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식과 충만히 보낸 하루
비 올 땐 깨 볶는게 아니다잉. 어머니는 아침에 주방에서 말씀하셨다. 어젯밤 늦게 퇴근했는데도, 어머니는 그때서야 늦은 저녁을 드시며 아내와 얘기를 나누고 계시었다. 아이는 할아버지 따라 제 고모에게 간 밤이었다. 어머니는 텅 빈 반찬통을 보며 웃으시었다. 세상천지 시엄니 모꺼정(몫까지) 홀랑 먹어부는 메누리가 어딨당가? 아내는 방금 출장에서 돌아와 피곤했을텐데도 벌쭉 웃었다. 고마, 어머이 해주신기이 넘 맛있어가 안 그럽니까. 고부간에 뭘 가지고 그런가 했더니 아내가 흔히 빡빡장 이라 부르는 우렁된장이었다. 경상도가 고추와 마늘, 된장을 졸여 짜고 뻑뻑한 짜글이식으로 만든다면, 전라도 토박이인 어머니는 국산 우렁이에 버섯, 호박, 당근, 두부 등.갖은 채소를 넣어 약간 물기가 있으면서도 끝에 참기름 들기름을 둘러 고소하게 비벼먹는 식이었다. 아내는 오이소박이와 더불어 이 반찬을 가장 좋아했다. 펄 벅 여사의 대지,.에서도 왕룡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두부와 고추, 마늘을 졸인 쌈장이었으며, 농사꾼이 아니라 부자에게 시집온줄 안 기생 출신 첩이 그 향과 먹성에 기겁을 하는 장면이 있다.
어머니는 아침.일찍 일어나시어 며느리 좋아하는 우렁된장을 더 만들테니 나더러 장을 봐오라시며 아내를 깨우지 말라시었다. 때마침 부슬비가 내려 옥상도장에서 아침 훈련하기에도 마뜩치 않았다. 일어나지 말래도.아내는 눈 비비며 일어나 이불을.갰고, 그러므로 부부는 어머니께 우렁된장 만드는 법을 배웠다.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으나 재료 준비가 고역스러웠다. 앞서 말한 호박, 당근, 파, 버섯, 마늘, 풋고추 등을, 재료에 맞게 어슷썰거나, 깍뚝 썰거나, 손으로 찢거나, 칼자루 뒤로 두드려 다져야했다. 어차피 가족끼리 먹는 음식이니, 나의 서툰 칼질은 썬다기보다 칼날로 문대어 찢기에 가까웠다. 그래도 식칼이 서로 다른 재료를 파고들때의 질감이나 무게는, 명백히 각각 다르면서도 생생해서 마치 맞서기 시합 때 매번 다른 상대와 치고받을 때와 비슷했다. 딱딱헌 것을 먼저 넣고, 보드란.것을 난중에 느야(넣어야) 맛이 사는거여. 아, 무공에도, 시문詩文에도 흐름이 있듯이, 요리에도 먼저.넣고 나중 넣는 흐름이 마땅히 있다. 그러므로 서양의.어느 유명한 문인 文人 은 내가.만약 글을.쓰지.않는다면, 주방에서 냄비를 젓고 있을.거라.했다.
그러므로 어머니는.비올때.깨를 볶으면.습기가.차서, 깨를 볶아야.뭔 소용이 있나셨다. 생각해보니, 내게 커피를 가르쳐주신 목사님께서도 커피 콩을.볶을.때는, 하염없이.뜨거운.날에 바싹, 고추장.향이.나도록 볶으라셨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솔직히 젖은 날과.상관없이.늘 뜨겁다. 연애와 달리,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가족이란, 원래 그 영역 안에서 맘껏 볶는.것이다. 다만 필요.이상의 눈물로, 젖은 깨 볶듯.그리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 가족은 원래.사랑한다. 너무 당연한.얘기인데, 사랑은.원래 거래가 아니다. 단지 사랑하여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