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독서감평)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콜레라 시대의 사랑, 민음사, 2004

by Aner병문

이름만 봐도 덥석 집어들어 읽는 작가가 누구나 있을 터이다. 장르별로도 그렇고, 국내외로도 그렇다. 그 이름들을 어찌 다 주워섬기겠냐만서도, 최근 소천한 마르께스는 내게 아주 독보적인 존재로 있다. 누구나 보르헤스에 빠지는 날이 있다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 보르헤스에 정을 주지 못했다. 늙도록 책을 읽다 눈이 멀었으며, 죽는 그 날까지 도서관의 수호자로 남아 있었다는, 그야말로 위대하고 전설적인 삶에 찬탄하면서도, 이상하게도 그의 글은, 마치 에꼬의 글처럼 엄밀하게 현학적이라 쉽게 손이 가지 아니한다. 오히려 마르께스나 이사벨 아옌데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남미스러운 소설' 에 가깝다. 일단 읽는 자의 심장까지 문장을 찔러넣고, 서사를 막힘없이 펼치며, 그 흐름에 가감이 없다. 읽다보면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리듯 빠져든다. 오래 전 군대 첫 휴가 시절, 함께 막창을 구워먹던 당시 대구의 의동생은, 늘 그렇듯 여행에 빠졌던 청춘이라 이젠 이름조차 가물가물하지만, 그녀가 남겨준 책은 아직도 본가의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책들이 그렇듯, 이 책도 몇 번이고 잊을만하면 되짚어 읽었고, 그때마다 늘 새롭게 이야기에 빠지곤 했다. 그 유명한 백년 동안의 고독(안정효 역)을 통해서, 나 역시 백 년 이상갈 애정으로 마르께스와 만났으며, 틈만 나면 그의 책을 사모으곤 했었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의 백수 시절을 거쳤는데, 그때마다 늘 도서관에서 하릴없이 민음사 책을 빌려다가 보고 또 보곤 했다. 민음사의 번역은 예나 지금이나 중간 이상은 한다는 평이다. 그렇다 해도 조구호 역의 민음사판 백년의 고독은, 아무래도 안정효 역 백년 동안의 고독에 비하면 그 맛이 덜하다. 안정효 역이 영역판을 중역했음에 비해, 또 조구호 선생은 마르께스에 흠뻑 빠져 한국외대에서 스뻬인어를 전공했으며, 본토에서 직접 마르께스 관련 학위까지 받은 이임에도 그렇다. 소설가와 번역가의 차이일까? 혹은 처음에 워낙 경도되는, 나의 경박한 성정 탓일까? 아직까지도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그런 이유로, 나는 민음사판 백년의 고독 대신 다른 책을 찾았다. 발렌타인데이 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는 소설(근데 이건 대체 누가 어디서 조사를 한거냐?) 그 유명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이었다.



내용 자체는 파격적이다 못해 단순하기 짝이 없다. 젊고 여린 문학 청년 플로렌띠노 아리사가 부잣집 처녀 페르미나 다사와 수줍은 사랑을 펼치다, 물욕에 빠진 그녀가 미국에서 콜레라 치료법을 배워온 당대의 젊은 의사 후베날 우르비노와 결혼을 결심하는 내용이 1부요, 2부는 플로렌띠노 아리사가 무려 622번이나 다른 여자들을 만나며 묵묵히(?) 59년하고도 11개월 4일을 기다린 끝에, 끝내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다 늙은 첫사랑에게 다시 돌아가, 상주가 된 미망인에게 사랑을 고백한 내용이 2부다. 이쯤 되면 사실 세계명작 반열에 든 아침드라마에 가깝다. 물론 설정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마르께스 특유의 신비롭다 못해 능청스러운 서사와 문장력이 어느 틈에 독자를 설득시킨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 을 처음 읽을 때의 나 역시 첫번째였나, 두번째였나 여하튼 백수 시절이었는데, 돈 한 푼 없어 휴대전화 없이 살고, 탈취용으로 무료 나눔하는 커피 가루를 내려마시던 때에도, 나는 여전히 사람을 잘 만나고 다녔고, 이쁨도 많이 받고 살았었다. 덕택에 괜시리 플로렌띠노 아리사와 나를 동일시하던, 부끄러운 청춘의 끝이 기억난다.



결혼을 하고 보니, 사실 평생 둘이 함께 하는 삶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사실 반대로 말하자면, 내 반려가 밖에서 누굴 만나고 들어온들, 가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또 본인이 스스로 선을 잘 긋는다면, 그 것 또한 사생활이 아닌가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신혼의 아내와 어린 딸을 둔 시점에서, 가족이 우선이고 제일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나는 아직까지, 나와 함께 살 결심을 하고, 또 우리 딸을 위해 헌신하는 내 아내보다 더 아름답고 우아하고 현명한 여인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아내에게 늘 감사한다. 그러나 혹시나 내가 불의의 사고라도 겪는다면, 나는 아직 젊은 아내에게 많은 것을 무리하게 강요할 생각은 없다. 아내의 삶은 아내에게 맡기는 것이 제일로 현명하다.



흉악한 역질이 그칠 생각을 하지 아니한다. 역질만으로도 힘든데, 사람들까지 역질을 닮아 더욱 악에 받쳐 물들어가는 모양이다. 뉴스랍시고 끔찍한 소식이 줄을 잇는다. 그러므로 내 딸을 비롯한 후대의 사람들은, 이 시절은 틀림없이 코로나의 시대로 기억하겠구나 생각하다 문득 이 책이 다시 생각났다. 지금도 책장을 편 듯 눈에 선연하게 줄거리를 읊을 수 있지만, 그러나 지금 당장 책장을 덮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마치 처음 읽듯이 흠뻑 빠져 읽을 터이다. 내가 아는 마르께스란, 그런 글을 쓰다 죽은 사람이다. 재주없는 나는 늘 경탄하며 읽을 도리밖에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 묻거든, 나도 말하고 싶다. 코로나의 시대에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갔었다고, 적어도 우리 부부는 사랑하며 살아갔었다고. 아무리 흉악한 시절에도, 서로 위안하기 위해 SNS에서 무려 연주회를 갖는 사람들, 영상통화를 통해 데이트하며 애정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이 간간히 위안이 되는 요즘,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몇 자 적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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