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변화
팔자에도 없는 아이폰을 쓰다보니 주워듣게 된 지식인데, 아이폰의 배터리도 사람처럼 늙는다고 했다. 성능 상태가 80% 밑이면, 사람처럼 늙어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인데, 그 기준은 100% 충전 오백 회를 채우는 일이다. 그냥 무조건 오백번의 충전은 아니고, 예를 들어 내가 70% 정도를 써서 70%를 충전하고, 나중에 또 좀 써서 30%를 충전하게 되어 이 합이 100%가 될때 비로소 한 번의 충전이 되는 것인데, 애플 홈페이지에서는 이를 '사이클' 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놓았다. 아이폰 배터리도 사람처럼 밥을 먹어야 힘이 날텐데, 생각해보면 늙는 사람 역시 일어나 밥 먹고, 내놓고, 입고, 움직이고, 돌아와 자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늙어 있을 터이다.
결혼하고 나니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고, 나도 어느덧 마흔을 목전에 두니 예전보다 늙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안 그래도 전주 출신으로 예나 지금이나 음식을 잘하기로 소문난 우리 어머니 역시 아직 칠십도 안되셨는데도, '아이고야, 내 나이가 중늙은이여, 내가 뭐 젊냐.' 하시면서 만드시는 반찬들이 예전과 다르게 은근히 맵고 짜서 간이 세지었다. 어머니는 그조차도 나이 탓이라고 여기시었다. 나 역시 가끔 태권도를 할때 예전의 동작이 힘들거나, 혹은 아내도 수영을 하면서 근육이 다 죽었다고 느낄 때가 있지만, 그보다는 역시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 가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확연히 나이듦을 느낄때가 더 많다. 그 조그맣던 아이가 어느틈에 허벅지가 단단하고, 어깨가 떡 벌어져서 그 나이에 비해 제법 힘을 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언제 저리 컸는가 놀랄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딸이 꽃처럼 피는 만큼 나와 아내는 역시 나이를 먹는다.
그러므로 동네의 많은 어르신들 또한 나와 아내의 눈에는 달리 보인다. 늘 마트 앞에서 춘하추동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상관없이 폐지를 정리하시면서, 딸아이를 보면 허리춤의 요구르트를 하나씩 쥐어주시는 노부인이 있고, 놀러가는 놀이터에서 담배 연기 날아갈까 조심하면서 딸아이를 지켜봐주시는 형님 같은 어르신도 계신다. 도장의 연세 많으신 사매들께는 더 말씀드릴 필요도 없이, 칠순이 가깝고 넘으신 분들조차도 도복의 띠를 졸라매고 아침부터 나와 태권도를 연마하신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늘상 평생 살뜰히 모아오신 재산으로 손녀를 챙겨주시는 모습을 보자면, 늙음이란 이런 것일까 싶을 때가 있다. 과연 아내의 말처럼, 차라리 빨리 늙어 편해지고 싶다 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늘상 젊을 적이나 지금이나 술에 취해 제 스스로를 놓아버리신 어른들을 보았고, 또한 마트 앞의 폐지를 정리하는 노부인 옆에서 낮이고 밤이고 막걸리를 끼고 음악을 튼 채 춤을 추다 쓰러져버리는 세 명의 형제 같은 어르신들을 알고 있으며, 늦은 밤 퇴근길에 갑작스레 나더러 '아니 왜 그따위로 생겼어?' 하시기에 '네?' 하고 되물었더니 '왜 그렇게 못 생겼냐고!' 라고 쐐기를 박으시어 나를 슬프게 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모든 어르신들이 삶의 뒤안길에서 본인의 늙음을 잘 수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늙음은 신체적 쇠락이나 마음의 병으로 오고, 또 어떤 늙음은 건강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난을 수반하여 사람을 비참하게 하기도 한다. 아내와 나는, 그래서, 아이가 자꾸 크는데 젊은 우리가 어떻게 늙을지 알 수 없어 가끔 불안하다. 통장을 보면 더 그렇다. 텅텅 비어 텅장이라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