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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Jan 31.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미래과거시제 - 일상을 새롭게 채색하는 SF의 위대함 

배명훈, 미래과거시제, 북하우스, 한국, 2023 



내가 아는 한, 능글맞게 '쟝르' 를 넘나드는 소설가는 누가 뭐래도 차현 형님이 최고다. 한국 문단계의 무관의 제왕.  언제 어디서든 술을 마시고 어울리는 대범함. 한가로울때 구글에서 자신의 소설을 검색해보다가 그 유명한 본인의 소설 '영광전당포살인사건'  으로 독서모임하는 처녀청년들이 있음을 깨닫고 먼저 연락해보는 소탈함까지 갖춘 좋은 형님이다. 형님은 문인들 이외에도 남희석 씨를 비롯, 여러 분야의 명사들과 두루 교분을 갖추신 호걸이며, 소설에도 가끔 등장하는 우아하신 사모님과 따님도 있고, 무엇보다 술은 말술이셔도 가정을 위해 소설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작문을 다 출간하고, 교과서에도 소설이 실리시며 한 명의 남편, 아비로서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다. 



 왜 갑자기 배명훈 선생 이야길 하다 말고 차현 형님 칭찬으로 한 문단을 할애햇는가 하면, 사실 청소년 소설을 발간하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입맞춤 바이러스 주의보, e-book으로만 주문 가능, 차후 감평 예정) 곽선생에게 '어이고, 그러면서 형님 팬이라고 할 수 있어?' 라는 지청구를 먹고나서야 허겁지겁 읽는 일이 부끄러워서도 그렇지만, 배명훈 선생의 '능글맞음' 이 어느 틈에 차현 형님이나 혹은 김종광 선생과도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타워, 안녕 인공존재!, 청혼 등에서의 배명훈 선생은 더할 나위없이 편안하고 인간적으로 따숩게 스미는 SF를 쓰는 사람이었다. 첨단과학적인 배경과 설정에 복잡한 인간미를 가진 인물들을 던져놓으면 알아서 짜릿한 서사를 뽑아내었다. 나도 단 한 번 습작을 쓰다가 그런 경험이 있어서 알고 있다. 인물과 배경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면 내가 굳이 억지로 짜내려 하지 않아도 물레돌듯 이야기가 줄줄 나온다. 최초의 중편소설  신의 궤도의 결말부에서부터 조금씩 난해해지는가 싶긴 하더니만, 은닉 은 여러 영화감독들이 절찬한데 비해 나는 아직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예술과 중력가속도는 조금 나은가 싶었더니, 고고심령학자는 도로 그 모양이고, 가마틀 스타일은, 뭔가  싸이 강남 스타일이라고 대체 뭔 연관이 있나 싶었으며, 그나마 우리 나라 정치 상황을 많이 풍자하는 총통각하 와 재기발랄한 빙글빙글 우주군으로 잠깐 한숨 돌렸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배명훈 선생은 어느 소설의 머릿글에서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글이 서로 합의되는 지점을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 라는 내용을 쓰신 적이 있다. 그 때 독자로서 나는 '아, 이 양반이 그래도 역시 고학력자라 나 같은 촌무지렁이의 고뇌를 모르시진 않군.' 하며 손뼉을 쳤던 기억이 있다.



미래과거시제는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같이 있어서는 안될, 모순적인 내용을 일부러 현실에 끌어다 병치시킨다. 표제작 말고 '수요곡선의 수호자' 가 아무래도 가장 흥미롭기 때문인지 이 단편집에 가장 첫 자리를 차지했는데, 다름아닌 수요와 생산을 함께 다루어놓았다. '차카타파의 열망으로' 는 마치 외수 선생의 황금비늘마냥 어느 특정한 발음을 하지 않아야되는 시대를, '접히는 신들' 은 유한한 종이접기와 무한한 신의 대비를, '임시 조종사' 에서는 소리꾼 이자람의 팬이라는 이유로 로봇전쟁물을 판소리투로 써냈으며(덕분에 나도 뽕 맞아서 한동안 적벽가 듣고 다녔다. 네 이놈 서성, 정봉아!), '홈, 어웨이' 는 글을 쓸때 자동으로 환호 혹은 야유가 들리도록 하는 프로그램으로 글을 쓰는 작가의 고충 등을 그렸다. 몇 편의 글도 더 소개하고 싶지만 이만 참겠다. 배명훈 선생은 이 책이야말로 자신의 대표작이라고 할만하다고 선언했고, 곽재식 선생은 추천사에서 이 시대에 배명훈 이라는 작가가 있었음을 증거하는 단 하나의 책일수도 있다고 햇다. 그러나 나는 '문단 바깥에서 태어난 행복한 재능' 이라는 설명과 함께 문단 바깥에서 여유로움을 가지고 천천히, 편하게 써준 타워 같은 초기작들이 훨씬 그립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나쁘다고 얘기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읽다보면 역시나 배명훈 선생이라, 향기 하나 안날 듯한 최첨단 시대를 달리는 문장 사이에 슬그머니 인간의 살 내음 같은 정겨운 향이 올라오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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