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2-1)

김연경 옮김 민음사

by Andy강성
12장
오심


1 숙명적인 날


내가 앞서 기술한 사건들이 있고 난 다음 날 아침 10시, 우리 지방 법원의 법정이 열렸고 드미트리 카라마조프에 대한 공판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미리 꼭 말해 둘 것이 있다. 나는 법정에서 일어난 일을 모조리 다 상세하게 전하는 건 물론이고 순서대로 차근차근 전하는 것도 내 힘에 부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나에게 개인적으로 충격을 주었고 내가 특별히 기억하고 있는 것만을 전달한다고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기 바란다.


그리하여, 첫째, 법정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날 나를 특별히 놀라게 한 점에 대해 언급해야겠다. 이 사건이 러시아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다들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우리 도시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의 사람들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이 정도로까지 대단한 열광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리라곤 이날 법정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방청권은 전부 진작에 매진돼 버렸다. 남성들 중 특별히 지체 높은 방문객들 및 저명한 방문객들을 위해서는 재판진의 테이블 바로 뒤에 그야말로 특별석이 이미 마련되었다. 법정 안으로 모여든 이 집단 전체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훗날 많은 관찰에 의해 입증됐듯, 부인들 거의 모두가, 최소한 그들 중 대다수가 미챠 편이었고 또 미챠가 무죄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관념이 형성된 탓인 것 같다. 연적 관계에 있는 두 여성이 출두하리라는 건 모두 다 알고 있는 터였다.


그들 중 하나, 즉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특히나 모든 이들의 관심을 자극했다. 그녀를 두고 굉장히 얼토당토않은 얘기들이 난무했으며, 미챠가 이런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여전히 그에게 정열을 바치고 있다는 사실을 두고도 깜짝 놀랄 만한 일화들이 얘기되고 있었다. 그루셴카는, 그래도,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보다는 우리네 부인들에게 더 잘 알려져 있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그의 불운한 아들을 파멸시킨 여자’를 우리네 부인들은 전에도 보았지만, 이토록 ‘평범하기 짝이 없고 심지어 전혀 예쁘지도 않은 러시아의 평민 계집’에게 아비와 아들이 함께 그 정도로까지 반할 수 있다니, 하나에서 열까지 다들 놀라워했다.


사실 우리 도시에서는 미챠 일 때문에 심지어 진지한 집안싸움이 일어난 경우도 여럿 있었다. 많은 부인들이 이 끔찍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에 자기 남편들과 대판 싸움을 벌였고, 이런 일이 있었으니 당연히 이 부인들의 남편들은 법정에 나타날 때부터 이미 다들 피고인*에게 곱지 않은 감정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숫제 그를 적대시하고 반감을 품었다. 그리하여 대체로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남성파는 여성파와는 정반대로 피고인에게 오롯이 반감을 갖고 있는 분위기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 따라 용어를 '검사', '피고인', '변호인(또는 변호사)'으로 통일


반면 사건의 도덕적 측면이 아니라 이른바 현대적이고 법률적인 측면만을 중시했던 법조인들만 예외였다. 저명한 페츄코비치의 도착이 모든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사건이 되었던 것이다. 그의 재능에 대한 명성이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있었고, 그가 지방 도시에 나타나 떠들썩한 형사 사건의 변호를 맡은 것도 이미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또한 그가 변호를 맡은 이런 유의 사건들은 언제나 러시아 전역에서 유명세를 타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었다.


우리 도시의 법정은, 다소간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재판관석의 오른편에는 배심원들을 위한 탁자와 두 열의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왼쪽에는 피고인석과 변호인석이 있었다. 법정의 중간, 재판관석 가까이에는 ‘물증’이 놓인 책상이 있었다. 거기에는 표도르 파블로비치의 피범벅이 된 흰색 비단 실내복, 살인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치명적인 놋쇠 공이, 소매에 피가 묻은 미챠의 루바시카, 뒤쪽 호주머니 부분에 핏방울이 묻어 있는 프록코트, 미챠가 페르호친 집에서 자살을 하기 위해 장전해 둔 권총, 그루셴카에게 줄 3000루블이 들어 있던 봉투, 그 봉투를 묶었던 가느다란 장밋빛 리본 등 그 밖에도 많은 물건들이 있었지만 모두 언급하지 않겠다.


10시에 재판장, 한 명의 재판 임원, 한 명의 명예 치안판사로 구성된 재판진이 나타났다. 물론, 검사도 곧 나타났다. 재판장은 평균보다 작은 키에 탄탄하고 다부진 체격, 치질을 앓고 있는 듯한 얼굴, 짧게 깎은 짙은 색 머리카락에 새치가 섞여 있는 쉰 살쯤 된 사람으로서 붉은 리본을 달고 있었지만 어떤 훈장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검사는 왠지 몹시 창백하다 못해 거의 새파란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는데, 불과 사흘 전에 봤을 때만 해도 정말 멀쩡한 모습이던 사람이 무엇 때문인지 하룻밤 사이에 느닷없이 수척해진 것 같았다.


한편 특이한 것은 배심원들의 숫자가 이편저편, 즉 변호인 측과 검사 측을 막론하고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총 열두 명의 배심원들은 똑똑히 기억나는데, 네 명은 우리 도시의 관리, 두 명은 상인, 여섯 명은 우리 도시의 농부와 소시민이었다. 우리 도시의 사람들, 특히 부인네들 사이에서는 재판이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민감하고 복잡한 심리적 사건의 치명적인 해결을 무슨 관리 나부랭이들, 끝으로 농군들 손에 맡기다니, 농군은 말할 것도 없고 무슨 관리 나부랭이가 여기서 뭘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어요?”라는 말이 나왔다.


마침내 재판장은 퇴역 9등 문관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살해 사건의 심리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는데, 그때 그가 정확히 어떤 표현을 썼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집행관에게 피고인을 데려오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곧 미챠가 나타났다. 법정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져서 파리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미챠의 모습에 나는 심히 불쾌한 느낌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막 새로 맞춘 프록코트를 입고 엄청나게 멋을 부리며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자 곧장 저명한 페츄코비치 변호사가 나타났는데, 법정 안으로 어쩐지 억눌린 듯한 웅성거림이 퍼져 가는 것 같았다. 그는 후리후리하고 깡마른 사람으로서 다리는 가늘고도 길었고 손가락도 굉장히 길고, 얼굴은 면도를 했고 상당히 짧게 깎은 머리카락은 소박하게 빗어 넘겼고 냉소도, 미소도 아닌 웃음을 지으며 간간이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겉보기에 나이는 마흔 살쯤 된 듯했다. 그는 연미복을 입고 하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다음엔 재판의 심리에 호출된 인물들, 즉 증인들과 감정인들의 명단이 낭독되었다. 증인들 중 네 명은 불참한 상태였다. 가령, 미우소프는 예심 때는 증언을 했지만 현재 이미 파리에 가 있었고 호흘라코바 부인과 지주 막시모프는 병 때문에, 또 스메르쟈코프는 느닷없이 죽어 버렸기 때문에 출석하지 못했으며, 이에 덧붙여 경찰의 증언도 제시되었다. 스메르쟈코프에 대한 소식이 알려지자 법정은 심하게 동요하고 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방청객 중 대다수가 이 느닷없는 자살 에피소드에 대해선 아직까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큰 충격을 안겨 준 것 ─ 그것은 미챠의 느닷없는 돌발 행동이었다. 스메르쟈코프에 대한 발표를 하자마자 그는 자기 자리에서 갑자기 온 법정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원래 개 같은 놈은 개같이 뒈지는 거다!”

그의 변호인이 그에게 달려들었고 재판장이 그에게 이와 같은 행동이 한 번 더 반복될 시에는 엄중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그를 위협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물론, 배심원과 방청객의 견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스스로 자신의 성질을 드러내 버림으로써 자기를 소개한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인상이 만연한 가운데, 재판장의 서기에 의해 기소장이 낭독되었다. 그것은 상당히 짧으면서도 일목요연했다. 왜 이자가 연행되었고 왜 재판에 회부되었는가에 관한 아주 주된 이유만이 기술되어 있었던 것이다. 낭독이 끝나자마자 재판장이 미챠에게 위압적이고도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던 것이 기억난다. “피고인, 피고인은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십니까?”


미챠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을 마시고 방탕하게 산 것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합니다.” 그는 이번에도 어쩐지 어처구니없을 만큼 거의 미친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저의 적이자 아버지인 노인의 죽음에 대해선 ─ 무죄입니다! 또, 하지만 강도질에 대해서는 ─ 아니, 아니요, 이것도 역시 무죄이며, 죄를 지으려야 지을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는 야비한 놈이긴 하지만 도둑놈은 아니니까요!”

이 말을 외친 뒤 그는 자리에 앉았는데,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것이 보였다.


2 위험한 증인들


여기서 지적해 둘 것은 오직, 공판이 시작된 맨 처음부터 이 ‘사건’이 지닌 다소간의 특이한 특성이 모든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즉, 검사 측의 힘이 변호인 측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비교할 때 이례적일 만큼 우세했던 것이다. 다들 첫 순간에, 즉 온갖 사실들이 법정에서 집약적으로 모이기 시작하고 이 공포, 이 피의 전모가 점차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이 점을 깨달았다. '변론은 그저 형식적 절차일 뿐이다,' '범인은 명명백백하게 유죄요 완전히 유죄이다,' 하는 점은 누구나 알 만한 것이었다.


부인네들조차도 그가 전적으로 유죄임을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그가 무죄 판결을 받으리라는 것 ─ 이 점에 대해서는 이상한 노릇이긴 하지만, 모든 부인네들이 가장 최후의 순간까지도 확고하게 믿었다. ‘유죄이긴 하지만 인도주의, 요즘 나타난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감정에 입각하여 무죄판결을 내릴 것이다.’ 등등. 바로 이것을 위해서 그들은 그처럼 조바심을 내며 이리로 몰려온 것이었다.


남성들은 검사와 훌륭한 페츄코비치의 법적 공방에 제일 큰 관심을 보였다. 다들 놀라워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곤 했다. 즉, 페츄코비치가 제아무리 재능을 지녔다고 해도 엎질러진 물이나 다름없는, 이렇게 대책 없는 사건으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랬기에 이들은 긴장 어린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의 위업적인 활약을 찬찬히 지켜보았던 것이다.


증인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는 법정의 웅장한 분위기에도, 자기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거대한 방청객의 존재에도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거의 위풍당당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평온한 모습을 하고 법정에 섰다. 검사는 우선 그에게 오랫동안 카라마조프 집안의 세세한 가정사를 캐물었다. 한 가정의 풍경이 환한 조명을 받으며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 증인이 솔직하고 공평하다는 것은 그의 말을 들어 보면 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전(前) 주인 나리의 기억에 대해 무척 깊은 존경심이 있었음에도 그는 예를 들어, 어쨌거나 주인 나리가 미챠에게 불공평했다고 선언했고, ‘또 아버지 된 도리로 아들의 명의로 되어 있는 어머니의 재산을 갖고 아들을 농락한 것도 자랑할 건 못 된다.’라는 것이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재산 계산 건을 갖고 아들을 농락했다고 주장할 근거가 그에게 있는가 하는 검사의 질문에 대해서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는 어떤 합당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그럼에도 아들의 재산에 대한 계산법은 ‘틀린 것’이기 때문에 아들에게 정확히 ‘몇 천 루블은 마저 더 지불해야 했다.’라고 우겼다.


그리고리가 식사 장면, 즉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잠입해 들어와서는 아버지를 쥐어패고 다시 와서 꼭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을 묘사해 준 이후에는 ─ 법정 안에 음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는데 더욱이 늙은 하인이 군더더기 말은 하지 않고 예의 그 자신의 독특한 언어로 차분하게 얘기했기 때문에 더 무서운 웅변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미챠가 그때 자기 얼굴을 때리고 자기를 넘어뜨림으로써 자기에게 모욕을 가한 일은 오래전에 용서했기 때문에 화가 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故) 스메르쟈코프에 대해서는 성호를 그으며 자기 견해를 말하길, 젊은 녀석이 제법 재능이 있었지만 어리석었던 데다가 병마에 시달렸고 무엇보다도 신을 믿지 않는 녀석이었다, 녀석에게 이런 불신을 가르친 건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그의 큰아들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메르쟈코프의 정직에 관한 한 거의 열을 올리며 그를 옹호했으며, 주인 나리가 떨어뜨린 돈을 갖다 바친 이후 주인 나리가 그를 신임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정원 문이 열려 있었다는 점에 관해선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마침내 변호인이 심문할 차례가 되자, 그는 제일 먼저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모 부인’을 위해 3000루블을 챙겨 둔 ‘것처럼 보이는’ 그 봉투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그것을 당신이 직접 보셨습니까 ─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주인 나리를 가까이서 모셨던 사람으로서 말입니다?” 그리고리는 그걸 보지도 못했거니와 심지어 ‘지금 모든 사람들이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그런 돈에 대해 누구한테 들은 적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괜찮으시다면, 이제 다음 질문을 던져도 되겠습니까?” 하고 페츄코비치가 갑자기, 전혀 느닷없이 물었다. “예심에서도 나왔던 얘기지만, 그날 저녁 당신이 취침 전에 병을 치료할 생각으로 그 아픈 허리께에 발랐던 그 발삼, 더 정확히 말해, 그 물약은 모든 성분을 보드카에 담갔습니까?"

"알코올에 담갔소."

"심지어 알코올에 담갔다니. 그걸 등에 문지른 뒤 병에 남은 내용물을 마셨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렇소, 마셨소.”

“대략 얼마나 많이 마셨습니까? 대략이라도 말이죠? 보드카 잔으로 한 잔, 아니면 두 잔?”

“물컵으로 한 잔은 족히 되겠군요.”

“심지어 물컵으로 한 잔이라니. 혹시, 한 컵 반 정도를 마신 건 아닙니까?”

그리고리는 입을 다물었다. 뭔가를 깨달은 듯한 눈치였다.

“순 알코올을 한 컵 반 정도를 마시면 ─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정원 문이 열린 건 고사하고 ‘천국의 문이 열린 것’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리는 침묵을 고수했다. 법정 안으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퍼져 갔다. 재판장은 몸을 달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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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말입니다.” 하고 페츄코비치는 점점 더 끈덕지게 달라붙었다. “정원 문이 열린 걸 보았다는 그 순간에 주무시고 계신 건 아니었습니까, 어떻게 정확히 모르시겠습니까?”

“두 발로 멀쩡하게 서 있었는데요.”

“그것이 주무시고 계시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진 못하지요. 예를 들어, 그 순간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뭘, 그러니까 예를 들어 올해가 몇 년이냐고 물어봤다면 대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건 모르겠소.”


“그럼, 당신의 손에 손가락이 몇 개인지는 설마 알고 계실 테죠?”

“이 몸은 비천한 노예올시다.” 그리고리가 갑자기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만약 높으신 어른께서 저를 조롱해야 직성이 풀리신다면, 저로선 감내할 수밖에 없소.”

페츄코비치는 약간 주춤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마침 재판장도 개입하여 보다 더 적합한 질문들을 던져야 한다는 점을 훈계조로 변호사에게 상기시켰다. 페츄코비치는 그 말을 경청한 뒤 위엄 있게 몸을 숙여 인사하고 본인의 심문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물론, 방청객과 배심원 모두, 치료 중이라는 특정한 상황에서 '천국의 문을 볼' 수 있는 가능성마저 지녔고 또 그리스도 탄생 이후 지금이 몇 년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증언에 대해 조그만 의심의 벌레가 생겨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변호사는 어쨌거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리고리가 퇴장하기 전에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발생했다. 재판장이 피고인을 향해 제시된 증거에 대해 뭐 지적할 것이 더 있는가? 하고 물었다.

"문에 관한 것을 빼면 모든 것이 다 사실대로입니다." 미챠가 큰 소리로 외쳤다.

"노인은 한평생 정직했으며 아버지한테는 700마리의 삽살개처럼 충직했습니다.”

"피고인, 말을 좀 골라서 쓰시오." 재판장이 엄격하게 말했다.

"나는 삽살개가 아니오." 그리고리도 투덜댔다.


"뭐 그렇다면 제가 삽살개로군요, 제가 말이죠!" 미챠가 소리쳤다. "기분이 상했다면 이 말은 저한테로 돌리고, 저 노인에게는 용서를 비는 바입니다. 어쨌거나 저 노인에겐 짐승처럼 잔인하게 굴었으니까요! 이솝에게도 역시 잔인하게 굴었죠."

"이솝이라니요?" 재판장이 다시 엄격하게 말을 받았다.

"그러니까 저 피에로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표도르 파블로비치요."

재판장은 또다시 위압적이고 극히 엄격하게, 단어 선정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하라고 미챠에게 주의를 주었다.


증인 라키친


변호사는 증인 라키친을 심문할 때도 극히 기민한 솜씨를 발휘했다. 여기서 지적해 둘 것은 검사가 라키친을 아주 유력한 증인 중 하나로 간주하여 분명히 몹시 아꼈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그는 모든 것을,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데 모든 사람의 집을 드나들며 모든 것을 보았고 모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으며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물론이고 카라마조프 집안의 모든 내력을 아주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선술집 ‘수도’에서 미챠의 그 잘난 행동들, 즉 미챠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모든 언행을 상세하게 묘사했으며 2등 대위 스네기료프의 ‘수세미’ 얘기도 전했다. 예의 그 특수한 항목, 즉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재산 계산에 있어서 미챠에게 얼마간을 더 지불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그저 경멸스럽다는 어조로 개괄적인 언질을 줌으로써 끝맺었다. ‘과연 누가 카라마조프 집안사람들을 두고 제대로 잘잘못을 가려낼 수 있겠는가, 아무도 자기가 누군지 이해할 수도, 정의할 수도 없는 것이 이 어처구니없는 카라마조프가의 특성인데,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빚이 있다는 건가?’라는 거였다.


공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범죄의 비극에 관해서 그는 그것이 농노제의 낡아 빠진 풍습, 그리고 적절한 제도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고 심한 혼란에 휩싸인 러시아가 낳은 산물이라고 기술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에게는 발언권이 주어진 셈이었다. 이 소송에서 라키친 씨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검사는 증인이 잡지에 이 범죄 사건을 다룬 기사를 실을 준비를 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나중에는 자신의 연설에서 이 기사의 몇몇 생각을 인용하기까지 했는데, 즉 이미 기사를 접했던 것이다.


증인이 묘사한 그림은 결과적으로 음산하고 치명적이었기에, 피고인의 '유죄'를 더 공고히 만들어 버렸다. 전체적으로 라키친의 진술은 그 사상이 독창적이고 또 그 전개 방식이 이례적일 정도로 고매했기 때문에 방청객을 매료시켰다. 특히, 농노제와 혼돈 속에서 고통받는 러시아 얘기가 나왔을 때는 심지어 두세 번에 걸쳐 느닷없이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라키친은 어쨌거나 아직은 젊은 나이였던지라 그만 작은 실언을 해 버렸고, 변호사는 그 즉시 그것을 기가 막히게 잘 이용했다. 그러니까 라키친은 그루셴카에 대한 특정 질문에 대답을 하는 와중에, 자신의 성공을 이미 잘 의식하고 있었던 건 물론이고 자기가 보여 준 저 높은 고매함에 너무 도취된 나머지 그만 아그라페나 알렉산드로브나에 대해 ‘상인 삼소노프의 애첩’이라는 다소간 경멸적인 표현을 쓰고 말았다.


변호인은 질문을 던질 차례가 되자, 아주 친절하고 심지어 공손하기까지 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시작했다. “당신은 물론, 러시아 정교 감독관구에서 출판한 소책자 『영면하신 장로님 조시마 신부님의 생애전』을, 심오한 종교적 사상으로 충만하고 고(故) 장로님께 바치는 훌륭하고 경건한 헌사가 담긴 책을 쓰신 바로 그 라키친 씨겠지요, 저는 얼마 전에 몹시 만족스럽게 읽었습니다만?”

“그건 출판할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었는데…… 그러니까 나중에 인쇄가 된 겁니다.”

라키친은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양 어리둥절해하고 거의 수치심까지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오, 이건 멋진 일입니다! 당신과 같은 사상가는 온갖 사회적인 현상에 극히 폭넓은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합니다. 고(故) 장로님의 후원으로 당신의 아주 유용한 책자가 널리 퍼졌으니 얼마간의 이득이 됐을 텐데요……. 하지만 지금 제가 당신에게 무엇보다도 여쭙고 싶은 것은 말입니다, 당신은 방금 스베틀로바 양과 극히 가깝게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고 천명하신 거죠?"(그루셴카의 성은 알고 보니 '스베틀로바'였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저는 나이도 젊고…… 그리고 도대체 누가 자기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라키친은 그야말로 발끈했다.

"그렇지요, 암 그렇고말고요!" 페츄코비치는 자기도 당혹스러웠는지 맹렬한 기세로 서둘러 사과를 하면서 소리쳤다. "그 젊고 아름다운 여성분은 이곳 젊은 청년들의 꽃다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었으니까, 당신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그분 과 안면을 트는 데 관심을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기론, 두 달쯤 전에 알렉세이 표도로비치와 정말로 안면을 트고 싶은 마음에 그를, 그것도 그 당시의 수도사 복장을 한 그를 자기 집에 데려온다는 조건으로 당신에게 25루블을 주겠다고 약속했다지요. 이건, 바로 본 사건의 주된 골자를 이루는 비극적 참극이 발생한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건 장난이었습니다……. 당신이 이 일에 왜 관심을 갖는지 모르겠군요. 나중에 다시 돌려주려고…….”

“그렇다면, 받긴 받았다는 거로군요. 하지만 지금까지도 돌려주지 않으셨고…… 아니면 돌려주셨습니까?”

“이런 하찮은 일을 갖고…….” 라키친은 어물거렸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물론 돌려줄 겁니다.”


결국 라키친은 체면이 다소 깎인 채 증인석에서 퇴장했다. 그의 연설이 고상하고 고매했다는 인상은 이런 식으로 망가졌고, 페츄코비치는 눈으로 그를 전송하면서 방청객을 향해 “자, 여러분의 고귀한 고소인들이 어떤 작자들인지를 한번 보시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재판장이 라키친의 심문이 모두 끝난 직후 피고인을 향해 뭐든 자기 쪽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없느냐고 하자, 미챠는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저놈은 이미 피고인이 된 저한테서도 돈을 꿔 갔습니다! 이 썩을 놈의 '베르나르'에 출세밖에 모르는 놈, 하느님도 믿지 않고 또 고(故) 장로님까지 속였어요!”

미챠는 또다시 표현이 너무 난폭하다는 이유로 단단히 주의를 받았지만, 라키친도 체면이 영 뭉개져 버렸다.


증인 스네기료프


2등 대위 스네기료프의 증언에도 별로 운이 따라 주지 않았는데, 그건 이미 완전히 다른 이유에서였다. 그는 더러운 옷을 걸치고 더러운 장화를 신고 완전히 누더기의 몰골로, 그리고 한결같이 경고를 받고 미리 ‘검사’마저 받았건만 느닷없이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 나타났던 것이다. 미챠에게 받은 모욕에 관해 묻자, 그는 갑자기 대답하기를 거절했다.


“하느님이 그분과 함께하길. 일류셰치카가 명령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하느님이 보답을 해 주실 것입니다요.”

“누가 당신에게 말하지 말라고 명령했던가요? 누구 얘기를 하는 겁니까?”

“일류셰치카, 제 아들 녀석입죠. ‘아빠, 아빠, 그자가 아빠를 얼마나 심하게 깔아뭉갰는지!’ 바윗돌 근처에서 그렇게 말했습죠. 지금은 죽어 가고 있습니다요…….”

2등 대위는 갑자기 엉엉 흐느껴 울면서 재판장의 발밑으로 털썩 쓰러졌다. 방청석에서 웃음이 퍼지는 가운데 그는 서둘러 끌려 나갔다. 이로써 검사가 노렸던 효과는 아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증인 트리폰 보리소비치


변호사는 계속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고 사건의 내막을 그야말로 속속들이 알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점점 더 놀라움을 배가시켰다. 예를 들자면, 트리폰 보리소비치의 증언은 극히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물론 미챠에게 굉장히 불미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는 참극이 있기 한 달 전에 미챠가 모크로예에 처음 왔을 때 쓴 돈이 최소한 3000은 되었고 ‘그보다 적은 액수였다고 해도 아주 조금 적었을 것’이라고 흡사 거의 손가락으로 꼽아 보듯 셈을 해 주었다.


"집시한테 뿌린 돈만 해도 얼마인지 모릅니다요! 이가 득실거리는 우리네 농군들에게까지도 50코페이카짜리 은화 한 닢을 길거리에 던져 주는 정도가 아니라 적어도 25루블짜리 지폐 정도는 되는 돈을 그냥 거뜬히 선사했습니다요. 절대 그보다 적진 않았습죠. 그때 저분한테서 그냥 훔쳐 간 돈만 해도 얼마나 될지 모를 일이죠! 이런 건 식은 죽 먹기인 데다가 또 저분이 직접 나서서 돈을 거저 뿌려 댔으니 어디서 그놈을, 그러니까 도둑놈을 잡겠어요! 우리네 민중은 원래 날강도라서 영혼이고 뭐고 없어요. 처녀 애들, 우리 시골 마을의 처녀 애들 손으론 또 얼마나 흘러 들어갔을지! 오죽하면 옛날엔 그렇게 가난했던 우리들이 그때 이후로 부자가 됐다니까요."


한마디로 말해서 그는 미챠의 지출 내역을 죄다 기억해 내서 꼭 주판알을 튕기듯 셈을 해 보였다. 이런 식으로 해서 미챠가 쓴 돈이 겨우 1500루블이고 나머지는 부적 주머니에 꿰매 넣어 두었다는 가정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저분의 손에 3000루블이 무슨 1코페이카짜리 동전인 양 들려 있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관찰했다니까요!" 트리폰 보리소비치는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아주 용을 쓰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변호사는 자기가 심문할 차례가 되자 증인의 증언을 거의 논박해 보려고도 하지 않고 갑자기, 미챠가 체포 한 달 전 모크로예에서 처음으로 술판을 벌인 날 술에 취한 나머지 그만 현관 바닥에 100루블을 떨어뜨렸는데 마부 치모페이와 또 다른 농군 아킴이 그 돈을 주워 트리폰 보리소 비치에게 내밀었을 때 그가 그들에게 그 대가로 각각 1루블씩을 준 얘기를 끄집어냈다.

"그래서 당신은 그때 이 100루블을 카라마조프 씨에게 돌려줬습니까, 어땠습니까?"


트리폰 보리소비치는 말을 빙빙 돌리며 최대한 발뺌을 했지만, 그 농군들마저 심문을 받고 나자 그런 식으로 100루블짜리 지폐를 발견한 건 사실이라고 자백했다. 다만, 그때 바로 그 돈을 전부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에게 순순히 돌려주었지만, '그때 저분이 워낙 취해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기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100루블을 발견한 사실을 부인했기 때문에 술 취한 미챠에게 돈을 돌려주었다는 그의 증언은 당연히 커다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검사가 내세운 가장 위험한 증인 중 하나였던 사람이 이번에도 미심쩍다는 인상을 남긴 채, 그리고 그 체면이 심히 손상된 채로 물러나게 되었다.


증인 폴란드 신사들


폴란드 신사들도 똑같은 신세를 지게 됐다. 법정에 나타날 때만 해도 그들은 오만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첫째 두 사람 다 '국왕을 모셨다.'라고, 그리고 '판 미챠'가 그들의 명예를 매수하는 대가로 큰 돈을 제안했으며 그의 손에 거액의 돈이 들려 있는 것을 자기들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소리 높여 증언했다. 판 무샬로비치는 자기 말에다가 폴란드어를 지독히도 많이 섞어 넣었는데, 이것이 재판장과 검사의 눈앞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든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야말로 기세 등등해져서 이젠 완전히 폴란드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페코비치는 이들마저도 자신의 투망으로 낚아 버렸다. 트리폰 보리소비치가 다시 불려 나왔고, 그는 말을 빙빙 돌려 가며 최대한 발뺌을 하다가 결국엔 판 브루블레프스키가 트리폰 보리소비치의 카드 패를 자기 것으로 슬쩍 바꿔 쳤고 판 무샬로비치도 카드를 돌리면서 속임수를 썼다는 것을 자백해야 했다. 이것은 마침 증언할 차례가 되었던 칼가노프도 확인해 주었으니, 이로써 두 폴란드 신사는 방청석에서 웃음이 퍼지는 가운데 톡톡히 창피를 당하고 물러났다.


이어, 참으로 위험한 증인들 모두가 하나같이 거의 똑같은 신세를 지게 되었다. 페츄코비치는 그들 각각의 도덕적인 위신에 먹칠을 하고 콧대를 단단히 꺾어 놓은 채 풀어 주었다. 하지만 죄증(罪證)이 점점 더 비극적으로 증대하여 격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다들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위대한 마법사’의 확신에 찬 모습을 보면서 다들 기대감을 버리지 못했다. '이런 사람'이 괜히 페테르부르크에서 여기까지 왔을 리 없고 아무래도 빈손으로 돌아갈 사람은 아니다,하는 것이었다.


3 의학적 감정과 한 푼트의 호두


의학적 감정도 피고에게 별로 도움을 주진 못했다. 페츄코비치 자신도, 나중에 밝혀진 바론, 그것에 별로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듯했다. 애초에 이 감정을 하게 된 것은 오로지 일부러 모스크바에서 고명한 의사를 부른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변호사 측은 이것으로 인해 손해를 볼 턱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최상의 경우에는 뭔가 이득을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의사들 사이의 견해가 다소 일치하지 않아서 부분적으론 심지어 희극적이기까지 한 어떤 결과를 낳고 말았다.


감정인 자격으로 처음 질문을 받은 사람은 의사 게르첸슈투베였다. 그는 일흔 살의 노인으로서 백발이 성성한 대머리였고 중키에 체격은 건장했다. 의사로서는 성실했고 사람으로선 아름답고 경건했다. 그는 선량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서 가난한 환자와 농부를 공짜로 치료해 주었고 몸소 그들의 누추한 움막이나 오두막에 왕진을 다니며 약값을 놓고 오기도 했지만, 덧붙여 노새처럼 고집불통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말이 나온 김에 지적하자면, 이미 도시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듯, 모스크바에서 온 그 고명한 의사는 우리 도시에 온 지 대략 이삼 일 정도가 되자 의사 게르첸슈투베의 재능에 대해 굉장히 모욕적인 품평을 몇 번이나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모스크바 의사가 왕진료로 최소한 25루블은 족히 넘는 돈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우리 도시의 몇몇 사람은 이렇게 그가 온 것을 달가워하면서 돈을 아끼지 않고 앞을 다투어 그의 조언을 받으려 했다는 점이다.


먼저 의사 게르첸슈투베는 단도직입적으로 ‘피고의 지적 능력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라고 천명했다. 자기 의견을 제시한 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피고의 예전의 많은 행동들을 봐도 그렇지만 지금, 심지어 바로 이 순간에도 지적 능력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정확히 뭘 봐서 그런 사실이 확인된다는 것인지 설명해 달라는 부탁을 받자, 늙은 의사는 예의 그 순진무구한 태도로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하길, 법정 안으로 들어올 때 피고는 “정황에 맞지 않게 이례적이고 기괴한 모습을 보였으며 군인처럼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면서 곧바로 자기 앞, 정면을 응시했는데, 사실 그는 아름다운 여성을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분명히 지금도 부인들이 자기에 대해 무슨 말을 할까에 대해 아주 많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므로, 방청석 가운데서도 부인들이 앉아 있는 왼쪽을 바라보는 것이 더 마땅했을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심문을 받을 차례가 되자 모스크바 의사는 피고인의 지적 상태가 비정상적, ‘심지어 극히’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단호하게 딱 잘라 주장했다. 그는 ‘정신 착란’과 ‘조증(躁症)’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참 똑똑하게 많이도 했으며, 수집된 모든 자료를 보건대 피고인은 체포되기 며칠 전부터 틀림없이 병적인 정신 착란 상태였으므로 만약 범행을 저질렀다면 의식했다 할지라도 거의 불가항력적인 힘 때문이었을 거라는, 즉 피고인을 점령해 버린 병적인 정신적 충동과 투쟁할 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최종적으로 심문을 받은 의사 바르빈스키가 뜻밖의 결론을 도출함으로써 특별히 희극적인 효과가 발생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피고인은 이전에도, 지금도 극히 정상적인 상태이며 설령 그가 체포 전엔 신경질적이고 극도로 흥분된 상태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질투, 분노, 끊임없는 만취 상태 등등 아주 명명백백한 많은 이유로 인해서 나타났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신경질적인 상태에 지금 얘기된 무슨 특별한 ‘정신 착란’이 포함됐을 리는 전혀 없다. 또한 지금 그의 운명을 오롯이 거머쥐고 있는 재판장과 재판 임원진이 그의 정면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정면을 똑바로 바라봄으로써, 바로 이로써 그는 이 순간 자신의 정신 상태가 극히 정상적이라는 점을 입증한 것입니다.” 젊은 의사는 다소 열을 올리면서 자신의 ‘소박한’ 진술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의사 게르첸슈투베는 이번에는 증인으로서 심문을 받는 가운데 갑자기,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뜻밖의 방식으로 미챠에게 이득을 주게 되었다. 이 도시의 터줏대감으로서 오래전부터 카라마조프 집안을 잘 알고 있는 그는 ‘검사 측’으로서는 극히 흥미로운 증언을 몇 가지 했고, 또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난 듯 다음과 같은 말을 더 첨가했다.


"제가 그때…… 그래, 그렇지, 마흔다섯 살이었고 막 이곳에 왔던 때였지요. 그때 저는 그 아이가 가엾어져서 스스로에게 물었지요. 저 애한테 뭘 1푼트쯤 사 주면 안 될까, 하고……. 그런데, 그게 뭐였더라? 그걸 뭐라고 하는지 또 잊어버렸군…….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것이었는데, 아, 호두입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호두 1푼트를 사다 주었는데, 아이는 누구한테도 그렇게 1푼트의 호두를 선물받은 적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고서 이십삼 년이 흘렀고, 어느 날 아침 갑자기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이 들어오지 뭡니까. 저는 방금 도착했고 그길로 곧장 호두 1푼트를 사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리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그때 누구 하나 저한테 호두 1푼트를 사 주는 일이 결코 없었는데 선생님 한 분만이 나에게 호두 1푼트를 사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네는 은혜를 아는 젊은이구먼, 어렸을 때 내가 자네한테 사 준 그 호두 1푼트를 평생 동안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일세.’ 그러고서 저는 그를 안아 주고 축복해 주었지요. 그러고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웃었지만, 또 울기도 했지요……. 원래 러시아 사람은 울어야 될 때 웃는 일이 아주 잦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정말로 울었습니다, 제 눈으로 보았지요. 그런데 지금은, 아……!”


사실이 어쨌든 간에 이 일화는 방청석에 제법 우호적인 인상을 남겨 주었다. 하지만 미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효과를 제일 많이 낳은 것은 내가 지금 얘기할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증언이었다. 아니, 대체로, 변호사 측, 즉 변호사가 소환한 증인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운명은 갑자기 숫제 진지한 정도로까지 미챠에게 미소를 보내는 듯했으며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점은 변호사 측에서도 그럴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4 행운이 미챠에게 미소를 보내다


알료샤의 증언


이 일은 당사자인 알료샤에게도 참 우연히 일어난 것이었다. 그는 선서 없이 호출됐으며, 내 기억으론, 검사 측이건 변호사 측이건 다 그에게는 첫 심문을 시작할 때부터 굉장히 부드럽고 우호적으로 대했다. 예전부터 평판이 좋았다는 것이 보였다. 알료샤는 겸손하고 절제된 어조로 증언에 임했지만 그 증언 속에 불운한 형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배어 나왔다.



어떤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는, 자기 형에 대해 흉포하기도 하고 쉽게 열정에 휩싸이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나 고결하고 자긍심이 강하고 요구가 있을 시에는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관대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묘사했다. 그렇지만 최근에 형이 그루셴카에 대한 열정과 아버지와의 연적 관계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은 인정했다. 그래도 형이 돈을 훔칠 목적으로 아버지를 죽였으리라는 가정은 격분하면서 거부했고, 그러면서도 이 3000루블 이야기만 나오면 언제나 광적으로 날뛰었다는 점은 인정했다.


검사가 두 ‘여성’이라고 표현한 사람, 즉 그루셴카와 카챠의 연적 관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고 심지어 한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아예 대답을 하지 않으려 했다.

“당신의 형님이 당신에게 아버지를 죽일 작정이라는 얘기를 최소한 하긴 했습니까?” 검사가 물었다.

“직설적으로 말한 적은 없습니다. 형님은 저에게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증오에 대해 말한 적이 한 번 있는데…… 극단적인 순간에…… 혐오스러워지는 순간에…… 어쩌면 아버지를 죽이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염려했습니다.”


“그러면 그 얘기를 듣고서 그렇게 믿으셨습니까?”

“믿었다고 말하는 건 좀 그렇군요. 어쨌거나 저는 언제나 어떤 드높은 감정이 숙명적인 순간에 형님을 구원하리라고 언제나 확신했으며 실제로도 구원해 주었습니다. 왜냐면 아버지를 죽인 건 형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알료샤는 온 법정을 향해 우렁찬 목소리로 단호하게 끝맺었다. 검사는 나팔 신호를 들은 군마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확히 어떤 사실에 근거하여 그런 생각을 갖게 되셨으며 당신의 형님은 무죄이고 오히려 당신이 이미 예심 때 곧바로 지목한 바 있는 다른 인물이 유죄라는 최종적인 확신을 갖게 되셨습니까?”

“드미트리 형님의 말을 듣고 지목했던 겁니다. 심문이 시작되기 전부터 저는 형님이 체포될 때의 상황과 그때 형님이 직접 스메르쟈코프를 지목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형님이 무죄라는 것을 전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만약 형님이 죽인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스메르쟈코프라는 말씀이십니까? 왜 다른 누구도 아닌 스메르쟈코프입니까? 또 당신은 어떻게 형님의 무죄를 그토록 철두철미하게 확신하시게 됐습니까?”

“저는 형님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형님이 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형님의 얼굴을 보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냥 얼굴만 보고요? 그게 당신의 증거의 전부입니까?”

“더 이상의 증거가 없습니다.”

“스메르쟈코프의 유죄에 관해서도 당신의 형님의 말과 그 얼굴 표정 외에는 다른 증거가 전혀 없는 건가요?”

“예, 다른 증거는 없습니다.”


어쨌거나 페츄코비치의 심문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언제 피고인이 그, 즉 알료샤에게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아버지를 죽일지도 모르겠다는 데 대한 말을 했는가, 예를 들어 참극이 있기 직전의 마지막 만남에서 이런 말을 들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알료샤는 갑자기 지금 막 뭔가가 기억에 가물거리며 생각이 난 듯 몸을 부르르 떠는 것 같았다.

“까맣게 잊을 뻔했던 한 가지 정황이 지금 막 떠오르는데, 그땐 그것이 너무나 불명확했지만 지금은…….”


그러면서 알료샤는 그 자신도 지금 막 느닷없이 생각이 났는지, 저녁에 수도원으로 가던 길에 나무 곁에서 미챠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의 기억을 열심히 더듬어 갔다.

"실은 바로 그때 형님은 가슴팍 중에서도 웬일인지 훨씬 더 위쪽, 바로 여기, 그러니까 목 바로 아래쪽을 치고 있다, 줄곧 그곳을 가리키고 있다, 하는 생각을 언뜻 했습니다. 어쩌면 바로 그때 그 1500이 들어 있던 부적 주머니를 가리킨 것일 수도 있었겠군요……!”

“바로 그거란다!” 미챠가 갑자기 자리에서 소리쳤다. “알료샤, 나는 그때 주먹으로 그것을 쳤던 거야!”


“숫제 주먹으로 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알료샤가 소리쳤다. “정확히 손가락으로 가리켰어요, 여기 아주 높은 곳을 가리켰다니까요……. 아니, 그런데 저는 어떻게 이 순간까지도 이걸 까맣게 잊고 있을 수가 있었죠!”

이로써 알료샤의 심문은 끝났다. 특기할 만한 중대한 점은, 비록 단 한 가지 증거, 즉 그 부적 주머니가 정말로 존재했고 거기에 1500이 들어 있었으며 피고가 모크로예의 예심에서 이 1500은 ‘내 돈이었다.’라고 천명한 것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어쨌거나 아주 조금이라도 증명해 준 것이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심문이 시작됐다.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법정 안에는 뭔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부인들은 오페라글라스와 쌍안경을 잡았고 남자들은 들썩이기 시작했는데 더러 좀 더 잘 보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나중에 가서는 다들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미챠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완전히 검은색 옷으로 차려입고 겸손하다 못해 거의 겁을 먹은 듯한 태도로 지정된 자리로 다가갔다.


재판장은 ‘마음의 어떤 결’을 건드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양 이 크나큰 불행을 존중하여 신중하고 굉장히 공손하게 질문을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자기가 받은 질문들 중 하나에 대해 맨 첫마디부터 자기는 피고와 정혼한 사이라고 천명했으며 “저분이 먼저 저를 버리지 않았을 때까지는…….”이라고 조용히 덧붙였다.


그녀가 친척들에게 송금해 달라고 미챠에게 맡긴 3000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녀는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즉 “저는 곧장 우체국으로 가라는 뜻으로 저분에게 돈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때 저분이…… 그 순간 돈이 몹시 궁하다는 것을 예감했습니다. 저는 저분에게 한 달 안에만 송금하면 된다면서 이 3000을 주었습니다. 나중에 저분이 이 빚 때문에 스스로를 그렇게 괴롭힌 것은 공연한 일이었어요…….”라고.


“저는 저분이 아버님으로부터 돈을 받기만 하면 언제라도 송금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녀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말을 이어 갔다. “저는 저분이 사리사욕이 없고 정직한…… 그러니까 돈 문제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정직한 분임을 언제나 굳게 믿었습니다……. 저분은 아버지로부터 3000루블을 받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으며 저에게도 이 얘기를 몇 번이나 했습니다.

만약 저분이 그때 저를 찾아왔더라면, 저는 당장 저에게 빚진 저 불운한 3000 때문에 그토록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며 저분을 진정시켰을 테지만, 저분은 더 이상 저를 찾지 않았고…… 저도…… 제 입장도…… 저분을 제 집으로 부를 수 없는 그런 입장이었던지라…… 더욱이 저는 그분에게 이 빚을 두고 까다롭게 굴 수 있는 어떤 권리도 없었습니다. 한때 바로 제가 저분으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그것도 3000보다 더 큰 도움을 받았으며 그 당시로서는 제가 언제 저분에게 그 빚을 갚을 수 있을지 미리 예측할 수도 없었건만 그래도 저는 그 도움을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그때 페츄코비치가 심문을 할 차례가 됐다.

“그 일은 이곳이 아니라 당신들이 처음 만났을 무렵에 있었던 거죠?” 페츄코비치는 금세 뭔가 상서로운 예감이 들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며 말을 받았다. 그는 그녀에 의해 초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 그럼에도 미챠가 예전에 저 도시에 있을 때 그녀에게 5000루블을 준 일이나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 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이 일은 얘기하지 않고 숨겼던 것이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 일'이며 그 원인이며 자기 아버지 얘기며 자기가 미챠 집을 찾아간 일 등 미챠가 알료샤에게 알려 준 이 에피소드의 전말을, 그야말로 모든 것을 얘기했지만 미챠 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언니를 통해 '자기한테서 돈을 받으려면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를 보내 달라.'라고 제안했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심지어 암시조차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게 그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달려갔노라고 수치스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공개적으로 털어놓았다.



이것은 뭔가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 있자니 몸이 오싹해지면서 막 떨려 왔고 법정은 그녀의 말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숨을 죽였다. 이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어떤 것이었고 그녀처럼 오만하고 남을 눈 아래로 볼 만큼 도도한 처녀가 이처럼 더할 나위 없이 노골적인 증언을 하리라곤, 이와 같은 희생을 감수하고 이와 같은 파멸을 자초하리라곤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서인가? 자기를 배반하고 모욕한 자를 구하기 위해서, 그에게 유리한 좋은 인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를 구원하는 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또 사실 그렇지 않았겠는가. 자기가 갖고 있는 마지막 돈 5000루블을, 자기한테 남아 있던 모든 것을 순순히 내놓고 순결한 처녀 앞에 공손히 몸을 숙인 장교의 형상은 극히 호의적이고 매력적인 것으로 비쳤지만, 그럼에도…… 나의 심장은 아프게 조여 왔던 것이다! 나중에 가서는 꼭 험한 소리들이 나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처럼 뛰어난 지성과 병적일 정도로 예민한 통찰력을 가진 여성이 정녕,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하게 될 줄을 미리 예감하지 못했겠는가? 틀림없이 예감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것을 말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물론 이 얘기의 진위를 둘러싼 모든 지저분한 의심들은 나중에 가서야 시작된 것이고, 첫 순간에는 다들 한결같이 감동을 받았다. 검사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별달리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페츄코비치는 그녀를 향해 깊이 몸을 숙였다. 오, 그는 승리를 예감하며 거의 기고만장했다!


얻은 것이 많았던 셈이다. 고결한 격정에 사로잡혀서는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5000을 내놓은 사람, 바로 이랬던 사람이 나중에 가선 한밤중에 3000을 훔치기 위해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 - 이것은 일정 부분 뭔가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이제 페츄코비치는 적어도 강도 혐의만은 배제할 수 있게 됐다. '사건'은 갑자기 어떤 새로운 빛을 띠게 되었다. 뭔가 미챠에게 유리한 우호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이다.


한편 미챠는…… 그를 두고서 사람들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증언하는 동안 그가 한두 번 정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의자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가 증언을 끝마치자, 그는 갑자기 흐느끼는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두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가챠, 왜 나를 파멸시킨 거야!"

그러면서 온 법정을 향해 큰 소리로 흐느끼다시피 했다. 하지만 금세 자제력을 발휘하더니 또다시 소리쳤다.

“이제 난 선고를 받았노라!” 그러고 나서는 이를 악물고 팔짱을 꽉 낀 채 자기 자리에 못 박힌 듯 있었다.


그루셴카의 증언


이어, 심문을 받기 위해 그루셴카가 나타났다. 그녀도 역시 검은색으로 차려입고 어깨에도 아름다운 검은 숄을 두른 채 법정에 나타났다. 예의 그 들리지 않는 걸음걸이로 춤을 추듯, 풍만한 여성들이 흔히 그러지만 몸을 조금씩 흔들면서 그녀는 단 한 번도 오른쪽이나 왼쪽은 돌아보지 않고 재판장만을 바라보면서 증언대로 다가갔다. 내 생각에 그녀는 그 순간 매우 예뻤으며, 나중에 부인네들이 주장한 대로, 전혀 창백하지도 않았다.


표도르 파블로비치와 알고 지내게 된 것에 관해서 그녀는 “다 쓸데없는 소리입니다, 그 노인이 저한테 치근거렸다고 해서 제가 무슨 죄라도 지은 건 아니잖습니까?”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잠시 뒤에는 곧 “모든 게 다 제 잘못이에요, 저는 양쪽을 다 ─ 그러니까 노인도, 저 사람도 ─ 다 놀려 먹었고 그러다가 그들 두 사람을 다 이 지경으로 만들었습니다. 모든 일이 저 때문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어쩌다가 삼소노프 얘기까지 나오게 되자 그 즉시 어떤 뻔뻔스럽고 도전적인 어조로 “그분은 제 은인이었어요, 부모님이 저를 오두막에서 내쫓았을 때 그분은 맨발이었던 저를 거둬 주었으니까요.” 재판장은 여하튼 쓸데없는 일을 자질구레하게 늘어놓지 말고 묻는 질문에만 대답을 하라며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루셴카는 얼굴을 붉혔고 눈을 번득였다.


돈뭉치에 관한 한, 그녀는 그것을 본 적은 없고 다만 표도르 파블로비치에게 3000이 든 무슨 돈뭉치가 있다는 얘기를 ‘악당’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이었다.

“누구를 두고서 지금 ‘악당’이라고 하신 겁니까?” 검사가 물었다.

“그 하인, 자기 주인 나리를 죽이고 어제 목을 맨 스메르쟈코프 말이죠.”

물론, 순식간에 그녀에겐 그렇게 단호하게 그를 지목할 만한 어떤 근거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 떨어졌지만, 알고 보니 그녀에게도 역시 어떤 근거도 없었다.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직접 저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저분의 말을 믿으세요. 저 훼방꾼이 저분을 파멸시켰어요, 정말이라니까요, 모든 게 다 저 여자 때문이에요, 정말로요.” 그루셴카는 증오에 겨워 온몸을 떨면서 이렇게 덧붙였는데, 그녀의 목소리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다시금 누구를 암시하는 것이냐는 질문이 떨어졌다.

“저기 저 아가씨, 바로 저 카체리나 이바노브나 말이죠. 그때 저를 자기 집으로 불러서 초콜릿을 대접했는데, 그러면서 저를 구워삶으려고 했어요. 진정 염치고 뭐고 거의 없는 여자예요, 정말로요…….”


“모크로예 마을에서 피고가 체포되었을 당시”라면서 검사가 기억을 더듬으며 물었다. “당신이 다른 방에서 뛰어나오며 ‘모든 게 내 잘못이에요, 감옥이라도 함께 가겠어요!’라고 소리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았고 또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순간 당신은 이미, 그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라고 확신하셨던 거죠?”

“다들 그때 저분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소리쳤고, 저는 이건 내 잘못이다, 나 때문에 그이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분이 자신은 무죄라고 말하자, 저는 그 즉시 저분의 말을 믿게 됐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고 또 언제나 그렇게 믿을 겁니다. 절대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거든요.”


페츄코비치가 질문할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내 기억에 그는 라키친에 대해, 그러니까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를 당신 집에 데려왔기 때문에’ 25루블을 준 일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은 늘 돈을 뜯어가려고 저를 찾아왔고 한 달에 30루블씩은 가져가서 다 놀고먹는 데 썼을 겁니다."

“무슨 연유로 라키친 씨에게 그토록 관대하셨던 겁니까?” 페츄코비치는 이렇게 그루셴카의 말을 받았다.

“아니, 그 사람은 저의 이종사촌 동생이잖습니까. 저의 어머니와 그 사람의 어머니는 친자매예요. 다만 그 사람은 여기 아무에게도 이 말을 하지 말아 달라고 줄곧 저에게 애원했죠, 저를 매우 수치스럽게 여기거든요.”


사람들 얘기론, 그때 라키친은 너무 창피한 나머지 자기 자리에 앉은 채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는 것이었다. 그루셴카는 법정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가 미챠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고 그 때문에 약이 올랐던 것이다. 라키친 씨가 아까 한 연설, 그러니까 그 모든 고매함, 농노제와 러시아의 시민적 무질서에 대한 그 모든 공격 ─ 이 모든 것에 대한 방청석의 여론이 이번에 완전히 말소되고 파괴되어 버렸다. 페츄코비치는 만족스러웠다. 이번에도 하늘이 그를 도운 것이 아니겠는가.


5 갑작스러운 파국


이반 표도로비치의 증언


이반 표도로비치가 증인으로 나타났다. 원래 이반은 알료샤보다 먼저 출두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 집행관은 재판장에게 증인이 갑자기 건강 상태가 악화되었는지 무슨 발작이 일어났는지 여하간 지금은 출두할 수 없지만 몸이 회복되는 즉시 증언 준비를 갖출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의 출현은 첫 순간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주요 증인들, 특히 연적 관계에 있는 두 여성들이 이미 심문을 끝낸 뒤였으므로, 일단 호기심은 충족되었던 셈이었다. 방청석에서는 심지어 피로감마저 느껴졌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인상을 팍 쓴 채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양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심지어 고개마저 떨어뜨리곤 어쩐지 놀라울 정도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옷차림은 나무랄 데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적어도 나에게는, 병적인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그 얼굴은 흡사 흙을 끼얹은 듯한, 뭔가 죽어 가는 사람의 얼굴을 닮은 듯했던 것이다. 눈도 흐리멍덩했다.


재판장은 그에게 선서 없이 증언해도 된다, 증언을 해도 되고 침묵해도 된다, 하지만 증언을 할 시엔 물론 모두 양심에 근거한 것이어야 된다는 것 등을 얘기해 주었다. 이반 표도로비치는 이런 말을 들으며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재판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갑자기 그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재판장이 말을 끝마치자마자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게 질문이 던져지기 시작했다. 그는 왠지 전혀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한다는 듯 간략하게 대답했고 왠지 점점 더 혐오감마저 내비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어쨌거나 대답에는 조리가 있었다.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서 모른다고 딱 잡아떼기도 했다. 아버지와 드미트리 표도로비치 사이의 금전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게다가 그 일엔 관심도 없었다.’라고 내뱉기도 했다. 아버지를 죽이겠다는 협박에 대해서는 피고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돈뭉치에 대해선 스메르쟈코프에게서 들었다고 했다…….


“다 똑같은 얘기뿐입니다. 특별히 더 할 말도 없습니다.”” 그는 갑자기 피로에 지친 표정으로 말을 끊었다.

“제가 보기에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 같군요. 당신의 심정도 이해하고요…….” 재판장이 말을 꺼냈다.

“저를 이만 보내 주십시오, 재판장님, 몸이 몹시 안 좋군요.”

이렇게 말한 뒤 그는 허락도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몸을 획 돌려 법정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서너 발짝쯤 걸어가다가 걸음을 멈추고서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조용히 피식 웃더니 다시금 제자리로 돌아왔다.


“자 여기” 하면서 갑자기 이반 표도로비치가 돈뭉치를 꺼냈다.

“자 여기 돈이 있습니다……. 문제의 그 봉투 속에 들어 있던 돈입니다. 이것 때문에 아버지가 살해당했습니다. 어디다 놓을까요? 집행관님, 좀 전해 주시죠.” 집행관은 돈 봉투를 재판장에게 전해 주었다.

“어떻게 이 돈을 당신이 갖고 있게 되었습니까, 이것이 문제의 그 돈이라면요?” 재판장은 놀라면서 물었다.

“스메르쟈코프한테서 어제 받은 겁니다. 그놈이 목을 매기 직전 그놈 집엘 갔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건 그놈입니다, 저는 그놈에게 교사했던 거죠…….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예?” 재판장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물론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제정신이죠……. 그것도 비열할 정도로 제정신입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아니, 여기 이 모든…… 낯 ─ 낯짝들과 마찬가지로!” 그가 갑자기 청중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들 아비를 죽여 놓고선 놀란 척 연기를 하고 있어.” 그는 분노에 찬 경멸을 내보이며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서로가 서로를 앞에 두고 모르는 척하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거짓말쟁이들! 다들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고 있어. 한 마리의 독사가 또 다른 독사를 잡아먹는 거야……. 친부 살해 사건이 없었더라면 다들 화를 내며 성질이 난 상태로 각자 집으로 갔겠지. ‘빵과 볼거리를 달라!’ 하긴 나도 만만찮은 놈이지! 당신들한테 혹시 물 좀 없소, 물이나 잔뜩 마시도록 해 주시죠, 제발!” 그러고서 그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집행관은 그 즉시 그에게로 다가갔다. 알료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형님은 아픕니다, 형님의 말을 믿지 마세요, 형님은 섬망증에 걸렸어요!”라고 소리쳤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저돌적으로 자기 의자에서 일어나 너무 무서운 나머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이반 표도로비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미챠는 어쩐지 이 모든 게 기괴하다는 듯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탐욕스러운 시선으로 동생을 바라보면서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진정하십시오, 저는 미친놈이 아니라 그냥 살인자일 뿐이니까요!” 다시금 이반이 말을 시작했다.

“살인자에게 멋진 웅변을 요구할 순 없잖습니까…….” 그는 이렇게 덧붙이곤 삐뚜름하게 웃기 시작했다.

검사는 눈에 확 뜨일 만큼 당혹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재판장 쪽으로 몸을 굽혔다. 재판장이 말했다.

“증인, 당신의 말은 이해도 안 될뿐더러 이런 곳에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제발 진정해 주십시오, 정말로 뭔가 말씀하실 게 있다면 말입니다. 과연 무엇으로 그런 증언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까?”


“바로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 개 같은 스메르쟈코프 놈이 저세상에서 자신의 증언을 봉투에 담아 보내 주진 않을 테니까요. 저에게 증인은 없습니다…… 딱 한 놈을 빼면 말이죠.” 그는 생각에 잠긴 듯 피식 웃었다.

“당신의 증인은 누구입니까?”

“꼬리가 달려 있는 놈인데, 재판장님, 이러면 영 형식에 맞지 않지 않습니까! 원래 악마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죠! 걸레쪽처럼 하찮은 악마니까요.” 그는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친근한 척 굴면서 덧붙였다.


“녀석은 아마 여기 어디에, 바로 저기 물증이 놓인 저 책상 밑에 있을 겁니다. 저기가 아니라면 녀석이 대체 어디에 앉아 있겠습니까? 보십시오,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저는 그놈한테 잠자코 있진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놈은 지질학적 변동에 대한 얘기를 끄집어내면서……. 하나같이 멍청한 소리죠! 오, 여러분이 하는 이 모든 짓이 죄다 얼마나 멍청한지! 자, 형님 대신 저를 잡아가시죠! 내가 온 건 무슨 목적이 있어서였는데……. 왜, 대체 왜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이렇게 멍청하기만 한 거야……!”


그러고서 그는 다시 천천히, 생각에 잠긴 듯 법정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좌중은 이미 술렁이고 있었다. 알료샤는 자리에서 일어나 형을 향해 달려가려 했지만 집행관이 벌써 이반 표도로비치의 팔을 붙잡아 버렸다.

“이건 또 뭐야?” 그는 집행관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이렇게 소리치곤 갑자기 상대방의 어깨를 꽉 움켜쥐고 몹시 성이 난 듯 마룻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벌써 경비원이 달려와 그를 붙잡았고, 그렇게 끌려 나가는 와중에도 그는 줄곧 뭔가 조리가 닿지 않는 말을 외치면서 울부짖었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히스테리 발작


그나저나 사람들이 다소나마 진정이 되어 냉정을 되찾기도 전에, 앞선 소동에 이어 곧장 또 다른 소동이 일어나 버렸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그녀는 큰 소리로 째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흐느껴 울었지만 법정을 떠날 생각은 하지 않고 제발 자기를 끌어내지 말라고 애원하면서 몸부림을 치더니, 갑자기 재판장에게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저는 한 가지 더 증언할 게 있습니다, 그것도 당장…… 지금 당장……! 여기 서류가, 편지가 있습니다…… 가져가서 어서 빨리 읽어 주세요, 어서 빨리……! 이것은 저 불한당 같은 인간이 쓴 편지예요, 바로 저 인간, 저 인간이!” 그러면서 그녀는 미챠를 가리켰다. “아버지를 죽인 건 저 인간이에요, 여러분은 지금 보시게 될 겁니다, 저 인간은 저한테 자기 아버지를 죽일 거라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동생분은 환자, 환자예요, 저분은 섬망증을 앓고 있단 말이에요! 저는 벌써 사흘째 저분이 섬망증을 앓고 있는 걸 보고 있어요!”


이렇게 그녀는 앞뒤를 잃고 소리를 질러 댔다. 집행관은 그녀가 재판장을 향해 뻗은 종이를 받았고, 그녀가 제시한 서류는 이반 표도로비치가 ‘수학적인’ 중요성을 가진 서류라고 부른, 미챠가 음식점 ‘수도’에서 쓴 바로 그 편지였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 서류가 수학적 증거나 다름없다는 것을 재판진도 인정하고 말았으니, 이 편지만 없었다면 아마 미챠도 파멸하지 않았을 것, 적어도 그렇게 끔찍하게 파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응당 재판장은 그 즉시 새로운 서류를 재판진, 검사, 변호사, 배심원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재판장이 진정이 되었냐고 부드럽게 묻자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맹렬하게 소리쳤다.

"예, 준비됐습니다, 준비됐어요! 충분히 답변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는데, 무엇 때문인지 자기 말을 경청해 주지 않을까 봐 점점 더 많이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에게 보다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요구가 떨어졌다. 이 편지는 어떤 것인가, 어떤 상황에서 이것을 받았는가? 등.


"제가 이것을 받은 건 바로 범행 전날 밤이었지만, 저 인간이 이걸 쓴 건 하루 전, 즉 범행을 저지르기 이틀 전 음식점에서였습니다 - 보세요, 이렇게 무슨 계산서 위에 썼잖습니까!"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소리쳤다. "저 인간은 그때 저를 증오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비열한 짓을 하고도 저 쌍년의 꽁무니를 쫓아갔으니까…… 또 저한테 이 3000을 빚지고 있었으니까요……. 오, 저 인간은 더러운 짓은 정작 자기가 저질러 놓고선 이 3000 때문에 모욕감을 느꼈던 거예요!

이 3000은 어떻게 된 거냐 하면요 - 여러분은 제발 제 말을 잘 경청해 주세요, 제발요. 아버지를 죽이기 삼 주 전, 어느 날 아침에 저 인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저 인간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또 무엇을 위해 그런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 바로, 바로 저 쌍년을 꾀어내어 함께 멀리 떠나기 위해서였죠. 저는 그때 저 인간이 변심한 나머지 저를 버리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제가 먼저 나서서 그때 저 인간에게 이 돈을 내밀었고 모스크바에 있는 저의 언니에게 부쳐 달라는 식의 제안을 했죠. 돈을 내줄 때 저 인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원한다면 '한 달 뒤에' 부쳐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자, 그러니까 저는 저 인간의 눈에 대고 곧바로 '당신한테 돈이 필요한 건 당신의 저 쌍년이 좋아서 나를 배반하기 위해서지, 그래 그 필요한 돈 내가 당신한테 준다, 내가 직접 당신한테 주는 거라고, 가져가, 이 돈을 받을 만큼 염치도 없는 인간이라면 얼마든지 받으란 말이야……!'라고 말한 거나 다름없었고 정말로 저 인간이 이걸 못 알아들었을 리가 없잖습니까. 저는 저 인간의 정체를 폭로하고 싶었던 건데, 어찌 됐겠어요? 저 인간은 그 돈을 받았고, 받아서는 가져갔고, 저 쌍년과 함께 저기서 하룻밤 만에 다 써 버렸어요…….

하지만 저 인간은 다 이해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걸 이해했다고요. 정말이에요, 저 인간은 그때 제가 자기에게 돈을 준 것은, 너란 인간이 나한테서 돈을 받을 만큼 염치가 없는 인간인가, 어떤가? 시험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라는 걸 이해했던 거라고요. 저는 저 인간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저 인간도 제 눈을 들여다보면서 모든 것을 이해했어요, 모든 것을 이해했으면서도 받았어요, 그렇게 제 돈을 받아서 가져간 겁니다!"



"맞아, 카챠!" 미챠가 갑자기 울부짖었다.

"당신의 눈을 바라보면서 당신이 나를 염치없는 놈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걸 이해했지만 어쨌거나 당신의 돈을 받았지! 여러분, 이 비열한 놈을 경멸하십시오, 다들 경멸해 주십시오, 이 몸은 그래도 싼 놈입니다!"

"피고." 하고 재판장이 소리쳤다. "한마디만 더 하면 퇴장 명령을 내리겠소."


"그 돈 때문에 저 인간은 괴로워했습니다." 카챠는 경련이라도 난 듯 서둘러 대며 계속했다.

"그 돈을 저에게 돌려주고 싶어 했지만, 그러고 싶어 했지만, 이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 쌍년을 위하자니 돈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를 죽였지만 그러고서도 저한테 돈은 돌려주지 않고 오히려 저년을 데리고 그 시골로 갔다가 거기서 체포된 겁니다. 저 인간은 거기서 또다시, 아버지를 죽이고 빼앗은 돈을 죄다 써 버렸어요. 아버지를 죽이기 하루 전날, 저에게 이 편지를 쓴 겁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썼던 거죠.

저는 그때 바로 알았어요, 저 인간이 설령 살인을 저지른다고 해도 제가 이 편지를 아무한테도 보여 주지 않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그걸 알고 있었기에 악에 받쳐 썼다는 것을. 안 그랬더라면 이런 걸 쓰지도 않았을 테죠. 저 인간은 제가 자기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또 자기를 파멸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걸 알았던 겁니다! 어쨌거나 읽어 보십시오, 주의 깊게 읽어 보시라고요, 그러면 여러분은 저 인간이 이 편지에 모든 걸, 모든 걸 미리 적어 두었다는 걸 아시게 될 테니까요. 제발 한 자도 놓치지 말고요. 거기에 '이반이 떠나기만 하면 죽일 테다.'라는 어구가 있습니다. 즉, 어떻게 죽일지를 미리 꼼꼼하게 생각해 뒀던 겁니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는 악의 가득한 기쁨을 감추지 않으며 표독스럽게 재판진에게 일러바쳤다. 오, 그녀가 이 치명적인 편지를 섬세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읽었으며 그 한 줄 한 줄을 연구했음이 보였다. "술에 취하지 않았더라면 저한테 편지를 쓰진 않았을 테지만, 어쨌거나 보십시오, 거기 모든 것이 미리 적혀 있는데, 나중에 아버지를 죽인 것과 정말 똑같아요, 이건 그야말로 그 프로그램입니다!"


이렇듯, 그녀는 앞뒤를 잃고 소리를 질렀으며 물론 자기에게 어떤 결과가 생겨도 상관없다는 투였는데, 사실 한 달 전부터, 어쩌면 그때부터 악의에 차 몸을 벌벌 떨면서 '이걸 재판진에게 읽히는 게 어떨까?'라는 꿈을 꾸어 왔던 만큼 그 결과쯤은 미리 예견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꼭 산 위에서 뛰어내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바로 그 자리에서 편지가 서 기에 의해 큰 소리로 낭독되자 가히 전율할 만한 인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기억난다.


미챠에게 "이 편지를 인정하십니까?"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예, 제가 쓴 편지가 맞습니다!" 미챠가 소리쳤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안 썼을 겁니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증오해 왔지, 카챠, 하지만 맹세코, 맹세코, 나는 당신을 증오하면서도 사랑했지만, 당신은 내게 그러지 않았던 거야!" 그는 절망에 차서 양손을 뭉개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검사와 변호사는 번갈아 가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는데, 주된 요지는 '왜 당신은 아까까지만 해도 이 서류를 숨겼으며 또 조금 전에는 완전히 다른 기분과 어조로 증언을 했던 것인가.'였다.


"그래요, 그렇습니다, 아까 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명예와 양심에 반하는 거짓말이었죠. 하지만 아까는 저 사람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저 사람이 저를 그토록 증오하고 또 증오했으니까요. 오, 저 사람은 저를 끔찍할 정도로 경멸했습니다, 언제나 경멸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때 제가 그 돈 때문에 저 사람의 발밑에 몸을 숙였던 그 순간부터 저를 경멸해 온 거예요. 저는 그걸 눈치챘어 요…… 그때 곧바로 그걸 느꼈지만 오랫동안 저 자신의 느낌을 믿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 사람의 눈 속에서 몇 번이나 '어쨌거나 당신은 그때 제 발로 나를 찾아왔던 거야.'라는 말을 읽었습니다. 오, 저 사람은 이해하지 못했어요, 제가 그때 왜 달려갔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오직 더러운 생각만 할 줄 아는 인간이니까! 저 사람은 자기 잣대로 판단해선 다들 자기와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저 사람이 저와 결혼하고 싶어 했던 것은 오직 제가 유산을 받았기 때문, 그 때문이에요! 저는 언제나 그 때문이 아닐까 하고 의심해 왔어요! 오, 저 사람은 짐승만도 못해요! 제가 제 발로 저 사람을 찾아갔다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 겨 한평생 저 사람 앞에서 절절매게 될 거라고, 그걸 빌미로 영원히 저를 경멸해도 괜찮고 또 그렇기 때문에 주도권을 쥘 수 있으리라고 평생 확신했던 겁니다 - 저 사람이 저와 결혼하려고 했던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어요!

그래요, 이 모든 것이 정말 그렇다니까요! 저는 저의 사랑으로, 무한한 사랑으로 저 사람을 정복하고자 했고 심지어 저 사람의 배반마저도 참으려고 했지만 저 사람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알아주질 않았어요. 아니, 저 인간이 뭐든 제대로 알아먹을 수 있는 작자인가요. 어디! 정말 불한당 같은 인간인걸 요! 이 편지를 저는 다음 날 저녁에야 받았습니다, 선술집에서 제 앞으로 배달되었지요. 아침만 해도, 그날 아침만 해도 저는 모든 걸, 심지어 배반까지도 용서하고 싶었단 말입니다!"


물론, 재판장과 검사는 그녀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내 기억으론, 그들이 그녀에게 '우리는 당신이 얼마나 힘든지 이해한다, 믿어 달라, 우리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다.' 등의 얘기를 했던 것을 들었지만, 어쨌거나 그럼에도 히스테리와 광기에 휩싸인 여자에게서 제법 괜찮은 증언을 끌어냈던 셈이다. 끝으로 그녀는 이반 표도로비치가 요 두 달 내내 '저 불한당 같은 살인자'인 자신의 형을 구하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거의 미치게 된 경위를 굉장히 명료하게 묘사했는데, 비록 일순간이긴 하지만 저렇게 긴장된 상태에도 이런 명료함이 나타나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그분은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그녀가 소리쳤다.

"그분은 자기도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고 어쩌면 자신이 아버지의 죽음을 바랐는지도 모른다고 저에게 고백하면서 줄곧 자기 형님의 죄를 덜어 주고 싶어 했습니다. 오, 이 얼마나 깊고도 깊은 양심입니까! 그분은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스스로를 죽도록 괴롭혔습니다! 저에게 모든 것을 털어놨어요, 모든 것을. 그분은 매일 저를 찾아와 자신의 유일한 벗인 저와 얘기를 나눴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저는 그분의 유일한 벗입니다!

그분은 두 번에 걸쳐 스메르쟈코프를 찾아갔습니다. 어느 날 그분은 저한테 와서 이렇게 말했어요. 즉, 살인을 한 것이 형이 아니라 스메르쟈코프라면 어쩌면 나도 유죄일지 모른다, 왜냐면 스메르쟈코프는 내가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내가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고요.

그때 저는 이 편지를 꺼내서 그분에게 보여 주었고, 그분은 살인을 저지른 것이 형님이라고 완전히 확신하게 됐는데, 이것 때문에 그분은 이미 심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죠. 그분은 자신의 친형님이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라라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겁니다! 일주일 전부터 저는 그분이 이로 인해 몸이 편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최근 그분은 저의 집에 와 있으면서도 미망에 들떠 헛소리를 하곤 했어요. 저는 그분의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걸 알았어요.

길을 걸으면서도 그렇게 헛소리를 했던 모양이에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봤다고들 하니까요. 모스크바에서 온 의사는 저의 부탁대로 그저께 그분을 진찰해 보고는 저에게 그분이 섬망증 증세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 인간, 저 불한당 같은 인간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어제 스메르쟈코프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 때문에 그분은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머지 미쳐 버린 거예요!"


오, 물론 이런 말이나 이런 고백은 어쨌거나 일생에서 꼭 한 번 - 그것도 예컨대 단두대에 오를 때처럼 죽음 직전의 순간에만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카챠는 원래 그럴 만한 성격이었던 데다가 이것이야말로 그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젊은 난봉꾼 앞에 몸을 던졌던 바로 그 저돌적인 카챠의 모습이었다. 또한 그런 여자였기 때문에, '미챠의 고귀한 행위'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자신의 처녀로서의 수치심을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바로 지금도 정확히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희생했는데, 이건 다른 사람을 위해서였으니, 어쩌면 오로지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이 다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히 느끼고 깨달았을 것이다.


오, 어쩌면 이 분열된 사랑도 진짜 사랑으로 자라날 수 있었으리라. 카챠는 오로지 이것 만을 바랐지만, 미챠는 배신을 함으로써 그녀를 영혼 깊숙이 모욕해 버렸고 그녀의 영혼은 그것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복수의 순간은 느닷없이 날아왔고, 모욕받은 여성의 가슴속에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쌓여 온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번에도 느닷없이 수면 위로 터져 나와 버렸다. 그녀는 미챠를 배반했지만, 자기 자신도 배반했던 것이다! 물론,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나자 곧 긴장이 탁 풀리면서 수치심이 그녀를 압박해 왔다. 또다시 히스테리가 시작되었고 그녀는 울고불고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결국 그녀를 법정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루셴카의 분노


그 순간, 그루셴카가 울부짖으면서 벌떡 일어나 미챠한테로 달려들었는데, 미처 그녀를 제어할 틈도 없었다.

"미챠!" 그녀가 울부짖었다. 당신의 저 뱀 같은 년이 당신을 파멸시켜 버렸어! 여러분, 저년이 바로 이렇게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군요!" 그녀는 너무 분해서 몸을 부르르 떨면서 소리쳤다. 재판장의 손짓에 따라 그녀를 붙잡아 법정에서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쉽사리 굴복하지 않고 몸부림을 치며 다시 미챠한테로 가려고 발버둥쳤다. 미챠도 울부짖으며 역시나 그녀한테로 가려고 발버둥쳤다. 결국, 두 사람은 제압당하고 말았다.


그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모스크바에서 온 의사가 나와 재판진에 환자가 극히 위험한 섬망증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에 즉각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검사와 변호사의 질문에 대해서는 환자가 몸소 그저께 자기를 찾아왔고 그때 곧 섬망증을 앓을 것이라고 미리 경고했지만 환자가 치료를 원치 않았다고 확증했다. 그러고서 "환자는 확실히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생시에도 환영을 본다느니 매일 저녁 사탄의 방문을 받는다느니 하는 고백을 직접 했습니다."라며 말을 끝맺었다.


카체리나 이바노브나가 제시한 편지는 물증에 포함되었다. 재판부는 논의를 거친 뒤 재판의 심리를 계속하되, 예상 밖의 두 증언(카체리나 이바노브나와 이반 표도로비치의 증언)을 모두 조서에 기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재판의 심리 내용은 더 이상 묘사하지 않겠다. 더욱이 나머지 증인들의 증언은 비록 자기만의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저 앞선 증언들의 반복이나 확증에 불과했다.


다들 흥분해 있었고 다들 최후의 파국 덕택에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양 열렬하게 조바심을 내며 그저 양측의 논고 및 변론, 그리고 선고가 내려지길, 즉 어서 빨리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길 기다렸다. 페츄코비치는 카체리나 이바노브나의 증언에 충격을 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대신 검사는 승리감에 차서 기고만장했다. 재판 심리가 끝나자 거의 한 시간 정도 휴정이 선언되었다. 드디어 재판장은 법적 공방을 시작하게 했다. 이렇게 우리의 검사 이폴리트 키릴로비치가 논고를 시작했을 때는 정확히 저녁 8시였던 것 같다.


<12장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