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저 빗방울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여린 이들을 위해.
감독 존 G. 아빌드센, 주연 랄프 미치오, 팻 모리타, 가라테 키드(베스트 키드로 수입), 미국, 1984.
감독 해럴드 즈윅, 주연 성룡, 제이든 스미스, 베스트 키드, 미국, 2010.
먹고 살기도 바쁘고, 퇴근하고 나면 술 먹고 게임하고 놀기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혹은 취업을 위해 죽을둥 살둥 과열 경쟁의 공부 시대로 내몰리는 이 때에, 왜 우리는 때때로 돈도 안되는 일에 열망하며 매달릴까? 그나마 '쉘 위 댄스' 에서 평생 모범적으로 살아온 아버지이자 남편은, 달빛 아래 여자 강사의 우아한 몸짓에 이끌려 춤을 배우지만, 어떤 사람들은 축구나 야구에 폭 빠지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이고, 돈 내가면서 사람 때리는거 배워서 뭐하려고 해요!' 핀잔들어가며 늦은 나이에도 뒤늦게 도장에 입문하기도 한다. 이와아키 히토시의 말처럼 '돈 한 푼 안되는 비생산적인 일에 매달리는 것 또한 인간의 특성' 이라서 그럴까?
모든 무공이 첫째로 자신을 보호하고 적을 물리치는 강건함을 목표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제가 사실은 어데 가서 맞고 다니고 비겁하게 심부름해주고 다닙니다~ 를 자랑하는 도장이나 무관이나 체육관은 본 적이 없다. 아량과 관대함 또한 당당한 자신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대학생이 유치원과 굳이 맞붙어 싸우지 않듯이, 무공을 통해 진정한 강함을 깨닫는 사람만이 함부로 타인을 괴롭히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이 허락하는 선에서 선선히 져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인격자라 부르며 존경한다. 그러므로 반대로 말하면 진정 약한 사람이 오히려 그를 감추고자 비겁하고 잔혹하며 끝내 추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많은 유혹과 충동, 열망에 시달리는 10대 시절에 이러한 격투기를 통해 오히려 인격의 도야를 완성한다는 내용의 서사는 쉼없이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적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의 앰버 허드가 정말이지 황홀하게 육감적으로 나오는 '겟 썸' 또한 뭇 청소년들이 설레며 보던 격투 영화 중 하나다. 사우스포 스타일을 통해 성숙해지는 권투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사우스포' 도 그러하고, 평생 검소하게 살면서 가족에게 호강 한번 시켜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뜨르르하게 명성을 날리지도 못한, 동네의 가난한 가라테 사범 아버지를 둔 딸의 성장기인 '엠티 핸드(Empty hand : 원제 가라테)' 또한 다 그런 얘기다. 지난한 몸의 단련을 통해 인격을 완성시킨다는 내용은 진부하면서도 끊임없이 매력적이다.
원작인 1984년도의 가라테 키드는 서양의 이른바 '오리엔탈리즘' 에 편승했고, 그에 부합하여 더욱 그를 부풀리고 유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전혀 무공을 모르던 가냘픈 꽃소년이 홀연히 나타난 동양인 옆집 노고수에게 가라테를 배워 사랑과 자존심을 지킨다는 내용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소년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오죽하면 '나는 가라테를 할 줄 안다!' 는 극중 대사가 유행했고, 심지어 왜색이라면 질색을 하던 당시의 한국에도 '베스트 키드' 라는 이름으로 수입이 되었을 정도였다. 참고로 맨손으로 소뿔을 날리고 전세계의 고수들과 실전 대련을 벌이던 최배달 총재의 극진 가라테조차 한국에서는 태권도로 '번안(?!)' 되어 소개되었을 정도니, 그 장벽조차 뛰어넘은 가라테 키드의 인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쉽게도 원작의 주연인 대니얼 역의 랠프 미치오와 미야기 사범 역의 팻 모리타 모두 가라테에는 문외한이며, 심지어 팻 모리타는 일본계이긴 하지만 이미 미국에서 나고 자라 영어가 유창하여 억지로 아버지의 억양과 발음을 떠올리며 연기해야 했단다. (김씨네 편의점?!) 그러므로 영화의 인기에 비해 두 사람의 가라테는 3부작 내내 어설프기 짝이 없다. 사포질을 하면서 돌려막기를, 페인트칠을 하면서 방어를 배우는 모습은 좋지만, 그렇게 허리도 하나도 안 쓰고 박진감이 없어서야... 이 부분은 모두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중국판의 재촬영에서 '재킷 벗어, 재킷 주워, 재킷 입어, 스마일!' 로 다시 짜여졌는데, 성룡도 성룡이거니와 춤으로 단련된 제이든 스미스, 그리고 경극 학교에서 심혈을 기울여 양성한 젊은 기재들이 합을 맞춘 몸놀림이 제법 눈을 즐겁게 한다. 성룡은 미야기 사범을 대신하여 '우리의 모든 동작이 쿵푸다!' 라는, 그야말로 간지폭풍의 대사를 날리는데, 이 대사는 이연걸과 성룡이 함께 출연한 것으로 유명한 '포비든 킹덤' 에서 '선비도 화가도 누구나 다 쿵푸를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이 곧 쿵푸다. 이 세상에 쿵푸가 될 수 없는 동작들은 없다' 라는 대사와도 맥락이 닿는다.
누구나 다 쿵푸를 할 수 있듯이, 누구나 다 가라테도 태권도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맞는 목표와 단계와 빠르기가 있듯이, 무공 또한 굳이 더 잘하는 타인에게 자극받지 않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방식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다. 반드시 이겨야만 돈을 받아 생계를 꾸리는 프로 선수도 아니지 않은가. 내 스스로를 다스리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 납득시키며, 불의에 굴하지 않으면 그 것으로 족하다. 아, 쓰고 보니 역시 대단한 일이지 싶다. 아무나 무공을 통해 심신일체를 이룬다던가. 그래서 고단자가 될수록 띠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단순히 육체적 강함만이 유단자를 증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검은 띠를 받았음에도 구설수에 오르는 이들을 존경치 아니하고 경멸한다.
덧붙여 근 30여년만에 이 배경을 잇는 드라마 '코브라 카이' 가 유튜브 오리지널로 방영되었다. 코브라 카이는 본디 가라테 키드에서 악역이었던 조니 로렌스가 다니던 실전 위주의 악랄한 도장이며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자비없이 오로지 약점을 파고들어 승리에만 집착하기로 유명하다. 성인이 된 조니는 혼자 근근히 입에 풀칠하는 주정뱅이 막노동자로 전락한 반면, 한때 자신에게 괴롭힘 당했던 대니얼은 커다란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존경받는 지역 유지로 어엿하게 살아가고 있다. 둘 다 가라테 실력은 변하지 않았는데도, 사회적 격차는 오히려 학창 시절과 다르게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조니는 자신의 가라테로 이번에는 약한 사람을 구원해보겠다며 지역의 가난한 소년소녀들을 모아 그들과 함께 새로운 코브라 카이를 설립하고, 반면 대니얼은 사회에 찌들게 되면서 점점 어린 시절의 미야기 사범의 가르침대로 인의를 다해 살지 못하는 자신에게 괴로워한다. 무릇 도복을 입은 자가 사회에서 그 고결함과 당당함을 유지하기란 이토록 쉽지 않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수행하는 자는 마땅히 머리를 밀어 번뇌를 쫓고 속세와 거리를 두고 먹는 것조차 잡스럽지 않도록 신경쓰라 당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너의 손발이 범죄케 하거든 능히 그 것을 자르고 차라리 불구로 살라는 비유를 드셨다. 계속하여 죄를 짓느니 차라리 조금 불편하더라도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사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다. 젊은 시절 이순신 장군은 세도가에게 활통을 바치지 않아 북방의 숲을 헤매며 오랑캐들을 토벌하는 최전선의 하급 군관으로 청춘을 다 보내야 했다. 감히 내가 저 위대한 성인들의 발끝에도 갈 수 없고, 또 내 태권도로 언감생심 내 삶을 지탱할 생각도 하지 않지만, 다만 나도 당대의 고수들에게 인가받은 띠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그래야 내 아내도, 내 딸도, 아비와 남편이 부족하게나마 태권도하는 모습으 보며, 언젠가는 도장에 와야겠다 생각하지 않을까. 전도도 다 그런 것이다. 먼저 몸소 모범을 보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