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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May 10. 2019

발에 대한 오해

날카로웠던 그날의 기억 #2

                                                           날카로웠던 그날의 기억 에 이어


하루 종일 우리 신체 질량의 총합과 지구 중력의 싸움을 중재하는 이 "발"이라는 신체 부위는, 무려 42.195KM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라는 신체활동을 가능토록 버텨준다. 엄청난 거리를 버텨주는 내구성 덕분(?)에 사람들은 쉽게 오해하지만 이 녀석은 절대, 결코 둔하지 않다. 아주 세밀하고 지극히 예민한 녀석이다. 물체의 크기나 촉감을 실제의 크기보다 더 크게 또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신발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호모 사피엔스의 행동으로 발의 촉감이 지나치게 보호받아 일어난 현상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우리의 뇌가 발보다 훨씬 빈번히 인간의 생활에 관여하는 "손" 이라는 신체기관을 정확한 피드백의 기준으로 결정한 것은 발의 촉감을 무딘 것으로 평가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빠른 발이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운 수렵시대에 먹을 것을 찾아 쉼 없이 움직여야만 했던 인간에게, 게다가 가끔 만나는 맹수의 습격을 피해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야만 했던 피식자 인간에게 발을 보호하는 것은 생존의 일차 요건의 충족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생존 수단의 보호로 인간의 수렵생활은 이전보다 조금 더 편하고 더 안정적으로 변화했고 이를 통해 마침내 인간은 예전에는 상상해보지 못한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발을 보호하는 것이 인간이 현재 누리는 안정된 삶의 시작이라 말하는 본인의 생각이 지나친 비약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얼마 전 본인이 느낀 그 날카롭고 짜릿했던 경험은 우리의 발이 본래 얼마나 예민하고 여린 신체 기관인지를 다시 일깨워주어 이를 보호하는 것이 안정적인 수렵생활의 전제가 되었으리라, 그리로 이를 통해 인간은 마침내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추측할만한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 듯 싶다. 이렇듯 인간의 보호로 인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치를 숨긴 채 현재 우리네들과 함께 하는 이 발은 늘 섬세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말이다.


물론 아주 정확하지는 않아 보인다. 1을 1의 크기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확하다라면, 1을 3 내지 4의 크기로 느끼는 우리네의 발은 정확성에서는 떨어지는 것 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는 발이 둔감한 신체 부분이라는 인간들의 고정관념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1을 1의 크기로 받아들인다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조금 더 생각해본다면 둔감하다는 단어를 쓰는 것이 맞는 것 인지 조차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생각하는 1을 1의 크기로 받아들인다는 기준은 지극히 손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그것이겠다. 발에 비해 훨씬 더 우리들의 삶에 관여하며 훨씬 빈번히 사용하는 이 손이라는 신체기관은 인간의 여느 신체와는 다르게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 많이 더 빈번히 사용하는 신체기관이 되었다. 물론 이 잦은 사용으로 손이 발에 비해더 섬세해진 것인지 아니면 너무 사용해 물러졌는지, 다시 말해 손의 감각이 발전한 것인지 퇴화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어찌 되었던 손은 발과는 다른 피드백을 가진다. 손에 비해 더 보호받고 더 사용이 적었던 이 발이라는 신체기관의 날 것의 생생함을 그 모습 그대로 느끼기에 충분했던 그날의 기억은 어쨌든 근래에 가장 짜릿했던 경험이 분명하겠다.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이 발이라는 신체를 이렇게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이유는 어찌 보면 마라톤 덕분이 아닐까 싶다. 풀코스도 아닌 10킬로의 비교적 짧은 거리를 달리며 솔직히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보다 심장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차오르니 다른 신체부위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러니 심장박동이 줄어들기 전까지 발의 피로 같은 것은 느낄 겨를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추워진 날씨 덕에 한동안 달리기를 멀리하다 얼마 전 다시 시작한 주말 달리기는 첫 시도부터 기대와는 달랐다. 무리하지 말고 간단히 5킬로만 가볍게 달리자는 생각으로 출발한 4월의 주말 아침에 본인은 고작 2킬로 만을 달리고 귀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러닝과는 다르게 시작부터 발이 아팠는데 한 번도 힘들어 본 적이 없는, 크게 통증을 느낀 적이 없는 부위라 해결을 할 방법을 몰랐다. 숨이 너무 차서 힘들 때는 조금 페이스를 늦추면 되었다. 허벅지 근육에 통증이 있으면 보폭을 줄이거나 늘리면서 일정 시간을 인내하면 달리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발 이 아프니 포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이들의 역할이 없었다면 애초에 달리는 행위 조차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음을, 늘 둔감하게만 느끼는 신체부위였기에 이들의 피로나 이상 따위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쉽게 무시했던 본인을 돌아보게 되었다. 뜬금없는 얘기일 수 있겠지만 이날의 실패 덕에 묵묵하지만 제 일을 꾸준히 해주는 발이라는 신체부위를 다시 생각하고 이런 발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는 묵묵한 팀원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참으로 형식적이고 뻔한 이야기지만 정말 그랬다. 적어도 세상은 늘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아니 지나치게 관대한 나머지 필요 이상으로 소극적으로 관계했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 이리라. 적당히 무시하듯 말이다. 그들이 아무 목소리 없이 일한다고 그들을 색깔 없고 취향이 없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여기고 적당한 수준으로만 관계하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이었고 이 글을 쓰는 본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인간이 이런 방식으로 타인과 적당히 소극적으로 관계함으로 말미암아 현재 인류는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하나가 둘이 되어 가족이 되고 이런 가족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고 이 부락이 모여 , 결국 구성원들 전부와 적극적으로 관계하는 일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커진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우리는 모르는 타인과 함께하는 법을 그들과 관계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홍수속에서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과의 적당한 거리 설정으로 인간은 나라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와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을 나와 적당한 관계인 사람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우리들의 일상은 인터넷이라는 발명품을 만나 인류의 시작이래 가장 많은 사람들과 관계하는 지금 이 순간에 이르렀고 우리는 우리와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을 각기 다른 등급으로 나누어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설정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렇게 사람들을 줄 세우는 과정이 말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쉽게 잊고 살도록 만든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 우리는 쉽게 잊고 살아간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직접적이기엔 이 사회가 너무 크고 분업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분업화의 결과로 약간은 조용하고 묵묵한 사람들은 쉽게 잊힌다. 이런 잊힌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의 가까이에 있다.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 어쩌면 더 쉽게 더 자욱하게 잊히는 그들을 보듬고 소중히 여기는 일은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노력해야 한다. 습관이 되도록 연습해야 한다. 적어도 그들이 없이는 현재의 당연함이 유지될 수 없음에 동의한다면 말이다. 그들이 없는 우리는 늘 생경하고 늘 불편해야만 한다. 그들이 없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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