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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May 25. 2022

배웅하는 길

멀리 배웅하는 길은, 유난히 짧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그만두는 동료의 마지막 날에는 그의 퇴근길을 함께 걸어가주곤 했다. 모든 동료에게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상 마주 붙여놓고 지냈던 동료들에게는 건너뛸 수 없는 의식인 것 처럼 그렇게 배웅을 했다. 유난스럽게 큰 캠퍼스를 가졌던 삼성전자 기흥 사업장에서 근무했던 탓에 건물을 나와서 정문을 지나 주차장까지 걸어가면 15~2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퇴사자들은 보통 인사를 하고 오전에 바로 회사를 나서기에 남들 다 집에 가는 퇴근 시간이 아니라 점심시간 직전의 한낮에 배웅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으로 붐비는 정문을 지나는 내게는 짧은 외출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게 걸으면 이상하리만치 할 말이 많았다. 내가 남들처럼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고 유머를 섞어가며 사람들을 웃겨줄 수 있는 재치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말이 많다는 것 자체가 내게도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이제 같이 걸을 기회가 없어진다는 그 어색함을 감추고 싶었던 것인지도.



그렇게 배웅을 해보면, 열에 아홉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장소에서 걸음을 멈추고 내게 이제 그만 들어가 보라고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어쨌든, 그 지점에서 더 고집부리지 않고 악수를 한 뒤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은 참 길었다. 당시에 그 길이 긴 것인지, 배웅했던 길이 짧은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멀리 배웅하는 길 일수록 더 짧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뿐. 


내가 퇴사를 했던 날, 침전되듯 남아 있는 그날의 기억 속에서도 유난히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멀리까지 따라나온 배웅이 있었다. 그날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혼자 정문을 지나 주차장으로 와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 움직였기에 딱히 대화할 상대도, 기회도 없는 그런 길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내려 놓고는 곧바로 막내의 어린이집 버스의 도착 시간에 맞춰 아파트 단지 앞 버스 정류장으로 나가 벤치에 앉았다. 



5월의 마지막 날이었고 눈부시게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살이 손으로 만져질듯 선명했던 오후. 벤치에 등을 기대고 앉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내게 카톡을 타고 함께 일했던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좋아요?


한 단어로 된 그 질문을 폰 화면에 띄워놓고 한참을 응시했다. 그렇게 물어봐 준 동료는 그가 유일했다. 미국가서도 잘 살라는 식의, 내 앞날에 대한 언급으로 도배된 배웅만을 받았던 내게 다른 건 묻지도 않고 십년 넘게 인연을 맺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정문을 나선 내 기분이 어떤지만 물어보는, 그것도 딱 한 단어로 물어보는 그 동료의 배웅은 색달랐고, 쉽게 답할 수 없는 복잡함이었다. 아쉽게도 내가 뭐라고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냥 막연히 맹숭맹숭한 답을 했다는 느낌만 있을 뿐. 색달랐던 그의 배웅만큼이나 세련된 답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평소 없던 재치가 그럴때만 생길리 없다. 그냥 아쉬움.




그리고 내 퇴사일로부터 4년이 지난 오늘, 바로 그 동료가 개인 사정으로 장기 휴직을 하게 됐다. 좋은 일로 휴직을 하는거라 그 자체에 서운함이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휴직은 아니지만 당장 내일의 일도 알 수 없는 판에 그에게 다년의 휴직은 퇴직과 맞먹는 사건이었으리라. 


워낙 오랜 시간 서로 연락이 없었던 터라 어떻게 인사와 격려를 할까 고민하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는 한 단어를 적어 카톡을 보냈다. 


좋아요?


좋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의 앞날이 신나고 즐거운 일로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Cover image: Image by Cindy Lever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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