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나도작가다공모전-2)

새 삶의 시작에 대하여 -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만나다.

by Aner병문

본디 결혼 생각이 없었다고 하면, 만난지 십년이 훨씬 넘는 두 벗들을 제외하면, 다들 그럴리 없다며 와그르르 웃을 터이다. 특히 입사하자마자 석달만에 축의금 봉투 두둑히 챙겼을 동기 형님 누님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9월 1일에 만나 12월 1일에 식을 올리고, 주말부부 1년만에 쏙 빼닮은 딸을 둔 나는, 본의 아니게 우리 회사의 최수종 씨가 되어버렸다. 팔불출마냥 아내 자랑을 늘어놓고, 또 퇴근하면 도장이며 술자리도 마다하고 늘상 아기 보느라 정신이 없는 나도 사실 서른이 되기 전에는 정말 결혼 생각이 없었다. 혼자 살기에도 바쁘고 힘든 삶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서른이 되고 나니 갑자기 정말이지 때 되면 낙엽 떨어지듯, 마음 한구석이 휑해지며 정말이지 혼자 살긴 어렵겠구나, 누구 하나 내 곁에 꼭 있어서 서로 어깨 붙여 도와가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이 물밀듯 들어왔다.



결혼 생각 없을 때는 이래저래 남들처럼 살았는데, 막상 결혼을 하려니 어찌 그리 속썩을 일이 많았는지, 다행히도 아버지 퇴직 석 달 전에 만난 아내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얼마나 외로웠을지 헤아리기 어렵다. 태권도를 익히며 내 몸의 한계를 깨닫듯, 또한 자연스레 평생 함께할 반려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꿔서, 꼭 하나의 기준만 들어맞는다면, 나머지는 평생 맞춰가며 살리라 마음먹었으니, 그 기준이란 다름아닌, 아무리 화가 나도 본인이 왜 화가 났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예전 알바하던 시절에 사장님 개를 열흘간 맡아둔 적이 있었는데, 무슨 짓을 해도 멍멍 짖기만 하니 도통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던 기억이 났었다. 그러므로 적어도 다투더라도, 무엇이 문제이고 화가 났는지 말만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겠나 싶었던 터이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아내는 정말이지 이 기준에 쏙 들어맞는 사람이라서, 무던하고 둥글었으며, 나처럼 속엣맘을 숨기지 않고, 이것 먹고 싶다, 저것은 안했으면 좋겠다, 똑부러지게 말할 뿐더러, 또한 나에 대해 누구보다 관대한 짝이라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아내는 지방에서 나랏밥을 드시는 분인지라 쉽사리 직장을 옮기지 못했고, 그래서 주말부부가 내심 길어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1년만에 덜컹 딸이 찾아왔다. 그러므로 회사에서 결혼에 이어 출산도 빠른 할리우드 커플이라고 놀림당했음은 물론이다. 여하튼 남들은 신혼부터 주말부부라니 웬 호사냐며 웃으셨고, 나 또한 도장을 편히 다닐 수 있는 것만큼은 좋았으나, 아내가 다녀가거나 혹은 내가 아내에게 다녀온 주말이 끝나면, 아내가 느낄 적막이 내게도 온전히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이래서 나이 먹으면 누구든 홀린듯이 하다못해 동물이라도 들여 함께 사나보다 싶은 허무함이었다. 그러므로 아내가 임신하고 육아 휴직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아내와 함께 입덧을 불사하며 기꺼이 최선을 다하였다. 어린 레메디오스의 이름을 적으며 그리워하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처럼 사느니 그 편이 훨씬 좋았다. 아내는 첫 임신에 무척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에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를 들고 간 건 정말 내 인생의 태권도만큼이나 좋은 선택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칼 세이건이 우주의 기원에 대해 말하듯이, 아내의 뱃속에서도 작은 우주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딸을 기다리며, 나는 코스모스가 보여주는 거대한 생명의 기원에 빠져 있었다. 딸이 태어나고 나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적어도 하루 한 단락씩, 네루의 세계사편력을 읽어 이제 2권의 중반까지 왔다. 딸의 유년기를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비가, 스스로의 지식을 더듬어 감옥에서 끊임없이 써온 편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겹다. 아내의 체취로 가득 물든, 딸의 정수리 향기를 맡으면서 작은 몸을 어르고 재우는, 아직 어설픈 아비로서는, 그 광활한 애정과 지식이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감히 딸에게 그토록 훌륭한 저작을 남길 수 없으므로, 다만 적어도 게으르지 아니하다는 본이라도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딸이 잠든 밤이면, 늘 불을 켜놓고, 세계사편력을 읽고, 이국의 단어를 읽고 쓰며, 늙어가는 몸을 붙잡고 용을 써서 단련한다. 아이가 대하는 첫 세상의 시작인, 아비의 삶이 조금이라도 덜 비루했으면 하는 욕심이다. 이제 겨우 남편이 되어, 아비로서의 시작을 쌓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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