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Multicultural night 행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다문화 축제.. 정도가 되겠네요. 간단히 설명하면 아이들과 그 가정들이 나라별로 모여서 각자의 문화와 음식등을 나누고 설명하는 행사입니다. 매년 이맘때 한번 하는데 나름 초등학교들의 큰 행사이기도 합니다. 아이들만을 위한 행사라고 보기는 어렵고 어른들에게도 다른 나라에 대해 이해할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학교마다 조금씩 형태는 다른데, 저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경우 아이들이 다니면서 각 나라를 열심히 공부할수 있게 퀴즈를 내기도 합니다.
"What does it call Korean Traditional Clothes?" "Hanbok!"
제가 사는 곳이 한국인들이 많은 동네가 아닌데다(저희 집이 이사왔을때 초등학교 전체에 한국인 아이가 3명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조용한 동방의 문화를 고수하는 가정들이어서 나서서 매년 있는 이 행사에 한국은 테이블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킨더에 입학한 아이의 가정에서 한번 해보자는 말을 하고 사람을 모으셨지요. 처음 계획은 세 가정이라도 모여서 작게 테이블을 하나 내놓자는 쪽이었는데, 세상에. 모여보니 한 학년에 한가정씩 있더군요. 다들 그랬습니다. 이 학교에 언제 이렇게 한국인이 많아졌냐고.
여러 아이디어가 일사천리로 나왔고 역할을 나눠서 착착 준비가 진행됐습니다. 그룹챗을 만들어서 매일 아이디어를 모으고 준비 상황을 공유했는데.. 저도 회사에서 디렉터로 팀을 이끌고 있지만 정말 이분들을 고스란히 회사로 모셔와서 팀원으로 함께 일하고 싶을 정도로 손발이 척척 맞더군요.
공간 문제도 있지만 소개하는 내용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아주 축약해서 아이들에게(그리고 그 부모들에게) 소개할 메시지를 골랐고, 테마는 '놀이', '옷', '한글' 으로 정해졌습니다. (한국 지도나 기본적인 정보는 당연히 소개했습니다만.. 아이들은 크게 흥미를 안보이더군요.)
최근 많이 알려진 한국의 KPOP이나 넷플릭스 오징어게임도 최대한 활용했습니다만, 혹시라도 준비하시는 분들을 위해 저희팀에서 이번에 한 아이템들을 공유합니다.
- 음식: 일회용 접시나 포크등을 없애고 사람들이 집어먹기 좋게 하자. 어떻게? 김밥과 달고나 두개만 놓자.
- 한글: 고유의 문자를 가진 나라임을 알리자. 어떻게? 부스를 찾는 아이들에게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적은 이름표를 걸어주자.
- 옷: 한복은 한국의 전통 의상이라는걸 알리자. 어른과 아이들중 한복이 있는 사람들은 입고 오고 전시도 하자
- 놀이: 배우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쉽게 시도해볼수 있는 걸로. 제기차기! 딱지치기! (딱지 접는 강좌도 하자)
그리고 한국을 소개할 공연도 두개 준비했습니다.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아이 한명이 다니는 도장에 이야기 했는데 사범님께서 흔쾌히 응해주셔서 그 도장의 아이들과 함께 와서 태권도 시범 공연을 해주셨습니다. 강렬한 비트의 음악과 함께 아이들이 품새를 선보이고 격파를 하는데 정말 멋지더군요. 공연팀을 둘러싸고 있는 관객들도 매번 큰 환호를 보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희망하는 아이들을 불러내서 격파 체험을 하게 해줬는데 인기 만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너도나도 하고 싶어했고 부모들은 사진 찍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다른 하나의 공연은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가 됐는데, 북춤 이었습니다. 한 아이의 언니가 한국 전통 무용을 배우고 있는데 와서 공연을 해줄수 있다고 해서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생이지만 자신도 이 학교를 다녔고 그래서 이 행사도 알고 있다며 해주고 싶어 했습니다. 태권도 공연이 끝나자마자 커다란 북을 무대로 옮겨 놓고 바로 시작했는데, 의상도 고왔지만 무엇보다 실력이... 정말 한국인인 제가 봐도 우와- 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하늘거린다' 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한국 특유의 가볍고 부드러운 춤과 깜짝 놀랄만큼 큰 소리를 내는 북이 함께 어울어지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정말 강렬한 경험이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이 끝난뒤 아이들이 한국 부스에 몰려들어 전시해놓은 작은 장구를 서로 두드려 보겠다고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
어제의 인기 스타는 명백하게 한국이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달고나를 손에 들고, 목에는 한글로 자기 이름을 적은 이름표를 걸고(한글 이름표가 예상밖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태권도나 북춤을 흉내면서 걸어다니고, 자신이 접은 딱지로 딱지치기를 하며 놀았으니까요. 퀴즈를 통해 한국의 전통 의상을 Hanbok 이라고 부른다는걸 알았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배웠습니다. 사실 달고나는 이걸 전통 음식이라고 해야 하는가에 대해 한국인들조차도 부정적이었지만 어차피 일종의 미끼상품(?) 이었고 그 역할을 100% 달성했습니다.(어른들도 '아, 이게 오징어 게임의 그거구나!' 하며 좋아하더라는...) 김밥을 소개하고 먹어보는 과정에서 스시와 어떻게 다른지 어른과 아이들 모두 배웠습니다. 사실 아이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는데(재료를 보고는 전부 채소라며 먹기를 거부 ㅎㅎ) 부모들에게는(맛이 좋은 healthy food라며) 인기가 많았습니다. 맛만 보라고 하나씩 나눠줬었는데 나중에는 인기가 많아서 왕창 받아가는 사람도 많았고 어디서 살 수 있는지 가게 위치와 연락처를 물어보고 간 사람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두 번의 퍼포먼스도 주목을 많이 받았구요.
이날 부스를 낸 나라는 18개였는데, 솔직히 전체 학생수가 200명 조금 넘는 작은 초등학교이기에 그 안에 어울어져 있는 나라가 이렇게 많을거라고 상상도 못했습니다. 동북아시안처럼 보인다고 전부 중국인이 아니듯 중앙아시안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이 전부 인도인은 아니라는걸 저도 어제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말 할 것도 없지요. 제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데 출신 나라는 제각각입니다. 정말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지요. 전에 아이들에게 너는 한국어와 영어 두가지 언어를 하는 셈이니 대단한거라고 격려해준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이 "다들 언어 두개 하는데요? 제 친구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다 말 두개 해요." 라며 시큰둥해 했는데 어제 비로소 이해가 갔습니다. 다들 이민자니까, 능숙함을 떠나 모국어가 따로 있는거죠.
어제 한국 부스가 워낙 인기가 많았고 아이들도 친구들에게 나서서 소개해줄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게 기분이 좋고 뿌듯해 하는게 보이더군요. (저희집 막내는 오늘도 한복 입고 학교 가겠다고 해서 그렇게 입고 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행사가 도움이 됐고 즐겼던건 우리 어른들이었던것 같습니다. 좋은 한국인 이웃들을 새로 사귀었고,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즐거워 하는걸 지켜볼 수 있었으니까요. 만일 다니시는 학교에서 행사가 있다면 참여해 보시기를 적극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