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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Oct 06. 2021

첫째와의 대화

요즘 늦은 밤시간에 첫째와 대화하는 일이 잦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어쨌든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되니 저는 좋습니다.



지난주 초,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는다는 첫째에게 먹을걸 챙겨주고 다이닝룸 테이블에 둘이 마주 앉아 이런 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한시간 넘게 했습니다. 요즘 듣는 수업과 학교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지구 온난화와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이야기도 했고 미래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요. 제가 하는 일에 아이가 많은 질문을 해서 그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는데 아빠의 일에 대해 아이가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물어본건 어제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 그날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제가 갖고 놀고 있던 라즈베리 파이에도 관심을 보여서 이걸로 뭘 같이 해볼까 하는 대화도 했는데 이건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겠습니다. (아이 관심이 scratch에서 python으로 관심이 넘어가기 시작했는데 문법 익히라고 책 던져줘 봐야 효과 없을테니 뭔가 같이 프로젝트를 하나 해보려 합니다.)


중학생이 된 첫째는 이제 외교/정치적인 부분도 기본적이나마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고 과학 지식도 제법 폭넓게 쌓고 있어서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대화가 가능합니다. 아이의 논리에서 유튜버들의 흔적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 또한 지금 세대 아이들이 정보를 입수하는 방법일것이기에 별 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균형감을 찾아주는게 부모와 교육기관의 새로운 의무겠지요.


늦은 밤 아이와 주전부리 먹어가며 각자의 세상 사는 이야기와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 하는게 그렇게 즐거운 일이라는 걸 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아이가 벌써 이만큼 자랐다는 사실이 새롭네요.



지난 주말, 거실에 앉아서 차를 한잔 하려는데 첫째가 오늘도 잠이 안온다며 거실로 내려왔습니다. 킨들 충전을 깜빡해서 책도 읽을 수 없다나요. 제 킨들을 빌려줄까 하다 마침 차도 넉넉하게 내려둔 김에 아이와 함께 차를 마시며 체스를 뒀습니다. 

장난감 간이 체스판을 쓰다 작년에 나무로 된, 한단계 위 품질의 체스 세트를 샀는데 마음에 듭니다.

 


첫째와 체스를 두면 서로 말이 많아집니다. 제가 놓은 수를 이해 못하겠으면 아이가 왜 그렇게 뒀는지 물어보는데 마치 복기를 하듯 그 자리에서 왜 이렇게 뒀는지, 노림수가 뭔지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줍니다. 저 역시 아이에게 자기가 둔 수를 설명해줄 걸 종종 요청하는데 아이에게는 두가지 모두 좋은 체스 교육이 됩니다. 물론 모든 수를 전부 그렇게 물어보는 건 아니고(그러면 게임이 끝나질 않을테니) 게임 두는 동안 대여섯번 정도 그렇게 대화가 오가는데 한번 대화가 시작되면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놓아가며 토론하기 때문에 시간이 길어지기는 합니다.  


이날 게임은 제가 졌습니다. 막판에 실수를 한번 했는데, 아이가 그 실수를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져서 결국 항복을 했지요. 전에는 실수를 해도 만회할 기회가 제법 있었는데 요즘은 실수, 특히 막판에 하는 실수는 그대로 승패를 결정 짓습니다. 그만큼 아이의 실력이 늘었다는 것이겠지요.


첫째부터 막내까지. 점차 아이들과의 체스가 진지해집니다. 봐줄 필요가 없어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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