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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Jul 24. 2022

믿는 대로 이루어 진다는 것

요즘 아침과 오후 첫째의 Summer camp 라이드를 하느라 차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아침에는 일어나기 싫은걸 억지로 일어나서 나오기 때문인지 저기압이라 말이 없는데 한장 들고 뛰고 에너지를 발산하고 나서 오는 오후에는 말이 많다. 캠프에서 있었던 일부터 유튜브에서 본 재미있는 컨텐츠나 동생들과 게임을 하다 겪은 황당한 상황까지, 내성적인 아이의 성격까지 고려하면 깜짝 놀랄 만큼 말이 많다.


어제 퇴근후 캠프에 들려 아이를 픽업해서 집에 오는데 차에 타자 마자 아이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불만을 털어 놨다. 오후에 있었던 competitive outdoor sports 시간에 코치가 프로 테니스 선수들도 그날 경기에 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 자기 원래 실력에 관계 없이 그 경기는 진다고 했다면서 아이는 그걸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다. 자기 실력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닌데 이긴다고 생각하면 이기고 진다고 생각하면 지는게 말도 안된다는 것. 그럼 서로 이긴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질 것 같다고 똑같이 생각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면서.


잠시 듣고 있으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 "아빠도 그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었어. 그런데 살아보니 정말 이긴다고 생각하면 이기는 확률이 높아지던데?" 하고 한문장을 던졌다. 아이는 물리학자인 아빠가 항상 원리와 논리를 기본적으로 깔고 대화한다고 믿고 있는 터라 당연히 내가 자기 의견에 동의하고 그 코치에 대해 같이 비판해줄거라 생각했었는지 당황한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십대가 아니지. 잠시 후 아빠도 틀렸다며 폭포처럼 자기 주장을 쏟아냈다. 반론을 할까 하다가 의미가 없어서 "네 말이 맞아. 승부는 대부분 연습을 통해 쌓은 실력에 의해 나는거야. 그런데 아빠는 아빠가 경험한 것에 근거해서 경험담을 말하는거야. 어떤 과학적인 논리가 아니라. 이길수 있다는, 이긴다는 마음 가짐을 갖고 시합에 임하지 않으면, 바꿔말해 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대부분 지는 결과를 경험했거든." 라고 했다. 굳이 아이에게 내가 옳다고 주입할 필요도 없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으니 아이의 날 선 반응을 슬쩍 비켜 갔다.


뒷자석에서 어이 없다는 듯 작게 콧방귀 끼는 소리가 들렸다. (이노무 자슥을..!) 그리고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창 밖을 보기 시작했고. 뭐, 나도 어릴때 똑같이 반응 했었으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할까. 이런 문제는 사실 본인이 경험으로 깨닫기 전에는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 없다. 애초 설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문제니까.


잠시 서로 말이 없이 그렇게 있다가 슬며시 한마디 던졌다.


"네가 펜싱 시합 할 때 말이야, 상대가 너보다 실력이 좋아서 네가 질 거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 부터는 자신감을 잃게 되서 공격하기 보다 무조건 피하고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거야. 그런데 아무리 수비를 잘해도 모든 공격을 완벽하게 방어할 수는 없을 뿐더러 완벽하게 방어를 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너는 아직 한 포인트도 얻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될 뿐이야. 다시 말해 공격을 해서 포인트를 따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어. 결과가 어떻든, 이길 거라 믿고 앞으로 걸음을 내딛어야 해. 그래야 이길 수 있어."


결과가 어떻든, 이길 거라 믿고 앞으로 걸음을 내딛어야 해. 그래야 이길 수 있어.


사실 이번주 펜싱 클럽에서 있었던 연습 시합에서 첫째는 자신과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와 붙어서 한 포인트도 못따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실력 차이가 엄청 큰 건 아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합 중반 부터는 완전히 얼어 붙어서 뒤로 밀리기만 하고 칼을 내밀지 못했는데, 상대가 자신보다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상대의 칼을 피하고 막을 생각만 했지 공격은 엄두도 못내는 것 같이 보였다.


그 생각이 났는지 아이가 뭐라고 대꾸를 하려다 다시 입을 다무는 낌새가 뒷자석에서 느껴졌다. 보호자가 클럽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칙 때문에 아마 아이는 내가 그 시합을 보지 못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아이의 뒤에서, 유리문을 통해 그 시합을 지켜봤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몰아치는 상대에게 한 포인트도 못딴채 시합이 끝나고, 아이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한참을 서 있었다. 왜 그런 일방적인 시합이 됐는지 고민을 하고 있었을까?


언제쯤 아이가 생각과 믿음의 힘을 깨닫게 될까? 이건 머리로 배우고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경험을 해야만, 종이 한장 차이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거라고 믿고 내딛은 한걸음의 힘을 직접 경험 해야만 알 수 있는 일이니까.


아이가 이후의 삶에서 그런 경험을 언젠가는 반드시 할 거라는걸 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상황이 , 평소 무시하던 믿음의 힘까지도 절실해지는 순간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도 안다.


사십대가 되어서야 어렴풋하게 깨달은 나와 달리 좀 더 이른 나이에 믿음의 힘을, 믿는대로 이루어 진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그 깨달음을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을 훨씬 많이 누릴 수 있을 테고, 무엇보다 내가 무언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테니까.


내가 그런 순간을 마주했던 시기에는 아버지께서 이미 세상을 떠난 이후라 조언이나 도움을 받지 못했지만, 내 아이들은 그런 힘든 순간에 아버지인 내가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Cover Image: Image by OpenClipart-Vectors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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