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다시 한 번, 관계에 대하여 -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by Aner병문

나 혼자 상처받은 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얼마 전 일이다. 이른 출근길에 현대인의 미덕인 유튜브를 보다가 눈을 의심할만한 광고가 있어 깜짝 놀랐다. '차단까지 당했었는데 다시 연락와서 행복한 연애 중이에요!' 마치 공익광고를 연상시키는 그림체의 삽화에는, 한 여성이 순종적인 얼굴로 한 남자에게 얼굴을 맡기고, 그는 그녀의 양 볼을 잡아늘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회 전문 상담회사라는 인터넷 주소창을 눌러 들어가보니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화려한 외모의 젊은 남녀들이 이른바 '재회전문가' 라며 자신의 얼굴과 광고 문구를 걸어놓고, 무슨 심리학회 회원이니, 업계 1위 재회 컨설턴트이니, 하면서 30초에 1,500원 이상의 높은 비용을 받고 상담을 한다고 했다. 즉, 문구에 따르자면 이들과 상담을 하면, 심지어 차단까지 당했어도 다시금 그 혹은 그녀에게 연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며, 이들에게 상담을 받아 다시금 부재중 전화가 왔네, 결혼 준비 중이네 하는 후기 글까지 있었다. 진위는 모르겠으나 그를 보려면 회원 가입이 필요해 차마 그런 짓까지는 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픽업 아티스트' 라는 직업도 유행했던 적이 있으며, 돈을 내면 전화번호를 '따는' 법을 알려준다느니, 인기남 인기녀가 되는 법을 알려준다느니, 그야말로 무슨 신약성경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를 만들어주신다던 예수님도 아닌데, 차라리 뭔가 인격적으로 성숙하게 다듬어준다는 내용도 아니며, 기껏해야 빈말과 옷, 장신구들로 스스로를 가려 누군가의 전화번호나 받아내는 법을 돈 받고 판다는 것도 우스웠는데, 이제는 인연을 끊고자 하는 이까지 강제로 다시 불러낼 수 있다는 이들까지 등장했다. 이 얘기를 들은 너는 딱 한 마디로 평했다. '오, 사람 마음 써먹어서 돈 버는 것 중에 제일 못된듯.' 음, 역시 많이 배운 내 친구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라는 말조차 구시대의 폭력으로 들리는 세상이 되었으며, 집착은 집착일뿐 더 이상 안쓰러운 낭만이 아니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1원씩 송금하면, 짧은 문구를 보낼 수 있는데, 전화고 문자고 받지 않는 옛 연인에게 이 방법을 악용하다 구설수에 오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비록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한때 지나간 인연에 지나치게 몸과 마음을 앓았던 적이 있으며, 누군들 청춘에 되돌리고픈 순간들이 없었을까. 다만 노래가사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의미가 있을 뿐이다. 요즘 시대는 한편으로는 버리고, 놓으며, 최소한의 삶을 실천하자고는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무언가를 더 많이 잡고 쌓고 놓지 않으려고 하는 듯하여 자꾸 예전의 철없던 나를 떠오르게 만든다.



지금도 철이 덜 들었으나, 젊었을때의 나는 왜 더욱 철이 없었을까? 십 년 이상 청춘을 허비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내가 상처받은 인간이라는 의식이 너무 과했다. 엄격하셨던 부모님 밑에서 나는 주체적으로 건강하게 사람과의 관계를 만드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어머니는 스스로 강의하시던 명심보감처럼, 유학의 정통 가르침처럼, 사람 간의 관계에는 절대적인 왕도가 있으며, 자신은 누구보다 그 왕도를 윤리처럼 잘 실천한다고 자부하시는 분이었다.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받은 은혜는 반드시 갚으셨고, 힘든 이들에게는 반드시 많이 베푸셨으며, 잘못된 일에는 꾸짖기를 서슴치 않았다. 무엇이든 강하고 엄격하셨기에 떨어져나간 이들도 많았고, 충돌이 있었던 때도 잦았다. 친아들로서 나는 어머니에게 늘 혼이 났었고, 학교를 지나 사회에서도 도통 그 결핍에서 제대로 벗어날 수 없었다. 사찰이나 교회, 독서모임, 음악모임 등에서 어머니 눈을 피해 숨통을 찾아 헤매었으나, 애초에 도피였기에 집안 바깥에서 내가 허우적허우적 만들고자 했던 관계는 결국 사람들의 동정과 선행에 기대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 건강히 주고받는 관계를 주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다짜고짜 초면부터 '나 힘들지? 나 불쌍하지? 어서 나 좀 위로해주고, 감싸주고, 안아줘, 나 혼내지마, 부정하지마, 긍정해줘.' 를 퍼부어대는 이와 결이 잘 맞기는 정말 어렵다. 나는 상대도 나만큼의 상처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고, 또한 상대가 내게 무조건 그러할 의무가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나는 관계에 서툴었고, 필요 이상으로 이기적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객관적으로 상처받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나 또한 그 상처에 얽매여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매우 늦게 알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나의 청춘을 더 풍성하게 해주려 했는데, 나에게 질리고 실망하고 상처받아 떠나셨던, 그 젊은 시절의 좋은 이들에게, 늘 감사하고 죄송할 뿐이다. 또한 지금까지 십년 넘어 이십년을 채우도록 가까이 있어주는 몇 안되는 벗들에게도 늘 감사하고 있다. 당시의 나처럼 덜 된 이에게 손 내밀어주고, 무한에 가까운 인내를 발휘하여 알려주고 거둬주고 바로잡아주고 혼내주고 때로는 멀리하여 깨닫게 하였다. 부모와 아내 못지 않게 소중한 이들이다.



그러므로 논어에는 자공 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제자 단목사가 공부자께 여쭙는 일화가 나온다. 자공은 언변이 뛰어나 여러 나라의 재상 및 외교관을 역임했고, 장사에도 수완이 좋아 청빈한 공부자를 많이 지원해주었다. 즉, 인간 관계에 밝았다는 뜻일게다. 그러므로 그가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공부자께 여쭙는 것은 일견 당연해보인다. '선생님,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칭송해마지 않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요?' 공부자의 대답이 뜻밖이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좋다고 할 수 없지!' '엥? 그러면 마을의 사람들이 모두 싫어해야만 좋은 사람인가요?' '그럴리가 있느냐! 다만, 정말 좋은 사람이란, 마을의 선한 이들이 모두 좋아하고, 마을의 악한 이들이 모두 싫어해야만 비로소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단다.' 자로편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최근에 신영복 선생의 강의록을 다시 읽다 마음에 깊이 박히었다.



얼마 전에도 인용했듯이 유학은, 혈연을 중심으로 구성된 종법적 제도를 강조했다. 시대의 한계도 있었겠으나, 공부자 역시 계급론에 익숙하셨으며, 플라톤의 철인정치처럼, 학식이 높은 이가 정치를 해야 한다 믿었던 이다. 정치도 인간관계도 윤리도, 모두 절대적인 선이 있기에 그를 익힌 이가 옳음에 가깝다고 보는 쪽이었다. 그의 이러한 인간관계론은 '예에 어긋나거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 는 유명한 구절에 집약되어 있는데, 예-예의야말로 누구나 절대적으로 지켜야하는 형식이었다. 즉,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 주면 반드시 은혜를 갚는 어머니의 방식야말로 거칠게 보면 정통 유학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그 강렬한 공부자의 황금률을 비판한다. 요즘의 말로는 백금률이라고 하는 법칙이다. 공부자의 인간관계론은 모두가 동일한 윤리와 취향을 지녔다고 전제할때 가능했으므로, 나와 너가 서로 다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고 단언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배고파도 상대는 배불러서 밥을 먹기 싫을 수도 있는데, 굳이 함께 밥을 먹자고 그게 예의라고 무조건 강요해서도 안되고, 나는 하기 싫어도 상대는 하기 좋은 일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노자께서는 '남이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라고 한 발짝 더 물러난다. 즉, 타인은 타인일뿐이라고 전제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걸맞는 논리다.



이야기가 잠시 멀리 돌았는데, 지금보다 더 철없던 시절의 나, 그리고 내 스스로의 부족함에 질려 떠난 이들을 돈 주고 어설프게 배운 경박한 재주로 기어이 다시 부르려는 이른바 '재회 상담' 의 맹점 또한 여기에 있다. 오로지 나만이 옳으며, 나만이 상처받았고, 타인이 나의 원칙에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행동이 가능하다. 상대를 타인이라 생각하지 않고, 나와 같은 논리로 움직여야 한다는 행동이 정말 과하게 크게 보자면 전형적인 파시즘의 논리다. 모든 구성원들이 국가와 동일한 논리로 움직여야 한다는 미치광이들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전세계는 두 번이나 큰 전쟁을 겪어야 했다. 그러므로 과연 유학의 가르침은 옳다. 내가 내 관계를 바로 잡으려 하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다르지 않기에, 같은 논리로 주변을 대하고자 하면 남는 이가 당연히 없다. 끔찍한 일이다.



타인은 타인일 뿐이라는 말을 늘 새기고 산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나와 함께 시험 보는 이가 깊이 공감하여 '아이고, 공부 많이 하셨군요, 그럼 제가 떨어져드려야지요.' 하고 백지를 내주거나, 내가 아무리 열심히 훈련했다 해서 '아이고, 그럼 전 기권합니다.' 라며 스스로 맞서기를 포기하는 상대는 없다. 전부 나의 허망한 바람이고 욕망일 뿐이다. 나 역시 철없던 시절 조금씩 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어렸을 적 상처받았던 이라는 고집에 빠져 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를 주고 다녔던 경박한 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 때 나의 독서와 무공 역시 결국은 나의 빈 모습을 가리려는 허망한 치장에 지나지 않았다. 내 스스로의 부족함을 아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영복 선생의 말씀처럼, 요즘 시대는 도통 나를 돌아볼 구석이 없다. 자꾸만 어딘가 나가서 보고 먹고 떠들고 즐겨야만 삶을 제대로 사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 하나만큼은 정말 내가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데,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건, 내가 나를 설명하고 내놓을 힘이 없다면, 결국 내 스스로가 망가질 뿐이다. 그래서 오래 전 영국의 철학자들은 노숙자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빵 한 조각보다 스스로가 인간임을 설명할 수 있는 자긍심이었다. 지금, 건강한 관계에 목말라 자꾸 욕망에 기대려 하는 젊은 날의 나 같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그러나 늦게라도 알아서 비로소 나의 관계를 겨우 꾸렸다. 늘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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