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9)

김연경 옮김 민음사

by Andy강성
9장
예심


1 관리 페르호친의 출세의 시작


표트르 일리치 페르호친, 우리는 그가 여자 상인 모로조바 집의 굳게 잠긴 대문을 있는 힘껏 두들기던 지점에서 이야기를 중단했지만, 물론 그는 마침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포악스럽게 대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듣자, 페냐는 두 시간쯤 전의 경악과 흥분이 아직도 가시지 않고 ‘상념’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 잠자리에 들 생각도 못 하고 있던 차에 이제는 또다시 거의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경악하고 말았다.


문지기는 정체를 확인한 뒤, 또 상대가 극히 중대한 일로 페도시야 마르코브나를 만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드디어 문을 열어 주기로 결심했다. 표트르 일리치는 페도시야 마르코브나의 부엌으로 들어섰는데, 페냐는 ‘마음이 놓이질 않아’ 문지기도 들어오게 해 달라고 강청했다. 표트르 일리치는 그녀에게 이것저것 캐묻다가 금세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다. 즉,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그루셴카를 찾으러 내빼면서 절구에서 공이를 집어 갔는데, 돌아왔을 때는 공이는 이미 온데간데없고 손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공이를 든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정확히 어디로 달려갔을까, 그러니까 정말로 표도르 파블로비치한테 간 것일까? 표트르 일리치는 이 부분을 꼬치꼬치 캐물었는데,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확실히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어쨌거나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달려갈 수 있었던 곳은 아버지의 집 외에는 아무 데도 없고 그렇다면 그곳에서는 틀림없이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임을 거의 확신하게 됐다.


표트르 일리치는 지금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집으로 가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만약 뭔가가 일어났다면 정확히 무슨 일인지 알아본 다음에 틀림없는 확신이 서면 그때는 경찰 서장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 손쉽고 빠른 길일 거다, 하는 생각에 이미 그러기로 마음의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이 깊은 밤에 굳게 닫힌 표도르 파블로비치 집의 대문을, 그러니까 남의 집 대문을 또 두들겨야 된단 말인가.


그는 고민하다가 재빨리 새로운 길로 돌진했는데, 목적지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집이 아니라 호흘라코바 부인의 집이었다. 그의 생각으론, 이 부인한테 아까 이러저러한 시각에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에게 3000을 주었냐고 물어본 뒤 그런 적이 없다고 대답하면, 표도르 파블로비치 집에 들를 필요도 없이 곧장 경찰 서장에게로 가자는 것이었다. 그 반대의 답이 나온다면, 모든 것을 내일까지 연기하고 자기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가 호흘라코바 부인 집에 들어섰을 때는 정각 11시였다. 마당 안으로 인도되기까지는 정말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님이 벌써 주무시는지 아니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는지를 물어보자 ─ 문지기는 이 시간이면 보통 잠자리에 든다는 말 말곤 정확한 대답을 해 줄 수 없었다. “저기 위에 가서 여쭤 보십시오. 마님께서 원하시면 받아들이실 테고, 원하시지 않는다면 받아들이지 않으실 테니까요.” 표트르 일리치는 위로 올라갔는데, 여기서부터는 일이 좀 어려워졌다.


그는 하녀에게 “굉장히 중대한 일로 왔으며 지금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중에 부인이 크게 후회할지도 모른다.”라는 말을 ‘토씨 하나 빼지 말고’ 전해 달라고 굉장히 집요하게 부탁했다. 호흘라코바 부인은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잠시 생각을 한 뒤 그의 외양이 어떻더냐고 캐물었고, ‘아주 단정하게 차려입은 젊고 점잖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나가 보기로 결심했다.


“제가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부인을 찾은 것은 우리 두 사람이 모두 알고 있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에 관한 일 때문입니다.” 페르호친이 이렇게 운을 뗐으나, 이 이름을 내뱉자마자 여주인의 얼굴에는 갑자기 심한 짜증이 역력하게 나타났다. 그녀는 거의 째지는 소리를 지르더니, 성질을 내며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 끔찍한 사람 일로 저를 얼마나 더 오래, 얼마나 더 괴롭힐 작정들이신가요?”


“부디 제 말을 좀 들어 주십시오, 부인, 삼십 초면 됩니다. 부인에게 한두 마디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겠습니다.” 페르호친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오늘 오후 5시에 카라마조프 씨가 친구로서 저에게서 10루블을 빌렸고, 그래서 저는 그에게 돈이 없었음을 알고 있는데, 오늘 9시에 그가 저를 찾아왔을 때는 100루블짜리 지폐 뭉치를, 대략 2000, 3000은 되어 보이는 돈뭉치를 훤히 보이게 두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과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는데, 정말 정신이 나간 사람 같더군요. 도대체 어디서 그 많은 돈을 구했냐고 물었더니, 조금 전에 금광인가 하는 것을 찾아 떠난다는 조건으로 부인께서 3000이라는 금액을 대출해 줬다고 똑똑히 대답했습니다…….”


호흘라코바 부인의 얼굴에서는 갑자기 예사롭지 않은 병적인 흥분이 나타났다.

“맙소사! 그 사람이 아버지를 죽인 거예요!” 그녀가 두 손을 탁 치면서 소리쳤다. “저는 그에게 돈을 준 적이 결코 없어요, 결코! 오, 얼른 가 보세요, 얼른……! 더 이상 한마디도 하지 마시고요! 그 노인을 구해야 해요, 그의 아버지에게 가 봐요, 얼른 가 보세요!”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표트르 일리치를 자리에 앉히고 자신도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표트르 일리치는 그녀에게 간략하지만 상당히 명료하게 사건의 전말을, 적어도 오늘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건 부분을 설명하고, 지금 막 페냐를 찾아갔다는 얘기도 하고, 공이 얘기도 알려 주었다. 이렇게 상세한 얘기를 일일이 늘어놓자, 가뜩이나 흥분해 있던 부인은 더할 나위 없이 충격을 받아 소리를 지르면서 손으로 눈을 가렸다…….


표트르 일리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지금 곧바로 경찰 서장을 찾아가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겠다고, 그러면 거기서 다 알아서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 그분은 멋진, 정말 멋진 분이에요, 미하일 마카로비치와 잘 아는 사이거든요. 반드시, 꼭 그분을 찾아가세요. 어쩜, 당신은 정말 명민한 분이시군요, 표트르 일리치, 생각 하나하나가 다 너무도 훌륭해요. 있잖아요, 내가 당신 입장이었다면 그런 건 절대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


그리고 그녀는 표트르 일리치의 요청에 따라 편지지의 반쪽에 큼직큼직한 글자로 세 문장을 썼다.


본인은 오늘 불행한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에게(어쨌거나 지금 불행한 사람이니까요.) 3000루블을 빌려 준 적이 결코 없을뿐더러 그 밖에도 평생 동안 절대 돈을 준 일이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스러운 것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바입니다. 호흘라코바


“자, 여기 쪽지요!” 그녀는 재빨리 표트르 일리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서 가서 구해 주세요. 이건 당신의 입장에서도 위대한 공적이 될 거예요.” 하지만 표트르 일리치는 이미 달려 나갔는데, 안 그랬다면 그녀가 그를 그렇게 쉽사리 풀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호흘라코바 부인은 그에게 상당히 유쾌한 인상을 남겨 주었으며, 그 덕택에 이토록 추악한 일에 말려든 데서 오는 불안감마저도 다소 누그러졌다. 사람의 취향이란 굉장히 다양한 법이다. ‘게다가 그녀는 별로 늙은 것도 아니던걸.’ 하고 그는 잠시 유쾌한 생각에 잠겼다. ‘오히려 부인의 딸로 착각할 뻔했잖아.’


한편, 호흘라코바 부인은 그녀 나름대로 이 젊은이에게 마냥 매혹되어 버렸다. ‘그 뛰어난 일 처리 솜씨며 그 꼼꼼한 면모며 요즘 시대에도 이런 젊은이가 있다니, 행동거지와 외모는 또 얼마나 멋진가 말이야. 요즘 젊은이들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떠들어 대지만, 그런 사람들한테 바로 이 사람을 보여 주어야겠는걸.’ 등등.


그나저나, 지금 묘사해 준, 젊은 관리와 아직 전혀 늙지 않은 과부의 이 기묘한 만남으로 인해 훗날 이 주도면밀하고 꼼꼼한 젊은이의 인생의 출세 가도에 토대가 마련되었으니, 지금까지도 우리 도시 사람들은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경탄을 내지르곤 하며, 어쩌면 우리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우리의 긴 이야기를 끝맺음 할 때쯤 이 일에 대해 따로 한두 마디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2 소요


우리의 경찰 서장 미하일 마카로비치 마카로프는 퇴역 중령, 개명된 명칭으론 7등 문관으로서 사람 좋은 홀아비였다. 그가 우리 도시에 부임한 지는 겨우 삼 년밖에 안 됐지만, 무엇보다도 ‘사교계를 단합시키는 능력’ 덕분에 진작부터 모든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었다. 그의 집에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 자신도 손님들이 없으면 못 살 것처럼 보였다.


한편, 우리 도시에서 상류 사교계 사람들이 부인들과 딸들을 데리고 춤을 추러 모여드는 일도 아주 잦았다. 미하일 마카로비치는 홀아비이긴 했지만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과부가 된 딸이, 미하일 마카로비치 입장에서는 외손녀가 되는 두 처자와 함께 와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이미 성인으로서 교육도 마친 상태이고 외모도 제법 괜찮은 데다가 성격도 명랑하여, 우리 사교계의 젊은이들에겐 이 할아버지 집의 꽃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일에 있어서도 미하일 마카로비치는 아주 젬병은 아니어서,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는 데 있어서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못한 편은 아니었다. 사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학력이 상당히 별 볼 일 없었고 심지어 자신의 행정적 권한의 한계치가 어느 정도인지도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는 무사태평한 사람이었다.


표트르 일리치는 이날 저녁 미하일 마카로비치 집에서 틀림없이 누구든 손님을 만나게 될 것임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때마침 그의 집에는 이 순간 검사와 우리의 공의(公醫)인 바르빈스키가 에랄라쉬(카드놀이의 일종)를 하고 있었는데, 이 젊은 의사는 페테르부르크 의학 아카데미를 뛰어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 중 하나로서 이제 막 페테르부르크에서 우리 도시에 부임한 것이었다.


검사, 다시 말해 검사 시보였지만 다들 검사라고 부르는 이 이폴리트 키릴로비치는 우리 도시에서 좀 특별한 사람이었는데, 겨우 서른다섯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젊은 사람이 폐병 증세가 너무 심한 데다가, 아이를 못 낳는 뚱보 부인을 두고 있었고, 자존심이 강하고 신경질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사고방식이 건전하고 심성도 착했다. 그의 성격의 크나큰 비극은 그가 실제로 자신이 가진 장점들 이상으로, 스스로를 좀 더 높게 생각하는 데 있는 셈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늘 불안해 보였다.


옆방에는 귀족 아가씨들과 함께, 겨우 두 달 전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우리 도시로 부임한 우리의 젊은 예심판사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 넬류도프도 앉아 있었다. 훗날 우리 도시 사람들은 ‘범죄’가 일어난 날 저녁 이 모든 인물들이 꼭 일부러 작정을 한 양 함께 경찰 서장의 집에 모여 있었다는 얘기를 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실은, 일은 훨씬 더 단순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었다.


이폴리트 키릴로비치는 아내가 전날부터 치통을 앓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녀의 신음 소리를 피해 어디로든 달아나야만 했다. 의사는 천성상 저녁마다 카드 판 앞에 붙어 있지 않으면 못 배겼다. 한편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 넬류도프는 사흘 전부터, 말하자면 우연인 척하면서 이날 저녁에 미하일 마카로비치의 집을 찾아가 그 집의 큰 외손녀 올가 미하일로브나를 갑자기 놀래 주려는 간특한 속셈을 품고 있었다.


이 귀여운 젊은 녀석은 이 점에 관한 한 대단한 장난꾸러기여서, 우리 도시의 부인들도 그에게 장난꾸러기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본인은 이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훌륭한 사회, 훌륭한 가문 출신에 훌륭한 교육을 받은, 훌륭한 감정의 소유자로서 탕아 같은 면이 있긴 했지만 아주 순진하고 늘 점잖았다. 외모를 봐도, 키가 작고 골격도 약하고 가냘팠다.


표트르 일리치는 경찰 서장의 집에 들어서자 마냥 넋을 잃고 말았다. 이 사람들이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이들은 카드를 집어던지고 하나같이 선 채로 논의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마저 귀족 아가씨들을 버려두고 달려와서는 가장 전투적이고 맹렬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를 맞이한 것은 표도르 파블로비치 노인이 이날 저녁 정말로, 진짜로 자기 집에서 살해당했다는, 살해당하고 돈을 강탈당했다는, 사람의 넋을 빼놓는 소식이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그가 달려오기 바로 직전, 이미 마리야 콘드라치예브나가 경찰 서장 집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림으로써 거기 있던 모든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표트르 일리치가 도착하기 불과 오 분 전의 일이었는데, 그는 그냥 자기만의 추측이나 결론을 갖고 온 것이 아니라 명명백백한 증인으로서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누가 범인인지에 대한 모든 이들의 추측을 확증해 준 것이었다.


다들 정력적으로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이런저런 규칙에 따라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집에 침투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수사를 시작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머리가 박살 난 채 확실히 살해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럼 흉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살인에 이어 그리고리를 해치는 데 사용한 바로 그 흉기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응급조치를 받은 그리고리에게서 경위를 듣고 흉기를 그 근처에서 찾아낼 수 있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누워 있던 방은 유달리 어질러진 흔적이 보이지 않았지만 병풍 뒤, 그의 침대 바로 곁 마룻바닥에서 두꺼운 종이로 된, 관청용 크기의 커다란 봉투를 줍게 되었다. 봉투는 이미 찢어졌고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돈을 가져가 버린 것이다. 마룻바닥에서는 봉투를 묶었던 가느다란 장밋빛 리본이 발견되었다.


그나저나 표트르 일리치의 증언 중 검사와 예심판사에게 굉장한 인상을 남겨 준 것이 있었다. 즉,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동틀 녘에는 기어코 자살을 할 것이라는 추측,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렸고 자기 입으로 표트르 일리치에게 그런 말을 했을뿐더러 상대방이 보는 앞에서 권총을 장전하고 유서를 써서 호주머니 안에 넣었다는 식의 얘기였다. 그가 상점에서 술과 상품을 가져간 이야기는 검사를 더욱더 흥분시킬 따름이었다.


그 전날 때마침 아침 녘에 봉급을 받으러 도시에 온 지서장 마브리키 마브리키예비치 쉬메르초프를 두 시간쯤 전에 먼저 모크로예로 보냈다. 그리고 모크로예에 도착하면, 해당 수사진이 도착할 때까지 절대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범인’의 동태를 계속 감시하되, 증인들, 그 지역 경찰들 등을 대기시켜 놓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그리하여 이미 새벽 4시가 지나서야, 거의 동틀 녘에 가서야 경찰 서장, 검사, 예심판사 등 수사 당국 전체가 두 대의 마차와 두 대의 트로이카를 나누어 타고서 도착했다.


한편 의사는 아침 녘에 살해된 자의 시체를 해부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집에 머물렀지만, 주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병든 하인 스메르쟈코프의 상태였다. “간질 발작이 저렇게 지독하고 저렇게 길게, 꼬박 이틀 내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만큼 학문적으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의사는 흥분하면서 이렇게 말했고, 동시에 그가 아주 단호한 어조로 스메르쟈코프가 아침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인 것을 검사와 예심판사는 똑똑히 기억했다.


3 영혼의 수난이 시작되다. 첫 번째 수난


그리하여 미챠는 자리에 앉아 저들이 자기한테 무슨 말을 하는지 통 모르겠는 상태에서 의아스럽다는 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을 위로 뻗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무죄입니다! 이 피에 관해선 무죄입니다! 제 아버지 피에 관해서는 무죄요……. 죽이고 싶었지만, 그렇지만 무죄입니다!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image.png


하지만 그가 이 말을 외치기가 무섭게 커튼 뒤에서 그루셴카가 뛰어나와 경찰 서장의 발밑으로 몸을 던졌다.

“이건 다 제 잘못, 제 잘못이에요, 다 이 저주받을 년의 잘못입니다!” 그녀가 영혼을 찢어발기는 듯한 흐느낌 소리를 내면서 온통 눈물에 젖어 모든 이들을 향해 팔을 뻗으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저 때문에 죽인 거예요……! 제가 이 사람을 너무 못살게 굴었기 때문에 이 지경에까지 이른 거예요! 우리를 함께 벌해 주세요, 이 사람과 함께라면 사형이라도 달게 받겠어요!”


image.png


“그루샤, 내 삶이여, 내 피여, 내 성물(聖物)이여!” 미챠는 그녀 곁에서 역시나 무릎을 꿇고 있다가 그녀에게로 달려들어 그녀를 꼭 껴안았다. “이 여자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그가 소리쳤다. “그녀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어떤 피에 대해서도 아무 잘못도 없다고요!”


그는 훗날, 몇몇 사람이 완력으로 자기를 그녀에게서 떼 냈고 갑자기 그녀를 어디론가 끌고 갔으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탁자 앞에 앉아 있었음을 기억했다. 그의 옆과 뒤에는 금속 감찰을 단 사람들이 서 있었다. 탁자 너머 그의 맞은편 소파에는 예심판사인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앉아 있었는데, 미챠는 갑자기 ─ 그는 이 점을 기억했다 ─ 그의 커다란 반지들, 자수정 반지 하나와 투명하면서도 어쩐지 아름다운 광채가 나는 투명한 노란색 반지에 엄청나게 관심이 갔다.


미챠로부터 비스듬히 왼쪽, 저녁이 시작될 무렵엔 막시모프가 앉아 있던 자리에 지금은 검사가 앉아 있었고, 미챠의 오른쪽에는 예심판사의 서기가 앉아 있었으며, 경찰 서장은 지금 창가, 그러니까 방의 다른 쪽 끝에, 역시나 똑같은 창가의 의자에 앉아 있는 칼가노프 곁에 서 있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죄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 거죠?” 부드럽지만 집요하게 예심판사가 물었다.


“무죄라니까요! 죄가 있다면 다른 피, 다른 노인의 피를 흘리게 한 거지, 제 아버지에 대해서는 무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애도하는 겁니다! 노인은 제가 죽였습니다, 죽였다고요, 죽이고 내팽개쳤지요……. 하지만 다른 피에 대해서는 저는 아무 죄도 없는데, 노인의 피를 흘렸다는 이유로 이 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니, 힘겨운 일이군요…….


“하인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노인에 대해서라면 공연한 걱정을 하시는 겁니다. 알려 드리자면, 그 노인은 살아 있고 의식도 회복했습니다. 중상을 입긴 했지만 목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겁니다."

“살아 있다고요? 그러니까 그 노인은 살아 있군요!” 미챠가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울부짖었다. 그의 얼굴 전체가 환한 빛을 발했다. “주여, 주님이 저의 기도를 받아들여 죄 많은 악당인 저에게 행하여 주신 이 위대한 기적에 감사드리나이다……!"


image.png


“죄송합니다만, 여러분, 일 분만 더 여유를 주십시오.” 미챠가 상대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두 팔꿈치를 탁자에 세우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좀 주십시오, 숨이라도 좀 돌리게요, 여러분. 이 모든 게 소름이 돋는군요, 정말 소름이 돋아요, 아니, 사람이 무슨 북 가죽은 아니잖습니까, 여러분!”

“물이라도 한 모금 더…….”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중얼거렸다.


“그럼, 우리는 일단 당신이 자신에게 걸린 혐의 내용을 완강하게 거부하노라고 기록하겠습니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위압적으로 이렇게 말하더니 서기에게로 몸을 돌려 반쯤 들릴 듯한 목소리로 기록해야 될 내용을 불러 주었다. “기록이라고요? 이걸 기록하시겠다고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기록하시지요, 저는 동의합니다, 전적으로 동의하고말고요, 여러분……. 다만……. 잠깐, 잠깐만요, 이렇게 기록하십시오. 그러니까 ‘난동을 부린 점에서 그는 유죄이다, 가련한 노인에게 심한 구타를 가한 것도 유죄이다.’라고요.


하지만 늙은 아버지 살해에 관해서는 ─ 무죄이다! 이것은 해괴망측한 생각입니다! 그야말로 해괴망측한 생각이죠……!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증명을 해 보이면 여러분도 금방 확신하게 될 겁니다. 웃음을 터뜨리게 될 거라고요, 여러분, 어떻게 그런 혐의를 걸 수 있었는지 여러분 스스로 껄껄 웃게 되겠죠……!”


“진정하시죠,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예심판사가 자신의 차분한 태도로 미친 듯 흥분한 상대를 압도하고 싶은 듯 이렇게 주의를 시켰다. 여기서, 최소한 십오 분 전만 해도 당신은 부친을 죽이고 싶었노라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죽이진 않았지만 죽이고 싶었다!’라고 외치셨지요.”


“제가 그렇게 외쳤던가요? 오, 그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맞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불행히도, 불행히도! 제가 제 감정을 전혀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온 도시가 다 알고 있어요. 또 바로 그날 저녁에는 아버지를 거의 반쯤 죽도록 때려 놓고서, 사람들이 다 있는 데서, 다시 와서 죽이겠노라고 호언장담했지요……. 오, 증인이라면 1000명은 족히 될 겁니다! 하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이고, 그 사실은 자기 나름대로 말하고 외치지만 ─ 감정은, 여러분, 감정이란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image.png


“저는 알고 싶습니다, 심지어 여러분에게 요구합니다, 여러분. 아버지는 어디서 살해됐습니까? 무엇으로 어떻게 살해됐습니까? 제발 좀 말씀해 주시죠.” 그가 검사와 예심판사를 둘러보며 빠른 어조로 물었다.

“우리가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머리가 깨진 상태로 서재 마룻바닥에 나자빠져 있었습니다.” 검사가 말했다.

“끔찍한 일이군요, 여러분!” 미챠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더니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니까, 그 당시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당신은 그와 같은 증오의 감정을 품게 됐습니까? 질투의 감정이었다고 공공연하게 단언하신 것 같은데요?”

“뭐, 그렇죠, 질투였죠, 하지만 질투 하나만은 아닙니다.”

“돈을 둘러싼 다툼입니까?”

“뭐 그래요, 돈 때문이기도 하죠.”


“그 다툼은 당신의 유산인 3000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던데요.”

“3000이라고요! 훨씬, 훨씬 더 많아요.” 미챠가 소리쳤다. " 6000 이상, 만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는 수 없이 3000에서 타협하자고 결심했던 거죠. 저한테는 이 3000이 죽도록 필요했고…… 그래서 아버지가 그루셴카를 위해 마련한, 제가 알기론 베개 밑에 놓여 있다는 그 3000의 돈뭉치를 아버지가 저한테 그야말로 훔쳐 간 걸로 간주했던 겁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또 얘기하기로 하고”라며 예심판사가 즉시 말했다. “지금은 이 항목을, 즉 당신이 봉투에 든 돈을 자신의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했다는 점을 확인하고 기록하게 해 주시지요.”

“그렇게 쓰시죠, 여러분, 저는 이것이 또다시 저한테 불리한 증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런 증거 따위는 무섭지도 않기 때문에 제가 직접 스스로를 고발하는 겁니다. 여러분, 저는 머리가 아프군요."


"여러분, 이 몸은 여러분의 것이지만, 맹세코 상호적인 신뢰는 필요합니다 ─ 저에 대한 여러분의 신뢰와 여러분에 대한 저의 신뢰가 필요하단 말입니다 ─ 안 그러면 우리는 결코 끝을 내지 못할 겁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무엇보다도, 제 마음속을 그렇게 후벼 파지는 말아 주시고, 하찮은 일들로 제 마음을 괴롭히지도 마시고, 오직 본 사건과 사실들에 대해서만 물어 주십시오, 그럼 저도 즉시 여러분을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자질구레한 것들은 딱 질색이니까요!” 미챠는 이렇게 외쳤다. 심문은 다시 시작됐다.


4 두 번째 수난


“이렇게 기꺼이 응해 주시다니 우리도 정말 기운이 납니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활기찬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시작했다. “방금 우리의 상호적인 신의에 관해 말씀하셨는데 참 올바른 지적이시며, 그것이 없다면 어떨 때는 이와 같이 중차대한 일을 해결할 수도 없는데, 그러니까 어떤 의미냐 하면, 용의자가 정말로 누명을 벗길 바라고, 즉 그런 희망을 품고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는 경우에는 그렇다는 말이죠. 우리 측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해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대체로, 당신이 어제 겪은 이야기를 아침부터 쭉 체계적으로 묘사해 주시면 어떨지요? 예컨대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인데요. 도대체 왜 도시를 잠시 비웠으며 정확히 언제 떠났고 언제 도착했는지…… 이런 모든 사실들을 말이죠…….”

“처음부터 그렇게 물어보시지 않고.” 하고 미챠는 큰 소리로 웃어 댔다.


"여러분, 저는 그저께 아침에 이곳 상인 삼소노프에게 아주 믿을 만한 담보물을 내놓고 3000이라는 돈을 빌리러 갔습니다 ─ 갑자기 그럴 일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갑자기 꼭 그럴 일이…….”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하고 검사가 정중하게 말을 끊었다. “하필 왜 그 금액, 다시 말해 3000루블이 그렇게 갑자기 필요해졌던 겁니까?”


“에이, 여러분, 자질구레한 질문은 필요 없다니까요. 쓸데없는 것까지 일일이 늘어놓다 보면 책 세 권도 모자라서 에필로그까지 붙여야 될걸요! 사실 노인네들의 머리를 깨부숴 놓고 벌을 받지 않을 수야 없을 테니까, 그 건으로 재판을 해서, 저를 뭐 반년이나 일 년 정도 교도소에 처박아 두실 거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딜 갔느냐, 어떻게 갔느냐, 언제 갔느냐, 어느 곳으로 들어갔느냐, 하는 질문을 자꾸 하면 하느님 아버지도 넋이 나가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현명한 충고에 전적으로 따르겠습니다만” 하고 검사가 갑자기 미챠를 보며 끼어들었다. “그래도 저의 질문은 철회하지 않겠습니다. 정확히 무엇을 위해서 당신에게 정확히 3000이 필요했던 겁니까?”

“무엇 때문에 필요했냐고요? 뭐,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뭐 그러니까, 빚을 갚기 위해서였죠.”

“정확히 누구에게요?”

“그것은 절대로 말할 수 없습니다, 말할 수 없거나 감히 그럴 용기가 없거나 뭘 두려워해서도 아니고, 이건 저의 사생활이고, 저는 제 사생활을 간섭하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실례지만, 당신이 모르고 계실 경우를 생각해서 미리 한 말씀드리고 주의를 환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만” 하고 유달리 엄격하게 훈계조로 검사가 말했다. “당신은 우리가 지금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충분한 권리가 있으며, 반대로 우리는 당신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대답을 회피할 경우 당신에게 대답을 강요할 어떤 권리도 없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개인적인 사리 판단에 달린 문제입니다.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지금과 비슷한 경우에 당신이 이러저러한 진술을 거부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어떤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는지를 그 정도를 막론하고 당신에게 분명히 주의시키고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자 그럼, 말씀을 계속해 보시지요.”


“여러분, 저는 화가 난 것이 아니라…… 저는…….” 미챠는 검사가 훈계조로 던진 일침에 다소간 당혹스러워하며 중얼거렸다. 그리하여, 그는 그저께 삼소노프한테 ‘속아 넘어간’ 이야기를 했다.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계를 6루블에 팔았다는 사실은 예심판사와 검사에겐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당장 엄청난 주의를 기울였다. 검사 측에서, 이미 전날 밤부터 미챠에겐 돈이라곤 거의 땡전 한 푼 없었다는 정황을 두 번째로 확증한다면서 이 사실을 자세히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챠는 점점 더 침울해졌다.


이어, 랴가브이를 찾아간 일이며 탄산가스 자욱한 오두막에서 밤을 보낸 일 등을 묘사했으며, 도시로 돌아온 데까지 이르게 되자 이제는 특별히 부탁도 하지 않았건만 자기가 나서서 그루셴카에 대한 자신의 질투와 고뇌를 상세하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검사 측에서는 그가 이미 오래전부터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집과 붙어 있는 마리야 콘드라치예브나의 집 ‘뒤뜰’에 그루셴카를 감시하기 위한 초소 같은 것을 마련했다는 것과 스메르쟈코프가 그에게 정보를 흘렸다는 것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고, 이 점을 유난히도 강조하여 기록했던 것이다.


호흘라코바 얘기로 옮겨 가자 또다시 본론과 맞지도 않는, 이 부인에 대한 최근의 특별한 일화까지도 얘기하려고 설쳤지만, 예심판사는 그를 저지하며 ‘보다 더 본질적인 이야기’로 넘어가자고 제안했다. 이윽고, 미챠가 자신의 절망을 묘사하고 그녀의 집을 나와 ‘빨리 누구를 찔러 죽이고라도 3000을 손에 넣자.’라는 생각마저 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자, 저쪽에서는 그를 다시 저지하고 ‘찔러 죽이고 싶었다.’라는 내용을 기록했다.


마침내, 이야기는 그루셴카가 자정까지 노인 집에 있을 것이라고 말해 놓고서 그가 그녀를 삼소노프에게 데려다 주자마자 그를 속이고 노인의 집을 빠져나온 사실을 갑자기 알게 된 지점에 이르렀다. 이 이야기를 하던 중 그의 입에서는 “여러분, 그때 제가 이 페냐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건 오직 그럴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는 말이 갑자기 불쑥 튀어나왔다. 이 말도 역시 꼼꼼하게 기록되었다.


미챠가 아버지 집의 정원으로 달려간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예심판사가 갑자기 그를 저지하더니 소파 위, 바로 자기 곁에 놓여 있던 커다란 서류 가방을 열어 놋쇠 공이를 꺼냈다.

“이 물건을 알아보시겠습니까?” 그는 놋쇠 공이를 미챠에게 보여 주었다.

“알아보다마다요!” 그는 침울하게 피식 웃었다. “어떻게 몰라볼 수가 있겠습니까! 어디 한번 보여 주시죠……. 에이, 젠장, 그럴 필요도 없어요!”

“이것에 대해 언급하는 걸 잊으셨군요.” 예심판사가 지적했다.


“젠장! 여러분한테 숨기려고 한 게 아닙니다, 그 얘기를 빼고 슬쩍 넘어갈 참이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천만에요, 그저 깜박했을 뿐입니다.”

"이런 도구를 챙기면서 어떤 목적을 염두에 두었습니까?”

“목적이라고요? 아무런 목적도 없었습니다! 그냥 움켜쥐고 달음박질친 거죠.”

“목적이 없었다면, 도대체 왜요?”

미챠는 신경질이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제발 좀, 여러분! 뭐, 공이를 잡긴 잡았지만……. 아니, 이런 경우에 뭐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드는 데 꼭 무슨 목적이 있어야 합니까? 무슨 목적으로 그랬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냥 거머쥐고서 달렸을 따름이지요. 그게 전붑니다. 부끄럽군요, 여러분, 이 얘긴 그만하죠, 안 그러면 맹세코 얘기를 중단하겠습니다!”

그는 탁자에 팔꿈치를 세우고 한 손으로 머리를 괴었다. 그렇게 비스듬히 앉아 내심 고약한 감정을 억누르면서 벽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다시 고분고분 굴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질문 공세에 고문당하는 범인이나 피고의 말을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고결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 여러분, 고결하기 이를 데 없는 영혼의 격정을 지닌 사람이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대담하게 이렇게 외치는 바입니다!) ─ 천만에! 여러분은 이 말을 믿지 않을 수 없겠지요…… 믿지 않을 권리조차 없습니다…… 그럼에도 ─


침묵하라, 마음이여, 인내하라, 받아들여라, 침묵하라!


자, 어떡할까요, 계속할까요?” 그가 침울하게 말을 끊었다.

“어쩌긴요, 계속해 주시지요.”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대답했다.


5 세 번째 수난


미챠는 준엄하게 말을 시작했지만, 자신이 전달하는 내용 중에 뭐 한 가지라도 잊어 먹거나 빠뜨리지 않기 위해 더욱더 안간힘을 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이상한 노릇이었다. 검사도, 예심판사도 이번에는 어쩐지 끔찍할 정도의 자제력을 보이며 미챠의 말을 경청했으며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건조했고 또 질문을 하는 횟수도 훨씬 적었다.


마침내, 아버지에게 그루셴카가 왔다는 신호를 보내 아버지로 하여금 창문을 열게 할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에 이르렀을 때도 검사와 예심판사는 ‘신호’라는 말에 무슨 주의를 기울이기는커녕 그 말이 여기서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눈치였기 때문에, 미챠는 이 점을 알아채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창문으로 몸을 내민 아버지를 보자 증오가 끓어올라 호주머니에서 공이를 꺼냈다는 대목에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그는 일부러인 양 말을 중단했다.


“그래서” 하고 예심판사가 말했다. “흉기를 꺼냈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다음에요? 그다음에는 죽였습니다…… 아버지의 정수리를 내리쳐 두개골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렸죠……. 이거야말로 여러분의 생각대로가 아닙니까!” 그는 갑자기 눈을 번득였다. 꺼져 버린 분노의 불씨가 그의 마음속에서 갑자기 예사롭지 않은 힘을 과시하며 활활 타올랐다.


image.png


“예, 우리 생각으론 그렇습니다만.” 하고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말했다. “자, 그럼 당신 생각으론?”

미챠는 눈을 내리깔고 오랫동안 입을 다물었다.

“제 생각으론, 여러분, 제 생각으론, 바로 이렇게 됐습니다.” 그가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누구의 눈물 때문인지, 내 어머니가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밝은 정령이 그 순간 내게 입을 맞추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악마는 패배했습니다. 저는 창문에서 떨어져 나와 담장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는 소스라치게 놀란 상태에서 그야말로 첫눈에 나를 알아보고 비명을 지르면서 창가에서 얼른 물러났습니다 ─ 이 장면이 지금도 똑똑히 기억나는군요. 저는 정원을 가로질러 담장으로 달렸고…… 바로 그때, 제가 이미 담장 위에 걸터앉았을 때 그리고리가 저를 따라잡은 겁니다…….”


“그런데” 하고 미챠의 흥분 따위에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검사가 말을 시작했다. “창문에서 떨어져 나와 달릴 때, 곁채의 다른 쪽에 있는, 정원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었는지 어땠는지를 보지 못했습니까?”

“안 열려 있었는걸요.”

“안 열려 있었다고요?”

“예, 오히려 잠겨 있었죠, 누가 그걸 열었겠습니까? 어라, 문이라니, 잠깐만요!” 그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거의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다. “아니, 여러분이 발견했을 때는 문이 열려 있었단 말입니까?”


“열려 있더군요. 이건 우리에겐 아주 분명한 사실입니다. 살인은 분명히 창문 너머에서가 아니라 방 안에서 일어났으며, 이것은 현장 검증 및 시체의 상태를 비롯한 모든 정황으로 보아 단연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사항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미챠는 끔찍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저는…… 저는 아예 들어가지도 않았을뿐더러…… 맹세코 정확히 말씀드리건대, 제가 정원에 있었을 때는 물론이고 정원에서 달아날 때도 문은 줄곧 잠겨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창문 밑에 서서 창문을 통해 아버지를 보았을 뿐, 그뿐, 그뿐입니다……. 최후의 순간까지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설사 기억이 안 난다고 할지라도, 어쨌거나 알고는 있는데, 왜냐하면 이 신호를 알고 있는 건 오직 저와 스메르쟈코프, 그리고 그 사람, 즉 돌아가신 아버지뿐이고, 아버지는 신호가 없으면 이 세상의 그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을 테니까요!”


“신호라고요? 신호라니, 뭘 말하는 거죠?” 탐욕스럽다 못해 거의 히스테릭한 호기심을 보이며 검사가 이렇게 말했는데, 지금껏 유지해 온 근엄한 자세가 대번에 흐트러지고 말았다.

“아니, 그것도 몰랐단 말입니까! 그땐 누구한테서 알아낼 겁니까? 신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곤 돌아가신 아버지, 저, 스메르쟈코프, 자 이게 전붑니다, 여러분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해가 되는 진술을 하는 자, 스스로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자올시다! 예, 나는 명예의 기사지만 여러분은 아니올시다!”


검사는 이 모든 쓴소리를 꾹 참으면서 그저 새로운 사실을 어서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다 떨려 왔다. 미챠는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스메르쟈코프를 위해 고안해 낸 신호들을 장황하게 진술했다. 그리고 그, 즉 미챠가 노인의 창문을 두드렸을 때 정확히 ‘그루셴카가 왔다.’를 의미하는 신호를 썼는가 하고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물었을 때 ─ 미챠는 정확히 그렇게 ‘그루셴카가 왔다.’라는 신호대로 두드렸노라고 똑똑히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만약 스메르쟈코프도 이 신호를 알고 있었다면, 또 당신이 부친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모든 혐의를 한사코 부정하신다면, 바로 이자가 약정된 신호대로 창문을 두드려 당신 부친으로 하여금 문을 열게 한 뒤, 그다음에……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닐까요?”


미챠는 정말 한심하다는 듯 비아냥거리며, 동시에 엄청난 증오가 깃든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오랫동안 말없이 쳐다보기만 했기 때문에, 검사는 눈을 깜박거렸다.

“또 여우 한 마리를 잡으셨군요!” 마침내 미챠가 말했다.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스메르쟈코프라고 외치지는 않을 테니까요!” 미챠가 말했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확고하고도 집요하게 그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시는 거죠?”

“신념이죠. 인상이고요. 스메르쟈코프는 천성이 아주 비천한 데다가 겁쟁이거든요. 이건 세상의 겁이란 겁을 죄다 한데 긁어다 모아 놓은 겁 덩어리, 두 발 달린 겁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이놈은 정신박약에 간질병을 앓는 병든 암탉입니다, 여덟 살짜리 사내애라도 이놈을 거뜬히 때려눕힐걸요. 이런 것도 무슨 성깔을 가진 사람이랄 수 있을까요? 스메르쟈코프는 아닙니다, 여러분, 게다가 돈을 좋아하는 녀석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무슨 말을 합디까, 여러분, 이 스메르쟈코프 말입니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그가 갑자기 이렇게 말을 끝맺었다. “제가 이런 걸 여러분한테 물어볼 수는 있는 겁니까?”

“뭐든 우리에게 물어보실 수 있습니다.” 차갑고 엄격한 표정을 지으며 검사가 대답했다.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의식불명 상태로 자기 침대에 누워 있었으며 아마 열 번은 반복되었을, 굉장히 심한 간질 발작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의료진은 환자를 검진해 본 뒤 오늘 아침도 못 넘길 수 있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뭐, 그렇다면 아버지를 죽인 건 악마군!” 미챠의 입에서 갑자기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검사는 그를 저지하고 어떤 식으로 담장에 걸터앉아 있었는지를 좀 더 자세하게 묘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뭐 그냥 그렇게 앉아 있었죠, 말 타듯 걸터앉는 거요, 한쪽 다리는 저쪽에, 다른 쪽 다리는 이쪽에…….”

“그럼 공이는요?”

“공이는 손에 들려 있었죠.”


“고맙습니다. 이제 그다음 부분에 대한 해명을 듣고 싶은데요, 정확히 무엇을 위해서, 어떤 목적으로, 정확히 무엇을 염두에 두고서 아래로 뛰어내렸던 겁니까?”

“뭐, 젠장……. 쓰러진 사람을 향해 뛰어내렸던 건데……. 무엇을 위해서였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정신은 말짱했습니다, 모두 기억나요. 모두 다. 그냥 한번 보려고 뛰어내렸고 손수건으로 그의 피를 닦아 주었습니다.”

“우리도 당신의 손수건은 보았습니다. 당신이 쓰러뜨린 사람을 소생시키고 싶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싶었냐고요? 그저 살았는지 어떤지를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가 죽인 줄 알고 도망을 쳤는데, 보시다시피 그가 깨어났군요.”


이번에는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나섰다.

“어떻게 손이 그처럼 피투성이가 된 상태에서, 또 나중에 밝혀진 바론, 얼굴마저 그리된 상태에서 하녀 페도시야 마르코바한테로 달려갈 수 있었습니까?”

“그때는 제가 피투성이라는 걸 아예 인지하지도 못했습니다!” 미챠가 대답했다.


이야기는 계속되어 미챠가 ‘행복한 이들을 그냥 고이 보내 주자.’라고 느닷없이 결심한 대목에 이르렀다.

“뭐 그래서 자살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구태여 살아남아 뭘 하나,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그녀의 틀림없는 옛 남자, 한때 그녀를 모욕했던 그 옛 남자가 오 년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 그 모욕을 종결하겠다며 사랑을 갖고 달려온 겁니다. 뭐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이 끝장났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저당 잡힌 권총들을 찾으러 갔죠, 동틀 녘에 총알을 넣고 대갈통을 날려 버릴 생각으로……."


“페르호친 씨가 우리에게 전한 바로는, 그 집에 들어설 때 당신은 피투성이가 된 손에…… 당신의 돈을…… 큰 금액의 돈을…… 100루블짜리 다발을 들고 있었으며 그의 시중을 드는 소년도 그것을 봤다더군요!”

“그랬습니다, 여러분, 그랬던 걸로 기억되는군요.”

“그럼 또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고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굉장히 부드럽게 말을 시작했다.

“사건의 흐름상 시간을 따져 보면 집에 들르신 것도 아닐 텐데, 어디서 갑자기 그런 거금을 얻은 겁니까?”

"예, 집에는 들르지 않았습니다. 돈이 궁했는데, 갑자기 수천이 나타났다, 이거죠? 하지만 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의 짐작대로, 가르쳐 드리지 않겠습니다.” 미챠가 갑자기 굉장한 결단력을 갖고 강조했다.


그러자 검사가 끼어들어 주의를 환기시켰다. 용의자는 이렇게 묵비권을 행사함으로써 스스로 오히려 큰 손해를 입을 수 있으며 특히 이토록 중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라는 식이었다.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저도 잘 알고 있고, 이거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대목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어쨌거나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우리야 무슨 상관입니까, 이건 당신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니까, 당신 스스로 화를 자초하고 계신 겁니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했다.

“이보십시오, 여러분, 농담은 그만두시죠.” 미챠는 눈을 들어 그들 두 사람을 단호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저는 처음부터 예감했습니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서로 박치기를 하게 될 것을. 다 틀렸어요, 끝난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을 비난하진 않습니다, 여러분도 제 말을 믿을 수 없을 테죠, 이 점은 십분 이해합니다!”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아주 조그만 암시라도 해 주실 수는 없을는지요. 지금처럼 이렇게 진술이 진행되고 있으며 당신에게 이토록 위험한 순간에 침묵을 고수하게끔 만든 그 강한 동기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미챠는 슬프게, 어쩐지 생각에 잠긴 듯 피식 웃었다.

"제가 침묵을 고수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저에게는 치욕이기 때문입니다. 어디서 이 돈을 구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속에는, 설사 제가 정말로 아버지를 죽이고 돈을 빼앗았다고 할지라도 그런 짓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치욕이, 저로서는 그처럼 큰 치욕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럼, 최소한 다음 사항이라도 알려 주시죠. 페르호친 씨 집에 들어섰을 때 당신의 손에 들려 있었던 금액의 액수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즉 정확히 몇 루블이었습니까?”

“그것도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페르호친 씨에게는 호흘라코바 부인한테서 3000을 받았다는 식으로 말했다던데요?”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죠. 됐습니다, 여러분, 얼마인지는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럼, 어떻게 여기로 왔는지, 여기로 와서 무슨 일을 했는지 전부 말씀해 주지 않겠습니까?”

“아, 그거라면 여기 있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시죠. 하긴, 제가 얘기해도 되겠군요.”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검증할 것이며, 물론 당신이 동석한 가운데 행해질 증인 심문에서 이 모든 것을 다시 다룰 겁니다.” 이렇게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심문을 종결지었다. “이제는 현재 당신이 갖고 계신 물건들을 전부, 무엇보다도 지금 갖고 계신 돈을 전부 여기 탁자 위에 올려 주십사 부탁드립니다.”


그는 잔돈까지 포함하여 호주머니에 든 것을 전부 꺼냈으며 조끼의 옆 주머니에서는 20코페이카짜리 은화 두 닢도 끄집어냈다. 돈을 세 보니 전부 836루블 40코페이카였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모든 것을 다시 계산했다. 미챠는 기꺼이 도와주었다. 코페이카 하나까지도 빼먹지 않고 계산에 포함했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대략 총합을 도출했다.

“이 800을 합하면, 따라서, 처음에 당신이 갖고 있었던 돈은 대략 1500이었던 겁니까?”

“그렇겠죠.” 미챠가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미챠에게 ‘당신의 옷을 비롯한 모든 것……’에 대해 아주 정확하고 정밀한 검사를 ‘꼭 해야 하며 반드시 그래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하며, 의복을 벗어 달라고 요구했다.

“뭐라고요? 옷을 벗으라고요? 에잇, 빌어먹을! 그냥 이대로 수색을 하시죠! 이러면 안 됩니까?”

“절대로 안 됩니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의복을 벗으셔야 합니다.”

“정 그러시다면.” 하고 미챠가 침울하게 굴복했다. “다만, 제발 여기가 아니라 커튼 뒤에서 하게 해 주시죠.”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특별한 엄숙함마저 어려 있었다.


6 검사, 미챠를 포획하다


예심판사와 검사는 반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서로 부산스럽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프록코트, 특히 뒤쪽의 왼쪽 자락에는 바싹 마른 채로 엉겨 붙은 커다란 핏자국이 발견되었는데, 아직 그렇게 많이 구겨져 있지는 않았다. 바지도 마찬가지였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그 밖에도 입회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옷깃이며 소맷부리며 프록코트의 모든 솔기며 바지를 자신의 손가락으로 직접 훑어보았는데, 무언가를 ─ 그러니까 물론, 돈을 찾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죄송합니다만.” 미챠의 오른쪽 소맷부리가 온통 피에 젖은 채 안으로 접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갑자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만, 이건 왜 이렇죠, 피가 아닙니까?”

“예, 피입니다.” 미챠가 딱 잘라 말했다.

“다시 말해 이건 대체 어떤 피이며…… 그리고 왜 소매가 안으로 접혀 있는 거죠?”

미챠는 그리고리와 씨름을 했고, 페르호친의 집에서 손을 씻을 때 그것을 안으로 접어 넣었다고 이야기했다.


“당신의 루바시카도 가져가야겠습니다, 아주 중대한 것이니까요…… 물증으로서.”

이 말에 미챠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미쳐 날뛰었다.

“아니 그럼, 저더러 벌거벗고 있으란 말입니까?” 그가 소리쳤다.

“걱정 마십시오……. 우리가 어떻게든 해결해 줄 테니까, 일단은 양말도 좀 벗어 주시지요.”

“지금 농담하십니까? 정말로 꼭 이래야 되는 겁니까?” 미챠가 눈을 번득였다.


모든 물건들을 입회인들에게 보였으며 검사 기록이 작성되었고, 마침내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밖으로 나갔는데 의복도 가져가 버렸다. 이폴리트 키릴로비치도 나갔다. 미챠 옆에 남은 사람은 농군들뿐이었는데, 그들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말없이 서 있었다. 미챠는 담요로 몸을 감쌌다, 추워졌던 것이다. 미챠는 저기 어디선가 검사를 마치면 옷을 자기한테 돌려줄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농군 손에 다른 옷을 들린 채로 돌아왔으니, 미챠는 얼마나 분했겠는가.

“여기, 당신이 입을 옷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임을 무사히 완수해서 아주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이건 칼가노프 씨가 이 흥미진진한 사건을 생각하여 당신에게 기부하신 겁니다, 이 깨끗한 루바시카도 그렇고요. 다행히도, 이런 것들이 그분 트렁크에 들어 있었지 뭡니까. 속옷과 양말은 당신 것을 그냥 쓰셔도 좋습니다.”


image.png


미챠는 그야말로 뚜껑이 확 열렸다. “남의 옷은 싫습니다!” 그가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내 옷을 주십시오!”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를 설득했다. 어쨌거나 그는 어떻게 간신히 진정이 되었다. 피범벅이 된 그의 옷은 ‘물증에 포함되어야 한다.’ ‘이 사건이 어떻게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도 그가 그 옷을 입도록 내버려 둘 ‘권리조차 없다…….’라고 훈계조로 타일렀던 것이다. 결국에 가서는 미챠도 이것을 어떻게 간신히 이해했다.


“자, 이제는 증인 심문을 해야겠습니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말했다.

“그렇군요.” 검사도 생각에 잠긴 듯 이렇게 말했는데, 역시나 뭔가에 골똘히 몰두하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당신의 편의를 봐 드리며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습니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계속했다. “하지만, 금액의 출처에 관한 해명을 완강히 거부하셨기 때문에 이 순간 우리는…….”


갑자기 미챠가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았다.

"여러분, 여러분은 제 영혼에 똥칠을 해 버렸군요! 설마, 내가 정말로 아버지를 죽였다고 할지라도 여러분한테 숨기거나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거짓말이나 하고 꽁무니를 감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천만에,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는 그런 인간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그런 걸 참을 수 없어하는 인간입니다.

만일 내가 유죄라면, 맹세코,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여러분이 여기로 오기도 전에, 해가 뜨기도 전에 진작 스스로를 처치해 버렸을 겁니다, 동이 트기도 전에 말이죠! 나는 이걸 이제야 뼈저리게 느 낍니다. 이십 년을 살아도 이 저주받은 밤에 배운 것처럼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할 테니까요……!

내가 정말로 제 아비를 죽인 놈이라면 오늘 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여러분과 앉아 있으면서 이렇게 굴었겠습니까, 예, 정말 이럴 수 있었겠습니까 - 이런 식으로 말하고 이런 식으로 움직이고 이런 식으로 여러분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겠습니까! 심지어 우연찮게 그리고리를 죽였다는 것만으로도 밤새도록 불안에 떨었건만. 하지만 그건 무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오! 여러분의 벌이 무서워서만은 절대로 아니었단 말입니다!

문제는 치욕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처럼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믿지 않고 비아냥거리는 자들에게, 눈먼 두더지 같은 자들에게 나의 새로운 야비한 짓을, 새로운 치욕을 더 털어놓고 이야기해 주길 바라는 겁니까, 그러고서 나의 혐의를 벗겨 주시겠다고요? 딱 됐습니다, 차라리 징역살이를 하도록 하죠! 더 이상 내 신경을 긁지는 말아 주십시오. 제 입은 닫혔습니다. 여러분의 증인들이나 부르시죠!"


이 느닷없는 독백을 내뱉으면서 미챠는 앞으로는 완전히 입을 다물겠다고 굳게 결심한 듯했다. 검사는 줄곧 그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그가 입을 다물자마자 아주 차갑고 아주 평온한 표정을 지으며 아주 평범한 것을 다루는 양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자, 우리도 이참에 바로 지금 굉장히 흥미진진할뿐더러 당신과 우리 모두에게 극히 중대한 사실을 하나 알려 드릴 수 있는데, 이건 당신에 의해 부상을 당한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노인의 증언이기도 합니다. 의식을 회복한 그가 전달한 바에 따르면, 층계참으로 나간 뒤 정원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 걸 듣고서 열려 있던 쪽문을 통해 정원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는 당신이 우리에게 알려 준 대로 당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는 그 열린 창문에서 물러나 어둠 속으로 도망치는 당신을 알아보았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그, 즉 그리고리는 왼쪽으로 시선을 던졌는데 창문이 정말로 열려 있는 것을 봤음 은 물론이고, 그와 동시에,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쪽문도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봤답니다. 반면, 당신은 당신이 정원에 있었던 동안 그 문이 줄곧 닫혀 있었노라고 단언했지요.

숨김없이 다 말씀드리자면, 바실리예프는 당신이 그 문으로 도망쳤음이 분명하다고 강경하게 결론짓고 또 그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 그가 당신을 발견한 것이 다소 멀리 떨어진 곳, 정원 한가운데서 담장 쪽으로 도망치는 당신의 모습을 통해서였으니까, 그는 당신이 어떻게 그 문으로 도망을 쳤는지는 자기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셈이죠……."


미챠는 상대방이 말을 하고 있건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헛소립니다!” 그는 갑자기 미친 듯 울부짖었다. “그가 열린 문을 봤을 리가 없습니다, 그때 문은 잠겨 있었다니까요…….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그의 증언이 확고하다는 점을 반복해서 말씀드려야겠군요, 제 의무니까요.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거죠. 우리는 그에게 몇 번이나 다시 물어봤습니다.”


검사는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훈계조로 어르듯 그에게 말했다.

“그걸 보여 주시죠.”

“이 물건을 알아보시겠습니까?”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갑자기 두꺼운 종이로 된, 커다란 관청용 봉투를 탁자 위에 꺼내 놓았는데, 거기에는 아직도 세 개의 봉인이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봉투 자체는 텅 비어 있었고 한쪽 옆구리가 찢어져 있었다. 미챠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이건…… 이게, 그러니까, 아버지의 봉투였군요.” 그가 중얼거렸다. “3000이 들어 있던 그 봉투…… 위에 수신인이 적혀 있다면, ‘병아리에게’라니…… 거봐요, 3000이군요.” 그가 소리쳤다.

“알다마다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여기서 돈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봉투는 텅 빈 채로 마룻바닥에서 뒹굴고 있었습니다, 침대 옆, 병풍 뒤에서요.”

몇 초간 미챠는 한 방 맞은 양 아연실색하며 서 있었다.


image.png


“여러분, 이건 스메르쟈코프 짓입니다!” 그가 갑자기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놈이 죽인 겁니다, 봉투가 우리 영감의 방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를 알고 있었던 건 오직 그놈 한 놈뿐이니까요……. 이제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당신도 봉투에 대해 알고 있었잖습니까, 이것이 베개 밑에 놓여 있다는 것도.”


“아니, 전혀 몰랐습니다. 이걸 본 적도 절대 없고, 지금 처음 보는 것일 뿐, 전에는 그저 스메르쟈코프한테서 얘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 스메르쟈코프는 뭐라고 합디까? 봉투가 어디에 있었는지, 그에게 물어보셨습니까? 스메르쟈코프는 뭐라고 말하던가요? 이게 중요한데…….

어떻든 나는 일부러 거짓말을 했어요……. 제대로 생각도 안 해보고 베개 밑에 있었노라고 여러분한테 거짓말을 한 건데, 지금 여러분은……. 왜 있잖습니까, 어쩌다 혀가 제 맘대로 돌아가서 거짓말이 튀어나오는 거요. 그걸 알고 있었던 건 스메르쟈코프 한 놈뿐입니다, 오직 스메르쟈코프 한 놈, 그 밖엔 아무도 없습니다……! 그놈은 봉투가 어디에 있는지 나한테도 털어놓지 않았단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건 그놈, 그놈 짓입니다. 틀림없이 그놈이 죽인 겁니다, 이제야 나도 대낮처럼 분명히 알겠습니다.”

미챠는 점점 더 미친 듯 흥분하게 되어, 두서없이 말을 반복하고 열을 올리고 난폭하게 굴면서 소리쳤다.


"이걸 이해하셨으면 어서 빨리 그놈을 체포하십시오, 어서 빨리…… 그놈은 내가 도망칠 때, 그리고 그리고리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을 때, 바로 그때 죽인 겁니다, 이제는 분명해졌군요…… 그놈이 신호를 보냈고 아버지는 그놈에게 문을 열어 준 겁니다……. 왜냐하면 신호를 알고 있는 건 오직 그놈 하나뿐이고, 신호가 없다면 아버지는 그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에도 당신은 그 정황을 깜박하셨군요.” 여전히 자제력을 발휘하곤 있지만 이제는 의기양양한 태도를 취하면서 검사가 한마디 했다. "신호를 보낼 필요 따윈 없었겠죠, 만약 문이 당신이 있을 때부터, 그러니까 당신이 정원에 있을 때부터 열려 있었다면 말이죠……."

"문, 문이라."라고 중얼거리면서 미챠는 말없이 검사를 응시하다가, 맥없이 다시금 의자에 주저앉았다.


"자, 보십시오." 하고 검사가 근엄하게 말했다.

"이제는 직접 판단해 보십시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한쪽에서는 당신이 열린 문을 통해 도망쳤다는 증언이 당신과 우리 모두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갑자기 당신의 손에 들어온 돈의 출처에 관해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거의 잔인하다 싶을 만큼 집요한 침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아니, 당신 자신의 진술만 봐도, 이 금액을 손에 넣기 세 시간 전 까지도 기껏 10루블을 얻기 위해 권총을 저당 잡혔다면서요!

이 모든 것을 참작하여 당신이 직접 결론을 내려 보시죠. 우리로서는 무엇을 믿어야겠으며 또 어떤 결론을 내려야겠습니까? 이런 상황이니, 우리더러 당신의 영혼의 고귀한 걱정을 못 믿을 만큼 '냉혹한 냉소주의자에 비아냥거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우기지도 마십시오……. 오히려, 제발 우리의 입장도 좀 진지하게 고려해 주시죠……."


미챠는 상상할 수도 없는 흥분에 사로잡혔고, 이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좋습니다!" 그가 갑자기 소리쳤다. "여러분에게 저의 비밀을 털어놓겠습니다, 돈이 어디서 났는지 털어놓겠다고요……! 훗날 여러분도, 나 스스로도 탓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저의 치욕을 털어놓겠습니다……."


"정말 믿어 주십시오." 어쩐지 감동적이고 반가운 목소리로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말을 받았다.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에 당신이 참되고도 완전하게 자백을 해 주신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훗날 당신의 운명을 더할 나위 없이 경감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뿐더러, 심지어, 그 밖에도……." 하지만 검사가 책상 밑으로 그를 살짝 찔렀고, 상대방은 적시에 말을 중단할 수 있었다. 미챠는, 사실, 그의 말을 듣지도 않고 있었다.


7 미챠의 크나큰 비밀. 야유를 받다


"여러분." 하고 그가 예의 그 흥분에 들떠 말을 시작했다.

"그 돈은…… 완전히 고백하고 싶은 심정인데…… 내 돈이었습니다." 검사와 예심판사는 영 엉뚱한 소리를 듣게 되자 어찌나 실망했는지 얼굴이 죽을상이 됐다.

"당신 돈이라니요. 오후 5시만 해도 당신 자신의 진술에 따를 때……."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중얼거렸다.

"다시 말해, 내가 훔친 돈 1500루블이었고, 그 돈은 쭉 내 몸에, 내 몸에 지니고 있었던 거죠……."


"아니, 그 돈이 대체 어디서 났습니까?"

"목에서 났습니다, 여러분, 목에서, 바로 여기 내 목에서……. 그건 여기 나의 목에 달려 있었죠, 걸레 쪽 안에 담아 꿰맨 뒤 목에 달고 다녔습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벌써 한 달째 수치심과 치욕감을 무릅쓰고 그 돈을 달고 다녔던 겁니다!"

"하지만 도대체 누구에게서 그 돈을…… 착복하신 겁니까?"


"한 달 전에 나의 옛 약혼녀였던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나를 불러서는……. 누군지 아시죠?"

"알다마다요."

"예, 알고 있을 줄로 압니다. 고결하기 그지없는 영혼, 고결한 영혼 중에서도 가장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나를 증오해 왔죠, 오래전, 오래전부터…… 그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정말로 이유가 있어서 증오해 온 거죠!"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요?" 예심판사가 놀라워하면서 되물었다. 검사도 눈에 힘을 팍 주고 미챠를 응시했다.


"오, 그녀의 이름을 함부로 내뱉지 마십시오! 그녀 얘기를 들먹이다니, 나는 정말 야비한 놈입니다. 그래요,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나를 경멸해 왔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맨 처음, 그때 내 집을 찾아왔던 그때부터……. 됐어요, 여러분은 이 얘기를 알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고, 전혀 그럴 필요도 없지요……

정작 필요한 건 그녀가 한 달 전에 나를 불러서 모스크바에 있는 자기 언니와 또 다른 한 여자 친척에게 부쳐 달라며(꼭 자기가 직접 부칠 수는 없다는 듯이 말이죠!) 나한테 3000을 건네주었다는 사실뿐이고, 나는…… 그러니까 이 일은 내 인생에서 그야말로 숙명적인 시간에 일어났는데, 내가…… 뭐, 한마디로 말해서, 그 순간 나는 이제 막 다른 여인을, 지금의 그녀를 사랑하게 됐다, 이 말이죠. 여러분 덕택에 지금 저기 아래층에 앉아 있는 저 여자, 그루셴카를…….

나는 그때 그녀를 이곳 모크로예로 데려와서 이틀간 그 저주받은 3000의 절반을, 즉 1500을 탕진했고, 나머지 절반은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뭐 그러니까 남겨 놓은 이 1500을 나는 부적 대신으로 목에 달고 다니다가, 어제 뜯어서 탕진해 버린 거죠. 그러고 남은 돈이 지금 여러분 손에 있는 그 800루블입니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 어제의 1500에서 남은 잔돈이죠."


"실례지만 그럴 수가 있나요, 어디, 한 달 전 그때 당신이 여기서 탕진한 돈은 1500이 아니라 3000이었고, 이건 다들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그걸 누가 안단 말입니까? 누가 세 봤나요? 내가 누구한테 세 보라고 시킨 적이 있던가요?"

"아니, 당신이 직접 모든 사람들에게 그때 정확히 3000을 탕진했노라고 말하셨잖습니까."

"맞습니다, 온 도시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내가 탕진한 돈은 여하튼 3000이 아니라 1500이었고, 나머지 1500은 부적 주머니 같은 것에 넣어 꿰매 뒀습니다. 자, 일이 이렇게 됐던 겁니다……."


"실례지만 여쭤 볼 것이 있는데요." 마침내 검사가 입을 열었다.

"혹시 이전에 누구한테든 그런 정황을 알려 준 적이 있는지……. 다시 말해서 한 달 전 그때 이 1500을 남겨 두었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런 침묵이 필요했죠? 무슨 이유에서 그것을 그토록 큰 비밀인 양 감춰 왔던 겁니까? 최소한 저의 관점에서 보자면, 극히 경솔한 행위일 따름이지, 그렇게까지 치욕적인 행위는 아닙니다. 아니, 이런 비밀을 고백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웠다니, 통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방금도 이걸 고백하느니 차라리 징역살이를 하겠다고 소리치지 않았습니까……."

검사는 짜증은 물론이고 아주 대놓고서 성질을 부렸으며, 속에 쌓여 있던 것을 거의 되는대로 내뱉었다.


"치욕은 이 1500 자체가 아니라, 그걸 3000에서 따로 떼 놓았다는 데 있는 겁니다.” 미챠가 확고하게 말했다.

"야비하게, 다시 말해 잔머리를 굴려 어떤 이해타산을 갖고 따로 떼 놓았던 겁니다, 이 경우에는 이해타산이란 것 자체가 곧 야비한 겁니다……. 그리고 이 야비한 짓은 한 달 내 내 계속된 겁니다!"

"이해가 안 되는군요."


"여러분도 참 놀랍군요. 하지만, 정말로 이해를 못 하셨을 수도 있으니까 좀 더 설명을 해 드리죠. 보십시오, 내 말을 찬찬히 들어 보세요. 상대방이 내 명예를 믿고서 맡긴 3000을 착복하여 그 돈으로 한판을 벌이고 결국엔 돈을 죄다 탕진한 뒤, 아침 녘에 그녀 앞에 나타나 '카챠, 내가 죽일 놈이야, 당신의 3000을 탕진해 버렸지 뭐야'라고 말한다면, 그야말로 짐승, 짐승처럼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하지만 어쨌거나 도둑놈은 아니잖습니까? 탕진하긴 했지만 훔치진 않았으니까요!

이제 두 번째, 훨씬 더 잇속을 차릴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경우는 이렇습니다. 즉, 여기서 3000 중 오직 1500만을, 즉 절반만을 탕진하는 거죠. 그러곤 이튿날 그녀 앞에 나타나 이 절반을 내놓으면서 '카챠, 나는 추잡하고 경솔한 야비한 놈이지만 그래도 절반만이라도 받아 줘, 벌써 절반을 탕진해 버렸으니 나머지 절반도 곧 탕진하고 말 텐데, 더 이상 죄를 짓지 않도록 제발 받아 줘!'라고 말하는 거죠. 자, 이 경우는 어떻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도둑은 아니죠. 진짜 도둑이라면 분명히 절반의 잔돈도 다시 돌려주지 않고 그것마저도 착복했을 테니까, 완전히 도둑은 아니란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녀는, 절반을 서둘러 갖다 준 걸 보면 나머지도 평생 돈을 구하러 다니고 일을 하게 될지라도 어쨌거나 꼭 구해서 돌려줄 것이다, 하고 생각할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야비한 놈이긴 하지만 도둑놈은 아니라는 거죠,

뭐, 어떻든 나로선 이런 섬세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재간이 없지만…… 어쨌거나, 단, 도둑놈은 야비한 놈보다 더 야비하다, 바로 이게 내 소신이올시다. 한번 들어 보십시오. 나는 꼬박 한 달 동안 몸에 돈을 지니고 다녔는데, 내일이라도 당장 마음만 먹으면 돌려줄 수 있고, 고로 나는 더 이상 야비한 놈이 아닌 겁니다. 하지만 날마다 마음은 그렇게 먹으면서도, '결단을 내려라, 내리란 말이다, 이 야비한 놈아.'라고 스스로를 재촉하면서도 도무지 결단이 서지 않더란 말입니다. 바로 이런 식으로 꼬박 한 달 동안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거죠, 정말! 그래, 잘한 것 같습니까, 여러분 생각엔 잘한 일이냐고요?"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을 위해서, 본질적으로, 그렇게 숨겼습니까, 따로 떼 놓은 이 1500을, 본질적으로, 어디다 쓸 생각이었습니까? 이 답을 꼭 듣고 싶군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아, 그랬었죠, 죄송스럽게도, 중요한 건 설명해 주지 않고 여러분을 괴롭히기만 했군요. 실은 말입니다, 우리 영감, 즉 고인이 된 아버지가 계속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를 들쑤셔 댔는데, 나는 질투심에 사로잡힌 채, 그 당시 그녀가 나와 아버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이런 생각에 빠졌죠. 즉, 만약 그녀가 갑자기 결단을 내린다면, 나를 괴롭히는 일도 지쳐서 갑자기 '내가 사랑하는 건 그 영감이 아니라 당신이야, 나를 세상 끝으로 데려가 줘.'라고 말한다면 어떡하나 하고요.

나한테는 고작해야 20코페이카짜리 은화 두 닢밖에 없는데, 그땐 무슨 돈으로 데려갈 것이며, 또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래도 그냥 이대로 끝장이다 싶었죠. 그래서 나는 약삭빠르게 3000 중 절반을 따로 떼 낸 뒤 태연자약하게 바늘로 꿰맨 거죠. 잔머리를 굴려 이해타산을 갖고서 꿰맸는데, 술판을 벌이러 가기 전까지 열심히 꿰매다가, 다 꿰매자마자 곧장 나머지 절반의 돈을 갖고 술판을 벌이러 간 겁니다! 정말, 너무나 야비한 짓입니다! 이제는 알겠습니까?"


검사는 큰 소리로 웃어 댔고, 예심판사도 만만치 않았다.

"제 생각으론, 그렇게 자제력을 발휘하여 그 돈을 다 탕진하진 않았으니, 숫제 현명하고도 도덕적인 처사였던 것 같은데요."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킥킥거렸다.


"아니, 도둑질을 했잖습니까, 바로 이게 문제라고요! 오, 맙소사, 내 말을 통 이해하지 못하다니, 무섭습니다! 이 1500을 가슴속에 꿰매 넣고 다니면서 날마다, 시시각각 너는 도둑놈이다, 이 도둑놈아!'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있잖습니까, 돈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동안만 해도 한편으론 날마다, 시시각각 '아니야,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너는 어쩌면 아직은 도둑놈은 아닐 수 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왜? 바로, 내일이라도 당장 카챠를 찾아가서 이 1500을 돌려주면 될 거 아니냐 하는 식이었죠.

그런데 바로 어제, 페냐한테 들렀다가 페르호친 집으로 가던 도중 목에서 나의 그 부적 주머니를 뜯어내기로 마음먹었고, 그전까지는 여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가 일단 뜯어내자마자, 그 순간 곧바로 나는 빼도 박도 못하고 논쟁의 여지도 없이 도둑놈이, 도둑놈에다가 평생 동안 떳떳하지 못한 인간이 된 겁니다. 왜냐고요? 왜냐면 부적 주머니를 뜯어냄과 동시에, 카챠를 찾아가 '나는 야비한 놈이긴 하지만 도둑놈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의 꿈도 갈기갈기 찢어 버린 셈이니까요. 이제는 이해하실 테죠!"


"왜 다름 아닌 어젯밤에 이런 결심을 하신 거죠?"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말을 가로막았다.

"왜냐고요? 질문 한번 웃기네요. 왜냐하면 새벽 5시, 이곳에서 동틀 녘에 스스로를 죽이겠노라고 선언했기 때문이죠. '야비한 놈으로 죽건 고결한 놈으로 죽건 어쨌거나 매한가지다.'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천만의 말씀, 매한가지가 아닌 게 돼 버렸어요! 믿으시겠습니까, 여러분, 간밤에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내가 늙은 하인을 죽였다는 사실도, 이 때문에 시베리아에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아니었으니, 대체 때가 어느 때입니까? 내 사랑이 결실을 맺어 바야흐로 내 앞에 서 천국이 다시 펼쳐진 때가 아닙니까!

오, 이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지만, 그렇게까지 많이 괴로웠던 건 아닙니다. 즉, 어쨌거나 내가 마침내 가슴팍에서 이 저주받을 돈을 뜯어내 다 써 버렸고 고로 이제 나는 이미 빼도 박도 못하고 도둑놈이 됐다는 이 저주받을 의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입니다! 오 여러분, 가슴속에 피가 끓어오르는 심정으로 반복하건대, 간밤에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야비한 놈으로 사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야비한 놈 주제에 그렇게 죽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 을 알게 된 거죠…….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죽더라도 떳떳하게 죽어야 하는 겁니다……!"


미챠는 창백했다. 극히 흥분하고 있었음에도, 그 얼굴은 녹초가 될 만큼 기진맥진한 기색이었다.

"슬슬 이해가 되는군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검사는 부드러운, 심지어 어쩐지 동정심까지 깃든 듯한 어조로 말을 질질 끌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당시의 의지에 달린 문제인 만큼, 제 생각으론, 그저 신경이…… 예, 그러니까 신경과민 탓이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예컨대, 거의 꼬박 한 달간 스스로를 그토록 괴롭혀 온 고뇌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면, 왜 당신은 당신에게 이 1500을 맡긴 그 여자분을 찾아가 그 돈을 돌려주지 않았습니까? 또 당신은 그 당시 당신의 정황이 몹시 끔찍했다고 묘사하시는데, 왜 그 여자분한테 사정을 말씀드리고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떠오를 법한 타협안을 모색하지 않았습니까?

다시 말해서, 당신의 실수를 점잖게 고백한 뒤 당신이 필요로 하는 금액을 빌려 달라고 그분한테 부탁해 볼 수도 있잖습니까? 그분은 원래 마음이 관대한 데다가 당신의 곤혹스러운 처지를 봤다면, 물론, 당신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특히나 서류까지 구비되어 있고, 혹은, 끝으로 당신이 삼소노프 상인과 호흘라코바 부인에게 제안한 것과 같은 그런 담보물까지 있었다면? 지금까지도 당신은 그 담보물을 유효한 걸로 생각하고 있잖습니까?"


미챠는 갑자기 새빨개졌다.

"아니, 내가 그 정도로까지 야비한 놈으로 보입니까? 설마, 진담은 아니겠죠……!" 그는 검사의 눈을 바라보면서도 상대방의 말을 못 믿겠다는 듯 분개하며 말했다.

"아니요, 그야말로 진담입니다……. 왜 진담이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검사는 놀라움을 표시했다.


"오, 이건 정말 야비한 일이군요! 여러분, 여러분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기나 합니까! 그래요, 여러분에게 모든 걸 말씀드리죠, 하는 수 없이 이제 여러분에게 이 지옥 같은 나의 속사정을 전부 고백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여러분이 수치심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여러분은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 얼마나 복잡하게 뒤엉켜 서 얼마나 야비한 타협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 놀랄 겁니다.

그나저나 알아 두십시오, 저도 이미 이 타협안을, 지금 검사님이 말씀하신 바로 이 타협안을 생각해 봤습니다, 검사님!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저주받은 한 달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미 거의 카챠를 찾아갈 결심을 한 거나 다름이 없었어요, 그 정도로까지 야비했다니!

하지만 그녀를 찾아가 내가 그녀를 배신했다고 얘기하고 이 배신의 대가로, 즉 이 배신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이 배신에 필요한 금액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 이 카챠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고 그 즉시 그녀를 버리고 딴 여자, 그것도 카챠를 증오한 나머지 심한 모욕까지 준 그 여자, 그 연적과 함께 도망을 치라니 - 얼토당토않은 말씀입니다, 아무래도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검사님!"


"그나저나 말입니다, 당신의 목에 달려 있던, 당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부적 주머니는 컸습니까?"

"아니요, 안 컸어요."

"도대체 언제 어디서 그것을 목에서 떼 냈습니까? 당신의 진술에 따르면 집에 들르지도 않았다면서요?"

"페냐 집을 나와 페르호친 집으로 가던 길에, 가는 도중에 목에서 떼 내서 돈을 꺼냈습니다."

"그다음엔 그걸 도대체 어디에 숨겼습니까?"

"그 자리에서 버렸죠."


"혹시 한 달 전 당신이 그걸 꿰맬 때 누가 도와줬습니까?"

"도와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서 직접 꿰맸으니까."

"바느질은 할 줄 아십니까?"

"군인은 바느질을 할 줄 알아야 되지만, 이런 일엔 무슨 바느질 솜씨 따위도 필요 없죠."

"옷감은, 그러니까 당신이 돈을 꿰매 넣은 그 걸레쪽은 어디서 구했습니까?"

"어디서 걸레쪽을 구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어디선가 구했겠죠."


"잠깐만요…… 그것은 옥양목이었고…… 그래요, 주인아주머니의 나이트캡으로 꿰맨 것 같군요."

"예, 그 방에서 집어 왔어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슬쩍 갖고 온 건 아무 데도 쓸모없는 걸레쪽이었기 때문이고, 내 방에서 그 헝겊 조각이 뒹구는데 마침 이 1500이 골칫거리였던 터라 그 헝겊 조각에 넣고 꿰맸던 겁니다. 맞아요, 그 걸레쪽에 넣고 꿰맨 것 같군요."

"바늘은 어디서 구했습니까, 실은요?"

"그만두겠습니다, 더 이상은 싫습니다. 됐어요!" 마침내 미챠가 화를 냈다.


"됐어요, 여러분, 됐습니다."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미챠가 결론을 내렸다. "훤히 보이는군요, 여러분이 내 말을 믿지 않는단 것이! 어떤 일에 있어서도, 눈곱만큼도 안 믿는군요! 하긴 내 잘못이지, 여러분 잘못은 아니죠, 이러쿵저러쿵할 필요가 없었던 거니까. 도대체 왜, 왜 비밀은 털어놓아 가지고 내 얼굴에다 동칠을 한 거야, 젠장! 여러분한테는 고작해야 웃음거리일 뿐이라는 걸, 여러분의 눈을 보니 똑똑히 알겠군요. 이건 검사님, 검사님 덕분에 내가 이 지경까지 왔습니다! 여러분은 저주받을 겁니다, 이 고문자 양반들!"

그는 머리를 숙이고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검사와 예심판사는 입을 다물었다.


일 분 뒤 그는 고개를 들고 어쩐지 아무런 생각이 없는 듯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찾아와 버린,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이 그 얼굴에 드리우는 가운데, 그는 어쩐지 조용하게 입을 다물고서 꼭 앞뒤를 잃은 양 앉아 있었다. 어쨌거나 일을 끝내 기는 해야 했다. 조금도 지체하지 말고 증인 심문으로 넘어가야 했던 것이다. 시간은 벌써 아침 8시였다. 촛불은 이미 오래전에 끈 상태였다.


"여러분!" 그가 소리쳤다. "내가 끝장났다는 건 나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요? 제발 부탁인데, 그녀 얘기를 좀 해 주시죠, 정녕 그녀마저도 이대로 나와 함께 끝장나는 겁니까? 그녀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그 점에 관해서라면 걱정 붙들어 매시죠,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검사가 곧장 이렇게 대답했다.

"그 여자분에게 폐를 끼칠 만한 이유는,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 편히 가지시죠."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자, 이제 우리는 뭘 하는 겁니까? 저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미챠는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상냥하게 권하는 찻잔을 처음엔 거절했지만, 나중에는 자기가 직접 청해서 게걸스럽게 마셨다. 대체로 그는 왠지, 심지어 놀랄 정도로 기진맥진한 표정이었다. 미챠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 때때로 모든 물건들이 자기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빙빙 도는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정신이 혼미해져서 헛소리를 할지도 모르겠군.' 그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8 증인들의 증언. 애기


증인 심문이 시작됐다. 한 가지 지적해 둘 것은 심문관들의 주의를 가장 집중시킨 주요한 대목이, 바로 역시나 그 3000에 관한 문제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첫 경우, 즉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한 달 전 여기 모크로예로 와서 처음 술판을 벌인 날 쓴 돈이 3000이었는지, 1500이었는지, 그리고 어제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두 번째로 술판을 벌이느라 쓴 돈이 3000이었는지, 1500이었는지가 문제였다.


안타깝게도, 모든 증언들이 하나에서 열까지 미챠에게 득이 되기는커녕 모조리 불리한 것이었고, 심지어 어떤 증언들은 미챠의 진술을 뒤집어엎을 만큼 새롭고도 거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실들을 담고 있기도 했다. 맨 처음 심문을 받은 자는 트리폰 보리스이치였다. 심문관들 앞에 섰을 때 그는 무슨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피고에 대해 엄격하고 준엄한 분노를 담은 태도를 보였으며, 이로써 틀림없이 그 스스로 굉장히 의롭고 존엄을 갖춘 인물인 양 굴고 싶었던 것이다.


말수는 적었고 또 자제력을 발휘하는 모습이었으며, 질문을 기다렸다가 심사숙고하여 정확하게 대답했다. 머뭇거리지도 않고 확고하게, 한 달 전에 쓴 돈이 3000보다 적을 리가 없다고 증언했으며, 이곳의 모든 농군들도 '미트리 표도르이치' 본인한테서 직접 3000이라는 말을 들었노라고 증언할 것이라고 했다. 집시 계집들한테 뿌린 돈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요. 그년들 손에 굴러 들어간 돈만도 한 3000은 될걸요."라면서.

"500도 안 줬을걸." 미챠가 음울하게 응수했다. "다만, 그때 술에 취한 나머지 세 보지 않은 게 유감이야."


“그년들한테 들어간 돈이 1000은 넘습니다, 미트리 표도로비치.” 트리폰 보리소비치가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하릴없이 마구 뿌려 댔고, 그놈들은 마구 주워 갔습죠. 이 족속은 도둑놈에다가 사기꾼인걸요. 대강 눈짐작으로도 1500보다는 많았던 걸로 기억되는데……. 1500이 뭡니까요! 우리도 돈을 자주 보는 편이라, 그만한 판단은 할 수 있습죠…….”


어제의 금액에 관한 한 트리폰 보리소비치는,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마차에서 일어나기가 무섭게 3000을 가져왔다고 자기한테 알렸노라고 곧장 증언했다.

미챠가 반박을 해 봤다. “아니, 정말로 내가 3000을 가져왔노라고 분명히 공언했단 말인가?”

“그랬습죠, 안드레이가 있는 데서 그렇게 말했습죠. 자, 저어기 저 사람이 안드레이인데, 아직 안 갔으니, 그를 불러 보시죠. 저어기 홀에서 합창단을 대접할 때도 여기다가 '벌써 여섯 번째로 1000루블을 남겨 두는 셈'이라고 아주 대놓고 소리쳤는데 ─ 다시 말해 지난번에 쓴 돈과 합치면 6000이란 소리였겠죠."


트리폰 보리소비치가 거명한 농군들, 스체판, 세묜, 마부 안드레이, 표트르 포미치 칼가노프 등이 모두 심문을 받았다. 농군들과 마부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트리폰 보리스비치의 증언을 확인해 주었다. 그 밖에도, 안드레이의 증언 중, 길을 오던 도중 미챠와 나눈 대화는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기록되었으니, “나는, 그러니까 드미트리 표도로비치는 어디로 떨어질까? 천당일까 지옥일까, 저 세계에서는 나를 용서할까 아닐까.” 등 말이다.


다음 심문 대상인 칼가노프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잔뜩 쓰고 들어와서는 검사,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매일 봐 온 사이였음에도 꼭 난생처음으로 그들을 보는 양 굴었다. 그는 맨 처음부터 ‘그런 건 아무것도 모르고 알고 싶지 않다.’라는 식으로 나왔다. 하지만 여섯 번째의 1000루블에 대해서는 들었던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 순간 바로 옆에 서 있었노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폴란드인들도 심문을 받았다. 그들은 자기들 방에서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권력자들이 도착하자 자기들도 반드시 호출될 걸 알고서 재빨리 옷을 차려입고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몇몇 단어를 발음할 때를 제외하면 러시아어를 그냥 구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극히, 심지어 극히 정확하게 구사했다. 키 작은 판 무샬로비치가 그루셴카에 대한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관계를 열렬하고도 오만한 어조로 진술하기 시작하자, 미챠는 곧바로 앞뒤를 잃고 ‘야비한 놈’이 자기 앞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노라고 외쳤다.


그런데 폴란드 신사들의 증언 중 한 가지가 예심판사 측에 예사롭지 않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바로, 미챠가 그 방에서 판 무샬로비치를 돈으로 매수했다는 점, 즉 그에게 양도금 조로 3000을 제의하면서 700루블은 손에 쥐여 주고 나머지 2300은 ‘당장 내일 아침에 시내에 가서’ 주겠노라고 했으며, 덧붙여 여기 모크로예에는 지금 자기한테 그만한 돈이 없다, 돈은 시내에 있다면서 정말이라고 맹세까지 했다는 점이다.


검사가 자기한테 있는 돈은 다 해야 1500이라고 빡빡 우기고 있으면서 도대체 내일 어디서 폴란드 신사에게 줄 나머지 2300을 구할 생각이었느냐, 하고 캐묻자, 미챠는 내일 ‘폴란드 놈’에게 주려고 한 것은 돈이 아니라 체르마쉬냐 영지의 소유권, 삼소노프와 호흘라코바에게 제안한 바로 그 권리에 대한 정식 증서였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검사는 ‘유치하게 수작을 부리는 꼴’에 피식 웃기까지 했다.


그다음으로 호출된 자는 막시모프였다. 그는 겁을 집어먹은 채 나타나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는데 안절부절못하고 또 슬픈 기색이었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의 질문, 즉 드미트리 표도로비치한테서 돈을 빌릴 때 제일 가까운 곳에서 그의 손에 들린 돈을 봤을 텐데 그 손에 들린 돈이 정확히 얼마였는지 눈여겨봤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 막시모프는 ‘2만’이었다고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


끝으로 그루셴카의 차례가 왔다. 예심판사 측은 그녀의 출현이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의 심경을 뒤흔들어 놓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눈치였다. 해서,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그에게 훈계 삼아 몇 마디를 중얼거렸는데, 미챠가 그에 대한 대답으로 말없이 고개를 숙였으니 이로써 ‘소란을 피우진 않겠다.’라고 알려 준 셈이었다.


방으로 들어서면서 그루셴카는 미챠를 힐끔 바라볼 뿐이었는데, 미챠는 또 그 나름대로 내심 불안해하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 순간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 마음을 놓았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약간 더듬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퇴역 중위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와는 어떤 관계였는가?”라고. 이에 대해 그루셴카는 조용하고 확고하게 말했다.

“그냥 아는 사이였으며, 최근 한 달간 그런 사이로 저희 집에 출입했습니다.”


그루셴카는 한 달 전 그가 모크로예에서 쓴 돈은 정말로 3000루블이었다, 돈을 직접 세 보지는 않았지만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에게서 3000루블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확증해 주었다. 이어지는 심문 과정에서 밝혀진바, 그루셴카는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를, 그러니까 그 돈은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한테서 슬쩍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 단 한 번이라도, 한 달 전에 탕진한 돈이 3000이 아니라 그보다 더 적었고 또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그 돈 중 절반을 자신을 위해 따로 보관해 두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없습니까?”

“아니요,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루셴카가 증언했다.

이어서 밝혀진바, 미챠는 요 한 달 내내 자기한테는 돈이라곤 땡전 한 푼 없다고 그녀에게 자주 말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돈을 받게 되길 줄곧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라며 그녀는 말을 끝맺었다.


“당신이 있는 자리에서나…… 혹은 어쩌다 지나가는 말로, 혹은 그냥 신경질이 난 나머지”라면서 갑자기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말을 가로챘다. “자기 아버지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은 없습니까?”

“아, 왜 없겠어요! 여러 번이나 그랬죠, 늘 화가 난 상태에서.” 그루셴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가 그걸 실행에 옮기리라고 믿었습니까?”

“아뇨, 절대로 믿지 않았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의 고결한 마음씨에 희망을 걸고 있었으니까요.”


증인 심문은 마침내 끝났다. 검사 측은 조서의 최종 편집에 돌입했다. 미챠는 의자에서 일어나 커튼 쪽 구석으로 옮겨 간 뒤 양탄자를 씌워 놓은 여주인의 커다란 궤짝 위에 누워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그는 왠지 때와 장소에 전혀 맞지 않는 어쩐지 이상야릇한 꿈을 꾸었다.


자, 그는 아주 옛날, 오래전에 근무했던 어떤 곳, 어딘가 들판을 달리고 있다. 진눈깨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 어느 농군이 그를 쌍두마차에 딸린 달구지에 싣고 가는 것이다. 미챠는 그저 추울 따름이다. 11월 초, 축축하고 굵은 눈송이들이 날리다 땅바 닥에 떨어지고 그러자마자 곧 녹아 버린다. 멋지게 손을 놀려 날렵하게 그를 싣고 가는 농군은 아마빛 턱수염을 아주 길게 기르고 있고, 회색 농사꾼 외투를 입고 있고, 아직 노인이라곤 할 수 없는 쉰 살 정도의 사내이다.

자, 저기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이, 검어도 너무 검은 오두막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나마도 절반은 다 불에 타 버려서 타다 남은 기둥들만 비죽비죽 서 있다. 길바닥에 수없이 많은 아낙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저 끝에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마르고 키가 큰 한 아낙네가 서 있다. 마흔 살쯤 되어 보이지만, 실은 겨우 스무 살밖에 안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품에 안긴 어린아이는 울고 있다. 분명히 어 미의 젖가슴이 바싹 말라서 젖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 탓이리라. 갓난애는 연신 울어 대면서 주먹을 꼭 쥔 채 벌거벗은 고사리 손을 뻗치는데, 날이 너무 추운 탓에 두 손이 거의 시퍼렇게 얼어 버렸다.

"아니, 왜 저리 울고 있나?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는 겐가?" 미챠가 그들 곁을 지나가면 서 묻는다.
"애기입죠." 마부가 그에게 대답한다. "애기가 울고 있는 겁니다요." 미챠가 충격을 받은 건 농군이 '아기'라고 하지 않고 자기네 농군들이 말하는 식으로 '애기'라는 표현을 썼 기 때문이었다. 그는 농군 입에서 나온 '애기'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왠지 애처로운 마음이 더 많이 담겨진 듯해서 말이다.

"아니, 그런데 대체 왜 울고 있는 겐가?" 미챠가 멍청이처럼 자꾸 졸라 댄다. "손은 왜 저렇게 드러내고 있는 겐가, 왜 뭘로 좀 감싸 주지 않고?"
"애기가 꽁꽁 얼었습죠, 옷가지도 얼어붙어서 몸을 녹여 주질 못합죠."
"대체 왜 그런 건가? 왜?" 멍청한 미는 여전히 물러서지 않는다.
"왜긴요,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가 화재까지 당했으니, 살 집도 없고, 그래서 집을 다시 짓겠다고 구걸을 하고 있는 것입죠."

"아니, 말이 안 돼." 미치는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투다. "자네, 어디 말 좀 해 보게. 대체 왜 화재를 당한 애 엄마들이 저렇게 서 있는 건가? 사람들은 왜 가난한 거야, 애기는 또 왜 가난한 건가? 왜 들판이 이렇게 황량한 건가? 왜 저들은 서로 껴안지도 않 고, 입을 맞추지도 않는 건가? 왜 기쁨에 찬 노래들을 부르지 않는 거냐고? 왜 그런 거야, 왜 저들은 저렇게 흉흉한 재앙을 당해 갖곤 저토록 시커메진 거냔 말이야? 왜 애기한테 젖을 먹이지 않느냔 말이야?"
이렇게 미치는 자기가 미친 듯이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퍼붓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꼭 이런 식으로 묻고 싶고 또 이런 식이 아니면 안 됐던 거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는 절대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감동이 자기 가슴속에서 북받쳐 오르는 것을 느낀다. 울고만 싶다. 애기가 더 이상 울지 않도록, 시커멓게 말라 버린 애 엄마가 울지 않도록, 이 순간부터는 아무도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모든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다. 지금, 지금 당장 한시도 미루지 않고 어떤 일이 있어도 카라마조프답게 막무가내로 나서서 말이다.

"나도 당신과 함께할 거야, 이제는 당신을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평생 동안 당신과 함께 갈 거야." 그루셴카의 감동에 겨운 정겨운 말들이 그의 귓전으로 울려 퍼진다. 그러자, 그의 심장이 활활 타올라 어떤 빛을 향해 내달았다. 살고 싶다, 정말 살고 싶다. 어떤 길을 향해, 내게 손짓하는 저 새로운 빛을 향해 떠나고 싶다, 정말 그렇게 하고 싶다. 얼른, 어서 빨리, 지금 당장!


“뭐라고? 어디로?” 그는 기절했다가 이제 막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눈을 뜨고 궤짝 위에 앉으면서 이렇게 외친다. 그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가 번진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자기를 내려다보면서 조서를 읽어 줄 테니 잘 듣고 서명을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제야 미챠는 자기가 한 시간, 어쩌면 그 이상 잠을 잤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갑자기 충격을 받은 탓인데, 아까 힘없이 궤짝 위로 쓰러질 때만 해도 없었던 베개가 자기 머리맡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입회인들 중 누군가, 아니면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의 서기가 안쓰러운 마음에서 베개를 받쳐 주었을 터인데, 그의 영혼은 온통 눈물로 전율하는 듯했다. 그는 탁자 쪽으로 다가가서 뭐든 다 서명하겠노라고 알렸다.

“나는 좋은 꿈을 꾸었습니다, 여러분.” 그는 기쁨의 빛으로 세례를 받은 양 어쩐지 새로운 얼굴을 하고서 왠지 이상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9 미챠, 호송되다


조서에 서명이 끝나자,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는 피고를 향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판결문’을 읽어 주었다.

즉, 몇 년 몇 월 며칠 모처에서 모 지방재판소의 예심판사가 미챠를 이러저러한 죄목의 피고로 심문한 결과, 피고가 자기에게 걸린 범죄 혐의를 시인하지 않으면서도 혐의를 벗을 수 있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반면, (이런저런) 증인들과 (이런저런) 정황들로 볼 때 그의 소행임이 확실하다는 점에 주목하며, '형법' 몇 조와 몇 조에 의거하는 등하여 다음과 같은 판결을 내린다.

'이 아무개(미챠)가 심리와 재판을 회피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하여 그를 모 구치소에 감금하고, 이 점을 피고에게 고시하고 이 판결문의 사본은 검사 시보에게 알린다' 등등.

한마디로 말해서, 미챠는 지금부터 죄수의 몸이며 곧 도시로 호송되어 극히 불미스러운 어느 장소에 감금될 것임을 통보받은 것이다.


“잠깐만요.” 미챠가 갑자기 말을 가로막고서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어떤 격한 감정에 휩싸여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잔인합니다, 우리는 모두 불한당들입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 중에서 ─ 이젠 이런 결론이 나도 상관없지만 ─ 모든 이들 중 내가 가장 야비한 독사입니다! 나 같은 놈들은 한 방 맞아야, 운명으로부터 호되게 한 방 얻어맞아야 된다는 걸 이제야 알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꼭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내 아버지의 피에 대해선 무죄입니다!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것은 아버지를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죽이고 싶었으며 어쩌면 정말로 죽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끝까지 여러분과 싸울 것이고, 그 결정은 저곳에서 하느님께서 하실 겁니다!"


“심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니콜라이 파르표노비치가 다소간 당혹스러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시내로 가서 또 계속하게 될 테니까요, 저는 물론 당신이…… 모든 일이 다 잘되길…… 그러니까 무죄 판결을 받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저는 당신을 늘, 말하자면 죄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불행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편이었고……. 여기 우리 모두는, 감히 다른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여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다면, 당신이 그 근본에 있어 고결한 젊은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만, 정말 안타깝군요! 이런 고결한 젊은이가 어쩌다 그렇게 다소 지나칠 정도로 열정에 휩싸이게 됐는지…….”


“여러분은 선량하고 인도적인 사람들이니까,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해도 될까요?” 미챠가 물었다.

사람들이 그루셴카를 데려왔고, 그루셴카는 몸을 깊이 숙여 미챠에게 인사했다.

"나는 당신 것이라고 말한 이상, 앞으로도 나는 당신 것일 테고 당신을 어디로 보내든 영원히 당신과 함께 갈 거야. 잘 가요, 아무 죄도 없이 스스로를 파멸시킨 양반!" 그녀의 입술은 파르르 떨렸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루샤, 당신을 사랑한 내 죄를 용서해 줘, 내 사랑 때문에 당신마저 파멸시켰으니!" 미챠는 하고 싶은 말이 좀 더 있는 듯했으나, 갑자기 알아서 말을 끊고 밖으로 나갔다.


image.png


그가 어제 안드레이의 트로이카를 타고 그토록 요란스럽게 들어왔던 저 아래 현관 층계참에는 이미 두 대의 호송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트리폰 보리소비치도 현관 층계참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대문 곁은 농군들이며 아낙네들이며 마부들이며 온갖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하나같이 미챠를 응시했다.

"안녕히들 계시오, 하느님의 사람들!" 미챠가 달구지에서 갑자기 이렇게 소리쳤다.

"자네도 잘 있게, 트리폰 보리스이치!" 하지만 트리폰 보리스이치는 돌아보지도 않았으니, 아주 바쁜 듯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안녕히!"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칼가노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호송 마차까지 달려와서 미챠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자도 쓰지 않은 채였다.

"잘 있게나, 사랑스러운 사람, 자네의 이 관대한 마음씨는 잊지 않겠네!" 그가 열렬하게 외쳤다. 하지만 미챠는 곧 출발했고, 그들의 손은 떨어졌다. 방울이 쩔렁쩔렁 소리를 냈고 - 미챠는 호송되었다.


image.png


한편 칼가노프는 현관으로 달려와 구석에 앉은 뒤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기 시작했다. 그건 스무 살 청년이 아니라 아직 조그만 어린애의 울음 같았다. 오, 그는 미챠의 유죄를 거의 굳게 믿었던 것이다!

"정녕 사람들이란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이러고서도 과연 진정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쓰라린 우울함에 젖어, 거의 절망에 빠져 그는 두서없이 외쳤다. 이 순간 그는 숫제 이 세상을 살고 싶지도 않았다. "살 가치가, 그럴 가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슬픔에 잠긴 청년은 이렇게 절규했다.


<9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