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보는 것도 하나의 공부이기에

by Aner병문

나는 스무 살때부터 택견을 배웠고, 마흔 살을 목전에 앞둔 지금까지 다양한 무공을 아주 조금씩 손에 익혀왔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태권도에 뜻을 정하고 띠를 매어 지금까지 이르렀다. 아마 내가 죽기 전까지 다른 일이 없다면 나는 책을 읽고 술을 마시듯이 끝까지 태권도를 하게 될 터이다. 그러므로 돈을 받고 승패를 갈라야 하는 프로 선수의 경기를 할 줄은 몰라도 볼 줄은 안다. 한때 이종격투라는 이름으로 흥행하는 듯했던 프로 격투 경기는 종합격투라는 이름으로 고정화되는 듯 하더니 이제는 UFC나 글로리 등의 몇몇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흥행이 무색하도록 짧고 굵게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제아무리 젊은 청춘을 바쳐 최강임을 증명코자 해도, 하루 세 끼 밥은 먹어야 하고, 먹은만큼 내보내되 구질구질해뵈지 않을만한 생활의 품격도 갖춰야 한다. 손칼로 소뿔을 쳐날리고 전봇대를 꺾어 부러뜨렸던 저 유명한 최배달 총재께서도 최초로 백 명의 사내들을 거꾸러 뜨리는 위업을 달성했으나 그 날 바로 도장을 사기당해 빼앗기는 바람에 서둘러 택시를 타고 볼일을 보러 나갔는데, 불과 몇 시간 전 백 명의 장정들과 공수를 겨루느라 진이 다 빠져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택시기사가 조그맣게 '전쟁 끝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런 날건달이 택시나 타며 시간을 죽인다' 며 투덜대던 소리가 선연했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러므로 제아무리 최강의 사내라 할지라도 벌어먹고 살 방도가 없다면 별무소용이며, 천하의 정찬성 선수조차 원정훈련비를 벌기 위해 유튜브를 결코 끊을 수 없다 말씀하신 바도 있다. 이토록 빡빡하고 힘들고 벅찬 현대 무림에 그럴듯한 몸놀림으로 많은 유명세와 돈을 벌고 있다는 한 젊은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맨 처음 시스테마라는, 러시아의 특공무술 비슷한 무공으로 방송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다. 당시만 해도 시스테마 라는 이름 자체가 낯설던 때였다. 유튜브 역시 아직 낯설던 인터넷 동영상의 세계에서 그는 어느 시사 프로그램에 느닷없이 출연하여 군경을 상대로 시범을 선보였는데, 상대를 타격한 반동을 이용해서 반대편에 있는 이를 타격한다거나, 훅 한 방으로 오토바이 헬멧의 보안경 쪽을 날려버린다거나, 손을 쓰지 않고 다리만을 써서 상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제압한다거나 하는 신기한 기술들을 선보였다. 그 때를 나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데 주짓수를 배우기 전의 일이니 주짓수가 우리 나라가 들어오기도 십 년도 채 되기 전의 일이며, 당시만 해도 합기유술이며 크라브 마가 등의 실전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도 전의 일이었다. 이후 그는 WCS 라는 독자적인 무공을 창안했다며, 자신의 무공은 마치 이소룡의 절권도처럼 시스테마를 기초로 모든 무공의 장점을 모아 만든 전투 시스템과도 같다며, 고정되고 정형화된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상황과 사람에 따라서 무궁무진하게 변용될 수 있는 무공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그에 대한 온갖 찬반 양론이 들끓기 시작했으나, 대부분 유튜브에서는 비판 일색이었다.


개인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배우이자 철학자이자 무술가이기도 했던 브루스 리- 이소룡을 감히 사회체육인의 말석에 있는 내가 뭐라 평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이미 문화적으로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의 영화는 언제 봐도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감흥을 준다. 또한 그 스스로 몸을 망칠 정도로 과하게 단련했다는 근육들과 더불어 영화에서 선보이는 움직임들은, 실전성을 떠나 그의 신체 기능이 얼마나 절정에 달했는지는 말해준다. 만약 그가 갑작스레 요절하지만 않았다면, 그래서 그의 무공 이론을 좀 더 정립하고,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의 절권도를 선보이고, 그에 맞춰 좀 더 교육받은 제자들을 배출했다면 절권도는 지금보다는 훨씬 달라졌을 수 있다. 노자 5천자의 도덕경 해석에 지금도 진위 논란을 판별하듯, 이소룡 사후 그가 남긴 절권도는 지금도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누가 더 생전 이소룡의 진위에 가까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참말 아쉬운 일이다.



하물며 아직 젊은 그가 물론 겉보기에는 허공에 그럴듯한 움직임에 신체 기능도 훌륭한 것 같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이소룡이 남긴 미완성의 유작처럼, 또 하나의 자유로운 무공을 독창적이고 효율적으로 창안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의 영어는 그렇게 훌륭하지 못하며, 시스테마를 비롯하여 그가 선보이는 권투, 태극권,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선보이는 호신술 등은 과연 효용성이 있을지 솔직히 아주 의문스럽다. 권투를 가르칠때의 그의 펀치는 언제나 반대편 방어가 크게 벌어져 있어 오로지 상대를 길고 멀리 때리는데에만 힘이 가득 들어가 있고, 중심은 무너져 있으며, 그렇다고 움직임이 뛰어나게 능란하지도 않다. 그 스스로도 태극권을 할줄도 모른다면서, 그는 '태극권을 배워보거나 할줄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움직인다' 며 종종 시범을 선보이곤 하는데 그게 과연 설득력 있는 말인가? 심지어 그의 움직임은, 이연걸 배우의 영화를 흉내내듯 어설프고 우습기까지 느껴진다. 그가 배웠답시고 선보이는 정종 무공들조차 이러한데, 이를 바탕으로 그가 창안했다는 호신술들은 모두 복잡하고 그럴싸하게 보이긴 하지만 종류를 막론하고 도장과 체육관에서 몸을 써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의혹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상대는 항상 움직이고, 반항하기 때문이다. 상대는 절대로 호신술 연습이나 합기유술의 시범 연습처럼 가만히 있다가 부드럽게 넘어가주지 않는다. 반드시 관절에 힘을 꽉 주고 온 몸에 힘을 주어 버둥거리며 반항한다. 그래서 실제로 모든 움직임에서 반드시 상대의 중심을 먼저 잡아두거나, 아니면 반대로 중심을 함께 이동시키면서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는데 중점을 둔다. 그런데 그의 무공은 언제나 그럴싸하게 손발만 파닥거리면서 이렇게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다며 단정짓고 있었다.



물론 사회체육인의 말석에 있는 내가 전혀 평가할 수 없는 위대한 경지에 있는 사람일수도 있다. 좌우간 그는 어느 중견 종합격투가와 경기를 벌였고, 이어서는 그 유명한 '세계 최고의 창' 매니 파퀴아오와 권투 시합을 벌였다. 명색이 한 문파의 장문인이라는 사람이, 왜 자꾸 주먹에 글러브 씌워 상체만 때리는 권투 시합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는 역시였고, 그의 경기는 기대에도 훨씬 못 미쳤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래도 기대보다는 나았던것 같기는 했다. 하기사 아무리 은퇴했어도 세계 최고의 권투 선수를 상대로 그 역시 정신 차리려 권투의 기초를 다시 익히긴 했을 터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허공에서 치는 모습이 그럴듯해도 실제 경기에서 그는 여전히 발을 바닥에 박은 채 허리와 팔만 뻗어 상대를 치려고 했고, 그러니 자연스레 반대 손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의 술래 손을 쳐내듯이 우스꽝스러운 주먹질만 하거나 아예 몸을 뱅그르르 돌리기도 했다. 세상 어느 무공이 상대가 눈 앞에 있는데 몸을 완전히 회전시키라고 가르치던가. 제아무리 반대돌려차기라도 해도 시선은 상대에게 고정시키며, 눈을 떼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대의 공격이 들어올때 반격으로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좌우간 파퀴아오는 역시 남자중의 남자라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음에도 끝까지 안으로 파고들지 않았고 적당하게 경기를 마쳤다. 왜 권투가 신사의 무술인지 또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할 줄은 몰라도 볼 줄은 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말해야 할 터이다. 그는, 분명 무공을 하지 않거나 취미로 하는 이보다 더 뛰어난 몸매와 신체 기능을 지녔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말하는 것처럼 위대한 일대종사나 특출난 무공의 창안자는 아니다. 그는 무공을 수단으로 오히려 사업과 행사를 벌이는데 특화된 인물이며, 공개된 장소에서 사자가 토끼에게 최선을 다할 수 없음을 역이용해, 당연히 최선을 다할 수 없는 거물들만 골라 교묘하게 실리를 챙기고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어느 격투 단체의 유명한 사장님은, 그래도 그의 사업 운영 방식을 높이 평가한다고 했으며, 나 역시 그 말에 공감은 가지만, 이제 그에게 더이상 뛰어난 격투가라든지, 무공의 창시자라는 수식어는 빠지는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니, 솔직히 자신이 그렇게 말한다면 할 수 없고, 그를 따르는 이들이 있다고 해도 자유겠으나, 가장 좋은 건 교육적인 방식이 잘 갖춰진 무공을 주기적으로 땀흘려가며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일보다 더 값진지 나는 감히 알 수 없다. 그런 것을 공부라고 한다. 다시 한번 읽기 시작한 순자에서는 그러므로 그럴듯한 지식으로 상대를 속이고 꾀며 헛된 이름을 날리는 선비를, 속유- 즉 속된 선비라고 한다고 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