될 것이다.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의 장작불로 태워 버릴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너니까. 내일 너를 화형에 처하겠다. 내 말은 끝났다.(Dixi.)


이반은 여기서 말을 멈추었다. 그는 말을 할 때는 열렬히 흥분한 나머지 열광적으로 말했지만, 말을 끝마치자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형의 말을 줄곧 말없이 듣고 있었지만 끝에 가서는 굉장히 흥분해서 형의 말을 수도 없이 가로막으려고 했지만 분명히 자제하고 있었던 알료샤가 갑자기 자리에서 툭 튕겨 나듯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 돼!" 그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소리쳤다.

"형의 서사시는 형이 원했던 것과는 달리…… 예수님에 대한 찬양이야, 비난이 아니라. 누가 형이 말하는 자유를 믿겠어? 자유를 정말 그렇게, 그렇게 이해해야 한단 말이야! 그게 정교의 해석이라니. 아니, 이건 로마의 해석이야, 그래, 그나마 로마 전체의 해석도 아니야, 이건 거짓말이야 - 이건 가톨릭의 최고 악질들, 심문관들, 예수회 교도들의 해석이야……!


게다가 형의 심문관처럼 환상적인 인물은 아예 있을 수도 없어. 그가 스스로 떠맡은 사람들의 죄란 도대체 뭘 말하는 거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어떤 저주를 스스로 떠맡은 이 비밀의 담지자들은 또 뭐냐고? 예수회 교도들이란 우리도 알고 있어, 그들은 전혀 아니야, 그들은 그저, 로마의 황제와 최고 성직자를 선두에 내세운, 미래의 전 세계적인 지상의 왕국을 꿈꾸는 로마의 군대에 불과하고…… 자신들이 지주가 될 미래의 농노제와 같은 거…… 이게 그들의 전부야. 그들은 어쩌면 하느님을 믿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 잠깐, 잠깐만." 이반이 웃었다. "녀석, 대단히 흥분했군. 환상이라고, 뭐 그럼 어때! 물론 환상이지. 하지만 말이다. 너는 정말로, 최근 몇 세기 동안 가톨릭의 이 모든 운동이 정말로, 그저 지저분한 행복을 얻으려는 권력욕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너에게 그렇게 가르친 사람이 파이시 신부 아니냐?"

"아니야, 아니야, 파이시 신부는 오히려 형과 비슷한 말을 하신 적이 있어…… 하지만, 물론 달라, 전혀 다른 맥락이었어." 알료샤가 갑자기 엎치락뒤치락 말을 고쳤다.


"비록 한 사람이라도 나의 늙은 심문관과 같은 사람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렴. 그는 그 자신이 광야에서 풀뿌리로 연명하여 스스로를 자유롭고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정복해 가면서 미친 듯 몸부림쳤지만, 그럼에도 평생 동안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가 갑자기 눈을 떠서 의지의 완성에 도달하는 정신적인 지복(至福)은 위대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그와 동시에 나머지 수백만 명의 신의 창조물들은 그저 조롱받기 위해서 창조되었음을, 그들은 자신의 자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수도 없음을, 이런 애처로운 반역자들에게서는 절대로 탑을 완성시킬 거인이 나올 수 없음을, 이런 거위들을 위해 위대한 이상주의가 자신의 조화를 꿈꾸었던 건 아님을 확신하게 된 거야. 이 모든 것을 깨닫고서 그는 돌아와서 영리한 사람들 편에 합류했던 거지. 정말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


"그가 합류한 영리한 사람들이란 도대체 뭐야?" 거의 열에 들떠 알료샤가 소리쳤다.

"그들에겐 그런 지혜도, 그런 신비와 비밀도 전혀 없어……. 그저 무신(無神) 하나뿐이야,

바로 이게 그들의 비밀의 전부라고. 형의 대심문관은 신을 믿지 않아, 바로 이게 그의 비밀의 전부야!"


"설령 그렇더라도! 결국엔 너도 눈치챘구나. 정말로 그래, 정말로 오직 거기에 비밀이 전부 들어 있지, 하지만 이것은 그와 같은 사람, 즉 자신의 일평생을 광야의 위업을 위해 바쳐 놓고도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완치되지 못한 이 사람에게 있어서는 정녕 고통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황혼 무렵에 그는 오직 위대하고 무서운 정신의 충고만이 나약한 반역자들을, 저 '조롱받기 위해 창조된 미완성의 시험용 존재들을 그나마 그래도 얼마간이라도 참아 줄 만한 질서 속에서 살도록 해 줄 수 있다'는 분명한 확신에 이른 거야.

자, 이런 확신을 갖게 되자, 그는 영리한 정신이자 죽음과 파괴의 무서운 정신의 지시에 따라 나가야 하며 이것을 위해서는 거짓과 기만을 받아들여야 하고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죽음과 파멸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이 이 길을 가는 내내 그들이 어디로 인도되고 있는지를 알아채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동안만이라도 이 애처로운 눈먼 자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기만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거야.

어쩌면 로마의 최고 성직자들 중에도 이런 유일한 자들이 있었는 지도 모르지. 누가 알 게 뭐냐, 어쩌면 그토록 고집스럽고 그토록 자기 나름대로 인류를 사랑하는 이 저주받은 노인이 지금도 이런 부류의 수많은 유일한 노인들끼리 완전한 무리를 이루어 존재할 수도 있고, 그것도 전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비밀을 지키기 위해, 즉 불행하고 나약한 사람들로부터 그 비밀을 지켜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이미 오래전에 조직된 결사나 비밀 동맹으로서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고.

이런 자는 반드시 있어, 아니, 꼭 있어야만 해. 내 생각엔 프리메이슨도 그 밑바닥엔 이런 비밀과 비슷한 뭔가가 있는 것 같고, 그래서 가톨릭교도들은 프리메이슨 회원들을 그렇게 증오하면서 그들을 경쟁자로, 이념의 단일성을 분쇄하는 자로 보는 거 야, 양 떼는 하나여야 하고 목자도 하나여야 하는데 말이야……. 그나저나, 이렇게 내 사상을 옹호하다니, 꼭 너의 비평을 참지 못한 저자인 양 굴고 있군. 이 얘긴 그만하자."


"형은 신을 믿지 않아." 이렇게 덧붙이는 그는 이미 굉장히 슬퍼하고 있었다. 더욱이 형이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형의 서사시는 어떻게 끝나지?" 그가 갑자기 땅바닥을 보면서 물었다. "아니면 벌써 끝난 거야?"

"나는 그것을 이렇게 끝내고 싶었어."


"대심문관은 입을 다물었을 때, 자신의 죄수가 그에게 무슨 대답을 해 주길 얼마 동안 기다리지. 그는 상대방의 침묵이 괴로웠어. 그는 수인(囚人)이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줄곧 무슨 반박을 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는 듯 그의 말을 조용히 꿰뚫을 듯 듣고 있는 것을 보았지. 노인은 상대방이 씁쓸하고 무서운 말이라도 좋으니 무슨 말이든 좀 해 주었으면 싶었어.

하지만 그는 갑자기 말없이 노인에게로 다가와, 아흔 살 먹은 그 핏기 없는 입술에 조용히 입을 맞추는 거야. 자, 바로 이게 대답의 전부야.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지. 그의 입술 양 끝이 어쩐지 파르르 떨렸어.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그에게 말해. '어서 가라, 그리고 다시는 오지 마라 두 번 다시 오지 말란 말이다 절대로, 절대로!'라고. 그러고는 그를 '도시의 어두운 광장으로 풀어 주는 거야. 죄수는 그렇게 떠나가."


[출처 구글 이미지]


"그러니까 형은 그의 편이지, 형도 그런 거지?" 알료샤가 괴로워하며 소리쳤다. 이반은 웃기 시작했다.

"이건 헛소리야, 알료샤, 이건 정말이지, 시라고는 절대 단 두 줄도 써 본 적이 없는 철부지 대학생이 쓴 철부지 서사시에 불과한 거야. 너는 뭣 때문에 이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니? 설마 내가 그의 위업을 수정하는 사람들의 무리에 서기 위해 지금 당장 그리로, 곧장 예수회 교도들에게로 가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지? 내가 너한테 말했잖니, 서른 살까지만 질질 끌다가 그때 가서는 - 술잔을 마룻바닥에 내동댕이칠 거라니까!"


"그럼, 끈적이는 이파리는, 소중한 무덤들은, 푸른 하늘은, 사랑하는 여인은 어떻게 되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거야, 어떻게 이런 것들을 사랑할 거야?" 알료샤는 괴로워하며 소리쳤다.

"가슴과 머릿속에 그런 지옥을 간직한 채 그게 가능하긴 한 거야? 그게 아니라면 형은 자살을 할 거야, 견뎌 내지 못할 거라고!"


"모든 것을 견뎌 낼 그런 힘이 있어!" 이반은 이미 차가운 냉소를 띠며 말했다.

"어떤 힘인데?"

"카라마조프의 힘…… 카라마조프적인 저열함의 힘이지."

"그건 방탕에 흠뻑 빠지는 것, 부패 속에서 영혼을 질식시키는 것이지, 그렇지, 그렇지?"

"뭐 그렇다고 치자, 그리고 그건…… 오직 서른 살까지는 피할 수도 있겠지만, 그다음엔…… "

"그게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이 말이지? 모든 것이 허용된다, 그렇지, 그런 거지?"


이반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어쩐지 이상하게 창백해졌다.

"아, 이건 어제의 말을 네가 받아친 거로…… 미우소프를 그토록 언짢게 만들었고 드미트리 형도 그토록 순진하게 벌떡 일어나서 재탕했던 그 말이지?" 그가 일그러진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모든 것이 허용된다. 일단 말이 한번 내뱉어졌다면야. 부정하지는 않으마. 게다가 미첸카의 편집도 나쁘진 않았지." 알료샤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알료샤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에게로 다가가서는 말없이 조용하게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표절이로구나!" 이반은 이렇게 소리쳤는데, 갑자기 어떤 환희마저 내비쳤다.

"넌 이걸 내 서사시에서 훔쳤어! 고맙다, 어쨌거나. 이젠 일어나, 알료샤, 그만 가자, 너도 나도 때가 됐잖니."

그들은 밖으로 나왔지만, 술집의 현관 곁에 멈추어 섰다.


"그러니까 말이야, 알료샤." 하고 이반이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너는 오른쪽으로, 나는 왼쪽으로 가는 거야 - 됐어, 듣고 있니, 됐다고. 다시 말해서, 내일 내가 떠나지 않아서(아마 떠날 것 같긴 하다만) 우리가 어떻게든 다시 만난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이런 주제들에 대해선 나한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렴. 간곡히 부탁하마. 그리고 드미트리 형에 대해서도 역시나 특별히 너한테 부탁하는데, 나한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마라." 그는 갑자기 짜증스럽게 덧붙였다.


"너한테 한 가지를 약속하마. 서른 살쯤 되어 내가 '술잔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싶어질 때, 네가 어디에 있든 어쨌거나 나는 다시 한번 너와 이야기를 나누러 찾아가겠어. 아메리카에서라도 달려갈 테니, 일부러라도 찾아가마. 그때 너는 어떤 모습일까? 정말로 이렇게 헤어지면, 우리는 아마 칠 년쯤, 십 년쯤 못 볼지도 몰라. 자, 이제 너의 세라피쿠스 신부(Pater Seraphicus)에게 가 봐라, 그는 죽어 가고 있잖니. 너 없이 죽으면 아마 내가 너를 붙잡아 두었기 때문이라면서 나한테 화를 낼지도 모르지. 이제 가 봐…….


이반은 갑자기 몸을 돌려서 제 갈 길을 갔는데, 이제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어제 드미트리 형이 알료샤에게서 떠나갈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비록 어제는 전혀 다른 종류이긴 했지만. 이 이상한 느낌은 이 순간 가뜩이나 슬펐던, 가뜩이나 슬프고 애잔했던 알료샤의 머릿속을 화살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잠깐 기다렸다.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이반 형이 어쩐지 비틀거리듯 걸어가고 있으며 그의 오른쪽 어깨가 뒤에서 보니 왼쪽보다 더 축 처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도 몸을 돌려서 거의 뛰다시피 수도원으로 갔다. 이미 몹시 어두워졌으며, 그는 거의 무섭기까지 했다. 그는 거의 뛰어가고 있었다. ‘‘세라피쿠스 신부’라니, 형은 이 이름을 어디선가 가져온 거야 ─ 대체 어디서 가져온 걸까?’ 알료샤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물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반, 가엾은 이반, 이제 언제쯤 형을 보게 될까……. 암자까지 다 왔군, 주여! 그래, 그래, 그분이야, 그분이 세라피쿠스 신부야, 그분이 나를 구원해 주실 거야…… 형에게서 영원히!’


그는 아침만 해도, 아니 고작 몇 시간 전만 해도 기필코 드미트리 형을 찾아야겠다고, 이날 밤에 수도원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찾지 못하면 시내를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했건만, 이반과 헤어진 이후엔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드미트리 형을 깡그리 잊을 수 있었던가를 훗날 살아가면서 몇 번이나 회상하며 대단히 의아스러워하곤 했다.


6 아직은 몹시 막연한 우수


이반 표도로비치는 알료샤와 헤어진 후 집으로,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으니, 갑자기 그에게 참기 힘든 우수가 엄습했으며 무엇보다도,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그것은 점점 더 커졌던 것이다. 이상한 건 우수 자체가 아니라, 이반 표도로비치가 어떻게 해도 그 우수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규정지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마침내 이반 표도로비치는 가장 추악하고 짜증스러운 기분 상태에서 아버지의 집에 다다랐는데, 쪽문으로부터 대략 열다섯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 대문 안을 힐끔 들여다보고서 갑자기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불안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를 대번에 알아챘다.


대문 옆 벤치에는 머슴 스메르쟈코프가 신선한 저녁 공기를 쐬며 앉아 있었는데, 이반 표도로비치는 그를 딱 보자마자 자신의 영혼 속에도 머슴 스메르쟈코프가 앉아 있었으며 바로 저 인간을 자신의 영혼이 참아 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까 알료샤가 스메르쟈코프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할 때부터 갑자기 뭔가 음울하고 역겨운 것이 그의 심장을 푹 찌르면서 그 즉시 그의 내부에서 반사적인 악의를 불러일으켰다.


증오의 추이가 이렇게까지 날카로워진 까닭은 바로, 처음, 즉 이반 표도로비치가 우리 도시에 도착한 직후와는 완전히 다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리라. 그 당시, 이반 표도로비치는 갑자기 스메르쟈코프에게 어떤 특별한 관심을 보였으며, 그가 직접 나서서 스메르쟈코프로 하여금 자기와 말을 하도록 가르쳤는데, 그러면서도 언제나 그의 다소간의 영문 모를 태도,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다소 불안한 그의 정신 상태가 의아스러웠으며, 도대체 무엇이 ‘이 관조자’를 이토록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불안스럽게 만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반 표도로비치의 신경을 마침내 결정적으로 자극하여 그에게 이와 같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 가장 주된 것은 ─ 스메르쟈코프의 혐오스럽고도 어쩐지 특수한 허물없는 태도였는데, 그는 심하게 그런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그 정도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 스메르쟈코프는 무엇 때문인지는 통 알 수 없지만 자기 자신이 마침내는 무슨 일에 있어서 이반 표도로비치와 어떤 연대 관계라도 있는 양 간주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며, 언제나 그들 두 사람 사이에 이미 뭔가 약속된 것이 있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 아버지는 주무시나, 아니면 깨어나셨나?” 그는 스스로도 예기치 못하게 조용하고 겸손하게 말했으며, 갑자기, 역시나 전혀 예기치 못하게, 벤치에 앉았다.

“아직 주무십니다요.” 그는 서두르지 않고 말했다.

“도련님, 체르마쉬냐에는 왜 안 가십니까요?” 스메르쟈코프가 갑자기 그를 훑어보면서 아주 허물없는 사이인 양 미소를 지었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내가 무엇 때문에 미소를 짓는지는 응당 이해해야지.’ 윙크하듯 왼쪽 눈을 가늘게 뜨는 모양새가 꼭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에이, 빌어먹을, 좀 더 분명하게 말해 봐, 네놈한테 필요한 게 뭐야?” 이반 표도로비치는 여태껏 온순하게 굴다가 마침내 거칠어지면서 성질을 버럭 내며 소리쳤다.

“제 처지가 말이 아닙니다요, 이반 표도로비치, 제 몸 하나를 어떻게 구제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그가 확고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는데, 마지막 말을 할 때는 한숨을 내쉬었다.


“두 분이 다 어찌나 고집을 부리는지, 두 분 다 완전히 어린애가 된 것 같습니다요.” 스메르쟈코프가 계속했다. “도련님의 아버님과 형님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말씀입니다요. 날이 갈수록, 시간이 갈수록 두 분의 역정이 더 심해지는 바람에, 어떨 때는 너무 무서워서 콱 자살이라도 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니까요. 도련님, 저는 그분들에게는 희망을 걸지 않습니다요.”


“그럼, 왜 끼어들었느냐? 왜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에게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기 시작했더냐?”

이반 표도로비치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어떻게 끼어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요? 아니, 저는 아예 끼어들지도 않았습니다요. 저는 아주 처음부터 감히 반박할 엄두도 못 내서 줄곧 입을 다물고 있었고, 그분이 직접 저를 자신의 하인 리차르드 노릇을 하도록 정하신 것입죠. 도련님, 내일 저는 '오랜 간질 발작'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오랜 간질 발작이라니?”

“오랫동안, 굉장히 오랫동안 발작을 하는 것입죠. 몇 시간, 어쩌면 하루나 이틀 동안이나 계속됩니다요. 한 번은 사흘 정도나 계속됐는데, 그때는 다락방에서 떨어졌거든요. 발작은 좀 멎었다 싶으면 또다시 시작되는 것입죠. 그렇게 저는 꼬박 사흘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요."


“하지만 간질 발작이 몇 시에 일어날지는 미리 알 수 없다고 하던데. 너는 어떻게 내일 발작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는 거지?” 특별하고도 짜증스러운 호기심을 보이며 이반 표도로비치가 물었다.

“게다가 그때 너는 다락방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냐.”

“다락방에는 매일 올라가니까 내일도 다락방에서 떨어질 수 있습죠. 다락방이 아니라면 지하 창고에서 떨어질 수도 있습죠, 지하 창고에도 볼일이 있어서 매일 가니까요.”


이반 표도로비치는 오랫동안 그를 바라보았다.

“허튼수작을 부리는 게 보이는군, 네놈을 알다가도 모르겠어.” 조용하지만 어쩐지 위협적으로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일부터 사흘 동안 간질 발작이 일어난 척하겠다는 거냐, 뭐냐? 엉?”


"만약 제가 그런 장난을 칠 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노련한 사람으로선 그런 시늉을 하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니까 진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제 목숨 하나 살리자고 이런 수단을 활용하는 것은 완전히 저의 권리입죠."

"에이, 빌어먹을!" 이반 표도로비치가 갑자기 악에 받쳐 얼굴을 일그러뜨리면 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자꾸 너는 네 목숨 따위에 벌벌 떨고 있는 거냐! 드미트리 형의 이런 협박들은 모두 홧김에 튀어나온 말일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형은 너를 죽이지 않을 거야. 죽이더라도, 네놈 따위는 죽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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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새끼처럼 죽일걸요, 누구보다도 저를 먼저요. 하지만 이것보다 더 무서운 건 다른 겁니다. 즉, 그분이 아버지에게 터무니없는 일이라도 저지를 경우 제 가 그분과 공범으로 몰리면 어쩔까, 싶은 것입죠."

"네가 왜 공범으로 몰린다는 거냐?"

"제가 왜 공범으로 몰릴 수 있느냐 하면, 그분에게 바로 그 신호들을 극히 비밀리에 알려 준 것이 저니까요."


"신호라니? 누구에게 알려 줬다는 거냐? 이 빌어먹을 놈, 더 분명하게 말하지 못해!"

"죄다 고백해야겠군요." 스메르쟈코프가 잘난 척하는 양 태연하게 굴면서 말을 질질 끌었다. "저와 표도르 파블로비치 사이에는 비밀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분은, 도련님도 아시다시피, 벌써 며칠째 밤이 되면, 심지어 저녁만 돼도 곧장 안쪽에서 문을 잠그고 계십니다요. 그분은 벌써 며칠째 꼭 정신 이 나간 사람처럼 그녀를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분의 생각은 이렇습니다요.


'그 여자는 그놈, 즉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무서워서 밤늦은 시각에 뒷길로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러니 너는 자정까지, 아니 시간이 더 늦더라도 그 여자가 오는지 망을 봐라. 만약 그 여자가 오면, 냉큼 달려와 문을 두드리거나 아니면 정원 쪽으로 난 창문을 한 손으로 두드리되 처음 두 번은 좀 조용하게, 그러니까 한 번 - 두 번, 그다음엔 이제 세 번을 두드리되 좀 더 급하게 툭 - 툭 - 툭, 두드려라. 자 그러면, 나는 너한테 살그머니 문을 열어 주마.' 이런 식입죠. 그런데, 바로 이 신호를 이제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도 아시게 됐습니다."


"어떻게 알게 됐다는 거냐? 네가 말해 주었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한 게냐?"

"너무 무서워서 그랬습니다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매일 '이놈, 나를 속이는 거지,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지? 내 네놈의 두 다리를 분질러 버리겠다!'라고 으름장을 놓곤 했습죠. 그래서 저는 이 비밀 신호들을 알려 줬습니다요, 최소한 내가 얼마나 노예처럼 복종하는지를 그분이 보실 수 있도록요."

"만약에 형이 그 신호를 이용해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면, 형을 절대 들여보내지 마."

"하지만 만약 제가 발작이 나서 누워 있다면, 그때는 들여보내지 않을 도리가 없잖습니까요"


"아니, 형이 뭣 하러 아버지 방에 들어간단 말이냐, 게다가 만약 네 말대로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가 절대 오지 않을 거라면" 이반 표도로비치는 너무 열에 받쳐 하얗게 질린 채로 말을 계속했다.

"뭣 하러 오실지는 도련님이 더 잘 알고 계실 텐데, 제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분도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 3000루블이 든 커다란 봉 투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신데요"


"헛소리 작작 해!" 이반 표도로비치는 미친 듯 흥분해서 고함을 질렀다.

"드미트리는 돈을 강탈하러 올 위인도 아니고, 더욱이 그런 일로 아버지를 죽일 위인도 못 돼. 형은 어제 미친 바보처럼 열이 받친 나머지 그루카 때문에 아버지를 죽일 뻔했지만, 강도 짓을 하러 오진 않을 거야!"

"그분에겐 지금 돈이 아주 절실하게 필요합죠, 이반 표도로비치. 얼마나 필요한지 도련님도 모르십니다."


"그런데 이분은 머리가 아주 좋거든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같은 빈털터리에게 시집을 가진 않을 겁니다요. 그렇게 되면 모든 도련님들에게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정확히 땡전 한 푼 안 돌아올 것인데, 왜냐하면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가 그분에게 시집오는 건 전 재산을 자기 명의로 돌려서 죄다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니까요.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바로 지금 도련님의 아버님이 돌아가시면, 그 즉시 도련님들 각각에게 4만 루블씩은 족히 돌아갈 것이며, 그분의 유언장이 아직 작성되지 않았으니까요……."


이반 표도로비치의 얼굴이 어쩐지 일그러지더니 부르르 경련이 일었다. 그는 갑자기 새빨개졌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네놈은" 하고 그가 갑자기 스메르코프의 말을 가로막았다. "상황이 이렇건만 나더러 체르마쉬냐에 가라고 권하는 거냐?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냐? 내가 떠나면 이 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텐데." 이반 표도로비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바로 그 말씀입니다요." 스메르쟈코프는 조용하게 말하면서도 이반 표도로비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도련님이 가엾어서 드린 말입니다. 제가 도련님 처지라면, 그렇다면, 저는 당장에 이 모든 것을 던져 버렸을 겁니다요…… 이런 일을 지켜보고 있느니 차라리……" 두 사람 다 잠깐 말이 없었다.

"네놈은 구제 불능의 백치인 데다가 그리고 무섭도록 추잡한 놈이야" 이반 표도로비치는 갑자기 벤치에서 일어나 쪽문 쪽으로 가려다 걸음을 멈추고서 스메르쟈코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나는 내일 모스크바로 간다, 네놈이 알고 싶다면 말이야 - 그것도 내일 아침 일찍 - 이게 전부야!"

갑자기 그는 악에 받쳐서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는데, 그러고 나서도 이후엔 자기가 그때 무엇 때문에 스메르쟈코프에게 이런 말을 해야 했는지 스스로도 놀라워했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입죠." 상대방은 꼭 이것을 기다렸다는 양 말을 받았다.

"다만, 여기서 모스크바에 있는 도련님한테 전보를 쳐서 오시라고 할 순 있겠지요, 무슨 일이 생긴다면요"


이반 표도로비치는 다시 걸음을 멈추곤 다시 스메르쟈코프 쪽으로 몸을 획 돌렸다.

"그럼, 내가 체르마쉬냐에 가 있으면 못 부를 이유가 또 어디 있나 행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무엇 때문인지 끔찍할 정도로 언성을 높이면서 갑자기 이반 표도로비치가 고함을 질렀다.

"체르마쉬냐에 계셔도 마찬가지로…… 오시라고 할 수 있습죠…….” 스메르쟈코프는 꼭 이성을 잃은 양 이렇게 속삭이듯 웅얼거렸지만, 여전히 주의 깊게, 아주 주의 깊게 이반 표도로비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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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모스크바가 좀 더 멀고 체르마쉬냐가 좀 더 가까울 뿐인데, 네놈이 그렇게 체르마쉬냐 타령을 하는 걸 보니, 여비가 아까운 게냐, 아니면 한 바퀴 빙 둘러 가야 되는 내가 안쓰러운 게냐?"

"바로 그 말씀입니다요……." 이미 탁탁 끊기는 목소리로 스메르코프가 이렇게 웅얼거렸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림으로써 스메르쟈코프를 깜짝 놀라게 해 주었고, 그렇게 계속 웃으면서 급히 쪽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의 몸짓도, 걸음걸이도 흡사 꼭 경련이라도 일어난 사람 같았다.


7 '영리한 사람과는 얘기를 나누는 것도 흥미롭다'


더욱이 말을 하는 태도도 그 못지않았다. 홀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마주치자, 그는 갑자기 두 손을 내저으면서 아버지에게 “위층의 내 방에 가는 길입니다, 아버지한테 가는 게 아니라요, 안녕히 계세요.”라고 소리친 뒤, 심지어 아버지를 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 이 순간 이렇게까지 거리낌 없이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표도르 파블로비치로서도 뜻밖의 일이었다.


한편, 영감은 곧장 그에게 빨리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일부러 그를 맞으러 홀로 나온 듯한 눈치였다.

“저 녀석이 왜 저러느냐?” 이반 표도로비치의 뒤를 따라 들어온 스메르쟈코프에게 그가 빨리 물었다.

“화나는 일이 있으신 모양이지만, 누가 저분의 속을 헤아리겠습니까.” 그는 은근슬쩍 회피하면서 중얼거렸다.

“망할 자식 같으니! 실컷 화를 내 보라지! 네놈도 어서 빨리 썩 꺼져 버려, 냉큼. 무슨 새 소식은 없느냐?”


그러고서 영감이 목이 빠져라 와 주길 기다리고 있는 여자에 관한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삼십 분 뒤 문단속은 끝났고, 정신이 나간 영감은 이제 곧 다섯 번의 약속된 노크 소리가 들릴 것이라고 가슴이 콩콩 뛰도록 기대하면서 혼자서 방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했고 간간이 어두운 창문을 들여다보았지만, 칠흑 같은 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매우 늦은 시각이었지만, 이반 표도로비치는 여전히 자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날 밤 그는 늦게, 2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이미 자정이 지난 뒤에 그는 갑자기 아래로 내려가 스메르코프를 죽도록 패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는데, 이 머슴이 가혹하게 그를 모욕한 놈인 양 증오스러워졌다는 것과 다른 한편으론, 이날 밤 몇 번씩이나 뭐라 설명할 길 없는 굴욕적인 소심함이 그의 영혼을 휘어 감았다.


머리가 아파서 현기증이 났다. 아까 알료샤와 나눈 대화가 떠오르자 알료샤마저도 미웠고, 자기 자신도 미웠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에 대해서라면 숫제 생각하는 것 자체를 거의 잊어버렸는데, 어제 아침만 해도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앞에서 내일이면 모스크바로 떠난다면서 그토록 호탕하게 유세를 부리면서도 막상 마음속으로는 '헛소리 작작 해, 가긴 어딜 가, 지금 네가 이렇게 허풍을 떨어 봤자 쉽사리 떨어질 순 없을걸.'이라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던 것이 똑똑히 기억났으니 말이다.


그는 갑자기 깊은 잠에 빠져 들어 꿈도 꾸지 않고 푹 잤지만, 일찍, 이미 날이 밝은 7시쯤엔 잠에서 깼다. 두 눈을 뜨자, 깜짝 놀랍게도, 갑자기 어떤 비상한 에너지가 넘쳐 나는 것이 느껴졌고, 그는 잽싸게 일어난 뒤 잽싸게 옷을 입고, 그다음엔 트렁크를 끌고 와서 조금도 꾸물대지 않고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모든 것이 이렇게 딱 맞아떨어졌고 느닷없는 출발을 지연시킬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씩 미소를 머금기까지 했다. 어쨌거나 정말로 느닷없이 떠나는 셈이 됐다.


영감은 이 소식을 들으면서 손톱만큼이라도 놀라기는커녕 아들 녀석이 떠난다는 데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는 것마저 잊어버리고, 때마침 긴요한 자신의 일 하나를 생각해 내고는 갑자기 수선을 떨어 댔던 것이다.

"아이고, 얘야! 이놈 하는 짓 하곤! 어제만 해도 아무 말도 없더니…… 뭐 이러나저러나 이 아비한테 선심 쓰는 셈 치고, 체르마쉬냐에 좀 들러 다오. 볼로비야 역에서 기껏해야 12베르스타 정도만 가면 돼."


"죄송하지만, 안 되겠습니다. 모스크바행 기차는 역에서 저녁 7시에 떠나니까 기차 시간에 맞추기도 벅차요."

"내일 가면 될 거 아니냐, 오늘은 체르마쉬냐에 들러 주려무나. 그쪽 일이 여간 급작스럽고 대단한 게 아니라서. 봐라, 그쪽 베기체보와 쟈치키노, 그 두 구역의 황무지에 내 숲이 있단다. 마슬로프 집안사람들이 벌채권으로 겨우 8000을 내놓겠다지만, 불과 작년만 해도 만 2000에 사겠다는 작자가 있었는데 일이 틀어져 버렸지 뭐냐. 그런데 지난 목요일에 갑자기 일린스키 신부한테서 고르스트킨이 왔다는 편지가 이리로 날아온 거야, 숲 값으로 만 1000을 내놓겠다는구나, 신부가 편지에 쓴 말로는, 그자가 이곳에 머무르는 건 기껏해야 앞으로 일주일이란다. 자, 그러니까 네가 가서 그 작자와 흥정을 좀 해 주면 좋겠는데…….

이 고르스트킨은 겉보기엔 시퍼런 반코트를 걸친 무지렁이 농군이지만, 성갈로 치자면 완전히 야비한 놈이거든, 그놈은 실은 고르스트킨이 아니라 랴가브이(개, 밀고자라는 뜻)인데, 너는 그놈한테 랴가브이라고 말하면 안 돼, 성질을 낼 거야. 그놈과 흥정을 해 보고 옳거니 됐다 싶으면 그 즉시 이리로 편지를 보내 다오. 그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라고만 써 보내. 만 1000을 고수하되, 1000 정도는 깎아 줘도 되지만, 더 이상은 깎아 주지 말아라."


스메르쟈코프며 마르파며 그리고리며 모든 집안사람들이 배웅을 하러 나왔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모두에게 10루블씩을 선사했다. 그가 마차에 자리를 잡았을 때, 스메르쟈코프가 양탄자를 바로잡으려고 뛰어올랐다.

"봐라…… 이렇게 체르마쉬냐로 가는구나……." 이반 표도로비치의 입에서는 어쩐지 갑자기 이런 말이 터져 나왔는데, 게다가 어떤 신경질적인 웃음도 함께 나왔다.

"그러니까 사람들 말이 사실이었군요, 영리한 사람과는 얘기를 나누는 것도 흥미롭다더니."

스메르쟈코프는 이반 표도로비치를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확고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했다.


여행용 마차가 곧 출발하여 질주하기 시작했다. 여행객은 마음속은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주위의 들판이며 언덕이며 나무를, 자기 위로 맑은 하늘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영리한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것이 왜 흥미롭다는 거야, 그놈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갑자기 그는 숨이 콱 막혀 왔다. '그나저나 나는 또 뭣 하러 그놈한테 체르마쉬냐에 간다고 고한 걸까?'


마차는 단숨에 역에 도착했고 말을 바꿔 맨 뒤 볼로비야 역에 도착했다. 이반 표도로비치가 여행용 마차에서 내리자 마부들이 그를 에워쌌다. 체르마쉬냐까지 12베르스타의 거리를 샛길을 따라 사설 역마차를 타고 가기로 정했다. 그는 역사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갑자기 현관으로 되돌아 나왔다.

"체르마쉬냐는 필요 없겠네. 이보게들, 7시 기차에 댈 수 있겠나?"

"딱 맞게 갈걸요. 말을 맬까요?"

"얼른 매게나, 누구든 자네들 중 내일 시내에 가는 사람 없나?


"그럼, 미트리, 청 하나만 들어줄 수 없겠나? 우리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집에 들러 내가 체르마 쉬냐에는 가지 않았다는 말을 좀 전해 주게. 어때, 그럴 수 있겠나?"

"여부가 있습니까요,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라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으니까요."

"자 이거, 차라도 한잔 사 마시게, 어차피 아버지한테는 못 받을 테니까……."

"그분이야 주실 턱이 없죠." 미트리도 웃었다. "고맙습니다, 나리, 꼭 그리합죠."


저녁 7시, 이반 표도로비치는 객차 안으로 들어가 모스크바로 내달렸다.

'지난 일은 전부 다 안녕이다, 지난 세계는 영원토록 작별이다, 그 세계로부터 어떤 소식도, 어떤 응답도 없길.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새로운 세계, 새로운 장소로 가는 거다!' 하지만 황홀감 대신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이 그의 영혼에 깃들었고, 마음속에서는 크나큰 비애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는 밤새도록 곰곰 생각에 잠겼다. 날이 밝을 때쯤 되어서 기차가 모스크바로 들어서서야 그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나는 야비한 놈이야!" 그는 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한편,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아들을 보내 놓고서 아주 흡족한 상태였다. 꼬박 두 시간을 그는 거의 행복감에 젖어 홀짝홀짝 코냑을 마셨다. 하지만 갑자기 집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아주 짜증 나고 아주 불쾌한 사건이 하나 터져서,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기분을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망쳐 버렸다. 다름 아니라, 스메르쟈코프가 무엇 때문인지 지하 창고에 갔다가 위쪽 층계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시각에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가 마당에 있다가 적시에 그 소리를 들었다는 점이었다. 떨어지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대신 비명 소리를, 특별하고 이상하지만 그녀로선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해진 비명 소리를 들었던 것인데 - 바로 발작이 시작될 때의 간질병 환자의 비명 소리였다. 발견 당시 그는 이미 지하 창고의 바닥에서 입에 거품을 문 채 온몸을 부르르 떨고 빌빌 꼬면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하루 종일 불행에 또 불행을 맛보았다. 다름 아니라, 마르파 이그나치예브나가 식사를 준비해 왔는데, 스메르쟈코프의 요리와 비교하자면 수프는 '구정물이나 다름없었고' 닭고기는 너무도 바싹 말라서 도무지 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는 다른 근심거리가 생겼다.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 사흘째 앓고 있던 그리고리가 때마침 거의 몸져누웠으며 허리가 마비 됐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이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가능한 한 일찍 차 마시는 일을 끝내고 혼자 집 안에 틀어 박혔다. 그는 무섭고도 불안한 기대감에 차 있었다. 실은, 때마침 오늘 밤에는 꼭 그루셴카가 오리라, 이번엔 거의 틀림없다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최소한, 아침 일찍부터 스메르쟈코프에게서 “그분이 꼭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라는 거의 확증에 가까운 말을 받아 두었던 것이다.


영감은 자신의 텅 빈 방들을 이리저리 오가면서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창문을 두드리자마자 가능한 한 빨리 문을 열어야 하고, 뭣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얼토당토않게 후다닥 달아나 버릴 수도 있으니까 절대 단 일 초도 그녀를 괜히 현관에 세워 두어서는 안 된다. 그의 마음이 이보다 더 달콤한 희망에 젖어 있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그녀가 오리라고 거의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제2부 제5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