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훈련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by Aner병문

도대체 새끼 딸린 늑대- 아이를 동반한 검객은 어떻게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그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기사 소설에 미친 키타나 영감이 돈 끼호떼를 자부하며 칼춤을 추자, 현명한 여관 주인은 말린다. 아이고, 나으리, 편력 기사가 아무나 된답니까, 갈아입을 속옷부터 금화가 가득 든 주머니도 있어야 하굽쇼, 그럴듯한 종자도 하나 있어야 하굽쇼- 하며 온갖 생필품을 주워섬기는 여관 주인 앞에서 자칭 정의의 기사 돈 끼호떼는 가엾게도 그만 벙찌고 만다. 기사 소설엔 그런 얘기 없던걸? 마찬가지로 제아무리 코지마 고세키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토록 수려하게 그려냈다 할지라도, 그 그림 어딘가에서는 분명히 '새끼 딸린 늑대' 라는 별호에 어울리지 않는, 궁상맞은 장면이 숨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내가 어설픈 애비가 되고 보니 더욱 그러하다. 명색이 아이를 동반한 검객인데, 애를 굶기고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 어린 아이의 대소변부터 식사를 챙겨줘야 하고, 피곤하다 칭얼거리며 달래주기도 해야할 터이고, 까막눈으로 키울 수도 없으니 글공부도 시켜야 하고, 원한다면 검술, 서예 등 예체능도 가르쳐야 할 터인데, 하여간 이래저래 손이 갈 일이 많아 이러느니 혼자 살고 말지 싶은 날도 하루이틀은 넘지 않을까. 아무래도 좋은데, 잠잘 틈도 없을 하루에 언제 시간을 쪼개어 그 비범한 검술을 단련하고 유지하겠느냔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출퇴근을 하는 평일,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리 빨라도 오후 여섯시는 넘는 시간. 사랑스러운 딸이 낮밤이 구분되어 밤에는 비교적 쌔근쌔근 자는 것은 참말 다행이지만, 반대로 아내가 혼자 있는 낮에는 그만큼 더 고생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어찌 그리 잠도 아니 자고 안아달라 보채는가 하면, 쪽잠을 자다가도 용을 쓰다 깨고, 모빌이나 TV나 초점 맞추기 책을 볼때는 조용하다가도, 또 엥 울어서 하여간 아내의 혼을 쏙 빼놓는다 한다. 그리하여 돌아오면 집은 무엇 하나 정리되어 있는게 없어서, 아내는 그때서야 겨우 풋잠이 들다 깬 얼굴로, 아이고, 오싰습니꺼, 집이 난장판이라 우야노, 민망해가, 하지만 애 키우는 집이 다 그렇지 별 수 있던가. 그러므로 아내의 식사를 챙기고, 소독과 청소와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를 목욕시키고 나면, 비로소 불을 끄고, 수유등만 켜놓은 채 빨래를 하고, 또 마른 빨래를 정리하며, 다음날 아내가 먹을 식사를 챙기고, 이래저래 하다보면 빨라야 시간은 오후 아홉시가 넘었다. 하루 종일 혼자 아이와 애썼을 아내를 위해, 길이가 모자란 몸이나마 안아주면서 오야오야 해주고 나면, 시간은 열 시가 넘어가는데, 그때쯤이면, 아이가 한 번 또 깨어 잠투정을 부리거나, 내가 깜빡 잠들어버리거나, 그러지 않다 할지라도 이미 몸에 진이 빠져서 도저히 운동은 못하고, 핑계삼아 책이나 펴들기 일쑤다. 그렇다고 쉬는 날은 시간이 많으니 훈련이라도 해야지! 벼르면, 어디서 그렇게 밀린 일들은 쑥쑥 튀어나와 사람 피를 말리는고... 쉬는 날이 더 바쁜건 총각 시절이나 신혼 시절이나, 육아 시절이나 정말이지 다를 게 없었다.



요즘의 훈련이라 하면, 오히려 아이가 없는 회사에서 눈치껏 팔굽혀펴기를 하거나 스쿼트를 하는 정도, 혹은 아이는 용을 쓰거나 투정을 부릴 떄 아주 살짝살짝 흔들어주는 것을 좋아하므로, 아이를 어깨에 얹어 껴안고, 꼭 택견의 품을 밟듯이 굼실굼실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런지하듯 걷는 것이 전부다. 다른건 몰라도 맘 편히 기술 훈련을 할 시간도 활력도 없어서 그게 참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아이가 나옴으로 해서, 나 역시 처음부터 몸을 다시 쓰는 것이다- 아이도 온갖 뜻이 있겠지만 제 몸을 가누기 어렵듯, 나 역시 아무리 훈련을 하고 싶다한들, 쓸 시간이 없으므로, 아이를 키우며 점점 함께 성장하지 않겠는가-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좌우지간 그나마 얼마 있지도 않은 실력이 하루하루 더욱 바닥을 드러내어 썩어가는 것이 아깝기 한량없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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