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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Aug 01. 2021

야간 운전

*2020.6.16.


지난 주말, 일이 있어 해가 넘어간 뒤 한 시간가량 운전했습니다. 한국에서 저는 야간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시선을 분산시키는 주위 풍경도 없고, 전조등이 비추는 도로에만 온 정신이 집중되어 뭔가 힐링되는 기분이랄까요. 스트레스 많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하며 집중할 수 있는 단순 작업이 더 잘 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나를 둘러싼 공간이 비좁은 자동차 안으로 제한되고, 시야도 전방에 고정되는.. 그런 집중되는 느낌이 좋아서 야간 운전을 좋아했지요. 뭐, 퇴근하다 보면 밤에 운전할 일이 많기도 했지만요.


그런데 지난 주말에 어둑어둑해진 freeway를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집중력도 떨어지고,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노안이 온 나이니만큼 맞은편 자동차의 전조등이 눈부시고, 어둠 속에서 도로의 이곳저곳을 훑는 시선과 판단의 속도가 떨어진 것도 있겠지만 불편함의 정도가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편하다기보다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더 정확한 느낌이었을 겁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내와 그런 사실을 놓고 대화를 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해가 지고 난 늦은 밤, 15분 이상 차를 운전해 본 경험이 미국에 오고 뒤에는 한 번도 없었다는 걸 말이죠. 성당을 다녀오거나, 이웃의 저녁 식사 초대 등으로 동네에서 10여분 운전한 적은 있으나 그게 전부였습니다. 정말 지난 2년, 해지고 나서 차를 끌고 멀리 다녀본 기억이 없습니다. 야간에 60 MPH를 넘는 고속으로 주행할 일은 더더군다나 없었습니다. 낯설다는 느낌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던 거죠.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집과 회사가 가까운 탓도 있지만 퇴근 자체가 빠릅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대부분 오후 5시 언저리가 됩니다. 요즘 같이 낮이 긴 시기는 물론이고 해가 짧은 한겨울에도 아직 해가 다 넘어가지 않은 시간이죠. 야근도 없고, 동료들과의 회식도 없고, 친구들끼리 갖는 술자리도 없으니 저녁 식사 전에 퇴근해서 집에 오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입니다. 보통 도착하고도 저녁 식사까지 다른 일들을 할 여유가 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장 늦게 퇴근했던 날이 해가 넘어가서 붉은 노을이 하늘을 뒤덮었던 경우였습니다. 온 세상이 붉게 타오르기는 했으나, 아직은 어둡다고 하기 이른 시점에 집에 도착했지요. 그러다 보니, 집에 와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을 같이 먹고, 씻기고 방에 들여보내서 재우고 난 뒤 노트북을 켜고 다시 일을 할지언정 어둑어둑해져서 집 밖을 나갈 일은 없었습니다.



장점과 단점이 분명합니다.


한국에서는 만성적인 야근과 회식에 치어 살았습니다. 야근 때문에 한국에서는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공간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고, 같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동료(가족들과 나누는 대화보다 그들과 나누는 대화가 훨씬 많았죠)들도 그 공간에 함께 있기 때문에 내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매우 쉬웠습니다. 커피 한잔 들고 하는 투덜거림으로 해소가 안되면 그들과 술자리에 가서 좀 더 직설적인 불만을 토로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죠. 밖에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지만, 밖에서 또 그만큼 풀고 들어오기 때문에 일터의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져올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설사 조금의 꼬리표가 남아 있더라도 집에 머무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아주 약간의 노력 만으로도 가정에서 평온함을 유지하며 스트레스를 잘 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단점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죠. 주말 노력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주말에 아무리 애써 봐야 그건 '이벤트'이지 함께 '생활' 한다는 느낌이 아니니까요.


미국에서는 위에서 말했듯이 사무실 근무 시간이 짧습니다. 야근이 없으니 퇴근은 일찍 하는데, 일도 같이 딸려 옵니다. 스트레스가 사무실에서 해소되지 않고 집으로 함께 묻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상황을 공유하며 공감할 수 있는 동료들과의 회식도 어울림도 거의 없습니다. 대신 그 상태로 집에 와서 아주 긴 시간을 가족들과 대화하고 같이 어울려 지낼 수밖에 없죠. 어디선가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밖에서 풀고 들어오지를 못하니 집 안에서 그걸 풀어내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약간의 방심만으로도 그 스트레스가 외면으로 표출됩니다. 신경질과 짜증을 낸다는 게 아니라, 인상을 찌푸리고... 대화중 딴생각으로 반응이 느려지고.. 감정적으로 얽매여 있는 상태가 되기 쉽다는 뜻입니다. 한 공간에 있는 사람이 그런 상태가 되면, 다른 가족들은 너무나 예민하게 그걸 캐치합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조심하고.. 불편해지죠. 미국이라고 삶의 스트레스가 없는 것 아닙니다. 저는 스트레스 총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스트레스의 형태와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지, 삶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의 총량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이죠. 


스트레스의 형태가 다르고 해소해야 하는 시점에 내가 머무는 장소가 달라지고, 그걸 함께 공감할 사람의 구성이 동료에서 가족으로 바뀌는 만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하는데 이게 어렵습니다. 삶의 방식만큼이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도 수십 년 살면서 거의 습관화되어 있는 것들이니까요.


종종 이민을 온 가정에서 한국에서는 화목하게 잘 지냈는데 여기 와서 싸우는 횟수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처음엔 단지 '이민 생활이 힘들어서 일거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약간 바뀌었습니다. 서로의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한 공간에, 장시간 함께 생활하며 그 상황을 관리하는 법을 우리는 배운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다는 게 근본적인 문제 아니었을까요? 그분들이 뭔가 성숙하지 못했거나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라 말이죠.


왜 미국 사람들이 정원을 열심히 가꾸고, 집수리를 직접 하고, 자동차 정비를 직접 하고, 뭔가를 직접 만들기를 선호하고(... 물론 서비스를 사면 비싼 것도 이유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정말 기상 천외한 취미 활동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아는 분만 아는.. 그런 말이 있죠. '덕 중의 덕은 양덕' 이라고..) 적당한 흥분과 자극을 주는 스포츠 중계가 왜 필수적 인지도 이해가 갑니다.


저 역시 최근 운동을 많이 하고, 정원도 열심히 가꾸고 있습니다. 시시콜콜 아내와 대화하면서 공감을 많이 형성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 관리가 관리가 잘 안돼서 주말에 마시는 와인이나 맥주가 늘었습니다. 좋지 않죠. 특히나 최근 Covid-19 사태로 여러 상황이 나빠지면서 좀 더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래서 좀 더 멘탈적인 부분을 다스릴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이거다 싶은 좋은 방법은 모르겠습니다.


참 아등바등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아 날카로워진 저를 가족들이 숨죽여 지켜봐야 합니다. 그렇게 살기 싫으니,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죠. 혹시 아나요? 이러다 인생 취미를 찾게 될지. :-)


 


*Cover image: Chris Purcell from free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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