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퇴마록 - 아재들에게는 눈물겨운, 드디어 돌아온 전설

by Aner병문

감독 김동철, 주연 최한, 남도형 등, 퇴마록, 한국 2025. 원작 이우혁.



소설이 원작이 영화나 연극, 뮤지칼 등을 보는 일은, 기대치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 내 개인적 입장으로는 소설의 서사 그대로 장면만 영상화해주면 안될까 싶은데, 내가 영화의 연출이나 편집 방법 자체를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감독도 마찬가지로 소설가 입장인데, 자신이 받은 원작 소설을 다시 극본화해서 어떻게 영상화할지 나름의 설계와 욕망이 있으리라 보기 때문에 무척 어려워보이기도 한다. 하여간 내가 본 대부분의 소설 원작 영상물, 혹은 공연물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웠다. 지나치게 축약해서, 진짜 원작을 여러번 본 사람이나 겨우 알 정도라거나, 혹은 각색이 심해서 아예 다른 작품이 되어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아, 제발, 그냥 소설 그냥 그대로 보는 그대로만 해줘..!!' 를 절규하곤 했다. 아직까지도 그 기준에 딱 맞는 작품이라면, 그 유명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원작을 영화화한 '향수'다. 탐 튀크베어가 연출했고, 그 유명한 벤 위쇼가 주연했는데, 내가 생각하던 장 그르누이의 앙상한 퇴폐미에 딱 어울렸을뿐 아니라, 서사와 연출이 책에 착 달라붙듯, 정말이지 책의 삽화들을 먼저 그려둔 다음 그대로 영상으로 만든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원작에 충실한 정도가 아니라 그 자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가끔 논술 강의를 나가거나 발표할 자리가 있다면, 가장 충실하게 원작을 재현한 작품으로 늘 이 영화를 들었다. 반면 문학 입문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전설이다.' 도 극장판과 감독판으로 각각 보게 되면서, 원작의 의도 및, 감독의 출중한 역량이 맞아떨어질때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고 해도 둘 다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 이외의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큰 재미를 못 보았다. 최근에 본 뮤지칼 '베르테르' 는 솔직히 원작 서사를 다 살리지도 않았고, 큰 개요만 가져와 음악 듣는 악극이니까 범주에 함께 넣을수는 없을 듯하다. 퇴마록이 영화화된다고 했을때, 90년대를 정말 퇴마록과 함께 보낸 나로서는 아무리 그 당시 무술이고 영화고 큰 취미가 없었던 외톨이 책벌레라고 해도,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처럼 자료를 손쉽게 구하지도 못하던 시절에, 소설가 이우혁 선생은 비록 비슷한 구성의 요마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평도 받았지만, 어느 정도 비슷할 수밖에 없는 어번 팬터지Urban Fantasys 작품군 속에서 차별화를 두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다. 그러나 박광춘 감독이 연출하고, 안성기 배우부터 시작하여 당시 쟁쟁하던 신현준, 추상미 등을 기용한 98년도 영화 퇴마록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그나마 신현준 씨가 분한 현암이 좀 과묵하게 나오는 초반부만 지금도 약간 기억나는 정도일까, 준후는 게임 캐릭터 하나 부적으로 불러내더니 그게 다고, 안성기 선생님은 좀 왜소하긴 하셨어도 내가 생각하는 박신부 역할에 흡사하긴 하셨는데, 아니, 오러Aura 어디갔어요 ㅠㅠ 왜 능력을 안쓰시고 십자가만 들고 다니시고 ㅠㅠㅠㅠㅠㅠ 도대체가 ㅠㅠ 아니 이 영화가 그 당시 영화제에서 왜 기술상을 받았냐고 ㅠㅠㅠㅠㅠㅠㅠ(갑자기 울분 폭발)




차라리 그래서 애니메이숀이 나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퇴마록이 다시 영상화된다는 사실에 놀랐고, 만화로 나온다는 사실에 약간 안도했다. 그래, 어차피 실사화가 어렵다면 만화가 나을 수도 있다. 강철의 연금술사 실사 영화가 솔직히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다고 생각했지만, 일본인들에게 노란 가발 씌우고 서양인이라고 우기는 연출 자체가 의미없고 유치했다. 반면 바람의 검심, 은 과감하게 만화적 과장을 줄이고, 대신 격투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 견자단의 연출팀을 기용하여, 환상의 고류검술 비천어검류를 어떻게 영화적으로도 강하게 보일지 고심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대중적이지 않은 퇴마 를 어떻게 현실의 무게감을 더해 연출할 수 있을까. 퇴마물 중에서는 드물게 성공한 검은 사제들 역시 강렬한 시각적 효과는 그리 많지 않다. 상황과 소리, 그리고 각종 종교적 제례 의식 등이 무게감을 더하였다.



85분의 상영시간은, 해동밀교를 둘러싼 암투를 계기로, 경력도 종교도 다른 퇴마사들의 첫 만남까지 조망하기에는 너무 짧다. 감독은 과감하게 원작 소설의 분량을 줄이고, 편집하였으며, 심지어 몇몇 인물들을 평면적으로 바꾸기까지 했다. 덕분에 등장 인물들의 개성은 더욱 살아났고, 화려한 연출들 또한 빛을 발했다. 원작을 모른다면 다소 설명이 빠르다 느낄 수 있으나, 벌써 원작 소설이 출간된지 30년쯤 되었으며, 원작을 기억하는 애독자들에게는 더욱 애정어린 기억으로 남게 될 터이다.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정말 재밌었다. 박 신부는 다소 투박하고 궁상맞고 변했지만, 또한 현암도 내 상상보다는 훨씬 미청년이 되었지만, 실사 영화에서 거의 비중없이 없어져버린 옛 퇴마사들이 진정으로 되살아나 다시 찾아온듯 하여 반가웠다. 첫 단추를 잘 꿴만큼 연달아 작품들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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