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음식감평)

오늘의 면식수햏!(19) - 구디단 ㅁ, 이촌 ㄱ.

by Aner병문



1. 구디단 ㅁ


기분이 좋으면 집에서 물려받은 전라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긴 하지만 나는 원래 서울 최남단 금천구에서 나고 자랐고, 신혼집 또한 경기도 안양이다. 단지 서울 생활 오래 하셔서, 어느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는 더욱 깊거나, 혹은 오히려 약하게 변해버린 어머니의 사투리를 물려받았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어찌 생각하면, 그저 부모님께 한국말 몇 마디 물려받았을 뿐, 식성부터 생활 습관, 생각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이미 러시아인이 되어버린 고려인과도 비슷한 위치라고도 할수 있겠다. 어찌되었건 서울 토박이다보니, 나는 구로구의 일부가 금천구로 분할되거나, 가리봉이 가산디지탈단지로 바뀌거나, 시흥고등학교가 금천고등학교로 바뀌거나,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탈단지로 바뀌는 과정들을 일거에 겪어왔다. 구로공단-구로디지탈단지는, 마치 호그와트로 통하는 킹스 크로스 역의 비밀스러운 문처럼 어렸던 나에게 서울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가슴 뛰는 곳이었으며, 마흔을 넘긴 지금은, 회사와 더불어 도장과도 가까운 생활 구역 중 한 곳이기도 하다.



구로디지탈단지는, 소설가 황석영 선생을 비롯한 인텔리겐차 출신의 여러 노동운동가들이 청춘의 한 자락을 바쳤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고, 최첨단 IT 기술들이 집약된 곳처럼 보이지만, 내 어렸을떄만 해도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 사이로, 구로공단의 낡은 굴뚝들이 뿜어내는 연기들이 장엄한 장막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구로공단 역 바로 아래 다리에는, 지린내 가득한 구석진 곳마다 튀김과 떡볶이와 순대와 김밥과 토스트와 닭발과 안주를 파는 포장마차들이 가득했고, 그 사이로도 노점상들이 양말이며 장난감, 과일 등을 파느라 서로 악다구니였다. 긴 개발을 거쳐오며 동네의 많은 구석이 바뀌었고, 그래서 다양한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이나, 대형 소매상들이 들어오는 흐름도 다 이해했지만, 그래도 느닷없는 라멘집의 등장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그리 많지도 않으며, 한 세대를 거쳐 그나마 잇는 젊은 층들의 많은 숫자가 다양한 국적의 외국 청년들이 채우고 있는데, 느닷없이 비싼 외국 샌드위치 가게나 아이스크림 가게들도 모자라 고급 외제차 매장이 들어섰을때와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내가 오랫동안 나고 자란 동네를 폄하할 생각은 결코 없지만, 한때 정말로 옆집 동네 수저 젓가락 개수도 알 정도이고, 함께 어울려 팽이, 딱지 치며 놀다가 어느 집 부모님 귀가가 늦어지시면, 얘야, 너도 우리 집 와서 밥 먹고 가거라 청해도 이상하지 않던 정겨운 동네지만, 서울에서 가장 소득이 낮은 동네이기도 했다. 이런 동네에 갑자기 일본 동경이 본점인 라멘집의 등장이라니, 심상치 않았다.



결론 : 한국인의 입맛에 많이 맞추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발음하기도, 연상하기도 어려운 라멘집 상호의 뜻은 한자로 바뀌면 무극無極. 즉, 다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라멘집에 지나치게 큰 무게의 상호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어 위주의 친숙한 상호보다는, 또 궁금증을 많이 자극하는 이름이란 생각도 듭니다. 라멘집이라고 적혀 있으니 라멘집인건 알겠는데, 할머니 손칼국수도 아니고, 김서방 함흥냉면집도 아닌, 밑도 끝도 없이 M으로 시작되는 큰 알파벳 상호라니, 궁금할법도 하잖아요. 동경을 본점으로 해서 몇몇 공항에만 지점을 두다가 처음으로 공항 바깥 동네에 가게를 차렸다는 기사도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돕니다.



지금까지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라멘집을 찾으라면 그나마 신도림 ㄱ 라멘을 꼽을 수 있겠지요. 그나마 서너 본 가본 곳이기도 하구요. 맛의 격으로 치자면, 분명 인덕원 ㅇ 라멘이 한수 위겠지만, 거기까지 왕복하려면 도저히 도장 훈련 후에 딸내미 데리러 가질 못하니 물러설 수 없는 타협의 경계가 신도림 ㄱ 라멘이었지요. 영등포나 신림 쪽은 미묘하게 멀기도 하거니와 그 동네 라멘과 냉면은 가격에 비해 굳이 두 번 찾아갈 맛은 결코 아니니까요. 그러므로 도장이나 회사 왕복하며 충분히 귀갓길에 위치한 ㅁ 라멘집이 맛있기만 하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 아니겠어요.



그런 기대치가 커서였을까요? 먹으면 먹을수록 썩 맛있는 라멘은 아니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가게 내외부는 약간 휑뎅그렁하다 할 정도로 깔끔함이 과했구요. 손님이 많진 않았지만, 키오스크로 주문을 해야만 하더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메뉴판으로 정한 뒤 사람 부르는 방식이 더 익숙하긴 합니다. 라멘은 무난하리만치 깔끔했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내 입의 침이 섞이기도 하거니와 맛이 점점 옅어져서 처음 그 깔끔함을 넘어 밍밍하고 무심하게까지 느껴졌어요. 차라리 매운 라멘을 주문했더라면 조금 더 나았을까 하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나중에 감평하겠지만, 에브리띵 타코의 털보 큰형님은, 마제소바가 맛있어서 멕시코식 마제소바를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마제소바의 맛은 아직까지 저는 잘 모릅니다. 지금껏 제가 먹어본 맛의 범주 중에 마제소바 맛을 설명할만한 단어나 경험이나, 비슷한 음식조차도 없었어요. 지금껏 먹어온 면류 음식 중 무언가는 너무 과해서, 혹은 너무 약해서 어느 정도 설명의 필요성을 느꼈는데, ㅁ 라멘은, 먹으면 먹을수록 오히려 맛의 인상이 흐려지고 지워지는 라멘이라는 점이 신기했어요. 그런 점에 있어서는 거의 편의점 라멘에 가까웠습니다. 육개장이나 김치큰사발, 왕뚜껑 등은, 조미료 위주긴 해도 적어도 혀에 깊이 뿌리박을 맛의 균형은 분명히 가지고 있으니까요.





2. 이촌.ㄱ


쉬는 날은 처자식과 보내지 않는 아비나 남편이 있을까. 바쁘지 않는 이상, 처자식과 시간을 보내는 일은, 남편이자 아비의 특권이자 의무다. 주말이나 쉬는날 전날이 되면, 고작해야 일주일에 2,3일 어미보는 아이를 위해서, 하루라도 좋은 추억을 쌓아주고자 애쓴다. 조만간 감평하겠지만 여러 뮤지칼이나 악극 등을 보러가는 것도 다 이런 맥락의 일환이다.


내가 평일에 쉴때, 매일 어린이집만 보내기 안쓰러워 부녀간에 둘이 어느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연 등을 보러 갈때는 어머니가 주먹밥을 손수 싸주신다. 그러나 아내와 같이 갈때는 아이도 제 어미와 먹는 재미가 있어야 하니 바깥 밥을 먹는 편이다. 이촌 국립중앙박물관은 자주 가긴 했으나, 그 동안은 제 아비와 둘만 간데다, 이른바 푸드코트 안 마땅한 식당이 없어보여 피해왔다. 그러나 모처럼 아내도 함께 동행했으니 무난한 것 먹어보고자 과감히 안으로 들어갔다.



결론 : 국립이라도 푸드코트는 다 대동소이, 오십보백보, 거기서 거기입니다. 큽.


국립이니까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무리 평일이라고 해도, 그 날은 국립극장 용에서 넘버블락스 공연이 있는 날이라 제법 가족 단위 손님들도 많았어요. 이렇게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그래도 아무리 못해도 평균 정도는 하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구요.



푸드코트는, 푸드코트일수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나마 아내의 비빔밥이나 아이의 짜장면은 비교적 나은 맛이었어요. 비빔밥의 재료들은 그나마 맛이 분명했고, 짜장면도 소다향 가득한 면의 부족함을, 그나마 춘장이 메워줬으니까요. 그러나 내가 주문한 돈코츠라멘은, 영업용 육수답게 맛이 흐릿했고, 면은 부드러움을 넘어 씹으면 바로 흐트러질 정도로 불어 있었으며, 차슈, 멘마 등은 지나치게 달거나 뽀독거려서 라멘과 겉돌았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역시 돈코츠라멘을 드시는 분들은 별로 없더군요. 그나마 맛의 균형이 잡혀있는 짜장면이나 혹은 아이들을 생각해 양이 가장 푸짐한 피자를 주문해서 나눠드시는 분들이 많았지요. ㅁ 라멘 맛이 너무나 밍밍하고 흐려서 오히려 그런 기억이라도 마음에 남았다면, 이촌의 라멘은, 푸드코트의 선입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않는, 공장제 육수와 면으로 만든 냉면처럼 다를게 하나도 없는 맛이라 오히려 기억에 남지도 않는다는게 모순적이네요. 그저 처자식과 함께 한 추억을 양념삼아 먹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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