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세상을 읽는 법(1)- 소크라테스, 지치지 않는 질문자.

by Aner병문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귀엽다.했다. 근데 하필 고슴도치일까? 고슴도치는 타고나길 가시가.돋쳐.사랑한다고.껴안아도 아플수밖에 없는 비운의 짐승이니, 그래도 제 자식은 이뻐 껴안아 그럴까? 고슴도치가 아닌 사람도 서로 어울려 살며 상대를 사랑한다면서도 때로는 물어뜯어 죽이는 일도 다반사가 되었다. 다반사는 항다반사恒茶飯事의 준말인데, 항시 밥먹고 차마시듯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란 뜻이다. 쓰고 보니 소름돋는다.



멀리 뉴스.볼 필요도 없이 요즘 우리 집도 고슴도치마냥 날카로워지신 이들이 많아 아내나 나나 눈치보고 산지 좀 되었다. 아이를 키워야 하니 더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약 삼백여개의 도시가 모여있었던, 그리스 도시연합의 수장이었던 아테네에서는 어땠을까? 요즘도 스파르타식이라는 말을 쓰듯, 군사국가 스파르타는 비록 내홍이 많았을지언정, 단결하여 어찌 버텼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대 민주주의의 산실을 자처하는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군대 급식을 먹고 아테네의 돼지먹이도 이보다는 낫다 할 정도로 문화의 자부심이 있었기에, 차라리 도편추방제로 공동체 바깥으로 쫓아내는 한이 있을지언정, 공동체 자체를 어그러뜨리려 하지는 않았을터이다. (물론 용맹한 스파르타의 군인들은, 아테네의 돼지들도 스파르타의 군댓밥을 먹으면 용감한 전사가 될것이라고 응수했다.)


주먹코에 키가 작고, 요설을 지껄이며 시장에서 전도유망한 젊은이들을 꾀어 어지럽게 만드는 추남논객 소크라테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근 한 달 반만에 다시 읽은 미스터 거스리는 말하고 있다. 분명한 전문직들로서, 많은 지식을 갖춘 소피스테스ㅡ즉, 소피스트들은 극렬한 논리학자들이기도 하기에 결국 회의주의로 결착되기 마련이었다. 지금보다 더 협소한 과학기술과 사상으로 파악되는 세상은 결코 무한하거나 넓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반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그의 아레테 Arete 때문이었다. 덕 德 virtue 라고도 흔히 번역되지만, 희랍어로서의 아레테는 전문 지식이기도 하며, 즉 잘 알아야만 덕도 있다는, 동양식 공부의 미덕과 일치하는 구석도 있다. 따라서 변론가, 교사, 정치인들이 주를 이루던 소피스테스들은 각자 아레테를 지녀야 할 이들이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신발 만드는 이를 비유하여 말한다. 누군가 신발을 가장 처음 만들고자 한다면, 그 필요성을 절감하고, 기능을 기대하며, 생김새를 설계해 그려야할 터이다. 그러므로 신발을 만드는 아레테를 갖추려면, 먼저 신발이 무엇인지 알고 이해해야 한다. 사람과 더불어 살려면 사람이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제대로 알려면, 앎이 무엇인지 알아야하는데,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비로소 알수 있다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무엇이 존재하는지, 감각만 한다 해서 과연 존재하는지, 또 나만 느끼는 감각을 존재의 근거삼아 누구한테 어떻게 전달할지 알수 없기에 존재를 부정한다는 고르기아스 등의 절대적인 부정론과는 궤를 달리할수밖에 없다.


한때 스스로 중장보병으로 세 번이나 참전하여 시민사회를 지키는데 애썼던 소크라테스. 비록 패배했지만, 그는 패주하는 전우들에게 밀집방진을 유지하도록 독려하여 피해를 줄이는데 일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산파식 변증법은 오히려 사회의 근간을 어지럽힌다 생각했는지, 결국 그는 법의 이름으로 독을 마셨다. 거스리는 한때 유망한 정치인이 될수도 있었던 플라톤이 바로 이 사건으로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들었다 평한다. 나는 그는 잘 알수 없으나 오랜만에 읽으니 졸아들었던 마음이 편해지는듯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