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적을 둔 몸이다보니 불교도 유학과 마찬가지로 종교라기보다 흥미로운 공부에 더 가깝다. 하여 교회 청년회장 맞냐는 소리 들을 정도로 불경이나 선문답 우화집을 즐겨읽기도 했다. 미 군정 시절을 통해 본격적으로 한국교회가 유례없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듯이, 그 이전에 한반도를 주름잡던 유불도 모두가 이 나라로부터 전래된 온전한 사상이 아니라는 점은 가슴 아프다. 역사 또한 그렇듯, 성균관대학교에서 손수 출판한 한국철학사상사 역시 장구한 한국철학을 논하기에 앞서 불교와 유학의 전래보다 이 나라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내용에 많은 장을 할애하였다.
서구 사상으로 물든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우리의 언어로 사유하고 철학하기가 요구되듯이, 그 이전에도 중국이라는 대륙 옆에서 우리만의 철학자는 없는지 고심되었던 모양이다. 이른바 풍류가 우리 고유의 사상임을 논했던 6두품의 신화, 원조 고시생 유학생 고운 최치원이 첫째로 꼽히고, 원효대사 해골물 로 모르는 사람이 드문 소성거사 원효스님 또한 놀랍게도 승려 이전에 우리만의 사유를 전개했던 이로 꼽힌다. 그가 쓴 대승기신론소ㅡ즉 대승기신론의 주석은 당시 동아시아의 거대한 제국이던 당나라에서조차 해동소 라는 이름으로 손꼽히고, 인도 본토의 불교 경전을 들여와 또한 해석하고 비판하니 원효 스님 당신은 대체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