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의 별, 아름다운 서배너

미국 한 바퀴_대서양 로드트립 25

by 앤드류

| 미국도 남쪽과 북쪽이 다르다


노스 롤라이나주에서 사우스 캐롤라이나주를 지나 조지아주 서배너 (Savannah)로 이동한다.


남쪽으로 내려 갈수록 경치도 변하지만 남북간의 정치·문화 차이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 차이는 두 지역이 겪은 지리적 배경의 차이와 남북전쟁 등 역사적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월이 흘러 두 지역 간의 갈등은 표면적으로는 많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분명한 차이의 흐름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적으로 남부는 남 침례교 (Southern Baptist)로 대표되는 복음주의 신앙과 농업 중심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종교적이고 공동체 중심적이며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반면 북부는 개인주의적이며 도시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음식, 언어, 음악 등에서도 남부는 독특한 지역색을 지니며 환대의 문화를 강조하는 반면, 북부는 교육, 이동성, 그리고 빠르고 편리한 도시 생활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정치적으로도 여전히 차이가 존재하지만, 변화의 조짐도 뚜렷하다. 북부는 전반적으로 소득, 교육 수준, 사회기반시설이 높은 반면, 남부는 여전히 임금 수준과 복지 서비스 면에서 격차를 보인다. 그러나 조지아주 애틀랜타 (Atlanta), 노스 캐롤라이나주 샬럿(Charlette), 텍사스 주 댈러스 (Dallas)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남부의 경제적 성장과 산업 다양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남부는 여전히 공화당 중심의 보수 지역으로, 작은 정부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북부는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하고 사회복지와 정부 개입을 선호한다.


| 향수를 부르는 남부 음식


남부의 정체성을 잘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가 그릿(grits)이다. 옥수수를 굵게 갈아 죽처럼 끓인 이 음식은 원래 미국 원주민의 식문화에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남부 농가의 기본 식사로 자리 잡았다. 부유한 집에서도, 가난한 집에서도 그릿을 아침 식사로 즐긴다.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에서 그릿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릿(grits)'이라는 단어는 뉴욕의 '베이글(bagel)'이나 보스턴의 '클램차우더(clam chowder)'처럼, 그 단어만 들어도 곧바로 남부를 떠올리게 만드는 상징이 되었다. 남부와 북부가 서로 교류하며 여러 음식과 문화가 공유되고 있지만, 그릿은 북부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남부에서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릿을 그리워한다.


조지아를 상징하는 또 다른 먹거리는 복숭아다. 조지아에는 여성들이 복숭아를 많이 먹기 때문에 미인이 많다는 속설도 있다 (물론 조지아 사람이 만들어낸 말일 가능성이 높다). 조지아의 봄은 복숭아꽃으로 시작된다. 조지아가 ‘The Peach State’로 불리기 시작한 건 19세기 후반이다. 남북전쟁 이후 면화 산업이 몰락하자, 농민들은 선택한 대체 작물이 바로 복숭아였다. 풍부한 일조량, 낮과 밤의 큰 온도차, 붉은 점토질 토양 모든 것이 복숭아에 완벽했다. 자동차 번호판에도 복숭아가 그려져 있다. 주도인 애틀랜타에는 Peachtree가 들어간 길 이름이 70개가 넘을 정도다. 조지아는 매년 3천만 파운드 (약 1만 4천 톤)의 복숭아를 생산한다. 캘리포니아가 복숭아 생산량에서는 1위이지만, 조지아는 품질과 전통에서 1위라는 자부심이 있다. 매년 6월에는 조지아 전역에서는 ‘Georgia Peach Festival’이 열린다.


| 서배너는 항구다


조지아의 시작과 발전에 조지아주 동쪽 대서양 변 서배너 항구는 큰 역할을 담당했다. 영국은 1732년에 조지아 식민지 설립 헌장을 내리고, 1733년 제임스 오글소프 (James Oglethorpe)가 이끄는 초기 정착민들이 Anne 호를 타고 사바나에 도착하며 식민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남부 농장주들의 요구로 1750년, 노예제가 도입되었고 사바나는 곧 남부 면화 무역의 핵심 항구로 변했다.


서배너 은 대서양과 직접 연결되어 있어, 18세기 후반부터 대형 범선이 도시 중심까지 들어올 수 있는 드문 내륙항이었다. 1818년에는 조지아 최초의 조선소가 들어섰고, 1830년대엔 강을 따라 중앙조지아철도(Central of Georgia Railroad)가 개통되며 물류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와 거래되는 가슴 아픈 현장이기도 했다. 남북전쟁 당시에도 북군은 역사적인 도시 서배너 파괴하지 않아 18, 19세기 건축과 문화가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 이제 아름다운 그 이름, 서배너로 달려간다

|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지난다

조지아의 봄은 복숭아꽃으로 시작된다.
eggs-and-grits.jpg
조지아를 비롯한 남부 사람의 소울 푸드 그릿. 사진을 보니 옛날 생각도 나고 그릿이 먹고싶어진다.

서배너 지역은 자연을 완벽하게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지금도 경주하고 있다.

| SAVANNAH NATIONAL REFUGE

사바나에 가장 먼저 상륙한 오글소프 (Oglethorpe)를 기념하는 길이다
사바나는 현대적인 항구로 발전하여 조지아의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 서배너 시내로 들어간다


바다와 등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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