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펜은 칼보다 강한가. - 언어에 대한 집착, 비트겐슈타인.
여러번 말하지만, 태권도를 비롯한 여러 무공을 잘해서 하는게 아니다. 그냥 좋아하고, 또 필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할 뿐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사실 내 몸에 타고나고, 어울리지도 않는, 하필 다치기도 쉬운 무공을 이렇게 오랫동안 끊임없이 꾸준히 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가끔 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늘 여기저기 치이고 다녔던 어린 시절의 경험. 또한 합리적이지 않은 물리적 폭력에 끊임없이 굴복하고 비겁했던 순간들. 나는 내 몸을 돌아볼 시간을 너무 늦게 가졌다. 아니, 스무살 때부터 알았다 하면 그래도 늦진 않았을까. 팔굽혀펴기 하나도 못하던, 애초에 무공에는 그저 보기만 할뿐, 막연하게 남자로서의 강함을 동경하고, 몰래 상상만 하던 내가, 갑자기 택견으로부터 지금 태권도에 이르기까지, 나는 과연 어린 시절의 나를 끊임없이 부정하기 위해서만 무공을 하고 있을까. 물론 한때는 그런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적어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십대 때 내가 겪은 무공들은, 주로 이기기 위한 격투기에 가까웠고, 그러므로 나의 무공은 오로지 승패에 매달려 협소하였다. 삼십대 중반, 태권도의 유단자가 되고 나서야 나는 지금껏 내가 겪어온 무공을 돌아보며, 여러 가지 몸의 움직임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생각해보게 되었었다.
결론적으로 말하건대, 나는 그저 말이나 책 속에 숨는 비겁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지만, 정말로 붓으로 칼을 꺾는 이는, 사조영웅전의 묘수선생 주총이나 신조협려의 대리국 재상 주자류 등, 무협지 말고는 도통 본 적이 없다. 무공이란 때때로 천박하고 뻔뻔하리만치 압도적인 현실감을 가져온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했는데, 말은 때때로 어지럽고 갈피가 없어 칼보다 더 큰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말을 하는 사람의 혀는, 주먹 한방에 뭉개지고, 칼 한 자루에 잘려나가기 마련이다. 나는 그 점을 정말 극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훌륭한 무공을 지닌 대장부처럼, 학문을 대하기를 소망했다. 나의 말과 글이, 찌르기나 차기처럼 견고하게 쭉쭉 뻗어서 명료하고, 난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아직도 닿을 수가 없다.
젊은 날의 비트겐슈타인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나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책 좀 읽었다 싶으면 흔히 듣듯, 그의 생애는 전기 후기로 나뉘기도 한다. 태극도설을 고쳤던 주자의 생애처럼, 그의 삶에도 사상적 큰 전회가 있었다. 그가 보기에 철학은 끊임없이 세상의 큰 원리- 세상은 어떻게 생기고 운행되는지, 인간과의 관계는 무엇인지, 존재는 실제로 존재하는지, 오로지 사람 바깥의 것들만 찾다가, 마침내 현상학과 지각론을 통해 사람이 인식하는 범위까지 가까이 오게 되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는 모든 철학적 고민은, 언어에 대한 명료한 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고민내린다. 자신을 찾아온 젊은 천재에게 러셀은 '자네에게 윤리적인 답은 줄 수 없지만, 논리적인 답은 줄 수 있네.' 라고 말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내게 필요한건, 논리나 윤리가 아니라 언어에 대한 명료한 사유일 뿐입니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상대의 공격이 닿기도 전에 찌르기를 제대로 먹인 것과 진배없다.
젊었을 적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에 대한 집착은 집요할 정도였다. 그는 논리철학논고를 통해, 물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었고, 그를 함부로 말로 옮겨서도 안된다고 했지만, 또한 말할 수 있는 것들만 말하자는, 언어의 지시적 용도를 강조하는 입장도 버리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언어의 지시적 용어, 즉 무언가를 설명하고 정의하는 기능은, 자연과학 명제에 어울리는 일이었다. 메를로 뽕띠가 지적하듯, 사람의 사유는 그 자체로 언어 활동이기에, 그는 언어로 옮길수도 없는 사유가 바로 철학의 정수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처럼 스스로의 사유를 강하게 무장하는 방식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갔다. 마치 입산수도하여 혼자 손발로 바위와 나무를 치며, 일격에 소뿔을 꺾는 괴력을 연마한 최배달 총재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최배달 총재의 강함도, 결국 유서 깊은 니조 도장의 열 호걸- 니조 십걸十傑을 물리치고, 가라테 대회에서 우승하며, 여러 지방 도장의 간판을 깨고, 소뿔까지 꺾으며, 비트겐슈타인의 표현대로 하자면 타인과의 마찰을 통해 비로소 알려지게 된 사실이었다. 혼자 연습하여 혼자 강하다고 말해봐야 알아줄 방법이 없다. 무공이 결국 타인과의 적대적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수단이듯, 언어도 타인과의 소통이 전제되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모든 철학적 활동을 마쳤다고 생각한 비트겐슈타인이, 스스로 철학을 완료했다 생각하고 오스트리아의 어느 시골 학교로 부임했을때, 전혀 정제되지 않은, 여러 계급의 그야말로 날生말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규칙없이 싸워대도 승승장구하는 길거리 싸움꾼들을 보는 기분이었을까? 그러나 제아무리 본능으로 싸우는 싸움꾼이라도 나름의 기술과 규칙은 있는 법이다. 중년에 접어든 비트겐슈타인은 타인들의 언어 활동을 보면서, 언어는 철학적 정제를 전제하기 보다 결국 사용하는 집단간의 규칙이 있으며, 그 규칙에 따라 용도를 정해야한다고 다시 전환하게 된다. 물론 그는, 어떤 특별한 규칙을 반드시 맹신해야 한다고 하진 않았다. 태권도 맞서기도 두 사람이서 주고 받으며 진행하듯, 언어도 결국 같은 규칙을 공유하는 이들끼리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만약, 편한 말로 '말이 통하지 않는' 이가 자신의 적의를 드러낸다면 어떻게 대해야할 것인가? 예수님은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뺨을 대주라고 하셨고,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셨더니 적들이 의지를 꺾고, 불교로 귀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세속의 나는 그럴 수 없으니 여러 무공을 연마했다. 언어는 분명 중요하고, 세상을 뒤흔드는 관념을 동반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정작 소수의 물리적 관계에서는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잠을 줄여가며, 몸을 다쳐가며, 자꾸만 태권도를 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