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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Apr 25. 2019

베어타운 & 우리와 당신들

소설: 작가의 상상력 또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주로 허구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 일정한 구조 속에서 배경과 등장인물의 행동, 사상, 심리 따위를 통하여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드러낸다. 분량에 따라 장편 · 중편 · 단편 · 엽편으로, 내용에 따라 과학 소설 · 역사 소설 · 추리 소설 따위로 구분할 수 있으며, 옛날의 설화나 서사시 등의 전통을 이어받아 근대에 와서 발달한 문학 양식이다.


소설이라는 허구의 무엇에 과연 작가는 얼마만큼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일까? 오로지 생각에만 의존해 한 번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주위에 근접한 누군가를 그의 동의 없이 캐릭터화 시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어쨌든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일은 집필의 근원이겠다. 


얼핏 보면 소설을 쓰는 이 집필이라는 행동이 온전히 정신적인 노동이라 생각될 수 있겠지만 우리 시대의 작가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 고백한다. 소설가 조정래는 요즘의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일이 엉덩이를 진득이 붙이고 앉는 것부터 시작되는 극한의 육체노동임을 자각했기에 단편 소설만을 쓰려고 한다며 장편소설을 쓰는 일을 기피하는 한국 문학계의 현주소에 아쉬움을 나타냈고 대한민국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작가 중 하나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가 마라톤이라는 취미를 가진 이유에 대해 글을 쓰는 일이 마라톤과 같은 극한의 신체활동이기에 선택했다 고백한다. 


이렇듯 소설을 쓰는 일,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무엇에서 한 권의 완성된 책으로 출판을 이루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고 또 해내야만 하는 작가들의 노력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육체적+정신적 노동의 산물이겠다. 서점에 바르게 진열된 책들과 오늘 빛을 본 신간들, 게다가 앞으로도 하루가 머다 하고 쏟아져 나올 수많은 미래의 저서들에 얼마나 많은 새로운 캐릭터와 미스터리 한 사건, 드라마틱한 갈등의 봉합이 등장하게 될지 기대하는 것이 독자의 특권이라면 이런 호기심 어린 독자들의 머릿속에 그들의 생각을 심어 독자와 소통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들의 특권이겠다. 그리고 이런 특권을 가진 작가는 기나긴 시간을 인내하고 고민하여 수 백 페이지를 지루하지 않게 이어나가도록 오늘도 노력을 다한다. 그것이 작가와의 소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머리를 내어준 독자들을 위한 배려 이리라. 



참 오래간만에 접한 순수 소설인 이 베어타운 우리와 당신들 은 소설이 가지는 고유의 특성을 온전히 느끼게 해 주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소설에 꼭 필요한 캐릭터로 설정되어있고 이들의 과거와 현재가 타이트하게 얽혀있어 어느 곳 하나 어수룩하지 않다. 모든 캐릭터와 사건, 그리고 사건과 사건을 엮어내는 인과관계가 워낙 빈틈없이 연결되어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이 글의 작가 프레드릭 베크만은 우리에게는 약간 생소한 북유럽 출신의 작가이다. 어쩌면 본인에게는 이 북유럽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집어 든 이 [베어타운]은 이미 2017년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18년 대한민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된 유명한 책이었으며 뒤 이어 출간된 [우리와 당신들] 역시 같은 장소와 등장인물을 내세워 2019년 우리들에게 소개되어 전작과 같은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책의 제목은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는 소설이다. 단지 우리에게 흔한 1,2권이 아닌 형태로 패키징 되었을 뿐이다.


이 책은 이성적인 개인이 집단이 되어 얼마나 비이성적인 괴물들로 변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추하고 멍청해질 수 있는지를 고발한다. 연결고리가 전혀 없을 것 같은 아이스하키와 그 아이스하키 팀의 슈퍼스타가 한 소녀에게 저지른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마을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현명한 소수가 되고자 겁나는 비 이성적 다수는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을 세뇌한다. 하키라는 것이 유일한 희망인 작은 도시가 하키로 인해 분열되고 끝내는 하키로 희망을 찾으려 노력하는 일련의 모습은 결국 해피엔딩이 아닌 채 그 끝을 맺지만 우리네의 인생이 늘 해피엔딩인 것만은 아니기에 더 인간적이라 느꼈다.


이 두 권의 소설은 딸아이를 가진 본인에게는 더더욱 눈에 밟히는 성폭력이라는 사건과 피해자와 가해자를 똑바로 구분하여 말하지 못하는 그리고 사실을 말하면 마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선전과 믿음에 굴복해 스스로를 잘못된 판단으로 세뇌하는 인간들의 나약하고 비 이성적인 모습을 통해 다수의 절대적 믿음이 무조건 옳은 것이라 믿는 실수를 경계하라는 역사속 진리를 다시 한번 강론한다. 한 사람의 개인은 이성적일 수 있으나 집단은 그렇지 못한다는 진리는 역사 안에서 이미 여러 번 증명되었다. 독일과 일본의 제국주의와 인종 우월론 등으로 대표되는 이 비 이성적 집단사고 주의에 대해 작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비판하고 날 세운 경계를 요구하고 있다. 소수지만 이성적인 우리와 절대 다수지만 비 이성적인 당신들의 싸움은 결국 대부분의 경우 절대 다수가 이기는 형국이겠지만 결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일까? 어느 한쪽의 상처없는 일방적인 승리가 현실에도 가능한지 의심하는 것이 본인의 지나친 강박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는 양쪽 다 출혈이 있었다. 코피가 나느냐 다리가 부러지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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