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아기 재우기용 특별 스쿼트..
벌써 햇수로는 3년 전 9월의 첫 날,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아니했던 남쪽 바다의 도시에서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은 느꼈다. 일단 한참 올려다봐야 하는 171cm의 장신이 그렇고, 예민하고 날카로운 나와 달리 둥그렇고 무던했으며, 길눈이 밝아 운전에 능하고, 손끝이 참 야무졌다. 또한 영화나 책 읽기를 썩 좋아하지 않았고, 밖에 나가 운동하는 것도 싫어했으며, 무엇보다 맥주 반 모금이라도 입에 대면 바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풀썩 쓰러져 잠들었다. 신혼여행 가서 실제로 보았으므로 실화다. 어쩐지 난생 처음 마시는 괌의 망고 맥주가 맛있다고 홀짝홀짝 드시더라니, 반 잔도 다 못 넘기고 그대로 풀썩. 아니, 이 키를 이거 어쩌란 말이야, 하며 침대로 낑낑 옮기던, 뜨거운 섬에서의 첫날밤이 생각난다. 덕분에 아내는 너와 가끔 술 마시러 나간다 하면, 본인이 함께 할 수가 없으니 아이고, 또 음청 드시겠고만은, 몸 생각해서 한 병만 드시이소, 하며 어차피 의미없을(!) 말씀을 하신다.
아이를 낳고 나니 아내와 나의 다른 점은 더욱 도드라졌다. 아내는 운전도 잘하고, 청소와 빨래 정리에도 도가 텄으며(나 돈 주고 집안일 세미나 들으러 가는 사람 처음 봤다. 에스카르고처럼 돌돌 말려 있는 양말들을 보니, 제값은 하더라.), 심지어 먼저 아기를 낳은 부모들이 나눠준 조립식 아기침대며 그네 등을 혼자 뚝딱뚝딱 조립도 잘했다. 재차 말하지만 면허도 겨우 딴 나로서는, 아무리 도면을 들여다봐도 대체 뭘 어디에 어떻게 끼우라는거야, 아리송하기만 한데, 아내는 아이고 줘보이소, 하더니 이리 끼우고 저리 끼워서 아기 침대 하나 뚝딱 만들고, 또 모빌 하나 만들고, 김훈 선생 말마따나 세상에 흔적을 남기며 사는 재미가 좋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두드리고 나니, 그럼 나는 입만 가지고 다니면 놈팽이처럼 꼭 보이긴 하는데, 나는 크게 손재주가 필요없어도, 늘 해야만 하는 일, 그리고 내가 늘 한다고 해서 티가 나지 않지만, 반면 내가 30분이라도 늦게 하면 대번에 티가 나는 집안일들을 주로 도맡았다. 이를테면 기본적인 식사 준비, 빨래, 청소부터 시작해서, 책 정리, 아이 용품 소독, 쓰레기 버리기, 설거지 등 매일 해야만 하는 일들은 어렵지 않지만, 하루하루 도 닦듯이 근면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 늘 그동안 누가 시키건 안 시키건 독서와 무공에 열중해온 내 성미와 꼭 맞았다. 사실 나도 아내 못지 않게 덤벙대는 성격이지만, 부부 둘 다 덤벙대면 죽도 밥도 안되겠다 싶어서, 나는 늘 집에 들어가기 전 내 스스로의 성미를 누르고 한번이라도 더 살피고, 침착하고 차분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집에서 아기만 보던 아내는, 손부터 씻고 나오는 나에게 딸을 넘겨주면서, 아이고, 내는 도저히 여보야 처럼 몬하겠습니더, 어찌 그리 사람이 하루하루 질리지도 않는강, 퇴근하고 와서도 하루도 안 빠지고 일을 이래 하노, 한다. 아이가 보통 잠드는 시간이 빠르면 9시, 늦으면 10시, 11시를 넘기는데, 그 때 나는 아이를 재우고 또 돌아와 책을 읽거나 영어, 일본어 공부, 그도 아니면 발차기라든가 스트렛칭 1분이라도 꼭 한다. 여하튼 시간을 그냥 버리기가 몹시 아까운 것이다. 아내는 책도 공부도 영화도 다 싫고, 십 년 넘게 해온 수영을 제외하면 그저 동물 다큐멘터리 보다가 누워서 자는게 제일 좋단다.
그러다 어제는 기어이 일이 터졌다. 며칠 전부터 영 배변이 힘든 듯하던 딸이 그예 낮 내내 목 놓아 울었다고, 아내는 건너오는 메시지마다 울상이었다. 용을 쓰다 깨는 일이 잦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성정이 순하고, 낮밤을 구분하면서 낮에는 비교적 조용하게 모빌이나 TV, 초점 맞추기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던 딸아이였는데, 점점 덥고 습해지는 날씨에 뱃속이 더욱 답답했는지, 낮에 조금도 가만히 있지 않고 쩅쨍 울어 아내의 마음을 긁었다고 했다. 아내보다 근력이 훨씬 나은 나는, 항상 아이가 찡찡 울때마다 능숙하게 안아서 살살 흔들면서 재워주는 일을 담당했고, 그때마다 아이는 정말 금방 잠들어서, 나는 우쭐하고, 아내는 그런 내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아이고, 울 여보야는 어째 이리 딸내미를 잘 재울고, 감탄하던 일이 예사였는데, 아뿔싸, 어제는 서둘러 아이를 씻기고, 모든 정리를 마치고, 아내의 식사를 챙긴 다음, 여섯시 오십분부터 아이를 받아들었는데, 무려 열 시까지 한숨도 자지 않고 계속 울기만 했다. 다 찢어져가는 어깨로 받쳐들어도, 품에 바짝 안아도, 스쿼트 하듯이 위아래로 살살 흔들어주어도 아이는 잠시 멈칫할뿐, 곧 울고 또 울어서, 어찌 이런 일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아이는 두어 시간 계속 날카롭게 울어 부모 속을 긁다가, 밤 9시쯤 되어서야 지쳤는지 서서히 눈이 감기웠다. 그 때 나는 한 번 다쳤던 어깨가 쑤시고 아파서 눈앞이 하얬지만, 아비 되는 것이 다 그렇지 싶어 아이를 비스듬하게 안아 가슴에 바짝 붙이고 양 옆으로 살살 흔들면서, 또한 위아래로 아주 살짝살짝 스쿼트를 계속 유지했다. 그러고 있자니 손가락이 떨어져나갈 듯해도 도복을 놓지 않던, 옛 주짓수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잔 프랭클 계열의 적통 도장에서 사사했으며, 물론 브라질리언 주짓수 또한 무척 좋은 무공이었지만, 내가 미처 기초를 다 떼기도 전에 내 사정상 도장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태권도와 인연이 닿아 2단을 받았지만, 내 성격상 주짓수뿐 아니라 어느 한 도장이나 무관, 체육관에 오래 있기만 했었던들 결코 그리 쉽게 그만두지 아니했을 터이다.
근 3시간을 아이를 안고 흔들고 있자니 아내는 무척 안타까워한다. 아이고, 고마 내려놓으소, 그러다 어깨 더 덧난다카이, 하지만 아내도 저렇게 들고 흔드는 방법 외에 없음을 모르지 않을 터였다. 나는 그냥 아내를 올려보내 재우고, 평소처럼 이따 교대하자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 때 우습게도, 소림사 72종 절예 중 하나인 옥대공(玉帶功)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옛날 소림사에 눈이 먼 거지 소년 하나가 무공을 익히기 위해 찾아왔는데, 이미 눈이 멀어 가족들을 몰살한 원수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으나 단 하나, 체취만은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천하무공의 정종을 자처하는 소림사라 할지라도 눈 먼 소년이 능히 익힐 무공이 없었다. 고심 끝에 방장스님은 눈 먼 소년에게 매일매일 무거운 돌과 구리 항아리를 들게 시켰다. 훗날 소년이 능히 돌과 항아리를 번쩍 들어 던지게 되었을때, 그는 하산하여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원수의 체취를 맡게 되었는데, 그 순간 원수의 허리를 끌어안고 조여 몸통뼈를 부숴 죽였다고 한다. 그 유명한 옥대공의 고사다.
그러므로 나는 밤새 우는 아이를 부모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신앙을 가지면서 또한 태권도를 익히는 사람의 마음가짐을 가다듬는 것이고, 아이를 달래며 걷고 스쿼트하는 일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신체 훈련이라고 여기면서 밤을 보내었다. 자정이 다 되어 내려온 아내에게 아이를 넘겨 주었을 때, 왼쪽 어깨는, 마치 차현 형님의 소설 제목처럼, 시리고 아파서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다행히도 아이는 깊게 잠들어서, 이제 역류 쿠션에 내려놓아도 꿈쩍도 하지 않고 다만 배만 오르락내리락하였다. 아내는 안타까워하면서, 누워 있는 내 어깨를 발로 밟아주었다. 온 몸에 땀이 흥건하였다. 아비가 되는 것 또한 삶의 일부이고, 태권도의 일부라고 여겨야 마음이 편하다. 말 못하는 아기는 울음밖에 전하지 못하니 얼마나 더 답답할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