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작에 대하여 - 태권도를 처음 시작한 날.
나는 서른 살 5월 첫 날에 ITF에 입문했다. 예나 지금이나 ITF하면 대부분 고개 갸웃하거나, 혹은 열에 한 둘 '혹시 테니스하세요?' 라고 되물어서 국제테니스연맹 또한 약자로 ITF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곤 했기에, 할 수 없이 '북한태권도요' 해야 비로소 '아아, 그 무서운 거요? 막 손으로 돌 깨고, 목으로 철근 휘고, 그거? 와, 대단하시네.' 하는 답이 나온다. 그러므로 운동 뭐하시냐는 물음에 ITF라고 답을 하면, 결국 몇 번의 질문을 거쳐서 '국제태권도연맹은, 원래 지금의 올림픽 태권도, 그러니까 세계태권도연맹-WT가 있기 전에 먼저 있었던 태권도예요.' 까지 오게 된다. 여기서 상대방이 조금 더 관심을 보인다면, WT의 품새와 겨루기가, ITF에서는 틀과 맞서기이며, 또 그 원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또 태권도는 본디 삼국 시대 수박에서 나온 전통 무예가 아니라, 일본 가라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근대 격투기이며, 또한 원리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당당한 국기임을 길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토록 관심 가지는 이들 또한 열에 한둘이었다.
하기사 나조차도 십대 시절, 내가 이토록 몸 쓰는 재미에 푹 빠지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근 20년 전의 키 작고, 통통하며, 팔굽혀펴기 하라고 하면 쓰러지고, 축구하라고 하면 공 밟고 쓰러지는, 약골 안경잡이 책벌레 소년에게 태권도에 대해 이래저래 말하면 휙 도망가 어디 가서 시나 쓰고 다닌다 했을 터이다. 안타깝게도, 몸의 기틀을 잡았어야할 성장기 때 나는 내 몸을 누구보다 도외시했고, 타고난 체질 또한 강건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겁이 많았다. 무려 고3때까지 나는 체력장에서 단 한 개의 팔굽혀펴기조차 하지 못했는데, 근력이 없었다기보다는 몸을 쓰는 방법 자체를 전혀 몰랐다. 그러므로 나는 마치 젊은 날의 아인슈타인처럼, '운동을 좋아하는 이들은 등뼈나 튼튼하면 될터인데, 똑똑한 머리는 뭐하러 가지고 다니나' 투덜거리며 운동 좋아하는 이들을 더욱 멸시하게 되었다. 그 때만 해도 나는 내가 꿈꾸는 삶이, 글이나 음악을 즐기는 사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어왔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자부하는 대학에 어렵사리 들어갔을 때, 우아한 택견의 몸짓을 보고 놀랐던 그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 모교는 택견 중의 한 계파인 결련택견으로 이름 높았는데, 새내기 시절 선배들의 몸짓이 학처럼 우아하면서도 때때로 칼처럼 날카로워서, 그 때 나는 마치 무협영화를 보듯이 넋을 놓았다. 십 대 시절 부모님 몰래 해오던 취미로서의 음악을 놓고, 물렁하고 약한 몸으로 어떻게 택견 동아리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는지, 나는 지금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선배들에게 혼나가며 팔굽혀펴기를 하고, 복근 훈련을 하고, 또한 모교가 자랑하는 깎아지른 경사를 매일 뛰어 오르내리면서, 내 몸이 바로 여기 있었음을, 내가 오랫동안 지녀왔으나 외면해 왔음을, 깨닫게 되는 날이 시작되었다. 내 실력은 출중하지 못했고, 타고난 재능은 얕았지만, 나는 택견을 시작해서, 권투, 합기도, 킥복싱, 중국 무술, 주짓수 등의 다양한 무공을 아주 조금씩 섭렵해왔다. 앰버 허드의 매력이 가득하던 영화 겟 썸, 에서처럼, 여러 사정이 있어 나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그 때마다 항상 좋은 스승을 만나 정통의 극의를 깨닫고자 애썼다. 물론, 인생의 정답이나 극의가 없듯이, 평범에도 못 미치는 내가 뒤늦게 시작한 무공으로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십 년 청춘에 많은 실패를 겪으면서, 나는 기가 꺾였고,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을 버리듯이, 무공의 일부라도 성취하겠다는 욕심 또한 버리게 되었다.
서른살에 우연찮게, 도장이 아주 가깝다는 사실을 알고, 태권도에 입문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또 달라졌을 터이다. 나는 스무살때 처음으로 훈련을 시작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어떤 무공이든 가리지 않고 하면서 몸을 늘 혹사시켜왔다. 그 결과 서른살에 뒤늦게 태권도에 입문하게 되었을 때는, 왼발목과 어깨의 인대가 끊어지고, 두 무릎의 연골이 닳았으며, 이까지 하나 날려먹은데다가, 나쁜 버릇까지 가득 배어 있었다. 그러므로 십 년 동안 다양한 기술들을 익혀왔다고 자랑한들, 사실은 처음 태권도에 입문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진도가 느리고 적응이 어려웠다. 나는 흰띠에서 바로 다음 줄노란띠로 가는 기초 과정만 6개월이 걸렸는데, 내 몸에 배인, 태권도가 아닌 동작들을 떨쳐내는데만도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었다. 도장 내에서 나이도 적지 않은데다, 누구보다 둔했던 나는, 그저 할 수 있는것만 하자는 마음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범님과 부사범님이 시키는대로 성실하게 기술을 쌓아왔다. 그리고 그때서야 나는 알았다. 천명관의 소설처럼,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에도 의미는 있었다.
서른이 되어서야, 내 스스로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기 시작하면서, 그리하여 내 눈앞에 놓인 기초들부터 먼저 익혀나가자는 마음을 먹은 순간부터, 태권도는 내게 의미있어졌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 예전에는 엄두도 못냈던 기술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 또한 다르지 않아서, 이제서야 겨우 문장에, 내가 반드시 무엇을 써서 전하겠다 라는 욕심이 빠져 담백해지었다. 삶도 마찬가지라서, 나는 태권도를 한 뒤에야 내 몸의 많은 것을 내려놓듯, 마음에도 필요없는 것들을 내려놓았고, 비로소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무공을 시작하기 전과 후의 내 모습이 다르듯, 태권도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모습이 또 다르다. 무공을 시작하여 나는 몸으로 쌓는 노력의 중요성을 알았지만, 태권도를 통해서 그 또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절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태권도에 입문한지 어느덧 6년째, 부족한 실력이나마 신혼 여행 다녀온 다음날 아내가 보는 앞에서 2단을 받았던 나는, 지금 육아를 하며 잠시 태권도를 쉬고 있다. 내세울 것은 없지만, 15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몸을 써오다가 갑자기 쉬게 되니 무려 살이 15KG나 불었다. 마음이 아주 편치는 않지만, 이 또한 내려놓으려 한다. 대신 나는 내 딸이 어서 빨리 커서, 도복에 띠를 매어주고 함께 도장을 가고 싶다. 태권도와 나는 인연이 있었다. 내 후대까지 그 인연을 길고 굳게 이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