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915일차 - 오랜만에 훈련량을 늘렸더니 아직 적응이 쉽지 않다.

by Aner병문

아내를 만나기 전 총각 시절에는 주5일 하루 4시간, 퇴근 후 6~7시부터 보통 10시 30분, 11시까지도 훈련하는게 일상이었다. 너와 곽선생, 밥 잘하는 유진이 아니면 특별히 만날 이도 없었고, 커다란 취미도 없었으므로, 혼자 술 마시고 책 읽는 시간 외에는 거의 도장에서 보냈다. 특히 직장 상사이자 동료였던 밥 잘하는 유진이가 도장 생활을 함께 시작하면서, 출근 전에도 모자란 훈련량을 함께 채우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 주방-홀 생활에서 군살이 붙을 여유가 없었다. 아무리 밥과 술을 퍼마셔도 몸무게 62kg에 당시에는 제법 호리호리한 체격을 자랑했었다. 지금도 먹는 양에 비해서는, 배에만 좀 살이 붙어 그렇지, 과하게 살이 찐 체격은 아니다. 애초에 몸매 신경을 별로 쓰지 않기도 하거니와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데 몸매가 날씬하길 바라기도 우습다.



단지 나는 좀 더 강하고 유려하길 바랄 뿐인데, 확실히 결혼하고 나서는 그 훈련량이 크게 줄어 군살이 붙는 것 이외에도 몸 움직임이 둔하고 무뎌지어 조금 걱정이었다. 그러므로 아내가 없는 이런 틈을 타서,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3시간 정도 훈련량을 지키고자 애쓴다. 최근에는 몸에 슬슬 무리가 오는지, 목의 왼쪽이 뻐근하고, 오른다리 고관절과 허리가 쑤시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보자면 상대가 주로 오른손발잡이일테니 방어가 허술할때마다 왼쪽 목 있는 곳을 얻어맞아 그럴테고, 반면 나는 오른손발잡이이니 아무리 왼앞발을 자주 쓴다고 해도 내 허리와 골반, 고관절이 과하게 쓰일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오른쪽 허리 앞뒤가 다 아프기에 훈련 전 도장 청소를 마치고, 스트레칭을 하면서 양발바닥을 서로 맞대고 나비 자세로 앉아보니, 오른 무릎이 크게 올라왔고, 억지로 내리려니 대번에 고관절이 저리고 아팠다. 틀림없이 골반이 틀어지고 관절에 이상이 생긴 터이다. 하여 옛날처럼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무릎을 내려주고 골반 높이를 맞춰주었더니 확실히 허리뿐 아니라 왼쪽 목까지도 예전보다 덜 아팠다. 젊은 시절에는 이보다는 훨씬 유연하여 무릎 꿇은채로 엉덩이 바닥에 대고 뒤로 쭉 눕기도 하고, 다리도 훨씬 많이 벌어지고, 양 무릎 높이도 잘 맞았는데, 그저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다.



그래도 사범님께서는 전체적으로 움직임은 항상 좋아지고 있다며 격려해주셨다. 특히 원투 치고 뒷다리를 차는 기본 연계 공격에서, 예전처럼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고 힘이 빠져서 자연스러운 타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젊었을 때는, 몸이 신체적으로는 유연햇을지 몰라도 그 쓰임새를 몰라 늘 억지로 발을 높이 차려 하느라 오히려 뻣뻣하고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저 가볍게 가볍게 빠르게 찬다. 발을 두고 오는 듯한 느낌으로 가볍게 차주어야 좋다. 그 때에 비하면 내 온 몸은 훨씬 균형을 고루 잘 잡고, 타격에 필요한 중심과 힘을 알맞게 길러 배분하고 있다. 즉, 힘을 키워야 비로소 힘을 뺄 수 있다는 사실이 늘 신기하다. 삶의 묘미는 가끔 이런 재기발랄한 모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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