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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죽전 석현 Feb 19. 2021

아들의 마지막 유치원 가는 길

아내보다 조금 늦게 출근하는 나의 일과는 아들과 함께 유치원 가는 일로 시작됩니다.

오롯이 아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둘 만의 추억을 만들어 가는 것 또한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유치원 가는 길에 이름 모를 풀들을 꺾어 손에 쥐어도 보고, 옷에 붙여도 보았습니다.

비 구름이 걷히면 땅 위로 올라 온 지렁이를 함께 관찰했습니다.

집 없는 민달팽이를 밟지 않겠다고 요리조리 비해 걸었던 적도 있습니다.

여러 개의 발로 바쁜 걸음 하던 녀석을 손에 쥐면 검은콩처럼 온몸을 말아 버리는 공벌레도 수 없이 만났습니다.

참새떼의 우렁찬 합창 소리는 몽롱한 아침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습니다.

눈이 내린 날에는 잠시였지만 눈싸움도 하고 새하얀 눈 위에 손도장도 함께 찍었습니다.   

유치원 인근에 위치한 대형 축산시설에서 똥냄새가 날아올 때는 아들과 함께 코를 움켜쥐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습니다.


오늘은 아들이 유치원 가는 마지막 날입니다.

3년 전 입학식 내내 아빠가 제 눈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물, 콧물 흘리던 모습이 선연한데 말입니다.

유치원 입구에서 아들과 헤어지며

 "그동안 수고했어. 씩씩하게 잘 지내줘서 고마워"라고 한마디 남겼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답이 의외입니다.

 "아빠! 그런데 아직 한글 공부 다 못 끝냈는데..." 하는 것입니다. 

아들 녀석은 유치원 가는 마지막 날까지도 한글을 완전히 깨치치 못했다는 걱정이 앞서나 봅니다.


그동안 큰 어려움 없이 유치원 생활을 잘해 준 아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는데, 벌써부터 공부 걱정을 하는 아들의 대답에 어른으로써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그런 아들에게 위로한답시고, 

"괜찮아~ 초등학교에 올라가서 한글 공부는 이어서 하면 돼"라고 말해 줬는데 이 답변 역시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일까요? 

유치원 안내석 옆에서 마지막 사진을 남기는 아들의 얼굴도, 마주한 아빠의 얼굴도 그리 밝지만은 않습니다.


유치원 가는 마지막 날(20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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