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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마을 Sep 17. 2021

쉽게 살아지는 삶?

여름 휴가에서 복귀 후 1주일이 지났습니다. 내일은 두번째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체감상으로는 일주일이 아니라 한달 이상 흐른 것 같습니다. 휴가 복귀 후 시간이 압축되는 기분은 어디나 마찬가지네요. 


작년 4월, 회사에서 업무 시간 체크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근사치로나마 제가 회사 시스템에 접속해서 작업을 한 시간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오피스 365를 사용하는 덕분에 문서 작성한 시간부터 업무 메신저를 사용한 시간, 전화 통화한 시간, 화상 회의에 참석한 시간, 메일 작성하고 읽은 시간까지 모두 확인됩니다. 시스템 기록에 따르면 작년 4월 이후 주당 평균 60시간.. 많았던 주는 최대 80시간을 일을 했더군요. 아시아에 있는 팀원들이나 협력사들과 태평양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날짜 변경선을 두고 일을 해야 하기에 주말도 주말이 아닙니다. 전화와 메일에서 해방되는 시간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오전까지의 아주 짧은 영역 뿐이지요. 업무량이 많다는 걸 정성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정량적으로 드러나서 보니 할 말이 없더군요. 이렇게 주당 근무 시간이 많다고 해서 누가 걱정해주거나 업무량을 조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냥 알려줄 뿐이죠. 이게 리소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초 데이터가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서 뭐가 바뀌는 건 멋 훗날의 일일터.


사실,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는 한 extended work hour는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꼭 해외에 branch office 가 있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supply chain이 해외에 얽혀 있는 경우 한밤중의 전화와 메일, 메신저는 당연한 일상이 됩니다. 요즘이 재택 근무 시기여서가 아니라 평소 출퇴근 자체에 크게 의미가 없는 미국 회사 특징상 사무실은 뭔가를 측정하고 만들어 보거나(개발자 입장), 좀 더 효율적인 회의/토론 을 위해서 가는 것일 뿐 일하는 장소로써의 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출근을 안하고 work from home 하겠다고 아침에 메일 보내면 얼마든지 집에서 일할 수 있지요. 


장점은 분명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경우 부득이하게 아이들에게 시간을 써야 할 때 유연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원할 때 한시간씩 나가서 운동을 하고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안좋은 점은, 퇴근의 개념이 사라진다는거죠. 그냥 집이 사무실이고 24/7 일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사무실이 따로 있지만 일이 많아 집에서도 메일을 자주 봐야 하는 것과, 집에 아예 일하는 사무실이 별도로 있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 와서도 계속 따라다니는 업무 때문에 가족들과 같이 마주 않는 식사 테이블 마저도 피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실제로 밥과 반찬을 그릇에 담아서 방에 들어가 혼자 먹으며 대화를 피하기도 합니다. 그 자리가 싫은게 아니라, 업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빼앗겨서 아이들과의 대화에 쏟을 힘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괜시리, 짜증이 겉으로 표출될 우려도 있고.


가족들의 사진을 자주 찍는 편인데, 그 사진에는 제 다른 시간들이 숨어있습니다. 해변에서 찍은 사진 옆에는 가족들과 떨어져서 전화로 회의를 하고 스마트폰으로 결과를 레포트 하느라 한시간 가까이 혼자 멀리 떨어져 있었던 제가 있습니다. 퇴근 후 아이들과 뒷마당에 늘어져 자기들기리 장난치고 있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 앞 뒤에는 메일을 계속 읽고 답장하는 제가 숨어 있습니다. 뒷마당 바베큐용 오븐에서 고기를 굽는 사진 앞에는 팀원이 보낸 레포트를 읽으며 고기를 뒤집고 있고 제가 서 있습니다. 


그저 내가 행복한 모습과 기억을 기록으로 남길 지, 아니면 스트레스에 찌들어 있는 나를 남길지 하는 선택의 문제일 뿐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고 뒷면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지요. 어차피, 기억은 감정의 해석일 뿐이고 그런 감정은 멋 훗날 기록에 의해 강제됩니다. 어떻게 기록해 두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게 기억이라고 말하면 싫어하는 이도 있었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당시에는 죽을만큼 힘들어도 멋 훗날 얼마든지 아련한 추억으로 바뀔 수 있는 것 처럼, 사실 기억이라는 것은 감정의 해석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기록에 의존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록에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현재의 삶은 쉽지 않습니다.


쉽게 살아지는 삶이란 없습니다


당사자가 그걸 의연하게, 여유있게 대처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로, 삶을 산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저는, 여유있게 대처하지는 못하는 편이고 그래서 삶이 참 버겁습니다.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열심히 살았다 치고 어서 은퇴할 나이가 됐으면 좋겠다는 말은 진심입니다. 그 중간에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많은 즐거움들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지금의 삶이 버겁네요. 


종종 지인들에게 말합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 만큼이나 스트레스의 총량도 보존이 된다고요. 미국에 와서 산다고 해서 한국보다 스트레스가 적어지는 건 아닙니다. 스트레스의 종류와 성격이 달라지는 것 뿐, 총량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삶은 여기서도 퍽퍽합니다. 그래도 어쩔 도리가 없는 한, 지금처럼 열심히 내 삶의 좋은 면들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그렇게 하루하루 내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겠지요. 


나중에 순서가 된다면, 그 분에게 내 존재의 의미를 물어보고 싶습니다. 단지, '보기에 좋아서' 만들어진 존재라면 이 삶이, 세월이 좀 억울하겠지만 그래도 진실을 알면 후련하기는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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