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이야기)

하루를 이렇게 보내요 : 기초 수행(2)

by Aner병문

하루의 훈련을 제외하고 나면, 몸쓸 일이 거의 없다. 북촌과 인사동에 일하던 망냉이 총각 시절에는 하루 8시간 걷는데만 삼만보가 넘고, 장 보느라 늘 북촌 언덕배기 길을 낑낑 오르내렸으며, 또 그러고도 시간을 여퉈 도장에서 승단 심사 준비를 했었다. 그러니 남는 시간 그저 먹고 마시며 책 읽어도 몸이 항상 건장하고 좋았었다. 지금은 하루 9시간을 앉아 있는 사무직인데다 아이까지 낳아 여유가 없으니, 하루 30분에서 길어야 한두시간 훈련도 빠듯하다. 그러므로 나머지 시간에는 주로 읽거나 쓰거나 외우면서 지낸다. 특히 사범님께서 일본어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하셨고, 인사동을 떠나면서 그나마 좀 늘던 영어도 다시 귀가 막히기 시작해서, 겸사겸사 유튜브와, 또 너에게 선물받은 앱으로 짬짬이 공부를 하는 중이다.



그러므로 아침 4시 30분쯤 일어나 스트레칭하거나 졸면서 새벽 내내 나온 아기 용품을 삶는다. 아내는 이 때 아이와 함께 자다 깨다 멍한 얼굴로 젖을 먹이거나 혹은 함께 잠들어 있다. 요즘은 함께 누워 있는 시간이 적다며 서글퍼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바나나나 두유를 먹고 샤워 후 면도하여 버스에 탄다. 버스를 타고 보라매역까지 가는 30분 동안은 눈을 감은 채 영어 회화 음성 파일을 듣는다. 보라매역에서 회사로 가는 지하철은, 요즘에야 코로나 때문에 자리가 나지, 예전에는 겨우 설 자리만 있었다. 운동 삼아 서 있으면서 너에게 선물받은 리얼클래스 앱으로 애니메이션 한 편씩 보고 받아쓰기 연습을 하면서 단어장을 외운다. 회사에 도착하면 오전 7시가 되는데, 틈틈이 세계사편력이나 혹은 상대성 이론 관련 논문(서학에 깊이 물든 오랑캐에게 복수할 일이 좀 있다.), 영어나 일본어나 한자, 그도 저도 안되면 소설이나 가끔 읽는다. 퇴근길에는 김씨네 편의점이나 혹은 영화를 보며 귀를 틔우는데 주력하고 있다.



집에 돌아와 꼼꼼하게 씻은 뒤에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내로부터 아이를 넘겨받는다. 아내는 이때 잠시 자거나 밥을 먹거나 혹은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보통 아이는 빠르면 오후 7시에서 늦으면 밤 9시를 넘겨서 씻기는 경우가 있다. 아이는 적어도 이틀에 한번은 씻겨주어야 하는데, 날이 더워지면 하루 한번씩을 꼭 씻겨주어야 한다. 엄마 뱃속에 있던 기억 때문에 물에 담가주면 아닌게 아니라 좋아하지만, 밖에서 몸을 닦아주거나 옷을 벗기는건 질색하기 때문에, 아이가 악을 쓰다보면 밤에는 좀 더 수월하게 잠이 든다. 아내가 수유등만 켜놓은 채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동안, 나는 목욕 뒷정리를 하고 세탁 후 건조대에 널어놓는다. 아내는 다시 올라가서 보통 자정쯤 내려오는데, 보통 오후 10시에서 자정까지가 내 시간이다. 이 때 아내가 몹시 힘들어하면 아내와 한 30분쯤 함께 누워 있다가 깜빡 잠드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아이가 그 전에 두어번씩 깨기 때문에 아이를 달래면서 걷거나, 혹은 수유등 아래에서 책을 읽고, 하루의 영어와 일본어를 복습한다. 아내가 자정쯤 내려오면 그때서야 스트렛칭하고 잔다.




나폴레옹은 짧게 자기로 유명했으며, 너무 피곤하면 포탄이 내려꽂히는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도 말에서 내려 흙바닥에서 눈을 붙인 뒤 다시 지휘하곤 했었다는데, 너는 나한테 그런 얘기는 안 해주고, 너 그렇게 살다 애들 아빠 없이 커... 나중에 고모 엉엉 이러면서 나 찾아오게 할래, 이런다. 음.. 역시 잠이 확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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