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옮김 민음사
6장
러시아의 수도사
불안과 고통을 마음 가득 담고 장로의 암자에 들어섰을 때, 알료샤는 거의 소스라치게 놀라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미 의식 불명 상태에 다다랐을지도 모르는, 목숨이 끊어져 가는 환자를 보게 될까 두려워했건만, 갑자기 힘이 없고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기운차고 명랑한 얼굴로 안락의자에 앉아 손님들에게 에워싸여서 그들과 조용하고 해맑은 담소를 나누는 장로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침대에서 일어난 것은 알료샤가 도착하기 얼마 전, 길어야 십오 분쯤 전이었다.
손님들은 좀 일찍부터 진작 그의 암자로 모여서, "스승님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고 아침부터 친히 약속하신 대로, 그분이 마음으로 아끼는 이들과 다시 한번 담소를 나누기 위해 틀림없이 일어나실 것이다."라는 파이시 신부의 자신에 찬 확증에 따라, 장로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아침에 조시마 장로는 잠이 들면서 그에게 분명히 이런 말을 했다.
"그대들, 내 마음이 이토록 사랑하는 그대들과 다시 한번 마음껏 담소를 나눠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오, 그대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쳐다보면서 나의 영혼을 그대들에게 다시 한번 더 털어놓기 전에는."
필경 마지막이 될 장로의 이 담화에 모인 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그에게 가장 헌신해 온 벗들이었다. 그들은 수도사제 이오시 신부와 파이시 신부, 암자의 총책임자인 수도사제 미하일 신부 등 네 명이었다.
알료샤가 방 안으로 들어와 당혹스러워하며 문지방에 서 있는 것을 보고서 장로는 그에게 반갑게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어서 오거라, 조용한 아이야, 어서, 얘야, 드디어 너도 왔구나. 네가 올 줄 알았단다."
알료샤는 그에게로 다가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그 앞에서 절을 하고 울기 시작했다. 뭔가가 그의 마음속에서 터져 나와 그의 영혼을 전율케 했으며, 그는 흐느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슨 일이냐, 우는 건 좀 더 있어도 된단다." 장로는 오른손을 머리 위에 얹고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앉아서 얘기를 나누니 이십 년은 더 살 수 있을 게다, 얘야. 집에 갔더냐, 형님은 보았느냐?"
"어제 내가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했던 그 사람, 큰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형은 어제는 보았지만, 오늘은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알료샤가 말했다.
"서둘러 찾아라, 내일도 다시 가서 서둘러라, 만사 제쳐 두고 서둘러야 된다. 아직은 뭐든 끔찍한 일을 막을 수 있을 게야. 나는 어제 그가 겪게 될 미래의 위대한 고통 앞에 절을 한 것이란다."
"내가 너를 그에게 보낸 건, 알렉세이, 같은 형제인 너의 얼굴이 그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단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운명들도 다 주님에게 달려 있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말씀을 기억해라. 알렉세이, 내 네 얼굴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너를 축복한 일이 내 인생에 한두 번이 아니다, 이 점을 꼭 명심해라." 장로는 조용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너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단다. 즉, 너는 이 담벼락을 나가더라도 속세에서도 수도사처럼 살 거야. 적들이 많이 생기겠지만, 너의 그 적들마저도 너를 사랑할 것이다. 살다 보면 불행한 일도 많이 겪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너는 또 행복해지기도 할 것이니, 삶을 축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자신의 삶을 축복할 수 있도록 해 주어라 - 이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지. 자, 너는 바로 이런 아이란다. 신부님들, 나의 스승님들." 감동에 젖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는 자신의 손님들을 불렀다.
오늘날까지 나는 결코, 이 젊은 아이의 얼굴이 내 영혼에 왜 이토록 사랑스러웠는지를 심지어 당사자인 그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제야 말씀드리지요. 이 아이 얼굴은 내게 꼭 뭔가를 연상시키고 또 예언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 인생이 시작될 무렵, 내가 아직 작은 아이였을 때 나에게는 형이 있었는데, 겨우 열일곱 살의 젊은 아이로 내 눈앞에서 죽어 갔지요.
이후 나는 살아오면서 점차적으로, 나의 이 형이 내 운명에서 꼭 드높은 곳에서 내려온 지침이요 예언이었음을 확신하게 됐는데, 생각건대, 그 첫 번째 현현이 나의 유년 시절에 있었고, 이제 이렇게 내 여정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내 눈앞에 그의 복사물과 같은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내 눈에 알렉세이는 그와 정신적으로 너무 닮았기에, 그를 곧바로 그 젊은이로, 내 여정이 끝날 무렵 어떤 추억과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 신비스럽게 나를 찾아온 나의 형으로 생각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심지어 이런 이상한 몽상에 젖는 나 스스로에게 놀라기까지 했지요.
친애하는 손님들, 여러분에게 이 젊은이, 나의 형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데, 이는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귀중하고 이보다 더 예언적이고 감동적인 현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감동에 젖었으며, 이 순간 내 삶 전체를 오롯이 새롭게 경험하는 양 관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장로의 인생의 마지막 날, 그를 방문한 자들과 장로의 마지막 담화가 부분적으로 기록의 형태로 보존되었음을 지적해야겠다. 장로가 죽고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가 기념으로 기록해 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전적으로 그 당시의 담화인지, 아니면 이전에 스승과 나눈 대화를 메모해 두었다가 일부를 발췌하여 여기에 덧붙였는지, 이 점은 이미 단정 지을 수 없다.
전기적인 사항
가) 조시마 장로의 형이었던 청년에 관하여
친애해 마지않는 신부님들, 스승님들, 나는 먼 북쪽 현에 있는 V시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귀족이셨지만 명망이 있지도, 또 고위 관직에 계시지도 않았습니다. 내가 겨우 두 살이었을 때 당신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나의 어머니에게 크지 않은 목조 건물과 다소간의 자본을, 많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자본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래 봐야, 어머니에겐 우리 둘이 전부였습니다. 나 지노비이 그리고 나의 형님 마르켈이었지요.
죽기 반년 전, 형님이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우리 도시에 고립되어 살고 있는 어떤 사람, 자유사상 때문에 모스크바에서 우리 도시로 유배 온 사람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유형수는 대학에선 꽤 대단한 학자에 명망 있는 철학자였지요. 무엇 때문인지 그가 마르켈을 좋아하게 돼서 집 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이 정치범의 청원이 받아들여져 그는 다시 페테르부르크의 정부 관직으로 복귀했습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지만 마르켈은 금식을 하기는커녕 욕설을 퍼부으며 비웃어 댔지요. “이건 다 헛짓거리야, 신이고 뭐고 절대로 없어.” 그래서 어머니도, 하인들도, 아직 어렸던 나도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나는 비록 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말을 듣고서 가슴이 철렁했거든요. 우리의 하인들은 모두 농노였는데, 네 명 모두 우리와 안면이 있는 지주의 명의로 사들인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순절의 여섯 번째 주일에 갑자기 형님의 몸이 더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사실 형님은 원래 건강하지 않고 약골에다 가슴이 약해서 결핵에 걸릴 위험이 다분히 있었지요. 형님이 감기에 걸렸나 싶었는데, 의사가 와서 곧바로 급성 폐결핵이니 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어머니에게 속삭였습니다.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리며 조심스럽게 재계(齋戒)하고 성스러운 하느님의 영성체를 받으라고 부탁했는데, 그때만 해도 형님이 걸을 수는 있었거든요. 이 말을 듣자 형님은 화를 내면서 하느님의 사원을 욕했지만, 그러면서도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흘이 지났고, 수난 주간이 왔습니다. 그러자 형님은 화요일 아침부터 재계를 하러 갔습니다. “어머니, 이건 순전히 어머니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고 안심시키기 위해서요.” 그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기쁜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지만, 사실, 슬픔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녀석이 갑자기 저렇게 변한 걸 보니, 죽을 날이 가까워졌다는 소리야.” 하지만 성당을 얼마 다니지도 못하고서 몸져누웠기 때문에 고해성사와 성찬은 이제 집에서 받았지요.
꽃향기 가득한, 해맑고 청명한 날들이 찾아왔고, 늦은 부활절이었지요. 형님은 밤새도록 기침을 하며 잠을 설치다가도 아침 녘이면 언제나 옷을 입고 부드러운 안락의자에 앉으려고 했지요. 조용하고 온순한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아픈 몸임에도 얼굴은 명랑하고 기쁨에 차 있었습니다. 형님은 그 영혼에 있어 완전히 변해 버렸습니다. - 깜짝 놀랄 만한 변화가 갑자기 그의 내부에서 시작됐던 겁니다!
형의 방으로 늙은 유모가 들어옵니다. "자, 도련님, 도련님 방의 성상 앞 램프에도 불을 밝히게 해 주시구려." 전에는 허락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불을 꺼 버리기까지 했지요. "그래 주세요, 할멈, 불을 밝혀 줘요, 전에는 불도 못 밝히게 했으니 나는 참 불한당 같은 놈이었던 거예요. 할멈 이 램프를 밝히면서 하느님께 기도해 주면, 나는 할멈을 보면서 기쁜 마음으로 기도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의 하느님에게 기도하는 거예요."
형님은 어머니에게 "어머니, 울지 마세요, 나는 아직 많이 살 테고 가족들과 많은 즐거움을 나눌 거예요, 삶은 천국이고, 우리는 모두 천국에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이걸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에요, 알려고만 한다면 내일 당장 온 세상이 천국이 될 거예요.”라고 대답하지요. 형님의 말이 너무 이상하고 너무 단호했기 때문에 다들 그의 말에 놀랐지요. 감동을 받아 눈물을 쏟기도 했고요.
지인들이 우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럼 형님은 “사랑스러운 여러분, 소중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했다고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 겁니까, 전에는 이걸 알지도 못했고 또 감사히 여길 줄도 몰랐으니.”라고 말했지요. 하인들이 방에 들어오면 늘 다음과 같이 말했지요. “사랑스러운 여러분, 소중한 여러분, 무엇 때문에 나한테 이렇게 잘해 주시는 겁니까, 내가 자격이라도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어여삐 여겨 계속 살게 해 주신다면, 내가 몸소 여러분에게 봉사하도록 하겠으니, 이는 모두들 서로서로에게 봉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는 잠을 자고 일어날 때마다 매일 점점 더 감동과 기쁨에 젖고 온통 사랑으로 전율하곤 했지요. 의사가 다녀가곤 했는데, “자, 어떤가요, 의사 선생님, 아직 하루쯤은 이 세상에서 더 살 수 있겠죠?”라며 그와 농담을 하곤 했지요. “하루가 뭡니까, 앞으로 여러 날들은 더 살 수 있을 겁니다.” “모든 행복을 알기 위해선 인간에게 단 하루면 충분한걸요. 우리는 뭣 하러 싸우고, 허세를 부리고, 앙심을 품는 걸까요? 차라리 곧장 정원에 나가 산책을 하면서 기분을 좀 풀고 서로서로를 사랑하고 찬양하고 입 맞추고 우리의 삶을 축복합시다.”
어느 날 내가 형님의 방에 아무도 없을 때 혼자 그 방에 들어갔던 일은 기억나는군요. 청명한 저녁 시간이었는데, 그는 나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더니 나의 얼굴을 감동스럽게, 사랑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 분 정도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더군요. “자, 이제는 가서 놀아라, 나 대신 살아 주렴!”이라고 하면서. 그때 나는 방에서 나와 뛰어놀러 나갔지요. 그런데 이후 살아가면서 형님이 나한테 자기 대신 살아 달라고 했던 것을 회상한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그때마다 눈물이 흐르더군요.
형님이 돌아가신 건 부활절이 지나고 세 번째 주일이었는데, 비록 말은 더 이상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의식은 또렷했으며 즐거운 시선으로 우리를 찾고 우리에게 미소를 지어 주고 우리를 부르곤 했습니다. 그 당시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지만, 그래 봤자 그다지 큰 충격은 아니었습니다. 어렸던 것이지요, 어린아이였으니까요, 하지만 마음속에는 모든 것이 지울 수 없는 감정 그대로 남아 침전되었던 것이지요.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되살아나서 부름에 응답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됐습니다.
나) 조시마 신부의 생애에 있어서 성경에 관하여
그때 나는 어머니와 단둘이 남게 됐습니다. 선량한 지인들은, 당신에겐 아들도 하나밖에 없는데 당신은 가난한 것도 아니고 돈도 제법 있으니 남들 하는 대로 당신의 아들을 페테르부르크로 보내는 편이 낫겠다, 여기 남으면 당신이 아들의 촉망한 운명을 빼앗는 꼴이 된다, 하고 어머니에게 충고했지요. 그렇게 그들은 어머니에게 나를 페테르부르크의 육군 유년 학교로 보내고 그다음엔 황제의 근위대에 들어가게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페테르부르크로 데려가서 입학 수속을 밟아 주셨는데, 그때 이후로 다시는 어머니를 보지 못했습니다. 삼 년 뒤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인데, 그 삼 년 내내 어머니는 우리 둘 때문에 슬픔에 젖어 애를 끓이셨던 것이지요. 나는 부모님의 집에 있을 때 내 성경 이야기에 대한 추억도 덧붙이려고 하는데, 내 비록 어린애였지만 그것에 큰 호기심을 갖고 알고자 했지요. 그 당시 ‘구약과 신약의 104개의 성경 이야기’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성경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는 그 책을 통해 글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어머니는 수난 주간 월요일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나 하나만을 데리고 주님의 사원엘 갔습니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느님 말씀의 첫 씨앗을 진지하게 생각하며 영혼 속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사원의 한가운데로 복사(服事)가 너무도 커서 간신히 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만큼 큰 책, 적어도 내겐 그런 느낌을 주었던 큰 책을 들고 나와서, 경대 위에 올려놓고 펼쳐서 읽기 시작했으며, 그때 인생에 처음으로 하느님의 사원 안에서 읽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했던 것입니다.
욥 이야기
우츠 땅에 의롭고 경건한 남자 하나가 살았는데, 그는 대단한 부를 자랑하는 사람으로서 수많은 낙타와 양과 당나귀가 있었으며 그의 아이들은 명랑하 고 그는 그들을 매우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지요. 어쩌면 너무 명랑하게 살아서 곧 죄를 지은 것인지도 모르지요.
바로 그때 악마가 하느님의 아이들과 함께 하느님에게로 올라가 주님에게 온 땅을, 그리고 땅 밑을 다 돌았노라고 말합니다. "나의 종 욥을 보았느냐?" 하느님이 악마에게 묻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은 자신의 위대하고 성스러운 노예를 가리키면서 악마에게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하느님의 말을 비웃었지요. 그를 나에게 넘기면 너의 종이 불평하고 너의 이름을 저주하는 것을 보게 되리라."
그래서 하느님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의인을 악마에게 넘겨주었고, 악마는 흡사 천둥 번개라도 친 듯 갑자기 그의 아이들과 가축을 없애 버리고 그의 재산을 비롯한 모든 것을 싹 쓸어버렸으니, 그러자 욥은 자신의 옷을 찢고 땅에 엎드려 울부짖었습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땅으로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셨도다. 주님의 이름은 지금부터 영원토록 복될지어다!"
정말 여기에는 위대하고 신비스럽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훗날 나는 조롱꾼과 비방자의 오만한 말들을 들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주님은 자신의 성자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를 악마의 즐거움을 위해서 내줄 수 있었던 말인가, 어떻게 그에게서 아이들을 빼앗고 그 자신마저도 병들고 종창으로 고통받게 하여 상처의 고름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도록 할 수 있었던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저 악마 앞에서 "자, 나의 성자가 나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참을 수 있는가!"라고 거들 먹거리기 위해서란 말인가.
하지만 바로 여기에 비밀, 즉 한시적인 지상의 얼굴과 영원한 진리가 여기서 함께 맞닿았다는 점이 바로 위대한 것이올시다. 지상의 진리 앞에서 영원한 진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조물주는 창조의 첫날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를 "내가 창조한 것이 좋더라."와 같은 칭찬으로 마감하고 새로이 자신의 창조물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욥은 주님을 찬양함으로써 주님에게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모든 창조물에게도 영원토록 봉사한 셈이 될 것이니, 이는 그것이 그에게 점지된 운명인 탓입니다.
주여, 이 얼마나 귀한 책이며 이 얼마나 귀한 가르침입니까! 성경이란 얼마나 놀라운 책이며 이것이 인간에게 준 기적과 힘은 또 얼마나 위대한지요! 꼭 세계와 인간, 인간의 성격들이 오롯이 새겨진 것 같고 모든 것이 영원토록 명명되고 지시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많은 비밀들이 해결되고 또 계시되었습니까.
하느님은 욥에게 다시 부활의 길을 열어 주고 그에게 다시 재산을 주고 다시 많은 세월이 흘러, 이제 그에게는 이미 첫 아이들이, 또 다른 아이들이 생겨나고, 그는 그들을 사랑하니 - 주여 "아니 어떻게 그는 이전의 이들이 없는 판에, 그들을 잃어버린 판에 이 새로운 자들을 사랑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을 추억한다면 새로 운 이들이 아무리 사랑스럽다고 해도 어떻게 새로운 이들과 이전과 같이 오롯이 행복을 누릴 수 있단 말입니까?" 하지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고말고요.
묵은 슬픔은 인간의 삶의 위대한 비밀에 의해 점차적으로 조용하고 감동적인 기쁨으로 바뀝니다. 젊음의 끓는 피 대신에 온순하고 해맑은 늙음이 찾아오지요. 매일매일 태양이 뜨는 것을 찬양하고, 내 마음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태양을 향해 노래 부르지만, 이제는 태양이 지는 것이 더 좋으니, 태양의 길고 비스듬한 햇살, 그것과 함께, 길고도 복된 삶 전체로부터 나오는 조용하고 온순하고 감동적인 추억이, 사랑스러운 형상들이 더 좋으니 ─ 모든 것 위에 모든 것을 감동시키고 화해시키고 용서하는 하느님의 진실이 있는 겁니다!
나의 인생이 끝나 간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듣고 있지만, 남아 있는 나의 나날들의 하루하루, 나의 지상의 삶이 이미 새롭고 무한하고 알 수는 없지만 가까이 다가오는 삶과 접촉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으며, 이 예감으로 인해 나의 영혼은 황홀하게 떨리고 머리는 밝게 빛나고 마음은 기쁨에 넘쳐 울고 있지요…….
요셉 이야기
최근에 와서는 더 자주 듣게 됐지만, 우리의 하느님의 사제들이, 무엇보다도 시골의 사제들이 눈물을 흘리며 방방곡곡에서 자신들의 수입이 적다거나 멸시를 당한다고 불평하고 심지어는 인쇄물의 형태로 자신들의 수입이 너무 적어서 이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성경을 해설해 줄 수도 없을 것 같다, 설사 이제 루터주의자들이나 이교도들이 와서 양 떼를 빼앗아 간다고 해도 자신들의 수입이 형편없으니 가져 가든 말든 상관없다며 단도직입적으로 단언한다더군요.
그들에게 아브라함과 사라, 또 이삭과 레베카에 대해, 야곱이 라반에게로 가서 꿈속에서 주님과 싸우며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라고 말한 장면을 읽어 주십시오 - 그러면 평민의 경건한 정신이 충격을 받을 겁니다. 그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형제들이 친동생을, 해몽의 달인이며 위대 한 예언자인 사랑스러운 소년 요셉을 노예로 팔아 놓고서는 아버지에게 짐승이 그 아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고 말하면서 피투성이가 된 그의 옷을 보여 주는 장면을 읽어 주십시오.
그다음에 형제들이 빵을 얻기 위해 이집트로 왔을 때 이미 그들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왕이 된 요셉이 그들을 괴롭혔고 동생 베냐민을 비난하며 붙잡아 두었고, 형들이 어딘가 저곳 뜨거운 사막의 우물 곁에서 자신을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일을, 자신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울면서 자기를 다른 땅의 노예로 팔아넘기지 말아 달라고 형들에게 애원한 일을 평생 동 안 끊임없이 기억하고 있었건만, 자 이제 이토록 세월이 흐른 뒤에 그들을 보니 새로 무한한 사랑을 느꼈던 것이며,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그들을 괴롭히고 박해했던 것이지요. 결국 그는 마음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형들 곁을 떠나와 자기 침상에 쓰러져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얼마 후엔 자신의 얼굴을 훔치고서 밝고 해맑은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 "형님들, 제가 형님들의 동생 요셉입니다!"라고 밝히는 겁니다. 그 후, 늙은 야곱이 자신의 사랑스러운 소년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심지어 조국 땅마저 버리고 이집트로 와서, 온순하고 소심한 자신의 마음속에 평생 동안 남몰래 간직했던 말을, 그의 자손, 즉 유다의 자손 중에 세계의 위대한 희망이자 화해자인 구세주가 나올 것이라는 위대한 말을 영원토록 유언으로 남기고서 이국땅에서 죽어 간 장면을 읽어 주어도 좋습니다!
신부님들, 스승님들, 여러분이 벌써 알고 있으며 나보다 백배는 더 능수능란하고 훌륭하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철부지 어린애처럼 떠들어 대는 것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저 황홀감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이며 이 책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니 내 눈물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느님의 사제도 눈물을 흘린다면, 그의 말을 듣는 자들도 진심으로 그에게 화답하여 전율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손톱만큼 작은 씨앗일 따름입니다. 그것을 평민들의 영혼 속에 뿌리면, 그것은 죽지 않고 그들의 마음속에 평생토록 살 것이며, 암흑이나 그들의 죄들의 수렁 속에서도 밝은 점처럼, 위대한 기억처럼 그들의 내부에 살아 있을 것입니다. 구구절절이 늘어놓을 필요도, 많이 가르칠 필요도 없는 것이, 그렇지 않아도 평민들은 모든 것을 곧장 이해할 겁니다.
그들에게 아름다운 에스테르와 교만한 와스티에 관한 감동적이고 감격스러운 이야기기를 한번 읽어 주십시오. 혹은 고래 배 속에 있었던 예언자 요나의 기적적인 이야기나 주님의 잠언도 또한 잊지 말되 무엇보다도 루카복음에 따라 읽어 줄 것이며, 그다음에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울의 개종 이야기를 끝으로, 순교자전에 나오는 하느님의 사람 알렉세이의 성자전, 그리스도를 잉태한 어머니인 이집트의 마리아의 성자전을 잊지 말지어니, 적은 수입에 연연하지 말고 일주일에 한 시간, 딱 한 시 간만이라도 그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네 민중이 자비롭고 은혜를 아는 자임을 여러분 눈으로 보게 될 것이며, 사제의 배려와 그의 감동적인 말들을 기억하고 자진하여 밭일을 도울 것이며 집안일을 또 도울 것이며 예전보다 더 큰 존경으로 그에게 보답할 것이니 - 그러면 이미 그의 수입 은 더 늘어날 겁니다. 이건 너무도 단순 소박한 것이라 어떨 때는 여러분의 비웃음을 살까 봐 말을 꺼내기도 두렵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로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하느님의 민중도 믿지 못할 겁니다. 하느님의 민중을 믿게 된 자는 민중이 성스럽게 여기는 것을 보게 될 것인데, 비록 그 자신은 그것을 그 정도로까지 믿지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민중과 곧 도래할 민중의 정신적인 힘만이 모국 땅으로부터 유리된 우리네 무신론자들을 되돌려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본보기가 없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라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주여, 주님의 사람들에게 평화와 빛을 보내 주시옵소서!
다) 아직 속세에 묻혀 있던 조시마 장로의 청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 회상. 결투
페테르부르크의 유년 학교에서 나는 거의 팔 년이란 오랜 세월을 보냈으며, 새로운 교육을 받는 동안 유년 시절의 인상들은 아무것도 잊히진 않았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 희미해졌습니다. 그 대신, 너무도 많은 새로운 습관과 심지어 견해가 생겨 버리자, 거의 야만스럽고 잔혹하고 터무니없는 존재로 변해 버렸습니다. 프랑스어와 함께 껍질만 번드르르한 예의범절과 사교계 에티켓을 익혔고, 그러고서도 우리는 유년 학교에서 우리 시중을 들어주는 병사들을 모두 완전히 짐승으로 간주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지요.
장교가 되어 졸업했을 때, 우리는 행여 우리 연대의 명예가 손상을 당한다면 자신의 피라도 흘릴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진정한 명예가 무엇인지 우리 중 거의 누구도 알지 못했으며 설사 알았다 할지라도 그 자신이 제일 먼저 그것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음주, 방탕, 기고만장한 만용을 거의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지요.
이렇게 사 년 정도 복무한 뒤 나는 마침내, 그 당시 우리의 부대가 있던 K시에 있게 됐습니다. 도시 사회는 다채롭고 사람도 많고 즐겁고 손님 대접도 훌륭하고 부유했으며, 어디서든 나를 잘 받아 주었는데, 이는 내가 원래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인 데다가 사교계에서는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바, 가난하지 않고 돈이 제법 있는 자로 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차에 나는 젊고 아름다운 한 처자에게 연정을 품고 있었는데, 영리하고 위엄 있고 해맑고 고귀한 성격을 지녔으며 부모님들도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었지요.
여하튼, 그놈의 이기심 때문에 나는 그때 청혼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돈까지 있으니 방탕하고 자유분방한 독신 생활과 작별하는 것이 힘겹고 무서웠던 겁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상대에게 암시는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결정적인 일보는 잠깐 미뤄 뒀지요. 그런데, 바로 그때 두 달간 다른 군(郡)으로 파견을 가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두 달 뒤 돌아와 보니 뜻밖에도 처자가 이미 부유한 도시 근교의 지주와 결혼해 있는 상태였으니, 그는 나와는 달리 수도의 상류 사회에 좋은 연줄도 있고 극히 상냥할뿐더러 더욱이,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나와는 달리 교육까지 제대로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당장 알게 되었지만, 이 젊은 지주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의 약혼자였으며 나 자신이 그를 그들의 집에서 여러 번 보았건만 나 잘난 맛에 살다 보니 눈이 멀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무엇보다도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아니, 다들 거의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나 하나만 아무것도 몰랐단 말인가? 그러자, 나는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악의를 느꼈지요. 내가 그녀에게 내 사랑을 고백하다시피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건만 나를 말리지도, 어떤 주의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새빨개졌으니, 결국 그녀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나는 기회를 노렸다가 한 번은 큰 모임에서 아주 엉뚱한 트집을 잡아 나의 ‘연적’을 느닷없이 모욕하는 데 성공했는데, 그 당시 한 중대한 사건에 ─ 26년에 있었던 사건 말입니다 ─ 대한 그의 견해를 조롱했던 것이며, 그것도 사람들 말로는 신랄하고 교묘했다더군요. 그러고 나서 그에게 해명을 강요해 놓고 해명이 진행되는 동안엔 내가 이미 너무도 거칠게 나왔기 때문에 그는 나의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그가 내 도전을 받아들인 것은 역시나 나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때는 6월 말, 바로 다음 날 아침 7시에 도시 교외에서 우리는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 바로 이때 나에게 뭔가 숙명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저녁 무렵 난폭하고 추한 몰골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나의 당번병 아파나시에게 화를 내고 그의 얼굴을 두 번씩이나 있는 힘껏 후려갈겨서 그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나의 시중을 들기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고, 이전에도 그를 때리는 일이 있곤 했지만, 이렇게 짐승같이 잔혹하게 때린 적은 없었지요.
잠자리에 들었다가 세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보니 벌써 날이 밝아 오더군요. 나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고, 더 이상 자고 싶지가 않아서 창문 쪽으로 다가가 창문을 열고 보니 ─ 내 방 창문은 정원 쪽으로 나 있었습니다 ─ 해가 떠올라 따뜻하고 아름다웠으며 새들이 또 지저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듭디다. 도대체 이게 무엇일까, 내 영혼 속에 뭔가 치욕적이고 저열한 것이 느껴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러자 갑자기 그 즉시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은 겁니다. 다름 아니라 어제저녁 아파나시를 때린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갑자기 모든 것이 내 앞에서 재현됐고, 꼭 새롭게 반복되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앞에 아파나시가 서 있고, 내가 그의 얼굴을 곧바로 힘껏 후려치지만, 그는 꼭 대열 속에 서 있는 양 차렷 자세로 고개를 똑바로 들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으며 맞을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손을 쳐들어 몸을 막을 엄두조차도 내지 못하는 것이니 ─ 사람이 정녕 이 지경에 이르다니, 사람이 사람을 때리다니! 이런 범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때 나는 나의 형 마르켈과 죽음을 앞두고 그가 하인들에게 했던 말 “나의 사랑스런 이들, 선량한 이들이여, 무엇 때문에 여러분은 나에게 이렇게 잘해 주시는 겁니까, 무엇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겁니까, 아니 제가 이런 걸 받을 자격이 있는 몸입니까?”를 떠올렸습니다. ‘그럼, 나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갑자기 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정말로 내가 하느님의 형상과 닮음으로 만들어진, 나와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의 봉사를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인가?’
그러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와 곧장 아파나시의 골방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아파나시, 어제 내가 자네 얼굴을 두 번이나 때렸는데, 나를 용서해 주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그의 발밑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완전히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나리께서 어찌 이런…… 아니, 이 몸이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러고는 꼭 조금 전 나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고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창문 쪽으로 다가가 온몸을 벌벌 떨며 흐느껴 울었고, 나는 동료에게로 달려가 냉큼 마차에 올라 “가세.”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상대방들은 진작 그곳에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열두 걸음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섰으며 그가 먼저 쏘게 됐는데 ─ 나는 그 앞에 즐거운 마음으로 서서 곧장 얼굴을 맞대고 있으되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정답게 그를 바라보았으니, 내가 할 일을 알았던 것이지요. 그는 총을 쐈는데, 총알은 나의 뺨을 아주 살짝 스치고 귀 끝에 약간 상처를 냈을 뿐이었습니다.
“천만다행입니다.”라고 내가 외쳤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그러고서 나는 내 권총을 집어 뒤돌아서서는 멀리 숲 속으로 휙 집어던졌습니다. “네놈이 있을 곳은 저기다!”라고 외쳤지요. 그러곤 적수에게 몸을 돌렸습니다. “친애하는 선생님.”이라고 내가 외쳤습니다. “저를, 이 어리석은 젊은이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 잘못으로 인해 당신을 모욕하고 지금은 총을 쏘도록 강요했습니다. 저 자신이 당신보다 열 배, 아니 그보다 더 나쁜 놈입니다. 이 점을 당신이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저 부인에게 전해 주십시오.”
결투 입회인들, 특히 내 쪽 사람이 “아니, 이렇게 연대를 욕보이다니, 결투선 앞에 서서 용서를 구하다니, 정말 이럴 줄은 몰랐어!”라고 소리칩니다. 그러자 나는 웃음을 거두고 그들 모두 앞에 섰습니다. “여러분, 정녕 우리 시대는 이제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자신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사죄하는 사람을 이렇게 놀란 눈으로 맞이할 정도가 된 것입니까?”라고 내가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지당하고 경건하군요. 하지만 어쨌거나 당신은 독특한 사람이오.” ” 결투 상대자가 말합디다.
“비웃어도 좋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도 그를 향해 웃습니다. “그래도 나중에는 칭찬을 하실 겁니다.”
“아니, 지금이라도 칭찬할 용의가 있으며, 자 이렇게 당신에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는 바요, 당신은 정말로 진실한 사람인 것 같으니 말이오.”
“아닙니다, 훗날, 제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당신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생기면 그때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곧 모든 동료들이 바로 그날 나를 재판하러 몰려들었습니다. “군복을 더럽혔으니, 차라리 퇴역을 해라.” 옹호자들도 나타났습니다. “어쨌거나 총탄 앞에서 버텼잖아.” 나는 그들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듣고 있습니다.
“친애해 마지않은 벗들이여, 동료들이여. 내가 퇴역하지 않을까 싶어 염려하진 말게, 벌써 그렇게 했거든, 바로 오늘 아침에 이미 관청에 퇴역 신청서를 제출했으니 허가가 떨어지는 대로 곧장 수도원으로 갈 거야, 바로 이것을 위해서 퇴역하는 거니까.”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나에서 열까지 다들 으하하 홍소를 터뜨렸습니다.
“처음부터 알려 줬더라면 좋았을걸, 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는군, 수도사를 이러쿵저러쿵 재판할 수는 없지 않나.” 다들 웃었지만 냉소 따위는 전혀 아니라 너무도 다정하고 즐거운 웃음이었으니, 나를 가장 광포하게 비난한 자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나를 사랑하게 되었고, 심지어 가엾이 여기기까지 했지요.
도시의 사교계에서도 거의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전에는 나한테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반갑게 맞아들여 주는 정도였지만, 이제는 갑자기 다들 앞을 다투어 나에게 알은체를 하고 자기 집에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비웃으면서도 나를 사랑했던 것이지요. 이런 대화들은 모두 대부분이 부인들의 저녁 모임에서 나왔는데, 그때마다 여성들이 내 말을 듣는 걸 더 좋아하여 남성들에게도 들으라고 강요하곤 했지요. “아니 어떻게 내가 모든 이들에 대해 죄인일 수가 있는 거죠.”라며 누구나 내 눈에다 대고 웃었지요.
그 모임에서 갑자기 부인들 중에서 가장 젊은 한 부인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으니, 그 젊은 부인은 내가 나의 신붓감으로 간주했던 바로 그녀였건만 나는 여태껏 그녀가 이 저녁 모임에 왔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로 다가와서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실례지만, 제가 당신을 비웃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라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오히려 저는 눈물을 흘리면서 당신에게 감사드리며 그때 당신의 행동에 대해 당신에게 저의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바로 그때 그녀의 남편이 다가왔고, 이어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내 곁으로 몰려와 거의 입을 맞추다시피 했습니다.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으나 그때 갑자기 역시나 내 곁으로 다가온, 이미 나이가 지긋이 든 한 신사가 유난히도 눈에 띄었으니, 이전에도 그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서로 소개를 한 적도 없었고 심지어 이날 저녁까지는 한마디도 나눈 적이 없는 처지였습니다.
라) 신비스러운 방문객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도시에서 관직 생활을 해 온 자로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높은 지위의 부유한 사람이었고 자선가로도 유명하며 죽은 후에 밝혀진 바로는, 사람들 몰래 익명으로도 많은 자선 행위를 했습니다. 나이는 쉰 살 정도, 거의 준엄하다 싶은 외모, 그리고 말이 없는 편이었지요. 젊은 부인과 결혼한 지는 십 년도 채 안 됐으며, 그녀와의 사이에 세 명의 어린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저녁, 내가 집에 있는데 갑자기 내 방의 문이 열리더니 바로 이 신사가 들어오는 겁니다.
"벌써 며칠째 여러 집에서 대단한 호기심을 갖고 당신의 말을 들어오다가 마침내 당신과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누고 좀 더 상세하게 얘기를 해 보고 싶어 졌습니다. 친애하는 선생님, 저에게 그런 큰 기쁨을 선사해 주실 수 있을는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특별한 영광입니다."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거의 경악하기까지 했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으면 나는 처음부터 그에게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참 대단히 강단 있는 분입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라면서 그가 말을 이어갑니다. "실은, 오직 이 점이 저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고 이 때문에 당신을 찾아온 것입니다. 저의 무척이나 천한 호기심을 경멸하지 않으신다면, 그리고 기억이 나신다면, 결투에서 용서를 빌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에 당신이 정확히 무엇을 느꼈는지를 저에게 묘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아파나시와 있었던 모든 일을, 그에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미 집에서 첫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에 결투를 할 무렵엔 이미 제 마음이 가벼워졌던 것이니, 일단 그 길로 들어서고 나니까 그다음은 모든 일이 어렵기는커녕 도리어 기쁘고 즐겁게 진행되었던 겁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그는 무척 좋은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습디다. "모두 다 굉장히 흥미로운 얘기군요,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때 이후 그는 거의 매일 밤 나를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저녁마다 이렇게 열렬하고 환희에 찬 대화를 나누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나는 심지어 사교계에도 발을 끊고 남의 집 방문도 훨씬 더 드물어졌으며, 그뿐만 아니라 나의 인기도 시나브로 저물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마침내 신비스러운 방문객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총명함에 탐닉하는 것 말고도 그가 자신의 내부에서 어떤 계획을 품고 있으며 어쩌면 위대한 위업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기 시작한 까닭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그가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 왜 그러십니까?" 내가 말합니다.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그는 역시나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습니다.
"저는…… 아시겠습니까…… 저는…… 사람을 죽인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얼굴은 분필처럼 새하얬습니다. 나 역시도 얼굴이 새하얘졌습니다.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그에게 소리칩니다.
십사 년 전 어느 젊고 아름다운 부유한 부인, 우리 도시를 방문할 때 거처로 쓰려고 시내에 자기 집을 갖고 있었던 미망인 여지주가 그 희생양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크나큰 사랑을 느낀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자기한테 시집을 오라고 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있었는데, 그는 계급이 제법 높은 명망 있는 군인으로서 그때 마침 원정을 떠나 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의 청혼을 거절했고 자기 집에 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발을 끊었지만, 그녀의 집 구조를 잘 알고 있던 터라,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서 참으로 대단한 담력을 발휘하여 정원에서 지붕을 넘어 그녀의 방으로 잠입했습니다. 잠자는 여인의 모습을 보자 그의 내부에서는 열정이 불타올랐지만, 다음 순 간 복수욕과 질투에 가득 찬 악의가 그의 심장을 거머쥐었고, 그는 술에 취한 듯 거의 제정신을 잃은 채 그녀에게로 다가가서 그녀의 가슴에 곧바로 칼을 꽂았으니, 그녀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지옥과 같은 범죄자의 지능을 발휘하여 하인들의 소행인 양 여겨지게끔 일을 꾸몄지요.
당장 혐의를 뒤집어쓴 것은 그녀의 농노이자 하인인 표트르로서 때마침 제반 상황들이 이 혐의를 확증해 주는 쪽으로 딱 맞아떨어졌으니, 그녀가 자신의 농노들 중에서 차출해야 할 신병으로 그를 점찍었음을 표트르 자신도 알고 있었고 또 고인이 된 부인도 숨기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홀몸인 데다가 품행이 방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술집에서 술에 취해서는 너무 분한 마음에 그녀를 죽여 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을 사람들은 들어왔던 것이지요.
그는 체포되었고 재판이 시작되었지만, 때마침 일주일 뒤에 이 죄수가 열병에 걸려 앓아눕더니 의식 불명의 상태에서 병원에서 죽어 버렸습니다. 이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어 하느님의 뜻에 맡겨졌으며 다들 - 재판관들이며 당국이며 사교계며 할 것 없이 이 범죄는 다름 아닌 죽은 하인의 소행이었다고 확신했지요. 하지만 그다음부터 벌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대단히 열심히 업무에 매달렸으며 자기가 나서서 번잡스럽고 어려운 임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가운데 이 년 정도를 보냈는데, 타고나길 강한 성격의 소유자인 지라 지난 일은 거의 다 잊었습니다. 기억이 날 때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요. 자선 사업에도 손을 대서 많은 기관을 세우고 우리 도시에서 기부도 많이 했으며 양쪽 수도, 그러니까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에서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그곳의 자선가 협회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어느 아름답고 현명한 아가씨가 그의 마음에 들었으며, 그는 결혼을 통해 새로운 길로 들어서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열성적으로 이행함으로써 옛 추억들로부터 완전히 멀어지게 되리라 꿈꾸면서 곧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정반대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결혼 첫 달부터 '저 아내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데, 혹시 알아 버린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라는 끊임없는 생각이 그를 혼란스럽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첫아이를 임신하여 그에게 이것을 알렸을 때 그는 더욱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는 악몽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강심장이었기 때문에 고통을 오랫동안 참았습니다. '나의 이 은밀한 고통으로 모든 죄가 사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 희망도 헛된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더 심해졌습니다. 사회에서는 다들 그의 엄격하고 음울한 성격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선 행위 덕분에 그를 존경하기 시작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점점 더 참을 수 없게 됐습니다. 그는 자살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노라고 고백했습니다.
"나를 위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한 가지를!" 그는 (꼭 이제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나에게 말했습니다. "바로 아내와 아이들 말입니다! 아내는 어쩌면 괴로워하다가 죽어 버릴 것이고, 아이들은 귀족 작위와 영지를 빼앗기지는 않더라도 영원토록 흉악범의 자식으로 살아갈 테죠. 내가 아이들의 마음속에 그런, 그런 기억을 남겨 주다니요!" 나는 침묵합니다.
"그들과 헤어져야 합니까, 그들을 영원히 버려야 합니까? 그것도 영원토록, 영원토록 말입니다!"
나는 앉아서 속으로 말없이 기도를 속삭입니다. 마침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는 데, 무서워졌습니다.
"어쩌죠, 정말?" 그가 나를 바라봅니다.
"가십시오."라고 내가 말합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공표하십시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진리만이 남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 당신의 위대한 결단에 얼마나 많은 관대함이 들어 있었는지 이해할 겁니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이 주일이 넘도록 나를 찾아오면서도 매일 밤 연이어 줄곧 채비만 할 뿐, 여전히 마음을 정하진 못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이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가 소리쳤습니다.
"꼭 그래야만 할까요? 누가 나 때문에 누가 감옥신세를 진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 하인은 병으로 죽은 겁니다. 나로 인해 흘려진 피에 대해서는 고통으로써 벌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내 말을 믿을 사람도 없고, 내가 무슨 증거를 제시해도 안 믿을 겁니다. 꼭 공표해야 할까요, 더욱이 사람들은 이 진리를 알아줄까요, 그걸 높이 평가하고 존경해 줄까요?"
'맙소사!' 나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순간에 사람들의 존경을 생각하다니!'
"가서 공표하십시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단호한 어조로 속삭였습니다.
바로 그때 나는 탁자에서 러시아어판 복음서를 집어 들어 그에게 요한복음 12장 24절을 보여 주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는 이 구절을 그가 도착하기 직전에 막 읽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를 껴안고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그의 얼굴이 너무도 일그러져 있었고 그 시선이 또 너무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갔습니다. 내가 눈물에 젖어 기도를 한 지 반 시간쯤 지났고, 이 미 12시경, 늦은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것이 보이더니, 그가 다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딜 갔다 오십니까?" 그에게 묻습니다.
"저는" 하고 그가 말합니다. "제가 뭔가를 두고 간 것 같아서…… 손수건이 아니었나 싶은데…… 뭐, 아무것도 안 두고 갔더라도, 잠깐 앉아 있었으면 해서……." 그러면서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갑자기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꼭 껴안고 입을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기억해 두게. 내가 두 번째로 자네를 찾아왔다는 것을. 이걸 꼭 기억해 두란 말일세!"
처음으로 그는 나에게 자네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러고는 떠났지요. '내일이다.' 나는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그의 생일날에 그의 집에서는 큰 모임이 있었고 도시 전체가 몰려들었습니다. 만찬이 끝나자 그가 한가운데로 나왔는데, 손에는 종잇장 하나가, 당국에 제출할 정식 보고서가 들려 있었습니다. 마침 경찰 국장도 그 자리에 참석했기 때문에 바로 그 즉시, 만찬에 모인 일동 앞에서 큰 소리로 종잇장을 읽었는데, 거기에는 범행 일체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저 같은 불한당을 스스로 인간 사회에서 추방하려 합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방문하셨으니 고통받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서류는 끝을 맺었습니다. 그러고는 당장 자신의 범죄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십사 년간 간직해 온 모든 것을 가져와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다들 소스라치게 놀라 경악을 금치 못했고, 호기심은 굉장했어도 아무도 실성한 듯싶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으며, 며칠 뒤에는 이미 모든 집에서 불행한 사람이 정신이 나간 것이라고 완전히 단정 짓고 결론을 내려 버렸습니다. 당국과 재판소는 조사에 착수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들도 곧 중단해 버렸습니다. 설사 제시된 물건과 편지를 보면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또 만약 이 서류가 신빙성이 있다 할지라도 어쨌거나 이 서류만을 근거로 최종적인 유죄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났던 것입니다.
닷새쯤 뒤에 모든 사람들은 이 수난자가 병이 났으며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무슨 병이었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심장 장애라고들 말했는데, 그의 부인의 강청에 따라 의사 위원회에서 그에게 정신감정을 실시한 결과 그에게는 이미 정신 이상의 징후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질문 공세를 퍼부었을 때도 나는 아무것도 불지 않았지만, 내가 그에게 병문안을 가고 싶어 했을 때는 오랫동안 내게 욕을 퍼부었고 특히 그의 부인이 더 심했습니다.
그나저나 마침내 나는 그와의 면회를 허락받았는데, 그가 먼저 나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다고 집요하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나는 대번에, 그에겐 며칠은커녕 몇 시간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싯누렇게 떠 있었으며 숨을 헐떡였지만, 그래도 시선은 감동과 기쁨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루어졌네!" 나에게 말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자네를 보고 싶었건만, 왜 오지 않았나?"
나는 사람들이 그와의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다는 얘기는 그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이 나를 어여삐 여겨서 곁으로 부르시는 것이야. 내가 죽어 가고 있다는 건 알지만, 그 오랜 세월 이후 처음으로 기쁨과 평화를 맛보고 있네. 이제는 감히 내 아이들을 사랑할 수도, 아이들에게 입을 맞출 수도 있겠네. 내 말을 믿지 않아, 아내도, 나의 재판관들도 아무도 믿지 않았지. 아이들도 결코 믿지 않겠지. 이것만 봐도 나의 아이들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를 알 수 있다네. 내가 죽더라도 내 이름은 아이들에게 오점 하나 없는 청렴한 것으로 남을 테지. 이제는 하느님을 예감하면서, 마음이 꼭 천국에 있는 양 즐겁다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숨을 헐떡이면서 그는 내 손을 열렬하게 쥐고 불타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더군요. 그리고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속삭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두 번째로 자네의 집을 찾았던 걸 기억하나? 그러고는 자네에게 그걸 꼭 기억해 두라고 한 것도? 무엇 때문에 들어갔는지는 알고 있나? 실은 자네를 죽이려고 갔던 거라네!"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나의 주님이 내 마음속의 악마를 무찔렀지. 그나저나, 자네가 죽음에 그토록 가까이 가 있었던 적은 결코 없었다는 것이나 알아 두게." 일주일 뒤 그는 죽었습니다. 그의 관이 무덤까지 가는 길에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동행했습니다. 대사제의 감격에 찬 조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수명을 단축시킨 무서운 병을 두고 통곡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장례식이 끝나자, 전 도시가 나에게 대항하여 일어났으며 심지어 더 이상 나를 손님으로 받아들이지도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소수였지만 나중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증언이 사실이었다고 믿기 시작했으며, 자주 나를 방문하여 엄청난 호기심과 기쁨을 내 보이며 캐묻기 시작했지요. 사람이란 의인의 몰락과 그의 치욕을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곧 그 도시에서 완전히 떠났으며 오 개월쯤 뒤에는 장엄한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니, 나에게 이토록 분명하게 이 길을 지시해 준 보이지 않는 손가락을 축복하면서 말입니다. 많은 고통을 겪은 하느님의 종 미하일을 나는 오늘날까지도 매일 기도를 드리면서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 러시아의 수도사와 그 가능한 의의에 관하여
신부님들, 선생님들, 수도사란 무엇입니까? 오늘날과 같이 계몽된 세계에서 어떤 이들은 냉소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또 다른 이들은 욕설로 사용하지요. 사실, 오, 사실 수도사 사회에도 기생충들, 호색한들, 음탕꾼들, 뻔뻔스러운 부랑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가리켜 속세의 사람들은 “당신들은 게으름뱅이에 사회의 무용지물,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먹고사는 후안무치한 거지들에 불과하다.”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수도사 사회에는 겸손하고 온순한 자들, 정적 속에서의 열정적인 기도와 고립을 갈구하는 이들이 그 못지않게 많이 있습니다. 속세에서 이런 이들을 가리키는 일은 좀체 없으며 이들에 대해선 숫제 입을 다물어 버리기 일쑤기 때문에, 만약 내가 이렇게 고립된 기도를 갈구하는 온순한 이들 덕분에 다시 한번 러시아 땅이 구원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면, 다들 깜짝 놀랄 테지요.
하지만 이들은 진실로 정적 속에서 ‘한 시간, 하루, 한 달, 일 년을 위하여’ 단련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일단은 고대 신부들, 사도들, 순교자들로부터 전해진 하느님의 진실의 순수한 모습 그대로 왜곡하지 않고 장엄하게 자신의 고립 속에서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가 되면 이 세상의 동요하는 진실 앞에 내보일 것입니다. 이 생각은 위대한 것입니다. 이 별은 동방에서부터 빛날 것입니다.
수도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러한데, 정녕 이것이 거짓된 것이며 정녕 오만한 것입니까? 속세 사람들을 한번 보십시오, 하느님의 민중 위에 군림하고 있는 온 세상, 거기서 하느님의 얼굴과 그분의 진실이 왜곡되어 있진 않습니까? 그들에게는 과학이 있지만, 그 속에는 오직 감각에 종속된 것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정신적인 세계, 인간 존재의 드높은 반쪽은 완전히 거부되어 증오마저 깃든 어떤 의기양양함과 함께 추방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이념의 투사’는 감옥에서 담배를 빼앗겼을 때 이 박탈이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자기한테 담배만 준다면 그 즉시 서슴지 않고 자신의 ‘이념’을 배반할 것 같았노라고 나에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인류를 위해서 투쟁하러 간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이런 자가 과연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즉각적인 행동이라면 모를까, 오래 버텨 내지는 못할 겁니다.
이런 자들이 자유 대신 노예적 굴종에 빠져들고 형제애와 인류의 합일에 봉사하는 대신 오히려 단절과 고립 속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이 노예와 같은 인간이 제멋대로 고안해 낸 이 무수한 욕구들을 해소하는 데 그토록 익숙해졌다면 자신을 끌어당기는 이 습관들을 어떻게 떨쳐 버리겠으며 또 어디로 가겠습니까? 자기 자신이 고립 속에 놓여 있는 마당에 전체가 그에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하여 결국엔 물건은 더 많이 모으게 됐지만 기쁨은 더 적어지게 됐지요.
수도사의 길은 다른 것입니다. 복종과 금욕과 기도가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오직 이런 것들 속에만 그야말로 참된 진짜 자유로 가는 길이 들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쓸데없고 불필요한 욕구들을 떨쳐 내고 나의 자존심에서 비롯되는 오만한 의지를 복종으로써 다스리고 채찍질하여 이로써 하느님의 도움으로 정신의 자유에, 그와 더불어 정신적인 명랑함에 다다르는 것입니다!
예부터도 우리에게서 민중의 활동가들이 나왔건만, 무엇 때문에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겁니까? 이 겸손하고 온순한 금욕주의자들, 묵언 수행자들이 들고일어나 위대한 일을 위해 나갈 것입니다. 루시의 구원은 민중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러시아의 수도원은 태곳적부터 민중과 함께였습니다. 민중이 고립되어 있다면, 우리도 고립되게 마련입니다. 민중을 아끼고 또한 민중의 마음을 아끼십시오. 정적 속에서 민중을 교육하십시오. 자, 바로 이것이 우리 수도사의 위업일지니, 이는 이 민족이 신을 잉태한 민족인 까닭입니다.
바) 주인과 하인에 관하여, 주인과 하인이 정신적으로 서로 형제가 될 수 있는가에 관하여
아, 슬프게도, 혹자는 민중에게도 죄가 있다고 말합니다. 부패의 불꽃은 심지어 눈에 뜨일 만큼 증가하여 시시각각 위에서 아래로 내려옵니다. 민중 속에서도 고립이 도래하고 있습니다. 부농들과 착취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상인조차 점점 더 많이 존경을 바라고 교양이란 전혀 없으면서도 예스러운 풍습을 추악하게 경멸하고 심지어 조상들의 믿음마저 수치스러워합니다.
공작들 집을 드나들지만, 그래 봐야 그 자신은 타락한 농사꾼일 따름이지요. 민중은 음주 때문에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서 이미 그것에서 헤어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가족과 아내,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도 얼마나 잔혹하게 구는지요. 이 모든 것이 다 음주 때문입니다.
나는 공장에서 열 살 남짓한 아이들마저도 보았습니다. 하나같이 병약하고 부실하고 등이 굽은, 벌써 방탕에 물든 아이들이지요.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태양, 아이들의 놀이, 곳곳에 해맑은 모범, 한 방울이라도 그 아이를 향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수도사 여러분, 아이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들고일어나서 어서 빨리, 빨리 설교하십시오.
하지만 하느님이 러시아를 구원할 것이니, 이는 평민이 방탕하여 어쩔 수 없이 추악한 죄를 짓는다 할지라도 그는 어쨌거나 자신의 추악한 죄가 하느님의 저주에 의한 것임을, 죄를 지음으로써 자신이 고약한 짓을 저질렀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민중은 끊임없이 진실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을 인정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상류층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과학을 좇아 예전처럼 그리스도 없이 오직 자신의 머리만으로 공정한 세상을 이룩하길 원하며 이미 범죄도, 죄도 없다고 선포했습니다.
유럽에서는 민중이 이미 무력으로 부자들에게 대항하고 있고, 민중의 우두머리들이 방방곡곡에서 민중을 유혈로 이끌어 가면서 민중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분노는 잔혹하기 때문에 저주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러시아를 구하실 것이니, 이미 여러 번 구원했듯이 말입니다. 그 구원은 민중으로부터, 민중의 믿음과 겸손으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민중은 노예처럼 비굴하지 않으며, 두 세기에 걸쳐 노예 생활을 해 왔음에도 그러합니다. 우리 러시아 사람은 가난하면 할수록 또 지위가 낮으면 낮을수록, 숭고한 진실만은 더 부각되는데, 이는 그들 중 다수의 부농과 착취자가 이미 타락했기 때문이니, 이것은 참으로 많은 부분, 우리의 태만과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자신의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니, 이는 러시아가 위대한 것이 자신의 겸허함 때문인 까닭입니다. 나는 우리의 미래를 보기를 꿈꾸며 벌써부터 그것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가장 타락한 우리의 부자도 결국에는 가난한 자 앞에서 자신의 부를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며 가난한 자도 이 겸허함을 보고서 그를 이해하여 기꺼이 양보하고 그의 숭고한 수치심에 다정하게 화답하게 될 테니까요. 결국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꼭 이런 결말이 날 것입니다. 평등은 오직 인간의 정신적 존엄성 속에만 깃들어 있는 것이며, 이것은 우리들만이 깨닫게 될 겁니다. 만약 형제가 된다면 박애도 생겨날 것이지만, 박애가 생기기 전에는 분배란 불가능할 겁니다. 아멘, 아멘!
아파나시와의 재회
신부님들, 스승님들, 한 번은 나에게 감동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순례를 하던 어느 날, 나는 옛 당번병이었던 아파나시를 만났는데, 그와 헤어진 지 벌써 팔 년이 지난 때였지요. 그는 나를 바로 알아보고는 달려와 정말이지 나를 덮칠 듯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리, 주인 나리, 정말 나리십니까? 정말 이렇게 나리를 보게 되다니요?” 그러곤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이미 전역했고, 결혼도 했고, 이미 두 명의 어린애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인과 함께 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면서 푼돈을 벌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 사모바르를 올려놓고 아내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으니, 꼭 내가 그의 집에 나타난 것이 그에게 무슨 축제나 된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도 내 곁으로 데려왔습니다. "축복해 주십시오, 나리." "나더러 축 복을 해 달라는 것인가?"라고 내가 그에게 대답합니다. "나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수도사일뿐이니, 그저 아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겠네, 자네에 대해서라면, 아파나 시 파블로비치, 바로 그날 이후 언제나 매일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네, 왜냐면 모든 것 이 자네 덕택이니까." 하고 말합니다.
차를 마신 뒤 나는 그와 헤어지려 했는 데, 갑자기 그가 나에게 반 루블짜리 은화 한 닢을 수도원 기부금으로 내주었고, 그러고도 보니 은화 한 닢을 더 나의 호주머니에 쑤셔 넣으면서 서둘러 "이건 나리께, 여행 중이 신 이상한 분인 나리께 드리는 겁니다, 행여 요긴하게 쓰일지도 모르니까요, 나리."라고 합디다. 그때 이후로 나는 그를 더 이상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의 주인이었고 그는 나의 하인이었지만, 그와 내가 정신적인 감동에 젖어 서로 정답게 입을 맞춘 지금, 우리 사이에는 위대한 인간적인 합일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결국에 가서 사람은 지금과 같이 잔인한 기쁨, 즉 폭식과 방탕과 자만과 교만, 남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질투심 속에서가 아니라 오직 계몽과 자비의 위업에서만 자신의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 - 정녕 이것이 헛된 꿈에 불과하단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으며, 오히려 그 시간이 가까워졌노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으면서 물어들 보곤 합니다. 그 시간이 언제 도래할 것인가, 과연 도래할 기미가 보이긴 하는가? 나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이 위대한 과업을 이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조롱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봅시다. 만약 우리 생각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면, 당신들이야말로 도대체 언제 저 건물을 지어 올릴 것이며 그리스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머리만으로 공정한 세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서 올바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결국에는 세상을 피로 물들이게 될 것인데, 이는 피는 피를 부르고 칼을 뽑아 든 자는 칼로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내가 아직 군복을 입고 있었을 때, 결투가 끝나고 내가 사교계에서 하인들에 대해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하자 다들 내 말에 깜짝 놀라하던 일이 기억나는군요. "아니 그럼, 우리가 하인들을 소파에 앉히고 그들에게 차를 내다 바쳐야 된다는 겁니까?" 그때 나는 그들에게 "가끔 그렇게 못 할 것도 없잖습니까?"라고 대답했지요. 그러자 다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경솔했고 나의 대답은 불명료했지만, 거기에는 적지 않은 진리가 들어 있었노라고 생각합니다.
사) 기도에 관하여, 사랑에 관하여, 그리고 다른 세계들과의 접촉에 관하여
청년이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라. 그대가 기도를 할 때마다, 만약 그것이 참되다면, 새로운 감정이 솟아날 것이며 거기에는 그대가 이전에는 몰랐지만 새로이 그대의 기운을 북돋아 줄 새로운 생각도 들어 있다. 그리하여 기도가 곧 교육임을 깨달을 것이다. 이것도 기억해 두라. 매일 그대가 할 수 있을 때마다 속으로 '주여, 오늘 하루 주님 앞에 나타난 모든 자들을 어여삐 여기시옵소서.'라고 되뇌도록 하라.
자, 이제, 그들의 명복을 비는 그대의 기도가 이 땅의 반대편 끝에서부터 주님께로 올라갈 것이니, 비록 그대도 그들을 모르고 그들도 그대를 전혀 몰랐다 할지라도 그럴 것이다. 주님 앞에 공포감을 느끼며 섰던 그의 영혼이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를 해 주는 자가 있으며 지상에 자기를 사랑해 주는 인간 존재가 남아 있음을 느낀다면 바로 그 순간 얼마나 감동하겠는가. 더욱이 하느님은 그대들 둘을 모두 더욱더 자비롭게 바라볼 것이니, 하느님은 그대보다 더 한량없는 자비와 사랑을 지니고 그들을 안쓰러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여, 동물들 위에 군림하려 들지 말지어다. 그들 은 죄 없는 존재이지만, 인간인 그대는 위대하게 이 땅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도 땅을 썩어 문드러지게 하고 자신의 썩은 고름을 죽은 뒤에도 남겨 놓곤 하니 - 오호, 우리 모 두가 거의 다 그러하다! 특히 아이들을 사랑할지니, 이는 그들도 또한 천사처럼 죄 없는 존재로서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있어 어 떤 지표처럼 살고 있는 까닭이다.
어떤 생각 앞에서 의혹을 느낄 때가 있는데, 특히 사람들의 죄를 보면 힘으로 취할 것인가, 아니면 겸허한 사랑으로 취할 것인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그때는 언제나 '겸손한 사랑으로 취한다.'라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라. 일단 그렇게 결심하고 나면 전 세계를 정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겸허한 사랑은 강력한 힘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힘이며 그에 맞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형제들이여, 사랑이란 그것을 획득하는 방법을 알아야 되는 것이니, 이는 그 사랑을 획득하기란 지극히 어렵고 오랜 시간의 일과 오랜 기간을 통해 비싼 대가를 치러야 되기 때문이며, 그저 한 우연한 순간을 위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사랑해야 한다. 젊은이였던 나의 형님은 새들에게도 용서를 구했다. 이것은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실은 진실이었으니, 이는 모든 것이 대양과 같아서 흘러 흘러서 서로 만나게 되므로 한 곳을 건드리면 - 세계의 반대편 끝에서 그 반향이 울려 퍼지는 까닭이다.
나의 벗들이여, 하느님에게서 즐거움을 구하라. 어린아이들처럼, 하늘의 새처럼 즐거 워하라. 사람들의 죄가 그대들의 행동에 있어서 그대들을 미혹하지는 않을 것이니, 그것이 그대의 과업을 망쳐 성사되지 못하게 방해할까 봐 두려워하지 말며 "죄도 강력하고 부정도 강력하고 추악한 환경도 강력하건만, 우리는 외롭고 힘이 없으며 추악한 환경이 우 리를 망치고 복된 과업의 수행을 방해한다."라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이 지상에서 우리는 참으로 방황하고 있는 것이니, 만약 그리스도의 귀중한 형상이 우리 앞에 없었더라면, 우리는 대홍 수 직전의 인류처럼 파멸하여 완전히 길을 잃었을 것이다. 지상의 많은 것이 우리로부터 감추어져 있지만, 그 대신 우리에게는 다른 세계, 드높은 천상의 세계와 우리 사이에 맺 어진 생생한 관계에 대한 은밀하고 소중한 감각이 주어졌고, 더욱이 우리의 생각들과 감 정들의 뿌리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있노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지상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다른 세계에서 씨앗을 가져와 이 땅에 뿌렸고 그분의 정원을 가꾸었으니, 싹을 틔울 수 있는 모든 것은 싹을 틔웠지만 자라고 있는 것은 오로지 다른 신비스러운 세계와의 접촉의 감각을 통해서만 살아가고 또 이로써만 살아 있는 것이 되는 셈이다. 만약 그대의 내부에서 이 감각이 약해지거나 없어진다면, 그대의 내부에서 자라난 것도 죽을 것이다. 그때는 삶에 무관심해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내 생각은 이러하다.
아) 자신과 같은 사람들의 심판자가 될 수 있는가? 최후까지의 믿음에 관하여
그대가 그 누구의 심판자도 될 수 없음을 특별히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는 이 심판자 자신이 자기 앞에 서 있는 자와 마찬가지로 죄인이며 그 심판자야말로 자기 앞에 서 있는 자의 죄에 대해 그 누구보다 더 많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전에는 지상에는 죄인의 심판자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게 될 때야 비로소 심판자가 될 수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의로웠다면, 아마 내 앞에 서 있는 죄인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가 그대 앞에 서 있으되 그대 마음대로 심판할 수 있는 이 죄인의 죄를 그대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즉시 그렇게 받아들이고 그를 위하여 고통받을 것이며 그를 책망하지 말고 풀어 주도록 하라. 이는 죄인이 떠나가 그 스스로 그대의 심판보다 더 가혹하게 자기 자신을 단죄할 것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행하도록 하라. 잠을 자려고 할 때 ‘해야 할 일을 행하지 못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 즉시 일어나서 행하도록 하라. 그대 주위의 사람들이 표독스럽고 무감각하여 그대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들 앞에 엎드려서 그들에게 용서를 구할지니, 이는 그들이 그대의 말을 등한시하는 것이 진정 그대의 잘못인 까닭이다.
끝까지 믿으라, 비록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타락하고 그대 혼자만이 믿음을 간직하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때는 홀로 남겨진 그대가 제물을 갖다 바치고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하라. 만약 그대와 같은 자 둘이 모인다면, 그때는 이미 온 세상이 살아 있는 사랑으로 가득 찬 세상이 되는 것이니, 서로서로 감동스럽게 부둥켜안고 주님을 찬미하도록 하라. 이는 비록 두 사람이긴 하지만 그대들 안에서 주님의 진실이 충만해진 까닭이다.
사람들의 악행이 그대를 분노와 이미 더 이상 물리칠 수 없는 비애로 혼란스럽게 할지라도, 심지어 악당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길지라도, 무엇보다도 이 감정 자체를 두려워하라. 그럴 때는 그대 자신이 이 악행에 책임이 있는 양 생각하고 곧장 가서 스스로를 위한 고통을 찾도록 하라.
그대가 빛을 비추었건만 그대의 빛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본다면, 그렇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마음을 굳게 먹고 천상의 빛의 힘을 의심하지 말도록 하라. 만약 지금 구원받지 못했다면 훗날엔 구원받을 것이라 믿도록 하라. 훗날에도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들의 아들이 구원받을 것이니, 이는 그대가 이미 죽었다 할지라도 그대의 빛은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인이 떠나가도, 그의 빛은 남는 법. 구원이란 언제나 구원자가 죽고 난 뒤에 찾아오는 법이니라.
그대는 전체를 위하여 일할 것이며 미래를 위하여 행하도록 하라. 절대로 보상을 구하지는 말 것이니, 이는 그것이 없더라도 이 땅에서 그대를 위한 보상은 위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의로운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그대의 정신적인 기쁨이 바로 그것이다. 명망 있는 자들도, 힘 있는 자들도 두려워하지 말고, 언제나 현명하고 언제나 장엄하게 굴도록 하라. 무엇이건 그 정도와 때를 알 것이며, 이것을 배우도록 하라. 고립 속에 머물면서 기도하도록 하라. 대지에 엎드려 대지에 입 맞추는 것을 좋아하도록 하라.
자) 지옥과 지옥의 불길에 관하여, 신비적 고찰
신부님들, 스승님들, ‘지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고통’이라고 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과 공간으로 측정할 수 없는 무한한 존재 속에서 어떤 정신적인 존재가 세상에 나타나자마자 “나는 존재한다, 고로 사랑한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이 한 번 주어졌습니다. 한 번, 오직 한 번 활동적이고 살아 있는 사랑의 순간이 그에게 주어졌으며 이를 위하여 지상의 삶도 주어졌건만, 그것과 더불어 시간과 기한도 주어졌으니 이를 어쩌겠습니까.
이 행복한 존재는 너무도 값진 이 선물을 하찮게 치부하여, 사랑은커녕 냉소와 무감각으로 일관했지요. 하지만 주님께 올라간 뒤에는 자신이 남을 사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사랑을 경멸했던 만큼, 사랑으로 일관했던 자들과 접촉한다는 것 자체로 괴로워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눈이 분명히 뜨이면서 이젠 자기 입으로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될 테니까요.
“이제야 비로소 알겠노라, 비록 사랑하길 갈망할지라도 이제 더 이상 나의 사랑에는 위업도, 희생도 없을 것이니, 이는 지상의 삶은 끝났으며 아브라함은 지금 지상에서 내가 무시해 버린 그 정신적인 사랑의 갈망의 불꽃을 식혀 줄 만한 단 한 방울의 생명수(生命水)도 (다시 말해 지상의 삶, 이전의 활동적인 삶이라는 선물을 새롭게) 가져다주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삶은 없고 시간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남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주고 싶어도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으니, 이는 사랑을 위해 희생할 수 있었던 그 목숨이 이미 다했기 때문에 이제는 이 삶과 이 존재 사이에 심연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지옥의 물질적인 불에 대하여 말하곤 합니다. 정말로 물질적인 불이라면 사람들은 진정으로 그것에 기뻐할 것인데, 왜냐면 내 바라건대, 물질적인 고통을 받는 동안에는 비록 순간일지라도 그보다 더 끔찍한 정신적인 고통을 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정신적인 고통이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땅에서 스스로를 죽였던 자들, 자살자들에게 고뇌가 있을 것입니다! 생각건대, 이들보다 더 불행한 자들은 숫제 아무도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우리에게 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 죄라고 말하면서 드러내 놓고 그들을 배척하지만, 내 영혼 속에서 은밀하게 생각하길,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베푼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화를 내시지는 않을 테니까요. 이런 자들에 대해 나는 평생 동안 마음속으로 기도해 왔으며 지금도 매일 기도하고 있음을, 신부님들 스승님들, 여러분에게 고백하는 바입니다.
오, 지옥에서도 격퇴할 수 없는 진실을 확실하게 알게 됐고 또 보았음에도 여전히 오만하고 난폭하게 구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탄과 그것의 오만한 정신에 완전히 합류해 버린 무서운 자들이 있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있어 지옥은 이미 자발적인 것이며 어찌해도 만족을 모르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하느님을 증오 없이는 바라볼 수 없으며, 생명의 하느님이 아예 없어지길, 하느님이 자신과 자신의 모든 창조물을 없애 버리길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분노의 불길 속에서 영원히 불타오를 것이며 죽음과 무(無)를 갈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는 죽음도 얻지 못할 테지요…….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의 원고는 여기서 끝나고 있다. 반복하건대, 이것은 온전하지 않으며 파편적이다. 예를 들어 전기적인 정보는 장로의 젊은 시절 중 오직 첫 부분만을 아우르고 있다. 그의 가르침과 견해 부분에서는 필경 다양한 시간에 각기 상이한 충동에 따라 말했을 것을 하나의 전체 속에 함께 합쳐 놓은 듯하다. 어떤 것이 장로의 인생의 이 마지막 시간에 그가 말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
장로의 최후
장로의 최후는 정녕 너무도 뜻밖의 방식으로 찾아왔다. 이 마지막 날 저녁 그의 방에 모였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것을 완전히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토록 느닷없이 찾아오리라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그의 벗들은, 이미 내가 위에서 지적했듯, 이날 밤 그가 너무도 원기 왕성하고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서, 아주 일시적으로나마 그의 건강이 눈에 뜨일 정도로 좋아졌다고 확신하기도 했다.
그는 갑자기 가슴팍에 아주 심한 통증을 느끼는 듯 창백해지더니 손으로 심장을 꽉 눌렀다. 그러자 다들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여전히 미소를 띤 채 그들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안락의자에서 마룻바닥으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섰으며, 그러고 나서는 얼굴을 땅바닥으로 기울인 채 팔을 활짝 펴고 기쁨에 찬 황홀경에 젖어 땅에 입을 맞추고 기도를 하면서(그 자신이 가르친 그대로였다.) 조용히 기쁘게 하느님에게 영혼을 바쳤다.
그의 부음은 즉각 암자로 퍼져 나가 수도원 곳곳에 다다랐다. 고인의 측근들과 지위상 의무가 있는 자들은 예부터 전해 오는 의식에 따라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고, 수도사들 전부가 성당으로 모여들었다. 훗날 소문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날이 새기 전에 이미 장로의 부음이 도시에까지 다다랐다고 한다. 아침 녘에는 거의 온 도시가 사건에 대해 떠들었으며 많은 시민들이 수도원으로 몰려들었다.
<6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