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엄마를 데려오라 했다.
내일 저 고모와 둘만 있을 아이를 위해 장을 조금 보고, 아내가 올라올 역으로 향했다. 주말부부인 죄로, 어머니 아버지 고모가 돌아가며 여섯살 아직 어린 딸을 보아주시고, 아내는 주말의 시작과 끝에 열차로 오르내리며, 달력이 눈에 익어가는 아이는 제 어미 금요일 저녁이 되면, 유독 몸이 달아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와 씻고, 저녁.먹인.뒤 밤이 깊어지려.들면, 아빠, 어서 엄마 데려와요오, 하며 아비 발끝을 민다.
모처럼 여유가 나서 안양천부터 광명역까지 쭈욱 걸었다. 달에 젖은 물이 흐르며, 내게서 가깝다 멀어지었다. 옛 시인 이개는 무서운 숙부에게 쫓기어 영월 산골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어린 단종을 위하여 홍촉루가 紅燭淚歌를 지었다. 흐르는 촛농을 눈물에 빗대었다는 노래이며, 교과서 등에는 흔히 방.안에 혓는 촛불,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어느 물건이든 바라보는 이의 마음이 담기고 비추이면, 애틋하고 정겹지 않으랴. 연인들이 초콜릿을 나눈다는 날에, 나는 오늘도 올라오는 아내를 맞으러 오십분 남짓한 길을 걸었다. 이 길의 끝에 늘 그렇듯 아내가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