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지음
Chapter 4 유전자 기계
(The gene machine)
생존기계는 유전자의 수동적 피난처로 처음 생겨났다. 처음에는 경쟁자들과의 화학전으로부터, 그리고 우연한 분자들의 폭격으로부터 유전자를 지키는 벽에 불과했다.
초기에는 수프 속의 유기분자를 먹이로 하다가 이 먹이가 사라지면서 오늘날 식물이라 불리는 생존 기계의 한 갈래는 스스로 직접 햇빛을 사용해 복잡한 분자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동물이라고 불리는 다른 갈래는 식물을 먹든지 다른 동물을 먹든지 하여 식물의 화학적 노동을 가로채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 두 갈래는 점점 더 교묘한 책략을 진화시켜 곁가래에 또 곁갈래가 생겨나 바다에서, 지상에서, 공중에서, 땅속에서, 나무 위에서, 다른 생물체 내에서 점점 더 특수화된 생활 방식을 진화시켜 오늘날의 다양한 동식물 세계를 만들어 냈다.
개체는 유전자의 군체
동식물은 모든 유전자의 완전한 복사본이 모든 세포에 들어 있는 다세포 생물로 진화했다. 도킨스는 몸을 유전자의 군체, 세포를 유전자 화학 공장의 작업 단위로 보고 있다.
하지만 행동 양상을 보면 이미 몸은 부정할 수 없는 개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하나의 동물은 하나의 잘 조정된 총체, 하나의 단위로 움직인다. 따라서 군체보다는 단위가 더 맞는 것 같다.
치열한 자연 경쟁에서 공동체와 같은 몸이 중추에 의해 조절되는 쪽이 무질서한 쪽보다 틀림없이 더 유리했을 것이기 때문에 복잡한 유전자 간의 공진화가 계속 진행되어 왔고 오늘날에는 개개의 생존 기계가 공동체의 성질을 갖는다는 점을 사실상 인식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이하에서는 ‘이타적 행동’이나 ‘이기적 행동’은 한 동물 개체가 다른 개체에 대해서 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동물의 행동
동물의 행동은 식물보다 수십만 배나 빠르고 상황에 대한 반응도 민첩한 편이다. 이러한 민첩성을 가능하게 만든 진화적 부품은 근육이다.
근육도 다른 기계의 동력 기관처럼 화학 연료에 저장된 에너지를 기반으로 기계적인 운동을 만들어내는 엔진이다. 증기 기관이나 내연 기관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기계력은 기압이 아닌 장력의 형태라는 점이다. 그러나 근육도 지렛대에 힘을 가한다는 점에서는 엔진과 유사하다.
근육에 대해서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생존 기계가 조작되는 타이밍의 복잡성이다. 인공적인 기계들과 비교해서 우리의 근육이 움직이는 복잡성을 비교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손색없는, 더 나아가서 우리 인간의 근육은 인공적인 기계가 여전히 따라잡지 못하는 섬세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생존 기계가 행동의 시간을 조절하는 데 쓰는 장치는 컴퓨터와 공통점이 많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조작 방식은 전혀 다르다.
생물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신경 세포, 즉 뉴런은 그 내부 활동이 트랜지스터와는 전혀 다르고 뉴런에서 뉴런으로 전해지는 신호는 컴퓨터의 펄스(pulse) 신호와 약간 닮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뉴런은 수십만 개의 다른 성분과 연결되며, 인간의 뇌에 수십억 개의 뉴런이 있기 때문에 그 복잡성은 트랜지스터보다 훨씬 앞선다. 식물은 옮겨 다니지 않고도 살 수 있기 때문에 뉴런이 필요 없으나, 대부분의 동물 집단에는 뉴런이 있다.
뉴런은 기본적으로 세포로서 핵과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세포막은 가늘고 길며 하나의 뉴런에는 ‘축삭 돌기’라는 특별히 긴 ‘철사’가 한 가닥 있다. 그 폭은 육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좁지만 그 길이는 수 미터에 달하기도 한다. 축삭돌기는 보통 다발로 되어 있고 많은 가닥이 꼬여 굵은 케이블, 즉 신경을 형성한다.
어떤 뉴런은 축삭돌기가 짧고 신경절 또는 더 큰 경우에는 뇌라고 하는 빽빽한 신경 조직의 집합 속에 들어 있다. 뇌나 컴퓨터나 복잡한 입력 패턴을 분석하여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조회한 후 복잡한 출력 패턴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뇌-근수축의 제어와 조정
뇌가 생존 기계의 성공에 실제로 기여하는 것은 주로 근수축의 제어와 조정을 통해서다. 이를 위해서는 뇌에서부터 근육에 이르는 케이블이 필요한데 이를 운동 신경(motor nerve)이라 부른다.
근수축의 제어와 조정이 유전자를 효과적으로 보존하는 것으로 이어지려면, 근수축의 타이밍과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타이밍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자연선택은 감각 기관, 즉 외부세계의 물리적 사건들의 양상을 뉴런의 펄스 신호로 바꾸는 장치를 갖춘 동물을 선호했을 것이다. 감각계의 성능은 어떠한 인공 기계에 비하더라도 훨씬 복잡한 패턴 인식이 가능하다.
감각 기관이 근육과 복잡하고 간접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매개물로서 뇌와 비슷한 것이 필요했다. 진화의 과정에서 기억이 ‘발명’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로 인해 근수축의 타이밍은 가까운 과거뿐 아니라 먼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생존 기계의 행동에서 가장 뚜렷한 특성의 하나는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행동과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성은 (최소한 사람에서는) ‘의식’이라고 불리는 특성을 진화시켰다. 생존 기계들이 정말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미해결 상태이지만 최소한 목적의식이 있는 듯 행동한다. 그 예가 와트 증기 기관의 ‘조속기’다.
피드백
와트 증기 기관의 조속기는 증기 기관의 힘으로 도는 한 쌍의 공이 있고 그 공은 각각 경첩이 있는 팔의 끝에 붙어 공급되는 증기의 양을 자동적으로 조절하여 엔진의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이 조속기가 ‘바라는’ 상태란 어떤 특정한 회전 속도이고 조속기가 이를 의식적으로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기계의 ‘목표’는 단순히 기계가 도달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목적 기계는 음의 피드백(negative feedback)과 피드 포어드(feed-forward, 실행 전에 결함을 예측하고 실시하는 제어)와 같은 기본 원리를 활용하여 더욱 복잡한, ‘생명체 같은’ 행동을 만들어 낸다.
유도미사일이 목적의식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미사일을 직접 조정하는 인간 조정사가 없다는 것을 믿기 어렵지만 이러한 원리는 현재 생물체의 작동에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컴퓨터 체스와 유전자의 제어
유전자가 행동을 ‘조종‘한다고 말할 때 그 조정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컴퓨터 체스는 좋은 예이다.
컴퓨터 체스에 있어 체스 프로그램은 어떤 컴퓨터를 쓰더라도 상관없고 프로그래머의 역할은 인형극에서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처럼 매 순간 컴퓨터를 조종하지 않고 각 경우의 수를 예상하여 그 경우에 좋다고 생각되는 수를 미리 컴퓨터에 입력시키는 것이다.
결국 프로그래머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미리 많은 양의 지식과 전략 및 기술에 대한 힌트를 적절히 섞어 입력하여 최선의 상태로 컴퓨터를 설정해 놓는 것이다.
유전자 역시 인형을 직접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머처럼 간접적으로 자기 생존 기계의 행동을 제어한다. 유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미리 생존 기계의 체제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 후 생존 기계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며 유전자는 그저 수동적인 상태로 그 안에 들어앉게 된다.
유전자가 수동적인 된 이유는 ‘시간적 차이’때문이다. 도킨스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프레드 호일과 존 엘리엇의 소설 《안드로메다의 A(A for Andromeda)》 이야기를 예로 든다.
2백 광년이나 멀리 떨어져 있는 안드로메다 성좌에 어떤 문명이 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문화를 먼 외계에까지 전하고 싶어 한다. 이들은 무선 전파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모아 방대하고 끊기지 않는 메시지를 계속 송출했다.
지구의 조드럴 뱅크 천문대의 전파 망원경에 이 메시지가 포착되어 컴퓨터를 통해 해독되고 프로그램이 작동했는데 그 결과는 거의 인간을 파멸로 이르게 했다. 이 컴퓨터는 세계를 지배하기 직전까지 갔다가 결국 영웅의 도끼에 찍혀 파괴되어 버린다.
그들은 컴퓨터가 시시각각 하는 일을 직접 제어하지 않았고 그 컴퓨터의 의사 결정과 행동은 전적으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도록 설계되었으며, 2백 년이라는 장벽 때문에 그 지령은 모두 미리 만들어져 있어야 했다.
그들의 프로그램은 주변의 정보를 흡수하는 능력과 융통성이 훨씬 컸을 것이고, 그 프로그램이 지구에서뿐만 아니라 진보된 기술을 가지는 세계라면 어떠한 곳에서라도 통용되도록 설계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단백질 합성을 제어하는 일을 통해서 작용하는데 이것은 세상을 조종하는 강력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리다.
체스 게임이 그렇듯이 생명체가 맞닥뜨릴 수 있는 우발적 사건이란 수없이 많기 때문에 유전자는 생존 기계에게 생존 기술의 각론이 아니라 일반 전략이나 비결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영(John Zachary Young)이 지적했듯이(“The life of mammals”에서) 유전자는 생존을 위해 미래의 상황에 대해 예측과 비슷한 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그 유전자의 예측이 빗나가면 그 유전자는 생존 기계가 죽기 때문에 사라질 것이다.
유전자는 도박꾼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예측이란 항상 불확실하게 마련이므로 생존 기계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도박이다. 따라서 유전자가 할 일은 뇌가 평균적으로 이득이 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뇌에 미리 프로그램을 짜놓는 것이다. 진화라는 카지노에서 쓰이는 판돈은 생존이다.
동물은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 가능성을 재보는 것이 필요한데, 동물이 의식적으로 계산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올바른 도박을 하도록 뇌를 만들어 준 유전자의 개체가 당연히 더 잘 살아남고 따라서 같은 유전자를 퍼뜨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동물 중에서도 수놈은 큰돈을 건 모험적인 도박꾼으로, 암놈은 안정형 투자가로 볼 수 있다. 여러 수놈이 암놈을 놓고 싸우는 일부다처형 종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시행착오
예측 불허인 환경에서 예측을 하기 위해 유전자가 취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학습 능력을 만드는 것이다.
이 경우 프로그램은 생존 기계에게 “보상과 불쾌한 것들의 목록을 만들어 놓고,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를 한 뒤에 불쾌한 것 중의 하나가 발생하면 다시는 그것을 하지 마라. 그러나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생기면 그것은 반복하라”라는 지령을 내릴 수 있다.
이 방식은 자세한 규칙의 수를 대폭 줄일 수 있고 자세히 예측하지 못한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반면 여전히 예기치 못한 가능성이 발생할 수는 있으며, 무작위로 과거의 의사 결정을 기록했다가 승리하기 직전에 썼던 전술의 비중을 더 크게 하여 그 전술을 선택할 확률을 높이는 ‘학습 전략’을 사용할 수도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시뮬레이션이다. 당신은 머릿속에 택할 수 있는 대안들을 택했을 때 각각 어떤 일이 생길까를 상상한다.
미래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생존 기계는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학습할 수 있는 생존 기계보다 한 단계 앞서 있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보다 안전하면서 보다 신속하다.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능력의 진화는 주관적 의식의 진화를 초래한 듯하다. ‘의식’이란 실행의 결정권을 갖는 생존 기계가 그들의 궁극적 주인인 유전자로부터 해방되는 진화의 정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뇌는 일상생활을 관리할 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도 있으며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하는 힘까지 갖추고 있다. 인간은 이 점에서 대단히 특수한 경우에 속한다.
유전자는 생존 기계와 신경계를 조립하는 방법으로 지시함으로써 생존 기계의 행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지만 그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순간순간 결정하는 것은 신경계다. 유전자는 일차적 정책 수립자이며 뇌는 집행자다.
그러나 뇌가 고도로 발달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정책 결정권을 갖게 되었으며, 결국 이 경향이 계속되면 유전자는 생존 기계에 단 하나의 종합적인 정책, 즉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라고 지시하게 될 것이다.
진화는 실제로 유전자 풀 내 유전자들이 차등적 생존을 통해 단계적으로 일어난다. 즉 어떤 행동 패턴이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다른 행동을 ‘담당하는’ 경쟁적 유전자, 즉 대립 유전자보다 유전자 풀 속에서 더 잘 생존해야 한다.
행동에 대한 유전자
이와 관련된 사례로 도킨스는 부저병(foul brood)에 걸린 꿀벌의 사례를 들고 있다. 이는 꿀벌의 애벌레나 번데기가 벌집 속에서 세균에 감염되어서 썩는 병이라고 한다.
양봉벌 중에서 특히 어떤 종류는 다른 종류보다 이 병에 걸리기 쉬운데, 몇 가지 경우에는 그 원인이 행동의 차이에 근거한다.
위생적인 종류는 병에 걸린 애벌레를 발견하고 봉방에서 끄집어내 버림으로써 병을 빨리 근절할 수 있다. 한편 감염되기 쉬운 종류는 이 '위생을 위한 영아 살해'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병에 걸리기 쉽다.
로센불러(W. C. Rothenbuhler)는 잡종 1세대의 일벌들이 모두 비위생적(unhygienic)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위생적(hygienic) 형질의 유전자는 인간의 청색 눈의 유전자처럼 열성으로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로센불러가 잡종 제1세대와 위생적 형질의 종류를 '역교배(backcrossing)'시키자 태어난 일벌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첫 번째 그룹은 완벽한 위생적 행동을 보였다. 두 번째 그룹은 전혀 위생적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세 번째 그룹은 중간쯤 되는 행동, 즉 이 그룹은 병에 걸린 애벌레가 있는 봉방의 뚜껑을 떼기는 했지만 그 뒤 애벌레를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 결과를 기반으로 로센불러는 뚜껑을 떼는 행동에 대한 유전자와 애벌레를 버리는 행동에 대한 유전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로센불러는 겉보기에 완전히 비위생적인 일벌들은 애벌레를 내버리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뚜껑을 떼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그 능력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라 추측했다.
그래서 그는 이 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봉방의 뚜껑을 떼어주었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겉보기에 비위생적인 일벌 중 절반이 완전히 정상적인 '애벌레 버리기' 행동을 보였다.
도킨스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유전자에 대한 정의를 다시 이야기한다. 우리는 유전자에서 행동에 이르는 배 발생의 화학적 인과 관계의 사슬이 어떻게 되는지 하등 모르는 상태에서도 "무슨 행동에 대한, 무슨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다른 사실은 유전자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생존 기계의 행동을 영향을 미칠 때 서로 '협력'한다는 것이다. 애벌레를 버리는 유전자는 뚜껑을 떼는 유전자가 없다면 필요 없을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위와 같은 유전학적 실험을 통해서 이러한 두 유전자가 세대를 거쳐 전달되면서 원칙상 얼마든지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의 기능에 관한 한 우리는 이들을 하나의 협력 단위로 생각할 수 있지만, 복제상에서 이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자다.
중요한 사실은 표준적인 환경에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하나의 유전자가 대립 유전자에 비해 특정한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개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생존 기계가 다른 생존 기계의 행동 또는 신경계의 상태에 영향을 미칠 때, 그 생존 기계는 그의 상대와 의사소통했다고 할 수 있다. 동물들은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동물 행동학자들의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의사소통 신호는 송신자와 수신자 상방이 서로 이익을 얻도록 진화한다. 동물들은 참된 정보를 다른 동물로부터 받았을 때에는 그에 따라 행동해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동물들이 거짓된 정보를 전하는 일은 없을까?
동물들의 거짓말
물론 그들이 의식적으로 거짓된 정보를 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속이는 것과 기능적으로 같은 것'이다.
예컨대 어떤 새가 매가 없는데도 '매가 있다'라는 신호로 동료를 겁주어 쫓아 버리고 먹이를 혼자 독점했다면, 이 새는 '거짓말을 하는 것과 기능적으로 같은 것'을 행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계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종종 존재한다. 먹어도 독이 없는 많은 곤충은 다른 맛없는 곤충이나 침을 쏘는 곤충의 모습을 흉내 내서 자신의 몸을 지키곤 한다.
아귀는 바다 밑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 자신의 기다란 '낚싯대' 끝에 매달린 지렁이만 바다 표면에서 움직이게 한다. 작은 물고기가 접근하면 그 낚싯대에 달려있는 지렁이같이 생긴 미끼는 물고기를 유인해서 아귀가 기필코 잡아먹어버린다.
반딧불이들은 선원들이 특정 등대의 깜빡거리는 패턴을 찾는 것처럼 자기 종만의 깜빡거리는 패턴을 찾는다. 포투리스(Photuris) 속 암컷은 포티누스(Photinus) 속 암컷의 신호를 흉내 내면 포티누스 속 수컷을 유인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속은 포티누스 수컷이 접근하면 포투리스 암컷은 즉석에서 그 수컷을 잡아먹어 버린다.
이렇게 보면 동물의 의사소통 신호는 본래 서로의 이익을 증진시키도록 진화되었고 그런 뒤 나쁜 동물들이 이 신호를 악용하게 되었다고 믿는 것도 너무나 순진한 믿음이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의 의사소통에는 처음부터 사기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모든 동물의 상호 작용에는 적어도 어느 정도 이해의 충돌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는 진화의 관점에 게임 이론의 내용을 도입하여 이해 충돌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소개할 것이다.
Chapter 5 공격-안정성과 이기적 기계
(Aggression: stability and the selfish machine)
이 장부터는 동물들의 사회적 행동(Social Behavior)에 관한 주제들이 다루어지는 것 같아 최근 생물학계의 ‘사회적 행동’에 대한 분류 체계를 참고로 인용해 본다(이 장에서는 아래 표시 부분을 다루고 있다).
한 생존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의 아이 또는 가까운 친척이 아닌 다른 생존 기계는 바위나 냇물이나 한 조각의 먹이 같은 환경의 일부다. 그러나 바위나 냇물과 다른 점은 반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선택은 환경을 가장 잘 이용하도록 자기의 생존 기계를 제어하는 유전자를 선호한다. 이것은 같은 종이거나 다른 종이거나 상관없이 다른 생존 기계를 가장 잘 이용하는 것도 포함한다.
여러 종의 생존 기계는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생존 기계에 영향을 준다. 그들은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일 수도 있고, 기생자와 숙주의 관계이거나 희소 자원을 놓고 싸우는 경쟁 관계일 수도 있다.
동종끼리의 경쟁
같은 종의 생존 기계끼리는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기 종에 속하는 개체군의 반은 잠재적으로 교미 상대이며, 잠재적으로 자기의 자손을 낳고 열심히 길러 줄, 착취 대상인 부모가 될 수 있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서로 매우 닮아 있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생활 수단으로 유전자를 지키는 기계이므로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자원에 대해서 직접적인 경쟁 상대가 되기 때문이다.
신사적인 동물
생존 기계에게 가장 논리적인 방책은, 자기의 경쟁자를 죽여서 가능하면 먹어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동종의 개체를 잡아먹는 동물이 실제로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동족살해가 자연계에서 자주 일어나는 현상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들이 기회가 생길 때마다 동종의 경쟁자를 죽이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집단 선택설은 이에 대해서 개체가 '종의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마치 동물들이 글러브를 끼고 서로를 위해서 신사적인 싸움을 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론에 의하면, 그러한 행동방식은 개체가 생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싸움뿐만 아니라 모든 행동에는 이익(이득)과 대가(손실)가 따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B와 C는 모두 나의 경쟁자인데 내가 B를 죽이면 잠재적으로 C이 경쟁자 하나를 제고해 C에게 이익을 주는 셈이 될 수 있다. 즉 함부로 경쟁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에는 뚜렷한 이익이 없다는 것이다.
싸우느냐 마느냐
한편 어떤 특정한 경쟁자를 선택적으로 죽이거나 그와 싸우는 것은 좋은 계획일지 모른다. 만약 B가 암놈이 많이 있는 큰 하렘(수놈 한 마리가 여러 암놈을 거느리며 교미하는 번식 체계 및 그 암놈들의 무리)을 가진 바다표범이고 B를 죽여 그의 하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경우도 B가 반격을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내가 죽을 확률이 더 높을 수도 있다. 당장 서두르기보다는 조금 기다리는 편이 결과적으로 나의 승률을 높이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야기는 실제로 동물이 손익 계산을 따지고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마치 '손익계산'이 되어있는 것처럼 행동해서 서로 무작정 싸움을 걸지 않게 된 동물들이 결과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더욱 유리하게 되면서 그런 습성이 진화되었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면 동물들은 겉으로 보기에 '손익계산'이 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어떠한 메커니즘으로 진화시켰을까?
이와 관련된 설명으로는 메이너드 스미스(J. Maynard Smith)가 프라이스(G. R. Price), 파커(G. A. Parker)와의 공동 연구에서, ‘게임 이론’이라는 수학 분야를 응용하여 만든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 이하 ESS)’ 개념이 있다.
여기서 ‘전략’이라는 것은 유전자에 의해 미리 프로그래밍이 된 행동 방침을 뜻한다. 일상적으로 인간들이 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 떠올리는 것과 같은 전략이 아니라 자연선택에 의해 형성된 메커니즘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ESS는 “그룹에 있는 대부분의 구성원이 그 전략을 채택할 때, 다른 대체 전략은 그 전략을 능가할 수 없는 전략”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개체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전략은 나머지 개체군 대부분이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좌우된다는 것이다.
매파와 비둘기파
ESS 개념을 동물의 공격적 행동에 적용하기 위해서 가장 단순한 모델 하나를 살펴보자. 어떤 종류의 개체군에서는 개체들이 채택하는 싸움 전략이 두 종류, 즉 매파와 비둘기파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매파는 늘 맹렬히 싸우고, 심하게 다쳤을 때가 아니면 굴복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에 비둘기파는 품위 있는 정통적 방법으로 위협만 할 뿐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는 편이다.
매파의 개체들끼리는 한편이 중상을 입거나 죽을 때까지 싸운다. 비둘기파끼리 부딪칠 때는 어느 편도 중상을 입거나 다치지 않는다.
이 모델에서는 어떤 개체가 자신의 경쟁자가 매파인지 비둘기파인지 미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 경쟁자와 싸우고 나서야 어떤 전략을 쓰는지 파악가능하고, 이전에 그 개체가 다른 특정 개체와 싸웠던 과거 기억은 가질 수 없다고 가정한다.
싸우는 개체들에게 임의적인 ‘점수’를 부여하도록 하자. 예를 들어 승자에게는 50점, 패자에게는 0점, 중상자에게는 -100점, 장기전에 따른 시간 낭비에는 -10점을 준다고 하자.
구성원 전원이 비둘기파인 개체군의 경우, 승자는 50점을 얻지만 째려보는데 긴 시간이 걸려 -10점이므로 40점을 얻고, 패자 역시 시간을 낭비했으므로 -10점, 결국 평균 점수는 +15점이다.
이에 비해 매파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그는 항상 비둘기파를 이기므로 +50점이 되고 그 결과 매파의 유전자는 개체군 내에 급속히 퍼져 모두 매파가 되었을 경우에는, 절반은 한쪽이 심하게 다쳐 100점이 깎이고 승자는 50점을 얻으므로 결국 평균은 -25점이 된다.
이때 다시 그 사이에서 비둘기파 한 개체가 있다면 그의 평균 득점은 0점으로 매파 개체군 내의 평균 득점보다 높으므로 다시 그 유전자는 개체군 내에서 퍼질 것이다.
결국 매파의 유전자가 압승해서 유전자 풀에 있는 대다수가 매파로 변하다가도, 어느 시점부터는 비둘기파 돌연변이 개체가 이득을 보면서 그 수를 늘려가다가, 비둘기파가 많아지면 다시 매파의 유전자가 번성하거나 하면서 결국엔 그 비율이 ESS의 지점에서 멈출 것이라고 한다.
임의의 득점 시스템으로 계산해 보면, 안정된 비율은 비둘기파가 5/12, 매파가 7/12인 것을 알 수 있다. 개체군이 이와 같은 안정된 비율을 가지면 매파의 평균 득점과 비둘기파의 평균 득점은 같아진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어느 한쪽을 선호하지 않는다.
만약 개체군 내 매파의 수가 점점 늘어 그 비율이 7/12를 넘으면, 비둘기파가 더 이익을 보기 시작하여 그 비율은 원래의 안정한 비율로 돌아온다. 안정된 성비가 50대 50인 것처럼, 이와 같은 가상적 예에서 매파 대 비둘기파의 비는 7대 5다. 어느 경우에서든 안정점 부근에 서 변동이 있었다고 해도 그 변동 폭은 그리 크지 않다.
매파 7/12, 비둘기파 5/12로 된 안정한 개체군 내에서 한 개체의 평균 득점은 6¼이 된다. 이것은 그 개체가 매파든 비둘기파든 같다. 그런데 이 6¼이라는 득점은 비둘기파 개체군 내 비둘기파 개체의 평균 득점(15) 보다 훨씬 낮다. 개체군 구성원 전원이 비둘기파가 되는 것에 동의하기만 하면, 어느 개체나 이득을 보는 것이다.
전원이 비둘기파가 되는 단순한 공모의 경우 각 개체는 평균 득점이 15점이나 되며 그 집단 내 모든 개체의 득점은 ESS 집단보다 훨씬 높기 때문에 집단 선택설은 전원이 비둘기파가 되기로 공모한 집단이 진화할 것이라고 예측할 것이다.
그러나 개체들 간의 공모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장기간에 걸쳐 전원에게 이익이 되는 경모의 경우에도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확실히 어떤 개체도 ESS 집단에 있는 것보다 비둘기파 공모 집단에 있는 것이 더 유리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비둘기파 공모 집단 속에서 한 개체의 매파는 그 성적이 너무 좋기 때문에 이 집단에서 매파의 진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그 공모는 내부의 불신 행위로 말미암아 파기될 수밖에 없다.
ESS는 내부로부터의 배신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균형 상태다. 도킨스는 동물들 간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도 집단선택설보다는 유전자 선택설이 훨씬 더 설명력 있다고 주장한다.
보복자와 불량배
이러한 단순한 모델에 몇몇 조건부 전략을 추가해 보자. 추가할 전략에는 보복자 전략, 불량배 전략, 시험 보복자 전략이 있다.
보복자는 매파에게 공격당했을 때는 매파처럼 행동하고 비둘기파를 만났을 때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 또 다른 보복자를 만났을 때는 비둘기파처럼 행동한다.
불량배는 누군가가 반격해 올 때까지는 누구에게나 매파처럼 행동하지만 반격당하면 즉시 도망친다.
시험 보복자는 기본적으로는 보복자와 같으나 가끔 시험 삼아 매파처럼 호전성을 높인다. 상대가 반격하지 않으면 계속 매파처럼 행동하지만, 상대방이 반격하면 다시 비둘기파의 전통적인 위협 행동으로 되돌아간다. 공격을 받는다면 보복자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보복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상에서 이러한 모든 전략을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놔두면 보복자만이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 된다(이에 대해 도킨스는 보주에서 이 문장은 잘못된 것이며 그 이후 진행된 동적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진정한 ESS는 매파와 불량배가 안정된 비율로 혼합된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시뮬레이션과 실제
이러한 이론적 결론은 대부분의 야생 동물들 사이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과 그리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연계의 모든 현상의 비용과 이익을 실제 수치에 맞추어 보기에는 우리의 지식이 너무도 부족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임의로 정한 수치에서 단순히 얻어지는 결과를 가지고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결론은 ESS가 진화할 것이라는 것, ESS는 집단 공모에 의해 얻어지는 최적 상태와는 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상식은 사실을 잘못 이해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소모전
메이너드 스미스가 생각한 다른 게임 상황은 ‘소모전(war of attrition)’이다. 이런 상황은 위험한 싸움은 결코 하지 않는, 예를 들면 부상 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는 갑옷으로 덮인 종에서 볼 수 있다.
소모전의 싸움은 항상 모두 전통적으로 정해진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둘 중 어느 편이든 물러서면 끝나는 것이다.
이들의 통화는 ‘시간’이고 그 시간을 무한정 투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연선택은 초기에는 '즉시 포기파'에 유리할 것이나 점점 포기 시간이 연장하다가 결국 다투는 자원의 참된 경제적 가치에 따라 결정되는 최대 버티기 시간에 접근할 것이다.
소모전에서는 내가 포기하려는 것을 상대가 눈치채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포커페이스가 대부분의 경우에서 낫다. 속임수가 진화한다면 그 반대쪽에서도 속임수를 감지하는 개체 역시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모전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비교적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이 아니다. 표정이 없는 얼굴의 동물은 진화적으로 안정하다. 결국 항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돌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해야 한다.
지금까지 다룬 싸움들은 메이너드 스미스가 ‘대칭적’ 싸움이라고 부른 것들 뿐이다. 그러나 자연계에는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싸운다기보다는 비대칭적인 싸움이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래서 파커와 메이너드 스미스는 비대칭적인 싸움도 고려하였다.
비대칭적 싸움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몸의 크기나 전투 능력이 개체에 따라 다른 경우이고, 둘째는 승리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개체에 따라 다른 경우, 예를 들어 여생이 길지 않은 노인은 젊은이와 달라서 비록 부상을 입는다 하더라도 잃을 것이 별로 많지 않을지 모른다.
셋째는 순전히 임의적이고 전혀 무관해 보이는 비대칭성으로 인해 ESS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비대칭성 덕분에 싸움이 신속하게 수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주자’와 ‘침입자’의 경우 일반적인 이익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비대칭성에 기반한 조건부 전략, 즉 ‘당신이 거주라라면 공격하고, 침입자라면 퇴각하라’는 전략이 ESS로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
정반대의 전략이 안정한 전략일 가능성도 있다. 이 두 개의 ESS 중 어떤 것이 선택될지는 어느 쪽이 먼저 과반수를 차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순전히 임의적인 비대칭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계에서 두 개의 안정 상태 중 ‘거주자는 이기고 침입자는 진다’라는 편이 안정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에는 더 추상적인 이유가 있다.
즉 ‘침입자가 이기고 거주자가 진다’라는 반대 전략은 스스로 붕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너드 스미스는 이것을 ‘역설적 전략’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렇게 되면 모든 개체는 항상 침입자로 보이려고 부단히 목적 없이 돌아다닐 수밖에 없고 결국 ‘거주자’라는 범주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계에서 흔히 보이는 ‘영역 방어’라고 불리는 행동 역시 해당 땅에 먼저 도착하는 시간의 비대칭성 때문에 생기는 하나의 ESS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체구의 차이
싸움에서 몸집이 큰 편이 항상 이긴다면, 그리고 각 개체가 자기가 상대보다 크지 작은 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면, 이때 쓸모 있는 전략은 ‘상대가 크면 도망가라, 상대가 작으면 공격하라’라는 전력밖에 없다.
그런데 몸집의 크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하지 않을 때는 문제가 좀 더 복잡해진다. 체구가 크더라도 부상 위험이 큰 경우에는 제2의 ‘역설적 전략’도 있을 수 있다.
이는 ‘자기보다 큰 놈이면 싸움을 걸고, 작은 놈은 피하라’는 전략이다. 이 전략이 안정적인 이유는 모두가 역설적 전략을 취하는 개체군에서는 누구도 부상을 입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싸움에서 몸이 큰 쪽이 항상 도망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파가 상식파보다 높은 득점을 올리는 것은 그들이 상식파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때에만 가능하다. 개체군 내에서 역설파에 대한 상식파의 비율이 아주 조금만 증가하면 다른 ESS의 ‘유인지대(zone of attraction)’에 빨려 들고 말 것이다.
즉 한 개체군이 이 유인 지대에 들어가면 상식적 전략의 안정점 쪽으로 어쩔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적 ESS의 예는 자연계에서 찾기 쉽지는 않다고 한다(‘사회성 거미’의 예를 들고 있기는 하다).
순위제
순위제는 이전 싸움에 대한 기억이 개체들 간의 싸움의 승패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싸움에서 계속 지기만 한 귀뚜라미는 상대방에게 항복해서 비둘기파처럼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귀뚜라미는 싸움에서 지는 데 익숙해지기 때문에 정해놓고 계속 지기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닭이나 원숭이는 아예 개체를 기억해서 상대방을 알아본 다음에 우열을 나눈다. 마찬가지로 그들 또한 이긴 적이 있는 상대방을 만난다면 이길 확률이 높을 것이다.
같은 종끼리 또는 다른 종끼리
여기까지는 동종 개체 간의 싸움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종 간의 다툼은 어떨까? 관련해서는 “사자는 왜 다른 사자를 사냥하지 않는가?”, “영양은 왜 반격하지 않고 사자로부터 도망치는가?”와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사자가 같은 사자를 잡아먹는 일은 매파의 전략과 같은 이유로 불안정하고, 보복의 위험도 너무 크다. 하지만 사자와 영양 간의 관계처럼 개체 간 싸움에서 큰 비대칭이 존재할 때는 ESS는 그 비대칭에 근거한 조건부 전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작으면 도망가고 크면 공격하라’는 종류의 전략이 진화하기 쉽다. 사자에게 ‘맞서는’ 돌연변이의 영양은 도망치는 일반적인 영양들에 비해서 도태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ESS 개념
도킨스는 다윈 이후 진화론에서 가장 중요한 진보를 꼽으라면, ESS 개념의 창안을 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보주에서는 자신이 좀 지나쳤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개념은 이해 대립이 있는 경우라면, 즉 거의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나아가 ESS 개념은 좋은 팀워크를 필요로 하는 한 보트 안의 조정 선수들(한 몸 안의 유전자들에 해당)의 예에서 생긴 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유전자는 혼자 있을 때 ‘좋은 것’이 아니라, 유전자 풀 내 다른 유전자들을 배경으로 할 때 좋은 것이어야 선택된다.
좋은 유전자는 수 세대에 걸쳐 몸을 공유해야 할 다른 유전자들과 잘 어울리고 또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서로 잘 어울리는 유전자들의 세트가 하나의 단위로서 함께 선택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ESS 개념은 우리에게 독립적인 유전자 수준에서의 선택으로도 이와 똑같은 결과가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유전자들이 같은 염색체상에서 연관되어 있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유전자 풀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유전자들의 세트’가 될 것이며, 이는 어떠한 새로운 유전자(돌연변이, 재조합, 이입 등)도 침입할 수 없는 유전자 풀로 정의된다.
유전자는 그 ‘우수성’ 때문에 선택되고 그 우수성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 즉 현재의 유전자 풀을 배경으로 했을 때 그 성과가 얼마나 뛰어난지에 기초하여 결정된다.
우리처럼 잘 통합된 몸이 존재하는 것은 몸속에서 이기적 유전자들이 ‘진화적으로 안정한 세트’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동물 개체들끼리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공격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번처럼 개개의 동물을 독립된 이기적 기계로 보는 것이 편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델은 가까운 혈연자를 다룰 때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당히 많은 유전자들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유전자를 위해 다른 여러 개의 몸이 충성을 다한다. 이것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설명한다.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