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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학대식 Nov 29. 2019

창업자들을 위한 경고

WARNING #11

이 글은 지난 1년여간 이곳에서 만나고 관찰하게 된 여러 스타트 업의 관찰기이자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주는 작은 경고장인 동시에 코워킹 스페이스 뷰랩의 첫 해 보고서이다. 


(이전 글(창업자들을 위한 경고 WARNING #10)에 이어)



31. 일을 한참 하다가 보니 어느덧 아침이 되었고 등 뒤에서 인기척이나 돌아보니 그 친구가 

동행했던 어머님과 사무실을 나가며 꾸벅 인사를 한다. 

"1주일 후에 보자"며 웃으며 안녕하기에 "네"라고 짧게 대꾸하자

 같이 계시던 어머님이 웃으시며 "오늘 같이 여행을 가신다"라고 말씀하신다. 

보기에 좋았다. 장성한 아들과 어머님의 여행은 적극 권장할 만한 것이니 말이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돌아오는 월요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휴가를 간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과 대표님이 카페테리아에 모여있기에 같이 섞여 잡담을 좀 하다가 

지난 토요일 새벽에 벌어진 일을 얘기하며 효심 깊은 그 친구의 모습을 다시 봤다 하니

다들 얼굴빛이 변하며 서둘러 사무실로 들어가더라.


32. 팀원들이 사무실로 들어가고 혼자 남은 대표님(나중에 우리 팀원이 되는)이 나지막이 

"아 그렇게 시간을 때웠구나 "하며 허탈해 하기에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그 친구가 정해진 근로시간을 채우느라 그 새벽에 나온 것 같다고 한다. 

여행을 가기 전 꼭 처리해야 할 급한 업무가 있어서가 아니라 한 달의 급여를 받기 위해 

최소한으로 채워야 할 가이드라인에 4시간의 근무시간이 모자라 

그 새벽에 어머님과 동행해 부족한 시간을 때우고(?) 바로 출국한 모양이라며 한숨을 쉬는데 

본인의 괜한 오지랖이 문제를 키운 게 아닌가 싶은 후회가 몰려왔다.

 

33. 그렇다. 이런 영화 같은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이 본인과 우리를 둘러싼 사회의 민얼굴인 것이다. 

좋은 의도를 담아 원래의 규칙을 예외로 하는 다른 규칙을 정해 

이것을 이용해 더 큰 선(善)을 창출해 내고자 구성원들이 하는 약속은

이를 악용하고자 하는 마음먹는 인간에게 너무나 좋은 먹잇감이다.

그리고 이것을 악용하는 것이 당연스러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당연스러움을 거부하는 소수의 타인을 이상하게 몰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위 사건의 주인공이 남들과는 너무나 다른 이상한 친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는 이미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훨씬 많아 수적(數的)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34. 어느 누구에게는 필요조건인 것이 다른 누구에게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같은 글자를 자신의 편의에 맞게 요리하여 이해하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규칙을 분명히 또 상세히 설명하지 않아 벌어진 이 일의 책임을 리더에게

또는 제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하는 팀원에게 물어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할 권리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우리 모두는 지극히 이기적인 인간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안타까운 것이다. 


35. 얼마 안 되는 구성원들이 한 곳을 바라보며 단결해야 하는 스타트 업의 형편에서 

위와 같은 사건은 단지 한 번의 해프닝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아쉽지만 위 사건의 주인공 역시 (온전히 이 사건 때문만은 아니지만) 퇴사조치를 당했고, 

결국 이것을 시작으로 그간 힘들게 쌓아온 그들의 비즈니스가 파국으로 치달았다는 이야기는 

엄청나게 놀라운 스토리가 아니겠다.

 [내가 일하는 시간은 내가 정한다]라는 이 멋진 탄력근무제의 이면에는 

이것으로 인해 벌어질 책임에 대해서도 내가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고 

이 책임의 크기는 규모가 있는 대기업의 그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36. 유유 제강:유연함이 능히 강함을 제압한다고 했다. 그렇게에 우리는 유연함을 갈구한다.

하지만, 비바람에 뽑히지 않는 유연한 대나무의 뿌리는 꼿꼿한 소나무의 그것보다 

훨씬 더 유기적으로 얽혀있고 훨씬 더 깊이 대지에 자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황폐한 우리 스타트 업이 또 그 구성원 유연한 대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뿌리가 더 단단히 대지에 뿌리내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근간이 단단해야 수많은 난관을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지 못한 문제들에 직면할 때 최선을 다해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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