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인연을 맺은 형님 누나께서 이 풍진 세상에서도 백년가약을 맺게 되시어 가볍고 천박한 나조차도 잊지 않고 불러주셨다. 모처럼 아내에게 허락을 받고 시간을 내어 훈련 두어 시간 한 뒤 황감하게도 빈손으로 신혼부부의 집으로 찾아들었다. 치즈 뿌린 볼로네제 스파게티에 수육, 두 종류의 스테이크, 베이컨 샐러드, 된장찌개까지 술 바꿔가며 잘 먹었다. 그나마 자신할 재주는 입이나 놀리는 것이므로 나는 아무래도 남의 집 귀한 행사에 주제넘게 사회를 주관할 모양인데 감사하고 죄송하여 꿀떡꿀떡 받아마시었다. 8킬로가 덜어진 몸에는 소주와 맥주와 와인이 봄비처럼 적시었다. 혼자 아이를 재웠을 아내 보기 미안하여 그래도 양심상 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적에, 아내가 미리 걱정한대로 소금같은 눈이 허생원 걷는 메밀밭마냥 하얗게 뿌려져 걷는 곳마다 사박사박 소리가 요란한데, 아직 일러 싸늘한 봄바람 황소처럼 들이치는 밤, 지하철 역에 담요를 정수리 끝까지 덮고 옹송그려 누운 사내들이 앙상하여 나는 그 바쁜 와중에도 잠시 발을 멈추었다. 무서운 이 시대에 열심히 산 누군들 나락으로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나는 행여나 술과 고기로 가득 배를 채운 이 밤이 또 허몽은 아닌지 괜히 혼자 더럭 겁이 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