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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회사 다니기

미국 회사

by 봄마을

조금전 매달 있는 회사의 경영 현황 설명 및 생일자 축하 그리고 근속 축하 파티에 다녀왔다. '다녀왔다' 라는 표현을 쓰니 좀 거창한데 어디 멀리 다녀온건 아니고 같은 층에 있는 회사 교육장을 갔던거라 내 사무실에서 몇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잠깐 앉아 있다 왔다. 대형 스크린이 있는 이 교육장에는 본사 근무자들이 모였고 인디애나에서, 캘리포니아에서, 롱아일랜드에서, 테네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참석했다.


미국에서 일을 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고정 관념중 하나는 미국 사람들은 회사를 자주 옮긴다는 것이었는데(그래서 나도 치열하게 살면서 회사를 자주 옮기고 그 과정에서 연봉 협상도 많이 하게 될 줄 알았다) 지금 회사에서 일하면서 모두 그런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쩌면 업계가 달라서 차이가 날 가능성도 있다. 내가 있는 업계는 첨단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적용되면서 배우고 익히지 않으면 도태되는 그런 분야는 아니니까. 실리콘밸리의 big tech들과 달리 언론의 관심을 받는 업계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전반적으로 느긋한 분위기다. 어떤 이들은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일을 해서 그만큼의 보상을 얻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물론 회사들은 사활을 걸고 열심히 경쟁하지만, 워낙 비즈니스 환경 자체가 느리게 움직이다 보니 직원들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 그래서 회사를 옮기면서 연봉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지금 하는 일을 인정받아서 안정적으로 회사를 꾸준히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알기로 우리 회사에서 가장 긴 근속 기간을 가진 사람이 29년인가 30년인가 그렇고 10년 이상은 제법 많다. 오늘도 몇몇 직원이 15년 근속 감사패를 받았다. 나도 이번 여름이 되면 6년차가 되는데 내가 입사할때 봤던 얼굴들이 거의 그대로 있는걸 보면 정말 사람이 안바뀐다. (영업쪽은 상대적으로 자주 바뀌기는 하지만.)


입사하고 처음 몇년 동안은 적응하느라 한국에서보다 더 긴 시간 더 치열하게 지냈는데 6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나도 이들과 비슷하게 느긋하다. 출근 시간도 유연하고, 퇴근 시간도 유연하다. 필요하면 재택 근무가 언제든 되기 때문에 아이들 학교 끝나는 시간에 내가 픽업을 가는 것도 특별히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들 픽업 나와 있는 아빠들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겠지. 의도적으로 조금 여유를 갖는건 아니고, 아이를 집중적으로 케어할 일이 생겨서 벌어진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유를 가질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렇게 느긋하게 일 한다고 한국에서보다 업무 강도가 낮은건 아니지만 시간을 유연하게 사용할수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마음의 평온이 주는 느긋함은 분명 삶에 도움이 된다.


종종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그러면 LinkedIn을 뒤적거리기는 하는데 이것저것 따져 보고는 늘 다시 주저 앉는다. 아이들이 한창 크는 동안은, 그리고 아픈 아이가 내 보살핌이 필요한 지금은 돈을 좀 덜 벌더라도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내는게 나를 위해서도, 가족들을 위해서도 더 좋을테니까. 긴 시간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버는건 아이들이 독립해서 집을 떠난 뒤에 하면 된다. 고등학교 졸업하면 집을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미국이기에 우리집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지금처럼 조금 천천히 살아도 괜찮겠지.



*Cover image: Image by saidebladji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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