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세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지만 노는 방법은 그 수단과 도구를 만들어 내는 산업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계속 변해간다.
50대 중반의 세대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놀이 문화가 있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만화가게, 중고등학생이 돼서는 전자오락실, 대학 다닐 때는 당구장 그리고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비디오 가게에서 극장에서 못 본 개봉 영화나 미개봉 국산 영화를 빌려 보는 것이 주된 놀이 문화 중의 하나였다.
그 옛날 만화가게에서 빌려보던 만화는 이제는 스마트폰에서 즐겨보는 웹툰으로 바뀌어 여전히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10원짜리 동전을 넣고 하던 전자오락실 게임 - 겔로그를 한 판 한 판씩 깨 나가던 그 스릴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이 계실 듯하다 - 또한 모바일 게임으로 바뀌어 옛날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추억의 겔로그 게임 (logstudy.tistory.com)
비디오 가게는 기술과 산업의 발전으로 보다 많은 곡절을 겪었다.
재생 기기가 VTR에서 DVD 플레이어로 바뀌면서 대여하는 매체도 비디오테이프에서 DVD 디스크로 바뀌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컴퓨터에서 DVD의 재생과 복사가 가능해지고 싼값의 DVD 해적판이 시장에 범람하면서 사람들은 더는 돈을 내고 비디오나 DVD를 빌려보지 않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아파트 단지 상가마다 하나씩은 꼭 있었던 비디오 가게는 소리 소문도 없이 시장에서 사라져 갔다.
아파트 단지마다 하나씩은 꼭 있었던 추억의 비디오 가게 (사진 네이버 블로그)
비디오 가게가 사라졌다고 영화를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콘텐츠가 영화 중심에서 드라마, 다큐멘터리 그리고 개인이 직접 만들어 내는 유튜브 동영상까지 다양하게 확대되면서 영상 콘텐츠 소비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오히려 더 증가했다.
다만 기술의 발전으로 그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수단이 바뀌었을 뿐이다.
영상 저장 매체는 비디오(VTR)에서 DVD를 거쳐 MPEG, MP4, WMV, AVI와 같은 컴퓨터용 비디오 파일로 바뀌었고 그 매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중개자는 비디오 가게에서 케이블 TV를 거쳐 넷플릭스,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로 바뀌고 있다.
또한 영상 콘텐츠를 보는 기기도 TV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개인용 기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전 세계 190개국에 1억 3천만 명의 유료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넷플릭스
다시 요약하면 영상 콘텐츠를 즐기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는 지난 20년간 변함이 없고 오히려 더 증가했지만 그 사이에 동네마다 있던 비디오 가게가 사라지고 VTR과 DVD 플레이어가 사라졌으며 자연스럽게 비디오 테이프와 DVD 디스크를 생산하는 업체도 사업을 정리했다.
반면에 주요 통신사의 모바일 영상 서비스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유튜브와 넷플릭스처럼 국경 없이 전 세계에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IT 공룡들이 새롭게 부상을 했다.
특별히 고민하지 않으면 이러한 시장의 변화를 그냥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많은 기업들이 문들 닫았고 안타깝게도 그 산업에 몸담고 일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에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미국 전역에 3,000개가 넘는 매장 네트워크를 갖추고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배력을 가지고 있던 블록버스터라는 대형 비디오 대여 체인점이 있었다.
지금 그 자리는 남보다 앞서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도입하고 지속해서 서비스를 발전시킨 넷플릭스가 차지하고 있다.
한때 미국 전역에 3,000개가 넘는 매장을 가지고 비디오 대여 시장을 독점하던 블록버스터 매장
넷플릭스는 사업 초기에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이 생각처럼 빨리 형성이 안되자 블록버스터에 회사를 매각하려고도 했다.
단돈 1천만 달러에.... 지금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1,530억 달러이니 얼마나 싼 가격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터넷과 통신망의 발전이 그들의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곧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던 블록버스터는 이 매각 제안을 거절하고 만다.
대용량의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기 위한 인터넷 인프라가 깔리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성장을 고집하던 블록버스터는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려나 2013년에 파산하고 만다.
기술과 산업의 발전은 젊고 새로운 기업으로 하여금 기존에 없던 고객가치를 제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덕분에 많은 젊은 스타트업들에게 새롭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새롭게 시장에 진입한 스타트업들은 기존 대비 훨씬 값싸고 편리한 상품과 서비스로 무장을 해 기존 전통 기업들을 위협하고 영원히 함께 할 것 같던 우리의 충성 고객들은 순간 우리 곁을 떠난다.
안타깝게도 지난 10 년간한 때 시장을 선도하던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져 갔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사는 동네에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음에도 눈치채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동네 아파트 단지 상가에 있는 작은 슈퍼가 문을 닫았다. 차로 5분 거리에 홈플러스 매장이 있고 걸어서 5분 거리에 또 다른 대형마트가 들어오다 보니 슈퍼의 주인도 더는 버티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슈퍼가 나간 자리에 어떤 가게가 들어올까 궁금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입구에 유명 편의점의 가맹점 개점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피트니스센터가 나간 빌딩 상가에는 버거킹이 들어오고 그 옆 건물에는 스크린 골프장이 들어왔다. 아파트 단지 상가에는 아직도 부동산 중개업소 3개와 보습 학원, 미용실, 세탁소, 치킨 가게가 버티고 있다.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또 어떤 가게들이 문을 닫고 어떤 가게들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의식하든 못하든 소비자의 고객가치에 대한 판단 기준은 계속 변하고 있다. 이러한 고객가치의 변화는 그변화를 읽고 미리 준비하는 기업에는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위기가 된다. 이것은 비단 대기업에 해당하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개인이 하는 소규모의 사업도 시장의 변화를 놓쳐 고객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시장에서 사라지고 만다. 사업 규모에 관계없이 고객을 상대로 사업을 하고 있다면 고객에게서 눈을 떼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