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마을 May 14. 2022

직장 vs 직업

엔지니어 한명이 팀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자기 전공에 좀 더 맞는, 보스톤쪽에 있는 Robotics 스타트업에 합류하기 위해서인데, 좀더 많은 샐러리를 제시했지만 돈의 문제가 아니라서 잡을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대학원에서 Robotics 쪽으로 전공한 인력이니 정확하게 자기 전문 분야, 하고 싶었던 일을 하러 가는데 그걸 무슨 수로 막을수 있을까요. 더구나 mechanical engineering 만 알던 친구가 우리 회사에 와서 전혀 지식이 없었던 control과 sensor, 통신 protocol에 대해 배우고 일하면서 내공을 쌓았으니 이젠 정말 Robotics 쪽에서 탐낼만한 엔지니어가 됐습니다. 저 같아도 옮길것 같네요. 어쨌든 잡지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미국의 이런 문화가 좋습니다. 무조건 더 큰 회사가 아니라 더 작은 회사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미래를 위해 자신의 커리어를 투자한다는 식으로 job을 구하는 엔지니어들이 많은 이 문화가 말이죠. 그런데 이건 미국에 사는 엔지니어들이 한국에 비해 능력이 좋거나 도전 정신이 많아서는 아닙니다. 개인을 보면 사실 모두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거기서 거기죠. 인종과 출신 지역은 개인의 역량에 아무런 차이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저는 직업과 직장중 어느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느냐 하는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에서 답을 찾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직장이 중요합니다.


큰회사=높은연봉과 좋은 복지=사회적 인정 으로 통하니까요. 그래서 일부 대기업들은 개발자가 영업이 되기도 하고.. 마케팅으로 부서가 바뀌기도 하는등 타의에 의해 업이 계속 바뀌지만 그 이유로 퇴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스스로의 의지로 업무를 바꾸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많은 경우 권유의 형태를 띤 타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럼에도 퇴사까지 가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요즘은 개선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대체적으로 회사의 크기와 연봉은 비례합니다. supply chain 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연봉이 줄어드는 현상도 비슷합니다. 대기업의 협력 업체 직원은 대체로 최종 납품처인 대기업 직원보다 연봉이 낮습니다. 그래서 회사 이름을 들으면 그 사람이 대략 어느정도 연봉을 받고 있을지, 어느정도 소비력과 여유가 있는지 짐작이 됩니다. 이는 또다시 큰회사에 목을 매는 이유가 됩니다. 언론도 좋아하는, 흔히 말하는 재계서열 몇위의 회사에 다니는지가 그 사람의 생활 수준과 사회적 평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직업보다 직장이 중요합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개인에게 있어 이런 문화가 좋은 점은,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더라도 회사의 다양한 업무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이렇게 쌓은 내공이 힘을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Good generalist 가 되는데 좋은 루트입니다. 연차가 올라가면 승진을 하는게 자연스러운 한국 문화에서 다양한 시야를 가져야 하는 manager로서의 역량을 키울수 있으니까요. 기업 입장에서도 경영진으로 승진시킬 사람을 찾아내기 좋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문 분야에서는 그저 그랬지만 복합적으로 여러 분야를 이해해야 하는 매니저로써는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케이스들도 종종 발견됩니다.   



미국에서는 직업이 중요합니다.


일단 미국에서는 회사의 크기와 연봉이 비례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름만 대면 알만한 실리콘벨리의 큰 기업들의 경우 평균 연봉이 높지만, 그보다 작은 회사를 다닌다고 무조건 연봉이 낮은 것도 아닙니다. 연봉이 낮은 경우라도 다른 benefit들(쉽게 예를 들어 주식이라던가) 이 좋아서 total compensation을 보면 더 좋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 역량과 평판이 좋고 내 전문분야를 애타게 찾는 회사와 잘 만나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야 같은 연차의 직원이라도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이 그 대기업의 하청업체를 다니는 사람보다 연봉이 높은게 당연하게 받아들여 지지만 미국에서는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회사들이 좋은 인력을 잡아두기 위해 많은 연봉과 베네핏을 제공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보통 미국에서는 이직이 잦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하면서 더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다면 직장에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납니다. 그렇게 이직이 잦다 보니 소위 말해 잘 알려진 기업에 입사했다 하더라도 십년 이십년씩 다니는 경우도 별로 없고 거기에 목을 맬 이유도 없습니다. 더구나 스타트업을 통해 기존의 큰 기업들에서는 상상도 못할 돈을 버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어디에 다니고 있느냐는 중요한게 아니라 자신의 전문성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는 직장보다 직업이 중요합니다.


Good generalist보다는 Specialist를 좋아하는 미국의 문화에서 긴시간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더라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벗어나지 않고 내공을 쌓을수 있다는건 큰 장점입니다. 매니저로써의 커리어 패스와 전문가로써의 커리어 패스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는 미국에서 직장보다 직업을 유지 수 있다는 점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IT 를 필두로 개인의 전문성이 직장의 가치보다 인정받기 시작하는 문화가 조금씩 퍼지고 있습니다. 다른 인더스트리로도 그 분위기가 전파될지 관심있게 지켜볼 일입니다. 이는 사회 전반적으로 대단히 큰 변화가 될 테니까요.




어떤게 옳다 그르다의 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던, 어디를 다니든 내게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을 선택한다는 행위에 잘잘못이 있기 어려우니까요. 다만 개인의 성향에 따라서는 어디가 더 편안하다 정도의 구분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끼던 엔지니어가 팀을 떠나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개발 디렉터로써 개발자들이 그렇게 순환을 하면서도 프로젝트와 팀이 단단하게 유지되도록 하는게 제 역할일텐데 아직 한국에서 온지 몇년 안되는 저는 그냥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드는군요. 그 친구를 대체할 인력을 뽑기 위해 지난주부터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 하고 있는데 어서 딱 맞는 인재가 찾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Cover Image: Image by Arek Socha from Pixabay 

작가의 이전글 둘째의 오케스트라 공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