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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술기운이 빠지고 나서 몇 마디.

by Aner병문

그러므로 오랜만에 만난, 키크고 잘생긴 옛 사제가, 형이 진짜 부사범이야? 아니, 사범님도 생각이 있으셨겠지만, 아니, 근데 진짜 형이 부사범이야? (술 한잔 들이키고) 형, 나보다 먼저 입문했는데, 나보다 옆차찌르기도 못 찼잖아? 아니, 물론 우리들은 이제 태권도 안하니까 할말없긴한데, 형이 진짜 부사범이야? 예나 지금이나 내 실력이.출중하지 않으므로 그의 말은 사실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 나는, 너무 몸을 써서 서혜부 고관절 중 일부가 섬유화되었다는 진단을 받았고, 십오만원어치 주사를 네 방이나 꽂았으며, 진통소염제까지 처방받았다. 뭐가 되었든, 실력 출중한 사제사매들이 모두 부재하여, 결국 지금까지 도장에 머물러 훈련한 사람은 나였다. 나의 실력도 그때와 같진 않겠으나, 옛 기억에 머물러, 아, 형, 언제 도장 가서 한번.봐야겠네, 라고, 이미 소은이 나기 전부터 도장과 연이 없던 그에게 굳이 내 얘길 더하고 싶진 아니했다. 그가 내게 같은 곡을 연주해도 연주자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사실을, 말로 전하기 어려웠듯, 나도 나의 태권도가 단순히 호신기술의 연습과 취미를 넘어서 내 삶의 일부로써 작동한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는 자신의 속을 다 내놓지 아니했고, 나도 그냥 술만 마시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처자식을 보러 일어났다. 못본 사이에 칼 포퍼의 반증주의자라도 되었는가 싶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가 있을진대, 스스로를 굳건히 고집하거나, 혹은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둘 중 하나일 터이다. 나의 공부가 그렇듯, 무공 역시 나 혼자만의 틀이나 맞서기만을 생각했던지라, 상대의 박자에 맞춰 따라 변해야한다든지, 기술의 숙련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야한다든지, 하는 생각까지 고려하게 된건 극히 최근이다. 심지어 상대의 움직임을 헤아려야 하는 맞서기에서도 나는 그저 내 기술만 빠르고, 위력만 세면 된다고, 늘 나만 우선 생각했는데, 그건 아마도 젊을적부터 시비와 위기의 상황일때, 선수를 치려고 먼저 손발이 나가던 철없던 시절의 경험과 무관치 않을 터이다.



사실 이런 얘길 할때면,나의 엄격하던 직장 상사이자, 지금은 소중한 사매인 밥 잘하는 유진이가 일하던 방식이 늘 생각난다. 그녀는 이른바, 주방의 여자였는데, 내가 직접 옆에서 일하며 겪은, 이 젊은 주방의 여자는 항시 고독했던 기억이다. 이른바 홀ㅡ 즉, 주방 밖 접객원이 손님입맛 귀띔해주지 않는.이상, 그녀는 늘 제 손으로 직접 자신의 맛을 관철하고, 얼굴 모를 손님의 혀를 만족시켜야 했다. 여러 업장에서 많은 조리기술을 배운 밥 잘하는 유진이는, 종류별의 식칼을 둘둘 말아 검객의 칼집처럼 지니고 다녔으며, 음식마다 손쉽게 맛을 낼 조미료를 배합해서 허리띠처럼 엮어 가지고 다녔다. 그러므로 밥잘하는 유진이는 늘 매번 어떤 음식을 만들때마다 정말 혼을 갈아넣듯, 눈을 빛내며 만들었다. 그러므로 손님이 음식을 많이 남기면 걱정근심하였으며, 내가 일에 익숙치 않아 음식 나르는 일에 덤벙대면 불같이 화를 내며 엄격히 혼냈다. 밥잘하는 유진이의 속내를 모르고, 낯이 설 시기에는 이 젊은 아가씨가 나를 언제 봤다고 매사에 이리 화를 내나 싶기도 했지만, 밥잘하는 유진이와 더 많이 일하고, 또 도장에서 함께 훈련하며 그 속을 헤아리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되었다.

밥잘하는 유진이는 주방에서 한 명의 권투선수처럼 일했다. 주방의 여자는 매사가 그랬다. 오로지 자신의 두 팔만을 믿고 링에 오르는 고독한 권투선수처럼, 그렇게 요리를 대하고 자신을 지켜왔었다.



이제서야 나는 마흔이 넘은, 무른 사내가 되어서야 겨우 나를 굳세게. 지키려는 고집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다. 이제야 겨우 상대의 발끝 언저리에서 앞뒤좌우로 움직이려 애쓰고, 이제야 겨우 상대의 공격을 타고 들어가 쫓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나보다 뛰어난 상대를 주저앉히기만 해서야, 내 스스로의 갈길도 아직 멀다. 나는 아직도 아득히 먼 나의 성숙에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두 발로 걷는 개의 시대에, 그래도 마지막까지 사람처럼 살아보려던 무언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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