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음식감평)

오늘의 면식수햏!(20)ㅡ 대림 ㄱ, 여의도 ㅇ

by Aner병문


1. 대림 ㄱ


사범님이 오랜만에 막걸리가 너무 당긴다며, 막걸리 한잔 하고 가자고 말씀하시던 날이었다. 날이 아직도 덥지 않아 서늘하던 어느 날이었지만, 절기에 맞춰 많은 식당에서 이미 냉면이나 김치말이 국수를 내놓던 때이기도 했다. 김치말이 국수를 먹어볼까 하다가, 냉면이 당겨서 역시 냉면을 주문했다. 도토리묵 하나와 김치말이 국수, 냉면을 사이에 두고 11년 묵은, 형제뻘 사제지간은 마주 앉았다. 하늘땅 모르고 천둥 개 뛰듯이 뛰던 총각 시절 때부터 모셨으니 참 오래 알고 지냈다. 그새 나도 사범님도 차례로 결혼하여 각자 자식도 두었다. 사범님은 진작 사현으로 올라서셨지만, 쑥스러우셨는지, 사현으로 부르지 말고 그냥 편하게 사범이라 부르라 하셨다. 아니, 그래도 띠가 다르고, 명칭이 다른디 어찌... 하고 내가 반농반진으로 난감해하자, 원래 충청도 토박이이신 사범님은, 아니, 띠가 뭐가 중요혀어~ 6단이건 7단이건 태권도를 한다는게 중요한거 아니여? (진짜 기분 좋으시거나, 안 좋으실때만 나오는 충청 사투리^^;;) 사제지간은 나란히 찌그러진 막걸리잔을 부딪혔다. 많이 마시는 술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맘 편히 마시는 술이 달았고, 뒤따르는 도토리묵이 찰졌다. 살짝 매콤한 고춧가루에 싱싱하게 물 좋은 오이와 상추, 부추, 쑥갓 등을 곁들여 참기름과 설탕을 넣고 버무렸을 게다. 목구멍을 완전히 넘지 못하고, 혀 끝에 살짝 남는 설탕맛이 다소 아쉬웠으나 바깥 밥이 이 정도면 성찬이었다. 어머니는 정백당을 쓰지 않은 지 오래셨다. 정 단맛을 내시려면 매실청이나 효소를 쓰셨다. 나도 술을 좋아해서 단 것을 싫어하지 않지만, 밥반찬이 두서없이 달면 참 기분이 묘하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하니 소소한 술상도 성찬이었다. 자, 이제 면만 맛있으면 된다!



결론 : 다음에는 꼭 김치말이 국수나 메밀국수를 먹어야겠어요!



사실 대림 ㄱ은, 총각 시절부터, 도장 다니면서 회식 때 한두번씩 사범님 따라다니며 먹던 곳입니다. 도장 주변 순대국집이나 족발집, 곱창집, 중국집, 맥주집 등은, 돈 한 푼 없던 총각 시절 때에도 제자로서, 또한 같은 동문으로서 오며가며 밥이라도 한 끼 먹여주시고, 술이라도 한 잔 사주시는, 사범님 포함, 도장 사형사저들 때문에 무사히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절권도와 진륭권으로 이름을 더 날리게 된 어느 유명 미남 배우는, 무관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니, 후배들 봐주느라 자기 수련할 시간이 없어서 좀 더 자유로운 권투 체육관으로 옮겼다는 말을 방송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도복 입고 무공 배우는 곳은, 정해진 시간이 있고, 일괄적으로 배우며, 띠가 높은 이가 낮은 이를 돕든 일도 많지요. 그에 비해 권투 체육관은, 아침 6시부터 밤 늦게까지도 계속 열려 있고, 관장님과 젊은 코치들이 번갈아가며 상주해 있으므로,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언제든지 와서 맘껏 기술 배우고, 헤비백 치고, 체력 훈련하다 갈 수 있지요. 바쁘디 바쁜 현대인들에게 훨씬 더 적합한 훈련 방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인도 분명 진륭권이나 절권도를 배울때, 사형 격의 선배들이 자기 시간 쪼개가며 알려주었을 텐데, 이제 와서 자신은 그러지 않겠다 하면 어불성설이지요. 아마 재밌자고 한 말이지, 정말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을 겁니다. 액션배우로서, 저보다 훨씬 무공의 경력도 길 그가, 무림의 생리를 모를리 없을 테니까요. 정말 알고 그랬다면... 존중해야죠, 뭐 어쩌겠어요. 본인이 그렇다는데요. (머쓱). 다만 훨씬 실력도 외모도 경력도 떨어질망정, 아직까지 저의 관점까지는 차이가 있을수밖에요. 어쨌든 이제는 글쓰기보다, 아내 허락받아 아내 카드 쓰기가 더 좋은 저는, 옛 생각해서, 밥 술 가능하면 한번이라도 사려고 합니다. 여지껏 얻어먹은 세월이 기니까요. 은혜를 모르고 갚지도 않는건, 머리 검은 짐승- 즉, 인간밖에 없다는데, 전 머리 빠진 짐승이라 다행입니다.(?)



여하튼 대림 ㄱ은 전체적으로 음식을 잘하는 집입니다. ㄱ은 국수의 ㄱ인만큼 국수를 기본적으로 잘하는 집이지만, 김치도 맛있고, 부침개나 묵사발, 특히 점심에 나오는 닭볶음탕도 사람 잡아요. 그리 크지 않은 웅추라 생각되지만, 좋은 시골 닭을 쓰시는지, 일반 브로일러 닭보다 육질이 좋아 씹는 맛이 단단하면서도, 막상 입에서는 잘 풀어집니다. 브로일러 닭은, 느끼한 기름기가 분명 뒷맛에 남고, 오래된 닭은, 이가 들어갈때의 단단함이 입에 씹을때도 계속 유지되어서 도통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거든요. 억지로 물을 먹어서 오래 씹어, 마치 물에 뭉쳐진 휴지처럼 된 닭살을 입안에서 헹궈낼 때도 있지요. 입 안에 오래 굴러다니던 고깃점이 물을 만나 화악 풀어지는 그 느낌이란... 답답함이 풀어지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또다른 세밀한 답답함이 입 안을 굴러다니는 기분인데, 적어도 대림 ㄱ의 닭볶음탕에서 그런 맛을 느끼진 못햇어요. 양념도 살짝 칼칼하긴 하지만, 많이 맵지 않은편이구요.



냉면 얘긴 언제 하냐구요? 할 말이 없어서 그래요 ㅠㅠ 국수집에서는 국수 먹어야 하고, 돈까스 집에서는 돈까스 먹어야 한다... 는걸 느꼈습니다.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확 좋지도 않았어요. 시판 냉면에 시판 육수. 그냥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하기사 국수집인데다 그 외의 밥을 주로 하는, 주점 비슷한 곳에서 냉면에 너무 많은 기대를 갖는것도 그렇지요. 이건 사실 제 잘못이 큽니다. 다음에 도장에서 또 여기서 밥 먹을 일 있다면, 꼭 냉모밀이나 김치말이 국수를 먹겠어요!







2. 여의도 ㅇ


사람 인연이 무섭다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했다. 20대 때의 나는, 10대의 외로움과 고독과 못남이 너무 사무쳐서, 없는 돈 끌어다 술과 밥을 사서라도, 온갖 요설과 난설을 지껄여서라도, 항상 여러 사람을 내 곁에 붙들어두고 싶어했다. 내 중심이 바로 서 있으면, 자연스레 사람들이 올 것을, 혹은 가장 기본을 잘 지켜 여러 사람에게 정중하게 대하고, 안온하게 있으면, 산 찾고 물 찾는 이마냥 사람들을 끌수도 있었을텐데, 굳이 특이성을 가장하여 더욱 경박천박하게 놀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눈치보고 비위맞추느라 내 스스로도 속으로는 몸살을 앓았다. 애정을 얻기 위해 필요 이상의 비참한 자기비하도 서슴치 않았고, 찬찬히 말로 풀어도 될 일을, 굳이 술기운에 사내다움을 과시한답시고 얕게 배운 기술들 펼치기도 다반사였다. 나는 일부러 위험한 곳을 찾아다녔고, 가는 곳마다 왁자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와 가만히 생각해볼때, 정말로 주먹을 써야할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채 다섯 번도 되지 않았고, 뼈에 사무치게 후회되는 싸움박질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여럿 되며, 술과 밥과 혀로 끌어대어, 마음없는 인연은, 절대로 오래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30대는, 그러한 20대의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못난 자식 끝내 품어주신 부모님이나 동생, 그리고 몇 남지 않은 벗들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거나, 아예 못 살았을 수도 있다. 회사와 도장을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종종 마주치는, 어느 중년의 노숙자를 굳이 마음 속으로 형님, 형님 하며 눈여겨보는것도, 얼마든지 내가 그렇게 될수 있었으리라는 불안에서 도통 헤어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가 부모님과 오해가 깊었고, 젊었을 적 잘 섬기거나 모시지 못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내 자녀와 내가 메울 수 없는 골과 오해로 단절돨까봐 은근히 전전긍긍하기도 한다. 세상에 어느 미친 부모가 제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그러나 최선을 다하고 아무리 사랑해도 이별할 인연을 이별하기도 한다. 나는 나의 가족이 결코 그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므로 30대의 초반부는 20대의 그림자를 떨어내고, 악착같이 새롭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배는 고팠고, 밥은 먹어야 했으니 돈을 벌어야 했다. 이전처럼 아무 일이나 해치우듯 해서 버는 돈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된 직장을 잡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며, 올바르게 돈을 벌어야 했다. 그러므로 세상 천박경박한 일들은 다 해가면서도, 끝내 붙어 있고 싶었던 상아탑의 생활은 결국 지키지 못했다. 아마 지금도 나를 기억하는 학우들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 별로 좋은 소리는 없었을 터이다. 공부만은 열심히 했지만, 나는 지나치게 경박했고, 교만했으며, 활기참을 가장해 무례했다. 당시는 밤새 술 마시고 책 읽다, 잠시 쓰러져 자고, 아침에 일어나 권투 체육관이나 종합격투기 도장에서 기술 연습하며 잠을 깬 다음, 목욕하고 학교에 와서 강의듣고, 후배님들께 잘난척이나 실컷 하다 다시 업장으로 돌아와 일 보면서 하루 번 돈 계산하고, 그 돈을 다시 술과 책과 어중이떠중이들 사이에서 날리는 일상이었다. 부끄럽기 한량없다.



돌아가신 거창 사범님은, 훗날 알게 되었는데, 내가 여러 공부와 무공을 전전하며 내 삶의 기틀을 전혀 쌓아나가지 못하던 이십대 시절, 그 분은 오로지 ITF태권도만을 위해 사범님 곁에 붙어 있으면서, 부잣집 도령이 궂은 일, 험한 밥, 허름한 숙소도 마다하지 않으며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고 들었다. 똑같은 나이인데 그렇게 살아온 청춘이 달라서, 몹시 어른스러웠던 그를 존경했었다. 그는 먼저 결혼하여 이미 아이가 둘이었고, 단란한 온 가족은 태권도의 명가이기도 했다. 내가 초단을 땄을때, 해낼 줄 알았다며, 우리 사범님 다음으로 좋아해주었던 동갑내기 거창 사범님은 이 세상에 없으시지만, 그와 비슷한 직장 상사를 모신 적이 있는데, 그가 바로, 요리와 태권도를 열정적으로 하는 밥 잘하는 유진이었다. 밥 잘하는 유진이에게 눈물 쏙 빠지게 혼난 일이야 수도 없지만, 그야 밥 잘하는 유진이가 원래 옛날 식으로 요리를 배워, 본인이 배운대로만 엄격하게 가르치는 이라서 그랬을뿐, 오해는 나중에 풀렸고, 알고보면 무천 여린 아가씨라, 항상 혼내고 나면 고기 요리도 두 종류씩 해서, 홀 쪽으로 통하는 창문을 쿵쿵 두드리며 '병문님 밥먹어요~' 하기가 다반사고, 어디 가기 전에는 꼭 간식이며 밑반찬 잔뜩해서 '병문님, 굶지 말고, 술이랑 커피만 마시지 말고, 냉장고에 있는거 아끼지 말고 꼭 다 먹어요!' 신신당부해주기도 했다.



밥 잘하는 유진이와 내가 터놓고 지내게 된건, 당시 초단 승단을 앞두고 있던 내가, 같이 일하던 업장에서 시도 때도없이 승단 심사 준비한다며 쉬는시간 떄마다 주먹쥐고 팔굽혀펴기를 해대는 통에, 밥 잘하는 유진이도 태권도가 그렇게 재미있냐며 우리 도장에 입문하고 나서부터인데, 그 때 밥 잘하는 유진이는 도장 유진이가 되었다. 밥 잘하는 유진이라고 입에 올리긴 너무 길어서, 나는 실생활에서는, 우리 아내와 구분되라고, 도장 유진이라고 부르고 있다. 평생 요리에 외곬수였던 만큼, 그 열정 못지 않게 태권도를 하니, 원래도 무거운 솥을 드는 요리와, 수영으로 단련된 몸이라 금세 익혔다. 내 지난 시간과는 비교도 할수없을만큼 빠르게 승급, 승단하여 2단을 땄고, 그 이후로는 본인도 바쁜 일이 많아 잠시 훈련을 쉬고 있지만, 한번 띠를 맨 사람은 띠를 맨 사람이다. 밥 잘하는 유진이는 가끔 요리를 보내오고, 함께 밥을 먹으며, 드물게나마 함께 훈련하기도 한다. 나는 언젠가 여유를 찾으면 밥 잘하는 유진이가 다시 도장으로 돌아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면 얘기 하다 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앞서 너무 긴 이유는, 드디어 예약 네 번만에, 아버지 생신을 맞아 밥 잘하는 유진이가 일하는 업장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일 저녁이나 가끔 갔지, 주말 저녁 예약이 그렇게 힘들 줄 몰랐다. 사범님은 참고로 아직도 밥 잘하는 유진이 식당 예약에 성공하지 못하셨다. ㅠㅠ



결론 : 아버지 말씀, 최고의 생신이셨다 하셨습니다.


사실 냉면만 얘기할 수가 없는 집입니다. 냉면 전문점도 아니고, 명색이 한정식집이니까요. 대한민국 정치와 경제를 뒤흔드는 중심지이자 본산 중 한 곳인 여의도에 이만한 집들 얼마나 많겠어요. 나중에서야 얘기지만, 밥 잘하는 유진이네 업장은, 지금의 대통령께서도 한번 의원 시절 왔다가신 적이 있다 하더군요. 이 곳은, 분위기도 좋고, 소위 말하는 인테리어- 꾸밈도 좋고, 음식도 가격대가 높지만, 질이 보장되어 있어, 상견례, 생신축하, 기타 모임 장소로 꾸준히 인터넷에 회자되는 곳입니다. 물론 다 음식 잘하시겠고, 접대도 도와주시는 직원분들 도움도 있겠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 직장 상사였던, 그리고 나의 친애하는 도장 사매이자 벗인 밥 잘하는 유진이의 솜씨도 당연히 큰 이유 중 하나겠지요.



얼마나 밥을 맛있게 먹었는지, 사진 한장 제대로 찍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생신을 맞아, 실로 오랜만에 드시는 복분자주에 아들인 저까지도 기분이 좋은데다, 그날따라 애교가 많았던 소은이가 의자에 올라가 무대삼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등, 최고의 생일 축하무대까지 선사했지요. 특히 밥 잘하는 유진이가 또 식사 자리 때 아버지 국은 미역국으로 딱 챙겨드리는 눈치까지 발휘, 게다가 머리는 단정하게 묶고, 뿔테안경에(대체 어데서 났어 ㅋㅋㅋㅋ), 긴 소매 요리복 딱 입고 인사 정갈하게 드리러 오니, 이것 참, 아들 체면까지 덩달아 올라갈 밖에요. 으쓱으쓱.



이 날 먹은 요리가 제 기억으로는 아마 갈비찜 하나 단품으로 따로 주문했구요. 중간 가격쯤의 한정식이었는데요, 일단 죽- 물김치 - 청포묵 - 나물- 구절판- 개성보쌈 -(이때쯤 갈비찜 나왓죠) - 새우완자조개탕 - 각종 전 - 잡채 (여기서 이미 어머니, 아버지, 아내는 배부른 기색. 나만 좀 모자랐나?) - 낚지볶음과 모듬튀김, 낙지은행꽂이 등은 솔직히 저는 더 먹고 싶었는데 어머니 아버지 아내가 모두 포장해서 가져가자며 그냥 바로 싸달라고 했고, 식사로 건너뛰어서 저는 냉면을 먹었습니다. 후식은, 달달한 개성주악과 오미자차가 나왔구요.



너무 맛있는걸 많이 먹어서, 냉면 맛이 흐릿할까 싶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일찍이 밥잘하는 유진이는, 코스 요리란, 하나의 소설, 영화처럼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지금도 그 말은 선명히 기억해요. 앞 요리와 뒷 요리가 서로 부드럽게 이어져야 하고, 서로 다투면 안되고, 왜 이 요리가 나왔는지 먹으면 알 수 있어야 된다고 했지요. 그래서 밥잘하는 유진이는 점심을 차려줄때마다, 눈 돌아가게 맛있는 음식들이 많으니 이것저것 한꺼번에 뷔페처럼 가져다 먹는, 젊은 날의 내 식습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막 먹으면, 무슨 맛인지나 알아요? 따로따로 먹어야지, 그래야 어떤게 무슨 맛인지 알지, 만들어준 사람 생각도 안하고, 차라리 아예 비벼먹지 그래요? 지금 생각해보면, 내 혀의 기초는 전주 출신 어머니가 잡아주셨지만, 그 응용은 밥 잘하는 유진이가 해준게 확실하네요. 여하튼 그런 가르침에 따라 볼때, ㅇ 한정식의 냉면은, 분명 식사의 마무리로써 올바로 기능했어요. 면은 아주 가느다래서, 부담이 없었는데, 옅게 새콤한 육수는 깔끔하게 떨어져서 입 안을 개운하게 정리해줬거든요. 즉, 한 끼를 채우기 위한 냉면이 아니라, 한 끼를 끝내고 마무리하는 냉면으로서 아주 제대로 자리했다는 것이죠. 만약 공복 상태에 이 냉면부터 먹었다면, 같은 만족감을 느낄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생각해도, 평양냉면처럼 슴슴하진 않아도, 확실히 간이 옅은 냉면이었거든요. 밥 잘하는 유진이가 해준 냉면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마무리 냉면으로서는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