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 바퀴_대서양 로드 트립 07
미국에서 바다와 호수, 산을 하루에 모두 즐길 수 있는 국립공원은 여러 곳 있다. 하지만 아카디아에서는 이 세 가지 즐거움이 더욱 쉽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미국 서부 워싱턴주의 올림픽(Olympic) 국립공원에서도 태평양 해변을 걷고, 빙하물이 녹아 생긴 호수에서 카약을 즐기며, 올림푸스 산에 등반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장소들은 서로 자동차로 몇 시간 거리다. 또한 알래스카의 케나이 피오르드 국립공원(Kenai Fjords National Park)이나 레이크 클라크 국립공원(Lake Clark National Park and Preserve)도 웅장하고 멋진 산과 푸른 호수, 빙하 해안을 품고 있지만, 보트나 경비행기로만 접근 가능하다.
아카디아에서는 이른 아침 캐딜락 마운틴 정상에서 장엄한 해돋이를 보고, 낮에는 조던 폰드에서 맑은 물에 감탄하고, 저녁에는 샌드 비치에서 대서양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
| 바다가 비밀을 품은 곳, 샌드 비치 (Sand Beach)
메인주의 대부분의 해안과 달리, 샌드 비치의 모래는 무수히 많은 조개껍데기의 파편으로 이루어졌다. 따개비, 홍합, 성게가 세월 속에서 부서지고 다듬어져, 모래 보다 더 모래 같은 샌드 비치가 생긴 것이다. 이런 샌드 비치가 존재하는 것은 우연이 절묘하게 겹쳐서 일어난 자연 현상이다.
샌드비치 앞바다에 ‘올드 소커(Old Soaker)’라 불리는 화강암 바위가 버티고 있어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이 바위 때문에 부드러운 조개껍데기 가루가 바닥에 가라앉아 모래사장을 이루고 주머니 모양의 모래 해변(pocket beach) 지형이 유지될 수 있다. 만약 이 바위가 없었다면, 이곳은 바위와 거품만 넘치는 해안이 되었을 것이다.
|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혜택과 시련 | two sides of the same coin
그러나 축복 같은 이 '올드 소커'도 항상 사람들에게 혜택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자신의 질서를 유지한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와 의지가 이 자연과 어쩔 수 없이 겹치게 되면, 역사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1911년 7월, 캐나다의 목재 운반 범선 ‘테이(Tay)’호가 폭풍우 속에서 이곳에 난파되었다. 이 해변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바로 그 바위 ‘올드 소커’에 충돌한 것이다. 선장과 선원들은 부러진 돛대에 매달려 간신히 버텼지만, 선원 중 요리사 J.B. 웰플리는 바다에 휩쓸려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러니까 '올드 소커'는 동전의 양면 (two sides of the same coin)이다. 한쪽 면에서는 거친 대서양 파도를 막아주어 산호빛 조개 가루 모래가 부드럽게 깔린 샌드 비치를 만든 고요한 수호자이지만, 생계를 꾸리기 위해 캐나다에서 항해 온 목재 운반선이 '올드 소커'에 부딪혀 물속으로 가라앉고 만 것이다. 인생에서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부드러움과 우리를 시험하는 날카로움이, 마치 이 바위처럼 한 뿌리에서 나올 때가 얼마나 많은가. 친구와 적을 구분하기도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 그래도 기억하자
태이호 침몰 며칠 후, 약 9만 보드피트에 달하는 전나무 목재가 해안에 밀려왔다. 당시 이 땅의 주인이었던 새터리 가문은 일부를 수거해 보트하우스를 지었다. 이 보트 하우스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지만 사고와 희생을 추모하고 기억하려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겨울 폭풍이 해변의 모래를 걷어낼 때마다 테이 호의 잔해가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바닷속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또 다른 기록도 남아있다. 1917년 여름, 이곳은 무성영화 <바다의 여왕 (Queen of the Sea)> 촬영지였다. 올림픽 수영 선수였던 아네트 켈러만이 이곳에서 칼을 휘두르며 싸우고 줄 위를 걸으며,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바이킹선을 배경으로 연기를 펼쳤다. 지금은 그 영화는 남아 있지 않지만 역사 기록은 남아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건국의 역사가 짧지만 (250여 년), 크거나 사소하거나 가리지 않고 모든 역사를 충실하게 기록해 남기려고 애쓴다. 물론 이런 이유로 미국 고등학생들은 미국사 (American History) 과목 공부할 양이 정말 많다.
샌드 비치를 방문했을 때 7월이었지만 안개가 자욱했고 긴 웃옷을 하나 더 입어야 할 정도로 날씨는 쌀쌀했다. 샌드비치에서는 파도와 시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한 세기 전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목재 화물선을 탑승했던 선원들이 거친 파도와 싸우는 모습, 해변을 뛰어다니며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무성영화 촬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던 수영선수 출신 여배우의 열연 장면이 떠오른다. 점점 짙지는 안개처럼 생각도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