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 바퀴_ 대서양 로드 트립 08
“I may not have gone where I intended to go, but I think I have ended up where I needed to be.”
"나는 내가 가려고 했던 곳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이르게 된 것 같다."
1979년에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은하수로 여행하는 무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라는 소설을 써서 천오백만 부 이상 판매되어 세계적인 작가가 된 더글라스 애담스 (Douglas Adams)가 여행에 대해 한 말이다. 때로는 계획 없이 우연히 들린 장소가 더 마음에 드는 일이 있다. 아카디아 바 하버 (Bar Harbor) 지역에 자리한 작은 Beaver Dam Pond (비버 댐 연못) 그렇다.
| 비버 댐 폰드 (Beaver Dam Pond) & 리틀 헌터스 비치 (Little Hunter's Beach)
이 연못은 유명하지 않고 구경하는 사람도 많지 않지만 바라볼수록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갑자기 자동차를 세우고 바라본 7월의 연못 수면에는 초록빛 넉넉한 수련 잎은 호수를 덮고 하얀 수련 (water lily)은 도자기 그릇처럼 흩어져 떠 있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가 생각난다. 지베르니의 정원에서 그린 모네의 수련 연작은 단순히 꽃이 아니라 빛과 공기, 순간의 인상을 담아낸 작품이다. 비버 댐 연못 위 수련도 햇살, 바람, 수면이 함께 어우러져 그림 같은 장면을 만들어낸다.
숲길을 따라 더 달리면 리틀 헌터스 비치다. 이곳의 해안은 모래가 아니라 파도에 닳아 반들반들해진 조약돌로 이루어져 있다. 물결이 밀려올 때마다 돌들이 굴러가며 덜컥거린다. 해변은 화강암 방파제가 둘러싸고 있고, 바닷물은 안개와 섞여 물 위로 피어오른다.
| 사람이 지키는 자연, 바 하버 (Bar Habor)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소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쳐 있는 법이다. 바 하버는 한때 많은 사람들이 찾았고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려고 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재벌가 존 D. 록펠러 주니어는 자동차가 곧장 들어오는 길을 내지 않고, 숲과 연못을 돌아가는 마차 도로를 만들었다. 덕분에 아카디아의 자연은 개발의 손길을 피할 수 있었고, 작은 연못과 해변은 지금까지도 원래의 모습을 지키고 있다.
존 D. 록펠러 주니어 (John D. Rockfeller, Jr.)는 자동차가 공원의 고요함을 해치고 경관을 훼손할 것을 우려해, 1913년부터 1940년까지 길이가 50마일이 넘는, 자동차는 달리지 못하고 사람과 마차 등만 다닐 수 있는 넓은 캐리지 로드 (Carriage Road)를 직접 자금 지원하고 감독했다.
로크펠러가 기부한 금액은 현재 가치로 1억 달러 (우리 돈 1,360억 원)에 달한다. 록펠러 가문은 엄청난 돈을 벌었고, 지금까지 약 120억 달러 (우리 돈 160조 원)을 공공 분야에 기부했다. 돈은 이렇게 써야 한다. 이렇게 돈을 기부했지만 그의 가문이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돈을 포기하지 못하고 돈에 붙잡혀 침몰하는 사람들을 보면 록펠러 가문이 더욱 훌륭해 보인다.
| 자연이 주는 선물
작은 연못의 수련, 조약돌 해안의 파도, 그리고 숲을 가로지르는 길이 함께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한 풍경을 넘어선다. 모네가 수련을 통해 순간의 빛을 영원히 남겼듯, 아카디아 또한 작은 고요 속에 오래 남는 울림을 품고 있다. 이곳에서의 아름다움은 크고 장대함 아니라, 바람이 흔드는 꽃잎과 돌이 내는 소리, 그리고 자연을 지켜내려 했던 마음이다.
우리가 자연을 지키면 자연은 우리에게 숲의 심장을 담은 연못과 바다의 숨결을 품은 해변이라는 원초의 아름다움을 선물로 선사한다. 안개는 시간이 지나면 걷힐 것이다. 우리도 이제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