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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Sep 17. 2021

미국 이민자의 필독서 -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는 사람이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



한국에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을 일으킨 장편 소설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선배, 나가사와가 주인공 와타나베를 만났을 때 한 말입니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과 스콧 피츠제럴드라는 작가를 본격적으로 알린 신호탄이기도 합니다. 세계 문학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미국 문화의 큰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한국이 미국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인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다른 일본인 작가의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입니다.(독서광들은 제외! 저같이 책도 드문드문 읽지만 미국 문학에 별 관심 없던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저는 정말로 피츠제럴드를 상실의 시대를 통해 알았거든요.) 심지어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학생들의 필독서이기도 할 정도로 미국인들의 문화와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니까요. 계속해서 영화로 리메이크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다면 왜 그 전에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이 한국 사회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여러 가지 토론이 가능하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리 잡은 것은 2차 대전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이기 때문입니다.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의 작가이며 그 시대상을 글로 남기는데 몰두했던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는 미국은 1940년대 이후의 미국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미국의 문화는 1940년대 이후의 문화이며 국제 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지켜본 것 역시 1950년대 이후입니다.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고종황제가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기도 전 부터지만 대한제국보다는 필리핀에 관심이 많았기에 우리 역사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것은 2차대전 이후부터지요.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도 이런 미국의 입장이 아주 살짝 묘사되기는 합니다.) 그러니 1920년대의 미국이 어땠는지는 한국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을 겁니다.


이런 배경을 놓고 본다면, 한국인들에게 미국의 첫인상이 어땠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50년대의 미국은 어떤 나라였느냐를 이해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겁니다. 1950년을 중심으로 그 앞 뒤 30년씩(총 60년)을 따로 보면 미국은 중산층의 천국이었습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척하던 시기, 미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불리었지만 사실 그 중산층들은 어지간한 유럽의 부자들보다도 더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지요. 빈부의 격차도 놀라우리만큼 적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넘어가기만 하면, 몇 년 고생해서 자리를 잡기만 하면 한국은 물론이고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불가능한 속도로 부를 축척하는 것이 가능했던 시기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아무리 전 세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부가 많다 하더라도 대부분 기존 자산가나 권력들이 독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게 맞을 텐데 말이죠. 지금은 물론 당시에도 부는 독점되기 쉽습니다만 놀랍게도 이 당시의 미국만큼은 예외였습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강력한 조세 정책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최고세율은 94% 까지 올라 있었고 앞 뒤 30년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최고 세율이 70~80% 대를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에 최고세율 부과 소득 기준을 낮추기까지 했습니다. 자유시장경제의 상징과도 같았던 미국이 이렇게 고소득자들에게 가혹한 세금 정책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요. 물론 2차 대전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최고세율 부과 기준을 5백만 달러에서 20만 달러로 낮춘 건 누가 봐도 전쟁 자금 충당이지요. 그러나 전쟁 전부터 이미 80%대의 세율을 기록하고 있었고 2차 대전 전에도 최고세율 부과 금액을 낮추는 추세였기 때문에 무조건 전쟁 탓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미 2차 대전 전부터 미국은 강력한 부의 재분배를 통해 '대규모 중산층(Mass middle class)'라는 단어가 더 이상 마르크스나 레븐스타인의 이론으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냈으니까요.



이런 강력한 조세 정책을 기반으로 한 부의 재분배는 전 세계에 아메리칸 드림을 낳았습니다. 가난한 나라가 평등하게 나누자고 하면 정말 콩 한쪽 나눠 먹어야 하지만, 2차 대전 후 모든 나라들이 폐허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있을 때, '단 하나의 부서진 공장도 없는 제조업', '농장이 너무 많고 넓어서 농부가 모자랄 지경인 농업', '전쟁 채권으로 유럽 재건 비용의 상당 부분을 빨아들이고 있던 금융업'을 가진 유일한 절대 강자의 위치에 서서 전 세계의 부를 쓸어 담고 있는 나라가 그리 한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나눠도 나눠도 줄지 않으니까요. 어떤 직업을 갖고 있든, 어떤 일을 하든 충분히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쌓인 부는 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고 이웃과 동료가 경쟁자가 아닌 말 그대로 '이웃' 이 됩니다. 서로에게 친절하고 항상 양보하며 과도할 정도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문화가 이때 형성되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미국은 이런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역시 그 첫인상은 아메리칸 드림 이라는 말로 진하게 남아 있지요. 저를 비롯해서 미국으로의 진출을 꿈꾸는 많은 분들에게 미국은 이런 모습 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미국이 이런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부의 재 분배와 중산층의 대두라는 큰 변곡점을 맞이한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Pax Americana가 진짜 시작된 시기는 언제일까요? 바로 1920년대입니다. 그 유명한 미국 수정 헌법 제19조가 비준된 시기, 1차 대전 후 쏟아져 들어오는 부로 사회 전체가 부유해지고 있었던 시기, 강력한 조세 정책으로 중산층이라는 신 경제 단어가 생겨난 시기, 금주령과 마피아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시기, 유럽에서부터 고착되어서 내려오던 계급이 붕괴하고 새로운 변혁의 물결이 쏟아지던 시기, Swing dance가 나오고 Jazz의 황금기가 시작된 시기, 대륙을 가로지르는 자동차와 기차, 대양을 가로지르는 크루즈가 보편화되면서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던 시기, 뉴욕 맨해튼의 금융업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시기... 그리고 경제 대공황으로 이 모든 것들을 한번에 잃는 경험을 하기도 했던. 모두 1920년대입니다. 이 때문에 1920년대는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한 시기이며 모든 미국 문화, 사회, 경제의 탈바꿈을 목도한 거대한 변화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따로 단어까지 있을까요. 바로 Roaring Twenties 라는 단어가 이 모든 것을 함축한 단어입니다. 모든 미국인들은, 미국 문화는, 미국 사회는 Roaring Twenties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무 멀어진... 마음의 고향이지요.


https://en.wikipedia.org/wiki/Roaring_Twenties



스콧 피츠제럴드는 바로 이 시기의 미국을 타고난 재능으로 너무나 적확하게 묘사했던 작가이며 그의 대표작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원제목은 The Great Gatsby인데, 위대한 개츠비 로 번역하면서 약간 뉘앙스가 달라졌습니다. 사실 'Great'를 '위대한'이라고 번역하면 살짝 느낌이 달라집니다. 너무 거창해진다고 할까요? 미국에서 살고 계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좋은 소식' 도 'good news'라고도 하지만 'great news'라고도 합니다. '정말 잘됐다' 도 'it is great' 정도로 표현하지요. 위대하다는 말과는 뭔가 포함하는 의미가 살짝 다른데 그걸 정확하게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마치 '정'을 영어로 억지 번역하면 이상해 지는 것처럼요. 차라리 '위대한'을 빼고 그냥 '개츠비' 정도가 어땠을까 싶기도 합니다.


단순히 어느 영민한 청년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는 '위대한 개츠비'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펜을 통해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미국의 1920년대를 대표하는 상징처럼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주 단순한 배경, 짧은 설명 한줄 조차도 1920년대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으니까요. 그리고 개츠비라는 캐릭터는 미국인들이 닮고자 하는 미국인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개츠비에 대한 소설의 묘사만 가져오더라도 그는 인생의 가능성을 감지하는 재능,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단단함, 낭만적인 감수성, 모든 이를 편하게 해주는 유머 감각을 갖추고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캐릭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아마 모든 헐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들은 개츠비 리비전 넘버를 붙여도 될 겁니다.



오랜 시간 이렇게 사랑 받아온 탓에, 위대한 개츠비는 미국 중고등 학생들의 필독서이기도 합니다. 바꿔 말하면, 미국에서 나고 자란 모든 사람들은 이 소설을 또는 한 단편이라도 반드시 읽고 그만큼 영향을 받고 자란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그래서 단 시간에 미국의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이민자에게는 이 소설이 미국인들의 마음의 고향에 대한.. 그리고 그 지점에서부터 형성되어 온 미국의 문화와 규칙등을 이해하게 도와주는 더 없이 좋은 수단이 됩니다.


전자책도 보편화 되어 있는 세상이니 이번 주말, 미국에 살고 계신 분이라면 또는 미국을 이해하고 싶은 분이라면 한번 읽어 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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