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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May 28. 2019

눈에 띄는 뉴스

블루보틀 출점에 밤새 줄을 서는 사람들

지금은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하고 스타트 업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이 글을 쓰는 본인은 얼마 전까지 커피전문점을 운영했다. 직접 로스팅을 하지는 않았지만 커피로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메뉴를 꽤나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라 기억한다.(지금도 여전히 능숙하다는 단어를 쓸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만약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머신을 청소하고 간단한 라떼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이 능력치를 결정하는 눈금이라면 비록 조금은 느려졌을지 몰라도 여전하다 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이런 본인이 같은 장소에서 커피전문점을 8년간 운영하면서 확인한 것이 하나 있다면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인들의 브랜드 사랑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전 글에도 기술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 사람들의 스타벅스 사랑은 유별나다. 본인 역시 커피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는 본인이 국가의 녹을 먹던 시절 (정확히는 종로구청에서 공익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커피빈에서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였기에 본인이 얘기하는 한국인의 브랜드 사랑 덕을 어느 정도 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건 외국에서 유명하다는, 속된 말로 잘 나간다는 무엇을 체험하고 자신의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한국인들은 그다지 배타적이지 않다. 특히나 그것이 한국으로 전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무엇이라면 배타적을 넘어 쓸데없이 열광적이기까지 한 듯 보인다. 20년 전 스타벅스가 그랬고 몇 년 전 쉑쉑 버거 역시 같은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한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그것도 오픈 당일에 꼭 마시고 싶어 밤을 새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한때나마 커피를 업(業)으로 했던 본인에게도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을 정신 나간 행동으로 치부하고 싶은 생각은 결단코 없다. 모든 사람들의 행동에 그들만의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나의 기준을 충족했는지에 따라 그 가치를 판단하는 일은 결코 올바른 삶의 방식이 아니기에 그렇다. 설사 그들이 그럴 듯 한 이유를 가지지 못하더라도 그것을 한심한 짓으로 폄하하는 일 역시도 매우 잘못된 가치판단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남이사 밤을 새워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시던 뙤약볕에 5시간을 기다려 한정판 운동화를 사던 티켓을 구하고자 비박을 하던 애초에 그것은 내가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명확히 하고 싶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과는 다르게 위의 기사에는 엄청난 숫자의 댓글들이 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 엄청난 댓글의 대부분은 당연히 부정적이다. 미친 행동이라고 폄하하고 여기에 반 일본 정서를 녹여 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에 공감하도록 프레임을 짜는 사람도 보인다. 인터넷이란 특수한 환경에서 유니클로에서 의류를 구매하면 매국노로 일본차를 사면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받지 못한 저급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이런 유치한 놀이는 이미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본인이 놀라는 점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훨씬 더 쉽게 이런 저급의 프레임에 놀아난다는 사실에 있겠다. 실생활에서 유니클로를 구매하지 않고 일본으로의 여행을 거부하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애국심의 발로는 오직 온라인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닌 것인지 의심이 드는 정도다. 


이번 뉴스 댓글들에도 그렇다. 블루보틀 커피가 일본의 커피 브랜드도 아니고 일본에서 재배된 원두를 쓰는 것도 일본인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그들이 일본에서 발전한 드립 커피를 판매한다고(솔직히 드립 커피의 발전이 일본에서 진행되었다는 사실도 몰랐으리라) 또 일본 사람이 인테리어에 참여했다고 반 일본의 프레임을 씌운 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비웃고 넘겨야만 하는 글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수가 이에 동참한다. 그저 잘 나가는 커피 하우스에서 사진 한 장 찍어 SNS에 올리고 싶은 사람을 정신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 매국노로 몰아가는 댓글을 보고 있으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위의 기사를 보고 본인에게 든 첫 번째 생각은 "안타깝다"였다. 결코 줄을 선 그들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별것 아닌 커피 전문점의 오픈일에 밤을 새우며 기다리는, 본인에게는 기이한 행동으로 여겨지는 이런 행동 말고는 별다른 재미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현실이 진정 안타깝고 불쌍했다. 그리고 그런 곳에 살고 있는 본인을 포함한 우리들과 이 시대의 청년들이 불쌍했다. 재미를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니 그 본능을 따르는 타인을 가타부타 판단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 본능의 결과물이 반 도덕적이거나 반 윤리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들이 줄을 서던 말던 오픈 첫날을 기념해 SNS에 찍을 사진을 남기던 그건 그들의 선택이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것만 확실하다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정리가 되어야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상황이 불만족스럽다. 재미없고 따분하다.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현명한 일임은 이미 알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 그러니 그저 그런 삶에서 작은 즐거움을, 신선한 자극을 찾고자 한다. 소확행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겨난 이유 역시 같은 맥락에서 찾을 수 있겠다. 우리들의 부모세대와는 다르게 2019년 대한민국의 삶은 이전에 비해 엄청나게 빡빡해졌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라는 단어로 동질감을 보이기에 미안할 정도로 요즘 2,30대들에게 세상은 더더욱 녹록하지 않은 듯 보인다. 서울 소재 4년재 대학을 나오고는 어진 간한 대기업 공채에는 1차 이력서 부분에서 탈락하는 일이 당연한 것은 이미 40대에 접어든 본인의 세대들보다 훨씬 더 잔인한 현실임이 틀림없으리라.


이렇게 잔인한 삶을 사는 2,30대가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작은 즐거움을 삶의 가운데에서 가질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본인을 포함한 한 가정을 이룬 40대의 몫이 아닐까 싶다. 새로 오픈하는 카페 앞에서 밤을 지새운 그들의 행동을 이해 못하는 것은 본인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것을 단지 생각 없고 멍청한 행동이라 폄하하며 한숨 쉬는 것보다는 이들이 이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현재를 반성하며 조금 더 나은 행복을 찾도록 도움을 주는 일에 책임을 동감해야겠다는 말이다. 이들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이들이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 할 수 있도록, 이들이 탁 트인 한강에서 신선한 공기를 맡으며 신나게 달릴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행복하며 그 속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이들을 계도하고 좋은 습관들을 심어주는 일들을 고민하는 것은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자 하는 지금 이 글을 쓰는 본인을 비롯한 40대가 고민해야 할 공의의 그것이겠다. 더 이상 미루기에는 세상의 변화가 너무 빠르고 기형적이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한국전쟁 이후의 대한민국의 놀라운 재건과 발전을 위해 우리의 부모세대들이 흘린 땀과 노력은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의 헌신과 근면함이 없는 작금의 대한민국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음을 비난해서는 안 되겠다. 그런 그들의 근면함 덕분에 지금의 40대들은 우리 부모들에 비해 훨씬 나은 환경에서 자랐고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화의 물결에 동참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런 우리들이 우리의 부모들이 우리에게 한 것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경제발전에의 전념을 이유로 후세들에게 문화적 교양을 심어주는 일에 나서지 않는다면, 앞으로 20년 후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대한민국은 엄청난 무질서와 저급한 문화가 기조를 이루는, 한마디로 후진 나라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제는 조금 달라져야 한다. 경제발전의 논리에 가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사회 전체의 상식 수준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단순히 괜찮은 취미를 가지는 수준이 아닌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교육의 방향을 결정짓는 거대한 일의 첫 단추를 끼는 일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이 첫 단추는 경제발전의 한계에 봉착한 대한민국의 성장에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문화적 교양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는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이것에 동의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렵다고 시작조차 않는다면 앞으로 이 땅에 살게 될 수많은 우리의 아이들이 당당히 세계 속에 우뚝 서는 일은 힘들지 않을까 조심스레 짐작하며 걱정한다. 조금 더 나은 생각, 조금 더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진국의 기준이며 그들이 당연스럽게 여기는 가치라는 본인의 생각에 조금이라도 동의한다면 본인을 포함한 40대들은 결심해야 한다. 고민해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더 살아볼 만한 우리나라를 위해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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