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한가위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풍성함을 상징하는 한국 최고의 명절

by Aner병문

추석 즈음하여 날씨는 더욱 변덕스러워졌다. 연달아 세 개의 태풍이 진로를 바꿔가며 앞다투어 몰려오느라 어느날은 비가 오고 어느 날은 습하고 더워서 여름인지 가을인지 분간조차 할 수 없었는데, 늘 창문을 열어놓고 자다가 어느날 훌쩍 콧물이 흐르며 목덜미가 선뜩하기에 애플 워치의 날씨를 보니 아침 기온이 12도, 14도 이런 식이었다. 갑자기 낮아진 기온처럼 사람들 마음도 차가워져 가는지, 저 싫다는 여자 기어이 쫓아가 칼로 찔러댄 인간부터 시작하여, 헤어지자 하니 대번에 집안에 감금하여 괴롭히고 폭행한 인간, 심지어 처자식 멀쩡히 둔 사내가 옆집 아가씨 퇴근하면 밤마다 소리를 녹음하여 제 성적인 생활에 쓴다는 뉴스까지 올라오니 세상살이가 어찌 이런가 싶다. 단순히 성별의 문제만이라도 할 수 없는 것이, 가난한 형제들에게 통닭을 대접하여 '돈쭐' 로 행복한 소식인가 했던 닭집 사장님은 선행이 되려 독이 되어 사람들 시비며 구걸에 되려 병을 얻었다고 하고, 어느 시골 마을에서는 식당 아주머니가 여러 마을 사람에게 돌아가며 돈을 빌려 도망갔다고 하니, 결국 이 모든 일은 제가 조금이라도 세고 강한 듯하면 어떻게든 악다구니 써서 저만 좋으면 된다는 아주 못된 심보다. 내가 오랫동안 무공을 이것저것 익혀오고, 무엇이든 조금씩 읽어오며 이제껏 반팔십 정도 살아왔으나, 저보다 약한 듯하면 어떻게든 한 대 쥐어박고자 하고, 저보다 덜 읽은 듯 하면 어떻게든 우겨대어 누르려 하는 졸장부 심보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듯하다. 심지어 내게도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가릴 수 없는 지적 허영.



여하간 차가워지는 날씨따라 인심 또한 사나워져도 어머니는 마침내 좌우간 며느리도 손녀도 어지간히 집안 식구가 되고, 게다가 어린이집 보낼 정도로 크기도 했으니, 육십 평생 처음으로 '일탈' 을 한 번 해보시겠다며 추석 맞아 친구분과 함께 튀르키예 여행을 떠나시었다. 정말이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홀홀히 떠날테니 다 큰 아들딸과 며느리가 알아서 아버지 모시고 추석상 차려먹으라는 말씀과 달리, 어머니는 전날 저녁 늦게까지 밑반찬과 갈비찜까지 손수 다 해놓으셨다. 어머니는 그래도 부인네 둘만 가는 여행길이 좀 그렇다며, 아버지가 가시겠다면 친구 따님도 함께 불러 모녀방, 부부방 쓸 수 있도록 해놓겠다 넌지시 권하셨으나 아버지는 마음 편히 다녀오라 말씀하시고는 벌써 몇 번씩 내게 연락하시어 언제 한번 추석에 마음 편히 술 먹자며 큰 꿈을 꾸고 계시었다. 술 좋아하기로는 부전자전...(...) 어머니는 오며가며 꼬박 왕복 이십시간의 비행기 여행이 결코 녹록치 않았으며, 게다가 맛있는것 무엇 드셨냐는 물음에 치를 떠시며 '웜메, 참말로 빵! 치즈! 빵! 치즈! 빵! 치즈! 하루 죙일 그것만 나와싸, 오죽하믄 우리끼리 추렴해서 한식집을 따로 더 갔겄냐. 오징어볶음이고 김치고 기양 눈물나게 먹었다잉.' 하셨으나 그래도 지프로 누빈 너른 강이며, 풍성한 햇살과 풍광, 무엇보다 옛 십자군의 격전지이자 동서양 교류의 상징이었던 튀르키예에서 마음껏 좋은걸 보고 오신 모양이었다. 여섯 시간 늦다는 튀르키예의 시차가 어머니의 몸을 크게 갉아먹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피로에 지치신 어머니는 오자마자 어린이집에서 뛰노는 손녀의 동영상과 영상통화를 보시고는 크게 기뻐하셨다.



어린이집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 봄에 복직을 해야 할 아내는, 다시금 찾아올 주말부부의 그리움이나 번잡스러움 등을 여러 가지로 고려했으나 그래도 아직까지 말이 굳게 트이지 않은 딸을 걱정하여, 사회 생활을 더 미룰 수 없겠다며 어린이집을 조금 늦게라도 가을 학기부터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어린이집 교사이기도 한 아이 고모- 여동생과 함께 몇 군데 뒤져보더니 그래도 아주 멀지 않은 곳에 보낼만한 곳이 있다고 하여 아내도 비로소 숨통이 조금 트였다. 추석 전 주부터 다니기 시작하였는데 그 때는 적응 기간이라 아내가 직접 느지막히 차로 태워다 주변에서 조금 기다리고 있다가 열두시쯤 다시 태워왔고, 추석 연휴가 끝나고 나서는 집 앞까지 오는 버스에 아홉시에 태워보낸 뒤 오후 네시반에 오는 여유가 드디어 생겼다. 좋아하는 수영도 못하고 그동안 집에서 애만 보느라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아내는, 당장에 밸리댄스(!!!) 를 배우기 시작했고, 집에 돌아와 쉬엄쉬엄 집안일을 돌보며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해주느라 한결 나의 부담도 덜어졌다. 덕분에 나는 11월 대회와 12월 승단 및 연말 수련을 조금이라도 준비할 기회가 더 생겼다. 몇 번의 술자리를 더 갖고 나서, 나 역시 대회와 승단 심사를 위해 좀 더 술을 줄이긴 해야 한다.




술 얘기를 하니 가족 모임을 또 빼놓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동안, 우리는 소크라테스마냥 엄처시하에서 늘 주량을 경계하며 마셔야 하셨던 아버지께서 모처럼 편히 드실 수 있도록 배려해드렸다. 철없는 청춘을 보낸 나지만, 그래도 늘상 어머니를 존중하시고 가정을 지키시며 살림살이를 아낌없이 돌보셨던 아버지의 본이 있으시어 나 역시 (당연한 일이지만) 가사 노동을 하거나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이 결코 아내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안과 아이를 돌보는 일은, 아내이자 어미가 가정 경제를 유지하듯이, 역시 아비이자 남편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다. 다만 늘 엄격하셨던 어머니는 술에도 결코 너그럽지 않으셨기 떄문에 가족모임이 있을떄마다 아버지와 나는 어머니가 그나마 술을 마시게라도 해주시는 일에 늘 감지덕지 해야 했다. 솔직히 아내는 시어머니 역시 약주를 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술에 너그럽지도 않다는 사실에 큰 위안이 되는 모양이었다. 아내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편이었으며, 부모님과 여동생의 걱정과 달리 내게도 언제나 '얄짤없이' 술을 많이 마신다 싶으면 손목을 톡 치거나 그만 마시라 눈짓을 하곤 했다. 한때 나처럼 두주불사의 청춘을 보냈던 너 역시도 이제 나이를 먹고 곧 면사포를 쓸 날이 가까워서인지 여전히 신기한 왼쪽 눈썹을 꿈틀대면서 '전 선생님, 이제 작작 좀 마셔, 솔직히 살면서 남들 마실거 이미 다 마시지 않았어?' 하며 술병을 내주지 않을 때가 많다. 덕분에 서울 북쪽의 어느 냉장고에는 내가 마시다 남긴 술병이 아내의 허락 아래 몇 병이나 감추어져 있다. 좌우간 아버지는 모처럼 추석에 마음껏 약주를 즐기셨으나 좀처럼 밖에서 잡숫지 못하고 늘 집에서 가족들과만 드시다 드디어 밖에 나와 소주를 주문하셨을때, 화학주 한 병에 오천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셨다. 그 이후로는 아버지는 이른바 생생정보통이라든가, 맛있는 TV 등에 나오는 유명 음식점 한번 가보자는 말씀보다는, 역시 집에서 마시는게 최고라며 집에서 조촐히 안주를 사다가 드시는 길을 택하셨다. 그래도 추석 명절, 불꽃놀이가 뻥뻥 터지는 시화 방조제의 밤바람을 뚫으며 실컷 뛰노는 손녀를 보시며 소주잔을 기울이시던 아버지의 행복한 미소는 잊을 수 없다. 어줍잖게 젊었던 내가 속썩였던 나날 이상으로, 아버지 어머니가 늘 건강하고 오래 사시길 빈다.



키케로는 '성공한 로마 남자의 표본' 으로 신체 강건하고, 학문에 힘써 교양을 갖추며, 일찍 결혼하여 처자식을 건사하는 시민권을 지닌 이를 꼽았다. 세계 최초의 제국이었던 로마의 역사에는 지금도 배울 것이 많으며, 내가 과연 한 떄 동서양을 주름잡았던 로마 시민의 절반이나 갈 수 있을지 알수 없다. 다만 나는 이 가을에도 늘상 함께 하는 사람들의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거칠고 날카롭지만, 내 주변을 내가 애쓰는만큼 최선을 다해 유지하고 싶다. 그를 다하기에도 내 역량은 늘 부족하여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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