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옮김 민음사
10장
소년들
11월이 시작됐다. 영하 11도의 추위가 닥치면서 곳곳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땅으로 밤이면 메마른 눈이 조금씩 내리고, ‘건조하고 날카로운’ 칼바람에 눈가루가 날려 우리 소도시의 지루한 거리들, 특히 시장의 광장을 휩쓴다. 아침부터 날씨는 궂었지만, 그래도 눈은 그쳤다.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 플로트니코프 상점 근처에 안팎이 모두 아주 깨끗하고 아담한 집 한 채가 서 있는데, 관리의 미망인 크라소트키나의 집이다. 현청(縣廳) 서기관이었던 크라소트킨은 이미 오래전, 거의 십사 년 전에 죽었지만, 살아남은 그의 미망인은 지금까지도 몹시 예쁘장한 서른 살의 부인으로 자신의 깨끗하고 아담한 집에서 ‘자기 재산으로’ 살고 있다.
일 년 남짓한 결혼 생활에서 아들을 하나 낳자마자 남편이 죽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그때 이후, 그러니까 남편이 죽은 직후부터 그녀는 이 보물과 같은 아들 콜랴를 키우는 데 전력을 기울였으며, 십사 년간 내내 정신없이 사랑을 바쳤건만 물론 기쁨보다는 고통을 훨씬 더 많이 감내해야 했다.
그는 기회만 주어지면 늘 망나니 골통과 같은 장난질을 아주 즐겼는데, 그건 사실 장난질이라기보다는 뭔가 난해한 일을 꾸미고 기발한 행각을 벌이고 ‘돌출 행동’을 해서 멋을 부리고 괜히 폼을 잡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존심이 몹시 강한 아이였다. 심지어 자기 엄마한테도 거의 독재자처럼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기들 관계에서 엄마를 자기 부하처럼 만들 줄 알았다.
철로 사건
올여름 7월에, 여름 방학 기간 동안 모자가 일주일 예정으로 70베르스타 떨어진 다른 군에 사는 어느 먼 여자 친척 집을 방문하러 떠난 일이 있었는데, 이 친척의 남편은 철도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여기서 어울린 소년들 중 콜랴가 거의 나이가 가장 어렸기 때문에 나이 많은 아이들한테 다소 멸시를 받아 자존심이 상해서였는지 아니면 용감무쌍한 만용을 부리느라 그랬는지 여하튼 밤 11시 기차가 도착할 때 선로 사이에 엎드려 기차가 자기 위를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있어 보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사실, 사전에 꼼꼼히 연구를 해 본바, 선로를 따라서 그 사이에 몸을 쫙 뻗고 납작하게 엎드려 있어도 물론 기차가 질주하면서 누워 있는 사람을 칠 리야 없겠지만, 그럼에도 아니, 어떻게 그렇게 누워 있겠단 말인가! 콜랴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완강히 고집을 부렸다. 처음에는 다들 그를 조롱하고 거짓말쟁이, 허풍쟁이라고 놀렸지만, 이로써 그를 더욱더 부채질한 셈이었다.
마침내 역을 출발한 기차가 멀리서 우렁찬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암흑 사이로 두 개의 붉은 불빛이 번득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가까워진 괴물은 괴성을 질렀다. “뛰어내려, 선로에서 멀리 뛰어내리란 말이야!”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은 소년들이 관목 숲에서 콜랴를 향해 소리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기차는 사정없이 들이닥쳐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소년들은 콜랴에게로 달려갔다. 그는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다.
그들은 그를 잡아당겨서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콜랴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말없이 철둑에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그는 그들을 놀래 주려고 일부러 정신을 잃은 척 누워 있었다고 선언했지만, 실은, 훗날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제 입으로 직접 엄마에게 고백한 대로, 정말로 기절한 거였다. 이런 식으로, 그의 뒤에 붙은 ‘독한 놈’이라는 영광의 딱지는 영원토록 공고해졌다. 집으로, 역관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사건은 그 자리에서 곧 알려진 것이 아니라, 뒤에 우리 도시의 예비 김나지움으로 소문이 퍼졌고 그렇게 교사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콜랴의 엄마가 부디 자기 아이를 좀 봐 달라고 교사들에게 애걸복걸하고 또 제법 영향력 있고 추앙받는 다르다넬로프 선생이 그를 옹호하여 선처를 부탁하는 바람에, 이 일은 아예 없었던 걸로 유야무야되었다.
이 다르다넬로프라는 선생은 아직 별로 늙지 않은 독신자였는데, 벌써 수년 동안 크라소트키나 부인을 열렬히 사랑해 왔으며 일 년쯤 전, 한 번은 너무 무섭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가슴을 졸이면서도 아주 점잖게 그녀에게 청혼을 하는 모험마저 감행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을 승낙하면 자기 아이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여 딱 잘라 거절했는데, 그쪽에서는 몇몇 은밀한 징후로 보건대 자신이 이 매력적이면서도 지나치게 순결하고 우아한 미망인에게 영 볼품없는 존재는 아니라는 꿈을 키울 권리 정도는 있었던 모양이다.
콜랴가 이 측면에서 다르다넬로프의 속내를 이해하고 또 헤아렸으며 응당, 그의 이런 ‘감정들’을 깊이 경멸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철로 사건 이후엔 어머니 앞에서 다르다넬로프 얘기를 할 때는 더 공손해졌기 때문에 예민한 안나 표도로브나는 이것을 곧 알아채곤 내심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지만, 대신 콜랴가 있는 데서 아무나 자기들과 상관없는 손님이 우연찮게 다르다넬로프 얘기를 조금이라도 꺼내면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껴 장미처럼 얼굴을 붉히곤 했다.
이런 순간이면 콜랴는 인상을 팍 쓴 채 창문을 바라보거나, 한 달쯤 전 어디선가 얻어 집으로 들인 뒤 친구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방 안에서 몰래 키우고 있는 상당히 커다란 옴투성이의 털북숭이 개 페레즈본을 맹렬하게 부르곤 했다. 그런데 그는 이 개에게 온갖 재주와 묘기를 다 가르쳤는데, 결국 이 불쌍한 개는 그가 학교에 가서 집에 없을 때는 끙끙대며 울다가, 그가 돌아오면 좋다고 멍멍 짖어 대고 반쯤 미친 듯 펄펄 뛰는가 하면 땅바닥에 나동그라져 죽은 척을 하는가 하면, 한마디로 자기가 배운 재주를 죄다 보여 주었다.
그나저나 내가 그만 깜박 잊고 언급하지 않은 것이 있다. 즉, 독자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는 소년, 그러니까 퇴역 2등 대위 스네기료프의 아들인 일류샤가 학교 친구들이 자기 아버지를 ‘수세미’라고 부르며 약을 올리자 아버지를 변호하기 위해 펜촉으로 어떤 소년의 허벅지를 찌른 일이 있었는데, 이 봉변을 당한 소년이 바로 콜랴 크라소트킨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혹한의 11월 아침, 소년 콜랴 크라소트킨은 집에 앉아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수업은 없었다. 하지만 시계가 벌써 11시를 친 지금, 그는 ‘극히 중차대한 어떤 일’ 때문에 반드시 외출을 해야 했건만, 집안 어른들이 모두 다소 기괴하고 이례적인 사정이 있어서 집을 비운 탓에 자기 혼자 남아 수호신처럼 집을 지키고 있었다.
미망인 크라소트키나의 집에는 그녀 자신이 쓰고 있는 본채 말고도 그곳 현관 너머에 유일무이한 곁채가 하나 있었는데, 방 두 칸이 딸린 이 곁채를 어린애 두 명이 딸린 의사 부인에게 빌려 주고 있었다. 이 의사 부인은 안나 표도로브나와 동갑으로서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의사가 벌써 일 년 전에 처음엔 오렌부르크 어디론가, 그다음엔 타슈켄트로 떠난 뒤로 벌써 반년째 아무 소식도 없었다.
그러던 차, 하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로 이날 밤,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의사 부인의 유일한 하녀인 카체리나가 갑자기 아침 녘에 아이를 낳을 예정이라고 알려 왔으니 부인 입장에서는 정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충격을 받은 의사 부인은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이와 같은 일에 적합한 우리 도시의 한 시설의 산파 할머니에게로 데려가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녀는 이 하녀를 몹시 아꼈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즉시 실행에 옮겼는데, 비단 그녀를 데려갔을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도 하녀와 함께 거기에 남아 버렸다.
이어, 아침이 오고 왠지 크라소트키나 부인의 한결같은 우정 어린 관심과 도움이 필요해졌는데, 이 부인이라면 이런 경우에 누군가에게 뭘 부탁할 수도 있고 또 어떻게 뒤를 봐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두 부인은 출타한 상태였고, 크라소트키나 부인의 하녀인 아가피야도 장을 보러 나갔기 때문에, 콜랴는 잠깐 동안 ‘뚱땡이들’, 즉 저희들끼리 남겨진, 의사 부인의 사내애와 계집애를 봐 주는 수호자 겸 파수꾼이 된 것이다.
카체리나에게 일어난 뜻밖의 사태를 응당 그는 몹시 혐오스러워했지만, 졸지에 고아가 돼 버린 이 뚱땡이들에 관한 한, 그는 얘들을 아주 사랑하여 이미 무슨 어린이용 책을 가져다준 적도 있을 정도였다. 누나인 계집애 나스챠는 여덟 살로 글을 읽을 줄 알았고, 남동생 뚱땡이인 일곱 살짜리 꼬마 코스챠는 나스챠가 자기에게 책 읽어 주는 걸 듣길 좋아했다.
마침내 시계가 11시를 알리자, 십 분 뒤에도 ‘망할 놈의’ 아가피야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더 기다리지 않고 나가 봐야겠다고 최종적으로 단호한 결정을 내렸는데, 물론 ‘뚱땡이들’한테서 자기가 없어도 겁을 먹거나 무슨 장난을 치거나 무서워서 울거나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서 말이다.
“뚱땡이들, 이 몸은 지금 곤경에 처해 있다.” 크라소트킨이 근엄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래서 너희들이 나를 좀 도와줘야겠어. 아가피야는 지금까지 오지 않는 걸 보면 어디 다리라도 하나 부러진 게 분명해, 하지만 이 몸은 밖에 나가 봐야 될 일이 있단 말이다. 어때, 나를 놓아줄 테냐, 엉?”
아이들은 근심에 찬 듯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으며, 이를 드러내며 웃던 그들의 얼굴에는 금세 불안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번만은 내가 올 때까지만 가만히 있어야 한다. 자 그럼, 뚱땡이들, 이제 난 가 봐도 되겠지, 엉? 내가 없어도 무섭다고 울진 않겠지?”
“울 ─ 거 ─ 예요.” 코스챠는 벌써부터 울 준비를 하면서 말을 길게 뺐다.
“울 거예요, 틀림없이 울 거예요!” 나스챠도 겁먹은 듯 빠른 말투로 말을 받았다.
“아, 꼬맹이들아, 요 꼬맹이들, 너희들 또래는 정말로 위험하구나. 어쩔 수가 없지, 요 햇병아리들아,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같이 있어 줄 수밖에. 하지만 시간이, 시간이 간단 말이다, 아이고!”
그 사이 크라소트키나 부인의 하녀인 마흔 살쯤 된 뚱뚱한 곰보 아줌마 아가피야가 문지방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장을 보고 오는 길이라 식료품이 가득 든 바구니를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아니, 여성, 왜 늦었어?” 크라소트킨이 위협하듯 물었다.
“여성이라니, 이놈의 뚱땡이가! 내가 늦었건 말았건 네가 무슨 상관이야,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지.”
“들어 봐, 생각이 짧은 할멈 같으니.” 하고 소파에서 일어나면서 크라소트킨이 말을 시작했다. “이 세상의 모든 성스러운 것과 그에 덧붙여 모든 걸 다 걸고서, 내가 없는 동안 한눈팔지 않고 이 뚱땡이들을 열심히 돌봐 주겠다고 나한테 맹세할 수 있겠어? 나는 좀 나가 봐야 할 일이 있거든.”
“아니, 내가 왜 너한테 맹세를 해야 되지?” 아가피야가 웃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돌봐 줄 거야.”
“뚱땡이들아.” 하고 콜랴는 꼬맹이들을 불렀다. “내가 돌아오거나 너희 엄마도 벌써 돌아올 시간이 됐으니까 너희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이 여자가 너희와 함께 있어 줄 거다. 그뿐인가, 너희들에게 아침밥도 줄 거야. 요 꼬맹이들한테 뭘 좀 줄 거지, 아가피야?”
“그런 것쯤이야 뭐.”
“잘들 있어라, 햇병아리들아, 그럼 이 몸은 안심하고 떠나련다."
“아이고, 귀신은 네놈 좀 안 잡아가냐.” 아가피야는 이미 정말로 화가 나서 툴툴거렸다.
광장까지 못 미쳐 어느 집 앞에 이르자, 콜랴는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호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서는 꼭 약속된 신호를 보내는 양 있는 힘껏 불었다. 일 분도 채 안 돼서 그의 앞으로 갑자기 열한 살쯤 된 소년이 쪽문에서 튀어나왔는데, 이 아이는 예비반에 재학 중인 소년 스무로프로(콜랴 크라소트킨은 이미 두 학년이나 위였다.) 부유한 관리의 아들이었는데, 두 달 전 개천을 사이에 두고 일류샤에게 돌팔매질을 한 소년들 중 하나였고 또 그때 알료샤 카라마조프에게 일류샤 얘기를 해 준 소년이기도 하다.
“꼬박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요, 크라소트킨.” 스무로프는 단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늦었어.” 하고 크라소트킨이 대답했다. “그럴 사정이 좀 있었어.”
“페레즈본도 같이 가나요?”
“응, 페레즈본도!”
“아, 쥬치카가 있다면!”
“쥬치카를 데려갈 순 없잖아. 쥬치카는 존재하지 않는걸. 쥬치카는 미지의 암흑 속으로 사라졌어.”
“아, 이렇게 하면 안 될까요.” 하고 갑자기 스무로프가 걸음을 멈추었다. “일류사가 말로는 쥬치카도 페레즈본처럼 털북숭이였고 털이 회색이 감도는 연기 같은 색깔이었다던데 ─ 이 녀석이 바로 쥬치카라고 말하면 안 될까요, 일류샤가 믿을지도 모르잖아요?”
“이봐, 초등학생, 거짓말을 싫어할 줄 알라고, 이게 첫째야. 심지어 좋은 일을 위해서도 거짓말은 안 된다, 이게 둘째.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쪽에다가 내가 간다는 걸 누구한테도 알리지 않았길 바란다.”
“그 애는 어때, 일류샤 말이야?”
“아, 나빠, 나빠! 내 생각으론 폐병인 것 같아. 정신은 말짱한데, 다만 숨 쉬는 게 말이야, 숨 쉬는 게 별로 좋지 않아. 얼마 전엔 자기를 좀 걷게 해 달라고 부탁해서 장화를 신겼는데 발을 내딛다가 그만 고꾸라지고 말았어. 힘이 너무 없어서 그런 거야. 일주일도 못 넘길걸."
그건 그렇고, 너희들은 저기서 무슨 감상 놀음을 그리하는 거야? 반 학생들이 전부 다 그 집에 다니는 거야?”
“전부는 아니고 우리 반 애들 열 명 정도가 항상, 매일 그 집을 오가는 거야. 이건 뭐 괜찮아.”
“이 모든 일에서 내가 놀라울 따름인 건 알렉세이 카라마조프의 역할이야. 자기 형이 내일이나 모레 그런 범행으로 재판을 받을 텐데, 정작 자신은 아이들과 어울려 감상이나 떨고 있다니, 시간이 철철 남아도나 봐!”
“감상을 떨고 그러는 건 전혀 아니야. 너도 지금 이렇게 일류샤와 화해를 하러 가는 거잖아.”
“화해라고? 표현 한번 웃긴다. 난 말이야, 이렇든 저렇든 누가 내 행동을 분석하는 건 용납하지 않아. 친애하는 소년 양반, 그건 내 일이지, 네 일이 아니야. 나는 나의 자유 의지에 따라 나 스스로 가는 것이지만, 너희들은 모두 알렉세이 표도로비치한테 끌려간 셈이야, 바로 여기에 차이가 있는 거지. 그리고 네가 어떻게 안다는 거야, 내가 화해를 하러 가는지, 아님 전혀 아닌지? 표현 한번 바보 같다니까.”
"카라마조프는 무슨, 우리들도 그 아저씨 때문에 끌려간 건 절대 아니야. 자기들이 알아서 찾기 시작한 거야. 처음에는 얘가 가고, 나중엔 쟤가 가고 이런 식으로 된 거라고. 걔 아버지는 우리가 가면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했어. 너도 알겠지만, 일류샤가 죽으면 걔 아버지는 그냥 미쳐 버릴 거야. 그 아저씨는 일류샤가 죽을 거라는 거, 알고 있어. 우리가 일류샤와 화해했을 때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더군. 일류샤는 네 얘기도 물어봤어."
“어쨌거나 카라마조프는 나한테 수수께끼야. 나는 오래전에 그 사람과 사귈 기회가 있었지만, 경우에 따라서 오만하게 구는 걸 좋아하는 편이거든. 게다가 내 나름대로 그 사람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게 됐는데, 아직은 좀 더 점검을 해 보고 밝힐 필요가 있지.”
콜랴는 근엄하게 입을 다물었다. 스무로프는 응당 콜랴 크라소트킨 앞에서 경건한 마음을 가졌으며 그와 맞먹는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했다. 한데 지금은 몹시 호기심이 발동했는데, 콜랴가 갑자기 '오늘'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걸 보면 여기엔 어떤 수수께끼가 들어 있어 있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터 광장을 걷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오늘따라 다른 곳에서 온 짐마차들이 많이 서 있었고 한 무더기로 몰아 놓은 조류들도 많았다. 우리 도시에서는 그냥 순박하게 정기시(定期市)라고 부르는데, 페레즈본은 아주 신이 나서는 연신 좌우로 고개를 기울여 어디 무슨 냄새라도 맡는지 킁킁대며 뛰어다녔다. 다른 개들과 마주칠 때면 자기들 나름의 규칙에 따라 예사롭지 않을 정도로 기꺼이 서로 몸 냄새를 맡았다.
“나는 리얼리즘을 관찰하는 게 좋아, 스무로프.” 갑자기 콜랴가 말했다. “개들이 만나면 서로 냄새 맡는다는 거, 눈여겨봤니? 그러니까 그들에겐 어떤 공통적인 자연법칙이 있는 거야.”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 쪽에 멍청한 점들이 훨씬 더 많다고 확신하기 때문이야. 이것은 라키친의 사상이야, 훌륭한 사상이지. 나는 사회주의자야, 스무로프.”
“사회주의자가 뭐야?” 스무로프가 물었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모든 재산도 공통된 하나의 재산이고 결혼 같은 것도 없고 종교며 법칙들이며 나머지 모든 것들도 다 그렇고 그렇다는 거야. 너는 아직 덜 커서 이런 걸 이해할 수 없어. 그나저나 춥다.”
“그래. 영하 12도래. 아까 아버지가 온도계를 봤거든.”
“그런데 너 눈여겨본 적 있냐, 스무로프, 한겨울에는 영하 15도, 심지어 18도가 되어도 지금처럼 이렇게 춥게 느껴지지 않아. 하지만 지금과 같은 초겨울에는 갑자기 영하 12도의 혹한이 닥치는 거니까 춥게 느껴지는 거야, 눈이 거의 없는데도 말이야. 이건 다시 말해 사람들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렇다는 거야. 인간 만사는 모두 습관이야, 국가적 일이나 정치적 일에서도 모든 것이 습관이지. 어디나 습관이 주된 동력이란 거야."
“저 농군은 턱수염이 얼어붙었군!” 그의 곁을 지나가면서 콜랴가 시비를 걸듯 큰 소리로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단다.” 농군이 대답 삼아 평온하게 교훈조로 말했다.
“참 별난 애로구나. 아마 초등학생일 테지?”
“예, 초등학생이에요.”
“그래, 더러 맞아 봤겠네?”
“딱히 그렇진 않지만, 뭐 그냥 그렇죠.”
“아프냐?”
“안 아플 리가 없잖아요!”
“아휴, 짠하기도 해라!” 농군은 진심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 저 아저씨한테 우리가 학교에서 매를 맞는다고 거짓말을 한 거야?” 스무로프가 물었다.
“위로를 좀 해 줄 필요가 있지 않겠어? 농군의 생각에 따르면 학생은 매를 맞고 있고 맞아야 돼. 맞지 않는다면 그게 학생인가? 이런 식이지. 그런데 내가 갑자기 그에게 우리는 매를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는 정말로 실망할걸. 그래 봤자, 너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잖아. 민중과 얘기를 나누려면 요령이 있어야 되거든.”
아케이드처럼 늘어선 시내 상점들 밑에서 잔뜩 골이 난, 장사치로 보이는 사람 하나가 느닷없이 튀어나왔다. 그는 어쩐지 바보같이 흥분한 상태에서 곧장 주먹을 쥐고 콜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난 네놈이 누군지 알아.” 그가 짜증스럽다는 듯 소리쳤다. “네놈이 누군지 안다고!”
콜랴는 그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날 안다고요?” 콜랴가 그에게 비꼬듯 물었다.
“왜 사고를 치는 거야?” 소시민이 소리쳤다. “너 또 난동을 부릴 거지?"
“이봐요, 형씨, 이건 트리폰 니키치치의 일이지, 형씨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트리폰 니키치치는 또 누구야?” 여전히 열을 올리긴 했지만 바보같이 놀라워하면서 청년은 콜랴를 응시했다.
“보즈네셰니예에 가 봤어요? 그럼 사바네예프는 알고 있어요?” 더욱더 집요하고 엄격하게 콜랴가 계속했다.
“사바네예프는 또 누구야? 아니, 난 몰라.”
“에이, 그렇다면, 볼 장 다 봤군!” 콜랴가 갑자기 딱 잘라 말하더니, 갑자기 몸을 획 돌려 재빨리 큰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갔는데, 사바네예프도 모르는 이런 병신이랑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경멸스럽다는 투였다.
“네가 아까 물어본 사바네예프는 어떤 사람이야?” 어떤 대답이 나올지 짐작이 됐지만, 콜랴한테 물어보았다.
“사바네예프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이제 저 사람들은 저녁때까지 저렇게 떠들어 댈 거야. 나는 사회의 모든 계층의 바보들을 뒤흔들어 놓는 게 좋아. 어라, 저기 또 병신이 하나 서 있군, 저기 농군 말이야. 명심해 둬, ‘멍청한 프랑스 사람보다 더 멍청한 건 아무것도 없다.’라고들 하지만 러시아 사람의 생김새도 만만치 않다는 걸 말이야. 저 사람 얼굴에 나는 바보다, 하고 쓰여 있지 않냐, 저 농사꾼 말이야, 엉?”
"헤이! 안녕하세요, 농군 아저씨!”
“그래, 너는 안녕하냐, 농담으로 인사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가 서두르지 않고 이렇게 대답했다.
“만약 농담이라면요?” 콜랴가 웃었다.
“농담이면 또 어떠냐, 그렇게 농담도 하렴, 하느님이 너와 함께하길. 아무렴 어떠냐, 그럴 수도 있지. 농담이란 원래 언제든지 하라고 있는 거니까.”
“이거 미안한걸, 아저씨, 진짜 농담이었는데.”
“뭐 그럼, 하느님이 너를 용서하시길.”
“그럼 아저씨는 용서해 주는 건가요?”
“용서하다뿐이냐. 어서 가 봐라.”
"어라, 그러니까 아저씨는 정말 현명한 농군인 것 같아요."
"너보다는 현명하지." 느닷없이, 아까처럼 근엄하게 농군이 대답했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요." 콜랴는 다소 어리둥절해졌다.
"내 말이 맞을걸"
"뭐 그렇다고 해 주죠."
"정말 그렇다니까, 얘야."
"안녕히 가세요, 농부 아저씨."
"너도 잘 가거라."
"농군의 종류도 가지가지야. 저렇게 똑똑한 농군을 만날 줄은 몰랐는걸. 나는 언제나 민중의 지혜를 인정해 줄 준비가 되어 있어."
멀리 성당의 시계는 11시 반을 쳤다. 소년들은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으며, 2등 대위 스네기료프의 집까지 남아 있는 꽤 먼 길을 이제는 거의 대화도 나누지 않고 빨리 걸어갔다. 집 앞에서 이십 보쯤 떨어진 곳에서 콜랴는 걸음을 멈추었는데, 스무로프한테 먼저 가서 카라마조프를 이리로 좀 불러 달라고 명령했다. “미리 냄새를 좀 맡아 둘 필요가 있지.” 그가 스무로프에게 말했다. 스무로프는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달려갔다.
콜랴는 근엄한 얼굴을 하고 담장에 몸을 살짝 기댄 채 알료샤가 나오길 기다렸다. 그렇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료샤를 만나고 싶었다. 그에 대한 얘기는 아이들한테서 지겹도록 많이 들어 왔지만, 지금까지 아이들이 자기 앞에서 그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고 심지어 ‘비판’까지 할 때면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겉으로는 늘 경멸스럽고 무심한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무척이나 사귀고 싶었다. 그가 들은 알료샤에 대한 얘기 속엔 모두 뭔가 공감이 가고 사람을 끄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 순간은 중대했다. 첫째, 독립심을 보여 주기 위해 제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콜랴는 가장 독립적인 태도를 취하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이렇게 흥분했다. 무엇보다도, 그를 괴롭힌 것은 키가 작다는 것, 얼굴이 ‘추잡하게’ 생겼다는 것보다는 차라리 작은 키였다. 하지만 얼굴은 뽀얗고 창백한 데다가 주근깨가 나 있어 상당히 귀여웠다. 자그마한 코는 완전히 들려 있었다.
알료샤는 곧 나타났으며 콜랴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 왔다. 몇 걸음 떨어져 있을 때부터 이미 그는 알료샤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정말로 나를 만나는 게 저렇게 기쁜 건가?’ 콜랴는 만족감에 젖어 이렇게 생각했다. 알료샤는 이제 수도복을 벗어 던지고 지금은 멋지게 재단된 프록코트를 입고 부드럽고 둥근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머리카락은 짧게 깎은 상태였다. 이 모든 것이 그를 몹시 돋보이게 만들어서, 완전히 미남이 되어 있었다.
“자, 드디어 콜랴 군도 왔군요, 우리 모두 얼마나 기다렸던지.”
“이유가 좀 있었습니다, 지금 아시게 되겠지만요. 어쨌거나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오래전부터 기회가 오길 기다렸고, 얘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콜랴가 다소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 이곳에는 좀 늦게 왔군요.”
“일류샤는 자주 당신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심지어 잠을 잘 때나 열에 들떠 헛소리를 할 때도. 당신이 그에게 몹시 소중한 존재였다는 걸 알겠더군요. 그 나이프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그래, 이건 당신의 개입니까?”
“예, 나의 개입니다. 페레즈본이죠.”
“쥬치카가 아니고요?” 알료샤는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녀석은 이미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겁니까?”
“다들 쥬치카가 오길 바라고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다 들었거든요. 들어 보십시오, 카라마조프 씨, 나는 당신에게 모든 일을 설명하겠습니다. 내가 온 건 무엇보다도 이 때문이니까요. 당신을 이렇게 불러낸 것도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당신에게 모든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가 활기를 띠며 말을 시작했다.
“카라마조프 씨, 봄에 일류샤는 예비반에 들어갔습니다. 일류샤는 곧장 놀림거리가 됐지요. 작고 허약하지만 좀처럼 굴복하지 않는 오만한 아이라는 것을 알겠더군요, 눈이 타오르고 있었지요. 나는 그런 아이들이 좋아요. 그래서 즉시 일류샤를 감싸 주고 본때를 보여 줬죠. 이런 식으로, 애들은 일류샤를 때리지 않게 되었고, 나는 그를 내 보호하에 두게 됐습니다. 결국엔 노예처럼 나에게 헌신하게 됐고 나의 가장 하찮은 명령도 이행하고 나의 말을 하느님의 말인 양 따르고 나를 흉내 내기 시작했지요.
어쨌거나 본론으로 들어가죠. 지적하건대, 그 아이의 내면에서는 어떤 예민하고 감상적인 측면이 자라나고 있는데, 나는 송아지 같은 어리광이라면 뭐든 단연코 반대이며, 태어날 때부터 그래 왔습니다. 게다가 일련의 모순들도 눈에 뜨입니다. 즉, 오만한데도 나한테는 노예처럼 헌신했고, 또 노예처럼 헌신했다가 갑자기 눈을 번득이면서 심지어 내 의견에 반대하면서 논쟁을 시작하곤 미친 것처럼 대들거든요. 그래서 나는 그 애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기 위해 그 애가 다정스럽게 굴면 굴수록 더욱더 냉담하게 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애가 하루고 이틀이고 사흘이고 늘 혼란스러워하고 슬픔에 잠겨 있다는 걸 갑자기 알게 됐는데, 그 애는 어쩌다가 돌아가신 당신 아버지(그때는 아직 생존해 계셨지요.)의 하인 스메르쟈코프와 어울리게 됐고, 그 하인은 바보 같은 그 애에게 어리석은 장난질을, 다시 말해 짐승같이 저열한 장난질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몰랑몰랑한 빵 조각을 가져와 그 속에 핀을 집어넣고서, 빵 조각을 씹지도 않고 집어삼킬 만큼 배를 곯고 있는 마당 개 아무 놈한테나 던져 주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 하는 거였죠.
자, 그리하여 그들은 빵 조각 하나를 준비해서, 털북숭이 쥬치카에게 던져 주었는데, 녀석은 밥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서 하루 종일 허공에다 대고 컹컹 짖어 대던 마당 개였지요. 녀석은 냉큼 달려들어 빵 조각을 집어삼키더니, 이내 째질 듯 비명을 내지르며 빙빙 돌더니 달리기 시작했고, 달리면서도 계속 낑낑 비명을 지르다가 사라졌답니다. 그 장면이 그 애에게 충격을 주었던 겁니다. 내가 보기엔, 양심의 가책이었던 거죠.
나는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옛날 일도 있고 해서 나는 그 애를 톡톡히 훈련해야겠다는 마음에, 그만 머리를 좀 굴려서 이전의 저에겐 전혀 없었던 분노에 사로잡힌 척했지요. '너는 저열한 짓을 저질렀어, 너는 비열한 놈이야, 이 일을 곰곰 생각해 본 뒤 스무로프를 통해 너한테 알려 주겠어. 앞으로도 계속 너와의 관계를 유지할지, 아니면 너를 비열한 놈으로 간주하여 영원히 버릴지 말이다.'라고 말했지요. 이 때문에 그 애가 받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루가 지난 뒤 나는 스무로프를 보내서 더 이상 '말도 하지 않겠다.라고 전했지요. 사실 마음속으로는, 며칠 후에 뉘우치는 기색이 보이면 다시 그 애에게 손을 내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무로프한테서 내 말을 전해 들은 뒤 그 애는 '크라소트킨에게 내 말을 전해 줘. 이제부터 난 아무 개한테나 핀이 든 빵 조 각을 던져 줄 테다, 아무 개한테나!' 라고 소리쳤답니다. 그래서 나는 '그래, 그 녀석 제멋 대로 구는 데는 일등인걸, 완전히 따돌려 버려야겠어.'라고 생각하곤 만날 때마다 외면하거나 조롱하듯 웃어 주었지요.
그러던 중 갑자기 그 애의 아버지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기억나시죠, 수세미 사건 말입니다? 아이들은 내가 그 애를 버렸다는 걸 알고서 그 애한테 달려들어 '수세미, 수세미'라고 약을 올렸습니다. 때마침 나는 열 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서 그 애를 보고 있었죠. 맹세코, 나는 그때 비웃었던 기억은 없는데, 하지만 그 애가 갑자기 나의 시선을 보더니 펜나이프를 끄집어내더니 나한테로 달려들어 제 허벅지를 찔렀어요, 바로 여기 오른쪽 다리요.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애는 두 번 다시 찌르지는 못하고 오히려 그만 참질 못하고서 그 스스로 경악한 채 칼을 내팽개치고 목청껏 울음을 터뜨리면서 도망치기 시작하더군요.
그다음에, 바로 그날 그 애가 돌팔매질을 했고 당신의 손가락을 깨물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하지만, 이해하시겠죠, 그 애가 어떤 상태였는지요! 그래, 뭘 어쩌겠습니까, 내가 그만 바보짓을 했는걸요. 그 애가 병이 났을 때 그 애를 용서해 주러 찾아가지 않은 것이 지금은 후회가 돼요. 하지만 그런 데는 나 나름의 특수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자,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고……, 다만, 내가 바보짓을 했던 것 같아요……."
"아, 정말 유감이군요." 알료샤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내가 그 애와 당신의 관계를 좀 더 일찍 알지 못했다니 말이죠, 진작 알았더라면 오래전에 내가 직접 당신을 찾아가서 나와 함께 그 애를 찾아가자고 부탁했을 텐데. 믿든 안 믿든, 그 애는 병상에 누워 열에 들뜬 상태에서도 줄곧 당신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그 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미처 몰랐군요!
그런데 정말, 정말로 그 쥬치카는 못 찾아낸 겁니까? 그 애 아버지와 모든 아이들이 온 도시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 애는 몸도 성치 않은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내가 있는 데서 세 번이나 '내가 아픈 건, 아빠, 그때 내가 쥬치카를 죽였기 때문이야, 이건 하느님이 나한테 벌을 내리신 거야.'라며 아버지한테 반복하더군요. 지금이라도 이 쥬치카를 찾아내서 녀석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 그 애는 너무 기쁜 나머지 대번에 부활할 겁니다. 해서, 우리는 모두 당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거죠."
"잠깐만요, 카라마조프 씨, 어쩌면 우리는 그 녀석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이건 페레즈본입니다. 나는 이제 이 녀석을 방 안으로 들여보낼 건데, 어쩌면 이 녀석이 일류샤를 즐겁게 해 줄지도 몰라요. 아, 저런, 이렇게 추운 날씨에 프록코트 하나만 달랑 입고 계신 분을 이렇게 붙들고 있군요. 거보세요, 나는 정말로 이기주의자라니까요! 오, 우리는 모두 이기주의자예요, 카라마조프 씨!"
"고백하건대, 나는 정말로 당신한테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어요. 내가 온 것은 당신에게서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카라마조프 씨." 콜랴가 감명을 받은 듯 격정적인 목소리로 말을 끝맺었다.
"그럼, 나는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하죠." 알료샤가 그의 손을 쥐면서 미소를 지었다.
콜라는 알료샤에게 굉장히 만족했다. 그를 감동시킨 것은 알료샤가 자기를 극히 동등하게, 그러니까 자기를 '완전한 어른'으로 대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선 왼쪽에, 주인집 방에 들릅시다. 당신 친구들은 전부 거기에 외투를 맡겨 두었지요."
"오, 나는 아주 잠깐 들른 거니까, 그냥 외투를 입은 채로 들어가서 좀 앉아 있겠습니다. 페레즈본은 여기 현관에 남아서 죽을 겁니다. '헤이, 페레즈본, 자, 콱 죽어라!' 보십시오, 녀석은 죽었습니다. 나는 우선 들어가서 상황을 좀 살펴본 뒤 나중에 휘파람을 불겠습니다. '헤이, 페레즈본!' 하고요. 그러면 녀석이 미친 듯 냉큼 뛰어 들어올텐데, 그 순간에 스무로프가 문을 열어 주는 걸 잊지 말아야 될 텐데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예의 그 퇴역 2등 대위 스네기료프의 가족이 거처하고 있는 방은 이 순간 사람들이 잔뜩 몰려든 까닭에 갑갑하고 비좁았다. 몇 명의 소년들은 이때 일류샤 옆에 앉아 있었다. 비록 그들 모두 스무로프처럼 알료샤한테 이끌려 일류샤와 화해한 건 아니라고 우겼을 테지만, 그럼에도 사실이 그렇기도 했다.
일류샤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덕택에 상당히 고통을 덜 수 있었다. 옛날에는 적이었던 이 모든 아이들이 자기에게 거의 상냥하기까지 한 우정과 애정을 기울이는 걸 보고 아주 큰 감동을 받은 것이다. 오직 크라소트킨 하나만 오지 않았으니, 이것은 그의 가슴속에 무서운 굴레로 남아 있었다. 일류셰치카의 쓰라린 추억 중에 가장 쓰라린 뭔가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크라소트킨 사건, 즉 한때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수호자였던 그에게 칼을 들고 달려든 일이었다.
하지만 크라소트킨은 스무로프한테서 알료샤가 ‘한 가지 일이 있어서’ 자기를 찾아오고 싶어 한다는 암시 같은 말을 듣자, 그 즉시 상대의 말을 끊고 일언지하에 방문을 거절했으며, 언제 갈지는 그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말을 즉시 ‘카라마조프’에게 전하라고 스무로프에게 시켰다. 이것은 이번 주 일요일로부터 두 주쯤 전의 일이었다.
이후 바로 마지막 날까지도 콜랴가 이날 아침 일류샤를 찾아갈 결단을 내릴 줄은 스무로프도 몰랐으며, 오직 그 전날 저녁에야 콜랴가 스무로프와 작별 인사를 나누다가 갑자기 냉혹하게 내일 아침 그와 함께 스네기료프 집에 갈 테니까 집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지만 느닷없이 가고 싶으니까 자기가 간다는 걸 아무한테도 알리지 말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 주가 지나도록 일류샤는 방 한구석 성상 옆에 놓인 자기 침대를 떠난 적이 거의 없었다. 알료샤를 만나 그의 손가락을 깨문 사건 이후, 학교도 가지 않았다. 바로 그날로 앓아누웠지만, 그래도 한 달 전만 해도 어떻게든 간간이 침대에서 일어나 간간이 방이나 현관을 거닐 수는 있었다. 하지만 결국엔 기력이 완전히 쇠해져서 아버지의 도움이 없으면 움직일 수도 없게 됐다.
2등 대위의 경우, 아이들이 일류샤를 즐겁게 해 주려고 자기 집에 나타나자, 아주 처음부터 그의 영혼은 황홀한 기쁨으로 가득 찼고 이제 일류샤는 더 이상 허전해하지도 않을 테고 아마 이 때문에라도 곧 건강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 그는 일류샤의 상태에 대한 온갖 두려움이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순간까지 단 일 분도 자기 아이가 갑자기 건강해질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야 될 점은 이 기간 내내 그의 돈이 바닥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의 200루블을, 정확히 알료샤의 예언대로, 그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로부터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그들의 형편과 일류샤의 병세를 좀 더 자세히 알아낸 뒤 몸소 그들 집을 방문하여 가족 전체와 인사를 나누었으며 심지어 2등 대위의 반쯤 정신이 나간 부인까지도 매혹시킬 수 있었다. 그때 이후 그녀는 온정의 손길을 끊지 않았으며, 2등 대위는 자기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운 나머지 예전의 명예 따위는 다 잊고 순순히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크라소트킨이다!” 방으로 들어선 콜랴를 제일 먼저 발견한 한 소년이 갑자기 외쳤다. 눈에 뜨일 정도로 흥분의 기운이 감돌았고, 소년들은 침대 양쪽을 따라 갈라섰고, 이로써 갑자기 일류셰치카에게로 향하는 길을 터 주었다. 2등 대위는 맹렬하게 콜랴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구려, 어서…… 귀한 손님이 왔구먼!” 그는 콜랴에게 혀짤배기소리로 말했다. “일류셰치카, 크라소트킨 군이 너를 찾아왔구나…….”
콜랴는 이미 일류샤의 침대 곁에 서 있었다. 환자는 눈에 확 뜨일 정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주의 깊고도 주의 깊은 시선으로 콜랴를 바라보았다. 콜랴는 벌써 두 달 전에 보았던 자신의 자그마한 옛 친구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갑자기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그 앞에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콜랴는 그에게로 성큼 다가가 손을 내민 뒤, 거의 완전히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말했다.
“그래, 이봐, 영감…… 어떻게 지냈어?”
하지만 그는 목소리가 탁탁 끊겨서 허물없이 구는 것도 힘들어졌고, 얼굴은 어쩐지 갑자기 일그러지고 입술 주위는 왠지 파르르 떨려왔다. 콜랴는 갑자기 한 손을 들어 올리더니, 뭘 하려는지 하여간 손바닥으로 일류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 ─ 찮 ─ 아!” 그는 일류샤에게 혀짤배기소리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는데, 이건 딱히 격려의 말도 아니고, 무엇 때문에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
콜랴는 완강히 고집을 부리며 서둘러 대더니, 갑자기 스무로프한테 “스무로프, 문을 열어!”라고 외쳤다. 스무로프가 문을 열자마자, 콜랴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페레즈본은 맹렬하게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뛰어 봐, 페레즈본, 어디 주인을 섬겨 봐! 얼른!” 콜랴가 이렇게 외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개는 일류샤의 침대 앞에서 뒷발로 곧추섰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어떤 일이 일어났다. 일류샤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온몸을 힘껏 앞으로 쑥 내밀어 페레즈본 쪽으로 몸을 구부리곤 숨을 죽여 가며 개를 바라보았다.
“이건…… 쥬치카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한 나머지 목이 멘 목소리로 갑자기 소리쳤다.
“아니 그럼, 너는 어떤 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크라소트킨이 낭랑하고 행복한 목소리로 큰 소리로 외쳤고, 몸을 구부려 개를 껴안은 채 일류샤에게 들어 보였다.
“잘 봐, 영감, 보이냐고, 애꾸눈에 왼쪽 귀가 잘려 나갔잖아. 네가 나한테 이야기해 준 쥬치카의 특징 그대로야. 내 요 녀석을 바로 이 특징들을 보고 찾아낸 거야! 그때 찾아냈어, 곧바로. 녀석은 주인도 없는 개였잖아, 정말 주인도 없었거든! 녀석은 표도토프네 집 뒷마당에 있었어. 거기에 붙어살았지만 아무도 녀석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던 거야. 녀석은 그러니까 그때 너의 빵 조각을 삼키지 않았던 거야. 다시 말해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면, 그건 뱉어 내는데 성공했다는 거야. 그런데 뱉어 내긴 했지만, 혓바닥을 찔렸기 때문에, 바로 그 때문에 그때 울부짖었던 거야. 개는 입안의 살갗이 아주 부드러우니까 요 녀석, 당연히 심하게 비명을 질렀을 테지……."
콜랴가 광포하게 소리쳤는데, 그의 얼굴은 환희에 차서 발갛게 달아올라 빛이 나고 있었다.
일류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어쩐지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입을 쩍 벌린 채 콜랴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쥬치카! 그러니까 이 녀석이 쥬치카란 말이지?” 그는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일류셰치카, 이 녀석이 쥬치카였구나, 너의 쥬치카! 엄마, 이것이 쥬치카래요!” 그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크라소트킨 장하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해, 정말로 장하다!” 모든 소년들이 이렇게 소리치면서 박수갈채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만들 해, 그만 좀.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해 줄 테니까!” 크라소트킨이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녀석을 찾아내서 집으로 끌고 와 곧장 숨겨 두었고, 집은 자물쇠로 걸어 잠갔고, 그러곤 그야말로 마지막 날까지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어. 오직 스무로프 하나만 이 주일 전에 알게 되었지만, 내가 이놈은 페레즈본이라고 주장했더니 스무로프도 눈치채지 못하더란 말이야. 그사이에 나는 쥬치카에게 온갖 묘기를 다 가르쳤어. 녀석을 제대로 훈련된 매끈한 모습으로 너한테 데려오기 위해서, 영감, 이렇게 가르쳤던 거야. 영감, 너의 쥬치카가 지금 어떤 모습인지 어디 한번 보란 말이야!"
콜랴는 귀중한 시간을 마냥 버리기가 아까워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페레즈본에게 “죽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녀석은 갑자기 빙빙 맴을 돌다가 바닥으로 발랑 나자빠져 네 발을 모두 위로 치켜든 채 꿈쩍도 않고 죽은 시늉을 했다. 소년들은 웃었고 일류샤도 아까처럼 고통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바라보고 있었지만, 페레즈본이 죽은 것을 제일 좋아한 사람은 ‘엄마’였다.
“페레즈본! 페레즈본!” 일류샤가 갑자기 예의 그 여윈 손가락을 튕기면서 개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니, 왜! 녀석이 알아서 네 침대 위로 뛰어갈 거야. 헤이, 페레즈본!” 콜랴는 손바닥으로 침대를 탁 쳤고, 페레즈본은 화살처럼 일류샤 쪽으로 날아갔다. 일류샤는 두 팔로 맹렬하게 녀석의 머리를 껴안았고, 페레즈본은 그 대가로 얼른 그의 뺨을 핥았다.
콜랴는 다시 일류샤의 침대에 앉았다. “일류샤, 너에게 한 가지 묘기를 더 보여 줄 수 있어. 널 위해 작은 대포를 하나 가져왔거든. 기억하지, 내가 그때 너한테 이 대포 얘기를 했을 때, 네가 ‘아, 그거 한번 봤으면!’이라고 말했잖아. 그래서 지금 가져왔어.” 그러면서 콜랴는 서둘러 자신의 가방에서 청동 대포를 꺼냈다. 그가 서둘렀던 것은 그 자신이 매우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일류샤는 몸을 일으켜 오른손으로 페레즈본을 껴안은 채 희열을 느끼면서 장난감을 뜯어보았다. 콜랴가 화약도 있으니까 ‘부인들에게 폐가 되지만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곧 쏘아 볼 수 있다고 선언하자, 그 효과는 극에 달했다. ‘엄마’는 좀 더 가까이에서 장난감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고, 즉시 그렇게 하도록 해 주었다. 콜랴는 화약과 산탄을 보여 주었다. 군인 출신인 2등 대위는 화약을 아주 극소량만 뿌려 넣고 장전을 했으며, 산탄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 두자고 부탁했다.
콜랴는 대포를 포구가 사람이 없는 쪽으로 향하게 하여 마룻바닥에 세우고 세 개의 도화선을 화문에 꽂고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발사는 아주 휘황찬란했다. 엄마는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곧 기뻐 날뛰면서 웃어 댔다. 소년들은 아무 말 없이 의기양양하게 바라보고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행복에 겨워한 사람은 일류샤를 바라보고 있던 2등 대위였다. 콜랴는 대포를 들어 올려 산탄과 화약과 함께 즉시 일류샤에게 선물했다.
“이건 너를 위한 거야, 너를! 오래전부터 준비했어.” 그가 완전히 행복에 젖어 한 번 더 반복했다.
“아, 우리는 콜랴 군의 그 모험담 얘기도 들었습니다!” 2등 대위가 소리쳤다. “아니, 어떻게 거기에 엎드려 있었나요? 거참, 기차 밑에 엎드려 있는 동안에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다니. 무섭지 않던가요?”
2등 대위는 콜랴의 비위를 맞추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 ─ 뇨, 뭐, 특별히!” 콜랴가 무심한 척 대꾸했다. “이곳에서 내 평판이 제일 심하게 훼손된 건 저 빌어먹을 거위 새끼 때문이야.” 그가 다시 일류샤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 난 거위 얘기도 들었어!" 일류샤가 그야말로 환해지면서 웃기 시작했다. "애들이 얘기해 주긴 했는데, 그래도 이해가 안 됐어. 너, 정말로 재판관들한테서 재판을 받은 거야?"
"가장 싱겁고 가장 시시껄렁한 일이었는데, 그걸 가지고 아니나 다를까 우리 도시 사람들이 코끼리 한 마리를 만들었다니까." 콜랴가 거리낌 없이 마구 말을 늘어놓았다.
거위 사건
그러니까 내가 한번은 광장을 지나갈 일이 있었는데, 때마침 사람들이 거위 떼를 몰고 있더라고.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것들을 바라보았지. 갑자기 비쉬냐코프라는 이곳 젊은 녀석 하나가, 지금은 플로트니코프 가게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데, 나를 보면서 '아니 뭣 하러 거위 떼를 바라보는 거야?'라고 말하더군. 나는 그를 바라보았지. 멍청하게 생긴 둥근 낯짝에 스무 살쯤 된 젊은 녀석이었는데, 알다시피, 나는 절대로 민중을 거부하지 않아. 오히려 민중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우리는 민중으로부터 너무 동떨어져 있어"
"참, 거위 얘기를 하던 중이었지. 그래서 난 그 바보 녀석을 보고 대답해 줬지. '그러니까 난 거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생각 중이야. 저기 보이나, 귀리를 실은 짐마차가 서 있잖아. 자루 밑으로 귀리가 새 나오고 거위는 바퀴 바로 밑에까지 목을 쭉 빼 넣고서 낟알을 쪼아 먹고 있는 거, 보이냔 말이야?'라고 말했어.
'자, 그럼, 저 달구지를 앞으로 아주 살짝 밀면 거위의 목이 바퀴 때문에 잘릴까, 안 잘릴까?'라고 했지. '틀림없이 잘릴 테지.'라더군. 자, 그럼, 젊은 친구, 가서 어디 한번 시험해 보자.'라고 했지. 젊은 친구도 '해 보자.'라더군. 술수는 준비하는 데 별로 많은 시간이 들지도 않았어. 그는 그렇게 눈에 뜨이지 않게 고삐 근처에 섰고, 나는 거위를 바퀴 밑으로 내몰기 위해 비스듬히 붙어 섰지.
거위 녀석이 제가 알아서 곧장 귀리를 향해 달구지 밑으로, 바퀴 바로 밑으로 목을 내밀었거든. 내가 그 젊은 친구에게 눈을 찡긋하자, 그는 고비를 잡아당겼고 - 꽤 - 꽥, 그렇게 거위의 목이 두 동강 나 버린 거야! 그러자 물론, 바로 그 순간 모든 농군들이 우리를 발견하곤 뭐 대번에 떠들어 대기 시작했어. '네놈, 일부러 한 짓이렸다!' '아니에요, 일부러 한 게 아니에요.' '재판관 나리한테 가자!?' 라더군.
우리는 다 같이 재판관한테로 끌려갔고, 거위도 가져갔어. 보니까 나의 그 젊은 친구는 겁을 집어먹고 울부짖었는데, 정말로 여자처럼 울부짖더라고. 거위 장수는 '이런 식으로 하면 작살날 거위가 어디 한둘이겠어!'라고 외치더군. 재판관은 사건을 금방 마무리 지었어. 거위 장수에게 거위 값으로 1루블을 지불하고 죽은 거위는 그 젊은 친구가 가져가라는 거였지.
그러곤 '나는, 콜랴 군.' 하면서 나한테 말하더군. '지금 당장 학교 선생님들에게 연락해서 앞으로는 자네가 이런 구상 따위는 생각도 않고 책만 붙잡고 학과 공부에 열중하도록 일러두겠다.'라고. 그래 놓고서도 내 일로 학교 선생님들한테 연락을 하진 않았어, 그냥 농담을 했던 거지. 하지만 소문이 퍼져서 이 일은 정말로 학교 선생님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말았어. 그래도 다르다넬로프 선생님이 이번에도 막아 줬어……."
트로이 질문 사건
"하지만 너는 누가 트로이를 세웠는가 하는 문제로 선생님을 쩔쩔매게 했잖아!" 갑자기 스무로프가 끼어들었는데, 이 순간 그는 크라소트킨이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랐던 것이다. 거위 얘기도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정말로 그렇게 쩔쩔매게 만들었나요?" 2등 대위가 콜랴의 비위를 맞춰 가며 거들었다. "트로이 건국자가 누구냐는 얘기죠? 선생님을 쩔쩔매게 했다는 얘기는 벌써 들었어요. 일류셰치카가 그때 얘기해 줬거든……."
"얘는 겉으론 그냥 그렇고 그런 애인 척 굴지만, 사실 우리 반에서 제일 똑똑한 학생이야……."
일류샤는 무한한 행복감을 갖고 콜라를 바라보았다.
"뭐, 그 트로이 얘기는 별거 아니야, 나도 이 질문이 쓸데없는 거라고 생각해." 겸손한 척하면서도 오만하게 콜랴가 대꾸했다. 그는 알료샤가 아무 말 없이 진지하게 있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여서 이미 안절부절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저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있는 건 내가 자기한테서 칭찬을 듣고 싶어서라고 생각해서 나를 경멸하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나는…….'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누가 트로이를 세웠는지 난 알아." 갑자기 지금까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한 소년이 전혀 뜻밖에도 입을 열었다. 원래 말이 없고 수줍음을 잘 타는 편인 카르타쇼프라는 성을 가진 애였다. 한번은 이 소년이, 콜랴가 몸을 돌린 틈을 타서 그의 책들 사이에 끼여 있는 스마라그도프를 몰래 얼른 펼쳐 봤는데, 하필이면 곧장 트로이 건국자들 얘기가 나오는 대목이었던 것이다.
"그래, 누가 세웠지?" 콜랴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듯 오만방자하게 그를 향해 몸을 돌렸는데, 이미 상대방의 얼굴만 보고도 저놈이 정말로 알고 있다는 걸 알아채곤 즉시 모든 결과에 대한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트로이를 세운 자들은 테우크로스, 다르다노스, 일로스, 트로스야." 소년은 달달 외우 듯 단숨에 말해 버리곤 금방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콜랴는 계속 경멸스럽다는 투로 이 대범한 소년을 차갑게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어떤 식으로 트로이를 세웠다는 거지?" 마침내 그가 선심이라도 쓰듯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도시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대체로 무엇을 의미하는 거냔 말이야? 그들이 뭘 어쨌다는 건데, 거기로 와서 벽돌을 차곡차곡 쌓았다, 이건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죄를 지은 소년의 장밋빛 얼굴은 완전히 진홍빛이 됐고, 그는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였다. 콜랴는 그 상태로 그를 일 분 정도 내버려 두었다.
"민족의 건설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이해해야 돼." 그가 엄격한 훈계조로 조목조목 늘어놓았다. "나는, 그나저나, 여자들이 지껄여 대는 이런 옛날이야기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야, 아니 대체로 세계사라는 것 자체를 별로 존중하지 않는 편이지. 내가 존중하는 건 오직 수학과 자연과학뿐입니다." 콜라는 이렇게 거들먹거린 뒤 알료샤를 힐곰 바라보았다. 그가 여기서 두려워하는 건 오직 알료샤의 의견뿐이었는데 알료샤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마냥 진지하기만 했다.
"또 하나, 지금 우리가 배우고 있는 이 고전어들도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미친 짓거리일 뿐이죠……. 이번에도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카라마조프 씨?"
"예, 동의하지 못하겠군요." 알료샤가 신중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전어라는 것은 말이죠, 이것에 대한 내 견해를 전부 알고 싶으시다면 - 이건 치안 수단이고, 오로지 이 때문에 정규 교과목에 포함된 겁니다." 갑자기 콜랴는 또다시 시나브로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얘는 라틴어도 제일 잘해요!" 무리 중 한 소년이 갑자기 소리쳤다.
"맞아, 아빠, 얘는 말은 이렇게 해도 우리 반에서 라틴어를 제일 잘하는 학생이야." 일류샤도 한마디 했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건데?" 콜랴는 칭찬을 들어 기분이 몹시 좋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방어를 할 필요성은 느꼈다. "내가 라틴어를 달달 외우는 건 그게 필요하기 때문이고, 어머니에게 학과 공부를 제대로 마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내심 이런 유의 고전 신봉과 이 같은 비열한 짓들을 전부 다 정말로 경멸하고 있어……. 안 그렇습니까, 카라마조프 씨?"
"그런데 왜 '비열한 짓'이라는 거죠?" 알료샤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왜라니요, 고전들은 전부 모든 언어로 번역이 되어 있으니까, 라틴어가 필요한 이유는 고전 연구가 아니라 오로지 치안 수단을 위해서, 능력을 둔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비열한 짓이 아닐 수 있습니까?"
"그래, 누가 당신에게 그런 걸 가르쳤습니까?" 깜짝 놀란 알료샤가 마침내 이렇게 외쳤 다.
"첫째, 나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혼자서 이해할 수 있고, 둘째, 이게 제일 중요한데, 내가 방금 고전들이 전부 번역되었다고 한 말은 콜바스니코프 선생님이 직접 3학년 학생 모두에게 큰 소리로 말했던……."
"의사가 왔어요!" 계속 말없이 있던 니노치카가 갑자기 소리쳤다.
정말로 집의 대문 앞엔 호흘라코바 부인 소유의 마차가 도착한 상태였다. 아침 내내 의사를 기다렸던 2등 대위는 그를 맞으러 쏜살같이 달려갔다. 알료샤는 일류샤한테로 다가가 베개를 손봐 주기 시작했다. 니노치카는 자신의 안락의자에 앉은 채로 그가 침대를 손보는 모습을 불안하게 예의 주시했다. 소년들은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이들 중 몇몇은 저녁에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콜라는 페레즈본을 불렀고, 녀석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안 갈 거야, 안 갈 거라고!" 콜랴 크라소트킨이 황급하게 말했다.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의사가 떠나면 다시 올게, 페레즈본과 함께 말이야." 하지만 의사는 이미 방 안으로 들어선 상태였다. 곰털 외투를 입고 짙은 구레나룻을 길게 기르고 턱에 광이 날 정도로 깔끔하게 면도를 한, 근엄한 모습이었다. 문지방을 넘어 선 뒤 그는 어리둥절한 듯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분명히 잘못 왔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게 뭐요? 여기가 대체 어디요?" 외투도 벗지 않고 또 물개 차양이 달린, 역시나 물개 가죽으로 된 모자도 벗지 않은 채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한 무더기의 사람들, 방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가난의 냄새, 한쪽 구석의 빨랫줄에 주렁주렁 걸려 있는 옷가지들을 보며 한 방 맞은 기분이었던 것이다. 2등 대위는 그 앞에서 꼽추처럼 몸을 잔뜩 굽혔다.
"여기가 맞습니다요." 그는 굽실거리며 중얼거렸다. "여기, 우리 집이 맞습니다, 제대로 오셨습니다……."
"스네-기-료프?" 의사가 큰 소리로 근엄하게 말했다. "스네기료프 씨가 당신이오?"
"예, 접니다요!"
의사는 다시 한번 꺼림칙하다는 듯 방을 훑어본 뒤 모피 코트를 벗었다. 목에 걸려 있는 위엄 있는 훈장 때문에 다들 눈이 부셨다. 2등 대위는 의사가 벗어 던지는 모피 코트를 얼른 받아 들었고, 의사는 모자를 벗었다.
"환자는 어디 있소?" 그가 큰 소리로 재촉하듯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죠, 의사가 무슨 말을 할까요?” 콜랴가 빠른 말투로 물었다.
“일류샤는 죽을 겁니다.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알료샤가 슬프게 말했다.
“악랄한 놈들! 의학이란 악랄한 놈이에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알게 돼서 기뻐요, 오래전부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거든요. 그저 우리가 이렇게 슬픈 때에 만난 것이 유감이지만……. 나는 오래전부터 당신을 보기 드문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존경해 왔습니다.” 허둥지둥,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콜랴가 다시 중얼거렸다.
“당신이 신비주의자이고 수도원에 있었다는 말은 들었어요. 당신이 신비주의자라는 거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달라진 건 아니니까요. 현실과 접촉하다 보면 당신은 치유될 겁니다……. 당신과 같은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꼭 그렇게 될 겁니다.”
“뭘 두고 신비주의자라고 부르는 거죠? 또 뭘 치유한다는 말입니까?” 알료샤가 다소간 놀라워했다.
“뭐 저어기 신이나 그런 거요.”
“아니 그럼, 당신은 신을 믿지 않습니까?”
“아니요, 오히려 나는 신에 관한 한 아무것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신은 그저 가정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나는 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하는데, 질서를 위해서…… 세계의 질서 같은 것을 위해서요……. 만약 신이 없다면, 그것을 고안해 내야 하겠죠.” 콜랴는 얼굴이 붉히며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 앞에서 내 지식 따위를 과시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단 말이야.’라고 콜랴는 생각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따위 논쟁은 딱 질색입니다.” 그가 딱 잘라 말했다.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인류를 사랑할 수는 있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볼테르는 신을 믿지 않았지만 인류를 사랑했잖아요?”
“그런데 볼테르는 읽었습니까?” 알료샤가 말을 끝맺었다.
“아니요, 읽은 건 아니고……. 그래도 『캉디드』는 읽었어요, 그런데 그 번역이 낡고 우스꽝스러워서…….”
“그래, 이해가 되던가요?”
“오 물론이죠, 전부 다…… 다시 말해서…… 왜 내가 이해를 못 했으리라고 생각하시죠? 거기에는 물론 지저분한 소리들이 많긴 해요……. 나는 물론, 이것이 철학 소설이며 이념을 설파하기 위해서 쓰였다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콜랴는 이미 완전히 갈팡질팡했다.
“나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카라마조프 씨, 구제 불능의 사회주의자죠.” 갑자기 그가 뜬금없이 불쑥 내뱉었다.
“사회주의자라고요?” 알료샤가 웃었다. “언제 그럴 시간이 있었습니까? 겨우 열세 살인가 그렇지 않나요?”
콜랴는 완전히 주눅이 들었다.
"도무지 모르겠는데요, 여기서 내 나이가 무슨 상관이죠? 문제는 나의 신념이 어떤가에 있는 것 아닌가요?”
"당신이 나이가 좀 더 들면, 신념에 있어 나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직접 알게 될 것입니다. 내 생각에도, 당신이 자기 것이 아닌 말을 하는 것같이 여겨졌거든요.” 알료샤는 겸손하고도 평온하게 대답했지만, 콜랴는 열렬하게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무슨 말씀을요, 당신은 복종과 신비주의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의하실 테죠, 예를 들면 기독교라는 신앙은 그저 하위 계급을 노예로 만들어 지배하려는, 권세 있는 부자들에게 봉사해 왔습니다, 안 그런가요?”
“아, 당신이 그걸 어디서 읽었는지 알겠군요, 틀림없이 누군가가 가르쳐 준 겁니다!” 알료샤가 소리쳤다.
“무슨 말씀을요, 도대체 뭘 읽었다는 거죠? 정확히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은 없어요. 나 혼자서도 충분히……. 정 그러신다면 말이죠, 나는 그리스도에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그야말로 극히 인도적인 인물이니까요. 만약 그가 우리 시대에 살았더라면 곧장 혁명가 대열에 합류했을 테고 아마 뛰어난 활약을 펼쳤을 겁니다…….”
“그래 대체 어디서 그따위 소리를 주워들은 겁니까! 대체 어떤 바보와 어울린 거죠?” 알료샤가 소리쳤다.
“무슨 말씀을요, 원래 진실은 숨길 수 없는 법이죠. 물론, 나는 우연한 기회에 라키친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종종 있긴 하지만, 하지만……. 벨린스키 노인도 이런 말을 했다더군요.”
“벨린스키라고요? 글쎄, 기억이 안 나는군요. 그런 얘기는 아무 데도 안 썼는데.”
“쓰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을 했나 보죠. 그러니까 나는 어떤 사람한테 들었는데…… 하지만 젠장…….”
“벨린스키라면 읽어 봤습니까?”
“그게 말이죠…… 아니…… 제대로 읽진 못했지만…… 타치야나 부분은 읽었는데, 그녀가 왜 오네긴과 함께 가지 않았던가, 하는 부분요.”
“왜 오네긴과 함께 가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걸…… 이해합니까?”
“정말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 눈엔 내가 무슨 스무로프 같은 놈으로 보이나 보군요.” 콜랴가 짜증스럽게 이를 갈았다. “하지만 내가 뭐 그렇고 그런 혁명가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라키친 씨와도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아주 자주 있으니까요. 타치야나에 관해서라면, 나는 여성 해방은 결코 찬성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성이 종속된 존재이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나폴레옹이 말한 대로 여자들은 뜨개질이나 하라(Les femmes tricottent)는 거죠.” 콜랴가 무엇 때문인지 히죽 웃었다.
"적어도 이 점에서는 나는 이 의사(擬似) 위인과 전적으로 같은 신념입니다. 나는 또한, 예를 들자면 조국을 떠나 아메리카로 도망가는 것은 저열한 짓, 아니 저열한 짓보다 더 못한 바보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인류를 위하여 많은 이로운 일을 할 수 있는데 뭣 하러 아메리카까지 갑니까? 특히나 지금 같은 때 말이죠. 유익한 활동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걸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대답을 했다니? 누구한테요? 아니, 누가 당신에게 벌써 아메리카에 가자고 했나요?”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 그러자고 부추겼지만 내가 거절했습니다. 이건 물론 우리끼리 얘기지만, 카라마조프 씨, 듣고 계시죠, 누구한테도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직 당신한테만 하는 얘기입니다. 왜 웃는 건가요? 설마 내가 온통 거짓부렁을 늘어놓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죠?”
“오, 천만에요, 나는 웃고 있지도 않고, 당신이 거짓부렁을 늘어놓았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손톱만큼도 하지 않는 건,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이 그야말로 진실이기 때문이죠! 자, 그러면 푸시킨의 『오네긴』을 읽었고……. 바로 그래서 지금 타치야나 얘기를 한 거죠?”
“아니요, 읽지는 않았지만, 읽고 싶단 말인데요. 나는 편견이 없는 사람입니다, 카라마조프 씨. 나는 이쪽저쪽의 말을 모두 경청하고 싶어요.
“그런데요, 카라마조프 씨, 당신은 나를 정말로 경멸하시죠?” 콜랴는 갑자기 딱 잘라 이렇게 말한 뒤, 마치 전투태세를 갖춘 듯 알료샤 앞에서 온몸을 쫙 폈다. “부탁이니까 빙빙 돌리지 말고 말씀해 주세요.”
“당신을 경멸한다고요?” 알료샤가 놀라워하면서 그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당신처럼 매혹적인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 삶을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그런 조잡한 헛소리 때문에 비뚤어지게 된 것이 슬플 따름입니다.”
“내가 의심이 좀 많고 예민한 건 맞습니다. 어리석을 정도로 예민하고 또 조잡할 정도로 예민하죠. 당신이 지금 피식 웃는 걸 보면, 나는 당신이 꼭…….”
“아, 내가 웃은 건 완전히 다른 일 때문입니다. 어째서 웃었느냐 하면요, 이래요. 최근에 러시아에 살았던 어느 독일인이 지금 우리 나라의 젊은 학생들에 대해 쓴 비평문 하나를 읽었거든요. ‘러시아 학생에게 그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던 천체도(天體圖)를 보여 주면, 내일 당장 그는 이 천체도의 틀린 데를 고쳐서 당신한테 돌려줄 것이다.’라고 썼더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무턱대고 건방을 떤다는 겁니다 ─ 독일인이 러시아 학생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런 것이었을 테죠.”
“아, 정말 맞는 얘기군요!” 콜랴가 갑자기 홍소를 터뜨렸다. “맞아도 이렇게 딱 맞을 수가 있다니! 브라보, 독일 놈! 하지만 이 독일 놈은 좋은 면은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건방을 떤다니, 그 대신 거의 아주 어릴 때부터 저 독립적인 기상을 키워 왔고, 또 권위 앞에서라면 비굴하게 알랑거리는 저 소시지 놈들의 정신과는 전혀 다른, 대담한 사상과 신념을……."
"들어 보세요, 우리는 어쨌거나 여기서 하찮은 수다를 떨고 있지만, 저쪽에 저 의사는 웬일인지 꽤 오래 틀어박혀 있네요. 그런데요, 이 니노치카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내가 나갈 때 그녀는 갑자기 ‘왜 좀 더 일찍 오지 않으셨어요?’라고 속삭이더군요. 그것도 나무라는 듯한 목소리로! 내 생각에, 정말 몹시 착하고 불쌍한 여자 같아요.”
“그래요, 그렇고말고요! 이 집을 드나들다 보면, 그녀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알게 될 겁니다. 바로 이런 존재들을 알게 되고 또 바로 이런 존재들과 사귀면서 많은 다른 것들의 가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당신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알료샤가 열을 올리면서 지적했다. “당신을 보다 더 훌륭하게 개선하는 데 이보다 좋은 길은 없을 테죠.”
“오, 좀 더 일찍 오지 않았다니, 안타깝고 자책감마저 드는군요!” 콜랴가 쓰라린 감정을 느끼면서 외쳤다. "내가 오지 않은 건 자존심, 이기적인 자존심과 저열한 옹고집 때문이었고, 평생 골머리를 앓더라도 이걸 떨쳐 버릴 순 없을 겁니다. 이제는 이걸 알겠군요, 나는 많은 점에서 비열한 놈입니다, 카라마조프 씨!”
“아니요, 당신은 매력적인 천성을 지녔어요, 좀 비뚤어져서 그렇지만. 이 고결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이 아이에게 어떻게 그토록 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는지 나도 정말 잘 알겠군요!” 알료샤가 열렬하게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씀을 해 주시다니!” 콜랴가 소리쳤다. “나는 이미 몇 번씩이나, 바로 지금 여기서도 당신이 나를 경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견해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기만 한다면!”
"이제는 당신이 나를 경멸하지 않는다는 걸, 모든 것이 나 혼자만의 상상이었다는 걸 확신하게 됐어요. 오, 카라마조프 씨, 나는 심히 불행합니다. 이따금씩 아무 영문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온 세상이 나를 비웃고 있다는 상상이 되곤 해서 그럴 때마다 무작정 사물들의 질서 자체를 무너뜨릴 준비가 되어 있다니까요.”
“그래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거죠.” 알료샤가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그렇게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죠, 특히 엄마요. 그런데요, 내가 지금 아주 우습게 보이나요?”
“그런 건 생각하지 말아요, 그런 건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고요!” 알료샤가 소리쳤다.
“게다가 뭐가 우습다는 거죠? 사람이 우습거나 또 그렇게 보일 수 있는 일이 어디 좀 많습니까? 더욱이 요즘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 다 자기가 우습게 보일까 봐 끔찍하게 두려워들 하는데, 바로 이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내가 놀라는 건 그저 당신이 이토록 일찍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이 자존심이라는 탈을 쓰고 나타나서 전 세대 속으로 기어 들어간 꼴이죠, 정말 악마의 짓이라니까요.”
알료샤는 이렇게 덧붙였지만, 그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던 콜랴의 생각으론 조금도 웃지 않았다.
“당신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다시 말해서 아주 많은 사람들과 비슷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그들처럼 될 필요는 없다, 이겁니다.”라며 알료샤가 말을 끝맺었다.
“훌륭합니다! 역시 내가 당신을 제대로 본 거로군요. 사람을 위로하는 능력을 갖고 계시니까요. 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갈망했던지, 카라마조프 씨, 얼마나 오래전부터 당신과 만나고 싶었는지! 정말 당신도 내 생각을 하셨나요? 조금 전에 당신도 내 생각을 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요, 나는 당신 얘기를 듣고서 당신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부분적으로나마 지금 자존심 때문에 이런 걸 물어보게 됐다더라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들어 보세요, 콜랴, 그나저나, 당신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주 불행한 사람이 될 겁니다.” 알료샤가 갑자기 무엇 때문인지 이런 말을 했다.
“알고 있어요, 알고 있습니다. 한데, 어쩜 이 모든 걸 미리 다 알고 계시다니!” 콜랴가 그 즉시 말을 받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전체적으론 삶을 축복하세요.”
“바로 그겁니다! 만세! 당신은 예언자입니다! 오, 우린 서로 좋은 친구가 될 겁니다, 카라마조프 씨. 그런데요, 나를 제일 기쁘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나를 완전히 동등한 존재로 대해 준다는 겁니다. 나는 최근 한 달 내내 스스로에게 ‘나와 이 사람은 단번에 마음이 맞아 영원토록 친구가 되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서로 원수가 되어 관 속에 들어갈 때까지 갈라져 있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 왔어요.”
“그런 말을 하면서 물론 나를 좋아했겠군요!” 알료샤가 즐겁게 웃었다.
“그럼요, 너무나 좋아했고, 너무 좋아하는 바람에 당신에 대한 몽상에 잠기곤 했죠! 이런 걸 전부 어떻게 미리 알고 계신 거죠? 와, 저기 의사예요. 맙소사, 무슨 말을 하긴 할 텐데, 보세요, 저 사람 얼굴이 어떤지!”
의사는 오두막에서 나올 때 다시금 이미 모피 코트로 몸을 휘감고 머리에는 모자를 쓴 상태였다. 그 얼굴은 거의 성이 나 있고 뭘 잘못 건드려 옷이라도 더럽힐까 봐 두려운지 여전히 꺼림칙하다는 표정이었다. 2등 대위는 의사의 뒤를 쫓아 맹렬하게 달려왔고, 그 앞에서 몸을 굽힌 뒤 거의 아첨을 하듯 굽실대면서 최후의 말을 들으려고 그를 붙잡아 세웠다.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 나리…… 그럼 정말로……?”
“어쩌란 말이오! 내가 무슨 신도 아니고.” 의사는 훈계조로 타이르듯 대답하긴 했지만 참으로 무성의했다.
“이제 나로선 어 ─ 쩔 ─ 수 없소.” 의사가 성마르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예를 들어…… 당신의 환자를…… 지금이라도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시 ─ 라 ─ 쿠 ─ 사로…… 보 ─ 낼 ─ 수 있다면, 그때는…… 새롭고 좋 ─ 은 기 ─ 후 조건 덕분에…… 어쩌면 좋은 경과를…….”
“시칠리아섬이라고요! 나리, 의사 선생님 나리.” 2등 대위는 완전히 앞뒤를 잃었다. “하지만 선생님도 보셨잖습니까요!” 그는 두 팔을 벌리면서 자기 집 형편을 암시했다.
“아, 그건 내 알 바 아니오.” 의사가 피식 웃었다. “나는 그저 최후의 조치에 대한 당신의 질문에 과 ─ 학이 말해 줄 수 있는 것을 말했을 뿐이고, 나머지는…… 유감스럽게도…….”
“걱정 붙들어 매시죠, 의원 나리, 제 개는 당신을 물지 않을 테니까요.” 콜랴는 의사가 다소 불안한 시선으로 문지방에 서 있는 페레즈본을 바라보고 있음을 인지하고서 큰 소리로 딱 잘라 말했다. 콜랴의 목소리에는 분노로 가득 찬 기운이 배어나왔다. 의사 대신 ‘의원 나리’라는 단어를 쓴 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었고, 나중에 그가 알린 대로, ‘모욕을 주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이건 또 뭐 ─ 야?” 의사가 고개를 치켜들고 놀란 표정으로 콜랴를 응시했다. “대체 뭘 하는 녀석이오?” 그는 알료샤에게 해명을 해 달라는 듯 갑자기 그를 바라보았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페레즈본의 주인입니다, 의원 나리, 제가 어떤 녀석이냐에 대해선 염려 붙들어 매시죠.” 콜랴가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이 ─ 건 누구야? 대체 누구, 누구냐고?” 의사는 갑자기 어찌나 화가 났는지 펄펄 끓었다.
“얘는 이곳의 학생입니다, 의사 선생님. 장난꾸러기인데,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알료샤가 인상을 쓰면서 빠른 말투로 말했다. “콜랴 군, 잠자코 있어요!” 그가 크라소트킨에게 소리쳤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의사 선생님.” 이미 그도 다소간은 좀 더 성마른 어투로 반복했다.
“혼 ─ 쭐을 내야 돼, 혼 ─ 쭐을 내야 된다고, 아주 혼 ─ 쭐!” 의사는 무엇 때문인지 이젠 완전히 광분해서 두 발을 굴렀다.
“그런데 말이죠, 의원 나리, 사실 저의 이 페레즈본은 물 수도 있어요!” 콜랴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에 눈을 번득이며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콜랴 군, 한마디만 더 하면 당신과 영원히 절교하겠습니다." 알료샤가 위압적으로 소리쳤다.
“의원 나리, 온 세상을 통틀어 니콜라이 크라소트킨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딱 한 명 있는데, 그게 바로 이분입니다.” 콜랴가 알료샤를 가리켰다. “이분에게 복종하는 바이니, 그럼, 안녕히 가시죠!”
그는 냉큼 자리를 떠서 문을 열곤 재빨리 방으로 갔다. 페레즈본도 그 뒤를 따라 내달렸다.
의사는 돌기둥처럼 멍하니 서서 오 초 정도 알료샤를 바라보더니, 그러고 나선 갑자기 침을 탁 뱉고 큰 소리로 “이게 대체 뭐야,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군!”이라고 되뇌며 재빨리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2등 대위는 그를 마차에 앉히기 위해 돌진했다. 알료샤는 콜랴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콜랴는 이미 일류샤의 침대 곁에 서 있었다. 일류샤는 그의 손을 잡은 채 아빠를 불렀다. 잠시 후 2등 대위도 돌아왔다.
“아빠, 아빠! 나는 아빠가 너무 가엾어, 아빠!” 일류샤가 쓰라린 마음으로 신음했다.
“일류셰치카…… 요 귀여운 것…… 의사 선생님 말씀이……. 건강해질 거란다…… 우린 행복해질 거야…… 의사 선생님이…….”라고 2등 대위가 말을 꺼내 보았다.
“아이, 아빠! 새로 온 의사 선생님이 나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고 있어……. 나도 봤잖아!” 일류샤가 이렇게 소리치더니, 아빠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또다시 있는 힘껏 그들 둘을 끌어당기며 꽉 껴안았다.
“아빠, 울지 마…… 내가 죽으면 또 다른 좋은 아이를 데려오면 되잖아…… 걔들 중에서 아빠가 직접 좋은 아이를 골라서 일류샤라고 부르고 나 대신 사랑해 주면 되는걸…….”
“그래도, 아빠, 나를 절대로 잊으면 안 돼, 나를 말이야.” 일류샤가 계속했다. “내 무덤으로 와서…… 그러니까 아빠, 나를 우리가 함께 산책하러 다니던 커다란 바윗돌 옆에 묻어 줘. 그리고 내가 있는 그곳에 크라소트킨과 함께 내가 있는 그곳을 찾아 줘, 저녁에……. 페레즈본도 같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빠!”
그의 목소리가 탁 끊겼고, 세 사람은 모두 서로 부둥켜안은 채 서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라소트킨은 갑자기 일류샤의 포옹에서 벗어났다.
“잘 있어, 영감, 점심때가 돼서 엄마가 나를 기다리고 계실 거야.” 그가 빠른 말투로 말했다. "어쩜 좋아, 엄마한데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실텐데……. 하지만 점심을 먹고 곧 올게. 페레즈본도 같이 데려올게. 지금은 일단 데려간다. 또 보자!"
그러면서 그는 현관으로 달려 나왔고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러고 있는 그를 알료샤가 본 것이다.
"콜랴 군, 꼭 다시 와야 돼요. 안 그러면 일류샤는 죽도록 괴로워할 겁니다." 알료샤가 고집스럽게 말했다.
"꼭 올게요! 오, 왜 좀 더 일찍 오지 않았을까, 나 ㅈ신을 저주해요." 울면서 콜랴가 중얼거렸다.
이 순간 갑자기 방에서 2등 대위가 뛰어나오더니 곧장 문을 닫았다. 그의 얼굴은 거의 미친 것 같았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그는 두 젊은이들 앞에 서서 두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좋은 아이 같은 건 싫습니다! 다른 아이 같은 건 싫다고요!” 그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기괴하게 속삭였다.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예루살렘이여,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리리라…….”
그는 말을 채 다 끝내지도 못하고 훌쩍거리는 듯하다가 나무 의자 앞으로 힘없이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안녕히 계세요, 카라마조프 씨! 당신도 오실 테죠?” 콜랴가 날카롭고도 성난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저녁때는 꼭 오겠습니다.”
“예루살렘 어쩌고 하는 건 뭔지……. 그게 뭐예요?”
“그건 성경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내가 만일 너를 잊는다면, 예루살렘이여’, 다시 말해서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전부 잊는다면, 그래서 그것을 다른 뭔가로 바꾼다면, 그때는 천벌을 면치 못하리라…….”
“알겠습니다, 그만하면 됐어요! 당신도 오세요! 헤이, 페레즈본!” 그는 완전히 사나운 목소리로 개한테 소리를 질렀고, 집을 향해 빠른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10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